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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수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1 儒敎文化硏究 Vol.- No.19
한국의 유교문화 중 비교적 오늘날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전승되고 있는 것은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성균관의 의례이다. 성균관의 주요 기능과 역할이 성현제사와 인재양성이라고 할 때, 그 중심기관은 文廟와 明倫堂이다. 즉 문묘는 성현에 대한 제사를 담당하고, 명륜당은 후학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유교문화의 전개와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첫째, 한반도에 유교가 전래된 이후 유교교육이 어떻게 실시되었는지, 특히 역대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둘째, 한국에서의 유교 관련 종교 논쟁, 儒敎系 조직과 활동 등을 중심으로 한국 유교계의 현황과 지도자 양성과정을 살펴보았다. 셋째, 한국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성균관의 儀禮文化를 살펴보기 위해 석전제를 포함한 儀禮의 유래와 종류, 釋奠 佾舞의 樂章歌詞와 춤동작 등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유교의 현황과 전개양상을 검토하였다. 한국의 유교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成均館의 文廟, 明倫堂, 釋奠, 佾舞, 地方鄕校 등 건축물이나 제사의식 등과 같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有形의 문화이다. 둘째, 예의정신과 선비정신 혹은 제사문화 등과 같이 일정한 형태는 없으나 한국인의 의식 속에 살아있는 無形의 문화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두 가지 유형의 유교문화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전승되어 왔으며, 역사적 상황에 맞게 變奏되어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상옥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儒敎文化硏究 Vol.- No.17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illuminate whether Confucianism is the religion or not(hereafter cron). The contents are as follows: the general religion theory, the ancient Chinese religion concepts, the background of the argument about the Confucianism is the religion or not, pros and cons on cron, and the conclusion. The context of cron is that the thesis about how creator Confucius made the Confucianism and what was the accurate meanings of him? And Confucianism has experienced twice change the thought itself, first, Han dynasty and second, Sung dynasty. The interpretation about these thesis are different themselves between pros and cons of cron. The argument begins at the humanist or nationalist Ren, Jiwu who suggested the 'Confucianism is the religion' at first. He reproduced Confucianism as the system of religion canon, organization and mission. And cons of cron are opposed of Confucianism as the religion because Confucianism would not be the lower level of mass religion, would be the higher level thought of Chinese nation. In conclusion, I would suggest that first, the cron is the tools of the politics discourse, second, the dispute of the cron would rather be the ironical characteristic thing, third, through the core meaning of the cron arguments we would acquire vivid contexts of the history and culture of China. 유교의 종교성 여부에 대한 현대의 논쟁을 중심으로 그 성격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의 의미를 분석한다. 전통적인 문화의 입장에서 종교를 결여하고 있었던 중국인의 민족주의의 한 발로이기도 한 본 논쟁은 역사 시대를 두고 유가의 성립 이후로 각 조대(朝代)의 유가에 대한 개조와 이용, 종교적 성격 등을 중심으로 논쟁 시작의 의미와 전개 과정, 전개의 논리와 내용 등에 대한 분석이 그 주요 내용이다. 본 논쟁의 특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유가의 종교성을 인정하는 것과 종교성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 주제가 수단으로 사용되어 민족 문화의 정화로서의 유교에 대한 전방위적인 무소불위의 존재감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이 그 배경이되었다. ‘유교종교설’의 이론의 분석을 위해 종교 관련 일반 이론에서부터 정의(定義)적논의를 시작한다. 신(God)의 본질, 종교 믿음의 합리성, 그리고 과학과 소멸성 및영원성의 관계 등의 부분으로 나누어 간단한 정리를 한다. 중국의 종교 관련 이론에서는 전통이론과 현대 중국의 종교 이론으로 나눈다. 유교의 근원은 종교와는 그 발생에서부터 개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종교 행위는 미신과 같은 내용과 이기심의 발로인 재부(財富)에 대한 기원 등과 여러 종교를 동시에 믿는 ‘삼교합일설’적인 생활을 유지해왔다. 유교종교론자는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경전의 해석상의 문제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출발한다. 공자가 귀신(鬼神)관념과 제사(祭祀)를 통한 사신(祀神)의 의미를 지녔다고 재해석한다. 현대 중국의 종교 이론은 마르크스의 종교관을 적용하는 것을기본 전제로 하여 전통과의 친화적인 종교 이론을 만들어낸다. 유교종교론의 역사는 현 종교 관련 논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중국적 역사에 대한 맥락의 이해가 될 것이다. 유교는 복합적이고 모호한 관념이고 노장사상 등과 혼용되기도 했다. 이것이 중국적 사고이자 종교 생활의 방식이었다. 이렇게 역대 왕조를 전승하여 내려오면서 유교는 국교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한다. ‘유교종교론’은 1978년 임계유에 의해 재삼 제기되었다.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다. ‘문화혁명’이 종결된 후 인민의 사상과 문화의 황폐함을 만화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유교는 그 독특한 신앙, 즉, 충효 등 종법 윤리규범인 천리(天理)와 양지(良知)등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론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의 종교로서의 특성을 피력하기보다 유가의 장점과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논리를 전개한 것이었다. 이에 반하는 ‘유교비종교론’의 주장자들은 우선 유가의 본질적 특성을 사상의 입장에서 종교적 성격은 일부 있으나 과도한 목적론 위주의 아전인수격 해석임을 지적한다. 중국의 ‘유교비종교론’의 원조격인 베버는 자본주의와 중국의 유교와 도교,그리고 서양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삼자를 비교하여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중국의유교가 종교가 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본 유교 종교성 여부의 논쟁에 대한 귀납을 한다. 첫째, 본 유교 종교성의 논쟁은 논쟁 그 자체의 의미보다 잠복한 내면의 의미가 더 큰의의가 있다. 둘째, 본 논쟁은 실증적이고 사상사적 의미로 보아 논쟁으로 성립하기가 쉽지 않은 맥락을 보인다. 셋째, 논쟁의 내재적 의미와 그 세부 내용으로 보아 유가나 유교의 의미와 개념을 현대적 맥락에 맞게 계발할 필 ...
국제화 시대에 있어 한국가정의 문제 -다문화 가정을 중심으로
박홍식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09 儒敎文化硏究 Vol.- No.14
20세기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속에서 국민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한국 사회의 결혼과 가정문화도 전통적인 유교문화에 기반을 둔 혈통중시의 가족주의가 중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세기말 급속하게 진행된 국제화 세계화와 더불어 한국의 결혼과 가정교육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 동안에 260배 증가하여, 2005년 6월 현재 총 한국인의 결혼자 가운데 10쌍 중 1쌍, 농촌지역의 경우는 4쌍 중 1쌍이 외국여성을 배필로 삼고 있다. 반면에 국제결혼 가정을 포용하는데 필요한 한국인들의 의식변화와 사회적 인프라 구축은 아직 걸음마 단계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제결혼 이주가정문제와 가정교육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이며 국가의 미래 전망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20세기 한국 사회의 가족개념은 동양적 유교전통의 국민문화에 바탕을 두었다면, 21세기 한국사회의 가족개념에는 Global 시대의 다문화에 바탕을 둔 ‘사문화(私文 化, I-Culture)’에 대한 존중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정교육의 변화도 혈통보존이나 종족보존을 염두에 둔 가족윤리의 차원을 넘어서 ‘국경을 넘는 방법’ 교 육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러한 ‘국경을 넘는 방법’에는 가족 간 의사소통을 가능 하게 하기 위한 한국어 교육, 다문화 교육이 최우선적 과제가 될 수 있다. 그간 민간단체가 이주여성과 이주아동을 위한 한국어 교육과 다문화 교육을 전담 해 왔으나 이제 공기관의 개입 단계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양자의 바람직한 협력모 델이 절실하다. 20세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국가차원에 있어서 ‘국가 간의 국경의 벽을 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21세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하나의 과제는 가족 내에 있어서 ‘가족 간의 국경의 벽을 넘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는 것일 것이다.
신창호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09 儒敎文化硏究 Vol.1 No.15
This paper re-illuminates the characteristics of Confucianism from the view point of education. Confucianism is a life education in its essence, and pursues reconciliation in its content. As for its characteristics as a life education, it establishes the foundation to build up and practice the morality which controls different problems. It is continued to learning and practicing self-faithfulness of perfect virtue(仁) and self-control(克己), and consideration for others to understand others’ situation through his/her own experience(絜矩and 忠恕). Based on this spiritual world, Confucianism attaches importance to moderation(中庸) in daily life to realize a wholesome life. It’s encouraged to continue such speculation and practice throughout the whole life. Therefore, Confucianism is a huge process of self-realization and life-long education simultaneously realized in the private and social life. This is confirmed in the curriculum of prenatal care(胎敎)-small learning(小學)-great learning(大學), and the self-realization process of Confucius and Mencius. In terms of its contents, Confucianism is moral education of reconciliation. It pursues moderation in all stages of life, and seeks harmony and reconciliation according to a reasonable standard. Especially, it pursues the unity and order among humans, with the reconciliation between the nature(天) and humans, unity between Heaven and humans(天人合一), as its center. It is the relation between the way of Heaven(天道) and the way of humans(人道), the realization of the most truthful thing, and the embodiment of the courtesy and music(禮樂) spirit among humans. In this way, the problem of reconciliation is the educational foundation that Confucianism seeks after. The principle of reconciliation and consideration can be examined through moderation, and can be found through the consideration for humans by practicing the moral rules to govern the Five Human Relations(五倫) and by building relationships with others. 본고는 유교의 특징을 교육적 차원에서 재조명하였다. 유교는 본질적으로 생활 (生活)교육이고 내용상 화해(和諧)를 추구하는 교육이다. 생활교육으로서의 특징은, 삶의 다양한 문제를 조절하는 인륜(人倫)을 구축하고 실천하는 바탕의 확립에 있다. 그것은 인(仁)과 극기(克己), 혈구(絜矩)와 충서(忠恕)라는 자기 충실과 타자 배려의 정신을 습득하고 실천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유교는 이런 정신세계를 기초로 건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에서 중용(中庸)을 중시한다. 삶의 전 과정에서 그런 사유와 실천이 지속될 것을 권장한다. 그러므로 유교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아실현 과정인 동시에 평생교육이다. 이는 태교(胎敎)-소학(小學)-대학(大學)의 교육 체계와 공자나 맹자의 자아실현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의 차원에서 보면, 유교는 화해의 윤리(倫理) 교육이다. 삶의 전 과정에서 중용을 추구하며 합리적 기준에 따른 조화와 화해를 추구한다. 특히 자연[天]과 인간의 화해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중심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합과 질서를 도모한다. 그것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관계로 가장 진실한 것의 실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예악(禮樂) 정신의 구현이다. 이런 점에서 화해의 문제는 유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근본 내용이다. 화해와 배려의 논리는 중용을 통해 검토할 수 있고 오륜(五倫)의 실천과 인간 관계망을 통해 사람을 배려하는 가운데 발견할 수 있다.
김현우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2 儒敎文化硏究 Vol.- No.20
1910년대 『매일신보』에 비친 유교의 모습일제시대 『매일신보』는 일제통치를 강요하고 정당화시킨 언론매체로 이 신문에실린 ‘유교’ 관련 기사도 이 목적과 관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중 1910년대 기사에는 유독 한국 유교계(유림)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그 목적은 (1)조선의 유교인 성리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생산과 (2) 일제 통치의 강화를 위해유교지식인의 협력 추구로 볼 수 있다. 일제 통치 기간 매일신보의 유교관련 기사는 총 359건으로 이중 1910년에만184건 52%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매일신보』가 유교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특히 1910년대는 그 관심이 집중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910년대 184건의 기사 중 ‘유교’ 검색 기사는 159건 86%에 다다랐는데, 이는 1920년대 이후174건 중 ‘유교’기사가 겨우 3건에 불과하고 대부분 ‘유림’단체 활동에 극한된 것과 비교해 볼 때 1910년대에는 유교이론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내용면에서 볼 때, 강제 합방 이후 유교에 대해 부정적이던 것이 1911년 경학원개설과 친유교적으로 변하며 주로 윤리 도덕과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일제가 한국인을 식민지 산업체제에 포함시키려는 기획의 일환으로 유교에 대한 변경・변질과 관련된다 할 수 있다. 나이가 1917년을 중심으로 이 신문은 유교의 계급질서나 ‘親親’논리를 기사화 하면서 서구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정치체제에 대한 반박으로 유교를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매일신보』의 친일유교는 ‘윤리도덕과 실천을 강조하여 근대적 생산관계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본양명학과도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근대일본의 ‘역사적 산물’인 일본 양명학을 성리학 기반인 조선에 이식시키려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유교를 통해 식민지 대중에 일제 통치 체계를 이식시키려는 목적이었을 뿐 서구 근대사회와 동아시아의 전통을 조화시켜 동아시아 문화에 부합하는근대 사회 형성 수립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현재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철학자들은 현대사회의 모순을 유교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이런점에서 일제시대「매일신보」의 친일 유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세대를 위한 ‘교양 유학’ 교수-학습 지도법: 변화의 시대, 성균관대학에서 ‘儒學’ 강좌가 주는 의미-
김용재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1 儒敎文化硏究 Vol.- No.18
이 글은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가 수 년 동안 고심하고 있던 ‘교양 유학’ 강좌의 교수-학습지도법에 대해, 필자가 강의 경험에 근거하여 몇 가지 기법의 팁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다. ‘儒學’이라는 강좌는 성균관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며 학교 교시과목으로서의 특수성이 남아 있는 최후의 보루임을 감안할 때, 본 강좌의 강의법 개발 방향 모색은 시의적절한 소재라 생각한다. 특히 성균관대를 구성하는 諸주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유학’임을 자각하고 명심해야만 한다. 환언하면 성균관대학교의 DNA는 주체로서의 바로 당신 ‘You'이며, 학교 건학이념인 ’儒‘(유)에 있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서 ‘유학’ 강좌는 단순히 졸업을 위한 필수 교육과정이 아니라, 成均人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인 셈이다. 이들에게 儒學 수업이 좀 더 이지 [Easy, 易知(이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보려 기술되었다. 끝으로 결론부에서는 성균관대학교의 ‘유학’ 강좌 운영 방식의 변화 필요성과 시스템 개발 방안에 대하여 필자의 소박한 견해를 添記하였다. 모쪼록 성균관대학교에서의 ‘儒學’ 교육이 학문후속세대들에게 成均人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실어줄 수 있는 명실이 상부한 최고의 교양 강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서경요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儒敎文化硏究 Vol.- No.16
본고는 조선조 후기 실학자 정다산의 인성 해석은 실천윤리적인 문화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는 특징을 분석한 글이다. 유가의 육경(六經)은 인간사의 상도(常道)를 말하는 것이며, 모든 변화의 바탕이 되는 이 상도를 체현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문화학의 범주는 인류의 성격에 대한 관념적 파악보다는 사회의 문화적 현상으로서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으므로, 사회관계학, 문화인류학의 영역으로 세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산 정약용은 조선조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한다. 그의 학문 체계는 육경사서(六經四書)의 경학과 일표이서(一表二書)의 경세학을 겸비하여 유학의수기치인의 학문 영역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에 관한 해석은 관념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행사(行事)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유가의 인성과 도덕적 덕성(德性) 역시 인간관계 속에서 이룩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인륜관계에 있어서그 직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문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유학사상은 인륜과 일용의 상도(常道)를 말하고 있다는점에서 오늘날에 와서도 주목 받을만한 것이다. 다산은 경전의 원의(原義)와 본지(本旨)를 밝히는 것이 그의 경학의 기본 태도이다. 그는 특히 의해(意解)하는 방법를 통해 원의를 밝히는 고정법(考訂法)을 원용하여 종합적으로 다른 경전의 경문(經文)으로써 경문을 고증하는 ‘이경증명(以經證經)’의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인성에 관한 이론은 이른바 성기호설(性嗜好說)이다. 그는 인성의 선악보다는 호오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은 기호(嗜好)라고 단정한다. 이목구체(耳目口軆)의기호에 따르는 것은 형구(形軀)의 기호이다. 그리고 천명(天命)의 성이라거나 성과천도라거나 성선(性善)하다, 진성(盡性)한다는 성들은 영지(靈知)의 기호로 나누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본심의 덕목(德目)이란 행사가 있은 다음에겉으로 드러나는 덕성(德性)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한유나 송유들의 장단점을 찾아 종합하는 결론이다. 또한 다산은 경전 해석에서 자의(字意)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간의 본성을 감성적(感性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수사학의 옛것에 따르기 위함이다. 다산은 유교경전이 인륜일용의 도를 싣고 있다는 일반론을 따르고 있다. 그는 인간 문화의 해석에도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다. 다산은, 인이란 두 사람이 상여(相與)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울림이 있는사랑이며, 사람과 사람이 그 도리를 극진히 하고, 인륜관계 속에서 그 직분을 다하는 것을 인이라 한다. 따라서 인이란 군신 부자간에 그 직분을 다함으로써 인륜의사랑을 다하는 것으로 인륜의 성덕(成德)이라고 한다. 또한 인자(仁字)의 뜻은 성도(聖道)와 성학(聖學)의 대관계이며 대강령이며, 치심(治心)하고 양성(養性)하는 본령이요, 행기수신(行己修身)의 근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내가 남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혈구지도를 말하고, 서(恕)를 인을 행하는 방법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본성은 관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환경 속에서 인사(人事)로 행사(行事)할 때 이룩되는 덕성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문화인류학에서 중시하는 인간문화의 환경 문제로서유가의 덕목을 인간관계 속에서 실천윤리로 해석하고 있다 ...
권병숙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1 儒敎文化硏究 Vol.- No.18
오늘날 우리는 서구화하는데 너무 골몰하다가 전통적 문화형식이나 생활양식을 전근대적이고 낙후한 것으로 규정하고 마침내 우리의 역사적 내지 문화적 전통을 단절시키고 말았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전통문화의 재인식과 전통적 가치의 현대적 이해를 도모하며, 계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유교문화는 대표적인 전통사상의 하나이며 유교적 규범과 생활양식은 유교의 구체적 실천 양식이요 저변적 침투형태인 의례는 사회제도와 행동양식 내지 생활관습 속에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유교문화는 19세기 이래 밀려온 서구화의 물결에 따라 그 정당한 평가나 비판도 없이 거부당하였다. 그 주된 원인은 기계적 합리성에 근거한 산업사회의 힘의 논리, 지배와 정복의 논리가 우리나라의 전반을 덮어버렸기 때문이고, 그 결과 우리의 주변에 남아 있는 유교적 규범과 의례의 모습은 심한 파괴를 당하고 유가사상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필자는 본고에서 유교의례인 전통혼례 절차 속에 나타난 친영례에서 가정을 형성하는 婚禮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가치관과 인륜적 의미를 살펴보고, 부부의 성격과 도리를『禮記』에서 살펴본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이 유가사상의 탐색과 창조를 명분보다 실질을 추구한 情禮와 時宜에 맞는 실생활 중시의 혼례를 검토하여 현대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혼례관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오늘날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 이를테면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여성문제, 이혼문제 등은 전통적 가치관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 가치관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일어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통혼례가 새롭게 재조명 되는 이유는 밝고 건전한 사회를 위한 문제 해결책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사회는 식민지배와 근대화 서구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질서의 중심이었던 儒敎儀禮규범은 권위를 상실하였고, 급격한 서구화의 영향으로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가치관이 전도되었으며, 다종교 상황의 전개로 가족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가 충돌하는 상황이 야기되어, 의례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초가 해체되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의 전통의례는 일관된 가치관이나 윤리관을 표현함으로써 사회를 정화하고 통합시키는 기능을 하였으며,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인간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사회를 바로잡는데 훌륭한 정신적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禮를 창조함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婚禮는 두 당사자의 결합뿐 만 아니라 가문과 가문과의 결합이므로 이에 따른 전통적 절차가 간직될 필요가 있고 현대사회에 맞는 모법적인 혼례식이 필요하다. 혼인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二性의 결합이요, 가통을 잇기 위한 性的 결합이며, 서로 공경하며 분별이 있고 평생 고락을 같이하는 인격적 결합이다. 그리고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특정한 지위를 가진다는 의미에서 婚姻은 두 사람의 결합에 의해서 생기는 두 가족 간의 사회적 결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맞는 혼례문화를 지향할 때, 새 세대 새로운 가족의 건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中國의 儒敎觀 硏究(1949~1978) -『中國哲學史』 중 儒敎 관련 기술을 중심으로-
김현우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儒敎文化硏究 Vol.- No.17
현재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이미 세계 경제의 중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전 세계는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국은 세계 제2의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논문의 주관심사는 중국의 사회변화와 유교관 간에 관계이다. 1976년 이전 毛澤東은 대외적으로는 자본주의 침탈에 대비하여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대내적으로는 구시대 봉건잔재를 청산하고자 했다. 이 시기 중국 철학 연구는 왕조사 중심의 역사 기술을 맑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유물사관에 맞게 고치는데 주력했고 그 결과 孔子와 儒敎는 ‘중국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평가와 더불어 ‘봉건잔재’라는 가치평가를 동시에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사고는 1978년 이후 1980년대 초중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85년부터1988년까지 일어난 ‘文化热’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의 전통관 즉 유교관은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성과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정치 분야에서도 서구적 가치 수용이라는 개혁조치가 일부 수행되기도 했던 시기이다. 또한 철학은 교조적 맑스주의 유물사관에서 벗어나 중국철학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했고, 결국 공자와 유교는 다시 중국사회에 통용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철학은 中國摸索 社會主義라는 정치구호와 함께 중국인의 심리구조의 특징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선정하고 이를 중국 경제발전에 활용하려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특히 유교 자본주의는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 대통일의 평화로운 사회, 가족 공동체 같은 기업문화, 근면하고 복종심이 강한 노동자 양산”을 동아시아 근대적 가치로 보고 있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전통에 대한 인식은 결국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므로 당대 중국에서 나타난유교의 평가는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교 부흥은 중국의 현실 더 나아가 사회와 경제의 발전이란 현실의 모토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점에서 오늘날 동아시아 유교철학자들에게 중요한 담론으로 남을 것이다.
儒敎와 喪禮의 宗敎性에 關한 硏究 - 『家禮輯覽』을 중심으로-
이창진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1 儒敎文化硏究 Vol.- No.19
본 논문은 유교의 종교성에 대해 논한 것이다. 종교의 조건 가운데는 초월성과 내세관, 교리와 교단조직 등의 요건이 있다. 이 가운데 유교의 상례는 초월성이나 내세관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종교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상례의 절차와 과정 속에서 귀신과 초월적 존재의 여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와 영생의 가능성, 유교적 영생에 대해 고찰하여 상례 속에 내포된 종교성 여부를 살펴보았다. 종교에 대한 정의는 종교 학자 수만큼 다르다고 한다. 많은 종교 학자들이 내린 정의에 적용시키면 거의 모든 사람은 종교인에 해당한다. 따라서 유교가 종교인가의 문제는 서양적 관점과 다르다고 설명하기보다 서양적 관점에서 상호 대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유교는 사후 세계에 대한 존재 여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사후 세계가 없다고 한다면 제사와 조상에 대한 관념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 사후 세계에서 영생할 공간을 천당이나 극락이라고 한다면 유교에서는 그곳이 바로 사당(祠堂)이다. 서양 종교에서 종교적 의례를 행한다면 유교에서는 제사를 지낸다. 서양의 종교의례와 유교의 제사는 매우 흡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경건한 모습, 제물 준비, 술을 따르는 의식,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전승되는 행위 등등이 모두 서양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유교에는 절대적 초월자 없고 사제(司祭)가 없다는 이유로 유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규정한다면 적합한 판단은 아니다. 유교적 초월자는 천(天)이요, 신(神)이며, 리(理)이다. 유교적 사제(司祭)는 제관(祭冠)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례의 절차 속에서 행해지는 각종의 의례는 모두 종교적 엄숙성과 상징성을 가진 의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