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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아 선교사의 청주지역 선교

        김시찬 서울장신대학교 2011 국내석사

        RANK : 249631

        1900년도 청주지역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선구적 구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수용되어 상당수의 세례 지원자들이 배출되어 있었다. 당시 청주 상인들은 서울, 경기 지방 등 외지로 돌아다니면서 행상을 하는 일이 많았다. 청주군 신대리에 사는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도 행상을 하면서 생업을 유지하고 있던 중 어느 날 경기도 죽산군 둔병리(竹山郡 屯兵里)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깨달은 후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자기 마을로 돌아와 동리 사람들을 모아 전도했다. 이들의 전도와 소문으로 사람들이 점점 많이 찾아들게 되자 나루터 근처 주막을 빌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것이 충북 최초의 교회인 신대교회의 시작으로 이때가 1900년 10월 3일이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선교하기 이전에 교인들이 생겨나고 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열성적인 선교 이전에 목숨을 건 선구적 한국인 교인들의 전도활동에도 그 공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과정에서 국내 구도자들의 역할이 근본적이었지만,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선말, 일제의 침탈이 구체화되고 민족의 시련이 거듭되던 시기에 한국을 찾아 온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설립자이기 이전에, 민족이 겪고 있던 시련을 위로해 주던 사람들이었다. 저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교회 행정가로서 그리고 신학자로서 남긴 흔적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근간이 되었다. 한국에 내한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알렌이나 언더우드 그리고 마펫 같은 핵심적인 인물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동시에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기독교사 연구는 그 범위의 공간적 확대와 연구 내용의 다양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전래와 아울러 수용의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동시에, 중앙 중심에서 지역교회사로 그 연구의 주제가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대 한국인의 삶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을 보다 폭넓게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관심을 둔 민노아는 핵심적인 초기 선교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연구의 변두리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민노아는 청주지역 선교를 담당하였던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청주, 괴산, 보은, 옥천, 영동지역의 개척자적 선교를 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민노아(Frederick Scheiblin Miller,閔老雅)는 1892년 11월 15일 부인 라이네케(Miller Anna Reinecke)와 함께 내한하여 1937년 10월 6일 그의 죽음까지 45년 동안이나 한국교회를 위해서 섬겼다. 특히 1904년 청주 선교부 설치 허락을 받고 33년간 ‘충북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울 만큼 누구보다도 청주를 사랑했고, 선교의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선교 과정에서 자신의 2명의 자녀와 2명의 아내를 잃었고 결국 자신도 죽고 말았다. 민노아는 문학적인 일에 탁월함을 보여 한국에 어떤 다른 선교사들보다 더 많은 금주 소책자와 전도지를 번역 보급하여 ‘소책자의 사도’로 알려져 있고, 복음성가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복음이 전파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한국에 있는 선교사들 중에 한국인 이야기의 기록자로 잘 알려져 있다. 민노아의 공헌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으로 연구한 업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 본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민노아가 청주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청주 지역의 상황을 정리하여 민노아가 끼친 영향이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고자 한다. 둘째, 민노아 이전의 청주 지역의 선교 상황과 청주 선교부의 설립과 함께 시작된 선교활동을 소개함으로써 청주지역에서의 복음의 확산과정을 통해 민노아가 충북선교에 기여한 부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셋째, 민노아의 선교 사역이 소책자 문서를 통한 복음 전도, 찬송가 작사와 번역사역을 통한 한국교회의 교회음악에 공헌, 금주 금연 절제 운동 등 사회 계몽을 통해 근대시민 의식을 일깨우는 선교, 성서에 입각한 엄격한 치리의 구현 을 통한 교회의 도덕성 확보라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주고자 한다.

      • 기독교 공연예술의 서포터즈 현황 분석과 효율적 운영 방안 연구

        장보경 서울장신대학교 2018 국내석사

        RANK : 249631

        우리나라 기독교 공연예술이 확대됨과 동시에 공연예술 현장에서 서포터즈의 활발한 활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포터즈를 현장 상황에 맞는 업무를 시킬 수 있는 능력과 참여했던 서포터즈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기독교 공연예술 서포터즈에 대한 정의도 없을 만큼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으며 실제로 기독교 공연예술 현장에서 서포터즈를 운영해봄과 서포터즈에 참여한 이들의 설문과 서포터즈 운영 담당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연구의 주제를 모색해 나갔다. 따라서 본 논문은 기독교 공연예술의 서포터즈 운영에 대해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서포터즈 운영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포터즈 운영은 서포터즈 모집부터 선발, 면접, 사전 모임, 업무 교육, 업무 분장, 현장 활동, 서포터즈 사후 관리까지 전반적인 순서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의 큰 틀은 일반 공연예술의 서포터즈 운영과 큰 차이점은 없다. 서포터즈의 효율적인 활성화 방안으로 크게 내부적, 외부적 방안 두 가지를 제시 하였다. 내부적 방안으로 서포터즈 활동에 대한 다양한 혜택과 물품 지원, 활동한 시간에 대한 자원봉사활동 증명서 발급, 서포터즈만을 위한 이벤트 진행 및 공연예술을 통한 서포터즈 활동의 가치를 고무시키는 것이며 그 외에 교육을 통한 업무 성취감 고취와 중간 리더십 양성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홍보 방법의 확대와, 참여 세대의 감각에 맞춘 홍보물을 제작하면 보다 높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 성경에 나타난 찬양과 찬양의 역사

        김정애 서울장신대학교 2024 국내석사

        RANK : 249631

        성경에서 나타난 최초의 음악과 음악가에 관하여 창세기 4장에 기록되어 있다. 21절에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라고 기록된 데로 최초의 음악가는 유발이다. 유발은 아담의 7대손이며, 그 당시에 벌써 과 퉁소와 수금이 있었고 그것에 맞추어 노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까지 현재 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권능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그 지으신 것 중에 (창 1:31-....보기 심히 좋았더라.) 감탄하실 정도로 당신의 형상인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고전 10:31, 롬 11:36)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목적이며 하나님은 이사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김영진 편자 『개역개정』 (서울: 성서원 2011). 1020 말씀을 통해 더운 강조 하셨고 사람은 슬픔과 기쁨, 아름다움과 사랑 등을 음악과 노래로 위로받고, 표현하며 만족을 얻었다. 창세기 23-24절에 최초의 노래가 기록되었고, 성경은 시로 기록되었지만, 히브리어의 시는 운율이 있었기 때문에 시들은 모두 노래로 불렸다. 홍정표 『 교회 음악』 서울 장신대학교.28 루터는 “ 인간의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박재호 『하나님은 찬양을 좋아하신다』 (부천:푸른초장,2005).4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만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자연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며, 또한 찬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가 존재하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성경의 각 표제를 연구해 보면, 78개의 시편 ‘시’로, 5개는 ‘찬송’으로 36개는 ‘노래’들로 구분되어 있다. 시와 찬송과 노래처럼 쓰인 문장 구조를 “hendiatris”라고 부르는데, 세 개의 유사한 표현들로 하나의 생각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 세 개의 단어는 시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지어진) 150개의 노래를 가리킨다. 또 다른 예) 출애굽기 34장 7절-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성경 전체에 “찬양”, “찬미”, “노래”, “찬송”,“시”로 다양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라멕, 모세, 미리암, 한나, 다윗 등 구약에서 나타나며, 마리아, 사가랴, 바울, 예수님 등이 신약에서 나타나며, 구약, 신약을 통하여 찬송이 약 208구절, 찬양은 약 90구절이 나타난다. 그러면 성경 속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이름을 높여 왔는지 본 논문을 통해 밝혀 보고자 한다. 논자는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이 즐겁고,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만물을 지으시고, 창조하시고, 주권자이시며, 지존 자이신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을 통하여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할 피조물이며, 그리스도인의 특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논자는 위와 같은 배경을 토대로 하여 논문 연구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논하려 한다.

      • 기도

        김보람 서울장신대학교 2018 국내석사

        RANK : 249631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 안의 다양한 예배 찬양 사역경험을 하였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의 이유와 방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인생의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음악도로서 스스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음악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음악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수업이 고뇌하였다. 또한 필자의 음악적 배경인 재즈와 즉흥연주는 과연 무의식의 산물인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공부하고 습득한 음악적 이론의 표출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필자가 2016년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 재학하며 사역의 첫 전환점은 함께 수학하는 스승과 동료들의 사역 활동을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책임지며 많은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동료들의 인생에서는 어두운 한국 예배 찬양 사역의 미래보다는 묵묵히 버티고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사역을 해나가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과 사역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는 분명한 확신과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위한 음악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예배 찬양 사역을 생계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여기며 서로를 섬기고 기능적인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태함과 진부함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 예배찬양사역대학원 구성원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환경을 탓하며 학업을 포기하려 했던 필자의 위기 순간마다 다시금 일어서게 해주는 원동력과 영감이 되었다. 그들의 인생이 필자를 위한 하나의 기도가 되어 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하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의 기도로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매 순간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13:1)” 모든 일을 주께 기도로 아뢰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주어진 십자가를 따르며 믿음의 사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비로소 주께 드려지는 것이다.

      • 칭의와 성화에서 칼빈과 바르트의 신학적 동질성에 대한 연구

        한승우 서울장신대학교 2025 국내석사

        RANK : 249631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sm)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말은 구속주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느냐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은 칼빈의 하나님에 대한 이중 지식 즉,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같은 시작점을 가진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Science of God) 이명웅, 『하나님이 현존과 이치에 합함』 (서울: 한들출판사, 2015), 23. 이다. 인간의 이성은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이성을 만드신 이유는 바로 이성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피조물로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때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바로 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Five Sola):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의 원칙 아래에서 이성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ola Scriptura는 성경을 Norma Normans 규정하는 기준(무상의 기준) 로 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천명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성의 한계 아래에서의 신앙”이라고 말한다. 신앙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월터스토프(Nicholas Paul Wolterstorff, 1932-)는 이 말을 “신앙의 한계 아래에서의 이성”이라고 패러디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려진다. 바르트는 ‘교의학은 한 신학적 훈련이며, 신학은 교회의 한 기능’이라는 말로 『교회교의학』을 시작한다. 신학의 단 한가지 존재 이유는 지상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지키고 세우는 것이다. 신학은 오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서 신앙적 진리를 더 깊이 인식해왔다. 그러나 그 신학적 논쟁이 교회의 존립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하나님 지식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변의 자랑일 뿐이다. 칭의와 성화에 대한 교의도 마찬가지다. 이 교의도 교회의 성장과 무관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성도들이 신앙을 점검하고 교회를 세우는 그 과제에 헌신해야 한다. 칭의와 성화에 대한 성도들의 불충분한 이해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시대 그 이전의 시대로부터 존재해왔다. 칭의와 성화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현혹했던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구원은 그리스도와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즉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된다는 말씀에 입각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칭의와 성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다시 종교개혁 이전의 행위와 공로의 사상이 칭의와 성화의 진리를 잠식하고 있다. 개혁교회에 속한 성도들조차 칭의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신에 대한 그의 심판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먼저 선행되지 않는다면 구원을 수립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진작시킬 어떤 기초도 당신은 마련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의에 대한 지식 자체가, 그것을 아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더 잘 비추어 줄 것이다.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Ⅲ,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기독교 강요』 Vol. Ⅲ,(서울: 생명의말씀사, 2021), 341. 칭의에 관해 더 많은 주의와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칭의의 진리가 구원을 수립하고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칭의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무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이제 심판관 대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지게 된다’ 위의 책, 340. 고 말한다. 칼빈은 ‘죄사함과 의의 전가’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Ⅲ,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기독교 강요』 Vol. Ⅲ,(서울: 생명의말씀사, 2021), 346. 를 칭의의 두 요소로 여긴다.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에서 칭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답한다. 인간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정립되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의의 근거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선포되었고, 그분 안에 숨겨져 있었고,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일찍이 계시된 인간의 의는, 그 어떠한 인간에 의한 고안과, 노력과 실행에 의해서 성취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의 현실은 이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인간이 인정하고, 의를 확보한 것과 확증된 것을 믿도록 각 사람에게 요구한다. 칼 바르트, 김재진 역, 『교회교의학 Ⅳ/1』,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831. 바르트는 “신학은 윤리학”이라고 말한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성취되었고, 성화의 삶만이 우리에게 남았다는 의미이다. 칼빈도 성화에 대해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룩해져서 우리는 삶의 무죄함과 순수함을 키워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성화는 칭의의 조건이 아니라, 칭의와 함께 오는 과제이다.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분리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나 칭의만을 강조하거나 성화만을 강조하는 가르침 때문에 교회는 혼돈과 고통을 겪고 있다. 교회가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칭의와 성화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개혁교회 개혁교회는 칼빈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를 의미한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에는 루터교, 성공회, 재세례파, 개혁교회가 있다. 장로교회는 개신교 안의 개혁교회에 속한다. (Reformed Church)가 가지고 있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칭의와 성화의 중요한 요소인 언약과 죄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칼빈과 바르트의 칭의와 성화의 이해가 같게 보이면서도 다르게 보인다. 그 이유는 기독교 교리는 그 시대의 오류에 대한 ‘반대 명제’, 즉 안티테제(Antithese)’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대의 오류의 크기가 다르면 오류에 대한 안티테제의 크기도 달라져야 교리가 진리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 바르트가 칼빈과 문자적으로는 다른 진술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지향을 하고 있음을 밝히려 한다.

      • Rip-plet

        이주청 서울장신대학교 2019 국내석사

        RANK : 249631

        필자는 어렸을 때 할머니의 이끌림으로 절에 다녔었다. 그 이후 집안 어른들의 개종으로 인해 성당에 다니고 세례까지 받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당마저도 다니지 않기 시작했고 세상의 아름다운 유혹 속에서 살았었다. 군대 시절 단지 쉬고 싶은 마음에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다. 제대 후 다시 교회는 나가지 않게 되었고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고 밴드를 하고 싶어서 인디밴드 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교회에서 베이스를 치게 되었고 재미없는 옛날 음악이라 느끼고 아무 생각 없이 베이스 연주만 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나가게 되면서 예배 음악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점점 새로운 시도가 없는 기존 예배 음악의 답습에 안주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교회 안에서의 느낌이었고 여전히 교회 밖의 음악을 하면서 교회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음악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정규 커리큘럼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필자는 항상 베이스 교육에 갈망이 있었고 그러던 중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 입시의 기회가 주어졌고 1년간 준비하고 입시를 해보려 했던 계획과는 달리 우연한 기회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두려움으로 서울장신대학원에 입학한 후 단순히 베이스 악기에 대한 배움을 목적으로 다녔었지만 예배와 교회 음악의 역사, 사역자의 자세 등 수업을 들으면서 교회 음악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배 음악도 새로운 시도들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CCM의 획일적인 모습과 종교적인 의미로 단순히 음악만을 봤을 때 스타일부터 대중음악과는 다른 모습이고 찬양사역자를 꿈꾸고 배우려는 학생들조차도 기독교 안에서의 음악을 생각하고 구분 지으려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보였다. 이 앨범은 예배 음악으로써 쓰이지 않을 것이다. 작은 돌이 호수 가운데 떨어져 작은 파장이 시작되어 호수 전체로 퍼지는 물결을 생각하며 ‘Rip-Plet’, 잔물결이라는 앨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다.

      • 마태복음에서 두 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들에 대한 연구

        홍성화 서울장신대학교 2017 국내석사

        RANK : 249631

        신약성경에는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마다 예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예수에 대해 기록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문학적 기법이 다르기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득중은 복음서 기자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예수의 사진이 아니라 예수의 초상화이기에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고 언급한다. 김득중, “마태복음의 치료자 예수像,” 「신학과 세계」 45(2002/12), 23. 마가복음 저자는 전반부에 기적이야기를, 그리고 후반부에 수난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영광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을 통합하는 기법으로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 / 류호성·김학철 옮김,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28. 누가복음 저자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다니는 예수를 부각시켜서 기록하였다.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이 마가복음에서는 한 장 분량(막 10장)인데 반해, 누가복음에서는 9장부터 19장까지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심우진은 눅 9:51-19:27에 누가복음 저자의 신학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심우진, 『신약학 방법론』 (서울: 동신출판사, 2012), 125. 요한복음 저자는 세상의 거부와 믿는 자의 영접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대조하는 방식 심우진, 『요한복음 이해』 (서울: 동신출판사, 2012), 60-61. 으로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 한편,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의 가르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게르트 타이센,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2002), 72. 마태복음 저자도 나름대로의 문학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독특한 현상이 있다. 어떤 표현이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표현이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 똑같이 다시 한 번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차례 관찰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은 마태복음에서 어느 곳에 등장하는지, 이러한 현상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것이 마태복음 저자의 의도적인 기법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 함께하심

        임태건 서울장신대학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31

        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인도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선곡을 하고 긴장감에 악보만 보며 기타를 연주하며 혼자 예배인도를 했었다. 그 땐 정말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 가지고 곡의 조와 구성에 상관없이 인도를 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 믿음 하나 가지고 예배 인도했던 청년이 예배사역자로 사역을 하고, 새로운 곡을 만들고, 음반까지 제작을 하게 되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야기 하고 싶다. 2016년에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들이 이뤄짐에 너무 감사하다. 대학원 학업 중 원우들과 교수님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배에 열정이 이렇게 가득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지 새삼 놀라웠다. 개인적으로도 예배에 대한 방법과 예배에 대한 기획과 구성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기 중 새로운 곡에 대한 필요성과 새로운 곡의 작사 작곡 편곡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어서 감사했다. 필자는 음반 제작을 하면서 예배음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경배와 찬양의 뜨거운 열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하게 다가오게 되었던가? 예배음악에 대한 창조적인 곡들이 나오는 숫자가 매년 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들이 매 번 비슷하고 새로운 곡들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같은 선곡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의미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하나님께 고백하는 수가 줄어들었다고 느껴졌다.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이다. 음악이라는 문화를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음악에서의 새로운 곡들은 만들어져야 한다. 새로운 곡은 그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담기도 하며, 시대의 애환을 담을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께 간절한 그리스도인들의 그 시대만의 고백들을 통해서 서로 나누고 공감하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문화가 되길 바라게 되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새로운 곡들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사역하고 있는 교회와 공동체를 출발로 새로운 곡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를 바라보게 되었다.

      • 예장 통합의 신학의 정체성 연구 : 1945년-1980년

        구성수 서울장신대학교 2020 국내박사

        RANK : 249631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의 신학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본 논고는 그동안 통합의 신학적 정체성이라 여겼던 “통전적 신학”을 고찰 해 봄으로써 통합의 신학적 정체성인가를 살폈다. 그러나 밝힌 바와 같이 이종성이 주창하는 ‘통전(統全)’은 전체를 아우르고 조화시키고 통합한다는 뜻이긴 하다. 또한 ‘통전’은 좌와 우, 아래와 위, 긍정과 부정, 개별자와 보편자, 특수성과 일반성, 그리고 믿음과 지식과 실천을 아우르고 조화시키고 통합하고, 그러면서도 온전성을 지향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온전 성이라는 것이 정적이고 고정화된 실재라기보다는 언제나 끊임없이 좌와 우, 아래와 위, 긍정과 부정, 개별자와 보편자, 부분과 전체, 특수성과 일반성, 그리고 믿음과 지식과 실천의 해석학적 순환과 변증법적 통합 안에서 구현되는 과정적, 관계적, 역동적 실재라고 한다. 따라서 통전적 신학은“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궁극성과 성서의 표준성”의 전제 아래, “에큐메니칼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통합을 지향하고 개신교 신학과 가톨릭 신학 및 동방정교회의 신학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기독교 신학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문화 및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학문과 대화”를 추구하는 신학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이것이 통합의 정체성이 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 다시, 처음 사랑

        박성임 서울장신대학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31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을 따라 다니며 성장한 필자는 스무 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누구보다 친밀했었던 아버지께서 필자의 초등학교 4학년 진학을 앞두고 돌아가신 후부터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우울함, 외로움 등이 있었는데 비로소 참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가득 채워진 경험을 했다. 매일 새벽 5시 예배에 나가서 성경 본문을 읽고 찬송가로 찬양을 인도하였던 필자가 사역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혹독하게 훈련시켜 주신 목사님 덕분에 매일을 말씀과 기도로 살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밀려 올 때면 어김없이 교회로 향했고,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의‘오직 하나님만을 위한’필자의 찬양 콘서트는 새벽 예배까지 이어지곤 했었다. 사랑하는 예수님이 기뻐하신다면 언제나 기쁨으로 기꺼이 나의 시간을 드려 예배했다. 그렇게 매일을 하나님과의 교제로 시간을 보내면서 지겹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다. 그저 평생을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 시간을 배워왔었던 미용을 과감히 버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고, 상도동과 노량진 사이 언덕에 위치한 프레이즈신학교에 진학했다. 정말 그때는 하나님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만으로 충분했었던 뜨거운 시간이었다. 모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필자였기에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교회를 찾아서 적응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숙제였다. 매일을 교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다 잠들기를 반복했었는데 서울에서는 그런 교회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고 결국에는 학업만으로도 많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새벽 예배를 멈추었다. 정확히는 끊어 버렸다. 필자는 주일을 온 종일 교회에서 섬기고,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철야 예배를 모두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었기에 그 외의 시간에는 굳이 교회를 찾아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하나님만을 위한 콘서트는 사라졌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도덕적 인간' 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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