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가야마 히로토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5 국내박사
본논문은, 탈 종교적이고 비 그리스도교적 현대 사회의 상황을 염두의 두고, 그리스도교의 중심 개념인 구원론을 민중신학적으로 재해석 한다. 민중신학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 신학사상이며, 독재 체제하에의 사회개혁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있어서의 사회개혁과 인간해방을 위한 사상으로써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신학이라고 할 수있다. 성서의 구원개념은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 사상과 본인 스스로의 믿음에 의한 자기 해방의 두가지 구원론을 가진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원죄론과 속죄론을 중심으로 구원을 이해 해왔으나, 현대 신학, 특히 몰트만 스히레베그스 해방신학 등 새로운 구원론을 볼수 있다. 주제는 타자와의 교섭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바울로 프레이리는 의식화의 과정이라고 보고, 자유로운 주체로 향하는 상호적 과정을 교육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을 억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나, 참된 인간은 자유를 위해 이웃과 함께 새로워지는 존재이며, 그 과정 자체가 구원의 과정이라고 할 수있다. 안병무는 독재 체제하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것은 복음서가 증언 하는 예수의 행태와 가르침, 즉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이었다. 교회는 개인주의와 피안적 신앙을 극복하고 민중과 함께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병무의 주장이다. 안병무의 신학은 독재 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증언하고 교회 개혁을 요청했으나, 원죄론과 속죄론에 고집하지 않는 안병무의 구원 이해는 탈 종교적 사회에 있어서 설득력있는 구원론이라고 할수 있다. 구원이란 자유로운 존재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주체화의 길이다. 이로한 재해석은 민중과의 연대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의 복음이 되는 것이며, 탈 종교적 현대인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기독교 영성 : 종교간 대화와 성숙한 자기영성을 위한 신학적 모색과 성찰
방홍식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4 국내석사
이 글의 목적은 종교다원주의적 상황에서 기독교 영성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성찰을 통해 성숙한 자기 영성을 심화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주요 내용을 다루었다. 먼저, 우리가 처한 종교적 현실이 종교다원주의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개념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일반적 의미에서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종교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어느 특정 종교가 절대적 진리나 가치를 주장 할 수 없다는 종교에서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는 종교다원화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인한 지평(地平)에서 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금적 실재를 주장하는 종교적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째는 존 힉(J. Hick)이 주장한 것처럼 모든 종교는 문화의 산물이므로 종교적 절대성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종교 문화적 개념이며, 둘째는 피터 버거(P. L. Berger)의 종교 사회적 개념이해가 그것이다. 따라서 두 입장을 통해 더 이상 종교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또한 한 종교만이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신앙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의 출현요인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사회 문화적 요인과 문화 인식적 맥락이 그것이다. 이것은 서구 사회의 사상적 흐름과 한국 사회의 종교적 배경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가 갖는 의미와 이중성은 기독교 신앙과의 연관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앙이 독단적이고 절대적인 우월성에서 벗어나 신앙의 혼란과 혼돈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대한 겸손한 품성(品性)을 갖게 함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의 신앙적 “삶의 자리”와 “삶의 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이중성은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이 신앙과 접맥(接脈)될 때 갖게 되는 위험성을 의미한다. 즉, 다원주의라는 문화 ‘형식’을 통해서 종교의 넓이를 확보했지만, 종교의 ‘실체’ 즉 그 깊이를 간과하는 우이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이해 다음에 언급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이해와 중심이다. 먼저, 일반적인 영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말을 사용하고있는 문맥과 상황에 맞는 규정을 어느 정도 설정한 다음 사용해야 그 관계상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영성은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의 수준이 아닌, 그것을 넘어서는 실제의 수준에서 인간 인격의 통합을 이루려는 인간 마음의 깊은 열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경험, 사건, 노력들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영성은 서구 사회의 사상적 내력 속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일반적 근대사회에서 억압을 받으며 뒤틀린 영성으로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바로 영성의 부재(不在)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결국,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개인 영성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 영성은 공동체와 개인을 회복하고 치유(治癒)하기 위해 요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영성을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웃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에서 자신이 믿고 신앙하는 종교에 대한 정체성(正體性)을 확인하며, 이웃종교와의 ‘다름과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라고 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성령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즉,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신앙이 그 독특성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웃종교와 구별될 수 있는 기독교의 독특성(獨特性)이면서 정체성(正體性) 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 영성은 앞서 언급한 내용을 전체로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기독교 영성이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성서(聖書)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주제와 내용이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영성의 원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로부터 기독교 영성의 다양한 특성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기독교 영성의 두 모습을 지적 할 필요가 있다. 첫째, 경계해야 할 함정(陷穽)으로 종교적 혼합주의(混合主義), 몰이해적(沒理解的) 상대주의(相對主義), 그리고 종교적 우월주의(優越主義)가 그것이다. 둘째, 긍정적 의도와 양상(樣相)은 만남과 대화를 통한 이해. 평화와 치유(治癒)를 위한 연대 가능성. 그리고 ‘다름과 차이’를 통한 신앙적 영성 향상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성숙한 자기 영성을 위한 신학적 모색과 성찰은 어떻게 시도할 것인가. 이를 위해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정해보았는데, 그것들은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신학하기’와 ‘일리지평(一理地平)’에서의 만남과 대화: 말(言)과 글(書)이 그것이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속에 자리 잡게 되는 신학하기의 실천적 자기 모색과 성찰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을 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성숙하지 못할 것이다. 씨앗처럼 작은 신앙의 경험은 신학이라고 하는 지적 잡업을 통해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하기’를 통해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이웃종교에 대한 ‘다름과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를 연출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성숙한 자기 영성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일리지평(一理地平)에서의 만남과 대화: 말(言)과 글(書)을 통한 모색과 성찰은 이웃종교간에 갖게 되는 만남과 대화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웃종교간의 만남과 대화는 결국, 말과 글의 만남이며 대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낯선 이웃종교에 대한 말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내적 자세가 관용적(寬容的) 영성이며, 말의 진정성(眞正性)이라 할 수 있다. 즉, 만남과 대화의 장(場)이 말의 진정성에 따라 풍성할 수도 있고 속절없이 가벼울 수도 있다. 곧 말의 부재(不在)는 대화의 부재를 가져오는데, 이는 관용적 영성의 결핍에서 나오는 결과인 셈이다. 왜냐하면 독선적인 말은 말을 하되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웃종교간의 만남과 대화의 장에서 또 다른 만남과 대화의 유형은 글(書)이라 할 수 있다. 글은 침묵(沈黙)의 언어이다. 따라서 글을 통해서 우리는 생각의 깊이나 내면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일리지평(一理地平)’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글을 통해서 만남과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독선적 편견(偏見)에서 벗어나 자신(우리)이 터한 ‘일리지평(一理地平)’에서의 현실을 망각하지 않는 자신(우리)의 시각에서 글을 써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글쓰기는 자기가 속한 종교적 영성의 의의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의 ‘성숙한 자기 영성’을 고양(高揚)시키기 위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국 개신교 운동에 대한 민중신학적 해석
임태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4 국내박사
안병무는 일찍이 통일코리아의 초석이 될 통일헌법의 원칙을 제안하였다. 새 나라는, 건강한 새 나라를 위하여, 첫째 원칙으로 통일이 민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둘째는 통일헌법의 초석을 놓는, 흔들릴 수 없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절대자(신)에게 둬야 한다는 것, 셋째 원칙은 공(公)사상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 넷째 원칙은 민의 압력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를 성취해야 할 우리의 목표로 설정한다. 하여 안병무는 왜 이런 요청을 하기에 이른 것인가를 묻는 질문은 논문의 중요 과정이 된다. 압제와 인권유린 및 수탈의 자유당 독재와 군부독재의 긴 터널에서 제주4.3항쟁, 4.19민주화학생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화항쟁은 피할 수 없이 발생한다. 이들 항쟁, 투쟁, 혁명의 과정은 드디어 그 근본적인 문제의 진원이 분단모순에서 출원한다는 확진에 이르러 지축을 흔드는 이들 민족사적 사건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추구되었던 통일 지향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서남동은 부활의 공동체성, 부활의 ‘새로운 사회와 질서, 정의와 평화를 여는 출입구’를 새 시대의 답으로 제시한다. 그 창발적 지향이 통일 코리아에 다다르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민중신학적 방법과 관점 그리고 목표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한반도의 분단체제의 현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남북한의 분단된 민족이 하나로 합류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인 길을 모색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 길은 민족통일의 길이며, 통일을 가장 원하는 세력은 기득권 지배세력이 아니라 가장 고통당하는 민중들임을 확인하고, 따라서 여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통일이 논의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임을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통일을 위한 합류하는 정신적 거점과 추동하는 힘으로 모아내는 방법을 궁구하는 일이다. 민중신학은 ‘현장성’을 말한다. 고난의 현장이다. 거기가 ‘하느님의 선교’의 현장임을 확인한다. 이제 민중신학은 민족의 분단, 분단체제의 질곡을 ‘하느님의 선교’의 현장, 고난의 현장으로 알고 그 부단한 활동, 그 정밀한 파토스에 하느님의 파토스가 조응하는 때를 기대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일으키며 민중이 조응하고, 민중이 일으키고 하느님이 조응하는, 상응의 사건이다. 그 사건이어야 한다. 새 시대, 남북연합으로 가는 노정에 참여하는 일체의 시민참여형의 대열이 펼치는 모든 자리를 민중신학은 새삼 자기 현장으로 알고 있다. 흩어진 힘의 다양한 관계를 어떻게 다시 건전하게 묶어내고, 타자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확대 재생산하는가 하는 것은 거기 전면적으로 편만한 고난의 현상적 실체를 하나로 인지하고 한 목소리로 견지하여 전진하는 실천의 기운에서 온다. 민중신학은 예수를 가장 예수답게 증언하려는 노력이다. 예수 정신의 중핵, 예수 삶의 중핵, 예수사건의 중핵을 찾아 증언하려는 것, 그것이 민중신학의 정체성이다. 한의 사제 예수이고, 한의 사제 민중신학이다. 지금 민중신학은 민중신학의 현장을 민족통일신학의 사명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그 현장은 분단 한반도 전역, 전 남북민이다. 통일코리아는 전 코리아 인(민, 인민)의 합류 사건이어야 한다. 민중신학은 민족통일신학으로서의 의의와 역할을 심화 실천해야 할 요청을 받는다. 예수가 연 그 ‘하느님 나라’를 누가 소망하겠는가? 누가 환영하겠는가? 누가 박수갈채를 보내겠는가? 누가 참여하겠는가? 누구에게 소용이 되겠는가? 현영학이 물었고, 서남동이 물었고, 안병무가 그렇게 물었고, ... 그리고 그들이 답했다. “민중들이다!” 그래서 문익환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꿈처럼 날아서, 그의 시(詩)처럼 날아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저들을 해방했다. 한반도 분단은 한민족 전체를 민중적으로 단말마를 내지르게 했고 오늘도 그렇다. 이 민중적 현실은 타자(외부)로부터 해결할 길이 아득해 보인다. 상처투성이의 민중적 민족은 상처투성이의 갈라진 한쪽이 상처투성이의 갈라진 다른 한쪽과 부둥켜안고 서로의 상처를 피차 보듬어 치유하려할 때, 곧 상처받은 몸으로 상처받은 너를 치유하는 치유자의 역할로 임할 때, 다시 곧 여기서 우리는 민족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가 기꺼이 스스로 죄인의 자리를 자취하려 임할 때 그 때만이 우리 함께 모두 치유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때가 더 늦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 이르는 길의 도중에 있다. 그 길 위에서 고난이 끝없다. 그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인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기에 또는 당연히 민중신학의 정위는 거기 역사의 자리다. 한반도 민족통일신학의 자리가 그 자리다. 민중신학은 화해·포용정책에서 민족통일신학의 역할로서 단연 독보적일 수 있다. 민중의 주체적 자리를 확보하고 사건의 해석학적 중심으로 호명해내는 자리가 그의 정위다. Ahn Byung-Mu early suggested the principles of the unified constitution which would be the foundation of the unified Korea. The new nation, for the new healthy nation, should be founded on 4 principles. The first,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should be achieved by the people(民). The second, the standard of value judgment which cannot be changed to lay the foundation stone of the unified Korea, should be put on the absolute being(神). The third, the fairness idea(公), that is, the state belongs to the all nations, the commonwealth, should be applied. The fourth, the pressure rights of the people should be enacted.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o establish this as our goal to achieve, on the other hand, it naturally includes the question why these requests were brought about by Ahn Byung-Mu. In the long tunnel of oppression, violation of human rights, and exploitation fulfilled from the Liberal Party’s autocratic phase and a number of military governments’ dictatorship, Jeju 4.3 incident(struggle), 4.19 Democratization Student Revolution, 5.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June Democratization Struggle occurred inevitably. The process of these movements, struggle, and revolution ultimately reached the definite diagnosis that it stemmed from the division contradiction, the origin of fundamental problem, so the will for unification of the country have been gradually confirmed, which had continuously appeared and been pursued in the process of these earthshaking national events. Suh Nam-Dong suggested communal attributes of the Resurrection, ‘the entrance to open the new society, the order, the justice and the peace’ of the Resurrection, as the answer of the new era. That emergent aim is to reach the unified Korea. This paper aimed at investigating and researching the way that the divided people of the south and the north would get together and become the historical subject with the method, the point of view and the goal of this Minjung Theology, cutting off the vicious circle of the reality of division system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suppresses and exploits the people. The researcher intended to confirm that the way is the unity of nation, and the group which wants unification the most is not the vested ruling power but the most suffering Minjung, accordingly, grasp the point that unification should be discussed and realized from the viewpoint of Minjung Theology, which suggested the problem of this. Also, it is to investigate the method to collect the mental base and the driving force to get together for national unification. Minjung Theology indicates the field in ordeal, and asks you are the real person sharing sufferings with the people there. It’s the place in present sufferings. It confirms that place is the field of Missio Dei. Now Minjung Theology realizes the ordeal of the division of nation as the field of Missio Dei, the divided system being the site of hardship. Constant participation in Missio Dei expects God’s pathos accords with that precise pathos. That is the corresponding event, which God raises and the Minjung corresponds, and the Minjung raises and God corresponds. It must be that way. Minjung Theology anew realizes that entire area which the whole public participation spread as its own, that participation in the path to the new era, the union of the south and the north. The point to bind the various relations of scattered power soundly again and expansively reproduce the responsibility and alliance to the other comes from the energy of practice to advance by recognizing the phenomenal substance of wholly diffused hardship as one and by adhering it to one voice. Minjung Theology is an effort to testify Jesus most like Jesus. The identity of Minjung Theology is to seek and testify the core of the mind of Jesus, the core of the life of Jesus, the core of the events of Jesus. Priest of Han is Jesus, Priest of Han is Minjung Theology. Presently Minjung Theology should more expand the site of Minjung Theology with the mission for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That site is the whole area of divided Korean Peninsula, the whole people of the south and the north. Unified Korea should be the unification event of the whole Korean people getting together. Minjung Theology is requested to intensively practise the meaning and the role as the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Who will desire the kingdom of God which Jesus opened? Who will welcome it? Who will clap and cheer for it? Who will participate in it? For whom will it be useful? Hyun Yeong-Hak asked, Suh Nam-Dong asked, Ahn Byung-Mu asked like that ... and they answered. “They’re the MINJUNG!” Therefore, Moon Ik-Hwan flied as a butterfly, fluttered like a dream, flied like his poem, met Kim Il-Sung, unchained them. Korean Peninsula division has struck death throes of the whole people until now. The way to solve this popular reality from the other(outside) seems remote. Scratched popular nation can be healed only when one divided side with scars intends to embrace and heal each other’s injury by embracing the other, that is, the injured body undertakes the healer’s role to heal injured you, again here when we willingly take the position of the sinner to heal this problem from the viewpoint of the national people, then we can be healed all together, therefore, that time should not be delayed any more. However, still we are on the way of the path to reach there, the envisioned reunification of our own country. On the way, hardship is endless. That’s maybe because it's still the road of the Cross. Nevertheless, or therefore, or naturally, the right position of Minjung Theology is the position of that history, to perform the miracle of reconciliation. The position is the site of Korean Peninsula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Minjung Theology can be definitely unique in the reconciliation·tolerance policy as the role of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Its right position is to sec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 연구 :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의 신학적 정체성에 관하여
홍경만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2 국내석사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 연구 (A Study on the Worship Space of Korean Lutheran Church) - 부제: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의 신학적 정체성에 관하여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미사가 집례될 때 성만찬을 분급 받으려는 사람들은 교회의 한 장소에 집단을 이루어 따로 모여야 한다. 제단과 성단소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고 말했고, 이정구는 “예배를 통해 사람은 신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종교 건물과 공간, 성물들은 절대자의 신성을 담지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예배공간은 교회건축물의 핵심 공간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전례를 수행할 예배공간이 필요하다. 루터교는 전례 교회이다. 그러나 1958년에 한국에 전래된 이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 반세기 역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건축과 예배공간 및 성가구 등의 연구와 적용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본 논문은 한국 루터교회들을 연구하여 전례 교회로서의 바람직한 예배공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 논문 1장 서론에서는 연구동기와 연구대상 및 범위 그리고 연구방법과 연구목적 및 연구기대를 다루었다. 본 논문은 기독교한국루터회와 대한성공회가 초창기 교회건축과 예배공간 구축을 선교사들이 주도했다는 같은 점에서, 성공회대학교 이정구 교수가『Architecture Theology in Korea』에서 대한성공회 강화교회와 서울 주교좌교회를 분석하고 연구한 “실용적 전통의 분석”, “역사적 조망에서의 분석”, “교회건축 해석을 통한 신학적 언어와 그 적용”, “교회의 미래를 위한 예배공간 방안의 조망” 이 네 가지를 응용했다. 본 논문의 연구기대는 내부적으로 한국 루터교 안에서 예배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예배공간의 신성함 및 실용성에 대한 바람직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외부적으로는 전체 그리스도교의 전통 전례를 위한 예배공간 이해에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선교적 측면에서 현대 교회에 바람직하고 알맞은 예배공간의 공공성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제2장 본론은 “1. 교회건축과 예배공간의 역사” 연구로써 시작했다. 도입부분에서는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독일철학자) 등 근대 철학계가 공간문제에 가지는 관심과 제임스 화이트(James F. White, 1932-2004) 및 정시춘 등 국내외 예배학자들과 건축학자들의 주장들을 다루었다. 특히 논문 전체에서 본 연구를 지도한 이정구 교수의 연구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참조했다. 또한 본 연구는 예배공간 이해를 위해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건축 역사를 다음과 같이 시대별로 개괄했는데, 1)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 2)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정집 교회, 3) 바실리카, 4) 각 시대별 건축과 공간 연구, ① 고대 그리스와 로마, ② 비잔틴(Byzantine, A.D. 330-1453), ③ 로마네스크(Romanesque, A.D. 1000-1200), ④ 고딕(Gothic, A.D. 1150-1250), ⑤ 르네상스(Renaissance)와 16세기, ⑥ 바로크(Baroque, 16세기말-17세기), ⑦ 신고딕(Neo-Gothic, 19세기), ⑧ 20세기 근대의 예배공간의 공공적 활용까지이다. 특히 제2장 본론 “2. 루터의 종교개혁과 건축 및 토어가우 루터교회의 예배공간(16세기)” 연구에서는 1544년 10월 5일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집례로 봉헌된 독일 토어가우 성(城)교회(The Castle Church in the Saxon town of Torgau)를 연구했다. 작센(Saxony)의 영주이며 루터의 종교개혁을 후원한 프리드리히 선제후(John Frederick the Magnanimous, Elector of Saxony)의 지원을 받은 루터는 만인사제직에 따라 회중을 위한 말씀과 성찬식을 실현하기 위해 이 교회를 건축했다. 루터는 이 교회의 예배공간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가 지향했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집(Domus Ecclesiae)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본 논문은 이 교회 연구를 통해 루터교 예배공간 구축의 신학적 및 역사적 의의를 살폈다. 제2장 본론 “3. 한국 루터교의 예배공간 연구”에서는 본 논문의 연구목적인 한국 루터교회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였다. 여기에서는 이 연구의 바람직한 정체성과 분명한 목적을 위해, 먼저 500년간 루터교 전례의 근간이 되는 “루터의 예배신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의 응답, 둘째로, 믿음의 원리가 작용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셋째로, 은총의 방편, 넷째로, 예배의 공동성이다. 전례 또는 예배의식에 대한 어원 레이뚜르기아(Leitourgia)는 노동(ergon)과 국민(laos) 즉 국민이 함께 이루는 공익사업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기독교한국루터회는 주일 전례를 “주일공동예배”라고 부른다. 루터 자신이 토어가우루터교회에서 성만찬식탁으로서의 제단(freestanding altar)과 회중석(nave) 사이에 어떤 거리감도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신도들이 자기나라 말(vernacular)인 독일어로써 찬송을 부르는 전례를 거행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예배신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루터의 예배신학 다음으로 “기독교한국루터회 예배서”를 소개했다. 한국 루터교의 전례 예배서는 1960년 미국판을 편역한 첫『예배서』를 시작으로, 1965년 “공동신조”와 “교회연력표” 및 “교회절기와 성구”가 들어간『예배의식문해설
중증 지적장애 양육자의 인식전환과 신학적 과제 : 레베카 라파엘(Rebecca Raphael)의 Biblical Corpora에 대한 비판적 고찰
공윤희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20 국내박사
중증 지적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양육자의 경우, 각자 차이가 있지만, 양육 및 치료 교육에 대한 부담은 물론, 죄의식으로 인해 자녀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지닌다. 그러나 자녀가 성장해감에 따라 한편으로 긍정적인 인식도 커지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 사회구성원들의 장애 부정적인 인식과 부딪치게 되면서 양육자로서 갖는 내적·외적 갈등은 깊어진다. 이 점에서 연구자는 양육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들의 ‘인간됨’에 대한 인식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사건적인 기제를 제시하기를 핵심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 라파엘의 구약성서에 대한 장애학적 연구를 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첫째, 그것이 성서에서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구성된 방식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방식이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 선택 등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성서에 계시된 하느님의 존재방식을 찾아가는 길로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셋째, 중증 지적장애를 지닌 존재를 포괄하지 못하는 장애학의 한계는 성서에 계시된 하느님의 존재방식이 존재로서 제시된 신학적 존재론을 찾아가는 길, 또한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본 논문의 핵심과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서의 구원사건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존재방식과 그것이 존재로서 제시된 신학적 존재론이 합류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본 논문이 최종으로 목표하는 바는 양육자로서 갖는 사회적·신학적 과제가 무엇이며 또한, 장애를 통해서 어떻게 인간해방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경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2 국내석사
自從1950年9月23日 中國基督敎發表了"三自宣言"以來,經過了所謂"文化大革命"的艱難的時代,中國基督敎會不僅屬于基督,也成爲屬于全中國的。解放以前,中國基督敎原有70多개宗派,各宗派間有了不團結甚至互相攻擊的現象,但是現在他們在信仰上實現相互尊重,聯合禮拜的敎會生活中進入了宗派后時期(post-denomination era)。 按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五十一周年總結, 過去五十多年大約可分爲三개階段。自1950-1966年是第一階段,主要任務是實現自治自養自傳。 1966-1978年因受"文化大革命"的庶擊, 敎會事工被迫頂頓。自1978-1998年爲第二階段,主要任務是按三自原則辦好敎會。 而自1998年年底開始是第三階段,主要工作是加强神學思想建設。這三개階段旣有區別,又有聯系,每一階段是前一階段的繼續和深化。在如此的影響下,中國基督徒認識到愛國여愛敎是不矛盾的,基督徒應該是旣愛國又愛敎。 丁光訓主敎(1915-)是中國基督敎的領袖,自1980年단任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主席和中國基督敎協會會長起,肩負着中國敎會建設的重任,而且作爲一名神學家,他的神學思考一直服務于中國社會和中國敎會。在他的一生中,自始至今他卽是一位摯愛着中國敎會的中國思想家,同時又有一位深愛自己祖國的基督敎神學家。他通過文字著作,通過各충公開活動和參政,儀政,他始終在努力地推動着敎會여敎會以外的世界之間的對話。他盡管遭受到來自保守派敎會人士的批評和攻擊,但是,他在20世紀80,90年代在敎會重新對外開放以及中國敎會여普世敎會交流上的重大貢獻是受到엄泛公認的。 丁主敎一貫흔重視自傳和神學硏究。"神學是敎會在思考"。他認爲不思考不反省的敎會是死的。他所提成的神學思考是如何把基督敎的信仰和生活的實結合起來,成爲旣合乎理性又具有越能力的理論。他多次提到基督敎的普世性和地方性(特殊性)的相互關系。他主張中國敎會應該有自己的神學。他有選擇地參考和吸收某些西方現代神學的理論,加以發揮,爲中國所用。 從神學思想來看,丁主敎的神學思想主要受到四충思想的影響: ⅰ) 德日進(Teilhard de Chardin)的進化思想; ⅱ) 부特海的(Alfread North Whitehead)過程哲學; ⅲ) 解放神學的實踐(praxis)的認識論; ⅳ) 골公會神學的中道(via media)思想。 在神學上,丁主敎特別强調上帝是宇宙的愛者,而不强調上帝是嚴려的審判者,從而不刻意渲染人的罪。他認爲愛是三位一체中三개位格相互關系的特征。對于上帝創造者,他特別强調上帝是愛的上帝,愛是上帝神골的內在本質,同時對于上帝而言,他也需要人類,上帝是人類慈愛的父親,人類是上帝的孩子。 耶소基督是上帝之子,福音書記載他道成肉身來到世上幷宣揚倫理道德的人性一面; 又有基督是宇宙的基督,万有在他里面的一面,這一点充分表現了丁主敎愛的神學。 골靈是三位一체這一奧秘團契中的第三位。 골靈旣賜恩給敎會,給基督徒,골靈也啓示一切的受造物,帶領一切的受造物趨向于眞善美。 골父,골子,골靈同工同契,一起進行特續的創造之工,救贖之工和골化之工。作爲人類的我們就是要參與到這樣的골工之中,幷盡我們的所能作出貢獻。雖然人是上帝創造的不同程度的"半成品",但是愛的陶匠會把我們塑造成他的同工,讓我們參與他的創造與救贖奇功中,幷逐步走向完全。 在與社會對話時,丁主敎的根本出發点是肯定无神論者致力于個人和全社會的生活和生活改善以及積피評介非基督徒的各충各樣的美好行爲。 在論述有關宗敎在中國的社會作用時,他竭力反駁宗敎鴉片論,저認爲宗敎是鴉片的論点旣不符合實際又不符合馬克思主義。理解中國宗敎信仰自由的關鍵是理解宗敎여당的關系,其核心是"求同存이"的原則。丁主敎說,中國共産당對宗敎問題的態度是團結的原則,卽在統一戰線的原則解決宗敎問題。 我覺得丁主敎的神學思考在韓國基督敎界也造成4개方面的影響: ⅰ) 神學自主性的開發; ⅱ) 后宗派敎會的實現; ⅲ) 南北韓宣敎的坐標; ⅳ) 宣敎學的反省。 今天中國社會正處于改革開放的急劇變化過程中。中國敎會고的"處境化神學"不可能過早提出系統化的要求,所以他們是從中國社會和中國敎會的現實的處境出發,試圖把基督敎信仰和中國傳統文化以及民族特点給合起來。 這些中國敎會的神學思想建設過程中,丁主敎的神學思考可以成爲中國敎會흔好的路標。不過,我在他的神學思想還是感受不到濃郁的中國傳統文化的特色。我想這類現象將成爲我們的重要任務之一。我希望中國和韓國敎會能구成功地實現自己民族的特色和現代化之間的融合。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그의 영성적 삶에 대한 종교-신학적 연구
김영태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6 국내박사
Abstract A Religious-Theological Study on Ham Seok-Heon's Religious Thought and his Spiritual Life Kim, Young Tae Department of Theology Graduate School of Theology Sungkonghoe University The title of this thesis is "A Religious-Theological Study on Ham Seok-Heon's Religious Thought and his Spiritual Life." The conten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 1. Introduction 2. Ham's life and Spiritual Progress 3. Approaching and studying the other religions 4. Ham's criticism toward Korean Christianity including Korean Catholicism 5. Visualization of a new religion and the life of religious pluralism 6. His efforts for the domestic and world peace 7. Advocate of Korean democratization 8. What is the matrix of his philosophy and religious thought 9. Conclusion. Ham Seok-Heon was born in 1901 and passed away in 1989. His hometown was North Korea, but he moved to South Korea in 1947, after liberation from a Japanese colony. The political environment of the Korean peninsula of his time was very complex. Especially, there were a lot of conflicts ideologically. For example, the colony of Japan(1910-1945),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sement(1919), the Korean War(1950) and as a result, the division of South and North Korea, autocracy of civil government(1950s), the April 1960 Revolution, the May 16, 1961 Coup détat, Military dictatorship, the Gwangju Citizen's Uprising for democratization on May 18, 1980, and the June Uprising of 1987, etc. Ham Seok-Heon as a boy went to a Presbyterian church and attended Christian school. He studied the Bible deeply under the Japanese Christian scholar Uchimura Ganzo, and then he moved to the American Society of Friends(Quakerism). So Ham's belief was based on Protestant Christianity, but he was very open-minded to other religions. To overcome his religious prejudice he tried to study other religion's scriptures such as Buddhist Scriptures, the Analects of Confucius, the Tao Te Ching of Laotzu, the Bhagavad-gita of Hinduism etc. Furthermore, he met with many of other religious believers and had religious dialogues with them. In this respect, we can say that he was a pioneer of religious pluralism. Ham's thought resembles Laozi and Zhuangzi's in emphasizing the "self-acting" of humans and seeking harmony between human and nature. Also, it echoes the Tonghak principles of "holding the Heavenly Lord in one's body and soul"(侍天主) and "serving human as the Heavenly Lord"(事人如天), by linking human beings directly to God and serving the people as God(人乃天). Ham adopts the eschatological conception of history in Biblical Christianity by looking at history and the future from an eschatological perspective. Furthermore, placing "Thinking" at the center of his thought system, he accepts the emphasis on the reasoning subject from the philosophy of Enlightenment of the West. The emphasis given to the vital force of life standing upright and rising above obstacles resonates with the idea of evolution of life advocated by Henri Bergson and Teilhard de Chardin. In the middle of the hardship and suffering of the Korean nation, Ham built his theory by refining his body and mind in the pursuit of truth. He accomplished this task while being put in prison several times and leading and ascetic life, eating only one meal a day. Attained through his body and mind, his philosophy is not abstract but concrete or existential. Ham's doctirne of Ssial (seed, people), which is amalgam of Korean national soul and spirit and the Christian faith, has become the backbone and main principle of Minjung Theology in Korea, a pioneer of religious pluralism and dialogue between different religions, and the source of inspiration and stimulation for the philosophy of life and theology of life today. With 'thinking', a fatalistic life changes into a self-acting and independent life. This is why he asserts that "only people who think can survive." Here, thinking goes beyond the rational level and includes the spiritual level. Reason lies between instinct and the spirit. Instinct tries to snare reason with great force. But the true function of reason is to defy the power of instinct and serve the spirit. This is possible when reason is free and active in its full capacity. Ham regards this relationship between reason and spirit as that of "thought that must be formed" and "thought that comes to mind". The former means rational and independent thought, while the latter means inspiration. Therefore, the national spirit remains alive through thought, and only people who think can survive as the main protagonists of history. Ham actively tries to revitalize the good and peace-loving nature of the Korean people by applying the principle of faith in the cross to the history of Korea and calling for the Korean people to take responsibility for world peace. As Jesus led all of humanity to redemption by being crucified and dying on the cross, the Korean people could lead the world to peace by bearing the burden of suffering in world history. If the victims in the world, such as Koreans, Indians, Jews, and Blacks, overcome the suffering from injustice and find their rightful place, the entire humanity will be redeemed. If the Korean people overcome their unjust suffering and lead the world to the road of peace, it will confirm the truth of the Christian faith in the Cross. To Ham, God is not a dialectical being, who is both transcendent and inherent, but a paradoxical transcendent. This understanding of Ham is connected to Bonhoeffer's idea that God is both the boundary (external, transcendent) and the center (inherent) of life. As God is in a dynamic relationship with "I," a human, God is comprehended in a dynamic sense. To Ham, God is not a static, complete being, but a being in "growth" or in "eternal incompletion" and at the same time, a complete being as the Absolute Being. God is not a being that is, but one that will be and will be throughout eternity. Sometimes Ham c 국문초록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그의 영성적 삶에 대한 종교-신학적 연구 김 영 태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 학 과 본 논문은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그의 영성적 삶에 대한 종교-신학적 연구”이다. 이 연구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논지를 개진하였다. 제1장에서는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방법, 선행연구와의 변별성, 제2장에서는 함석헌의 생애와 영적 순례(종교적 편력), 제3장은 함석헌의 이웃종교(타종교) 섭렵과 원용, 제4장에서는 당시 한국 그리스도교(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한 함석헌의 날카로운 비판, 제5장은 함석헌의 새 종교론과 그의 종교다원적 삶, 제6장에서는 그의 구체적인 영성적 삶으로서의 평화구현 노력, 제7장은 평화를 위한 한국 민주화의 창도자로서의 함석헌, 제8장에서는 그의 기본철학, 종교사상 및 영성의 모체(matrix), 제9장은 결론.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순서에 의해 함석헌 종교사상의 기본 구조와 논리, 특성 등을 개괄한 후 그 바탕 위에서 실천적이고 영성적인 삶, 즉 종교다원적 삶,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폭력적 저항의 삶, 씨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한국을 이룩하기 위한 살신성인의 삶, 더 나아가 한국 민중신학의 초석을 마련하는 등 선비적이며 역동적인 함석헌의 삶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탐구는 종교학적, 신학적, 종교신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본 논문은 비교적 긴 논문으로서 평전 내지 전기적(傳記的), 통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의 진정한 의도는 함석헌이 추구한 평화와 민주화를 위한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종교, 그것도 단 하나의 편협된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개신교)를 위시한 한국 종교사의 맥을 이어온 유교·불교·도교에다가 천도교(동학), 그리고 힌두교 및 간디 사상을 포함한 다종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고, 아울러 이론과 실천, 신앙과 행위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점을 적시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종교성이 강한 민족으로서 종교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주로 개인과 가족의 안심입명, 평안, 복을 추구하되 그에 수반해야 할 도덕과 사회윤리(사회적 영성) 및 지성은 간과하는 기복적 신앙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오랜만에 신행(信行)일치,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철저히 강조하고 스승들과 책들로부터 배우고 스스로 익힌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 성실하게 실천하려 했던 20세기의 한국의 현자(sage)라고 할 수 있는 함석헌을 연구함으로써 우선 나 자신부터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또 누군가에게 본 연구자의 연구물이 읽혀진다면 그들의 삶에도 혹 귀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다. 따라서, 이와 더불어 함석헌의 공헌과 한계, 한계의 극복 방안, 그리고 함석헌을 어떻게 간직하고 선양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고심하였다. 함석헌의 철학사상은 철저하게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순 형이상학이나 현학적 인식론 보다는 실질적인 가치론 및 삶의 철학(실존철학 혹은 생철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지(知)·정(情)·의(意)의 조화로운 통합, 감성·지성·영성의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특히 기독교 성서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바, 예컨대 구약성서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suffering servant)에 기초하여 씨 민중과 고난받는 씨들의 희망을 강조한다든지, 신약의 경우에는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친구’ 개념에서 ‘평등사상’을 찾은 것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노자와 장자,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사상과 인도(India) 간디(Gandhi)의 비폭력 저항을 민주화 운동의 초석으로 삼는다. 아울러 새윤리, 새교육, 새종교를 거듭거듭 강조함으로써 인간혁명을 통한 새시대를 염원하였다. 그의 모든 사상과 이상(理想)은 마침내 씨 민중들의 삶이 평화로운 가운데 민주적, 자주적으로 상생하는 것을 기원하고 있다고 보겠다. 그러므로 민주적 평화 세상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민중의 삶에 장애물이 되는 모든 부조리한 요소들(예 : 폭력, 억압, 권위주의)을 제거하기 위해 말, 글, 강연, 시위를 통해 몸소 비폭력 저항을 실천하였다. 북한 고향에서는 공산당 정권에 저항하고, 월남한 후 남한에서는 빗나간 기독교에 대한 비판,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저항, 이어서는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함으로써 일곱 번이나 감옥에 가는 고초를 당했었다. 그 결과 비민주적인 20세기 한국의 정치상황에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래서 함석헌은 한국의 간디라고도 불리운다. 끝으로 부연하고 싶은 것은, 함석헌을 존경한 나머지 찬양일변도 내지 숭배까지 하다보면 그의 사상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나오기 힘들 가능성도 없지 않으므로 그가 살았던 암울한 시·공적 상황에서 빚어진 편견이나 생각의 오류 혹은 과도한 행위 등을 찾아내어 수정 보완 내지 재해석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정치적, 종교적 보수주의 층의 함
정도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22 국내박사
본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개혁주의 안에 있는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고, 둘째는 그 오해를 바로잡아 목회 현장 속에서 신앙의 수덕적 요소를 접목시켜 성도들의 신앙성장과 발전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의 발자취를 살펴보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의견을 수집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논증으로도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판단의 절대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원천적 자료, 즉 성경 속에서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의 요소를 찾아내려고 하였다.
김욱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3 국내석사
본 논문은 평신도를 재발견함으로써 교회의 갱신을 도모하는 평신도 신학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 에큐메니칼권과 로마 가톨릭권에서는 각각 헨드릭 크래머의 『평신도 신학』과 <교회헌장>과 <평신도 교령>이 발표된 이후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복음주의권도 최근 다른 기독교 전통의 성과들을 수용, 심화하여 논의를 계승하고 있다. 평신도 신학은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두 백성이 아닌 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온 백성‘의’ 신학으로 성직자 중심 신학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온 백성을 ‘위한’ 신학으로서 비실천적인 신학을 넘어서고, 하나님의 온 백성에 ‘의한’ 신학으로서 학문적 신학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다. 신구약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하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구별되어 백성들을 섬기는 레위지파의 제사장 계급이 나타나지만 이 사실이 오늘날 교회의 교역자계급의 근거로 쓰여질 수 없다. 구약 성경이 “제사장 백성”으로서의 전체 이스라엘이 레위지파 제사장보다 선행하는 개념임을 보여줄 뿐 아니라 특히 후기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도래로 모든 백성이 제사장이 되는 때를 예언함과 동시에 선지자들의 제사장 계급에 대한 통렬한 상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예언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의 오심으로 구약성경의 하나님 백성을 계승하는 “새 이스라엘로서의 교회”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기독론과 성령론으로 구성되는 신약 성경의 독특한 종말론적 구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구약의 제사장 계급이 해체되고 이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제사장직을 공유하게 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부름을 받아 주어진 은사에 따라서 서로에게 사역하는 카리스마적 공동체이다. 그러나 차츰 카리스마적 직분들을 제도적 직분들이 압도하게 되고 제도적 직분 가운데서도 감독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을 통해 만인 제사장직의 이상은 급속히 후퇴하고 교회는 위계구조화되게 되었다. 이러한 성직주의의 발전에 항거했던 종교 개혁자들마저 말씀과 성례전의 담당자로서의 목사를 강조하여 만인제사장직의 완전한 회복은 늦춰지고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 성직주의가 나타났다. 성직주의의 발전은 모든 성도들을 위한 사역자임직식인 세례(혹은 견신례)를 단순한 입교 의식으로 퇴색시키고 신약성경과 고대교회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안수례(서품, 목회직임직)에 대한 신비적 의미 발전을 가져 왔다.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결정적인 간격은 안수례이며, 이 간격은 성찬례에서 극명하게 가시화되게 되었다. 평신도 신학은 교역자나 수도자, 선교사, 또는 교역자화된 일부 평신도들에게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여겨지던 소명이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됨을 강조한다. 소명을 종교적인 삶에만 국한함으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을 세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가톨릭적 왜곡”과 직업을 소명 그 자체로 여기는 “개신교적 왜곡”이 모두 극복되어야 한다. 성경적인 소명관은 일부 성직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과 구별된 성직자계급은 신약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리더쉽의 은사와 직무를 가진 이들도 한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다. 본 논문의 앞선 논의의 결과, 전통적으로 목회자됨의 근거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이 해체, 또는 약화되었다. 신약성경에 입각한 목회자됨의 새로운 근거에 대해 본 논문은 모든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아 은사에 따라서 서로 사역하는 카리스마적 공동체라는 신약성경의 교회상의 비추어 목회자의 역할은 에베소서 4장 11-13절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세상과 교회에서 사역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준비시키는(구비시키는, equipping) 사역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모든 교회 구성원들을 동료 사역자로 여기고 사역을 독점하지 않으려 하는 팀사역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