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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글쓰기 교재 분석 연구 - 2005년, 2014년 고려대학교 글쓰기 교재를 중심으로 -

        윤철민 ( Chul Min Yoon ) 고려대학교 한국어문교육연구소 2015 한국어문교육 Vol.17 No.-

        본 연구에서는 고려대학교의 2005년 개정판 대학 글쓰기 교재와 2014년에 개발된 대학 글쓰기 교재를 비교 분석하여, 고려대학교 글쓰기 교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려대학교 2005년 교재와 2014년 교재의 비교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교재 분석 준거를 ‘형식 요소’와 ‘내용 요소’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하위분류 항목을 제시하였다. 두 교재의 ‘형식 요소’ 중 ‘제목’을 살펴보면, 2005년 1학기 교재는 ‘글쓰기의 기초’, 2014년 1학기 교재는 ‘대학 글쓰기의 이해’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05년 글쓰기 교재는 일반적인 글쓰기 교재로서 글쓰기의 기초적인 내용들을 제공하는데 의의를 둔다. 반면 2014년 교재는 ‘이해라는 제목과 같이 전반적으로 대학에서의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학습자들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분량과 부록’이다. 두 교재의 분량은 부록 부분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한편 부록을 살펴보면 2005년 교재는 한자 교육에 매우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2014년 교재는 부록에 발표와 토론, 어문규정, 한자성어를 포함하여 ‘읽기·쓰기’교육을 중심으로 한 말하기, 듣기, 문법, 한자의 ‘대학 국어(글쓰기)’교육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두 교재간의 가장 큰 차이는 분권의 형태이다. 총 3권의 계열별 글쓰기 교재로 구성된 2005년 교재와 달리 2014년 교재는 각 계열에 맞는 주제와 복합 주제로 구성된 단권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계열별 글쓰기 교재가 갖고 있는 ‘학문 통합적 사고의 어려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볼 수 있다. 내용 요소에 관한 분석에서 주목할 부분은 먼저 ‘교육 목표·이론’ 항목이다. 2005년 교재의 경우 교수 항목인 교육 목표·이론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2014년 교재는 머리말을 통해 고려대학교 글쓰기 교재(교육) 의 교육 목표와 이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수·학습 항목의 ‘단원 구성 및 전개’ 요소를 살펴보면 기존의 ‘설명-읽기자료1-도움말’ 형태를 유지하되 2014년 교재에서는 도움말 이후에 부과되는 학생 활동에 대해 더욱 세분화 하여 ‘기본 과제(쓰기·발표·토론)-심화 과제(쓰기·발표·토론)-활동자료’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태는 교재가 제시하는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학습하여 높은 수준의 사고와 표현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In this study, I compared and analysed, 2005-revised College Writing Textbook and 2014-developed College Writing textbook. Moreover, examined how it has changed. To compare the two textbooks in the study, we have classified ‘formation constituent’ and ‘content constituent’ as the criteria for analysis. In ‘formation constituent’, I looked over the ‘title’ first. The titles are ‘The basic of the Writing’ in semester 1 year 2005 and the other is ‘The Understanding of College Writing’ in the first semester in year 2014. The textbook in year 2005, is a general Writing textbook. It put meaning by providing contents of the basic writing. Then, the ‘Quantity and Appendix’. The quantity of the two textbooks does not have much difference except for the Appendix. In the appendix, the 2005 one very muchly tend to focus on the ‘education of Chinese characters’. However, in 2014 one, it includes ‘presentation and disucssion’, ‘liguistic rules’, and ’Chengyu’. Therefore, with ‘Reading·Writing’ Education as the center, it is educating formation of ‘College Korean(Writing)’ with speaking, listening, grammar, chinese charcters.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the two are form the division of the books. In 2005 second semester, textbooks by department are three. In 2014, textbooks are made in singular copy of book by its own suitable department and complex subject. This features are to solve the ‘scholar integrated thinking difficulties’ that the existing textbook by the department copy has had. ‘Context’ factor is ‘Education aim·theory’ factor. In 2005, the textbook does not specify the Education aim·theory. On the other hand, it is proposed in the ‘Heading’ of the textbook. Finally, I examined ‘unit structure and development’. Both textbook had the form of ‘description-Reading material1-help’. However, in the textbook of 2014, they detailed the student activity after the ‘Help’. If examine it carefully, I could figure out that it was composed with ‘Basic assignment (Writing ·Presentation ·Discussion) - Advanced assignment (Writing ·Presentation ·Discussion) - Activity Material’. This made the learners to learn that the textbook proposed step by step, and develop a high-level of thinking and expressing 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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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법학 106년의 회고와 전망 -노동법학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3 고려법학 Vol.0 No.68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학술지에 2012년 10월 현재까지 약 53편의 노동법관련 논문이 게재되었다. 필자의 대부분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하였거나 재직 중인 교수 들이지만, 최근에는 본교에 재직하고 있지 않은 연구자들의 투고도 점차 늘고 있다. 고려법학은 노동법학 분야에 관하여 고려대학교만의 고유한 학풍과 경향을 상대적으로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고려법학이 보여준 노동법학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 법질서의 조화적·유기적 관계 하에서 근로자보호를 실현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근로관계 질서의 형성을 도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나아가 현대적 노동질서의 방향과 논점을 제공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노동법도 전체 私法秩序의 범주에서 私法의 수정과 보완관계를 통해 노동법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 헌법의 객관적 가치질서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해석론의 준거로 제시함으로써 해석의 타당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종래 일본 노동법 일변도의 비교법 연구에서 독일 노동법의 역사와 이론 그리고 실무를 직접 연구대상으로 삼아 노동법 연구의 이론적 다양성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는 점을 그 기본적 방법론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법을 이념적, 계급적 틀에 가두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유기적 관련성을 고려하여 체계적 해석을 시도하고 그에 터잡아 이론과 실무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법학이 이룩한 노동법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특징을 고려하여 노동법학 방법론과 노동법체계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슈를 제시한 논문과 노동법의 새로운 과제영역을 던진 논문 그리고 비교법적 관점에서 새로운 쟁점과 논리를 제시하는 논문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노동법학을 위하여 고려법학이 이뤄낸 성과를 반추하고 있다. The journal of the Korea University Legal Research Institute which first launched as Law Journal(법학논집) in 1958 has carried about 53 articles in the field of labor law by October 2012. Most of the authors are from law department of Korea University or Korea School of Law, however increasing number of articles are being submitted by researchers from outside of the institute. Legal researches appeared in Korea University Law Review focus on establishing order of labor relationship as well as realizing protection of workers in the cooperative and organic relation with the whole order of law suggesting directions and issues regarding modern labor order. Particularly, they have pointed out that labor law has been developed through amendment and complement of principles of private law and they regarded constitutional objective order of values as standard of interpretation. Also contrary to the previous tendency of concentrating on comparative studies with Japanese labor law, the history, theories and practices of German labor law began to be dealt with to extend diversity and depth of research on labor law. This article attempted to ruminate the success Korea University Law Review has been deriving for legal studies on Korean labor law based on articles that presented methodology, new issues in regard to labor law system, original research subjects, new logic in the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comparison. The most notable characteristic of legal studies on labor law presented in Korea University Law Review is that they tried to systemically interpret the laws considering the order of laws as a whole instead of restricting labor law to ideologies and classism in order to harmonize theories and practices. This especially stands out as the academic tradition of Korea University Law Review since 1960, when legal studies on labor law were at a primary stage in Korea. Korea University Law Review has considerably contributed to academic development by pursuing normative integrity in interpretation, focusing on presenting reasonable policies based on constitutional objective order of values and professionally conducting comparative legal studies between Korea and foreign countries including Germany. It is expected that the methodology developed by Korea University Law Review lasts and advances to be established as academic traditions of Korea University Law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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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법학 106년 회고 및 전망: 민사소송법의 관점에서

        정영환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3 고려법학 Vol.0 No.68

        본 논문은 고려법학 106년 회고 및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민사소송법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고려법학(Korea Law Review)의 뿌리는 보성전문학교(Bosung University) 당시인 1907년 법정학계(Bosung Law Review)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논문의 내용은 고려법학의 학문적 업적은 보성전문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전임교수가 쓴 글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1905년 이후의 보성전문학교와 고려대학교의 교수진을 살펴본 후에 고려법학에 게재된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본다. 논문 중 1908년에 법정학계에 게재된 논문 2편은 민사소송법의 법제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어 원문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것으로 고려법학의 106년을 나름대로 회고하였다. 이러한 기초 위에 고려법학의 향후 발전방향을 간단히 제시함으로써 그 전망에 갈음하고 있다. Under the title “Retrospecting one hundred and six years of Korea Law Review and prospecting its future”, this article is describing the retrospect and prospect of the journal from the perspective of civil procedure. Korea Law Review has roots in Bosung Law Review that was first published in 1907, by “Bosung University”, the former self of Korea University. Because academic values of Korea Law Review have been established by faculty members of Bosung University and Korea University, this article first examines faculty members of the two universities; then it briefly looks through contents of the scholarly articles published in Korea Law Review. This article reviews contents of two articles more thoroughly that were published in Bosung Law Review in 1908, because they are thought to have important meaning in terms of legal history of Korean civil procedure. Likewise, this article looks back one hundred and six years of Korea law Review. Based on the retrospect, this article briefly suggests possible directions of future development of the journal in lieu of the prospect of it.

      • 고려대 한자이해능력인증시험의 현황과 발전 방안

        양원석(Yang Won-seok)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2008 동아한학연구 Vol.- No.4

        漢字에 대한 이해와 구사 능력은 국어의 올바른 이해 및 효과적 활용 능력을 높여 주며, 한자문화권의 동북아시아가 경제적ㆍ문화적으로 점차 그 비중을 증대해 가는 국제적 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한자 이해 능력의 필요성에 따라, 고려대학교에서는 2004학년 입학생부터 졸업 자격의 하나로 한자이해능력인증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고려대 한자인증시험의 현황 및 앞으로의 발전 방안에 대해서 검토해 보았다. 현황 부분에서는 고려대 재학생의 한자 졸업 자격 취득 방법, 고려대 한자인증시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고려대 기초한자 2,100자」, 한자인증시험 문제 유형, 한자인증시험 응시자 및 합격률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또 발전 방안 부분에서는 시험 문제의 난이도 조절, 합격 기준차등화에 대한 고려, 한자인증시험 대비 강좌 및 교재 개발, 외부 국가공인 한자시험과의 연계 모색, 시험 결과 공지 방식 개선, 한자인증시험 전용 웹사이트 개설 등의 의견을 제출하였다. The comprehension and command of Chinese characters raise the ability to properly understand and utilize Korean. Also, such. abilities allow us to cope with actively the international trend of the Southeast Asia, which belongs to Chinese characters cultural sphere, becoming influential economicallyㆍculturally more and more. In accordance with such a necessity as comprehension of Chinese characters, Korea University, as one of graduation qualifications, has been making a test from new students in 2004. This paper discussed about the present situation and development method of the Chinese characters certification test of Korea University. The present situation section examined how to acquire the Chinese characters graduation qualification of Korea University undergraduates, 「Basic Chinese characters 2,100 letters」 which is a subject of the Chinese characters certification test of Korea University, types of Chinese characters certification test problems, applicants for and success rates for Chinese characters certification test, etc. The development method section proposed following opinions; adjustment of the difficulty degree of test questions, consideration of differentiation of a success, development of lectures and textbooks in preparation for the Chinese characters test, seeling linkage with outside state-recognized Chinese characters tests, improvement of test result notification methods, establishment of the website for only Chinese characters certification tests,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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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국왕의 정동행성(征東行省) 보거권(保擧權) 장악과 그 의미

        김보광 ( Kim Bo-kwang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 2017 사총 Vol.92 No.-

        몽골과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고려왕은 몽골 출신 관료나 그를 등에 업은 이들에 의해 왕권이 제약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나 정동행성이라는 몽골 지방제도가 고려에 출현한 것은 직접적으로 왕권에 위협이 되는 요소였다. 하지만 충렬왕은 정동행성의 승상에 임명되고 이를 통해 몽골 관료를 포괄하는 의례적, 정치적 상위의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다. 충렬왕 이후 공민왕, 우왕에 이르기는 시기에 재위한 고려의 왕들은 사실상 모두 정동행성승상을 겸하였다. 특히 정동행성은 몽골의 관제이면서 그 운영방식 또한 몽골의 제도에 따랐다. 그러면서 고려와 몽골의 두 관제를 조율해야만 하였다. 정동행성에 대한 보거는 몽골의 관제 운영 방식에 따라 이루어졌다. 정동행성의 하위 관직들에 대해서 고려왕은 행성승상이라는 자격으로 보거권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이부로 그 내용이 전달되어 해당 관직의 관품에 따라 勅授나 宣授로 임명되었다. 정동행성에 대한 고려왕의 보거권이 인정되고 지속적으로 행사되면서, 정동행성의 운용은 승상인 고려왕의 주도 아래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 때문에 정동행성이 몽골의 관제이면서도 중서성의 인사조치가 부적합할 경우 정동행성이 자체적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인사권을 둘러싸고 정동행성의 위상에 독자성이 인정되면서 ‘국왕’과 ‘승상’을 함께 지닌 고려왕을 가리켜 ‘국왕승상’이라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제 고려국왕은 고려와 몽골의 양측의 관직을 지닌 고려인들에게, 고려 관제에서는 최종인사권자로, 몽골 관제로는 승상의 지위를 통해 당해 인에게 관직에 추천할 수 있는 보거권을 통해 사실상의 임명권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몽골 황제에 대해서는 승상인 고려의 왕이나 행성관인 고려의 관료가 모두 황제의 直臣이 되는 구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혜왕의 방종, 충목·충정왕이라는 어린 국왕의 즉위, 기철의 등장 등은 국왕의 정치력을 극도로 약화시키면서 고려왕이 행성승상으로 지녔던 보거권 행사마저도 상실시킬 위기에 놓이게 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공민왕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보거권의 재인정을 추진하였다. 몽골과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고려왕은 몽골 관직에 대한 통제책으로 보거권은 여전히 필요하였다. A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ryeo Dynasty and the Mongol Empire improved in the late 13th century, Goryeo kings faced a situation whereby their power was limited by Mongolian officials or Goryeo officials who were backed by the Mongol Empire. In particular, as the Mongol Empire installed a highest-level provincial institution of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korean called cheongdong-haengseong) in Goryeo as part of its punitive campaign eastward, the Mongol Empire became a direct threat to royal authority of Goryeo kings. However, King Chungryeol secured the highest position-both as a formality and institutionally-that oversaw Mongolian officials as he was appointed as prime minister of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in 1280, and thus fortified his political stature. Following suit, the subsequent Goryeo kings came to 'naturally' serve as prime minister of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Since the Secretariat was a Mongolian political system, Goryeo kings had to coordinate political systems of the two countries. Among bureaucratic organizations of the Mongolian Empire, low-level officials were sometimes appointed by recommendation. Similarly, for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Goryeo kings could recommend officials for low-level positions. The recommendations were sent to the Mongolian Ministry of Personnel, and appointment was made by the order of the emperor. As Goryeo kings continued to recommend officials of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a recognition became widespread that they took charge of managing the Secretariat as prime minister. Despite that the Secretariat was a Mongol institution, a rule was even established that gave discretion to the Secretariat to appoint officials on its own in case personnel decisions by the Secretariat were deemed inappropriate. As the independent status of the Secretariat on personnel affairs became clear, Goryeo kings came to be called 'guk' wang-seungsang' which combines Korean words for 'king (guk’wang)' and 'prime minister (seungsang).' With Mongol institution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installed within the country, Goryeo kings had to secure political power between political systems of the two countries. It was particularly so for people like Lee Gok who held dual positions with both the Goryeo Dynasty and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They were bound by a dual king-public servant relationship as they served a Goryeo king and a Mongolian emperor at the same time. For this reason, the right to recommend officials for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was highly important for Goryeo kings. They could organize a structure whereby they were the final decision maker in personnel affairs as a Goryeo king, and the de facto decision maker as prime minister for positions at Branch Secretariat for Cheng Tung through their recommendations. However, later Goryeo kings' political power shriveled due to indulgence of King Chunghye, premature enthronement of young kings (Chungmok, Chungjeong) and the dominance of Ki Cheol. Goryeo kings' right to recommend officials for Chung Tung Branch Secretariat was threatened to the point of being lost. Against this background, King Gongmin sought to recover the recommendation right as part of his reform efforts. Goryeo kings needed the recommendation right as a means to control Mongol officials as long a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la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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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법학 발전의 회고와 전망 : 고려법학에 실린 논문을 중심으로

        김연태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3 고려법학 Vol.0 No.68

        Since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which is the former name of the “Korea Law Review” was published, it has become academically important to overview the thesis published in the “Korea Law Review”,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and the “Law and Administration Review” in order to study the contribution of the “Korea Law Review” on the developments of the science of Administrative Law. Overviewing the Korea University law journal series listed above is also helpful in historicizing the aspects of the evolution of Administrative Law while simultaneously outlining the future prospects of the field of Administrative Law. The vitality of the efforts explained above is emphasized when concerning the high degree at which the College of Law at Korea University and its law journals influence the academic developments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In full consideration of the notion that the methods in which the history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is periodized in the “Korea Law Review” can by no means be interpreted under a single perspective, this paper divides them as follows. The first period is the time between 1958 when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was published and 1981 when the publishing title of the journal changed to “Law and Administration Review”. This period is when Korean Administrative Law laid its roots, primarily propelled by the efforts of professor Se-Chang Yoon, an academic among the first generation of the science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The second period begins in 1982 as the title re-changed to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and runs until 1992 when the 28th volume of the journal was made available. This period is shined with the great strides in the science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around the work of professor Nam-Jin Kim and Sang-Kyu Rhi, who were the second generation academics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The third period can be remarked as the time when the science of Korean Administrative Law attained to maturity, running from 1993 when the 29th volume of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was published until the publication of the 35th volume in 1999. Lastly the beginning of the fourth period is marked by the change of the journal's title to “Korea Law Review” in 2001 and the period has not seen its end until present. The fourth period can be evaluated as the time that the “Korea Law Review” copes with fluctuating legal circumstances and takes a key part in forming the theoretical base of new legal fields, as well as actively leading the way of progress in Korean Law studies at the very forefront. In accordance with periodical and societal variations, functions and tasks of administrations must change and it is not only an important mission but also a continuous responsibility of those who pursue the study of Administrative Law to recognize the changes and correspondingly renew the Administrative Law that applies to those changes. In order to vitalize interests and studies on the new fields of Administrative Law, researchers are advised to sustainably succeed and develop the achievements that the “Korea Law Review” has produced thus far. The “Korea Law Review”, along with its former versions that are the “Korea University Law Review” and the “Law and Administration Review” has been taking a significant role as an academic pioneer in modifying and maturing the theories and judical precedents of Administrative Law in Korea. It is expected that the “Korea Law Review” will proceed and take charge of playing a principal role in establishing the legal theories and related systems in Korean Administrative Law while fostering a creative legal culture. 《고려법학》의 전신인 《법학논집》이 간행된 이래 지금까지 《고려법학》 및 《법학논집》, 《법률행정논집》에 실린 행정법학 논문을 개관하여 《고려법학》이 행정법학의 발전에 기여한 의의를 찾고 행정법학의 발전상을 역사화하면서, 동시에 행정법 분야의 미래적 전망을 그려보는 것은 우리나라 법학의 발전에 있어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그리고 그 학술논집인 《고려법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볼 때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고려법학》에서의 행정법학의 역사를 어떻게 시대구분 할 것인지는 다양한 관점에 따라 행해질 수 있을 것인데,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제1기는 《법학논집》이 간행되기 시작한 1958년부터 《법률행정논집》으로 발간된 1981년까지의 시기로, 한국 행정법 1세대인 윤세창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 행정법이 뿌리를 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2기는 《법률행정논집》에서 다시 《법학논집》으로 바뀌어 발간된 1982년부터 《법학논집》 제28집이 발간된 1992년까지의 시기로, 한국 행정법 2세대인 김남진, 이상규 교수가 중심이 되어 한국 행정법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이다. 제3기는 《법학논집》 제29집이 발간된 1993년부터 제35집이 발간된 1999년까지의 시기로, 한국 행정법학의 성숙기에 해당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4기는 《법학논집》에서 《고려법학》으로 학술지 이름이 바뀌어 발간되는 2001년 이후의 시기로, 《고려법학》이 변화된 법환경에 대응하고 새로운 법분야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나라 법학의 발전을 주도적으로 끌고나가는 시기라고 평가될 수 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행정의 기능과 과제가 변화하고 그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법학 또한 새로워져야 함은 행정법을 전공으로 하는 우리들의 사명이며 계속 짊어지어야 할 부담이라 할 것이다. 새로운 행정법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활성화를 위하여 《고려법학》이 이루어 온 업적을 앞으로도 계속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고려법학》, 그 전신인 《법학논집》 및 《법률행정논집》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행정법 이론 및 판례의 변화와 발전에 주도적이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행정법 이론과 제도를 정립하고 창조적인 법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고려법학》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기대한다.

      • KCI등재

        고려 철화청자의 기원

        방병선(Bang, Byungsun)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3 한국학연구 Vol.45 No.-

        본 논문은 중국 장사요와 월주요, 서촌요로 나누어 각각의 기원과 고려 철화청자와의 관계를 검토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고려철화청자의 기원을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기존 연구 성과를 고찰하고 장사요와 월주요, 서촌요에 대한 현지답사와 자료 수집을 통해 시각적 특징과 기법 등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을 실시하였다. 먼저 장사요는 고려철화청자의 산화철 장식 기법과 장사요의 산화철유하채 기법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고려철화청자의 제작 배경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이미 한반도로 유입된 장사요 자기를 모본으로 고려청자에 유하채 기법이 실현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았으나 생산 시기의 차이와 조형적 이질감 등으로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웠다. 다음 월주요는 고려청자 발생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당송대 월주요에서 생산된 철채 청자의 수가 워낙 미량이어서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월주요 사룡구 요지에서 청자철화장고가 출토된 점과 소위 월주요계에 속하는 절강성의 온주(溫州) 구요(?窯)나 강서(江西) 홍주요(洪州窯) 등이 모두 송원대까지 철화청자를 활발히 생산하였고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가능성 또한 높은 점 등을 고려하여 고려 철화청자와 영향 관계가 있음을 유추하였다. 다음 서촌요는 철화문양이 12세기 고려 철화청자 문양과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기원에 관해 편년 차이가 심해 이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호남성 일대 송대 백매요와 형산요, 영전요의 자기에 모두 서촌요식의 화훼문이 등장하였고 북방 요주요에도 유사한 문양이 보이므로 고려철화청자에 등장하는 문양이 서촌요가 아닌 이들 가마로부터 전래되어 다양한 채회 방식으로 구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려철화청자의 발생은 장사요와 월주요, 서촌요 같은 중국 특정 요장과 고려청자 요장과의 일대 일의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단계와 중국 장사요와 월주요, 그 밖의 남방계 요장 등의 복합적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rvey the origin of the Korea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through the comparative study on the Chinese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of the Changsha kiln and the Yue kiln, the Xichun kiln. For the research, I explored the previous study on this field and executed the field survey of the Chinese kilns and analysed the decoration methods and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at wares. Firstly, I supposed that Koryo potters made the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by modeling the ceramics of the imported Changsha kiln in the Korean peninsula. But the gap of production date and stylistic differences between Koryo celadons and Changsha wares made that assumption uncertain. Secondly, I investigated that the potters of Yue kiln which took a great affect on the production of Koryo celadon in the beginning, had made a few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during the Tang and Northern Sung Dynasty. Even so, celadon drum with iron painted decoration, similar to the Koryo celadon drum, was excavated in the Silongkou Yue kiln site. Thus I assumed that Yue kiln could be related to the origin of Koryo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Thirdly, I found that the floral motifs of series of Xicun kiln that were supposed to be affected by the Yaozhou kiln in Northern China had the common style with Koryo iron painted celadon of the 12th century. But some excavation in Korea showed that at least from the 10th century, Koryo iron painted celadon appeared, it is hardly to say that Xicun kiln should be the origin of Koryo underglaze iron painted celadon. Finally, I concluded that Changsha kiln and Yue kiln including more Chinese kilns on various ways might be engaged in the making Korea iron painted cel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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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麗 中期 靑磁花形楪匙 硏究

        전남언(Jun, Nam Un)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7 한국학연구 Vol.60 No.-

        고려시대 청자화형접시는 고려 전시기의 가마터에서 확인되는 기종으로 청자화형접시를 통해 시기별 특징과 형태의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고려 중기 가마터와 유적에서 출토된 청자화형접시를 살펴봄으로써 고려 중기 청자화형접시의 양식 변천을 고찰하였다. 남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고려 중기 가마터에서 출토된 청자화형접시를 살펴본 결과 용운리 9호와 10호에 대해서 지금까지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청자화형접시를 통해 9호와 10호-Ⅰ층은 11세기, 10호-Ⅱ층은 12세기 전반∼13세기 전반으로, 부안 진서리 18호와 유천리 6구역․7구역은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으로 보았다.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의 기년명을 가진 정요와 경덕진요의 화판형접시를 통해 태안 대섬에서 출토된 청자화형접시의 시기를 12세기 전반으로 설정하는데 근거를 제시하였다. 석릉 출토 청자화형전접시는 기존에 부안 유천리 7구역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되었으나, 부안 유천리 7구역의 청자화형접시와 강진지역의 유물을 면밀히 살펴 본 결과 강진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려 중기 청자화형접시는 12세기 전반 요주요와 더불어 정요의 화형접시 특징이 나타나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12세기 전반 이후의 중국의 화형접시는 전 지역의 窯場에서 유사한 형태로 제작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고려와 중국 화형접시의 전반적인 양상을 살펴본 결과 중국의 경우 고려에 비해 다양한 형식의 화형접시가 제작되었다. 고려의 청자화형접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요소들이 확인되지만, 중국의 화형접시의 형태 중 고려의 미감으로 문양과 기형을 선택하고, 이를 변화시켜 청자화형접시를 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려 중기 청자화형접시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가마터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았다. Ⅰ-1期(12세기 전반)는 고려 초기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중국 요주요의 압출양각기법이 도입되면서 요주요와 유사한 화형전접시가 제작되며, 정요의 영향도 확인된다. Ⅰ-2期(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는 청자화형전접시가 전반적으로 유행한다. 금속기로 제작된 중국의 능화형전접시의 제작기법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형태적인 면에서 고려만의 특징이 확인된다. 본 논문에서는 12세기∼13세기 전반에 제작된 청자화형접시를 통해 가마터의 운영시기를 살펴봄으로써 강진과 부안지역의 가마터의 구체적인 편년을 설정해 보았고, 가마터와 유적에서 출토된 청자화형접시를 분석함으로써 고려중기 청자화형접시의 시기별 양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Celadon foliate dishes from the Goryeo Dynasty have been excavated from kiln sites of early Goryeo, and show characteristics and change in shape according to different periods in time. This study investigated celadon foliate dishes excavated from mid-Goryeo kiln sites and ruins and discussed change in the celadon foliate dishes during mid-Goryeo. Regarding celadon foliate dishes excavated from mid-Goryeo kiln sites in the Southwestern region, scholars have proposed various theories related to Yongun-ri 9 and 10. However, based on the celadon foliate dishes, it was agreed that no. 9 and 10-level 1 belong to the 11th century ; no. 10-level 2 to early 12th to early 13th century ; and Buan Jinseo-ri 18 and Yucheon-ri area 6 and 7 to late-12th to early-13th century. Based on the foliate dish of Dingyao and Jingdezhen that are dated late-11th to early-12th century, this study proposed a basis for estimating the time of celadon foliate dish excavated in Daeseam in Taean to be the early-12th century. Although it was suggested that Celadon foliate dishes excavated in SeokReung might have been originally made in the Buan Yucheon-ri area 7. However, based on close observation of the celadon foliate dish of the area and relics found in Gangjin, this study suggested the possibility it might have been made in Gangjin. Notably, mid-Goryeo celadon foliate dish show characteristics of foliate dishes of the early-12th century Yaozhouyao and Dingyao. Since the early-12th century, Chinese foliate dishes were made in similar shapes in klins in all regions of the country. Regarding the overall shapes of foliate dishes from Goryeo and China, Chinese dishes were more diverse in style in comparison to Goryeo dishes. Celadon foliate dishes from Goryeo show elements that were influenced by China. However, the patterns and formal elements were chosen and transformed based on the aesthetics of Goryeo to make celadon foliate dishes for Goryeo. This study investigated relics excavated from kiln sites and ruins in order to understand characteristics of mid-Goryeo celadon foliate dishes. During the first period(early-12th century), the extrusion emboss technique of Yaozhouyao, which was not used during the early Goryeo dynasty, was in troduced and adopted to make foliate dishes that are similar to Yaozhoyao. Also, the dishes show influence of Dingyao. During the secong period(early-12th to early-13th century), celadon foliate dishes was popular, overall. It is suggested that they were influenced by foliate dishes from China, which were made with metal, but showed unique characteristics of Goryeo in terms of the shape. This study examined the periods of kiln sites based on celadon foliate dishes made between the 12th and early-13th century, based on which the specific chronology of the kilns sites in Gangjin and Buan were estimated. Also, by analyzing celadon foliate dishes excavated in kiln sites and ruins, the study discussed the types of mid-Goryeo celadon foliate dish according to the releva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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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논문 : MOOC에 의한 민법 교육, 경험과 진단 -고려대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명순구 ( Soonkoo Myoung )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6 고려법학 Vol.0 No.80

        필자는 2015학년도 제2학기 고려대학교에서 ``민법`` 교과목을 MOOC로 운영했다. 이른바 오프라인 대학에서 정규 교과목을 MOOC로 개설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글은 대규모 강의에 있어서 학생들의 협력을 통해 단위 시간 동안 효율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실행한 경험을 소개하고 그 효용을 진단한 것이다. MOOC는 민법 강의에서 자주 느끼는 시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MOOC ``민법``과 그 전에 통상적인 방식으로 운영했던 ``민법``의 여러 차이점 중 특기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업준비를 매우 면밀하게 했다는 점이다. 교재로 사용할 교과서를 집필하여 출판하고, 각 주차별로 스토리보드를 작성하여 그에 맞추어 강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촬영된 강의 동영상을 모니터링하여 교정하는 등 준비작업에 들어간 시간이 적지 않았다. 둘째, MOOC ``민법``에서는 목표 진도를 무리없이 달성했다는 점이다. MOOC ``민법``에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밀도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면대면 수업에서는 교실에서 여러 번 반복 설명함으로써 시간적 손실이 불가피한 현상을 피할 수 있었다. 즉 학생들의 스스로 학습을 통하여 시간을 절약하고 학습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셋째, MOOC ``민법``은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을 촉진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 학기 동안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교수든 학생이든 법학 교육의 방법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비롯한 상호작용적 첨단교수매체를 활용한 강의는 정제된 수업준비를 통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면밀하게 구성된 온라인교육은 면대면 교육에 비하여 효율이 높다는 많은 연구결과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대학교육개발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또한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15학년도 2학기 MOOC ``민법``을 운영하면서 MOOC의 장점 옆에는 보완해야 할 단점도 병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규교과목을 MOOC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219명의 학생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쌍방향소통을 하면서 공부한 경험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During the fall semester of 2015 at Korea University the present author taught a course on civil law by means of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This was the first time a regular course was opened as MOOC at an offline university. The purpose of the present article is to offer an introduction to and assessment of the experience the present author has had in MOOC as a method of conducting massive courses where students can learn efficiently through their cooperation during a unit period. MOOC has shown new possibilities in solving the problem of time constraints while teaching civil law. The following are the most important differences that teaching civil law through MOOC has shown compared to traditional offline courses. First, preparations for class required a far more meticulous and detailed approach. Writing a textbook as teaching material and having it published, shooting lectures according to a storyboard that is prepared on a weekly basis, monitoring the videos and reshooting necessary fragments were very demanding and time-consuming. Second, making it through the whole course on civil law via MOOC was not a difficult task. It was possible to maintain a balanced pace throughout the whole course, thereby allowing steady progess. It was possible to aviod time loss that inevitably occurs during traditional offline courses when there is a need to explain certain parts repeatedly. Therefore students could save time and thus enhance efficiency by studying on their own. Third, civil law courses via MOOC served as a stimulus for self- directed learning. This proved beneficial both for the professor and students alike, thereby opening up new possiblities in teaching and learning. The use of computer network and other interactive means of teaching in conducting courses allowed for meticulous preparations for class which proved effective in improving the level of education. Experience in such teaching has shown that carefully structured online courses can be, as some research suggest, more efficient than traditional offline courses. A survey conducted by the Center for Teaching and Learning, Korea University points to the same conclusion. Along with numerous advantages of teaching civil law as MOOC, the experience of the fall semester of 2015 has also revealed weaknesses that need to be addressed. However such trial and error were only natural, given that it was the first time in Korea that a regular course was taught as MOOC. The experience with 219 students in interactive teaching and learning free from the limits of time and space will remain a memorable achievement to re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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