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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 의식 변화: 2011~2013년 설문조사 분석을 중심으로

          정은미 ( Eun Mee Jeong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3 통일과 평화 Vol.5 No.2

          통일의식은 남북한 주민이 통일에 대해 갖는 사상·관념·감정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포함한다. 이 연구는 남북한 주민 간 통일의식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통일의식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들을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3년간의 설문조사 데이터를 통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분석 자료로 사용된 조사 데이터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2011년~2013년에 실시한 『통일의식 조사』와 『북한이탈주민 의식조사』이다. 설문조사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남북한 주민의 통일의식을 비교해 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 주민이 느끼는 통일의 필요성은 점차 약화되는 반면에 북한 주민이 느끼는 통일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높다. 남한 주민의 통일 인식은 전반적으로 남북관계의 상황적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성을 보이는 반면에, 북한 주민의 경우 일관되게 통일에 대한 높은 열망을 보였다. 둘째, 통일이 가능한 시기에 대해서는 남한 주민에 비해 북한 주민이 더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서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셋째,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에 대해 남한 주민에 비해 북한 주민이 훨씬 더 기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남북한 주민 모두 상대방을 협력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경계대상, 적대대상으로서의 인식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상호 수용성의 격차는 통일 이 후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북한 주민보다 오히려 남한 주민의 배타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다섯째, 오랜 분단체제는 남북한 간의 상이한 정치체제의 수준을 넘어 실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남한 주민의 북한 문화 접촉 경험 수준은 북한 주민이 남한 문화 접촉 경험 수준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주변국에 대해 남북한 주민이 상이한 인식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서 남한 주민은 북한을, 북한 주민은 미국을 가장 많이 선택하였다. Attitude toward reunification includes not only thoughts, ideas, and feelings about reunification, but also the will and desires for reunification. The surveys conducted over the last three years using the sample of North and South Koreans try to examine the main factors that affect the changes of and the development of the attitude toward reunification and its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ns. In this study, the data of “Unification Attitude Survey” and “Attitude of North Korean Defectors Survey" conducted by Institute of Peace and Unific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from 2011 to 2013 are used. According to the data, first, while the need for reunification by South Koreans has gradually been decreased, North Koreans have shown a strong desire and the need for reunification. Second, North and South Koreans have a different opinion about the time for the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n comparison with South Koreans, North Koreans are more likely to expect to unify the two Koreas in the near future. However, North and South Koreans see the once-conceivable prospect of reunification on the peninsula as increasingly unrealistic. Third, not surprisingly, the findings show that North Koreans have higher expectations of reunification benefit. Forth, North and South Koreans recognized each other as a cooperative partner. But, with the antagonistic rhetoric and nuclear threats from North Korea reaching unprecedented heights, a hostile attitude has significantly been increased in the last couple of years. Fifth, political and social differences have been developed between the North and South since the division of the peninsula. Finally, North and South Koreans have a different view of the neighboring countries. Note that North and South Koreans are likely to consider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respectively as a nation which threatens the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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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의 사건이 통일의식에 미치는 효과

          김병로 ( Kim Philo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7 통일과 평화 Vol.9 No.2

          북한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남북 간의 합의 또는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사건을 접하면서 남한사회의 구성원들은 통일에 대한 태도와 의식, 이미지를 습득하게 된다. 이 논문은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의 사건이 북한인식과 대북정책 등 전반적인 통일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효과와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도발사건은 안보불안을 15~20%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지니며, 그 효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소하며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면 그 효과는 거의 발휘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남북공동행사와 협력 사건은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그와 비슷한 폭으로 낮추는 효과를 갖고 있다. 사건효과는 또한 세대와 이념, 지역안에서 차등적으로 나타나는데, 최근 10년 동안 북한발 대형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세대와 이념, 지역 간 통일의식 차이가 좁혀지는 수렴현상도 진행되었다. 남북관계 사건이 안보불안의식에 미치는 영향과는 달리 통일자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남북관계의 사건에 의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안보불안의식과는 달리 안보불안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작동하여 통일의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작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Members in South Korean society acquire attitudes, consciousness, and images of unification when encountering inter-Korean incidents and events such as nuclear test and missile launch attempted by North Korea, or inter-Korean agreements and family reunions performed by both Koreas. This paper examines the effects and strength of inter-Korean events over the past decade on the perceptions of unification, security anxiety and North Korea policy. Overall, the provocation of North Korea has the effect of raising the security anxiety by 15 ~ 20%, its effect decreases with the passage of time, and it is analyzed that the effect is not exercised if similar events are repeated. On the other hand, inter-Korean joint events such as the inter-Korean summit and cooperation events have the effect of reducing the security anxiety of the people to a similar extent. Event effects also appear differentiated in generations, political beliefs, and regions. In the last 10 years, as the big events of North Korea continued, the convergence phenomenon narrowed the gap between generation, political beliefs, and regional unity. Unlike the effects of inter-Korean relations on security anxiety, the effect of changing the perception of the unification itself is limited. The reason seems that unlike the security anxiety which is unilaterally influenced by the incident of inter-Korean events, the will to solve security anxiety is working in order to strengthen the need for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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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문학'의 통일·통합 (불)가능성 : 남북 문학 교류의 역사와 과제

          김성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8 통일과 평화 Vol.10 No.2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of literary exchanges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based on the issue of literary dissemination of the 4.27 Panmunjom Declaration(2018.4.27) & September Pyongyang Joint Declaration(2018.9.19) and to explore future challenges. The communication and exchanges between South Korean literature and North Korean literature were attempted three times in 1961, 1989, and 2005. After the 4.19 Revolution, North Korean literary writers proposed literary exchanges in the name of racial literature, which went in vain due to the 5.16 Military Coup. The Inter-Korean Literary Writers Conference was pushed forward actively with the efforts of Hwang Seok-Yeong, etc., in 1989, which eventually turned out to be fruitless. At that time, the blueprint for literary exchange plan and cooperation was drawn in the wake of the Racial Literary Writers Conference(2005), establishment of ‘6.15 Racial Literary Writers Association'(2006), and publication of its Tongil Munhak(Unification Literature, 2008). However, the literary exchange was 1discontinued due to North Korea's nuclear test and South Korea's conservative regime. Now, the ‘inheritance and new parallel-advance' policy were proposed for resumption of literary exchange to keep pace with the changes of situations in 2018, a period of watershed for the peace system. It is imperative to inherit the federation of 2006 while moving ahead with the generational shift and the change of media contents. At this time, the normative concept of unification literature and racial literature should not serve as a mechanism for psychological suppression in the society. It would be necessary to abandon the vested rights of South Korean literature and North Korean literature and to reshape the Korean literature. That would be epitomized by formation of internet network(YouTube) hubs for ‘linguistic literature materials of the Korean race' worldwide for practical communication, rather than normative unification and integration. 이 글은 ‘4.27판문점선언'(2018.4.27), ‘9월평양공동선언'(2018.9.19)의 문학적 확산이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북한 문학 교류의 역사를 검토하고 향후 과제를 모색하는 것을목적으로 한다. 남북 작가·문학의 소통·교류가 시도된 것은 1961, 1989, 2005년 세 차례였다. 4.19혁명 후 북한 작가들은 민족문학의 명분 아래 문학 교류를 제안했으나 5.16 쿠데타로 무산되었다. 1989년 황석영 등의 노력으로 남북작가회담이 적극 추진되었으나좌절되었다. 그때의 교류 계획과 협력의 청사진은 ‘민족작가대회'(2005)와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2006) 및 기관지 『통일문학』 간행(2008)으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남한의 보수정권 때문에 더 이상의 교류는 중단되었다. 이제, 평화체제로 가는 길목에 선 2018년의 정세변화에 맞춰, 문학 교류의 ‘계승과 신설 병진'책을 제안한다. 2006 년의 연합조직을 계승하되, 세대교체와 미디어 콘텐츠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때 통일문학, 민족문학이란 개념이 더 이상 사회적 심리적 억압 ‘장치'가 되면 곤란하다. 남북한 문학의 기득권을 버리고 ‘코리아문학의 리부트'가 필요하다. 당위적 통일·통합이 아니라실질적 소통을 위한 전 세계 ‘한겨레 언어문화 자료'의 인터넷망(유튜브 등) 허브 구축이그런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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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의 평화사상

          황병기 ( Hwang Byong Kee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7 통일과 평화 Vol.9 No.1

          이 논문은 평화(Peace)라는 단일 주제를 가지고 정약용의 사상을 재구성한 논문이다. 정약용의 언설 속에서 평화의 개념을 규정한다는 목표는 애초 어려운 일이며, 본 논문의 목적도 아니다. 정약용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조선사회는 평화학이 출발하여 정립되기 시작한 근대 서구의 다양한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던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당시 조선의 관점에서 정약용만큼 사상적으로 서구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드물고,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동서사상의 융합을 지향한 철학자는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선진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들 사이의 평화를 논할 정도로 조선이라는 국가의 주변 상황이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정약용이 조선이라는 국가를 재조(再造)하고 수호하기 위해 행했던 개혁 조치들과 주장들은 기본적으로는 사대교린의 구도 아래 대국과 소국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방책이었다. 18~19세기의 조선이 자존을 지키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제도를 개혁하고자 했던 정약용의 헌신과 노력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칸트(I. Kant)가 꿈꾼 지구적 차원의 완전한 영구적 평화, 그리고 갈퉁(J. Galtung)이 규정한 모든 폭력이 없는 적극적인 평화는 순수한 관념의 소산일 뿐이지만, 대한민국은 이 시점에서 현실적인 평화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가깝게는 남북의 평화가 절실하고, 좀더 범위를 확장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약해야 한다. 정약용의 평화사상에서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가 험지에서는 지속적인 투쟁과 갈등 속에서 스스로 강인해지면서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고, 풍요로운 남쪽으로 내려와 안락한 평화를 추구하다가 멸망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오늘 남한의 현실은 정약용이 말한 험지(險地) 그 자체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거칠고 험한 국제적 환경을 평화의 유지와 수호를 위한 강인한 정신자세로 직시하면서 대응해 나간다면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이 백년뒤의 미래전쟁에 대비하여 수원 화성을 그처럼 견고하게 설계하였듯이 미래의 평화는 대비하는 자만이 얻게 될 것이다. This paper is a reorganization of Jeong Yak-yong`s thought with a single theme called Peace. However, the goal of defining the concept of peace in his narrative is a difficult one and it is not the purpose of this paper. The Joseon(朝鮮) society in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ies when he lived wa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society in which various countries of the modern Western era, in which peace studies began to be established, were established. From the point of view of Joseon Dynasty, there were few intellectuals who had been influenced by Western thought as much as he was, and there could be no philosopher who aimed to fuse East and West ideology religiously and philosophically. However, the situation around the state of Joseon(Korea) was not so complicated as to discuss the peace among the countries. The reform measures and arguments that he tried to reform and defend the state of Joseon were basically a way to safeguard Joseon in the gap between the Great Powers and the small countries. His dedication and efforts to propose policies and to reform the system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suggest how South Korea should act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complete permanent peace on a global scale that I. Kant dreamed of, and all violence-free positive peace that J. Galtung defined is only a product of pure ideas. The Republic of Korea must make a real and practical peace at this point. There is an urgent need for inter-Korean peace, and if we expand the scope further, we must pledge peace in East Asia. We can find a way in Jeong Yak-yong`s thought of peace. If Goguryeo(高句麗) was able to preserve the country by being stronger in the constant struggle and conflict in the rough region, and came down to the abundant south and pursued peaceful peace and therefore reached its destruction, today, the reality of South Korea is just the rough and harsh conditions that Jeong Yak-yong mentioned. We will get peace if we cope with a rough and harsh international environment with a strong mind for maintaining and protecting peace. Just as he designed the Suwon Hwaseong(華城) castle so firmly against the future war after a hundred years, only those who prepare for peace in the future will ga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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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한반도 통일의 외적 거래비용에 관한 시론적 연구

          이수형 ( Soo Hyung Lee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2 통일과 평화 Vol.4 No.2

          분단 반세기 이상 상이한 정치·경제·사회체제로 지속되어 왔던 남북한의 제도와 인식을 하나로 묶어내는 한반도 통일 과정은 필연적으로 통일 비용이라 할 수 있는 거래비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통일을 위한 이러한 거래비용은 남북한 차원에서 새로운 한반도 정치공동체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유무형의 내적 거래비용과 한반도 통일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과들의 외적 거래비용이 그것이다. 특히, 한반도 통일 과정 및 그 결과에 있어서 어떤 측면에서는 내적 거래비용보다 외적 거래비용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반도 통일은 기본적으로 동북아 역학관계에 있어서 의도하지 않은 현상타파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의 목적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통일을 계획, 준비하고 통일과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외적 거래비용이라는 통일 비용의 주요 쟁점들을 시론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외적 거래비용이란 통일 과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북아 역내 주변 국가들과의 이해관계와 한국이 이들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서 통일과정을 보다 원만하게 추진하는데 소요되는 유무형의 거래비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외적 거래비용에 초점을 두고 향후 한반도 통일 및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주변 국가들과의 주요 쟁점들이나 항목들을 제시하여 우리의 외적 거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코자 하는 것이다. Korean reunification poses two distinct yet interdependent conundrums: reunification itself, which is the immediate challenge; and the strategic landscape that emerges from reunification, which has the potential to fundamentally transform strategic relationships in Northeast Asia. The process of Korean reunification essentially brings about questions about the costs of such a reunification. We can divide these costs into two categories: an internal cost which only aff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s; and an external cost, related to the politics of Northeast Asia. In this context, the main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try to examine the external transaction cost in the process of Korean reunification. This article focuses on the issues related to the external transaction cost. There are three main issues: the general military forces of Korean reunification, the ROK-U.S. alliance and the territory of Korean reunification, and the unsolved problem of the recen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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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통일교육의 현황과 개선방향 연구

          배영애 ( Bae Young-ae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7 통일과 평화 Vol.9 No.1

          본 연구는 대학 통일교육의 현황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학 통일교육의 강화와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들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우리 구성원 중에서 20대인 대학생들이 대체적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통일문제에 대해서 당위성보다는 실리주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대학생들의 통일문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대학 통일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 통일교육은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미래 세대를 양성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현재 대학 통일교육은 학교 통일교육과 사회 통일교육에서 두 가지 영역 어디에서도 교육 대상으로서 위치를 명확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그 위상이 매우 미약하다. 따라서 대학 통일교육의 위상 강화와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 개선방향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 통일교육은 북한·통일 관련 교과목의 확대와 다양화를 통해 많은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체제 중심의 내용에서 벗어나 사람, 생활세계의 사회통합을 중심으로 교육내용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일 수 있고, 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교육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통일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육 과정과 교육 콘텐츠 개발, 북한·통일관련 강좌 개설을 운영하고,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 확립과 다양하고 현실적인 인센티브제의 도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identify the problems through status of university`s unification education and seeks to improve the way in order to strengthen and activate of university`s unification education. Recently, university students showed the lowest interest in unification. They is recognized as a more realistic necessity of unification. Because our society was neglecting the unification education of university students in order to form a consensus unification. university`s unification education can be a very important step to prepare for unification and foster future generations. University`s unification education did not get the position and the weak phase. Therefore, it is expanding the educational opportunities for many students through a quantitative expansion and diversification of the curriculum in order to strengthen and activate the phase of university`s unification education. The content of education must change from the system to the social integration of people, living world. In addition, to increase the students` interest and participation and should use a variety of teaching methods considering the characteristics of generation. The government is required to introduce a proactive administration, financial support and various incentives to operate autonomously university education programs and training content development, North Korea or unification opening lecture of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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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생태와 녹색평화-사상,문학,운동 ;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과 평화주의: 홍대용의 경우

          박희병 ( Hee Byoung Park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2 통일과 평화 Vol.4 No.2

          한국의 전통사상에 내장(內藏)된 평화주의적 지향을 18세기의 사상가인 담헌 홍대용을 하나의 사례로 들어 살펴보았다. 홍대용의 평화주의는 그의 독특한 생태주의적 존재론에 의해 밑받침되고 있으며, 평등과 반폭력의 지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그는 특히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대립적이거나 배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상호평등한 수평적인 관계로 파악함으로써 평화주의를 정초하고 있다. This article aims at introducing the ideas of a Korean intellectual of the 18th century, Damheon Hong Dae-yong, as part of efforts to understand the pacifist orientation of Korea`s traditional thoughts. Hong`s pacifism, based upon his unique idea of ecological ontology, clearly shows strong orientations towards equality and anti-violence. Hong argued that the subject and the other should not be regarded as being opposed to or exclusive of one another, but rather defined pacifism as an equal and horizontal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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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불도와 선을 아우른 최치원의 평화 사상

          이도흠 ( Lee Doheum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8 통일과 평화 Vol.10 No.1

          신라 말기의 사상가, 시인, 정치인이었던 최치원은 유불도와 풍류도에 능통한 지식인이었다. 그의 사상을 평화관의 입장에서 생명평화사상, 소극적 평화사상, 적극적 평화사상, 차이의 평화관으로 나누어 조명하였다. 최치원은 풍류도, 도교, 불교를 회통(會通)하는 생명 평화관을 가졌다. 그는 모든 생명과 인간이 다 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며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그 속에서 인간과 온생명이 하나로 범아일여(梵我一如)를 형성하다가 함께 해탈을 하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는 함양의 태수로 부임하였을 때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둑을 쌓는 대신 숲을 조성하고 실개천을 만들어 생명을 살리면서도 홍수를 막는 대안을 택하였다. 최치원은 전쟁터에서든 이를 기억하는 장소든, 전쟁과 평화를 대조하면서 후자를 지향하였으며,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이 땅 신라가 아예 전쟁 자체가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였으며, 무기를 거두는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길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잘 살게 하는 길이라고 피력하였다. 최치원은 생명이 위기를 겪고 사람들의 본성이 어지러운 원인을 개인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세상과 시국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는 사회 구조적인 인식을 하였다. 이에 먼저 마음속에서 나쁜 마음을 씻어내는 재(齋)에 진력하고 환란이 오지 않게끔 경계하여 폭력과 다툼을 아예 없애는 계(戒)에 힘써야 한다며 전쟁과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는 적극적 평화사상을 피력하였다. 최치원의 평화 사상을 21세기의 맥락에서 조명할 때, 그의 생명평화사상은 심층생태론과 상통하며, 홍수를 막기 위하여 상림을 조성한 대안은 근대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탈근대적 대안으로 적용될 수 있다. 곧은 마음에서 비롯된 다름 인정의 사유는 근대적 주체가 동일성에 포획되어 타자를 상정하여 배제하고 혐오와 폭력을 행한 것을 성찰하는 차이와 타자성의 사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Chi-won Choi was a thinker, a poet and a politician in Silla dynasty. He was a savvy intellectual familiar with Confucianism, Buddhism, Taoim, and Pungryu-do. I analyzed his thoughts from the standpoint of the peacemaker by dividing his thoughts into four categories: life -peace ideology, passive peace ideology, active peace ideology, the peace thought of difference. He had a ideology of life and peace that combined Buddhism, Taoism and Pungryu-do. He thought that all life and man were dignified and equal. He hoped that human beings and all life would coexist in a state of oneness of the universe and self and then reach nirvana together. In fact, when he was appointed governor, he had chosen an alternative to prevent floods while saving lives by building the Sang-rim forest of instead of dams. He directed the latter in contrasting war and peace, whether on the battlefield or in a place where he remembers it. He wanted that Silla dynasty would be a peaceful country with no war itself, under the protection of the Buddha. He thought that eliminating weapons is not only a way to make peace, but a way to live all the lives well. He identified people and lives as being in crisis because of the state and the situation. He tried not only to oppose the war passively but actively to prevent it. He insisted that the war would be prevented by getting rid of fundamentally bad feelings and eliminating its causes. I illuminated his thought in the context of the 21st century. His thoughts are in line with the ideology of deep ecology. His choise that build the Sang-rim forest can be applied to post-modern alternatives. Owing to be captured by identity, modern subjects excluded and committed violent against others. So, we reflect on the violence of identity and seek alternatives of the ideas of difference and alterity. His ideas are similar to this a li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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