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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철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무식하며 포용적이지 못하고 비타협적인 신학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 근본주의는 19세기에 일어난 현대주의에 맞서 전통적인 신앙을 지키고자 일어난 운동이다. 미국장로교회에 나타난 근본주의의 뿌리는 미국장로교회가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장로교회의 신파와 구파, 그리고 신학파와 구학파의 대립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뉴 잉글랜드 신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19세기 말 미국 사회는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그들의 청교도적인 신앙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과 고등 비평은 성경의 완전성을 의심케 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도전에 대해 근본주의는 역사적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일어났다. 성경예언대회에서 선언한 14개의 신조와 「근본진리들」은 현대주의와 대항하는데 기초적인 골격을 제공하였다. 전통신학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은 찰스 브릭스를 시작으로 계속 되었다. 그들은 성경의 완전성에 의문을 던졌으며,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수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메이첸은 현대주의에 맞서 대항하였으며 자신이 물려받은 장로교 신앙을 지키고자 힘썼다.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투쟁은 칼빈주의적인 정통신학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고전적 근본주의 또는 긍정적 근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스코프스 재판 이후 근본주의 운동의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더욱 더 호전적이며, 분리주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고전적 근본주의는 개혁교회의 흐름속에서 역사적 지원을 가지며 개혁신학에 뿌리를 둔 그룹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오늘날에 있어 칼빈주의가 나아갈 방향은 성경의 무오성과 교리적 순결성을 지키고 또한 사회참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힘써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Fundamentalism is sometimes recognized as ignorant, incomprehensive and uncompromising theology. However, it comes from the lack of understanding toward fundamentalism. Fundamentalism is a movement that rose to keep traditional faith against modernism in 19th century. The origin of fundamentalism revealed in American presbyterian church grew out of the advent of American presbyterian church. The antagonism of a new school against an old school and a new group against an old group was caused by the difference of recognition of 「Westminster Confession」and New England Theology. Toward the late of 19th century, American society was on the decline of puritanical faith due to material prosperity. High criticism and the theory of evolution by Darwin aroused suspicion against perfection of the Bible. Fundamentalism aroused to defend historic Christianity against challenge of liberalism. 14 articles of faith declared in the Bible prophecy meeting and fundamental laws gave basic structures to stand against modernism. Challenge of liberal theology against traditional theology kept up with Charles Bricks as its starting point. They raised a question about perfection of the Bible and thought that traditional confession of faith should be revised with the current of the times. Machen opposed against modernism and tried to keep Presbyterianism inherited. Struggle of fundamentalists against liberalism was on the purpose of keeping calvinistic traditional theology. It is called classic fundamentalism or positive fundamentalism. But after Scopes trial, the characteristics of fundamentalism turned negative and it appeared to be more warlike and it had a phenomenon of separatism. Classic fundamentalism aroused among the groups originated from reformative theology with historical support in the current of reformative church. Nowadays the direction of calvinism to go forward is to keep perfection of the Bible and dogmatic purity and it had a duty to try to widen the country of the God through social participation.
“?”를 통한 구약신학적 연구 : 월터 카이저와 엘머 말텐스의 비교
오성희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This study went behind as to ‘תירב’(berit) “We can say that the relation of Covenant between God and his people” and The Old Testament was especially written of the redemptive theology around ‘תירב'. The initial explicit mention that ‘תירב' was written in the Bible be revealed the Noachic promise in GE6:18 that “But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you” and the basic contents that was described in GE17:7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as an everlasting covenant between me and you and your descendants after you for the generations to come, to be your God and the God of your descendants after you.” is your key of the whole God's Covenant in the Bible. This Covenant, up to the Adam promise, the Noachic promise, the Abrahamic promise, the Sinatic Covenant, the David's Covenant, the New Covenant, was expressed through various groups to have the character of unity and progression in the middle of the current of the histor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give a person an idea of that Jesus Christ have perfectly accomplished ‘תירב' in the center of the history of redemption and is assured the better Covenant. We can realize the importance of ‘תירב' under the situation that pay no attention to the theme of ‘תירב' in actuality. And Walter C. Kaiser and Elmer A. Martens, two evangelism theologists, that appeared recently have something in common to analyze the old Testament Theology that is based on the concept of Covenant. Walter C. Kaiser put the accent on the concept of Covenant and Promise and the Bible is the theological center of canon that can make proof of all ages. He provides the analysises about a link of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to leave the first start of Covenant from GE12:1-3, just like Abraham is the start point of the history of redemption in order to pursue the God's Covenant to focus on the Covenant of Messiah. Elmer A. Martens is based on the Covenant and promise that give emphasized to the Plot of the Old Testament to analyze the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He makes use of the words that is the God's Plan ,the concept of Covenant, to talk with Moses. He analyzed that the theme to join the Bible over all is the God's Plan and this plan is the salvation, the Covenant community, the knowledge to know God, the land. He explained that arrived in the Imperial Age to get through the former Imperial Age and get joined on the new testament to get through the later Imperial Age. And Walter C. Kaiser watched as the center another to guide steps those contents and interpret the Bible to establish the unique main theme that is the Covenant the Old Testament by diachronic method, by the ages or centuries. But Elmer A. Martens saw as Covenant of a model pattern that gradually branch out the Covenant in spite of appear by itself an Covenant to be broken off by the ages that God's plan appeared fourfold. So the concept of ‘תירב' is very important concept to comprehend the Bible. To establish the Covenant through the whole history of the Bible is the sovereignty act of God. As God's people in the God's Covenant must live to obey to the words of God's Covenant grace as people of new Covenant in Christ to thank the grace and love unconditionally for God to show mercy. 본 연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많은 개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학적 개념인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언약(Covenant)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תירב’(berit)에 대해서 살폈고, 특히 구약은 ‘תירב'를 중심으로 한 구속사적 신학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 ‘תירב'가 나타나는 최초의 명시적 언급은 창세기 6:18절에 “나는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는 노아언약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 기본적인 내용은 창세기 17:7절에 나타나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성경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아담과의 언약,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와의 언약 그리고 다윗과의 언약,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통일성과 점진성의 성격을 가지고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의 중심에서 ‘תירב'를 성취하시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완전한 성취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 이러한 ‘תירב'라는 주제가 오늘날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구속사에 나타난 ‘תירב'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복음주의 입장의 두 신학자인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와 엘머 말텐스(Elmer A. Martens)는 구약성경 신학을 ‘언약’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구약신학을 해석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는 ‘약속’ 내지는 ‘언약’(Promise)이라는 개념에 강조점을 두고 성경이 모든 시대별로부터 증명될 수 있는 정경의 신학적 중심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메시아의 약속에 초점을 두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추적하기 위하여 구속사의 출발점이 아브라함인 것과 마찬가지로 ‘언약’의 첫 시작을 창세기 12:1-3절로부터 출발하여 신. 구약의 연관성에 대한 해석들을 제공한다. 엘머 말텐스(Elmer A. Martens)도 구약성경 신학을 해석함에 구약의 ‘흐름’(Plot)을 강조하면서 ‘계약’(Covenant) 내지는 ‘언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모세와의 대화 속에서 계약의 개념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로 사용한다. 그는 언약의 패러다임을 발견한 출애굽기 5:22-6:8절에서 그 출발점으로 하여서 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묶어주는 주제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 계획은 구원, 언약공동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 땅이라고 한다. 그는 출애굽 사건에서 전(前) 왕정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 이르고 후기 왕정시대를 거쳐 그 후 신약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월터 카이저는 구약성경을 통시적인 방법으로 즉 시대별로 또는 세기별로 ‘언약’이라는 독특한 중심 주제를 설정하면서 성경을 해석하고 그 내용들을 이끌어나가는 또 하나의 축으로 보았다. 그러나 엘머 말텐스는 하나님의 계획이 4중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의 계약이 시대별로 단절되어 단독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으로 ‘계약’(Covenant)이 확장되어가는 일종의 모형론적인 계약형태로 보았다. 이렇게 ‘תירב'라는 개념은 성경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성경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언약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이시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새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한국장로교회의 분열과 합동에 관한 연구 : 1979년 주류(합동)와 비주류(구개혁)를 중심으로
경주현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무리들의 총체이다. 이러한 일련의 구원받은 무리들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감으로써 구원받은 인간으로서의 삶에 실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세우신 것이며, 또한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순교적 희생정신으로 말미암아 굳건하게 세움을 입게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다. 이러한 교회가 19세기 말엽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전래되었다. 초기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은 대부분 장로교를 바탕으로 한 신학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세워진 교회는 자연 장로교적인 정치형태의 교회가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한국장로교회는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한국장로교회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분열이라는 상처들로 얼룩져 있는 것 또한 한국교회의 역사이며 가슴 아픈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분열원인은 신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또한 정치적이거나 혹은 교권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학적인 뚜렷한 이유 없이 단지 정치적이거나 교권적인 이유로 인한 교회분열의 흔적은 아직도 한국장로교회의 큰 아픔과 상처로 남아 있다. 1952년 고신측과의 분열, 그리고 1953년 기장측과의 분열, 1959년 통합(연동)측과의 분열, 1979년 개혁(비주류)측과의 분열, 1980년 합신측과의 분열 등이 대표적인 분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분열 때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세워 분열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그러한 명분이 과연 하나님과 교회 앞에 합당한 것이었는지는 가슴 깊이 반성해보고 되돌아보아야 할 우리들의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장로교 역사에서 괄목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주류)측과 구개혁(비주류)측 교단이 1979년 여러 가지 이유로 분열된 이후 26년 만인 2005년 9월 전격적인 합동을 이루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분열로 얼룩진 한국장로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하나다”라는 대명제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이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화합과 연합이라는 새로운 대 역사를 이루었다. 2005년 제90회 총회에서의 양 교단 합동은 어디까지나 성령의 역사였으며, 인도하심이었다.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화합과 연합을 열망하는 전국 교회와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양 교단 합동이라는 결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내적으로는 개혁주의 전통신학을 확립하고 발전시켜 성경적 대화합을 바탕으로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매진할 때이다. 그리고 개혁주의적 신앙과 신학을 계승하는 교단 간의 교회 연합활동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또한 전통적 기독교 신앙관인 개혁주의적 신학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며 올바른 교회로서의 표지를 유지하며, 각 교단의 특수성을 존중하고 이해하여 기독교적인 행사와 선교에 대한 확장과 사회를 향한 봉사와 사업 등에 있어서 협력하여 참된 교회로서의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외적으로는 성경중심의 세계관을 품고 세계 선교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비록 한국장로교회가 걸어온 길이 정도의 길은 아닐지라도 그 길은 분명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길이기에 우리는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적 발자취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발자취를 기억하고 되돌아보아 역사에서 얻은 교훈에 대해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켜 후대에게 적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 선교를 위하여 같은 신앙과 신학을 계승하는 단체들과의 연합활동을 전개하면서 전통적 기독교사상을 지닌 교회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장로교회는 교단통합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는 몸 된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말씀의 바른 선포와 구원의 증거가 나타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 세계 선교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교회와 세상 앞에 더 이상 분열이 아닌 하나 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한국장로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김영수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본 논문의 집필하게 된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개혁신학과 정통교리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잃어가는 현대교회를 도전하기 위함이다. 현시대의 기독교의 신학은 매우 혼탁해져 있다. 개혁신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후 신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사상의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신학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말로 개혁주의 신학의 재확립이 필요한 시대이다. 개혁주의교리의 부재로 인해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잘못 가르쳐지거나 은닉됨으로 개인적으로는 경건의 능력과 교회적으로는 생명의 능력을 잃어버린 통한의 시대가 된 것이다. 교회가 생명력 있게 세워져 가기 위해서 제일 중요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리와 신학을 세우는 것이다. 신학과 교리를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여기면서 세상을 본받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개혁교리 중에서도 죄 죽임 교리는 교회가 영광스럽게 세워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리이다. 이 교리를 가르침을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음을 알게 되어 구속의 은총을 찬송하게 될 것이며,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지리라 확신한다. 필자는 본 논문 연구를 통해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한국교회 안에서 개혁교리의 재확립과 생명력 있는 신앙을 회복시키는 일에 작은 공헌을 하리라 믿는다.
믿음의 교리와 실천에 대한 신학적 일치성과 상이성 : 칼빈과 바르트를 중심으로
이효근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The purpose of thesis is to clarify the saving faith or the justifying faith that reformed theologists emphasize based on the Bible. For this purpose I investigate the view of Calvin and Barth on the doctrine and the exercise of faith, particularly the reality and the identity of God, the faith toward God, the relation between faith and God. Calvin and Barth partially hold the same view on God revealing self, the sovereignty of God, the epistemological tendency in defining faith, the Trinity as object of faith. But they hold the very different view on the reality of God, the Bible, the identity of God in justifying, "imitatio Christi" and "fides salvifica" as the definition of faith, the identity of God as object of faith.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two theologists' views lies in the identity of living God, and in the reality of faith toward God. In Barth's theology, God is inseparable from His revelation, that is, God is none other than the revealer, the revealed. Barth's theology keeps the identity of living God within His revelation. And in work of faith, man himself is nothing for. He is not in control. He simply finds himself in the work of Jesus Christ. Therefore, Barth's faith is totally absorbed in Jesus Christ, it does not make him look to God. Barth's faith can only recognize the fact that his ontological “new right"(justification) established in Jesus Christ. On the other hand, Calvin does not regard God Himself as the Word of God. In Calvin's theology, God is not the God who exists in only His Word. God is the Creator, the Preserver, the Redeemer, the Judge, and the Revealer in His full existence. According to Calvin's Institute, faith looks to God directly through the Word of God. And in the reality of faith, the primary object of faith is God the Father(through the Mediator Christ). Calvin believe in the living God who works and bestows on us heavenly benefits through the Holy Spirit in our empirical world. The reformed theologists in discussing the doctrine and the exercise of faith emphasize the intellectual tendency, that is, the significance of doctrine and proposition. But they also look out for the dogmatic faith that can be caused by stubborn intellectualism. “notitia fidei" on which Calvin insist is not only intellectualism, but also knowledge that support faith as subordinate role. It is the persuasive force by the power of God, the mysterious notion that can produce salvation. We must believe the reality of God's existence and of His actual salvation. We believe not only in God the Father, but also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and His Son by the secret energy of the Holy Spirit. Faith is the preeminent work of the Holy Spirit. Therefore, today now we bravely stand opposite each other the heterodoxy that express a heretical doctrine as Barth, because of the conservation of reformed faith and expansion of it. 본 연구는 칼빈과 바르트의 신앙론을 비교하면서 믿음의 교리와 실천에 대한 그들의 신학적 일치성과 상이성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실재(實在)와 정체성(正體性)”,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 그리고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의 견해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두 신학자는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칭의를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믿음의 정의에 대한 그들의 인식론(지식)적 성향,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삼위일체론 등에 있어서는 표면적으로 견해를 같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재성(實在性)과 성경관, 칭의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정체성(正體性), 믿음의 정의로서의 “imitatio Christi”(그리스도의 모방)과 “fides salvifica”(구원의 신앙),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정체성 등에 있어서는 내용적으로 매우 다른 견해들을 갖고 있다. 두 신학자의 근본적인 상이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정체성(正體性)과 그를 향한 믿음의 실재성(實在性)에 있다. 바르트의 믿음은 하나님의 자리에 말씀이란 계시 개념이, 믿음의 자리에는 전적으로 존재론화된 그리스도가 대치되어 하나님의 정체성과 믿음의 실재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믿음을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흡수시키며,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Deus pro nobis’(God for us)를 단순히 인지(認知)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칼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정체성과 믿음의 구체성, 현실성, 실재성에 있어서 명확하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자, 보존자, 구속자, 심판자, 전 존재의 계시자이시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하나님이 베푸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유일한 수단으로, 그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의 모든 유익”(Christ and all His benifits)을 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믿음의 교리와 실천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는 지식적 측면, 즉 교리와 명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완고한 지성주의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교조주의적 신앙 또한 경계한다. 칼빈이『기독교 강요』에서 말하는 “신앙의 지식”은 지성주의도 아니고 믿음을 도와주는 종속적 역할로서의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에서 비롯되는 설득의 힘으로서 구원을 가능케 하는 신비적인 앎이다. 그의 믿음은 신앙의 지식에 의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확신하는 복음 신앙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르트 신학과 같은 이단사상에 맞서서 투쟁함으로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앙을 보수하고, 그것을 확산시켜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우윤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선교 신학적 사상은 신약에서와 같이 구약에서도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다. 소선지서를 단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소선지서의 다음과 같은 선교 신학적 사상을 드러내어 준다. 첫째, 선지자와 예언의 진위성 문제를 통한 참 선지자의 특성은 “선교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게 한다. 둘째, 오경의 죄 심판 은혜라는 유기적 주제는 소선지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은혜사이의 신앙적 긴장감은 이스라엘에게는 사명에 항상 깨어 있도록 하는 선교적 동력이 되며, 열방에게는 언제든지 즉시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근원적 힘이 된다. 셋째, 소선지서에 나타난 하나님-이스라엘-열방의 관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의 하나님인 것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시기도 하고, 열방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끊이지 않는 관심을 드러내신다. 특히 새 이스라엘로서의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오늘날의 교회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어떤 선교 대상이라도 적대적이지 않고 인내하는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을 의미한다.
송덕만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성경은 모든 믿는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은 초월성을 가지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신적인 차원에 속해 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책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단순히 하나님의 계시를 포함하는 하나님 자신의 책만이 아니라 아울러 사람의 책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을 살펴볼때 우리는 너무도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는바 현대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문화, 관습, 종교, 언어, 사상등이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읽기에 매우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점에서 구약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여 그 의미를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면서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해석은 성경을 석의하는데 준수해야 할 법칙들을 다루는 것으로 성경의 진리를 정확히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요즈음 해석학이 관여하는 범위가 매우 넓어져 해석학은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지켜야만 할 조건들을 근본적으로 따지는 것인데 이것은 석의하는데 적용시킬 방법론적인 법칙들과 아울러 역사적 이해에 관한 인식론적 전제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신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방법론은 없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구약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칙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거부하고 어떤 의미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란 질문을 할 수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늘날의 하나님이라면 그어떤 해석학적 원칙도 그 본문으로 하여금 오늘날의 하나님을 증언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적절한 이해를 하기위해서는 그 어떠한 방법론도 본문고유의 해설자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본문으로서 오늘날 살아계신 하나님께 봉사하는 본문을 해석하는 사람은 모든 방법론의 한계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모든 활용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본문을 그 역사적 맥락속에서 이해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배제하는데 관심을 쏟는 해석방법론이 추구되어야 한다. 다시말해 구약성경 본문의 원래 저자가 언제, 무슨말을, 어떤 의도로 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하는 작업으로 어느 주제를 역사적인 변화에 따라서 종적으로 연구하여 본문완성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통시적(diachronic)방법이라 하는바 정경의 최종형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그 해석의 목표를 어느 주제를 과거나 미래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어느 특수한 시기에서 관찰하려고 하는 공시적(synchronic)방법인 정경비평을 통해 역사비평학이 성경을 정경으로부터 이탈하여 정경으로서 신앙공동체안에서 성경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오류를 시정하기위해 정경비평에서는 성경을 정경으로 읽으려 한다. 정경비평은 정경화공동체와 현대신앙공동체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학자들의 연구를 교회의 성경봉헌대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경비평은성경을 정경적인 형태로 보존한 공동체와 분리할수 없음으로 성경이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증거한다. 구약본문의 의미는 최종형태의 정경형태의 신학적 맥락에 의해 결정되며 성경해석의 주요 임무가 본문의 의미와 메시지를 찾기 위한 최종형태로서의 정경본문과 그 신학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는데 있다. The Bible is the book that records words of God for all believers. The Bible is transcendental and belongs to the category of the divinity which means words of the revelation of God. The Bible, that is to say, is the book of God. But it is not only the book including the revelation of God, but also the book of human beings. The Bible has cultures, customs, religions, languages and thoughts that can rarely evoke the present men' sympathy simply because it has dealt with very long history, so we find out that we can not read it easily. On that point, it is necessary but uneasy to interpret the Bible correctly and to inform many people of the correct meaning of it. Especially, the interpretation in the traditional meaning is related to rules that we abide by when we construe the Bible, so it is very important to transfer the truth of it. Nowadays, however, hermeneutics has many and various categories. As the result, hermeneutics needs capturing epistemological premise about historical understanding and methodical rules for construing the Bible. And yet, there is not natural methodology about the Old Testament theology. In view of the results so far, we can answer as given below, "What kinds of methodologies of hermeneutics do we set aside and what sorts of methodologies of hermeneutics do we develop?" Any hermeneutical principle can not compel the text to testify today's God on condition that God in Israel is equal to today's God. Accordingly, no methodology can take the place of God's spirit which is interpreter of the text. Every hermeneutics scholars must recognize that every method has its' own limit. Therefore, he or she has to make good use of all the measures and pursuit of method of hermeneutics which is related to removing arbitrary interpretation . In other words, it's impossible to reconstruct history to completion of the text longitudinally beside the orignal author's intent. This is called diachronic method. In canon critique, they attempt to read the Bible as a canon to correct errors that historical critique doesn't fulfil well in faith-community as a canon. Canon critique emphasizes the continuity between canonical community and modern faith-community and it leads researches of scholars to the bible dedication stand of the church. The Bible clearly testifies responsibility of the church because canon critique can not be divided from canonical community. The meaning of the Old Testament depends on the canonical theological context and the principal task of the Bible interpretation focuses on matching with the meaning of the text and canonical text for the original message.
한국교회의 올바른 기독교사회복지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
류성호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본 연구의 목적은 사회복지의 욕구와 실천 현장의 변화 속에서 기독교사회복지가 성경적이고 목회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바른 기독교사회복지의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국가중심의 사회복지 정책 형성과 공공 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예산지원이 이루어지면서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체성은 상실되었다. 그 주도권과 가치가 모두 국가와 인본주의 학문인 사회복지학이 그 근간이 되면서 그대로 교회 안에 수용되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사회복지의 실천 현장의 변화 속에 성경적 가르침을 중심해서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의와 가치체계를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또한 목회로서의 기독교사회복지를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해야하는지와 기독교사회복지의 가치체계 안에서 교회의 규모별 실천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기독교사회복지의 가치체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음에서 일반 사회복지의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혼란을 격고 있다. 기독교사회복지의 성경적 가치체계로 실천되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한 영혼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인 활동으로서 기독교사회복지는 실천되어야 한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기독교사회복지 역시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하고, 그러한 회복을 통하여 개인과 이웃, 사회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치되는 나라를 기독교사회복지모델로 찾았다. 기독교사회복지의 올바른 실천의 전제조건은 운영의 전문성과 투명성이 실현되어야 한다. 전문성과 투명성은 기독교사회복지 실천의 동기인 하나님의 사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재정과 인력의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복지법령에 근거에 의해 실천되어야 한다. 기독교사회복지의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신학 교육과 연구를 통해 일반 사회복지의 전문성과의 연계방안을 실천신학에서 제시하고 신학과정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 목회자는 기독교사회복지의 실천에 대한 당위성을 인식해야한다. 목회자의 의식 변화는 교단 차원에서 기독교사회복지에 대한 가치와 의미, 그리고 기본적 의식과 실천의 이해 등에 대한 교육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대형교회는 국가의 사회복지 공공 서비스의 전달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가야 함에도 타종교 기관에 비해 최근 수탁현황 및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형교회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기독교사회복지에서의 책임과 기독교사회복지의 성경적 실천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중형교회는 지역사회 속에 위치한 중요한 지역사회복지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가장 접근이 용이한 기관이 지역교회이다. 이 장점을 이용하여 지역사회의 욕구와 필요를 조사하여 지역사회로부터 잃어버린 신뢰성을 회복해 가야 한다. 지역사회 안의 중형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그들의 삶의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보살피는 기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소형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로 목회자가 직접적으로 기독교사회복지에 참여함으로 목회의 본질과 충돌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며 기도하는 일, 성도들을 돌아보며 목양하는 일이 목회의 본질이다. 물론 목회자가 기독교사회복지의 동기를 집사와 성도에게 부여하고 기독교사회복지의 가치관에 기초하여 실천되도록 살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경과 칼빈이 제시한 직제를 통하여 실천의 주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역사적·신학적 고찰 :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론을 중심으로
박신호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한국 교회는 선교 2세기 만에 많은 발전과 함께 크나큰 부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부흥은 단순히 선교사의 헌신과 노력만이 아닌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열정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부흥과 발전 가운데 미국 대각성 운동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러한 부흥의 역사는 한국 교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미국 제 1차 대각성 운동의 하나의 개혁 운동으로서 미국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부흥 운동을 통하여 미국 사회 전반은 새로운 사회로 변화 성숙 되어지는 단계를 가지게 된다. 미국 제 1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은 미국 사회 전반을 성숙하게 하였으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오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 제 1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사역을 하던 18세기 초반의 미국은 복음주의로 하나가 되었던 전세기 청교도들의 시대와는 상황이 달랐다. 청교도 이주자들의 첫 세대를 지도하였던 영적 거성들을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물질적 번영이 미국인들의 영적관심을 빼앗아가 버렸다. 복음주의가 강조하는 도덕성은 경건성과 아울러 혼미해졌으며, 오랫동안 행해 왔던 은밀한 기도, 각종집회, 주일성수가 사라진 시대였다. 교회의 출석률은 떨어졌으며 많은 이들이 열등감과 자포자기에 쌓여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에드워즈는 당시의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성취만을 강조하는 신앙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거듭 강조하여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구원을 받으라는 순수한 복음적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하루 열두 시간 성경을 연구하면서 충실한 목회를 했다. 그의 설교는 두 시간 이상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고함치며 설교하지 않았고 충실한 성경 주석을 기초로 특유의 청교도적 적용이 있는 교리적 해설을 제시했다. 그의 간절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1734년에서 3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동안 그의 교구에서 300여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거리에서는 술집에 인적이 끊기고,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설교를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됐다. 꼭 200가구로 구성된 노스햄프턴의 전체 주민이 중생(重生)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 역사는 실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대각성 운동을 통해 교회가 발전했고 영혼 구원을 목회의 가장 으뜸으로 삼게 되었다. 대각성운동 이후 미국사회는 절제, 여성해방, 해외선교 등 여러 분야에서 도덕적이고 박애적인 개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편 프린스턴, 다트머스, 브라운, 러트거즈와 같은 수많은 대학과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선교협회가 조직됐다. 대각성 운동의 가장 큰 기여는 미국인들에게 일체감을 제공한데 있다. 이제 교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심한 기독교인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로인해 각 교파의 연대감이 깊어져 식민지 각 주간의 이해를 촉진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독립전쟁(1775~1783)에서 식민주가 단결하여 승리를 얻는 원동력이 되었다.
문기원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It is true that the terms like ( ראשׁ, טלפ , טלמ, רתי , dyric; ) which represent the concept of "the Remnant" in the Old Covenant is rather nonreligious and worldly. Historically, 'the remnant' means a group of people who have survived a disaster. As a mythological concept, the theory of "those who have survived" actually belong to the context of judgment and rescue, All of these words which represent the theory of "the Remnant " has a passive meaning that emphasizes God's sovereignty. Not long before the theory of "those who have survived" was formulated, it also appeared in the Old Covenant during the period of Elijah, Noah, Abraham and Lot, Jacob and the special events surrounding Joseph. In the case of Elijah, the theory of "the Remnant" is closely connected to the political situation and religiously crucial moment in Israel. While the theory of "the Remnant" until this time was centered on the past, after the events of Elijah, it concerns the survivors of the future. In such a politically, and historically delicate situation, the period of Elijah was the very first time that the term "the Remnant was theologically used." Amos promised that there would be survivors because of God's mercy. Micah pointed out that the people of the Israel would also be the object of judgment. Although God passed judgment, he also left survivors based on his benevolence and through them he emphasized the hope of restoring the future of Israel. The remnant of Isaiah ultimately mean that people would be prepared for God's kingdom. Isaiah proclaimed an era of reformation He anticipated God's eternal kingdom, not the old and decayed organization of the past. Isaiah surely believed that Yawheh would control all the events of the land. So he regarded the present tragedy as part of the greater plan. This tragedy was sort of a discipline. It was looked upon as a method of purification leaving behind purified person, after Yahweh removed the impurities of the race. Meanwhile, the prophets of the community after Isaiah such as Haggai and Zechariah went about their based on their experiences in difficult times in prison and light of recovery after in prison. The times after imprisonment opened a new age just like the prophecies of the times before imprisonment. As messengers of God, they warned the people of the destruction, disgrace, and of being captured, and on the other hand, they advised them to look for shelter in God. Haggai and Zechariah confirmed the hopes from before exile. Which hopes based upon the fact that Yahweh Zion and the kingdom of David were chosen were becoming a reality. They regarded the small community of the Jews as the true survivors of Israel, and they also considered Zerubbabel as the descendant of David who ruled the remaining people. Although their preaching was bold and very dangerous, their message was a positive proclamation which showed a future full of hope for the remaining people. In conclusion, the remaining people who appeared before Isaiah were the remnant of purification, and show us that they have returned to Jerusalem after have been purified (in other words, after they have been imprisoned). 구약 성경에서 “남은 자”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는 사알(ראשׁ), 파라트( טלפ ), 마라트(טלמ), 야탈(רתי ), 사라드( dyric; ), 등의 주된 용법과 파생어들이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이 “남은 자”는 때로는 역사적으로는 확실한 실재, 즉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백성들의 “남은 자”를 의미한다. 또한 신학적인 개념으로서의 남은 자 사상이 심판과 구원의 문맥에 속하여 그 개념이 양면적이었다. 그리고 남은 자 사상을 나타내는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강조하는 것으로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은 자”사상이 엘리야 시대에 이르러 신학적으로 정립되기 이전에도 노아,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요셉의 생애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들을 통하여 구약 성경에 나타난다. 엘리야의 경우에는 “남은 자”사상이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위기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지금까지 남은 자 사상이 과거의 사건 중심인데 반하여 엘리야의 사건 이후에는 미래의 남은 자를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 정치적 난국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적용되었던 “남은 자”용어가 신학적으로 사용된 것은 엘리야 시대가 처음이다. 이사야 이전 공동체의 선지자인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자비로 남은 자들을 남겨 두실 것을 약속하고 실제로 남겨두신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날에 이스라엘 백성도 심판의 대상이 됨을 지적한다. 하나님이 심판을 선고하면서도 인애와 성실에 기초하여 남은 자를 두실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미래에 구원의 희망을 가질 것임을 강조한다. 이사야에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게 할 그런 성질의 것을 말한다.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역자로서 이사야는 변혁의 새 시대를 선포하고 옛 시대의 남은 자들에게 위대한 왕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는 옛 공동체가 낡고 썩어져가는 조직들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왕국의 새로운 불멸의 조직들을 고대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사야는 야훼가 지상의 사건들을 통제하고 모든 민족을 평화롭게 다스릴 당당한 왕권을 확립하려는 의도는 확고부동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닥친 현재의 비극을 그 계획의 일부로 보았다. 이 비극은 일종의 단련으로서 말하자면 야훼가 당신 민족의 성격에 쓸모없는 불순물을 없앤 다음 징벌을 받고 깨끗해진 한 백성을 남겨두려는 정화작업으로 보았다. 한편 이사야 이후 공동체의 선지자들인 학개, 스가랴는 포로기의 어두운 경험과 포로후기의 밝은 회복의 빛을 배경으로 사역하였다. 포로 이후의 시기는 포로 전기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새 시대를 열었다. 하나님의 언약 기소자들로서 그들은 그 백성들에게 임박한 멸망과 수치와 사로잡힘을 미리 경고하는 한편,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피난처를 찾을 것을 권고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유배 이전의 국가 공식신학 고유의 희망들, 즉 야훼 시온과 다윗왕조를 영원히 선택하였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희망들이 성취될 것을 확인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그 작은 공동체를 이스라엘의 참으로 남은 자들로 보았고, 또한 스룹바벨은 바로 그 남은 자들을 다스리는 대망의 다윗후손으로 보았다. 그들의 설교는 대담하고 선동적이며 극히 위험한 내용이 있었다 해도 그들의 메시지는 희망에 찬 남은 자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선포였다. 결국 이상에서, 이사야 이전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은 정화를 통하여 남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포로기라는 정화 과정을 거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환민으로서의 남은 자라는 포로 후기의 남은 자들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