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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합 교과목 확대를 위한 방안 모색

        정미숙,김미리혜,차지영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인문과학연구 Vol.14 No.-

        오늘날의 지식기반 사회는 지식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과 양질의 지식에 바탕을 둔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 이러한 인재는 여러 학문분야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어야 하므로 대학에서는 다양한 학문 간의 융합 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및 학문적 요청에 부응하여 융합 교과목인 <정서의 이해와 조절>을 덕성여자대학교 교양 강좌로 개설하였다. 이 교과목의 개발 및 강의에는 심리학, 불어불문학 및 식품영양학 전공의 3인 교수가 참여하 였다. 이 강화를 통하여 학생들이 인문, 사회 및 자연계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으로 정서를 이해하고 정서 조절법을 익혀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제고하고 효과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 업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 교과목의 시도는 수강학생들과 참여교수들의 평가를 통하여 살펴볼 때,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판단된다. In today's knowledge-based society, universities need to turn out individuals with creativity and judgement who can read the flow of modem knowledge. In order to provide fertile soil for students to become such individuals, universities have developed various courses and programs. Convergence courses, a relatively new kind of such, were offered at Duksung Women's University. <Understanding and Regulation of Emotion>, one of them, was developed as a liberal arts course. In this paper, the authors tried to illustrate the process of developing a convergence course from our experience of developing <Understanding and Regulation of Emotion>. Three professors with different majors and specialties, namely psychology, 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and food and nutrition participated in the development of subject and lecture. The objectives of the course have been decided after discussion; to help the students examine the notion of emotion from various perspectives, and to let them cultivate the emotion regulation methods of their own to cope with various situations, fulfill self-actualization and enhance quality of life. Based on feedback from the enrolled students and faculty, the course was educational and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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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차미리사 선생의 민족운동과 교육활동> 차미리사의 기독교 민족운동관

        최병택 ( Choi Byung Taek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인문과학연구 Vol.22 No.-

        차미리사는 기독교적 사회복음주의에 입각하여 인격 양성, 실업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을 중시했다. 인격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실력양성론은 1920년대 당시 감리교계 민족운동가들의 사회운동론과는 그 지향점이 달랐다. 당시 감리교계는 경제적 실력양성론에 치우쳐져 ‘미곡 생산량만 늘리면 경제력을 강화할 수 있고, 민족 독립의 여지도 높아질 것'이라는 식이라는 논리 하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경제적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던 감리교계의 신흥우와 박인덕 등은 1930년대에 감리교 교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경제적 실력양성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던 차미리사가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차미리사는 덕성여자실업학교 운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Cha-Mirisa carried out the Movement of Improving Ability in 1920', which featured character-building. That was different from other leaders in the Korean Methodist church who had persisted that improvement in standards of economic state of korea is crucial. That idea of improving character underlaid much of his work on DukSung-school. In 1930', Many leaders in the church turned coat and became pro-Japanese . They tried to drive out other leaders who held a different opinion on nationalistic movement such as Cha-Mirisa. The result brought Cha-Mirisa's resignation from the council of DukSung.

      • 차미리사의 기독교 민족운동관

        최병택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인문과학연구 Vol.22 No.-

        차미리사는 기독교적 사회복음주의에 입각하여 인격 양성, 실업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을 중시했다. 인격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실력양성론은 1920년대 당시 감리교계 민족운동가들의 사회운동론과는 그 지향점이 달랐다. 당시 감리교계는 경제적실력양성론에 치우쳐져 ‘미곡 생산량만 늘리면 경제력을 강화할 수 있고, 민족 독립의 여지도 높아질 것'이라는 식이라는 논리 하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경제적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던 감리교계의 신흥우와 박인덕 등은 1930년대에 감리교 교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경제적 실력양성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던 차미리사가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차미리사는 덕성여자실업학교 운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Cha-Mirisa carried out the Movement of Improving Ability in 1920', which featured character-building. That was different from other leaders in the Korean Methodist church who had persisted that improvement in standards of economic state of korea is crucial. That idea of improving character underlaid much of his work on DukSung-school. In 1930', Many leaders in the church turned coat and became pro-Japanese . They tried to drive out other leaders who held a different opinion on nationalistic movement such as Cha-Mirisa. The result brought Cha-Mirisa's resignation from the council of Duk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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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서울 동북 지역의 문학 유산> 도봉구의 문학 유산

        이명찬 ( Yi Myungcha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인문과학연구 Vol.16 No.-

        도봉구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13년까지 『도봉전자문화대전』을 편찬키로 하고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지역문화연구센터를 그 실행 기관으로 지정하였다. 따라서 지역문화연구센터는 2011. 6. ~ 2011. 11. 사이에 기초 조사 사업을 실시하고 2012. 12.까지 사전 항목의 집필을 마쳐야 한다. 기초 조사 사업의 핵심은 도봉 지역을 대표하는 약 2,000개에 달하는 사전(辭典)의 수록 항목을 선정하는 일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문학 유산'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조사에 착수하였다. 우선 ‘문학 유산'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일단 ‘문학 유산'의 의미를 도봉 지역과 유관한 문학 현상들의 총칭으로 사용키로 한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유형, 무형의 문학 유산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또한 고전 문학 유산과 현대 문학 유산 역시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유형 문학 유산으로는 문학인들의 직접적인 삶의 흔적들, 가령 거주지와 묘소들을 들 수 있다. 홍명희, 정인보, 함석헌, 전태일 등의 거주지와 김수영의 시비, 염상섭, 이무영의 묘소가 이에 포함된다. 무형 문학 유산에는 도봉 지역의 삶이나 자연을 반영한 문학 텍스트들이 포함될 수 있다. 이병기, 박두진, 김수영, 김영태, 황동규의 시와 많은 수의 한시들이 그 예다. 더불어 이병주의 수필과 소설,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 전태일 관련 저작물들도 도봉 지역과 관련한 무형 문학 유산의 중요한 예로 손꼽을 수 있다. Dobong-gu and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decided to compile 『The Great Electronic Cultural Dictionary of Dobong』 by 2013, and selected Duksung Women's University's Institute of Humanities regional culture research center as the executive organization. Therefore, regional culture research center must conduct a basic investigation business from June to November of 2011 and complete the writing of dictionary items by December of 2012. The core of the basic investigation business is selecting approximately two thousand dictionary items that represent Dobong region. Among them, the author took charge of the 'literal heritage' field and launched an investigation. First of all, there is a need to determine the meaning of the term 'literal heritage'. In this writing, 'literal heritage' is used as a generic term for cultural phenomenons related to Dobong region. Therefore, this concept includes all tangible and intangible literal heritage. Also, it is a concept that includes both traditional and modern literal heritage. Literary people's direct traces of life, such as places of residence and graveyards can be named as tangible literal heritage. Residences of Hong Myung-Hee, Jeong In-Bo, Ham Seok-Heon, Jeon Tae-Il and Kim Soo-Young's poem memorial stone, graveyards of Yeom Sang-sub and Lee Moo-Young are included in tangible literal heritage. For intangible literal heritage, literal texts that reflect Dobong region's life and nature can be included. Poems by Lee Byung-Gi, Park Doo-Jin, Kim Soo-Young, Kim Young-Tae, Hwang Dong-Kyu and many Chinese poetry are examples of such. In addition, Lee Byung-Joo's essays and novels, Kim Seong-Dong's novel 『Mandara』, Jeon Tae-Il related writings can be picked as important examples of intangible literal heritage related to Dobong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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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덕성여자대학교와 덕성여자중고등학교 개교기념일 재검토

        한상권 ( Han Sang Kwo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인문과학연구 Vol.0 No.30

        2020년 창학 100주년을 맞이하는 덕성학원에는 기념일이 5월 17일, 4월 19일, 10월 10일 셋있다. 1950년 5월 17일은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얼마 전까지 개교기념일로 기렸던 날이다. ‘덕성여대가 1950년 5월 17일 2년제 초급대학으로 개교하였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덕성여대는 2년제가 아니라 4년제 초급대학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덕성여대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신학기부터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하여, 1956년에 제1회 졸업생 25명을 배출하였다. 1921년 10월 10일은 현재 덕성여자중고등학교가 개교기념일로 기리는 날이다. 덕성여중고는 이 날을 근화여학교가 인가받은 날이라며 기리고 있다. 하지만 덕성의 역사에서 ‘근화'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3년 이후이다. 1923년 조선여자교육회 산하 부인야학강습소 이름을 근화 학원으로 처음 지었다. 사회교육기관인 근화학원이 정규 교육기관인 근화여학교로 승격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25년이다. 근화여학교는 이 해 8월 29일 인가받았다. 1920년 4월 19일은 2004년부터 덕성학원이 창학기념일로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가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부인야학을 처음 시작한 날이다. 3·1운동정신을 계승한 조선여자교육회의 창립은 19세기 말 교육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1920년대 민족교육운동을 선도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2020년 창학 100주년을 맞이하여 덕성 역사의 정통성과 구성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기념일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성학원 산하 교육기관에서 각각 기리고 있는 기념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The Duksung Academy, which celebrates its 100th anniversary in 2020, has three anniversaries: May 17, April 19 and Oct. 10. First of all, May 17 is the day the university celebrated its opening day. Duksung Women's University's anniversary has been known as May 17, 1950. However, it is not true that Duksung Women's University opened on May 17, 1950, as a two-year junior college. Second, April 19 is the day the Duksung Academy celebrates as its founding anniversary since 2004. Established on April 19, 1920 as the school's founding anniversary, it was the first time that women's night classes were started at the Joseon Women's Education Association's Women's Night School, founded by Cha Melissa, the founder of the Duksung Academy. Third, October 10 is the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Duksung Girls' Middle and High School. Duksung Girls' High School celebrates this day as the day when Geunhwa Girls' High School was accredited in 1921. The truth, however, is that the principal took over the school from the U.S. military authorities in 1945. Celebrat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foundation of the Duksung Academy in 2020, the anniversary needs to be unified into one. To do so, we have to change the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Duksung Girls' High School, which has been wrongly honored so far. “The beginning of middle and high schools should be seen as April 19, 1920,” said Duksung Girls' Middle School principal and president of the university's general association. By honoring the founding anniversary of the school on April 19, 1920, all educational institutions under the Duksung Academy need to redefine the meaning of celebrating the centennial of the school.

      • 융합 교과목 확대를 위한 방안 모색<정서의 이해와 조절>의 개발 및 운영 경험을 토대로1)

        정미숙,김미리혜,차지영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인문과학연구 Vol.14 No.-

        In today's knowledge-based society, universities need to turn out individuals withcreativity and judgement who can read the flow of modern knowledge. In order toprovide fertile soil for students to become such individuals, universities havedeveloped various courses and programs. Convergence courses, a relatively new kindof such, were offered at Duksung Women's University. <Understanding andRegulation of Emotion>, one of them, was developed as a liberal arts course. Inthis paper, the authors tried to illustrate the process of developing a convergencecourse from our experience of developing <Understanding and Regulation ofEmotion>. Three professors with different majors and specialties, namely psychology,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and food and nutrition participated in the developmentof subject and lecture. The objectives of the course have been decided afterdiscussion; to help the students examine the notion of emotion from variousperspectives, and to let them cultivate the emotion regulation methods of their ownto cope with various situations, fulfill self-actualization and enhance quality of life. Based on feedback from the enrolled students and faculty, the course was educationaland helpful. 오늘날의 지식기반 사회는 지식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과양질의 지식에 바탕을 둔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 이러한 인재는 여러학문분야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어야 하므로 대학에서는 다양한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및 학문적 요청에 부응하여 융합 교과목인<정서의 이해와 조절>을 덕성여자대학교 교양 강좌로 개설하였다. 이 교과목의개발 및 강의에는 심리학, 불어불문학 및 식품영양학 전공의 3인 교수가 참여하였다. 이 강좌를 통하여 학생들이 인문, 사회 및 자연계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시각으로 정서를 이해하고 정서 조절법을 익혀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제고하고 효과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업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 교과목의 시도는 수강학생들과 참여교수들의 평가를통하여 살펴볼 때,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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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총론: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이만열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인문과학연구 Vol.24 No.-

        한국근현대사는 한말 개항 이후 국내외로부터 부닥친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일제 강점기를 맞게 되었고 이에 저항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는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국토는 분단되었고 민족상잔까지 겹쳤지만 그런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갔다. 근현대시기에 이룩된 이런 역사적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형성하면서 오늘의 한국을 형성해 왔다. 오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갖는 이 학술 심포지움은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념관이 위치한 이 강북구 수유리의 산자락에는 과거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독립유공자들의 묘역이 16기나 있는데 한말 헤이그 특사로서 현지에서 분사한 이준(李儁) 열사로부터 해방공간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통일정부를 세우려다 비명에 간 여운형(呂運亨) 선생도 누워있다. 뿐만 아니라 강북구에는 한국 현대사의 일대 전환점을 찍은 4.19영령들의 묘역이 또한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강북구는 실로 한국 근현대 민족 민주운동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는 성지라고 할 것이다. 이곳에 근현대사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이런 의미가 있다. 이 학술회의의 의제인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과의 상관성을 고찰해보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기조발제도 의미를 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한민국의 성립과 독립운동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학계 일각에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의 성립을 정리하려는 뉴라이트계의 역사관이 존재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대한민국(헌법정신)이 독립운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살펴보고 그것을 확인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헌법정신)의 성립을 독립운동과의 관련성에서 살펴보려면, 독립운동에 나타난 제반 인맥과 운동, 사상과 지향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녹아들어왔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대한민국 성립에 보이는, 독립운동의 운동적 측면과 사상적 측면이 먼저 고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의 다양하고 폭넓은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성립과 어떻게 관련되었는지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제임을 절감, 우선 한국 독립운동을 개관이라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대한민국의 성립과정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어떻게 이뤄졌으며 그 정신이 어땠는가를 간략하게 살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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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 회화교과서에 대한 역사적 고찰

        량오진 ( Wu-zhen Liang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0 인문과학연구 Vol.5 No.-

        韓國爲事大交隣的外交目的, 歷來重視外語敎學, 由於中韓兩國的特殊關係, 尤其重視漢語敎育. 本論文以歷史文獻爲依據, 着重考察韓國歷代使用的漢語會話敎材, 幷分析其特點. 據本文分析, 韓國歷代使用的漢語敎材, 主要有兩種. 一種爲用口語直譯中國經典的直解體敎材, ?一種爲兩人對話形式的會話敎材. 這些敎材, 有的直接由中國引進, 有的則由韓國自行編纂. 經本文考察不難發現, 當時的譯學者們爲掌握實用而準確的漢語, 在選用和編纂會話敎材方面所付出的巨大努力. 如爲了適應語言的發展變化, 就同樣的一種會話敎材, 在元, 明, 淸不同的歷史時期, 進行了多次修改. 幷且爲了學習方便, 用韓文諺解原文內容幷逐字注音. 特別引人注目的是用韓文注音時, 除了注下傳統的漢語語音外, 還特意注下了當時中國北方地區實際使用的漢語口音. 此外, 譯學者們還編纂了實用而方便的辭典和韻書等參考書. 據本文考察, 韓國在歷史上選用和編纂漢語敎材方面, 爲今人留下了?多値得借鑑的寶貴經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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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1 | 조선시대 풍양 조씨 가문과 도봉구> 조선중기 풍양조씨 증장령공파의 도봉구 정착과 청교조씨

        오세현 ( Oh Se-hyu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인문과학연구 Vol.27 No.-

        풍양조씨(豊壤趙氏) 증장령공파(贈掌令公派)는 중종반정을(中宗反正) 계기로 한양에(漢陽) 기반을 마련하면서 현재 도봉구(道峰區)의 방학동에 해당하는 해등촌에(海等村) 선영(先塋)을 마련했다. 중종반정의 핵심 공신(功臣)들과 인척 관계를 형성했던 풍양조씨 증장령공파는 한양의 청교(淸橋)에 주거 기반을 마련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청교조씨(淸橋趙氏)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사대부 사회에서의 폭넓은 교유를 기반으로 하여 청교조씨는 노론(老論) 측 인사들과의 혼인은 물론 소론(少論) 측 인사들과도 중첩적인 관계망을 형성했다. 노소론을 넘나드는 혼맥(婚脈)과 함께 정치적으로 노소론의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 있는 정치 감각을 보였던 청교조씨 구성원들은 청교와 해등촌을 기반으로 하여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전반사대부 사회에서 국중 최고의 가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가문의 성장은 이후 영조대(英祖代) 탕평정치의 정치 현실에서 주도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정치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Pungyang-Jo Clan(豊壤趙氏) Jeungjangnyeonggongpa(贈掌令公派) laid the groundwork in Hanyang(漢陽) with Jungjong-banjeong(中宗反正) and prepared a family burial ground in Haedeungchon(海等村) now Banghak-dong, Dobong-gu. Pungyang-Jo Clan Jeungjangnyeonggongpa made the family relationship with a meritorious retainer in Jungjong-banjeong and prepared the housing laying the groundwork in Chunggyo(淸橋). They were called Chunggyo-Jo Clan(淸橋趙氏) based on the political growth. Chunggyo-Jo Clan made the overlay network with Noron(老論) and Soron(少論) based on wide range of companionship in gentry society. Chunggyo-Jo Clan had got related by marriage with Noron and also they had got related by marriage with Soron. Chunggyo-Jo Clan did not lean to one side with Noron and Soron in the field of reality of politics. They showed balanced political sense by marriage network and political scene in the late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y achieved the best growth in the family stand on the basis of gentry society from the second half of the seventeenth century to the former half of the eighteenth century. And the growth of Pungyang-Jo Clan Jeungjangnyeonggongpa let them to play a key role in the balancing politics of the King Yeongjo, the 21st King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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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지역문화와 인문학> 도봉서원과 조선후기 ‘정신문화공동체' : 지역문화의 사례 연구

        윤정분 ( Yoon Jungboon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인문과학연구 Vol.13 No.-

        This study investigates the backgrounds of the foundation of Dobong Lecture Hall and the political setting of its enshrinement of JeongAm and WuAm, under the diachronic perspective of the local community. The study reveals that Dobong Lecture Hall, which amounted to the spiritual culture community in the 17th and the 18th century, served as both the ideological prop and the material base for contemporary political force. Dobong Lecture Hall also functioned as the spiritual culture community for people pursuing the consciousness of criticism and the spirit of resistance, both of which were symbolized by JeongAm and WuAm. The ideal and the spirit of Dobong Lecture Hall was succeeded until the mid 18th century, which can be confirmed through many prose collections or epigraphs written by Confucian scholars visiting the place. Dobong Lecture Hall became the life culture community including economic life and ethnic customs, as a result of the development of commodity economy and the opening of modern markets in the late 18th century. The shift of its role can be affirmed by the fact that this area had a large market, the Nuwon controlling the market, and the neighboring Seonghwangdang. The aforementioned facilities were forcibly damaged or remove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development for modernization. Although traditional local communities in this area now remain only as historical sites and records, they have great implications for the diachronic illumination of an area study, in that their research yield invaluable results concerning the process of historical change and transition of the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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