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미술의 존재방식: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김승호 미술사학연구회 2015 美術史學報 Vol.- No.44

          Writing German art history after the World War II cannot help encountering the Nazis problem. The sense of guilty about the war has been a perplex and weighty assignment for the artists of the postwar generation, which once resulted in a debate among art historians during the 1990s on what would be ‘german.’ While the german society has neglected the matter of its past but drifted into a hyperactive state of material prosperity, a philosopher Theodor W. Adorno newly labeled art’s right by saying, “It is an act of barbarism to write a poem after Auschwitz” in his dialectics. Joseph Beuys, an artist who first mentioned Auschwitz, redef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life, between art and history, by switching art’s direction with his objet works. Beuys denied the concept of beauty and merchandise aesthetics to position himself within the narrative of contemporary art history. Mystifying his personal experience with symbolic significances that were added ex post facto, his objet works became the center of international debate in art world. In spite of such a debate, Beuys put his phrase into ceaseless practices to show “anyone can be an artist” and influenced on his following artists: “grey painting” by Gerhardt Richter, “history painting” by Anselm Kiefer, “capitalist realism” by Sigmar Polke, “Mietersolidaritaet” by Jörg Immendorf, and so on. From then on, the existing methods of art have varied in numerous ways. As Beuys’ art had constructed a sort of ‘objet aesthetics’ in spite of a misunderstanding as a ‘methodology of the Nazis,’ his students also acquired a freedom of expression in the society where the memory of Auschwitz is yet to get eliminated but domesticated with capitalism. Like this, Josef Beuys suggests a new direction for contemporary art which has been fallen in a dilemma after Auschwitz, and his objects is offering a new task to reinstate the dialectics of negation within the art history’s writing. 독일의 미술사서술은 나치시대의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미술사학자들은 ‘독일적’인것이 무엇인지 쟁점화하기도 하였지만, 전쟁에 대한 죄책감은 전후에 활동한 작가들에게는 난해하고 무거운 과제였다. 전후시대의 독일 사회가 과거에 대한 방치와 물질적 풍요가 표류하는 동안,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는 부정의 변증법으로 예술이 존재하는 권리를새롭게 정의 했다. 요셉 보이스는 아우슈비츠를 최초로 언급한 작가이자 오브제로 미술의 방향을 전환시켰고, 미술과 삶의 관계 그리고 미술과 역사의 연관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보이스는 아름다움을 부정하고 상품미학을 거부한 오브제로 개인적인 경험을 신비화하기도 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첨가되어 국제적인 논쟁에 중심에 서기도 했다. 요셉 보이스는 미술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 “누구나가 다 예술가이다”를 끊임없이 실천에 옮겼다. 마침내 그의 제자들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회색회화” 그리고 안젤름 키퍼의 “역사회화”, 시그마 폴케의 “자본주의적 사실주의” 그리고 임멘도르프의 “임차인 연대(Mietersolidarität)”등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미술의 존재방식이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요셉 보이스의 미술이 ‘나치의 방법론’으로 오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브제미학은 아우슈비츠이후 미술을 정의하는 방법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보이스의 제자들은 마침내 아우슈비츠의 경험이지워지지 않았음에도 자본주의로 길들여진 사회에서 부정과 표현의 정당성을 변증법적으로 지속할 수있게 된다. 요셉 보이스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딜레마에 빠진 현대미술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고, 그의 오브제는 부정의 변증법을 미술사서술에 복귀시킨다

        • KCI등재
        • KCI등재

          요젭 간트너의 미술사학: ‘선형상(Präfiguration)’이론에 입각한 창조과정의 해명

          민주식 미술사학연구회 2011 美術史學報 Vol.- No.37

          Joseph Gantner was deeply influenced by the teaching and friendship of Heinrich Wölfflin. His work also demonstrates an intellectual lineage to his Basel predecessors Burckhardt and Croce, and the French art historian Henri Focillon. His academic interest was on Renaissance in youth, successively Romanesque art, contemporary abstract or non-objective art, and unfinished art called ‘non finito’. He had an extensive view comprising from Romanesque style to contemporary abstraction, sublating the contrast between both sides. He opened a new horizon in art history through deepening the psychology of representational form as future task of art studies. He investigated the artistic process in order to persue the mental source of artistic phenomenon. He grasped it as a dialectical confronting process between inner formative impulse and outer objects namely nature world. The creative process is taken in charge of personality of artist. The personality controls whole elements of form and content toward a work of art. Accordingly, art historian should comprehend the mental circumstance and the attitude of personality, in order to secure his academic territory. Gantner's standpoint and discernment, based on the theory of pre-figuration, become a new stimulant to understand european art history. We examined his art historical outlook from four points, precisely 1)the personality in art history, 2)unfinished form in modern art, 3)contemporary art in historical context, 4)new bearing of planet style in contemporary art. Besides these formal pre-figuration, he extend his research to the pre-figuration of content side, in detailed analysis on the creative encounter of Rembrandt and Leonardo. The main themes repeated in present aesthetics are enumerated as the analysis of creative process, the significance of artist's personality, the stratum of pre-figuration, the problem of unfinished work, and the history of fame. These are nothing but the basic proposition of Gantner's theory art history. His insights throw lights on the elucidation of the problems such as the kernel theme, sentiment and situational feeling, structure of multi-strata in a work of art. Thus he lights up the limits of classical aesthetics and awaken us to recognize a new creative aesthetics of imagination which will be advent in the future. Gantner endeavors to interpretate the work of art mentally and to inquire the original form in artistic formation. Though his descriptions are simple and intimate, they hold pious feelings for art and noble graces which bring us poetic inspiration. He was a man of eye to find out the history of creating the unlimited exuberant world, like the unseen and the higher. He already mentioned the importance of eastern art which has developed the specific value of the pre-figural and will contribute to the contemporary planet style. His theory contribute not only to the development of art history in general but also to illuminating the eastern art properly. 간트너는 청년시대의 르네상스 연구에 이어 로마네스크 미술, 나아가 현대의 추상 내지 비대상(非對象) 미술, 또 ‘미완성(non finito)’ 작품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로마네스크의 양식화로부터 현대의 추상에 이르는 광대한 전망아래, 이 양자의 심각한 대립을 역사학적으로 지양해가면서, 예술학의 앞으로의 과제가 ‘표상형식(Vorstellungsformen)의 심리학’에 있다고 간파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 그는 미술현상의 심적 원천을 탐구하기 위해 미술창조의 과정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것을 내적인 조형충동과 외적인 세계의 대상 즉 자연과의 변증법적인 대결과정으로서 파악하였다. 이 창조과정의 담당자는 미술가의 ‘인격성’ 그 자체이다. 인격성은 형식의 측에서도 내용의 측에서도 미술작품으로 통하는 모든 요소의 지배자이다. 모든 내부의 것과 외부의 것도 이로부터 그 형태를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 인격성의 심적 상황과 인간적 태도에 대한 명석한 인식을 가져야만 미술사학의 영역을 제대로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선형상(先形象, Präfiguration)’ 이론에 입각한 간트너의 관점과 통찰은 유럽 미술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참신한 자극원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미술사학적 세계상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그의 미술사관의 요체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 미술사에서의 인격성 2. 근세미술에서의 미완성 형식 3. 역사적 맥락에서 본 현대미술 4. 현대미술에서의 지구적 양식의 발현, 등이다. 이상은 주로 형식적 선형상의 문제로서 간트너가 추구한 고찰이다. 이러한 고찰은 나아가 렘브란트와 레오나르도의 ‘창조적 만남’을 둘러싼 정밀한 분석을 통하여, 다시금 내용적 선형상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창견이 그 중요한 한쪽 면에서 보완되어 전체로서 발전한다. 미학이론에서도 되풀이되는 탐구주제는 창조과정의 분석, 그것을 담당하는 미술가의 인격성의 의의, 거기에 성립하는 선형상의 층, 그것을 고찰할 수 있는 생물학적 소재와 충족의 원리, 미완성의 문제와 비대상 내지 무대상의 문제, 명성의 역사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다름 아닌 간트너 미술사학의 근본명제이다. 그것은 동시에 양식 성립의 내면을 해명하고, 미학적 범주로서의 양식 개념의 범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미술작품의 주제의 핵, 기분 내지 상황감정, 다층적 구조와 같은 문제의 해명에도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클래식한 미학의 한계를 조명하고, 양식 미학의 범위를 넘어서서 실로 앞으로 도래할 미학의 문을 두드리며,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미학을 일깨운다. 간트너의 노력은 모름지기 미술작품의 정신적 해석, 즉 미술적 형성에서의 근원 형식들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그러한 서술은 소박하고 친근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그 가운데는 미술에 대한 경건한 심정과, 시적영감을 가져다주는 높은 격조가 있다. 그 역시 한사람의 탁월한 ‘눈의 인간’이었다. 간트너는 광대한 전망아래 표상형식 그 자체의 무한히 풍부한 실현의 역사를 찾아냈다. 실로 이 ‘불가시적인 것’, ‘더 한층 높은 것’ 그 자체의 창조의 역사를 찾아낸 것이다. 이미 그는 선형상적인 것의 특수한 가치를 발전시켜온 동양, 특히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관해 언급하고, 그것이 현대의 지구적(地球的) 양식의 앞길에 행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지...

        • KCI등재

          청계 정종여의 해방기 작품과 활동: 민족미술론의 수용과 실천

          신수경 미술사학연구회 2016 美術史學報 Vol.- No.47

          Many pervious studies defined the “liberation period” from the liberation in 1945 to the establishment of the single government of South and North Korea in 1948 as a time of political turbulence and conflict, and an absent period of art. However, this thesis attempts to determine this period as the time in history where the first establishment of a new nation and independent art occurred after the end of the colonization by analyzing literature written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which was seen as relevant to the theory of national art, and by examining the works of Jeong Jong Yeo(鄭鍾汝, 1914~1984) who moved from South to North Korea in the respect of ‘the enlightenment through art and popularization movement’ and ‘the acceptance of Yoon Hee-soon’s realistic esthetic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the art organizations removed the vestiges of the colonization and Japan, and contended the successions of the traditional art in order to recover the lost identity of national art. However, each organization’s thought on characteristics of nation art and traditional art had great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political postures. Joseon Visual Arts Alliance and Joseon Arts Alliance for where Jeong Jong Yeo worked especially put importance on the enlightenment and popularization of art, and the cover-page illustration for a magazine by Jeong Jong Yeo thoroughly showed his philosophy of enlightenment as an educator. Moreover, Yoon Hee-soon’s realistic aesthetic which says “it has to be a new realism which can boldly stare at the reality” was projected in his drawings of the phases of the liberation time, a time which captured people at the speeches and concert halls, as well as portrait and landscape paintings. Meanwhile, although <KiChukDo(己丑圖)> received great attention by critics at that time, it has not been discussed very much, due to the fact that the art which was made as a reaction of the liberation period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The existing version of <KiChukDo(己丑圖)> in black and white has the similar images, compositions and subjects with the representative work of Joseonhwa(painting of Joseon), <the front line support of Goseong’s people>(1958), proves how the liberation art continued to the early art of North Korea. The significance of this thesis is finding how liberation art which had actively continued for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art has connection with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art world of North Korea after the division of territories.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부터 1948년 남북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이른바 해방기 미술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공백기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 건설과 민족미술 수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논의와 모색이 해방기에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해방기에 쓰인 민족미술론에 대한 문헌을 분석하고, 월북화가 정종여(鄭鍾汝, 1914~1984)의 작품과 활동을 고찰하였다. 해방 직후 미술단체들은 민족미술의 수립을 위해 식민지 잔재와 일본색 제거, 전통미술의 계승을 공통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민족미술’의 성격 규정부터 전통미술에 대한 인식, 민족 고유색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차이가 많았다. 이 글에서는 정종여의 작품을 조선조형예술동맹과 조선미술동맹의 위원장으로 중도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던 윤희순의 미술론과 연결시켜 살펴보았다. 정종여가 제작한 잡지 표지화에는 이 두 단체에서 중시한 미술의 대중화론과 교육자로서의 계몽성이 두드러졌다. 또한 해방기의 시대상이 담긴 소묘를 비롯해 초상화와 산수화에는 “현실을 대담하게 응시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이어야 한다”는 윤희순의 사실주의 미학이 작동하고 있었다. 한편 <기축도(己丑圖)>는 당시 평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으나 작품이 전하지 않는데다 해방기 미술에 대한 무관심으로 그동안 논의된 적이 없었다. 흑백도판으로만 전해지는 <기축도>와 조선화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1958)의 유사한 도상, 화면구성, 주제는 해방기 미술이 북한 초기미술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민족미술 수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정종여의 해방기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에서 분단 이후 북한미술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맥락을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 KCI등재

          1980년대 민중미술 그룹 ‘두렁’의 작업에 나타난 설화, 민속, 샤먼의 의미

          강인혜 미술사학연구회 2019 美術史學報 Vol.- No.52

          This article focuses on Dureong, one of the 1980s’ Minjung art movement groups, with a special interests in traditional and folkloric elements represented in their works; and then attempts to examine their Shamanistic aspects. Dureong, compared to other Minjung art groups, had a particular interests the traditional arts and folk customs, specifically under the influence of Korean traditional mask dance, Donghak, and Buddhist painting. Yet, Dureong’s attention paid to traditions did not come from nationalistic cause, but because folk art had been directly associated with life of the people. In particular, Dureong’s interests mainly lay in the fact that the folk art and culture took the form Total Art whose form was established before it became specialized and divided into music, literature and visual arts during the modern times. This essay particularly explores the ways in which Dureong adopted specific elements from such traditions as Mask dance, Donghak and Buddhist painting, and then developed further them into an art form that was appropriate for life of mass In addition, given the fact that these traditions were mostly based upon Shamanistic practices, this essay further aims to discuss various functions of Shamanist practices and then attempts to explore how they played certain role in building people’s communities. 본 논문은 1980년대 민중미술 미술 동인 중 하나였던 ‘두렁’의 작품에 표상된 전통과 민속에 대해 살펴 보고, 이들이 표상한 민속, 혹은 설화적 요소와 그 이면의 무속성 혹은 샤먼적 요소를 해석하고자 했다. 민중미술 그룹 중에서도 제2세대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두렁’은 여타 민중미술 그룹과 비교할 때, 전통과 민속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그룹이었으며 특히 탈춤, 동학, 그리고 불화의 영향이 지대했다. 그렇지만, 두렁이 관심 가졌던 민속미술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이기에 부흥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민속미술이 실제 민중의 삶과 직접 연관된 문화 형태라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문학, 음악, 춤, 그림 등과 같은 각각의 장르로 분화되기 이전의 총체 예술이면서 살아있는 예술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탈춤, 굿, 민화 등의 예술 에 관심가졌다. 본고에서는 탈춤, 불화, 동학 등의 두렁이 채용한 전통적 요소를 통해 어떻게 민중의 삶 에 적합한 방식의 민중미술로 발전시켰는지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두렁과 민중문화 운동이 부흥시키 고자 했던 전통예술은 모두 굿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속과 샤머니즘이 가지고 있던 기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샤머니즘적 특징이 어떻게 민중의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기능 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 KCI등재

          아시아 여성화가의 ‘여성상’ - 천경자와 女子美術學校 졸업생을 축으로

          김정선 미술사학연구회 2016 美術史學報 Vol.- No.S

          Chun Kyung-ja (1924–2015), often referred to as the painter of “Dream and 情恨” and “Flower and Fantasy,” has left numerous imageries of women that are as beautiful as the words used to describe them. This study, straying from the traditionally followed autobiographical perspective, is an attempt to assess the imageries of women that have been actively created since the 1970s in a larger framework of Asia’s female painters who established their territory within an androcentric society of painters. Specifically, by placing the focus on Tokyo’s Joshibi (女子美術學校), at which Chun Kyung-ja had her start in Japanese painting, this study considers Japanese painter Kataoka Tamako (片岡球子, 1905–2008) and Taiwanese painter Chen Chin (陳進, 1907–1998) as the subjects of discussion and examines the topic, style, and other aspects of their paintings. Founded in 1901, Joshibi was perhaps the only female art institute at the time, and many students from Japan and elsewhere in Asia grew as artists through this institution. Despite the differences in nationality, date of birth, years of activity, etc., the works of Kataoka, Chen Chin, and Chun Kyung-ja, all of whom studied Japanese painting, share the commonality. The homogeneity evident among the works of female painters, however, dissipated during the 1950s amid rapid changes in the society of painters. Chun Kyung-ja also sought a change from a more realistic to a semi-abstract style, and she produced, after the 1970s, color paintings that exhibit the theme of woman. Although the development of Chun Kyung-ja’s painting career, which is illustrated with a controversy regarding the Japanese-influenced style in color paintings, separation of the figurative and the non-figurative, etc., does not seem irrelevant from the trends of the society of painters, it also speaks for the adversity she encountered in her attempt to establish her own territory within an androcentric society through color paintings with figurativeness. ‘꿈과 情恨’, ‘꽃과 환상’의 화가로 불리는 천경자(1924~2015)는 수식어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성상을 많이 남겼다. 본 연구는 1970년대 이후 활발히 제작되는 이들 여성상을 기존의 자전적 관점에서 벗어나 근대기 남성중심 화단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간 ‘아시아’의 ‘여성’화가라는 큰 틀 속에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구체적으로는 천경자가 일본화를 시작했던 동경의 여자미술학교에 초점을 맞춰, 동교 출신의 일본인 화가 가타오카 다마고(片岡球子, 1905~2008)와 대만 화가 천진(陳進, 1907~1998)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작품의 주제 및 화풍 등을 검토하고자 한다. 1901년 개교한 여자미술학교는 당시 거의 유일한 여성 전문 미술교육 기관으로 일본은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다수의 유학생들이 이곳을 통해 미술가로 성장했다. 일본화과에서 수학한 가타오카, 천진, 천경자의 작품은 국적, 출생년도, 활동시기 등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여성, 꽃, 아이 등 주변의 일상적인 주제를, 배경을 생략한 간결한 구도 속에서 세밀한 필선과 색면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러한 여성 화가들의 작품에 보이는 균질성은 그러나, 戰後 급속한 화단의 변화 속에서 해체되어 갔다. 천경자 역시 미술학교 시절의 사실적인 화풍에서 반추상으로, 1970년대 이후에는 여성을 주제로 한 구상의 채색화를 제작하며 화풍 전환을 모색했다. 채색화의 왜색 논란, 구상과 비구상 분리 등 당시 화단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천경자 화업의 전개는 그러나 한편으로 남성 주류 화단에서 구상성 있는 채색화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 했던 그의 화단 역경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1998년 92세로 천진이, 2008년 103세로 가타오카가, 그리고 2015년 91세의 일기로 천경자가 생을 마감했다. 여성이 “화가로서 화단의 일원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시절, 여자미술학교에서 출발해 여류 일본화가로, 채색화가로, 동양화가로 살아간 이들의 궤적이야말로 아시아 여성 화가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한국미술의 동시대성과 비평담론

          김복기 미술사학연구회 2013 美術史學報 Vol.- No.41

          This article is aimed at questioning ‘contemporariness’ of Korean art, tracing the current issues of art criticism which deals with the recent tendencies of Korean artworks and artists. First of all, I present three discourses of the contemporary art criticism to analyze Korean contemporary art scene. The discourses has been suggested in Europe, America and Asia respectively in 2009. First argument is about the concept of ‘Altermodern’ that Nicolas Bourriaud, a critic and curator, advocated in 2009 London Tate Triennial. He declares the re-composition of modernity, which he called ‘Altermodern’, based on a thoroughly globalized politics, economics and culture(he sees the diversity of the global culture as an Archipelago). The second one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the face of art sprang from the ‘precarious situation’ which an art critic Hal Foster suggested in 2009, when the first decade of 21st century has ended. he had ended his new decade. The third one is based on ‘The Asian Discourse’, an international symposium report called 『Count 10: Before You Say Asia-Asian Art after Postmodernism』 published by the Japan Foundation in 2009. These three discourses are commonly throwing a new question to contemporary art exceeding discussions of post modernism. Nicolas Bourriaud is declaring ‘the death of postmodernism’ and ‘the new modernity’ at the same time, while Hal Foster is pointing out that the theoretical frame of neo-avant-garde and post modernism, which once dominated the artworks and artistic theories, has been forced into a corner in this precarious age. Moreover, for Asian art, it is necessary to embraces the problem of the local identity as it aims at the centralization of the surroundings against western contemporary art with the idea of ‘post-post-modern’ which focuses on the spatial diffusion and change. I roughly divide the contemporary art into three types based on the three arguments, actively accepting the concept of the ‘miscellaneous form of art’(which is similar to Nicolas Bourriaud’s Archipelago) suggested by the Japanese art critic Midori Matsui. The miscellaneous form of art is summarized into (1)hypertext or time-based art (2)humanized conceptual art (3)Hybridity or non-western art. Korean contemporary art is described in this paper within these critical arguments and the ‘miscellaneous form.’These are the ‘imperfect map’ which put more weight on the ‘contemporariness’ with the western art. Therefore, the questions related to non-western concepts, eastern concepts, tradition, local, identity or differences that are competing with the western concepts should be followed. It is why the discourses of post-colonialism or Asian art needs to be regarded as a valid theory in Korean contemporariness and critical discourse. At this point, I am searching its conclusion in the concept of ‘andromodernity’ which was suggested by Okwui Enwezor. If Korean contemporary art is ‘hybrid’ or ‘andro’, the miscellaneous forest should be open against the unilinear pattern. 이 글은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에 질문을 던지고, 그 동시대성을 관통하는 비평의 쟁점을 미술 ‘현장’의 작가와 작품 경향을 통해 추적하는 것이 목적이다. 필자는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를 분석하기 위해 먼저 동시대 컨템포러리 아트의 비평 담론 세 가지를 논거로 삼는다. 이 담론은 2009년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각각 제기되었다. 첫째, 비평가 겸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2009년 런던에서 열린 테이트트리엔날레에서 제창했던 ‘얼터모던(Altermodern)’의 개념이다. 그는 t철저하게 글로벌화된 오늘의 정치 경제 문화(그는 세계 문화의 다중성을 ‘아르키펠라고’로 파악한다)의 토대 위에서 모더니티의 재구성, 얼터모던을 선언한다. 둘째, 미술평론가 할 포스터가 새로운 10년을 마감하는 2009년에 주장했던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정한(precarious) 상황’에서 야기된 예술의 얼굴이다. 셋째, ‘아시아 담론’이다. 2009년 일본 국제교류기금이 출간했던 『Count 10: Before You Say Asia-Asian Art after Postmodernism』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의 보고서다. 이 세 가지 담론은 공통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뛰어넘어 컨템포러리 아트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니콜라 부리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죽음’과 새로운 모더니티를 선언하고 있으며, 할 포스트는 불완전한(precarious) 시대 상황에서 한때 작품과 이론을 좌우했던 네오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틀은 궁지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또한 아시아미술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간적 확산과 변용에 주목하는 ‘포스트-포스트모던’을 내세워 서구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응하는 ‘주변의 중심화’를 지향하면서도 지역 정체성의 문제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필자는 이 세 가지 담론을 반영하여 컨템포러리 아트의 지형을 크게 세 가지로 그린다. 여기에서 일본의 미술평론가 마츠이 미도리가 제기한 ‘잡목림적 군락’(니콜라 부리오의 아르키펠라고와 유사한 형태다)의 개념을 적극 수용한다. 그 군락을 (1)하이퍼텍스트, 시간특정적 미술 (2)인간화하는 컨셉추얼 아트 (3)하이브리디티, 비서구권 미술 등으로 요약했다. 이러한 비평 담론과 ‘잡목림적 군락’ 의 지형 속에서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현상을 일곱가지의 군락과 잡목림으로 분석한다. 이상의 지형도는 서구 미술과의 ‘동시대성’에 무게 중심을 둔 대단히 ‘불완전한 지도’다. 따라서 서구와의 길항 관계인 비서구, 동양, 전통, 지역, 정체성, 차이 등과 얽혀 있는 가치 있는 질문들이 마땅히 뒤따라야 것이다. 한국미술의 동시대성과 비평 담론에서 탈식민주의나 아시아미술 담론을 타산지석의 유효한 이론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오쿠이 엔위저가 주장한 ‘안드로모더니티(andromodernity)’에서 결론을 찾는다.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가 ‘하이브리드 형’ 혹은 ‘안드로 형’이라면, 그 잡목림의 숲은 수직적 범주화, 단선적 양식화에 저항하며 늘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관계망을 통한 여성주의 작업 동력의 회복 과정: 윤석남, 박영숙, 정정엽을 중심으로

          박윤조 미술사학연구회 2020 美術史學報 Vol.- No.55

          In the history of Korean art, the work activities of female artists are increasing. There are various factors in this pattern of change, but this study analyzed the long-standing forces in social relationships. The production of works seems to be limited to the creative areas of the artist’s individual, but long-term work activities take place amid multi-layered relationships in the art world. In particular, the artist’s personal network is an important driver of ongoing work activities. This study noted that the work of art, led by Yoon Suknam(1939- ), Park Youngsook(1941- ), and Jeong Jeongyeop(1962- ), who are considered the first generation of feminist art, has been carried out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a solidarity of artists beyond the independent work of individuals. They formed a coalition in two ways. One is the ‘simultaneous artist community’ through studio sharing or research gatherings, and the other is the ‘historical community’ solidarity through women in their works. Their relationship has been based on the discovery and sisterhood of femininism, and is recorded in physical spaces such as the studio and each other’s works. Their relationship has served as a stepping stone and a catalyst to building a direct network of relationships with society. They have been pushing a series of projects as comrades based on sisterhood, and their work has been the aggregate of such relationships. 한국 미술사에서 여성작가들의 작업 활동은 점차 증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양상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본 연구는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온 동력들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분석해 보았다. 작품 제작은 작가 개인의 창작 영역에 국한된 것으로 보이나, 오랜 기간의 작업 활동은 미술계의 다층적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특히 작가들의 인적 관계망은 지속적인 작업 활동에 중요한 동력이 된다. 본 연구는 여성주의 미술의 1세대로 평가받고 있는 윤석남(1939- ), 박영숙(1941- ), 그리고 정정엽(1962- )을 중심으로 미술작업이 한 개인의 독자적인 작품 활동 너머의 작가연대 구축을 통해 이뤄져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녀들은 두 가지의 방법으로 연대를 구축했다. 하나는 작업실 공유나 연구모임을 통한 ‘동시대 작가 공동체’이고, 또 하나는 작품 속 여성들을 통한 ‘역사적 공동체’ 연대다. 그들의 관계는 민중미술, 여성미술연구회, 또 하나의 문화, 《우리 봇물을 트자》, 제3공간 등을 통해 여성성의 발견과 자매애를 바탕으로 전개되어 왔고, 작업실과 같은 물리적 공간과 서로의 작품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관계는 사회와 직접적인 관계망을 구축하는 디딤돌로, 기폭제로 작용해 왔다. 그들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동료로서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추진해 왔으며, 그들의 작품은 그러한 관계들의 총체였다.

        • KCI등재

          한국 근대 역사인물화

          박계리 미술사학연구회 2006 美術史學報 Vol.- No.26

          A Study on Historical Portrait Paintings of Korean Modern Times 본 연구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역사인물화를 분석해봄으로써 이 격동의 역사 속에서 역사인물화들을 주로 그렸던 대표적 화가는 누구이며, 이들을 통해 그려진 역사인물화들이 각 시기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 연구이다. 또한 각 시기별 또는 작가별 역사인물화의 특징을 분석하여 이러한 특징이 각 시대의 미술양식과 어떠한 조응 및 영향 관계를 지니고 있었는지 파악해봄으로써 한국근대기 역사인물화의 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한일합방 이전시기는 남겨진 역사인물화 작품이 많지 않아서 인쇄미술을 통해 살펴보았다. 특히 당시 교과서로 사용되던 『幼年必讀』에 수록된 역사인물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일제강점기 전반기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역사인물화를 대표하는 최우석의 역사인물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 후반기는 당대 ‘역사화가’로 불리워졌던 이여성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유년필독』의 역사인물화는, 안중식과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이라 판단해볼 수 있었다. 『유년필독』의 역사인물화는 실력양성과 국권수호의 명료한 목적의식과 붓과 펜의 혼용과 같은 東西新舊양식의 절충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도서기구본신참의 구호로 집약되는 광무연간의 시대 이념과 맥락을 같이하는 개화기 양식의 대표적 예임을 알 수 있었다.조선미술전람회에서 명성을 떨친 최우석의 역사인물화는 3폭구도형식과 장식성, 주제와 보조주제의 상호대비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전통 초상화와는 구별되는 근대적 초상의 한 예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뿌리가 일본 역사화 속에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점은 그의 역사인물화가, 일본 神道미술의 전통 속에 국내 역사인물들을 포함시켜냄으로써 일선융화를 표상하고 있다는 해석의 근거가 되었다. 이여성은 역사풍속화 작업을 통한 역사인물화 작업을 시도하면서. 특정한 역사적 시대와 취재를 정확하게 고증해내려는 근대적 실증주의적 태도를 역사인물화에 확고히 자리매김시켰다. 이를 토대로 당시 보편적 양식이었던 서양화와 일본화적 요소도 필요하다면 수용하여 근대적 신조선화를 창출하려 했음을 파악하였다.이와 같이 한국근대기 역사인물화는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격동의 세계사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그 중 특정 역사인물을 부활시켜내었다. 어떠한 역사적 인물이 선택되었는가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양식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각 역사인물화가 각 시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의미로 대중과 소통되었는지 파악해보았다. 이를 토대로 당대 미술양식과 조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미술사적 전통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유영국의 회화: 동양의 예술관을 통한 서양미술의 수용

          정하윤 미술사학연구회 2012 美術史學報 Vol.- No.39

          This thesis considers the work of Yoo Young-kuk (1916-2002), an abstract painter who is best remembered for his mountain paintings, and one who had a pivotal role in the modernization of Korean art. Although Yoo was well-respected during his life, there is neither enough research nor sufficient analysis concerning his life and work. This study examines his art in its sociopolitical context. Instead of regarding Yoo Young-kuk as an isolated artist from the society, I will analyze his works in the context of its time period—Yoo brought change into his works in the flow of Korean art that actively engaged the international art world and the sociopolitical situation of Korea. Also, rather than considering Yoo’s work through discourses of dichotomy, this paper argues for its multicultural aspects—his art represents a fusion of Eastern and Western art. Concepts which are regarded as inevitably opposite in the West coexist in Yoo’s work.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evelopment of Korean art from the 1930s to the 1950s, a period influential in the formation of Yoo’s painting style. Having thus been introduced in their artistic/historical context, Yoo’s paintings are then analyzed according to four different time periods:1947-1958; 1959-1967; 1967-1977; and 1978-1999. Although Yoo Young-kuk was extensively influenced by Western culture,he embraced Western modern art subjectively, and fused it with Korean aesthetics. This study sheds light on Yoo’s work from comprehensive and diverse angles, elucidating not only his interaction with society but also his process of incorporating contrasting elements in his work. 본 논문은 유영국(劉永國, 1916-2002)의 회화에 나타난 동·서양 미술의 관계를 시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회화의 1세대로 1930년대의 일본 유학시기부터 약 60년에 걸쳐 추상작품을 꾸준히 제작하여, 한국 추상회화의 시작과 그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아 왔다. 그의 작업이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며 기존의 연구는 형식적인 분석에 그침으로써 그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본고는 유영국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동ㆍ서양 문화의 교류 현상을 외부 맥락과의 연관성 안에서 살펴봄으로써 그의 작업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유영국의 작업의 형성배경이 되었던 1930년대부터 1950년대의 한국 미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 후, 그의 회화를 이와 관련시켜 1947-1958년, 1959-1967년, 1967-1977년, 그리고 1978-1999년의 네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작품 활동 기간 동안 유영국은 한국 미술의 흐름에 편승하여 작업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의 회화 전반에는 서양에서는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추상과 구상, 이성과 감성과 같은 개념이 공존하는 특성을 보이며, 이러한 통합성은 동양의 예술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유영국은 국내외의 미술계와의 교류 속에서 서양의 조형 어법을 동양의 예술관을 기반으로 하여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본 논문은 서양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된 유영국의 작업 안에서 동ㆍ서양 미술이 서로 융합하여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는 유영국이 외래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서 서구의 미술을 동양의 전통 미술과 결합시킨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영국의 작품은 예술가 개인의 삶의 체험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된 개인의 독특한 양식이라는 데에서 그 미술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의 과정과 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인 유영국의 작품을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는 데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