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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운과 목원대학교의 신학교육

        김흥수 목원대학교 신학연구소 2006 신학과 현장 Vol.16 No.-

        이호운 목사(1911-1969)의 생애는 만주에서 보낸 중고등학교 시절과 국내외 대학에서의 신학수업 기간을 제외하면 교회목회(1936-1941)와 교육활동(1945-1949, 1952-1969)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그는 그의 생애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3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까지의 시기를 미국에서 공부했던 3년을 제외하고는 교육활동으로 보냈으며, 그것도 신학교육에 종사했다. 그의 신학교육 활동은 강남대학교(1947-1949), 감리교신학대학교(1952-1956), 목원대학교(1956-1968)에서 전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교수로서 그리고 학교 책임자로서 신학교육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농촌 교역자 양성이라는 목원대의 신학교육의 목표와 이상을 실험하고 구체화하였다. 이 글은 이호운 목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일했던 목원대학교에서의 신학교육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살펴보려고 한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친 목원대학교의 신학교육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기된 감리교회의 농촌선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고 그것을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의 전통으로 만든 것은 이호운 목사였다.

      • 목원 신학의 방향에 대한 고찰

        박노권 목원대학교 목원신학연구소 2004 신학과 현장 Vol.14 No.-

        목원신학 50년을 지내고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동문목회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신학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한 여러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학부의 정원을 축소하고, 학생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우수한 학생 모집과 동문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하고자 하는 노력 등이 있어왔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학대학과 대학원의 교육과정이 긴밀히 연계되어, 학부에서는 철저한 기초소양교육(신학 기초와 교양)을 실시하며, 대학원에서는 전공심화교육과 실천적인 목회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점차 개선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동문들의 설문조사결과를 근거로 신학대학/대학원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제언도 하였는데, 앞으로 이런 제언을 가지고 더욱 깊이 토론할 수 있다면 우리 학교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목원신학이 더욱 뿌리를 깊게 내리고 농촌목회 뿐만 아니라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교측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설문조사결과에서 92%의 동문들이 학교일에 적극 돕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처럼 동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이번 설문조사결과를 분석하고 제어하면서 목원신학의 앞날에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 있음을 보면서, 본 글을 통해 목원신학대학(원)의 모든 동문들이 목원에서의 신학 교육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 "한어신학"의 가능성과 현실성

        李秋零 목원대학교 목원신학연구소 2005 신학과 현장 Vol.15 No.-

        개혁 · 개방 후 20여 년간 한어학계는 종교적 연구영역에서 장족의 진보를 가져왔는데 특히 기독교 연구 영역에서는 “한어(韓語)신학”2)이라는 사조(思潮)가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한어신학”의 취지가 기독교적 신학을 건립하는 것이기에 종교계의 주목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한어신학”은 또한 그 자체의 인문성, 학술성을 표방하기에 학계의 주목도 받고 있다. “한어신학의 발단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한어신학“의 발전과정은 또한 학계에 수많은 사색할만한 과제들을 남겼다.

      • 폴 틸리히와 존재론적인 패러다임

        유장환 목원대학교 목원신학연구소 2003 신학과 현장 Vol.13 No.-

        모든 시대에 창의적인 신학자들은 각기 자신들의 신학의 고유한 패러다임(paradigm)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항상 이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그들의 신학의 전체계를 구성해 왔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위대한 신학자의 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의 패러다임을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1) 그렇다면 지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인 폴 틸리히(1886-1965)가 지니고 있었던 그의 신학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틸리히의 신학의 패러다임은 “존재론적인 패러다임"2) 이"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존재론의 전통에서 서신학을 전개하였는데,특히 존재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얻은 존재의 구성 요소 개체화와 참여,역동성과 형식,자유와 운명를 사용해서 그의 신학의 전체계를 구성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신론에서 존재의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신의 삶을 기술했고3) 그리스도론에서는 존재의 구성요소를 사용해서 소외의 상태 속에 있는 인간 실조의 자기파괴 상태를 기술했고,4) 성령론에서는 존재의 구성요소를 사용하여 인간의 삶의 세 가지 기능인 도덕, 문화, 종교의 모호성을 기술했다.5)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는 틸리히의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가 말한는 존재자체(Being Itself)로서의 신이나 새로운 존재(New Being)로서의 그리스도이나 존재의 힘과 의미의 통일(the unity of the power and meaning of being)로서의 성령을 완전히 이해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모든 신학은 자신의 신학 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사고의 틀 곧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먼저 탈리히의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을 살펴보고, 그 바탕 위에서 그의 신론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의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 문화와 성령

        유장환 목원대학교 신학연구소 2007 신학과 현장 Vol.17 No.-

        폴 틸리히(1886-1965)는 독일태생의 신학자요 철학자로서 20세기의 대표적적인 신학자이다. 틸리히를 빼놓고 현대 미국신학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그는 현대 미국 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다. 일반적으로 틸리히의 신학은 경계선상의 신학, 철학적 신학, 문화의 신학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틸리히가 자신을 독일과 미국, 철학과 신학,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등의 다양한 경계선 상에 위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중재하고 종합하는 것을 신학의 기본적인 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은“경계선상의 신학”이다. 또한 틸리히의 신학은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질문과 대답의 관계로 이해하고 철학적인 질문과 신학적인 대답을 서로 연관시키는 것을 신학의 기본적인 관점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은“철학적 신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틸리히의 신학의 대표적인 특징은 문화의 신학이다. 틸리히 자신이『문화의 신학』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항상 종교와 문화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주목했고 또한 현대 문화와 역사적 기독교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시하면서 양자 사이를 중재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의 대표적인 명칭은“문화의 신학”이 아닐 수 없다.‘성인 생활의 대부분을 조직신학 교수로서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문화의 관계가 항상 내 자신의 관심의 중심이 되어 왔다. 조직신학 두 권을 포함하여 내 글의 대부분은 기독교가 세속적인 문화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있는 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들이다. 틸리히의 이와 같은 문화의 신학에 대한 관심은 1919년 칸트학회 베를린 지회에서 강연한“문화의 신학의 이념에 대하여"(Über die Theologie der Kulture)에서 시작되었고, 1959년에 출판된『문화의 신학』에서 그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틸리히의 문화의 신학이 조직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완성된 것은 1963년에 출판된『조직신학』Ⅲ에서이다. 틸리히는『조직신학』Ⅲ 에서 실존적인 물음인 문화와 계시적인 대답인 성령을 상호 연관시켜서 그의 문화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완성하여 문화의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따라서 필지는 틸리히의 신학의 주된 특정인 문화의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 그의 인생의 후기에 출판된『조직 신학』Ⅲ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와 성령의 관계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그 의의를 다각도로 규명해 보고자 한다.

      • 이성과 계시

        유장환 목원대학교 목원신학연구소 2005 신학과 현장 Vol.15 No.-

        우리는 계시이해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들이 대표적으로 논쟁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첫째, 계시와 이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이성은 계시에 의해서 파괴되는가? 아니면 계시는 이성에 의해서 파괴되는가?1) 둘째, 계시는 주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것인가. 예를 들어, 계시는 객관적인 사실인가? 아니면 주관적인 체험인가?2) 셋째,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유일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계시는 배타적으로 유일한 것인가? 아니면 여러 계시들 가운데 있는 하나의 계시에 불과한 것인가?3) 이 같은 문제들은 신학의 역사에 있어서 끊임없이 논쟁되어 왔던 것들로서 현대의 조직신학들은 이 문제들에 대한 논쟁의 결과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특히 폴 틸리히(1986-1965)에게는 적합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틸리히는 계시 이해의 핵심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그의 계시론을 구상하였고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조직신학』 Ⅰ제 1부<이성과 계시>에서 그의 계시론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그의 계시론의 주된 관심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신학이 어떻게 하면 계시에 의해서 이성이 파괴되는 초자연주의 신학과 이성에 의해서 계시가 파괴되는 자연주의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둘째, 신학이 어떻게 하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는 객관주의 유형의 신학과 주관적인 체험에 근거를 두는 주관주의 유형의 신학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셋째, 신학이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유일성만을 인정하는 배타주의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유일성만을 인정하는 배타주의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다원주의 신학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틸리히는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이 사이의 갈등을 극복한 자기-초월적인 신학,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사이의 갈등을 극복한 주-객 통일의 신학, 배타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의 갈등을 극복한 포괄주의 신학을 주창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계시 이해의 핵심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틸리히의 계시론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그 의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 과정신학의 진화적 창조론

        김승철 목원대학교 신학연구소 2006 신학과 현장 Vol.16 No.-

        이제까지 살펴 본 것처럼 과정신학자들에게 전통적 창조론은 성서적 이거나 철학적이나 혹은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진화론이 우주의 실재를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학적 우주의 기원설이라는 “대폭발설(Big Bang Theory)은 우주 자체가 처음부터 있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시작되기에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과정철학이나 과정신학도 원초적 혼란의 물질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진화론 자체 특히“원숭이 조상설”도“Missing Link"설이 보여주듯이 그것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화석 자료가 부족하다. 또한 만일“원숭이 조상설”이 과학적 사실이라면 현재“왜 그러한 진화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진화론 자체도 가설에 불과한 것이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적 사상은 과학적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창조론을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과정신학자들은 본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신학은 과학을 배척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수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왔으나 과학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밝히는 것으로 과정신학자들은 이해하기에 진화란 새롭게 하나님과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화란 과정을 통하여 창조적으로 응답적으로 역사하신다. 따라서 어쩌면 과정신학자들은“진화야 말로 진정한 창조”라고 고백하는 듯이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전통적 창조교리는 최초의 창조와 타락이후의 구속이라는 창조의 완성이란 두 가지 형태의 창조를 의미하나 떼이야르는 창조를“통일된‘창조적 형태변화’(creative transformation)로서의 창조”로 이해한다. 즉 떼이야르는“창조는 태초에 행하신 신의 일시적 행동이 아니라 전 우주의 과정이 신의 창조이다. 신은 매 순간 순간을 창조하신다. 신의 구속사는 창조가 완료된 이후에 생긴 잘못된 질서를 회복하여 원초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역사 중에서 생긴 이차적 신의 행동이 아니고 창조과정이 곧 구속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혼돈으로부터의 창조” 혹은 과정신학의 진화적 창조론은 부분적으로 오늘날 목회적 차원에서도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인은 고정된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급속도로 변하는 세계 속에서 살며 나아가서 경건한 신앙인은 타락이 아니라 삶의 질적 가치를 높이고자 즉“향유”하기를 원한다. 또한“무로부터의 창조”는“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창조적 신앙의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실존적 의미에서“무”에 대한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또 다른 각도에서는“우리의 삶은‘무’가 아니라‘혼돈’이기 때문이다.”따라서“‘혼돈’에서‘질서’를 창조하시고‘어둠’에서‘빛’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처럼, 우리의 창조적인 삶은 혼돈과 어둠을 이겨 질서와 빛의 삶으로서의 행진”이어야 한다. 위와 같은 과정신학적 진화적 창조론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한한 인간은 겸허함과 신실한 신앙 안에서 항상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에 대한“아직 아닌"(not yet) 미래의 계시에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 신학과 철학의 관계 : 폴 틸리히의 신학을 중심으로

        유장환 목원대학교 목원신학연구소 2010 신학과 현장 Vol.20 No.-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칼 바르트와 더불어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틸리히의 신학은 경계선상의 신학,문화의 신학,중재의 신학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무엇보다도 틸리히의 신학은 ‘철학적 신학’ (philosophical theology) 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틸리히는 항상 철학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그의 신학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조직신학』에서 신론은 존재론과 관련해서,기독론은 실존철학과 관련해서,성령론은 삶의 철학과 관련해서,하나님의 나라론은 역사철학과 관련해서 서술되었다. 특히,틸리히 신학에 있어서의 신학과 철학과 연관성은 그의 『조직신학Ⅰ』 1권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나의 조직신학의 목적은, 나는 이것이 정당한 목적이라고 믿고 있는데,변증적인 관점에서 쓰여지고 철학과의 지속적인 상호 연관 속에서 완성된 신학체계의 방법과 구조를 제시하려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철학적 신학’이란 용어는 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는 케리그마 신학과는 달리 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신학을 의미한다. “기독교 메시지의 내용을 철학에 의존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재생하려는 케리그마 신학과는 달리 철학적 신학은 동일한 케리그마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철학과의 밀접한 상호의존성 속에서 케리그마의 내용을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케리그마 선학의 대표자가 칼 바르트 라면 철학적 신학의 대표자는 폴 틸리히 이다. 틸리히는 끊임없이 철학과의 상호연관 속에서 신학의 모든 주제를 분석하고 해명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신학과 철학의 관계는 틸리히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틸리히의 신학에 있어서의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상세하게 고찰한 후에 그 의의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 J.S. 끄로아또의 성서해석학과 그 의의

        이정순 목원대학교 신학연구소 1993 신학과 현장 Vol.3 No.-

        고난과 억압의 현장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동한 해방신학은 현대 신학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관념적이고 정태적인 신학으로서 서구 제국주의에 일익을 담당했던 서구 신학과는 달리 해방신학은 현장속에서 고통 당하는 민중들의 해방을 주제로 한 실천적이고 동태적인 신학이다.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은 지금까지의 서양 중심의 신학에서 벗어나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한 삶의 현장에 충실한 주체적인 신학으로서 출발하였다. 서구신학에 대한 반제로서 또한 제3세계 민중해방신학의 기수로서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은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한국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이 태동하는데 끼친영향도 지대하다고 볼수 있다. 최근 들어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됨으로써 제 3세계의 민중현실도 근본적으로 변화했으며, 따라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동구권의 변화가 제3세계 민중현실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제3세계 민중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동구권의 변화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의 영원한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한 인간해방을 목표로 출발했던 마르크스주의가 동구라는 실험현장에서 잠정적으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방신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는 동구와는 전혀 다른 제3세계 현실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해방신학 역시 다양한 과제를 안고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 21세기를 향한 한국 교회 찬송가의 방향

        박봉배 목원대학교 신학연구소 1994 신학과 현장 Vol.4 No.-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 찬송가의 역사를 다시한번 회고해 보며 성장하고 성숙해진 21세기의 한국교회의 자랑스런 모습과 함께 우리의 한국 찬송가학을 형성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과제이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너의 한국신학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왜 너희들은 밤낮 Barth, Moltmann, Tillich, Niebuhr만 찾느냐고 비판받는다. 이것은 한국신학은 없느냐의 질문이기도 하다. 요새는 민중신학이 한국신학으로 외국에서 인기가 높으나 국내에서 여기에 관심갖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민중신학을 한국신학으로 삼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신학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국제회의에 나가면 한국 찬송이라고 해서 새야새야 파랑새야곡에 맞춘 나도 모르는 찬송이 불려지곤했다. 그 후에 좀 부르기 힘든 나운영 선생의 찬송이 한국찬송이라고 W.C.C.찬송에 실려 있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사라진 것 같다. 왜 우리에게는 우리것을 만들고 자랑할수 있는 기풍이 없는 것일까? 정말 신앙이나 신학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어야만 하는가? 보수신학도 한국적 보수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고 급진신학도 한국적 급진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00년동안에 우리의 신앙적 선구자들이 순교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신앙과 신학의 탑은 이제와서 그 빛을 온 세계에 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100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100년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설계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적 찬송가학의 형성은 시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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