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林春城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96 東亞文化 Vol.34 No.-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에 들어와 서는 20세기 전반까지의 동보성(同步性)과 후반의 역향성(逆向性)을 가지고 있는 한국문학과 중국문학의 연구 접점은, 그것이 가지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에서의 중국문학 연구의 본질적 의의와 고유한 과제가 놓여 있다. 이글은 이러한 과제 해결의 모색을 위한 준비작업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중국문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문학'과 '모더니티'에 관한 국내 논의를 점검해 본 후, 문화사조와 예술방향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중국 근현대문학의 발전 윤곽(배경과 유형)을 살펴보며, 대중화, 민족화, 근현대화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문학사 발전 동력을 조망함으로써 중국 근현대문학의 이론체계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문학사 발전의 배경으로서의 문화사조를 가로축으로, 문학사 발전의 유형으로서의 문예방향을 세로축으로 삼으면 양자의 교차점에 문학유파를 배치할 수 있고, 각 유파는 고유의 문학방법 내지 기법을 가지게 된다. 이 글에서는 도식화의 위험을 경계하면서 도표화시켜 보았다. 이 표는 1917년∼1949년을 중심으로 소설 유파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 작성한 것이다. 유파 분류는 楊義의 『중국현대소설사』를 기준으로 하였다. 유파와 주요 작가를 중심으로 그리되, 한 유파는 그 주요한 경향을 위주로 한 곳에만 배치하였다. 각 시대별 추이와 각 문화사조 사이의 중첩 부분을 명확하게 표시하지는 않았다. 필자는 1917∼1949년 사이의 중국문학의 대중화론을 검토하면서 "대중화를 기축으로 하고 민족화와 현대화의 세가지 힘의 총합이 중국 현대문학 발전의 추동력"이라는 가설적 문학사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민족화와 근현대화, 대중화와 근현대화의 관계를 검토해 보았다. 민족화와 근현대화의 관계는 우선적으로 민족화에 기초한 근현대화가 되어야 한다. 중국문학의 근현대화는 서양문학을 전면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모델로 삼아 중국문학을 개조한 '전면서화'가 아니었고, 전통문학을 전적으로 계승함으로써 외국문학을 완전히 동화시킨 것도 아니었다. 또한 중국문학의 근현대화는 우수한 세계문학을 거절하는 맹목적인 배외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전통과의 단절도 아니었다. 전통문학과 외래문학은 결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여러 가지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복합체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 구체적으로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변별하여 취사선택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양은 계승과 수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방적이지만, 주체와 객체의 끊임없는 길항이 요구되므로 비판적이다. 이러한 계승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원래의 대상이 변형된다. 우리가 외래문학과 중국문학의 상호 충돌 및 외래문학의 영향을 논할 때, 수용 주체의 문화심리구조가 외래문학의 수용 및 이해 과정에서 주도적역할을 일으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수용 주체의 문화심리구조의 주도적 작용을 거친 텍스트는 넓은 의미에서 '오독(誤讀)'된 텍스트이다. 문화 교류와 영향 과정에서 쌍방은 영원히 오해된 '텍스트'를 읽게 될 것이다. 중국 근현대문학에서 문학 작품의 대중성과 예술성의 관계는 보급과 제고의 문제로 요약되어질 수 있다. 보급과 제고의 각도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예술 확립을 위한 작품'은 제고에 치중한 것이고 '대중의 직접적 선전선동을 위한 작품'은 보급에 역점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좌익작가연맹의 대중화론에서는 양자의 통일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고도, 이후 논의의 초점은 주로 '대중의 직접적 선전선동을 위한 작품' 창작에 모아지고, 그럼으로써 정치적 과제를 보다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은 당시의 정치화 추세에 추수한 것이었다. 보급과 제고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정합성은 마오저뚱(毛澤東)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해방전쟁과 국민당의 탄압이 중첩되었던 현실은 금상첨화(錦上添花)보다는 설중송탄(雪中送炭)이 요구되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현실은 '제고를 유보한 보급'을 강제하였다 마우저뚱의 이론적 공헌은 '민족화와 대중화의 결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혁명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입론된 것이므로 이것을 전일적으로 적용할 때 또다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49년 이후 「옌안 문예연설」의 강한 규제력 속에 진행된 문학사사 거듭 시행착오를 겪은 사실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가 제고에 대한 이론적 배려를 잊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제고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았던 노농병 대중의 투쟁생활은 그러한 제고를 수용할 능력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실천적 차원에서 그의 대중화는 통속화에 경도되었고 민족화는 민간화로 귀결되었으며 근현대화의 과제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范永聰(FAN Wing Chung)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17 동아문화 Vol.55 No.-
Regarding as two important beliefs of nation founding for the Koreans, although there are key differences between the content of Dangun Myth and the history of Gija Joseon, both ideas were long standing and well established, and to a certain extent showed the cultural consciousness of ancient Korea and the chronic cultural interaction between China and Korea. However, in view of different objects of worship in the texts of Dangun Myth and Gija Joseon, two ideas were apparently incompatible. They accordingly showed their importance or became belief of some Korean intellectuals in different periods of Korean history respectively. In an academic perspective, it is more worthy to pay attention to the historical, cultural consciousness and historical application of the two id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