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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불어로 된 알제리 텍스트 -부재하는 텍스트의 유령 텍스트-

          지네브알리베날리 ( Zineb Ali Benali )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11 불어문화권연구 Vol.21 No.-

          16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코포니의 역사에서, 유럽 바깥에서 불어의 전파는 언제나 식민화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었고 특히 19세기 이래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는 정복 전쟁을 통한 점령과 함께였다. 알제리에서 불어의 역사는 1830년 6월 14일 프랑스 원정군의 상륙과 함께, 아랍어와불어로 작성된 알제의 항복문서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지중해 남쪽 지역에서 불어가 전혀 낯선 언어는 아니어서, 상업에 사용되는 언어, 또 이 지방에 머무르던 유럽 여행자들의언어로는 알려져 있었다. 1830년 7월 5일 이후 불어는 차츰 이 국가의 언어가 되어갔다. 폭력과 지배의 언어에서 차츰 토착민들이 사용하고 그들을 말하는 언어가 되어가면서, 지중해 남쪽에서 불어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텍스트가 나타났다. 아랍과 터키두 문화를 물려받았고 영어와 불어를 말했던 함단 호자 Hamdan Khodja라는 무역업자의 글이다. 그는 불어로 글을 썼는가? 그의 텍스트를 편집한 압델카데르 제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텍스트가 파리에서 돌아다니던 이야기의 여러 요소들을 수입한 작업실이리라고 말한다. 1836년까지 함단 호자는 프랑스인들에게 알제리 점령이 오랜기간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 했다. 자유의 이름으로, 보편적 원칙의 이름으로, 곧 지배자인 타자의 담론을 취하면서 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식으로, 압델카데르 제룰이 "저항?대화"라 부른 것을 시도했다. 알제리 태수의 항복뒤 4년간 그는 파리에서, 알제리에서 외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알제리에서 가장 잘 조직된 두 저항세력, 동부의 아흐메드 콩스탄틴과 서부의 에미르 압델카데르의 세력을 연결하려고 애썼다. 모순되는 요소들을 화해시키려 한 조정자였던 그는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민족주의적 영웅은 아니었지만, 역사적 변화가 그의 펜과 외교활동에서 민족주의 투쟁의 형태를 태어나게 했다. 그는 그의 글로 알제를 점령한 정치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금방 알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계속했다. 자신이 패했고 자기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망명을 선택했다. 오늘날 그의 시도는 비이성적이거나 우매한 제스처로 보일수 있다. 많은 알제리인은 그를 프랑스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프랑스측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함단 호자의 텍스트는 패배한 자의, 실망한 협력자의 불어로 된 "목소리"로 받아 들여진다. 그의 글은 알제리 상황의 정확한 묘사라기보다는 당시 알제리의 정신 상태의 증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이 아랍어로 쓰여서 불어로 번역되었는지, 누구에 의해 번역되었는지, 아니면 아랍어 텍스트의 번역인 것처럼 불어로 쓰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텍스트의 기원은 모호하다. 그의 글은 기원?이미지를 밝힐 수 없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복제되는 거울들의 갤러리 속에 있는 듯하고, 거울놀이는 두 텍스트, 두 언어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 무대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작동하고 있는 언어들의 연극, 알제리 글쓰기의 두 가지 언어를 불명확한 기호 아래 위치시키는 언어학적 픽션의 시작을 알린다. 1833년 출간된 첫 번째 텍스트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알제가 프랑스 원정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3년이 갓 지났을 때 함단 호자는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된 첫 번째 알제리 텍스트를 출간했다. 이 최초의 시도가 그를 역사에 남게 했다. 서구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근대성의 매개자라는 것을 알아 차리고 서구로 열린 지식인의 모습이 형성된 것을 알리는 최초의 제스추어였다. 알제리 땅에 프랑스가 침투한 것이 그의 동향인들 전체가 겪는 파국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 여러 세계의 교차로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나라와 프랑스에 대한 똑같은 열광을 증거한 인물들, 협상과 중도의, 혼종성의 인물들, 그들 방식으로 혼합성을 부르짖는 사람들. 함단 호자는 이후 글쓰기에 대한 민족주의적 탈환이 일어나는 1930년까지 거의 백년간 지속된 이들의 말하기 방식의 선구자였다. 다른 언어, 시초 언어의 번역에 지나지 않을 언어로 픽션속에 들어간 텍스트는 정체성의 문제, 진정성의 문제와 만난다. 그의 텍스트와 태도의 독창성은 당시, 1830년 7월 5일이 라는 시대의 콘텍스트 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글들이`알제 점령`이라는 단절이자 새로운 시작인 순간을 이야기하지만, 역사가 패배자들에 의해서 쓰여지는 일은 드물다. 프랑스 군대와 군속들에 의해 묘사된 대부분의 기록 아래 패배자들의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은 빠르게 침묵과 망각 속에 삼켜진다. 한 세기 이상 `알제 점령`은 프랑스측에서만 이야기되고, 쓰여지고 분석되었다. 알제리 입장에서 씌어진 몇 안 되는 글 속에, 앗시아 제바르가 발굴한 아랍어 시 한편이 있다.수도의 대학생이었던 압델카데르라는 이름의 젊은이에게 프랑스군의 침입은 시대의 종말처럼, 파국으로 경험되었다. 수도의 함락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모든 알제리인들의 상실과 괴로움을 간직한 이 시는 오랫동안 생생한 슬픔을 남겼다. 알제 함락에 대한 이 노래 속의 시인의 힘은 민족 문학적 요소의 중요성을 증거한다. 패배자에 의해 말해지고 씌어진 첫 번째 텍스트로서 이 시는 묘사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압델 카데르는 자기 사회를 위해 썼다. 타자인 정복자도 자신에게 향해진 것이 아닌 이 목소리를 읽거나 들을 수 있겠지만, 압 델카데르는 내부에서, 내부를 위해 썼다. 타자의 언어로 쓴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올 문학을 예감하게 한 함단 호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 최초의 순간부터, 두 언어는 이미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로, 달과 해의 이미지로 한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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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주변부, 불어권 스위스 문학 -두 문학 장에 "걸친" C. F. 라뮈즈의 경우

          레날프뢰디거 ( Reynald Freudiger )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9 불어문화권연구 Vol.19 No.-

          파리 중심의 불문학과 비교했을 때 불어권 스위스 문학은 주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파리를 경유해야 더 넓은 불어권으로 작품이 유포될 수 있으며, 많은 불어권 스위스 작가들이 파리의 문학계에 접근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출판업계와 시장, 작가와 비평가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는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불어권 스위스의 대표적인 작가인 샤를 페르디낭 라뮈즈의 생애는 이러한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의 주변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불어권 내 프랑스어의 다양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재고하게 해준다. 187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프랑스어 시집과 단편소설을 출간한 바 있는 라뮈즈는 파리로 건너가 1905년에 첫 장편소설인 『알린느』를 펴낸다. 스위스계 작가로 먼저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에두아르 로드의 도움으로 출간한 이 소설에서 라뮈즈는 스위스 농촌지역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후 약 10년에 걸쳐 그는 파리에서 5편의 소설을 출간한다. 비록 작품의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파리에서 작품을 출간했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에서 크게 환영을 받는다. 1913년에 스위스로 돌아온 이후 라뮈즈는 로잔을 대안적인 문학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많은 작품을 출간하며 불어권 스위스에서 루소에 비견되는 작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파리에서라면 펴내기 어려웠을 아방가르드적인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가 스위스에서 발표한 혁신적인 작품들은 특히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언어와는 다른 스위스의 지방어로 채워져 있었고, 이러한 그의 문체를 두고 불어권 스위스의 비평가들은 프랑스어가 아닌 애매한 언어를 사용한다며 비판을 가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불어권 스위스에서만 유포되었지만, 일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적 작가들이 그의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1919년에 그는 필립 수포로부터 『문학』 지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는다. 그리고 1924년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와 더불어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그라세 출판사와 장기 계약을 맺고 1947년 사망하기까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라뮈즈는 이처럼 불어권 스위스와 파리라는 두 문학 장을 이용할 줄 알았다. 주목할만한 스위스계 작가로 파리에 소개된 그는 그곳에서의 작품 출간으로 인해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를 일종의 문학적 혁신의 실험실로 활용함으로써 파리의 문학계에 재입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자율적인 불어권 스위스 문학 장의 존재를 이용할 줄 알았는데, 스위스 문학계에서 경제적 후원을 받아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그라세 출판사의 지원을 얻고 파리 문학계에 다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도 역시 그의 문체를 놓고 비판이 일기 시작했고, 이에폴 클로델을 비롯한 주요 문인들이 그를 옹호함으로써 라뮈즈는 파리 문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29년 자신의 작품집 서문에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논쟁에 대한자신의 입장을 직접 표명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러한 시도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부 불어권 문학전체와 관련된다는 점을 밝혔다. 프랑스어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변론은 주변부 불어권 문학의 시학에 대한 최초의 정식화이자 일종의 역사적 선언이었던 셈이다. 2차 대전의 발발로 라뮈즈와 파리의 연계는 느슨해졌으며, 1947년 그의 죽음은 파리 문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어권 스위스에서 그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져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수록되고,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불어권 스위스에서의 라뮈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후 다시금 파리 문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가 파리에서 첫 작품을 출간한 지 100주년이 되는 2005년에 그의 전집이 플레이야드 판으로 출간된다. 이처럼 그가 프랑스 문학의 판테온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이 이룬 문학적 성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뮈즈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어권 스위스 문학계가 보이는 주변적이면서도 자율적인 장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라뮈즈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불어권 스위스 작가들이 파리로부터 문학적 승인을 받고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수의 작가들이 파리를 경유하지 않고 불어권 스위스 내부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파리중심주의에 반대하며 자율적인 문학 장을 보존하고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작가들이 있다. 오늘날 스위스를 비롯한 불어권 내에서 파리를 벗어나는 대안적인 문학 장을 구성하는 것이 많은 문학인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마르세유, 제네바, 다카르에서 파리와 대등한 자리에 서기 위한 시도들이 현재 진행 중이다.

        • KCI등재

          Le premier texte algérien en langue française : Texte fantôme d’un texte absent

          지네브 알리-베날리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11 불어문화권연구 Vol.0 No.21

          16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코포니의 역사에서, 유럽 바깥에서 불어의 전파는 언제나 식민화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었고 특히 19세기 이래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는 정복 전쟁을 통한 점령과 함께였다. 알제리에서 불어의 역사는 1830년 6월 14일 프랑스 원정군의 상륙과 함께, 아랍어와 불어로 작성된 알제의 항복문서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지중해 남쪽 지역에서 불어가 전혀 낯선 언어는 아니어서, 상업에 사용되는 언어, 또 이 지방에 머무르던 유럽 여행자들의 언어로는 알려져 있었다. 1830년 7월 5일 이후 불어는 차츰 이 국가의 언어가 되어갔다. 폭력과 지배의 언어에서 차츰 토착민들이 사용하고 그들을 말하는 언어가 되어가면서, 지중해 남쪽에서 불어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텍스트가 나타났다. 아랍과 터키 두 문화를 물려받았고 영어와 불어를 말했던 함단 호자Hamdan Khodja라는 무역업자의 글이다. 그는 불어로 글을 썼는가? 그의 텍스트를 편집한 압델카데르 제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텍스트가 파리에서 돌아다니던 이야기의 여러 요소들을 수입한 작업실이리라고 말한다. 1836년까지 함단 호자는 프랑스인들에게 알제리 점령이 오랜기간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 했다. 자유의 이름으로, 보편적 원칙의 이름으로, 곧 지배자인 타자의 담론을 취하면서 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식으로, 압델카데르 제룰이 “저항‐대화”라 부른 것을 시도했다. 알제리 태수의 항복 뒤 4년간 그는 파리에서, 알제리에서 외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알제리에서 가장 잘 조직된 두 저항세력, 동부의 아흐메드 콩스탄틴과 서부의 에미르 압델카데르의 세력을 연결하려고 애썼다. 모순되는 요소들을 화해시키려 한 조정자였던 그는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민족주의적 영웅은 아니었지만, 역사적 변화가 그의 펜과 외교활동에서 민족주의 투쟁의 형태를 태어나게 했다. 그는 그의 글로 알제를 점령한 정치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금방 알게 되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계속했다. 자신이 패했고 자기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망명을 선택했다. 오늘날 그의 시도는 비이성적이거나 우매한 제스처로 보일 수 있다. 많은 알제리인은 그를 프랑스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프랑스측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함단 호자의 텍스트는 패배한 자의, 실망한 협력자의 불어로 된 “목소리”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글은 알제리 상황의 정확한 묘사라기보다는 당시 알제리의 정신 상태의 증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이 아랍어로 쓰여서 불어로 번역되었는지, 누구에 의해 번역되었는지, 아니면 아랍어 텍스트의 번역인 것처럼 불어로 쓰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텍스트의 기원은 모호하다. 그의 글은 기원‐이미지를 밝힐 수 없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복제되는 거울들의 갤러리 속에 있는 듯하고, 거울놀이는 두 텍스트, 두 언어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 무대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작동하고 있는 언어들의 연극, 알제리 글쓰기의 두 가지 언어를 불명확한 기호 아래 위치시키는 언어학적 픽션의 시작을 알린다. 1833년 출간된 첫 번째 텍스트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알제가 프랑스 원정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3년이 갓 지났을 때 함단 호자는 파리에서 프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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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traduction litte´raire core´enne en France

          Lee, Byoung-Jou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2 불어문화권연구 Vol.12 No.1

          1892년 홍 종우가 번역했던 '춘향전 Le temps parfume´'을 시작으로, 프랑스에서 한국 문학은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몇 가지 문법책과 고전들을 소개하다가, 본격적인 번역은 한국전쟁 후 1960, 1970년대에 들어 이루어졌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0년대의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다양한 현대 문학 작품들-이문열, 이청준, 김승옥, 박완서, 조세희, 최인훈, 이어령-이 프랑스에 소개될 수 있었다. 한국 문학의 불어 번역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으로, 필립 삐끼에 출판사에서 출간된 오정희의 소설집 '순례자의 노래'와 '바람의 넋'의 번역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 소설로서 프랑스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로서, 시적이고 지적인 명징성과 소설적으로 완벽한 구조로 프랑스 독자들의 공감을 끄어낼 수 있었다. 현대 중산층 여성이 가정 내에서 경험하는 고통스런 자의식, 타자 속의 고립과 고통, 자포자기와 정신 이상을 오가는 여성 심리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한데서 기인하는 보편성의 획득이야말로 이 작품을 성공시킨 가장 큰 용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적이고 외면적이 이야기의 서술이 아니라 내적인 묘사에 탁월한 문체는, 그 자체로 오히려 번역의 어려움, 특히 심리 묘사와 어휘 선택에 있어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특히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프랑스인의 경우, 번역 문학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기 때문에 번역자의 고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원작에서는 거부감 없이 읽혀지는 반복적 용어들이, 불어로 번역된 경우에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원작자를 배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효과적인 언어의 재창조 작업이 실행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번역이라는 작업의 창조성과 복합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텍스트로 한 세가지의 번역문을 제시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원작의 모든 것을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번역자는 배반자이다'라는 이태리 속담도 있지만, 번역자가 자기의 주관적 감수성과 사상을 어떻게 원작에 적용하여 작업하는가에 따라 우수한 번역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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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ccord grammatical et le sens du franc¸ais

          BOK, Sung-Gyu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2 불어문화권연구 Vol.12 No.1

          불어의 일치현상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형태상 일치 accord morphologique, 의미상 일치 accord se´mantique, 그리고 무일치 accord meutralise´ ou invariabilite´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전통문법이나 기타 현대 언어학의 어떤 유파에서도 주장된 내용이 아니다. 본고는 이에 관한 것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의미가 불어의 일치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의미라는 조금은 막연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의상상 일치'에서 의미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전에 형태상 일치와 의미상 일치의 차이를 말하는 것도 한 순서이고, 우리의 본래의 목적을 향한 좋은 출발일 것이다. 양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원에서 차이점이 존재하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지배어 terme dominant와 피지배어 terme domine´ 사이에 문법적 차원 -즉 성과 수 또는 인칭-에서 일어나느냐의 여부이다. 형태상 일치는 지배항과 피지배항 사이에 완전한 범주의 일치가 존재하나 의미상 일치는 그 불일치가 마침내 의미의 일체에 자리를 내어준다. 기타 양자 사이의 다른 점은 언어의 존재양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형태상 일치는 주로 문법의 세계에 머무르나 의미상 일치는 주로 담화 속에서 그 기능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또한 지배어의 언어적 구조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의미상 일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아진다. 우리는 풍부한 실증을 통하여 의미를 빚어내는 재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의미상 일치'라는 한 종류의 일치에서 '의미'는 문맥치 valeur contextuelle, 지시치 valeur re´fe´rencielle, 강조치 valeur d'insistance 그리고 경제치 valeur d'e´conomie 등의 반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종의 사족이지만 이 의미라는 것은 일치에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어의 정의는 다른 것일 테지만- 일종의 문법표지 marques grammaticales를 통해서 구현된다. 한편에는 규칙적용의 기계적 자동성, 즉 형태상 일치가 있는 반면에 선택의 가능성을 전제한 의미의 우월성 또는 발화자의 의도에 따른 일치, 즉 의미상 일치가 현대 불어에서 일상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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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언어 사이 그리고 가족소설

          샤를본 ( Charles Bonn )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9 불어문화권연구 Vol.19 No.-

          프랑스어권 마그레브 문학은 `두 언어 사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 속에서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희생 제의로 극화시키면 프로이드적인 의미에서 가족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구도에 비유될 수 있다. 본고는 1950년대부터의 프랑스어 마그레브 문학을 살펴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희생이라는 가족소설의 구도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그것이 두 언어 사이에 등장한 마그레브 문학의 상황을 어떻게 상징하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마그레브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 글쓰기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새로운 언어의 문학은 어머니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며, 그러한 희생은 두 언어 사이에 있는 인물의 비극적 모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메리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마을을 떠나는데, 이는 `소외`나 `문화변용`이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그의 소설『땅과피La Terre et le Sang』(1953)에서 주인공 아메르가 죽었을 때, "카빌리아인보다 더 카빌리아인 같은" 프랑스인 아내 마리가 남편의 장례식 중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자 장례식에 모인 마을 여자들은 아메르의 비극적인 죽음을 슬퍼하는 동시에 새 생명의 잉태를 축하한다. 여기서 아내 마리의 이미지는 두 언어 사이에 놓인 프랑스어 마그레브 문학의 등장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메리를 비롯한 1950년대 작가들의 많은 문학 텍스트에서 주인공은 상이한 두 체계의 만남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원래의 장소를 떠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의 정체성의 파멸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에만 주목한 나머지 문학적인 면에서 그 본질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즉 희생자체가 텍스트 탄생의 조건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이와 아울러 정체성이 파멸되어 죽음을 맞는 주인공이 이야기의 유일한 희생자가 아니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면서 약간은 뻔뻔하게 등장하는 어머니가 바로 또 다른 희생자이다. 전통의 수호자이자 동시에 가장 침범하기 힘든 은밀함의 수호자인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평온함이 깨지고 상처를 입으면서 희생된다. 예를 들어 『잊혀진 언덕La Colline oubliee』이라는 소설에서 아들을 전쟁터에 빼앗기는 어머니는 가족적 은밀함에서 벗어나 슬픔에 잠겨 절규하는데, 이 절규의 노래는 상실을 기반으로 한다. 희생된 어머니의 상실은 모더니티와 문학에서 불어의 등장이 수반하는 것이다. 특히 두 언어 사이에 있는 문학의 등장은 이러한 어머니의 상실과 희생을 기반으로 한 듯 보인다. 게다가『포기La repudiation』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머니는 아버지에 의해 포기된 존재이며, 타하르 벤 젤룬의『성스러운 밤La Nuit sacree』에서도 어머니는 희생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실이라는 비극의 역동성은 프랑스어 마그레브 문학의 탄생 배경이 되는데, 여기서 어머니의 희생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아버지는 매우 자주 반역적이고 실패한 자로서 이야기에서 부재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식민 지배자들이 집안을 파탄내도록 내버려둔 사람이자 가정을 지키는 것에 실패한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의 실패는 아들 역시 무능하게 만든다. 지배자들은 아버지를 제거하고 아들에게 모멸감을 주는데, 아버지의 극복 시도는 대개 허망하게 끝난다. 아버지는 매국노이면서 더 심하게는 어머니와 아들을 희생시키는 사람으로도 나타난다. 『포기』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포기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소설 자체는 불가능한 아버지 살해를 조직하는 공간이다. 1970년대의 많은 작품들이 아버지 살해 모티브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아버지가 상징하는 법의 살해, 규범의 살해이기도 하다. 사실상 `신제국주의`에 대해 반발했던 1970년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고유성`을 부르짖는 알제리 권력과의 정치적인 단절은 모호하게 나타난다. 이때 아버지의 상징적 살해는 방해꾼을 옆으로 치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머니의 몸을 희생시킨 것처럼, 아버지의 말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들의 말이 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역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아버지는 1980년대의 텍스트에서 다시 비극적인 모습으로 돌아온다. 1980년대 부제드라는 아랍어로 글을 쓰고 프랑스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이런 언어적 상황을 모르는 독자들은 `티미문`이란 장에서 볼 수 있는 "저자에 의해 불어로 쓰인" 이라는 표현이 수수께끼처럼 보이지만, 아랍어는 공식적인 정체성의 언어이자 가부장적 법의 상징으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을 주지하면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시기의 텍스트는 수십 년간 홀대당한 아버지의 귀환을 표현했다. 그 동안 아버지를 죽여왔던 소설이 이제는 아버지를 찬양하기 시작하는데, 작가들은 카텝 야신을 문학의 아버지로 받아들여 그를 패러디하고, 흠모하는 모델로서 그린다. 그러나 소설에서 아버지는 말 그 자체로 상징되어 표현되며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벤 젤룬의 소설에서는 한 소녀가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는데, 이 소녀는 죽음 자체를 의미하며 글쓰기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유혹하는 행동이 된다. 벤 젤룬의 또 다른 소설 『탕헤르의 침묵의 날Jour de silence a Tanger』에서 아버지는 탕헤르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데, 탕헤르는 두 언어의 공간이자 동시에 두 대륙의 공간이다. 『하루다Harrouda』에서 어머니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금기적인, 성생활에서의 고통을 고백하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 자신에 의해 발화되는데, 이러한 장면은 문화적인 잣대로 볼 때 매우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으로서 발화자의 극화된 희생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즉 이 이상한 말들은 어머니에게는 수치심, 아버지에게는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이상한 발화를 통해 죽어가는 아버지를 비극화시킴으로써, 글쓰기가 `죽음의 욕망`의 `춤`이고 비극의 모호함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아버지의 말의 영웅적인 희생은 두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이 기반하는 가족소설 구도의 필수적인 견인차가 된다. 이민 2세대 문학에서, 비록 어머니는 마그레브 문학의 희생자라 할지라도 늘 탄탄하게 가족을 유지하는 이민자 가정의 지지자 역할을 하고 아들의 존경을 받지만, 아버지는 종종 법을 수호하는 자로서의 역할과 사회화의 역할을 상실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생은 두 언어 사이에 있는 프랑스어권 마그레브 문학의 등장에 뒷받침이 되었다. 어머니의 희생은 벤 젤룬이 보여주듯이 수치심으로 인해 공적인 말이 금지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희생은 법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희생은 언어적 재현과 분리될 수 없다. 유혹적이면서도 죽음의 언어로 형성되는 문학은 이 희생의 비극적인 모호성에 의존하는데, 희생이야말로 두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프랑스어 마그레브 문학의 중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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