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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신화(耽羅神話)에 보이는 여성성(女性性)의 역사문화적 의미

        전영준 ( Jeon Young-joon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6 동국사학 Vol.61 No.-

        제주의 문화자산으로서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재평가의 움직임은 다양한 탐라신화에 대한 선학들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당연한 자연법칙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라 할 만큼 탐라신화에는 지혜롭고 강인한 여성상이 등장하며, 이들에 대해 주목하는 최근의 연구는 제주 사회의 구성요소에 대한 본질적 탐구라 할 만하다. 제주도의 독특한 종교문화는 열악한 제주여성들의 삶의 정황에 기인한 것이다. 絶海孤島의 지리적 제한, 척박한 자연환경과 어려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제주여성들은 집안일, 밭일, 바닷일에 더해 사회적 역할까지 감내해야 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삶을 위협하는 자연의 변화에서 생명 보존과 풍요에 대한 강한 염원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과 敬畏로 표현되었다. 다양한 성격의 신화와 공간이 창출되었고, 신앙 공간의 주된 행위자는 척박한 제주 사회를 이끌었던 여성이라는 점이다. 장기간에 걸친 여성 우월적인 문화패턴이 인류역사 초기에 존재했었음을 알리는 증거들은 여러 민족의 건국신화에 잘 드러난다. 性的인 역할과 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근래에 들어 크게 달라지면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여성우월적인 문화패턴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더욱이 그런 시대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인간생활의 총체적인 표현이 역사이며, 이것에는 생활습속을 포함한 신앙, 의식의 한 형식으로 신화를 품고 있다. 제주에 전승되고 있는 풍부한 내용의 신화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신화의 형성은 이성의 지배,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산업화 현상 등 합리주의의 근대적 요소들과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인데, 제주인의 역사는 이 같은 反신화적인 요인들이 비교적 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탐라신화의 형성과 전승과정에 잘 드러나는 여성적인 감성요소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제주의 역사가 전근대적인 단계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근대 유럽의 계몽적 합리정신이 추상적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기계문명과 산업사회를 일으켰던 역사는 남성적인 이성능력의 소산이었다. 반면, 합리주의와 산업문명에 의해 마멸되지 않은 소박한 인간성의 온존상태와 같은 여성적인 감수성과 보호본능을 강하게 드러내는 탐라신화는 제주 역사문화의 전개과정에서 풍요를 담당하는 주체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의 여러 건국신화가 전쟁과 투쟁으로 점철되는 영웅신화로 여기의 여성상이 객체 또는 매개체의 역할에 제한되어 있지만, 탐라신화에 보이는 여성상은 여성영웅으로서 천지와 국토를 창조하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주체로서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래의 제주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이제까지 홀대받았던 탐라신화의 가치는 새롭게 인식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주문화의 전승 기반으로서 탐라신화에 보이는 여성성의 역사문화적 이해는 제주문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이면서도 탐라신화의 역사적·문화사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일정한 방향성을 提高할 수 있을 것이다. A move to newly perceive and reevaluate Jeju Island`s myths as Jeju Island`s cultural asset is based on previous scholars` studies of various Tamra mythologies. Tamra mythologies show such wise and strong feminine images as can be shocking to those who see male dominance over women as natural law. Recent studies focusing on these images deserve to be considered as intrinsic explorations into the components of Jeju Island`s society. Jeju island`s unique religious culture is based on bad life situations of the Jeju Island women. In the remote and isolated island with geographic limitations, harsh natural environment and turbulent history, the women of Jeju Island had to go through hardships to play social roles as well as to work around the house, in fields and at sea. Their strong desire for survival and abundance in the changes in nature that poses a threat to life was expressed in faith and awe of supernatural beings. Different types of myth and space were created accordingly, and major leaders in the space of faith were women that led the Jeju Island`s harsh society. Many tribes` state-founding myths clearly show proofs that there was a long-term female-dominating culture pattern in the early stage of human society. As the expectation of gender role and capacity has changed greatly these days, people are currently paying keen attention to the facts that female-dominating culture pattern was natural in the early stage of human history and that such a stage lasted for a very long time. The comprehensive expression of human life is history, which contains myths as a form of faith and ceremony including manners and customs. Myths with rich contents inherited to the Jeju Island people have their sufficient historical backgrounds. The formation of a myth is difficult to coexist with modern factors of rationalism such as the rule of reason, the development of scientific technology or the phenomenon of industrialization. Nevertheless, these anti-mythical factors had relatively little influence on the history of the Jeju Island people. Feminine emotional factors revealed well in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inheritance of Tamra mythologies are found a lot; this is attributed to the fact that the history of the Jeju Island was kept for a long time in the pre-modern stage. Enlightenment rationalism in modern Europe helped to discover abstract natural law and to develop machine civilization and industrial society using natural science and technologies. This history was the outcome of masculine reasoning ability. Meanwhile, Tamra mythologies clearly reveal feminine sensitivity and protective instinct such as the maintenance of simple humanity that is not destroyed by rationalism and industrial civilization. It is noteworthy that Tamra mythologies have been granted subjective roles in being responsible for abundance in the process of the Jeju Island people`s historico-cultural development. Many state-founding myths in the Korean Peninsula include heroic myths filled with wars and strifes. Although feminine images in these myths are limited to the roles of objects or intermediaries, feminine images seen in Tamra mythologies are characterized as heroines having been granted the roles of entities to create heaven and earth and to bring about abundance. In terms of the discovery of a new value to lead the future Jeju Island`s society, it is necessary to newly perceive and reevaluate the value of Tamra mythologies that have been neglected up to now. So, a historico-cultural understanding of femininity seen in Tamra mythologies as the foundation for the inheritance of the Jeju Island`s culture will be a trigger to expand the realm of the Jeju Island`s culture and also to improve the sense of direction for reestablishing the cultural-historical status of Tamra mythologies.

      • KCI등재

        아프리카 역사의 역사교육적 가치

        이성재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0 No.-

        General image of Africa would be poor and miserable continent, which means the ignorance about Africa and the absence of world historical perspective. By the way, with intensifying globalization, the knowledge of African history and culture is being highly appreciated. However, it’s still difficult to get an access to concrete history or cultural contents of Africa. This situation would be linked to the fact that most of studies on Africa are based on the ‘Orientalism’ or the pursuit of ‘diversity’ without considering the specificity of Africa. To know concretely what is their history and how Africans accept their history are really important. With this problematic, this study analyzed African society without letters not as a primitive and underdeveloped society but as “a society which doesn’t need the letters.” Excessive emphasis on the letters often lead to the neglect of oral history but ironically the study of oral history can emancipate history from prison of letters. Another feature of African history is that it brings the mythological world into the real life and it justifies people’s activity using that world. In addition, African history makes mythological world rooted deeply into the real life through ceremonies. The colonialists deprived the historicity of the oral history from Africa. The third feature of African history is that Africans deal with the historical facts from the very practical point of view and from their social context. We explained these using the examples of tribes living along the Zaire river and Venda. History which seems to disappear, history which doesn’t make sense at all or ad-hoc selection of historical facts doesn’t generally appeal to us. However, it doesn’t allow us to neglect their unique attitude towards history. Rather than that, we should think seriously “what is living history” from studying African’s attitude towards the history. We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the mythological world and ad-hoc selection of history are still alive in our hearts in present-day society over the physically long period. 빈곤과 기아로 표상화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이며 세계사적인 시각의 부재를 의미한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다양성이 강조되는 작금에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다시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프리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문화의 내용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가 주로 오리엔탈리즘이나 혹은 다양성의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역사가 실제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우선 무문자 사회를 문자가 없는 미개한 사회가 아니라 “문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문자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종종 구술사에 대한 폄훼로 이어지기 쉽지만 역설적으로 구술사 연구야말로 역사를 문자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의 두 번째 특징은 문자의 세계가 아닌 신화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여 사람들의 활동을 정당화시키며, 더 나아가 의례를 통해 신화의 세계를 현실에 뿌리내리게 한다는 데 있다. 식민주의자들은 아프리카로부터 이러한 무문자 사회의 역사성을 빼앗고, 이에 대한 무시와 경멸을 주입했다. 아프리카 역사의 세 번째 특징으로 본 논문은 자이레 강 유역의 부족 사람들과 벤다족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역사를 실용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화와 전통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신화적 세계와 자의적인 역사 선택의 모습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뛰어 넘어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살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역사 연구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갈망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객관과 논리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이라는 냉대를 받고 있는 우리의 역사 교육 현실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는 단순한 신선함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일본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역사관과 고대사 서술 -2011년 검정통과본의 분석을 중심으로-

        나행주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본고는 2011년 일본 문부성 검정통과본을 대상으로 일본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역사관과 고대사 서술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년에 검정을 통과한 일본중학교용 교과서는 2006년도에 성립된 개정 교육기본법과 이에 기초해 2008년에 새로 제정된 학습지도요령 및 동 해설서가 실제로 적용되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특히 교육기본법 제2조 제5항에 명시된 교육목표(「전통과 문화의 중시」, 「애국심과 애향심」, 「타국 존중」, 「공공의 정신」, 「세계평화와 발전」)와 학습지도요령 및 동 해설서의 영토(독도)관련 사항이 실제 교과서 검정과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고 또한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유의하면서, 일본우익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소위 새역모계 교과서(자유사와 육붕사)의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2011년 검정 통과본 중학교교과서(역사·공민·지리)의 독도관련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영토관련 사항의 강조 및 교과서 검정의 결과로서 종래의 기술보다 한층 더 우경화의 경향이 강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새역모계를 포함한 모든 출판사의 교과서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일본고유의 영토이자 이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점령하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2. 교과서검정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서 고조선 관련 서술의 삭제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보다 오랜 시기의 이웃나라의 역사에 대한 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3. 일본중학교 교과서(역사·공민) 서술에 나타난 역사관은 전통문화의 중시, 애국심과 도덕의 강조, 국가와 천황의 중시, 자위대의 긍정, 자국의 위협론에 기초한 침략전쟁의 미화와 식민지배의 합리화 등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인식에 입각해 한일관계나 한국관련 서술은 임나일본부(고대), 왜구(중세),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근세), 일본군위안부, 식민지지배 문제 등(근대)으로 대표되는 사항에 있어서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고대사서술상의 특징은 일본인·일본사회·일본문화·천황제국가 일본의 전통성·유구성·신성성·우수성·주체성을 강조하고 애국심과 도덕심과 자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서 신화와 전승의 역사화, 성덕태자상의 창출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며, 동시에 이웃나라에 대한 인식은 중국에 대해서는 대등의식을, 한반도에 대해서는 우월의식을 심어주는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내용은 교육기본법이 제시한 또 다른 교육목표인 [이웃나라에 대한 존중]이나 [세계평화와 발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역사서술이며 역사교육이라 할 수 있다. 5. 결국, 일본우익세력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새역모계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에 나타난 역사관은 여전히 종래의 일본고대사학계의 통설적 입장인 일본서기 사관(조공·헌상·하사·할양), 자국중심사관(대등론과 우위론), 천황중심사관(귀화인·번국관), 견당사중심사관(중국중시·한반도무시)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새역모계 교과서 채택률의 급격한 증가와 교과서채택문제를 둘러싸고 야기된 오키나와에서의 지역간 대립과 갈등 사례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현재 일본의 역사인식은 국가주의와 세계주의의 대 ... This article was tying to figure out a view of history and ancient history on Japanese historical textbook through an authorized textbooks in 2011. Most of all, middle school textbooks authorized in this year were worth notice as the first case that government guidelines and manuals for teaching actually were applied to the textbook. Consequently, in this article, considering how authorizing textbook and narration in ti not only effectively reflected but also concretely were influenced by educational purpose clarified in the fifth clause of Article 2 of the Fundamentals of Education Act (「importance of tradition and culture」, 「national and local patriotism」, 「respect to other countries」, 「public-spiritedness」, 「peace and development of the world」) and territory part (especially about Dogdo(獨島)) in government guidelines and manuals for teaching, the analysis on contents of textbooks from self-appointed Tsukuru-kai, representing the historical view of Japanese rightist, was intensively investigated. The result is summarized like that;1. The most important character of narration about Dogdo in middle school textbooks authorized in 2011 was that it has much more powerful tendency to turing to the right than previous one. on the other words, textbooks from all publishing company including Tsukuru-kai directly described Dogdo (Takeshima竹島 in Japanese) was illegally occupied by Korea, although it was Japanese territory. 2. The elimination of narration about Gojoseon (古朝鮮) was representative issue in authorizing textbook. It could be interperted as the case that history of a neighboring country (Korean history) was changed for the worse, to emphasize national history from time immemorial with valuing tradition and culture unreasonably. 3. The historical view in narration of middle school textbooks (History/ Civic education) had characters such as glamorization for aggressive war and rationalization about colonial rule based on significance of traditional culture, emphasis of patriotism and morality, importance of nation and Tenno (天皇), positive attitude for Japan Self-Defense Forces (JSDF, 自衛隊), controversy over treat on nation. Thus, resting on this historical view, the narrations about Korea and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still had considerable problems represented in Imnailbonbu (任那日本府, in antiquity), Japanese pirates (倭寇, in middle ages),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壬辰倭亂), and Joseon press agency (in modern ages). 4. The characteristic figure of narration for ancient times was it tried to make mythology and legend of history and to create great valuation of Shoutokutaishi (聖德太子). Also it was consistent in equality for China and superiority for Korea as historical awareness about neighboring countries. It was a way Japanese/ Japanese society/ Japanese culture/ Empire of Tenno emphasized tradition/ long history/ celestialness/ excellence/ independence of Japan and enticed patriotism, morality and self-respect. Finally, it seemed the narration and education of history were not match with 「respect to other countries」, 「peace and development of the world」, another educational purpose from the Fundamentals of Education Act. 5. A view of history from narration of ancient time in Tsukuru-kai textbooks, speaking for the Japanese rightist still preserved the historical views, focusing on Nihonshoki (日本書紀), nation, Tenno, Kentoshi (遣唐使). 6. Like confrontation with each region in Okinawa (沖繩) among a boost in adoption of Tsukuru-kai textbook and problem of adopting textbook, current historical view of Japan is disoriented between pursuing tradition, culture, local and nation patriotism and pleading respect to other countries and peace and development of the world, in conflict between nationalism and cosmopolitanism, with matter about making patriot or citizen of the world.

      • KCI등재

        문화혁명 이전 17년간(1949~1966) 역사극의 역사진실과 예술진실 논쟁

        김은수 ( Kim Eun-soo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20 동국사학 Vol.69 No.-

        1960년대의 ‘역사극 논쟁’은 吳唅의 「談歷史劇」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극의 인물과 사실은 반드시 역사적 근거가 있어야 하며, 역사의 실제 정황을 반영하지 않는 극은 역사극이 아니라 故事劇이다. 둘째, 역사주의와 애국주의 교육에 대한 역사극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셋째, 역사극의 창작은 역사사실에 근거하면서 ‘歷史眞實과 藝術眞實’의 통일이 필요하다. 논점은 주로 역사인물과 역사사건을 ‘當代化’하는 과정에서 ‘史實’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吳唅은 歷史眞實을 강조하는 역사극의 개념을 제시하였고, 歷史劇, 故事劇, 神化劇을 구분하였다. 李希凡 등은 역사인물을 ‘當代化’할 수 있다면 ‘史實’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역사극 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역사사실 만들기’ 작업과도 관련되었다. 역사가들은 ‘歷史事實’의 확보가 사료에 근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지만, 극작가들은 역사 규율에 입각한 ‘역사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면, 그들의 상상에 의해 창작된 인물과 사건이 ‘역사사실’을 더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The debate on historical drama in the 1960s began with Wu Han’s “on historical drama”. The argument is as follows. First, people and things in historical dramas must have historical basis. Dramas that do not reflect the actual situation of history are not historical dramas, but story plays. Second, we should attach importance to the role of historical pays in the education of historicism and patriotism. Thirdly, according to the historical facts, the creation of historical drama needs the unity of “historical reality and artistic reality”. The argument mainly revolves around how to deal with “historical facts” in the process of “contemporaneity” of historical figures and events. Wu Han put forward the concept of historical drama which emphasizes the historical truth and distinguishes historical drama, story drama and myth drama. Li Xifan and others believe that if historical figures can be “contemporary”, there is no need to consider “historical facts”. “Shaping historical facts” for the historical legitimac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s related to the issue of historical drama. Historians insist that the assurance of “historical facts” should be based on the position of historical materials, but playwrights believe that if we correctly recognize the “historical truth” based on historical laws, then the people and things created according to their imagination can more accurately find out the “historical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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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 예화에서 나타나는 언어일탈에 대한 경계: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교차점

        이혜민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0 No.-

        이 논문은 14세기의 예화집인 장 고비의 『천국의 사다리(Scala coeli)』와 익명의 작가가 쓴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하다(Ci nous dit)』에서 나타나는 언어적인 일탈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들은 각각 라틴어와 중세 프랑스어로 14세기 전반에 저술되었다. 중세의 예화는 설교문에 삽입된 짧은 길이의 교훈적인 이야기로서, 설교를 할 때 속어로 말하는 내용을 기록 혹은 채록한 것이다. 예화는 대개 성직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기록되곤 하였다. 그렇지만, 14세기 이후부터는 속어와 세속 문화의 흥기와 더불어, 몇몇 예화들은 속인들을 위하여 프랑스어로 기록되기도 하였고 필사본에는 텍스트의 내용을 설명하는 채식 삽화가 덧붙여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예화는 바로 중세 시대의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예화집에는 수많은 도덕적인 교훈담이 담겨 있는데, 언어폭력에 대한 내용도 그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중세의 성직자, 설교사, 신학자들은 12세기 말부터 ‘혀의 죄악(Les péchés de la langue)’이라 불리는 언어적인 일탈행위들을 규정하고 분류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는 곧 언어폭력을 규제하려는 노력과 연관되며, 그 방식은 고해성사나 설교 같은 구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실현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문자 문화가 점진적으로 성장하던 시대에는 속인 신도들의 언어 예절에 대한 교육은 마찬가지로 글로 쓰인 형태로도 제공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14세기에 프랑스어로 편집되어 필사본의 형태로 채식된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하다』와 같은 예화집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didactic lessons on verbal deviances in two compilations of exempla: the Scala coeli of Jean Gobi and the Ci nous dit of an anonymous author. They were written respectively in Latin and in French in the first half of the fourteenth century. Incorporated into medieval preachers’ sermons, these edificatory short tales, were performed orally in vernacular languages, and they were also written down in Latin, the language of clerics. From the 14th century on, with the rise of the vernacular languages and cultures, some exempla were also written in Frenc and illuminated for the lay public in France. That is why the oral and the written cultures are intermingled in the medieval exempla. The exempla contain numerous didactic tales among which discussions on verbal violences form a part. As a matter of a fact, since the late twelfth century, clerics, preachers and theologians had attempted to define and classify verbal deviances, calling them “Sins of the Tongue.” Their attempts to control verbal violences were realized by oral communication in the form of confessions and sermons. The education of speaking manner for the lay public was also offered in the form of written materials with the gradual rise of the written culture, as attested by the illuminated manuscript of the Ci nous dit of the early four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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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 역사(상)』 교과서에 나타난 그리스사와 로마사 서술의 몇 가지 문제

        김덕수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Middle school history textbooks are very important to form the view of history of students. Currently, 8 history textbooks is published and Korean middle school students have to study the world history only by using one of them. Unfortunately, I found a lot of inaccurate or misleading representations in the history textbooks, especially in the contents of Greek and Roman history. For example, the description of historical sites’ pictures are wrong, and there are much anachronistic descriptions. The most serious problems is that curriculum changes too frequently. But responsibility for the errors in textbooks are entirely to the authors. They should use exact historic terms and expressions. There is a need for the more strict certification system for history books. At that time we can eliminate unqualified textbooks in the middle school. 중학교의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중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8종의 『중학 역사(상)』 교과서에 있는 그리스사와 로마사 관련 내용을 검토한 결과 본문 내용이나 사진, 그림, 지도 등에서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표현이 많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8~12쪽의 적은 분량에서도 많은 잘못들이 ‘고르게’ 나온다는 점이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이미 이전의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세계사 부분에 나오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우선 2007 개정 이후, 교육과정의 수시개정제도가 도입되면서 2009, 2011 등 역사 교육과정이 너무 자주 바뀌고, 그에 따라 교과서 집필이 너무 급히 추진된다는 것이 지적될 수 있다. 교과서 집필진 구성 및 집필 작업 자체와 관련해서도 대책이 시급하다. 교과서집필 기간 자체가 촉박하다는 점 외에도 워낙 역사교과서가 다루는 범위가 넓은데 반해 해당 분야의 전공자를 모두 집필진으로 참여시킬 수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집필에 필요한 비용을 출판사가 무조건 떠맡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춘 출판사에 위임하면서 출판비용을 국가가 보전해 주는 것이다. 또한 각 분야의 전공자를 모두 다 골고루 집필진으로 참여시키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교과서 심사본을 제출하기 전에 전공자의 감수를 받거나 검토를 받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책임 집필의 관행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어느 부분은 누가 썼다는 식의 표시가 필요하다. 자연 전공자나 권위 있는 사람이 집필에 참여하는 효과가 있게 된다. 교과서 용어나 표현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역사 용어사전이나 백과사전을 명시함으로써 논란이 되는 학설이나 이론 중에 교과서에 실릴 수 있을 정도의 ‘정설’에 대한 기준이 마련될 필요도 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이지만 학생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오류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2013년 1학기부터 중학교에 배부될 『중학 역사』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정확한 역사용어나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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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상)⌋의 고려시대 서술체제와 내용 분석

        장희흥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중학교 고려시대 서술을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상)⌋과 제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국사⌋의 서술체제와 내용을 분석한 것 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국정제에서 검인정제로 전 환되었다. ⌈국사⌋라는 한국사 중심에서 국사와 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로 전환되어 세계사와의 관련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단원의 체계 역시 고 려시대의 경우 1단원에서 2단원으로 증가하면서 성취기준, 분량 등이 증가 하였다. 둘째, 필자 역시 교사들의 비중이 증가하였다. 셋째, 제7차 교육과 정보다 다양한 학습 자료를 수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대단원의 마무리 역시 교육과정을 체계화하였다. 교사의 증가와 다양한 학습 자료의 수록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반대로 교수가 많은 부분은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내용면에서 첫째, 검인정 교과서가 국정보다는 설명이 간결하고 전후 과정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역사용어에 대한 정의를 구체화하였다. 즉 귀 족, 문벌귀족 등 역사 용어가 국정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면, 검인정 제에서는 일부 모호한 것도 있지만, ⌈미래⌋와 ⌈천재⌋의 경우처럼 구체화하 였다. 둘째, 정치사 이외에 사회, 경제, 문화 등이 설명되어 전체 역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분량을 서술하여 수업 시수와 관련한다면 학생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는 2011 부분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정치사(문화사) 중심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넷째, 서술 내용은 필자에 따라 빠지거나 강조한 부분이 달라 교사의 충분한 이해가 전제된 다. 특히 문화 등 교과서마다 내용상 차이가 심하다. 다섯째, 정치세력보다 는 농민들의 생활, 신분상승운동 등을 긍정적으로 서술하였다. 또한 민족 을 강조하는 서술이 여전히 많이 있으나, ⌈천재⌋의 경우 삼별초를 민족의 자주성과 최씨 사병 집단이라는 논쟁을 수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계열 화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을 제멋대로 바꾸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교과서가 집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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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상)』의 고려시대 서술체제와 내용 분석

        장희흥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1 동국사학 Vol.51 No.-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description and content of Koryo dynasty in the 『Middle School History 1』 comparing the 『Korean History Textbook』 for the Middle School according to the 7th National Curriculum. The main change in the 9th revisions that government-designated system is shifted to the government-approved system. As the result, the contents of textbook are more emphasized General History including Korean History. The work involves both National History and World History. The 9th revision includes political history, social history, and economical history. And also the revision more increased the two chapter in the content of Koryo history and the number of teachers to write the textbook is increased. Moreover, the revision involves the various learning materials. In terms of contents, the 9th revision eliminated the redundant contents in the textbook and more gave shape to the uncertain historical concepts in description of aristocrat and gently born aristocrat and so on. And beyond political history the explanation of the part of society. economics, and culture help us to understand the whole history. But the each teacher who engaged in writing textbook had a different viewpoints in the part of culture and economics. the 9the revision emphasized the life history rather than political history, and described the movement for the upward mobility. But it includes the emphasis of nationality as before and the debate the Sambyulcho(a troop in Koryo dynasty) whether it was troop for national independence or mercenary soldiers of the family Choi in Koryo. 본 논문은 중학교 고려시대 서술을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상)』과 제7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국사』의 서술체제와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국정제에서 검인정제로 전환되었다. 『국사』라는 한국사 중심에서 국사와 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로 전환되어 세계사와의 관련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단원의 체계 역시 고려시대의 경우 1단원에서 2단원으로 증가하면서 성취기준, 분량 등이 증가하였다. 둘째, 필자 역시 교사들의 비중이 증가하였다. 셋째, 제7차 교육과정보다 다양한 학습 자료를 수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대단원의 마무리 역시 교육과정을 체계화하였다. 교사의 증가와 다양한 학습 자료의 수록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반대로 교수가 많은 부분은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내용면에서 첫째, 검인정 교과서가 국정보다는 설명이 간결하고 전후 과정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역사용어에 대한 정의를 구체화하였다. 즉 귀족, 문벌귀족 등 역사 용어가 국정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면, 검인정제에서는 일부 모호한 것도 있지만, 『미래』와 『천재』의 경우처럼 구체화하였다. 둘째, 정치사 이외에 사회, 경제, 문화 등이 설명되어 전체 역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분량을 서술하여 수업 시수와 관련한다면 학생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는 2011 부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정치사(문화사) 중심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넷째, 서술 내용은 필자에 따라 빠지거나 강조한 부분이 달라 교사의 충분한 이해가 전제된다. 특히 문화 등 교과서마다 내용상 차이가 심하다. 다섯째, 정치세력보다는 농민들의 생활, 신분상승운동 등을 긍정적으로 서술하였다. 또한 민족을 강조하는 서술이 여전히 많이 있으나, 『천재』의 경우 삼별초를 민족의 자주성과 최씨 사병 집단이라는 논쟁을 수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계열화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을 제멋대로 바꾸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교과서가 집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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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데이터 내러티브

        최원재(Choi, Won-jae)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20 동국사학 Vol.6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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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d a new role of history (or history research) which was little focused in terms of data science before. We are living in the data era where data is a core in industry, business, and study, and no doubt, anyone should be data literate to live in this data-centred society. However, it does not mean everyone ought to become a computer scientist or computer programmer. History will be where data literacy is taught and experienced with its historical thinking that derives from interpreting big data and small data we can encounter in history or history research. A history researcher comes across the moment when ‘Aha!’ occurs to him or her in researching historical events or episodes from analyzing contexts and weaving them, and it is insight and intuition that is required to whoever deals with data. Historical research results in insight and intuition. History research is not where the past remained only in the past but where data is analyzed and interpreted with insight and intuition of a data researcher who dives into finding a new fact and pursuing after its novel interpretation. By doing so, anyone who is involved in historical research can be literate in data. Data literacy is not limited in the computer field as simply thought. From a broad scope, its bounds are getting expanded to where interpretational insight in data can be harvested, and digital data curation is recommended for a specific way to realize data literacy. Digital data curation calls for both computer skills and interpretational insight or intuition. It is the very best thing in getting the narrative shaped which a researcher explores in the way the data-oriented society welcomes. Digital data curation is hopefully expected to be placed in a curriculum of historical research. 이 연구의 목적은 데이터 시대에 역사학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고찰하는 데 있다. 데이터가 본격적으로 산업의 주재료가 된 지금은 누구나 데이터를 재료로 첨단기술을 활용해 일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데이터 활용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요에서 ‘필수’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역량을 이끌 수 있는 학문으로 역사학을 꼽을 수 있다. 역사학은 그 시작점이 데이터가 바탕이 되는 데이터 과학이다. 그리고 역사학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사고는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과 다르지 않다. 역사 연구에서 펼쳐지는 역사적 사고는 데이터를 수집·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직관과 통찰을 기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역사적 사고는 역사적사건과 사실을 분석하고 사건·사실의 상황 맥락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사고(思考)를 포함하는데 이런 해석의 과정에서 직관력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데이터베이스의 학문이며 역사 연구는 데이터 해석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데이터를 해석하여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내러티브 능력이 발현될 수 있는 영역이다. 역사적 사고력을 데이터 리터러시로 완성시킬 수 있는 구체적으로 방법으로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이 있다.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은 구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기획하여 이에 맞는 데이터를 디지털 기술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여기서 다시 데이터를 추출·연결하여 디지털적으로 재구성하는 내러티브 기법이다.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을 원활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엮어가는 사고력과 디지털 기술 응용력이 모두 요구된다. 역사학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적 사고가 디지털 기술과 융합되면 앞으로 데이터 활용에 요구되는 직관력과 컴퓨터 기술을 모두 습득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은 데이터 중심 시대에 더이상 지난 세월의 사료를 읽고 교훈을 얻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학문이 아니다.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 속에서 구현되는 역사적 사고는 역사적 데이터를 확인하고 그 데이터 사이의 맥락(관계성)을 짚어가는 데 필수적인 직관력을 길러 내러티브할 수 있는 데이터 과학의 주요 분야로 역사학을 본격적인 데이터 과학의 하나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는 역사학 커리큘럼에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을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 본 연구는 독립운동가 김동수 선생 가문 디지털 큐레이션에서 발견한 스토리를 연구 사례로 들어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인 역사 디지털 큐레이션의 구체적인 연구 과정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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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운(白南雲)의 단군신화 인식

        이경섭 ( Lee Kyoung-sup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7 동국사학 Vol.63 No.-

        백남운은 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특히 고대사의 영역을 다룬 『조선사회경제사』의 緖論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단군 인식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최남선,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단군신화 해석에 대한 비판이 중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당시는 학술계에서 조선학운동의 흐름이 가시화되던 시기였으며, 이미 단군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자 상징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조선사를 체계화시키려 노력한 백남운의 관점에서는 단군으로부터 기원하고 상징되는 조선 민족의 형상화는 ‘하나의 특수한 문화사관’이며, 과학적 역사관으로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위협적인 ‘반동적’ 역사관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백남운은 단군신화가 계급사회의 산물이며 시대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단군이 실재적이지도 특정한 인격자도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제기한 단군신화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군정 아래에서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차용하려고 할 때에도 일제의 그것과 다름없는 국수적 반동사관이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한국전쟁기 저술로 추정되는 『조선력사』에서도 기존의 단군신화 인식에 근거하였고, 이후 북한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 토론회에서도 자신의 신화 인식을 견지하였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백남운의 단군인식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김일성에 의한 ‘주체의 제기’라는 배경에서 북한 역사학계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민족주의 역사학의 관점을 보다 강화시키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이 과정은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백남운이 북한 역사학계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가던 정황을 암시한다고 생각된다. Baek Nam-woon wrote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and The Economic History of the Feudal Joseon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Marxist historical studies during the colonial days, trying to overcome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and demonstrate the universal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 history. In his “Critical Opinions of the Dangun Myth” in the introduction of his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that covered the ancient history, in particular, Baek criticized some nationalist historians including Choi Nam-seon and Shin Chae-ho for their interpretations of the myth. From the perspective of Baek that tried to systemize the Joseon history in the universality of the world history, the embodiment of the Joseon people that originated in Dangun and were represented by him was a “single particular view of cultural history” and “reactionary” view of history that was very threatening to the understanding of Joseon history based on the scientific view of history. Baek pointed out that the Dangun Myth was an outcome of the hierarchical society and was subjected to possible changes according to the times and made it clear that Dangun was neither real nor certain man or character. Even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Baek maintained his theory on the Dangun Myth that he raised in his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When the bourgeois nationalists tried to adopt the idea of Hongikingan as the educational ideology of the nation under the US military regime, Baek actively criticized it as a nationalist reactionary view of history that was the same as the view of history advocated by the ruling Japanese. Baek maintained his old attitude toward the Dangun Myth in his The Joseon History, which is estimated to have been written during the Korean War, and at the discussions about the myth held by the academic circles of North Korea. In the early 1960s when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 tried to connect the Dangun Myth to Gojoseon, however, his perception of the myth was under fire. This flow can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 trying to reinforce the perspective of nationalist historical studies instead of Marxist historical studies in the background of “Juche” raised by Kim Il-sung those days. This process impli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Baek, who was a stubborn Marxist, was gradually excluded from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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