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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정환 세계에 알리기 프로젝트 Ⅱ -덴마크-독일-오스트리아 방정환 탄생 120주년 기념 행사-

              송영숙 ( Song¸ Young-sook ) 방정환연구소 2020 방정환연구 Vol.3 No.-

              방정환 세계에 알리기 프로젝트 Ⅱ(2019.11.4.∼11.11.)는 2018년도 아테네한글학교에서 시작된 방정환 세계에 알리기에 이어, 2019년 덴마크-독일-오스트리아에 걸친 3국 문화 교류단의 활동으로 기획된 특별 행사이다. 특히 2019년은 방정환 선생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로, 마침 탄신일인 ‘11월 9일’에 맞춰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기념행사를 치른 최초의 일이기에 남다른 역사적 감회가 있다. ‘2019년 방정환 세계에 알리기 프로젝트’의 행사는 크게 3부로 이루어졌다. 먼저, 안데르센의 묘역과 생가, 기념관을 답사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맞춰 기획 출간한 『방정환이 뽑은 안데르센 동화』(해설 장정희)를 안데르센 묘에 헌정하고, 동 책을 안데르센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11월 9일 방정환 선생 탄생일에는 비엔나한글학교에서 1교시 ‘한글학교 책 수업’으로 11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다. 2교시부터 서울독서교육연구회 책고리공연단이 마련한 방정환 이야기마당극 <토끼의 재판>을 공연하였고, 이어서 참가 작가 23명과 서울독서교육연구회가 마련한 <방정환과 한국 아동문학전 120>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방정환 탄생 120주년 기념을 최초로 유럽에서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 한국 방정환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 어린이운동과 아동문학의 선구자 방정환 선생의 정신이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Bang, Jung-hwan Globalization ProjectⅡ(2019.11.4∼11.11) to inform Bang Jung-hwan’s world is a special event organized by the activities of the trilateral cultural exchange group across Denmark, Germany and Austria in 2019 after the Bang Jung-hwan globalization event that began at the Athens Korean Language School in 2018. In particular, 2019 marked the 120th anniversary of Bang Jung-hwan’s birth. It is the first time to hold a commemorative event overseas, not at home, in time for its birth date, “Nov. 9,” so there is a special historical feeling. The first event of the “2019 Project to Announce to the World of Bang Jung-hwan” was to visit Andersen’s grave, birthplace and memorial. We dedicated “The Andersen Fairy Tale selected by Bang Jung-hwan” (interpretation Jang Jeung-hee) to Andersen’s tomb and donated it to the Andersen Memorial Hall. The Vienna Korean Language School event consisted largely of three parts. In the first period, 11 children’s literature writers participated in the “Hangeul School Book Class.” From the second period, the ceremony was held in the auditorium to mark the 120th anniversary of Bang Jung-hwan’s birth. The participants performed Bang Jung-hwan’s “토끼의 재판(judgment of rabbit)” The third part held the “Bang Jung-hwan and the Korean Children’s Literature Exhibition 120” at the Hangeul School Gallery. The event has a historical meaning that it was the first time in Europe to celebrate the 120th anniversary of Bang Jung-hwan’s birth. It was also an opportunity to promote the Korean equation to the world. It is necessary to further develop the project so that the spirit of Bang Jung-hwan, a pioneer in the Korean children’s movement and children’s literature, can be passed on to children around the world.

            • ‘개벽청년’ 방정환 연구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및 청년회동경지회 활동을 중심으로-

              박길수 ( Park¸ Kil-su ) 방정환연구소 2021 방정환연구 Vol.6 No.-

              방정환은 한국 근대 아동문학의 선구자, 아동문화운동가, 아동교육가, 소년운동가, 언론·출판인, 천도교청년운동가, 동화구연가, 민족운동가, 독립운동가 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는 인물이다. 이에 따라 방정환에 대한 연구는 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하되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방정환과 천도교와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의 사상적 배경으로는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 해월 최시형 선생의 어린이 존중사상, 의암 손병희의 인내천 사상 등이 주로 거론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의 배경으로 개벽 사상을 언급하는 연구도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동학의 개벽사상이 방정환 활동의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방정환이 전개한 활동, 즉 어린이운동(동화구연과 어린이예술-공연 활동, 강연, 소년운동협회 등 조직 활동), 문학 활동(번안, 창작, 구연) 등이 모두 ‘다시개벽운동’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나는 방정환의 천도교 수련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시절의 수업 내용과, 또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는 토대를 마련하는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 시절의 천도교(청년) 활동, 그리고 어린이 부문 이외의 청년(민족) 운동의 이력을 종합하여, 방정환을 ‘개벽운동가로서의 방정환’ 또는 ‘개벽청년 방정환’이라고 정의하고 그의 활동을 재구성해 보았다. 이는 방정환을 ‘어린이운동가(문학가)’와 ‘천도교 활동가’로 이원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활동이 천도교 활동으로서, 그 핵심 철학이 ‘다시개벽’이었음을 밝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방정환의 운동적 역량 강화에서 ‘김기전’에 국한되었던 영향의 자장을 박달성과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의 강사들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어린이 운동을 비롯한 방정환의 모든 활동이 천도교의 인내천주의의 시대적 표현인 ‘개벽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에서 방정환의 모든 활동을 ‘개벽운동’으로 정의하고 자리매김할 필요성이 있음을 논증했다. 이러한 관점의 연구로서는 이제 막 출발점에 선 셈이다. 이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과제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동력(자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Bang Jung-Hwan is a pioneer of modern Korean children’s literature, a child culture activist, a child educator, a activist for a boy and girl, a media publisher, a Young Men’s Cheondogyoian Association activist, a fairy tale storyteller, a national activist, and an independence activist. Accordingly, research on Bang Jung-Hwan has been conducted not only in literature, but also in various fields.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ng Jung-Hwan and Chondoism also left considerable results. As for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Bang Jung-Hwan’s children’s movement, the Sicheonju(侍天主) idea of Donghak teacher Suun Choi Je-woo, Hae-wol Choi Si-hyeong’s idea of respect for children, and Uiam Sohn Byeong-hee’s idea of Innaecheon are mainly mentioned. In particular, recently, research has been published that mentions the idea of Gaebyeok as the background of the Bang Jung-Hwan Children’s Movement. In this paper, I propose that the Gaebyeok ideology of Donghak should be viewed as an in-depth and essential characteristic of Bang Jung-Hwan’s activities and present the rationale. Activities that Bang Jung-Hwan developed, namely, children’s movements (storytelling, children’s art-performance activities, lectures, organized activities such as the Youth Movement Association) and literary activities (translation, creation, oral presentation) can all be redefined as ‘Dashi Gaebyeok Movement.’ The contents of the classes during the ‘Cheondogyo Youth Doctrine Lecture Club’, where Bang Jung-Hwan’s training in Chondoism was intensive, and the Chondogyo (youth) activities during the ‘Cheondogyo Youth Association Tokyo Branch’, which laid the foundation for full-scale activities, and By synthesizing the history of the youth (national) movement, I defined Bang Jung-Hwan as ‘Bang Jung-Hwan as a Gaebyeok activist’ or ‘Gaebyeok youth Bang Jung-Hwan’ and reconstructed his activities. This is not to divide Bang Jung-Hwan into two categories: ‘Children’s activist (literary writer)’ and ‘Cheondogyo activist’, but revealing that all his activities were Chondogyo activities, and that his core philosophy was ‘Dashi Gaebyeok’. In this process, the field of influence, which had been limited to ‘Kim Ki-Jeon’ in the strengthening of Bang Jung-Hwan’s athletic Cheondogyo Youth Doctrine Lecture Club. In this paper, I argued that all of Bang Jung-Hwan’s activities, including the children’s movement, were based on the ‘gaebyeok ideology’, an expression of time’s of Cheondogyo’s Innaecheonism. And I argued that in that respect, all of Bang Jung-Hwan’s activities need to be defined and positioned as the ‘gaebyeok movement’. In this thesis, I mainly dealt with the period that provided the driving force and foundation for Bang Jung-Hwan’s activities, namely, the period when Bang Jung-Hwan formed his thoughts and ideas, the process of initiation to Cheondoism, the Cheondogyo Youth Doctrine Lecture Club and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Tokyo Branch. Research from this point of view is just beginning. In the process of preparing this thesis,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existence of the task to be further researched and the power (data) to continue the research.

            • 『학생』지에 실린 방정환의 글 텍스트와 학생운동의 방향성 고찰

              장정희 ( Jang Jeung-hee ) 방정환연구소 2021 방정환연구 Vol.6 No.-

              이 글은 1929년 3월 방정환이 창간한 『학생』지의 총 18개호를 대상으로 수록된 방정환의 글 텍스트를 검토하고, 방정환이 지향한 학생운동의 방향을 고찰한 논문이다. 『학생』지에 수록된 ‘권두언’ ‘논단’ ‘숙직실’에 포함된 방정환의 글 텍스트를 정리하였다. 또 논란이 되었던 ‘쌍S’ 필명과 관련하여 『학생』에 발표한 차상찬의 글 「조기 1년」을 주목했다. 이 글에 의하면 차상찬은 자신의 별호를 ‘송작’이라고 하고 있다. 본고는 『별건곤』에 실린 ‘송작’과 ‘쌍S’을 상호 견주어 봄으로써 ‘쌍S’가 차상찬의 필명임을 추적해 보았다. 다음으로 본 연구는 『학생』지에 나타난 방정환의 학생운동 방향과 그 방법을 고찰했다. 첫째, 방정환은 ‘학생들’을 ‘어린이의 지도자’ ‘우리 사회의 준 지도자’로 인식했다. 둘째, 방정환은 ‘하기방학’ 동안 학생들이 ‘조선’ ‘민족의식’의 전파자가 될 수 있도록 『학생』지를 통해 구체적인 실행 항목과 강습회 조직 방법, 한글 보급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셋째, 방정환의 ‘학생운동’은 그의 ‘어린이운동’에 뒤이은 자연스러운 순차적 운동 방향이었다. 총체적으로 본고는 방정환의 학생운동 방향을 3.1혁명 이후 제2의 민족적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총동원령’의 기초 운동으로 해석했다. 본 논의는 『학생』에 수록된 방정환의 글 텍스트를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향후 방정환 작품을 조명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또한 이 논문은 ‘어린이운동 선구자’로만 평가되어 온 방정환이 ‘학생운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전민족적 운동을 조직적으로 실행해 간 점을 밝혔다는 의의가 있다. This article is a study that examines the text of Bang Jung-hwan’s writing in the magazine Student published by Bang Jung-hwan and the direction of the student movement he aims for. First, I investigated the text of Preface, Thesis, and Diligence Room. In particular, I conducted a study on the controversial nickname Double S and noted Cha Sang-chan’s < Wake up early 1Year > published in “Haksaeng(학생)”. In this article, Cha Sang-chan calls his nickname Songjak. I compared the writings of “Songjak(송작)” and “Double S” in “Byulgeongon(별건곤)” and said “Double S” was Cha Sang-chan’s nickname. Next, this study examined the direction and method of student movement of Bang Jung-hwan in the journal “Haksaeng(학생)”. First, Bang Jung-hwan recognized ‘students’ as ‘children’s leaders’ and ‘quasi-leaders of our society’. Second, Bang Jung-hwan appealed for specific implementation items, methods of organizing classes, and the need to distribute Hangeul(한글) through the “Haksaeng(학생)” magazine so that students can become propagators of “Josun(Korea)” and National Consciousness during the “Summer vacation.” Third, Bang jung-hwan’s “student movement” was a natural sequential movement direction following his “children’s movement.” Overall, this paper interpreted Bang jung-hwan’s direction of the student movement as the basic movement of the “total mobilization decree” to prepare for the second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after the March 1st Revolution. This discussion attempted to contribute to illuminating the works of Bang Jeong-hwan in the future by reviewing the text of Bang jung-hwan’s writing in Student overall. In addition, this thesis is meaningful in that it revealed that Bang Jung-hwan, who has only been evaluated as a “pioneer of the children’s movement,” systematically implemented the entire Japanese colonial era national movement through the “student movement.”

            • 소파 방정환의 삶과 동심

              안경식 ( An Gyeong-sik ) 방정환연구소 2019 방정환연구 Vol.2 No.-

              방정환의 어린이사상과 철학은 동심에서부터 시작한다.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의 출발점도 동심이다. 방정환의 문학과 예술, 교육도 동심을 이해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동심에 대한 이해는 방정환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이자 방정환의 사상을 해석하는 관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논문은 방정환의 동심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논문의 제2장에서는 방정환의 마음에 대한 견해를 고찰했다. 방정환은 언제, 어떠한 계기로 마음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그가 남긴 시를 통해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방정환의 동심에 대한 견해를 고찰하였다. 그는 왜 동심에 주목했는지, 동심을 통하여 그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동심과 예술의 관계를 서술하였다. 방정환이 예술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고찰하고, 동심이 아동예술의 본질임을 서술하였다. 결론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동심을 소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의하였다. The children’s thoughts and philosophies of Bang Jung-hwan begin with childhood mind. The starting point of the children’s movement in Bang Jeong-hwan is also childhood mind. The literature, art and education of Bang Jeong-hwan are also difficult to grasp unless they understand childhood mind. Understanding childhood mind is the key to understanding the life of Bang Jeong-hwan and the key to interpreting the ideas of Bang Jeong-hwan. In this point, this paper chose childhood mind of Bang Jung-hwan as the subject of study. In the second chapter of the paper, I examined the views on the mind of Bang Jung-hwan. I examined when and how he became interested in the problems of the mind through a poem left by Bang Jung-hwan. In the third chapter of the paper, I examined the views of Bang Jung-hwan’s childhood mind. I examined why he was interested in childhood mind and what message he was trying to convey through childhood mind. I described the relationship between childhood mind and art in chapter 4. After examining the reasons why Bang Jung-hwan became interested in the art movement, I explained that childhood mind was the essence of children’s art. In conclusion, I discussed the reason why childhood mind should be recalled again in Korean society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 소파 방정환의 일본 유학 시기 활동

              성강현 ( Sung¸ Kang-hyun ) 방정환연구소 2021 방정환연구 Vol.6 No.-

              방정환은 1920년 9월부터 1923년 9월까지 만 3년간 일본에서 활동하였다. 지금까지 방정환의 일본 활동은 도요대학의 유학 생활로 알려졌지만 이는 방정환의 3년간의 일본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방정환은 기본적으로 개벽사 동경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3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본명과 필명으로 21회에 걸쳐 11편의 글을 『개벽』에 발표하였다. 천도교청년회 창립의 중심 멤버였던 방정환은 동경에 도착한 직후부터 천도교 유학생을 모아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를 조직하고 초대 지회장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하숙집인 계림사에서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의 준비모임과 종교행사를 거행하며 1921년 2월부터 동경지회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천도교의 최고기념일인 4월 5일의 천일기념일에 발회식을 가졌다. 동경지회장으로 활동하던 방정환은 1923년 어린이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지회장에서 물러났다. 방정환은 1921년 동경연수영어학교를 다니면서 정식으로 일본의 대학에 입학하려 하였지만 민원식 살해사건으로 20여 일간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여파로 방정환은 도요대학 문화학과의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조선인 유학생들과 친분을 맺고, 이들과 함께하기 방학을 맞아 국내에 순회 강연대를 조직하여 유학생으로서 학문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계몽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방정환은 1922년 3월 30일 도요대학을 자퇴함에 따라서 그의 유학 생활은 1년이었다. 그의 자퇴 이유 역시 어린이 운동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정환은 일본에서 아동문학에 관해 관심을 갖고 당시 일본의 아동문학과 세계의 동화를 공부하였다. 그 결과 1921년 말에 세계의 동화를 선정해 번안한 『사랑의 선물』을 탈고하였고, 1922년 7월 국내에서 발행하였다. 『사랑의 선물』 출판은 방정환이 아동문학가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방정환은 1921년 5월 1일 천도교청년회에서 분립한 천도교소년회를 중심으로 김기전과 함께 어린이운동에 매진하였다. 또 방정환은 일본에 있으면서 색동회를 조직해 어린이 운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였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해 어린이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23년에 들어와서는 『어린이』의 발간과 색동회 활동에 전념했다. 방정환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국내에 정착하였다. 그는 3년간 일본에서 활동했지만 1/3인 12개월 가량은 국내에서 활동하였다. 3년간 방정환은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개벽사 특파원으로, 천도교동경지회의 지회장으로, 천도교소년회의 핵심 지도자로 어린이날과 『어린이』를 창간하고, 색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방정환은 일본 활동 시기를 통해 자신의 활동 방향을 어린이 운동으로 정립하였다는 점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Bang Jung-Hwan was active in Japan for three years from September 1920 to September 1923. Until now, Bang Jung-Hwan’s activities in Japan were known as studying abroad at Toyo University, but this was a part of Bang Jung-Hwan’s three-year life in Japan. Bang Jung-Hwan basically worked as a Tokyo correspondent for Gaebyeoksa. Through his three years of living in Japan, he published 11 articles in ‘Gaebyeok’, 21 times under his real name and pseudonym. Bang Jung-Hwan, who was a central member of the founding of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gathered Chondoist international students right after arriving in Tokyo to organize the Tokyo Branch of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and served as the first branch president. He held preparatory meetings and religious events for the Tokyo Branch of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at his boarding house, Gyerimsa, and conducted the activities of the Tokyo Branch from February 1921. Bang Jung-Hwan resigned from the branch president in 1923 to focus on the children’s movement. In the second half of 1920, while attending the Donggyeong Language Training School, Bang Jung-Hwan tried to formally enter a Japanese university, but was rescued for 20 days due to Min Won-Sik’s murder case and was investigated. In the aftermath of this, Bang Jung-Hwan entered the Department of Culture at Toyo University as an audit student and became close with Korean international students. took the lead As Bang Jung-Hwan dropped out of Toyo University on March 30, 1920, his study abroad life was one year. His reason for dropping out was to devote himself to the children’s movement. Bang jung-hwan was interested in children’s literature in Japan and studied Japanese children’s literature and world fairy tales at the time. As a result, at the end of 1921, he published ‘The Gift of Love’, which was adapted by selecting fairy tales from around the world, and was published in Korea in June 1922. The publication of ‘The Gift of Love’ made Bang Jung-Hwan recognized as a children’s writer. Bang Jung-Hwan devoted himself to the children’s movement together with Kim Ki-Jeon, centering on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which was spun off from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on May 1, 1921. In addition, while in Japan, Bang Jung-Hwan organized the Saekdong Association to foster talents who could support the children’s movement. Bang Jung-Hwan popularized the term children and established Children’s Day, leading the children’s movement. In 1923, he devoted himself to the publication of ‘Children’ and the activities of the Saekdonghoe. Bang Jung-Hwan settled in Korea in the wake of the Great Kwandong Earthquake on September 1, 1923. He was active in Japan for three years, but he was active in Korea for about one-third (12 months). For three years, Bang Jung-Hwan traveled back and forth between Korea and Japan, serving as a correspondent for Gaebyeoksa, as the branch president of the Chondogyo Tokyo branch, and as the core of the Chondogyo Youth Association, he founded Children’s Day and ‘Children’ and worked as a member of the Saekdonghoe. It can be said that Bang Jung-Hwan’s greatest achievement is that he established the direction of his activities as a children’s movement through his Japanese career.

            • 방정환의 정신을 반영한 아동극 연구 -방정환의 동화극 <한네레의 죽음>과 강훈구의 웹연극 <죽었니? 살았니?>를 대상으로-

              손증상 ( Son Jeung-sang ) 방정환연구소 2021 방정환연구 Vol.6 No.-

              이 연구는 방정환의 <한네레의 죽음>(1923)과 강훈구의 <죽었니? 살았니?>(2020)를 통해 아동극에 나타난 방정환의 아동 존중 사상과 아동 삶의 위기에 대해 대처하는 아동극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작품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아동의 ‘죽음’과 ‘현실’을 통해 아동 존중 사상을 다루었고 아동 삶의 질의 위기 상황에서 아동극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네레의 죽음>의 공연대본의 부재는 작품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이지만, 「한네레의 죽음」 동화와 공연이 남긴 흔적을 통해 공연의 구체적 상황을 재구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방정환은 <한네레의 죽음>을 통해 당대의 전근대적 아동관을 비판하면서 한국 근대 아동극이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죽었니? 살았니?>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저소득층 아동이 처한 현실을 다루면서 ‘지금 여기’ 아동 삶의 질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놀 권리를 강조하였고, 웹연극을 통해 새로운 공연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looked at the role of Bang Jung-Hwan’s ideology of respect for children and the role of children’s play dealing with the crisis in children’s lives through Bang Jung-Hwan’s < Death of Hannere >(1923) and Kang Hoon-gu’s < Are you dead? Did you survive? >(2020). Although the two works differ in content and format, they also have one thing in common: they dealt with the idea of respect for children through the children’s ‘death’ and ‘reality’ and contain concerns about the role of children’s plays in a crisis of children’s quality of life. The absence of a performance script for < Death of Hannere > is the biggest challenge in research, but the specific situation of the performance was reconstructed through the fairy tale Death of Hannere and the traces left by the performance and its meaning was investigated. In < Death of Hannere >, Bang Jeong-hwan criticized the pre-modern view of children at the time and suggested the possibility that modern Korean children’s plays could be established. < Are you dead? Did you survive? > deals with the reality of low-income children after the outbreak of COVID-19, emphasizing the right to play as a fundamental solution to the crisis of children’s quality of life ‘here and now’, and suggests the possibility of expanding new performing arts through web plays.

            • 방정환 어린이 운동이 윤동주 삶과 문학에 끼친 영향

              이주영 ( Lee¸ Ju-young ) 방정환연구소 2020 방정환연구 Vol.3 No.-

              윤동주 문학답사를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보았다. 1928년 8월 7일 북간도 명동촌 이북인 선바위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명동기독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찍은 사진이다. 윤동주가 방정환 어린이 운동 영향을 이렇게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정환(1899.11.9.∼1931.7.23.)은 어린이 운동을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동시 진행하였다. 첫째가 소년회 조직과 지원이었다. 소년회는 종교단체에서 만든 것과 사회단체에서 만든 것과 지역사회에서 만든 것이 있었다. 천도교소년회, 기독교소년회, 불교소년회는 종교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두 번째가 소년회 회원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교재 만들기 운동이었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만들어 소년회 회원들에게 ‘좋은 정신’을 기를 수 있는 교육 교재로 활용하였다. 세 번째가 이런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운동가를 찾아내고 키워내고 조직하는 일이었다. 윤동주가 어릴 때 이러한 소년회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그 영향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명동학교는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북간도로 이주한 주민들이 만든 학교였다. 신학문을 가르칠 교사로 서울에서 모셔온 분이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 교육단 실무 담당자였던 정재면이었다. <신민회>는 안창호를 지도자로 이동휘, 양기탁, 김구, 이준, 전덕기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상동교회에서 만든 독립운동 단체였다. 따라서 서울에서 일어난 소년회 운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동촌과 명동학교와 윤동주에 관해 구술하거나 기록한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소년회 활동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이 사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소년회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명동학교 4학년 때 동주는 벌써 서울에서 나오는 소년소녀들을 위한 월간잡지를 구독했다. 한 집에서 태어난 송몽규는 『어린이』, 윤동주는 『아이생활』을 구독했고, 둘이다 읽은 잡지를 동리 아이들이 받아서 읽었다. 5학년이 되면서 동주와 몽규가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소년회에서 직접 잡지를 만드는 활동은 방정환이 어린이 운동을 펼치면서 적극 권장했던 활동이다. 방정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라면서 소년회 회원들에게 시 쓰기를 적극 권유하였고, 그러한 권유로 동시작가로 등단해서 활동한 사람들이 많다. 윤동주도 동시를 꾸준히 쓰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고, 당시 명동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을 무대로 「병아리」(1936.11.)를 발표하고, 「빗자루」(1936.12.), 「오줌싸개 지도」(1937.1.), 「무얼 먹구 사나」(1937.3.), 「거짓부리」(1937.10.) 등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며 동시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방정환 어린이 운동 핵심인 소년회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다. 앞으로 이렇게 작은 흔적들을 찾아서 모으다 보면 더 많은 영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들도 혹시 그런 흔적을 발견하면 알려주기 바란다. 방정환 어린이 운동이 우리 겨레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I saw a picture of Yun Dong-Ju while I was doing a literary survey. The picture was taken on a mountain in Myeong-dong Village, Bukgan-do, on August 7, 1928. The photo marks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foundation of the “Myeongdong Christian Boys’ Association”. I thought Yun Dong-Ju was influenced by the Bang Jung-Hwan Children’s Movement. Bang Jung-Hwan developed three child movements. First, organization of Children society, Second, the making of the textbook for Children, finally, the fostering of the chilndren’s leader. Yun Dong-Ju was a boy band member when he was young. The scene where Yun Dong-ju was found in the group shot of the “Myeongdong Christian Boys’ Association.” Yun Dong-Ju made a magazine called ‘New Myeongdong’(새명동) in Myeong-dong, published a poem in “Catholic Boy”(가톨릭소년) and published a work in “Boy”(소년), which was also made by Yun Seok-Joong. Yun Dong-Ju’s boyhood activities are similar to those led by Bang Jung-Hwan. The core of the Bang Jung-Hwan Children’s Movement was the organization of the Juvenile Society and the voluntary activities of the boys. From now on, we should look for small traces of juvenile activities. We need to continue to investigate how the Bang Jung-Hwan children’s movement influenced our history and how it affected one person.

            • 천도교 개벽사상을 기반으로 한 방정환 어린이교육운동의 현재적 함의

              이정아 ( Lee¸ Jung Ah ) 방정환연구소 2021 방정환연구 Vol.5 No.-

              방정환은 천도교 개벽사상을 기반으로 전통적 아동교육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아동교육관을 제시하였다. 방정환의 ‘새로운 어린이’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에서 연유하였다.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에게 이어져 개벽사상(開闢思想)의 바탕이 되었다. 개벽은 ‘변화한다’는 뜻과 ‘열리다’라는 뜻이다. 개벽사상은 한국 신종교의 핵심이념이며, 전통사회의 사회적 모순과 폐단을 직시하고 새로운 사회적 이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방정환은 개벽정신을 기반으로 어린이가 작은 어른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라고 보았다. 방정환은 ‘몽(蒙)을 바름으로 길러 성인(聖人)에 이르게 한 조선왕조 시대의 교육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식민지 시기에 어린이교육운동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 결정을 하는 주체적인 어린이’를 키우는 일에 몰두하였다. 방정환은 식민지 조선의 미래를 상징하는 개벽적 존재로서 어린이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 지금 방정환의 어린이교육운동은 왜 다시 의미가 있는가? 21세기가 도래한 이후, AI, 제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시대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삶의 변화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특별히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기 위해 방정환이 실천했던 어린이교육운동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현재적 함의는 인간의 본래성 회복, 자기주도적 삶을 사는 주체적인 어린이 강조, 만물생존의 추구에 있다. Bang JungHwan(1899-1931) was an activist of the children’s educational movement in the colonial period of Korea under Imperial Japan. Bang’s understanding of children is fundamentally based on the Donghak(東學) concept of ‘sicheonju(侍天主)’ that everyone has equal rights as human-beings. At that time, children were in a very weak social position under Confucian society and still had a hard time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Bang claimed that children’s position should be equal to the old as a human-being. This new concept of children was based on the thoughts of Gaebyeok(開闢) in Cheondogyo(天道敎). He believed that “the child is regarded as the subject of education”. He developed his own child-centered educational thoughts, emphasizing a well-rounded character education. Bang’s perspective of child-centered education is still important today in three ways; the recovery of an authentic human-beings, the emphasis on an independent life of children and the pursuit to the survivals of all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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