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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의 소비

        박소현 미술사학연구회 2012 美術史學報 Vol.- No.38

        This literature was aimed to understand how art market and art history had been related each other in the era of the crisis of art criticism, and how the expansion of art market had influenced on the knowledge or discourse about art. Especially speaking, I intended to problematize the social understandings of art history and the pressures on the discipline of art history,focusing on the mass consumption of art history. Recently under the global economic crisis, on the one hand, the solidarity between the investment value of art market and art historical value became stronger. But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spread quickly the romanticized and mythical point of view that alienated the value or discourses of art history and associated the investment value of art market with the minds or tastes of investors. I think that these two aspects are not an antipathy to each other but give us the clue that we can understand the consumption of art history in our times. In this paper, I tried to reveal that art market have consumed great artists within the art history since the 1980s, have reproduced the mass tastes of art history through blockbuster exhibitions, and consequently created the hostilities toward professional knowledge of art history and the mass demands for 'easy art histories.' Under those situations, not money but heart(or mind) emerged as an important linkage to charactarize the mass consumption of art and art history. Consequently, I examined the position of the discipline of art history in our times by centering on the aspects that the economics of heart(or mind) became a forceful social pressure to move the knowledge of art history, mass tastes for art, and art market. 이 논문은 미술비평의 위기가 거론되어온 이 시대에 미술시장과 미술사라는 지식 또는 학문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미술시장의 확산이 미술에 관한 지식과 언술에도 구조변동을 초래했다면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미술사의 대중적 소비라는 차원에 집중하여 미술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로부터 미술사라는 학제에 가해지는 압력과 기대지평이 어떠한 것인지를 부분적으로라도 문제화하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더욱 강력한 연대를 과시하는 미술시장의 투자가치와 미술사적 가치가 한편에 존재한다면, 미술사적 가치나 담론을 소외시키며 투자자 혹은 잠재적 투자자의 마음 또는 취향과 미술시장의 투자가치를 직접 결부시키는 지극히 낭만화 되고 신비화된 관점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현상은 과연 만날 수 없는 상극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미술사의 소비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본 논문은 1980년대 이후 국내외 미술시장이 구조적으로 미술사적 거장을 소비하고,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서 대중적인 미술사 취향을 재생산하며, 그로부터 궁극적으로 미술사라는 전문적인 앎 또는 지식에 대한 적대감과 ‘쉬운 미술사’에 대한 대중적 수요를 창출해낸 일련의 연쇄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 속에서 미술품과 미술사의 대중적 소비를 특징짓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돈이나 자본이 아닌 ‘마음’이 부상하게 된 역사적 경위를 분석하고, 이러한 ‘마음’의 경제학이 미술사적 지식과 대중적 취향, 나아가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인이 되고 있는 현상을 통해 현재 미술사라는 학문이 처한 위치를 진단해 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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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 서적 대중화의 명(明)과 암(暗): 어린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서술을 중심으로

        김소연 미술사학연구회 2016 美術史學報 Vol.- No.47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check the tendency of children’s book about art, especially about Korean art history. To understand the flow and current status in a chronological order, we can pay attention beforehand to biographies of artists such as Kim, Hongdo and Sin, Saimdang. Building on these biographies, publishing translated art history books for children from overseas accelerated the publication about Korean art history for children around 1995. By the 2000’s, more professional art books for children were published as a series, and it gradually expanded to various genres and forms. Meanwhile, characteristics of children’s art history books can be examined as a correlation of curriculum, with awareness on modern trend of interdisciplinary approach to other subjects including mathematics. Despite of these diverse forms, presentation of Korean art is concentrated on only a certain genre, while the attention of marketplace is focused on genre paintings, which can be academically related with the subject of social studies and history. It may be possible for children to eventually end up identifying Korean traditional art with genre paintings that are relatively exposed more frequently. Thus, this thesis attempts to understand and meticulously approach the current publishing circumstances focusing on narrative about Kim, Hongdo, a single subject which has drawn attention of most art historic narrative, as the main case. This process forewarns of the bright side of art history popularization boom that bought drastic increase in publication, and the shadow behind it – that of inappropriate historical research that blurs the line between history and fiction. 본 연구의 목적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이론 도서, 내용적으로는 한국 미술사를 다루고 있는 서적의 경향성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시대순으로 그 흐름과 현황을 이해해보자면, 위인전으로 김홍도, 신사임당과 같은 예술가들이 등장했던 점에 먼저 주목해 볼 수 있다. 해외시장의 어린이 미술도서가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1995년을 전후하여 어린이를 위한 한국미술의 서술이 시작되었음이 관찰된다. 2000년대에 이르면 보다 전문성을 띤 어린이 미술도서가 시리즈로 다수 출간되며, 점차 다양한 장르와 형식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편, 어린이 미술사 도서는 교육과정과의 연계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살펴볼 수도 있는데, 미술 실기, 역사는 물론 수학과 같은 학문과의 학제적 접근이라는 최신 경향이 주목되기도 한다. 다만 이처럼 다양화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한국미술의 서술은 일부 장르에 집중되었고, 시장의 관심은 사회, 역사과목과의 연계가 가능한 풍속화에 편중되고 있다. 실제 어린이들은 점차 전통미술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었던 회화, 혹은 풍속화와 동일시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단연 가장 많은 미술사적 서술이 집중된 단일 주제, 김홍도 서술의 예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의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상세한 접근을 시도해 본다. 이 과정은 출간량에 있어서는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 미술사 대중화 열풍이라는 밝은 면[明] 뒤에, 역사와 창작의 경계를 흐리는 부적절한 고증이라는 그늘[暗]을 예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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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 연구와 성과: 강서대묘와 쌍영총을 중심으로

        홍미숙 미술사학연구회 2019 美術史學報 Vol.- No.52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ndreas Eckardt(1884-1974), along with Japanese researchers like Sekino Tadashi(1867-1935) had excavated the ancient tombs of Goguryeo. Eckardt, not only was a member of this excavation processes, but led the entire site carrying managerial roles. He shared his expertise on modern European excavation methods. What is more important from the finding in this study is that Eckardt’s watercolor painting had been included in Volume 2 of Joseon Historical Remains Book. After the excavation, he published the article on the Great Tomb of Gangseo in 1926 titled, “Das große Königsgrab Yangwon’s: Ein Beitrag zur koreanischen Kunstgeschichte,” in a German academic journal, Ostasiatische Zeitschrif. In 1929, Eckardt published world’s first book on the Korean art history in Germany under the title, 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and the U.K. as History of Korean Art. Eckardt claimed that the murals of the Great Tomb of Gangseo stood much different from the Chinese tomb murals. He added that the ceilings of Goguryeo tombs show some similar qualities from the art of Central Asia. As from the studies done today, it is evident these claims of Eckardt were accurate. This Eckardt’s view can be considered as formidable to the view of Sekino that the tombs were influenced solely by the Chinese.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when studies on the Korean art was seldomly done and difficult to find in Europe, Eckardt was one of the first scholars to introduce the Korean art to the European. And his works continues to be recognized by the reviews of fellow scholars from his time to latter days. As aforementioned, Eckardt and Sekino accomplished notable academic findings in the excavation of Goguryeo tombs, but the conclusions of the two scholars vary. Thus far, any research done by the Korean academia championed the conclusions and the studies done by Sekino and little was done on the works of Eckardt. From this study, it was shown that the importance of Eckardt’s views are as great as any other. With the findings shown in this thesis, future analysis of Eckardt’s research on Goguryeo tombs and more accurate evaluation of Andreas Eckardt as a Korean art historian should sufficiently follow.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는 20세기 초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1867-1935)를 위시한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다. 그는 발굴 현장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발굴위원회 책임자 자격으로 고분 발굴 현장을 주도하였고 고분 복원에 대해 권고도 했다. 유럽에서 습득한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법과 동시대 중앙아시아를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게 된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일본 학자들에게 조언하는 역할도 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에카르트가 발굴 현장에서 그린 수채화 그림이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을 이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힌 것에 있다. 에카르트는 고분 발굴 연구 성과로 1926년 강서대묘를 조명한 논문 「위대한 양원왕의 묘」를 독일 동 아시아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이 논문은 강서대묘의 벽화를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논문이다. 1929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국미술사 통사인 『조선미술사』를 독일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판하였고 저서에는 고구려 고분의 연구 성과도 잘 보여준다. 현재까지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에 대한 연구가 간과되었던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국미술사 학계에서 제기되는 의문점들과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우선 에카르트의 고고학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이 연구를 통해 그가 당시 세계미술사를 주도하였던 유럽에서 근대적인 미술사와 고고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고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던 유럽 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연구를 섭렵한 결과, 당시 근대적인 고고학적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이었던 것도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에카르트의 고고학적인 전문성을 인지하였고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 법을 전수 받고자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분 발굴 현장에 참여시켰다는 점도 상세히 조명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조선미술사』의 내용이 일본 학자와 『조선고적도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에카르트가 고분 발굴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조사한 것과 그의 수채화 가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과 『조선미술사』에 삽입된 스케치에서 연구자가 그의 표식을 찾아냄으로서 저서 그림의 출처가 일본 학자의 것이라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고구려 고분 미술을 중국미술에 국한 시키지 않았고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때로는 유럽까지 넓혀갔다. 이러한 에카르트의 관점은 ‘고구려 고분의 모든 것을 중국의 영향’으로만 결론을 지었던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20세기 초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유럽에 강서대묘에 관한 논문과 한국미술사 통사를 소개했다. 동시대와 후대의 유럽학자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에카르트의 연구를 통해 한국미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동아시아 미술에 한국미술의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상과 같이 에카르트와 세키노 다다시는 고구려 고분 발굴을 통해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었다. 그리고 두 학자의 연구 결과에는 분명히 다른 시선이 존재했다. 현재까지 한국미술사 학계에서는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에 의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에카르트의 관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 논문을 통해 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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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젭 간트너의 미술사학: ‘선형상(Präfiguration)’이론에 입각한 창조과정의 해명

        민주식 미술사학연구회 2011 美術史學報 Vol.- No.37

        Joseph Gantner was deeply influenced by the teaching and friendship of Heinrich Wölfflin. His work also demonstrates an intellectual lineage to his Basel predecessors Burckhardt and Croce, and the French art historian Henri Focillon. His academic interest was on Renaissance in youth, successively Romanesque art, contemporary abstract or non-objective art, and unfinished art called ‘non finito’. He had an extensive view comprising from Romanesque style to contemporary abstraction, sublating the contrast between both sides. He opened a new horizon in art history through deepening the psychology of representational form as future task of art studies. He investigated the artistic process in order to persue the mental source of artistic phenomenon. He grasped it as a dialectical confronting process between inner formative impulse and outer objects namely nature world. The creative process is taken in charge of personality of artist. The personality controls whole elements of form and content toward a work of art. Accordingly, art historian should comprehend the mental circumstance and the attitude of personality, in order to secure his academic territory. Gantner's standpoint and discernment, based on the theory of pre-figuration, become a new stimulant to understand european art history. We examined his art historical outlook from four points, precisely 1)the personality in art history, 2)unfinished form in modern art, 3)contemporary art in historical context, 4)new bearing of planet style in contemporary art. Besides these formal pre-figuration, he extend his research to the pre-figuration of content side, in detailed analysis on the creative encounter of Rembrandt and Leonardo. The main themes repeated in present aesthetics are enumerated as the analysis of creative process, the significance of artist's personality, the stratum of pre-figuration, the problem of unfinished work, and the history of fame. These are nothing but the basic proposition of Gantner's theory art history. His insights throw lights on the elucidation of the problems such as the kernel theme, sentiment and situational feeling, structure of multi-strata in a work of art. Thus he lights up the limits of classical aesthetics and awaken us to recognize a new creative aesthetics of imagination which will be advent in the future. Gantner endeavors to interpretate the work of art mentally and to inquire the original form in artistic formation. Though his descriptions are simple and intimate, they hold pious feelings for art and noble graces which bring us poetic inspiration. He was a man of eye to find out the history of creating the unlimited exuberant world, like the unseen and the higher. He already mentioned the importance of eastern art which has developed the specific value of the pre-figural and will contribute to the contemporary planet style. His theory contribute not only to the development of art history in general but also to illuminating the eastern art properly. 간트너는 청년시대의 르네상스 연구에 이어 로마네스크 미술, 나아가 현대의 추상 내지 비대상(非對象) 미술, 또 ‘미완성(non finito)’ 작품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로마네스크의 양식화로부터 현대의 추상에 이르는 광대한 전망아래, 이 양자의 심각한 대립을 역사학적으로 지양해가면서, 예술학의 앞으로의 과제가 ‘표상형식(Vorstellungsformen)의 심리학’에 있다고 간파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 그는 미술현상의 심적 원천을 탐구하기 위해 미술창조의 과정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것을 내적인 조형충동과 외적인 세계의 대상 즉 자연과의 변증법적인 대결과정으로서 파악하였다. 이 창조과정의 담당자는 미술가의 ‘인격성’ 그 자체이다. 인격성은 형식의 측에서도 내용의 측에서도 미술작품으로 통하는 모든 요소의 지배자이다. 모든 내부의 것과 외부의 것도 이로부터 그 형태를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 인격성의 심적 상황과 인간적 태도에 대한 명석한 인식을 가져야만 미술사학의 영역을 제대로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선형상(先形象, Präfiguration)’ 이론에 입각한 간트너의 관점과 통찰은 유럽 미술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참신한 자극원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미술사학적 세계상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그의 미술사관의 요체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 미술사에서의 인격성 2. 근세미술에서의 미완성 형식 3. 역사적 맥락에서 본 현대미술 4. 현대미술에서의 지구적 양식의 발현, 등이다. 이상은 주로 형식적 선형상의 문제로서 간트너가 추구한 고찰이다. 이러한 고찰은 나아가 렘브란트와 레오나르도의 ‘창조적 만남’을 둘러싼 정밀한 분석을 통하여, 다시금 내용적 선형상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창견이 그 중요한 한쪽 면에서 보완되어 전체로서 발전한다. 미학이론에서도 되풀이되는 탐구주제는 창조과정의 분석, 그것을 담당하는 미술가의 인격성의 의의, 거기에 성립하는 선형상의 층, 그것을 고찰할 수 있는 생물학적 소재와 충족의 원리, 미완성의 문제와 비대상 내지 무대상의 문제, 명성의 역사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다름 아닌 간트너 미술사학의 근본명제이다. 그것은 동시에 양식 성립의 내면을 해명하고, 미학적 범주로서의 양식 개념의 범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미술작품의 주제의 핵, 기분 내지 상황감정, 다층적 구조와 같은 문제의 해명에도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클래식한 미학의 한계를 조명하고, 양식 미학의 범위를 넘어서서 실로 앞으로 도래할 미학의 문을 두드리며,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미학을 일깨운다. 간트너의 노력은 모름지기 미술작품의 정신적 해석, 즉 미술적 형성에서의 근원 형식들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그러한 서술은 소박하고 친근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그 가운데는 미술에 대한 경건한 심정과, 시적영감을 가져다주는 높은 격조가 있다. 그 역시 한사람의 탁월한 ‘눈의 인간’이었다. 간트너는 광대한 전망아래 표상형식 그 자체의 무한히 풍부한 실현의 역사를 찾아냈다. 실로 이 ‘불가시적인 것’, ‘더 한층 높은 것’ 그 자체의 창조의 역사를 찾아낸 것이다. 이미 그는 선형상적인 것의 특수한 가치를 발전시켜온 동양, 특히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관해 언급하고, 그것이 현대의 지구적(地球的) 양식의 앞길에 행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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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현대미술의 새 역사, 어떻게 쓸 것인가?

        이승현 미술사학연구회 2013 美術史學報 Vol.- No.40

        Until late 1980’s, Korea had not reached the economy level of 1960’s postmodern western countries. Due to the difference in economy, the two societies had completely different living environments. This gap in lifestyle led to an inability to share each other’s thoughts and feelings. Under such condition, Koreans could not understand Western art and theory as they were originally intended.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art was written with an intention to record the introduction of Western art into Korea as soon as possible. However, such approach placed a limit on the value of Korean art. By setting Western art as the standard and putting too much value on criteria like novelty, art critics of the time made it impossible for Korean art to outdo Western art. Therefore, to understand the true value of Korean modern art, it is essential that we now examine how our early artists showed their own style of painting. The Korean Monochromatic (Dansek) Paintings were the mainstream in the 70’s and are representative of Korean modern art. Park Seobo and Lee U-fan were the two key painters. However, it is important that we do not restrict the talk of Monochromatic painters to these two titans. Instead, we need to consider the impact of other painters like Kim Whanki and trace the origin of the movement more accurately. By doing so, we can successfully overcome the claim that Monochromatic Paintings were found and authorized by Japanese. The differences with Western art could be intended by artists or made by mistaking it for something else. It is in these differences that we can discover the originality of Korean modern art. To globalize Korean art, it is crucial that Korean art continues to emphasize its originality rather than follow the Western precedents. Also Korean art should not only refer to something Korean but also have mainstrean significance. 우리 미술사의 대외적 소통을 위해서는 세계(서구)미술사와 한국미술사의 시대구분상의 차이를 밝히고 양자 간의 시간성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미술이 서구미술과 동시대성을 언제 확보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대구분의 기준이 다르고 삶의 조건도 달라서 동일한 사조를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대외적인 소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번거로운 환원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대적 공감이란 같은 시대적 환경, 즉 동일한 삶의 조건을 공유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파악을 근거로 한국미술사에서 현대의 기점과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미술사의 통사는 해외, 즉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도입한 순서에 따라 그 도입시기를 한국미술사에 가급적 이른 시기에 등기하고자 하는 의도와 방식으로 기술되었다. 작품의 평가에 있어서 새로움과 빠름이 주요한 가치가 될 때, 그리고 그 기준이 선진국에 있을 때, 우리는 서구보다 새로울 수도 빠를 수도 없다. 더구나 도입역사로 미술사가 기술될 경우 모작과 범작의 역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서구미술의 도입내용을 독창성과 조형적 완성도라는 순수한 미학적 평가기준으로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단색화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영향을 준 이우환과 이를 독자적으로 수용한 박서보 두 작가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면서, 개별 작가들의 다양성이 균형 있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영향관계도 단선적인 분석에 그친 면이 있었다. 단색화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해서 그 실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일본에 의해 발견되고 공인된 미술이라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오인된 모방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이건 의도된 문화적 차이의 발현이건 새로운 원본성의 계기는 차이의 각인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향후 한국미술의 세계화도 일방적인 동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차이의 발현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따라서 당대미술에 있어서 주류 미술계의 당대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우리의 것에 대한 참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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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0년대 廣東畵壇의 정치활동과 지역화풍 계승

        한세현(韓世賢) 미술사연구회 2015 미술사연구 Vol.- No.29

        Modern Guangdong Painters had grown by and listed in the 3rd of regional painters at Beijing, and Shanghai of China. Those painters were actively working centered at Guangzhou, Macau, and Hong Kong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t 1949. The cultural field of Guangdong district was composed of head of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who inherited traditional Chinese classics of 20 century, appreciation and preference. By undergoing Chinese Revolution(辛亥革命)(1911) to be a political heartland, it turned into a politically active place where allowing the realization of politics and cultural art polic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20, original painters of Guangdong began to walk through by the two distinct paths: innovative tendency of Lingnan School and conservative tendency of Guangdong Chinese Painting Research. Among the core features of Guangdong Painters, artists had settled the art policy by participating in political actions. Some of artists, Gao Jian Fu(高劍父), Gao Qi Feng(高寄峰), Chen Shu Ren(陳樹人), Pan Da Wei(潘澾微), He Xiang Ning(何香凝), joined the Tongmenghui while holding a political activity and running the painting work. While maintaining the intimate relationship with Sun Yat-sen(孫文, 1866~1925), those painters began in earnest the art project with political willingness. In addition, they introduced an art exhibition at Guangzhou and brought the huge influence on the establishment of museum construction policy. Around 1920s, once the artists of Gao Jian Fu, Gao Qi Feng, and Chen Shu Ren achieved the fame, who were influenced by modern Japan Kyoto Painters, Gao Jian Fu and Gao Qi Feng found the institution and fully practiced Chunshui School(春睡畵院) and Tianfenglou School(天風樓) with disciples. From such active practice, literary people of Guangdong region who sensed crisis got together and organized The Guihai Art Cooperative(癸亥合作社)(1923). In 1925 this expanded in scale and named it The Chinese Painting Research Society(國畵硏究會), which brought literary people into this group as members. After that the capacity of The Chinese Painting Research Society afterwards increased to take the tasks of literary publications and painting for sales as up to the modernized status. Gao Jian Fu, Gao Qi Feng, and Chen Shu Ren as the members of Lingnan School insisted Chinese-Western eclecticism “New Chinese Painting” such as perspective technique, which combined the best of Chinese and Western painting. Otherwise, Chinese Painting Research Society kept the statememt of tradition succession and research, it revealed their inclination through artworks that copy the works or reinterpret the styles of historical masters. The confrontation caused by differences among art styles and theories resulted in coexistence of the variety of art styles in Guandong region. The artworks by painters of both the Lingnan School and the Guangdong Chinese Painting Research Society, however, commonly inherited the painting styles of Ju Lian(居廉, 1828~1904) from Guangdong regions and kapok tree(木棉), a symbol of this region, representing the aspect of succession as a drawing source during the late 19 century. Ju Lian who were specialized in liquid spread effect technique(撞水撞紛法) at Flower Birds Paintings transmitted his art style by active participation in Liangnan School and Guangdong Chinese Painting Research with his disciples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Since then Kapok tree has been utilized to represent the scenery of spring season of Guandong region and also used in art work as a regional theme source consistently. Guangdong Painters could root into as one of the Chinese modern regional painters because of active political practice, acceptance of Japanese art style, traditional drawing research, and succession of regional drawing. Although influence of such actions faced the limitation in terms of regional space, it had grown as representative painters featuring the transition of political and cul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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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의 회화: 동양의 예술관을 통한 서양미술의 수용

        정하윤 미술사학연구회 2012 美術史學報 Vol.- No.39

        This thesis considers the work of Yoo Young-kuk (1916-2002), an abstract painter who is best remembered for his mountain paintings, and one who had a pivotal role in the modernization of Korean art. Although Yoo was well-respected during his life, there is neither enough research nor sufficient analysis concerning his life and work. This study examines his art in its sociopolitical context. Instead of regarding Yoo Young-kuk as an isolated artist from the society, I will analyze his works in the context of its time period—Yoo brought change into his works in the flow of Korean art that actively engaged the international art world and the sociopolitical situation of Korea. Also, rather than considering Yoo’s work through discourses of dichotomy, this paper argues for its multicultural aspects—his art represents a fusion of Eastern and Western art. Concepts which are regarded as inevitably opposite in the West coexist in Yoo’s work.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evelopment of Korean art from the 1930s to the 1950s, a period influential in the formation of Yoo’s painting style. Having thus been introduced in their artistic/historical context, Yoo’s paintings are then analyzed according to four different time periods:1947-1958; 1959-1967; 1967-1977; and 1978-1999. Although Yoo Young-kuk was extensively influenced by Western culture,he embraced Western modern art subjectively, and fused it with Korean aesthetics. This study sheds light on Yoo’s work from comprehensive and diverse angles, elucidating not only his interaction with society but also his process of incorporating contrasting elements in his work. 본 논문은 유영국(劉永國, 1916-2002)의 회화에 나타난 동·서양 미술의 관계를 시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회화의 1세대로 1930년대의 일본 유학시기부터 약 60년에 걸쳐 추상작품을 꾸준히 제작하여, 한국 추상회화의 시작과 그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아 왔다. 그의 작업이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며 기존의 연구는 형식적인 분석에 그침으로써 그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본고는 유영국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동ㆍ서양 문화의 교류 현상을 외부 맥락과의 연관성 안에서 살펴봄으로써 그의 작업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유영국의 작업의 형성배경이 되었던 1930년대부터 1950년대의 한국 미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 후, 그의 회화를 이와 관련시켜 1947-1958년, 1959-1967년, 1967-1977년, 그리고 1978-1999년의 네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작품 활동 기간 동안 유영국은 한국 미술의 흐름에 편승하여 작업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의 회화 전반에는 서양에서는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추상과 구상, 이성과 감성과 같은 개념이 공존하는 특성을 보이며, 이러한 통합성은 동양의 예술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유영국은 국내외의 미술계와의 교류 속에서 서양의 조형 어법을 동양의 예술관을 기반으로 하여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본 논문은 서양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된 유영국의 작업 안에서 동ㆍ서양 미술이 서로 융합하여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는 유영국이 외래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서 서구의 미술을 동양의 전통 미술과 결합시킨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영국의 작품은 예술가 개인의 삶의 체험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된 개인의 독특한 양식이라는 데에서 그 미술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의 과정과 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인 유영국의 작품을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는 데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정현웅의 『조선 미술 이야기』 연구

        강민기 미술사학연구회 2018 美術史學報 Vol.- No.51

        The Story of Korean Art (Pyongyang: Gungnip Chulpansa [National Press], 1954) was written by Seoul-born artist Jung Hyunwoong (1911-1976) soon after he moved to North Korea. It is academically significant as a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art. Despite this, Jung’s work has never been studied in-depth by South Korean scholars until now. Firstly, according to Jung, the text begins with an awareness that the classical art of the Korean nation was destroyed, exploited and distorted by Japanese and American imperialists. Secondly, the work shows an enlightenment-esque character regarding the ignorance of “the people” when it came to the value of ethnic cultural heritage. From 1953, as he devoted himself to producing replicas of Goguryeo tomb murals, Jung became aware of the historical value of ancient Korean art, and changed his orientation from that of a Westernstyle artist to a Korean-style artist. This change was an important source of motivation for Jung in writing The Story of Korean Art. Notably, however, it was above all the contemporary circumstances of North Korea, from the period of chaos following national liberation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ountry’s regime, that formed the background to the publication of Jung’s book, including his copies of the murals in Anak Tomb No. 3. Thirdly, it can be said that The Story of Korean Art was published in order to illustrate the teachings of Kim Il-sung: that the people must be taught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ir outstanding past traditions, culture and customs, leading to the cultivation of a sense of patriotism. As indicated by the use of the term “story” in the title, Jung’s aim was not to produce a specialized academic text. However, I aim to determine the work’s significance by examining its broad view of Korean art history and comparing it with other North Korean art history texts published in the same period. 『조선 미술 이야기』(평양: 국립출판사, 1954)는 정현웅(鄭玄雄, 1911-1976)이 월북한 초기에 저술한 것으로 한국미술사 연구서로서의 학술적 의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남한의 학계에는 깊이 있게 연구된 적이 없었다. 정현웅에 의하면, 이 책은 첫째, 우리 민족의 고미술이 일본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에의해 파괴, 수탈되고, 왜곡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둘째는 ‘인민’들이 민족문화유산의귀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무지함에 대한 계몽적 성격을 띠고 쓰여 졌다. 그가 1953년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작업에 헌신하면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서양화가(西洋畫家)로부터조선화가(朝鮮畫家)로 전향을 하게 된 것은 이 책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현웅이 안악3호분의 고분벽화 모사작업부터 『조선 미술 이야기』의 간행 배경에는 무엇보다 해방후 혼돈기부터 북한의 체제 정립과정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셋째는 ‘인민’에게 과거의 우수한 전통과 문화와 풍습을 바르게 알게 하여, 결과적으로 애국적 정서를 양성하는 김일성의 교시를 보여주기위해 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적인 학술서를 의도했던 것은아니지만 그 속에 담긴 폭넓은 한국미술사관을 살펴보고, 그 전후(前後)에 발간된 다른 조선미술사 저술들과 비교검토 함으로써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 KCI등재

        화랑(畫廊)에 대한 재고찰 –1970년대를 중심으로-

        김한나 미술사연구회 2018 미술사연구 Vol.- No.35

        Despite the intimate link between galleries and art history, the former have in many ways beenregarded merely as spaces for buying and selling artworks, with little research having been conductedinto their roles and activity. Galleries played a particularly important role in Korean contemporary arthistory in the 1970s. Exhibitions held in galleries at this time gave rise to crucial events in Koreancontemporary art, including the development of diverse experimental art by avant-garde groups, thefirst exhibitions of monochrome painting, proposed starting points for Korean contemporary art, thepublishing of critical and other art magazines, retrospectives of works by modern artists such as LeeJung-seob and Park Soo-keun and publication of books of their paintings, the transition to a newgeneration of Oriental-style painters, the development of contemporary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and the establishment of prints as a genre. This study is an examination of major exhibitions held by Myongdong Gallery, Gallery Hyundaiand Dong San Bang Gallery, three venues that opened in the 1970s and became intimatelyconnected to artistic trends in this period through their exhibitions and other activities. MyongdongGallery played a role in publicizing avant-garde artists in the 1970s. Dong San Bang Gallerysuccessfully achieved a change in generations by focusing on established artists in their 30s and 40s,and played a leading role in discovering new artists. Gallery Hyundai held exhibitions of works bymodern artists such as Park Soo-keun and Lee Jung-seob and published books of their paintings,forming art historical discourses and bringing renewed attention for these artists in the art world andamong the general public. Through their exhibitions, these galleries actively distributed contemporaryartworks in an art market previously dominated by antique works. They also helped spread artisticculture among the general public by publishing magazines such as Hyundai misul (“Contemporaryart”), Hwarang (“Gallery”) and Misul chunchu (“Art Year”). It is thus clear that galleries in SouthKorea in the 1970s functioned as multipurpose venues, playing roles of museums, critics andcommercial spaces at a time when the country lacked sufficient art museums. 화랑은 미술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미술품을 매매하는 공간으로만 평가되면서 그 역할과 활동이 연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히 1970년대에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70년대 화랑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전위미술 그룹의 다양한 실험 미술 전개, 단색조 회화의 첫 발표, 한국 현대미술 기점 제시, 미술비평지를 비롯한 미술 잡지 창간, 이중섭과 박수근을 비롯한 근대 미술 작가 회고전과 화집 발간, 동양화단의 세대교체와 현대 실경산수 전개, 판화의 장르화 등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사건들이 나타나게 된다. 본고에서는 1970년대 개관한 화랑 가운데 전시 활동을 통하여 당시 미술계 흐름과 깊은 관련을 보이며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동화랑, 현대화랑, 동산방화랑의 주요 전시 활동들을 고찰하였다. 1970년대 명동화랑은 전위미술 작가들의 발표기관으로 작용하였고, 동산방화랑은 30·40대 동양화 중견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동양화단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견인하여 미술계의 신진작가 발굴에 앞장섰으며, 현대화랑은 박수근, 이중섭 등 근대 미술 작가 전시 개최와 화집 발간을 통해서는 미술사적 담론을 형성하여 작가가 미술계와 대중에게 재조명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고미술품 중심의 미술시장에서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유통시켰으며, 『현대미술』, 『화랑』, 『미술춘추』 등의 잡지를 창간하여 대중에게 미술문화를 전파하였다. 이를 통해 1970년대 화랑이 미술관이 부족한 미술계 상황 속에서 미술관, 미술평론, 상업 공간 등의 다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공간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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