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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奉使圖》成??始末

        黃有福 韓國 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2000 亞細亞文化硏究 Vol.4 No.-

        한국 경원대학교 아세아문화연구소와 중국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가 실시하고 있는 학술협력연구의 결실인 《봉사도》가 정리, 출판되었다.(중국 요녕민족출판사, 1999년, 심양) 《봉사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측 사신이 그린 조선에 관계되는 유일한 화책으로서 청나라와 조선조 전기 문화교류사, 정치외교사 및 18세기 조선조 역사, 사회, 민속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중국에서는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년간 회화, 서예 및 시가문학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로 알려지고 있다. 《봉사도》는 조선을 네차례 다녀간 청나라 사신 아극돈이 1725년 3월에 영조대왕 책봉식에 부사자격으로 다녀가면서 기획했고 그의 의도에 따라 조선조 왕궁 화원과 청나라 화공이 선후하여 그림을 작성하였다. 아극돈은 매폭의 그림에 시를 써 넣었는데 그 시들은 《동유집》에 수록되었던 28수의 시를 그대로 그림의 경우에 따라 옮겨놓은 것이다. 《봉사도》그림이 작성된 후 21명의 그 당시 유명했던 화가, 서예가, 문인, 관료들이 시나 발문의 형식으로 그림 앞뒤에 글을 남겨놓았다. 본 논문은 《아세아 문화연구》 제3집에 발표된 "청나라 아극돈의 《봉사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 《봉사도》작성과정과 유전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One of the products of cooperation between the Asian Cultural Studies at Kyungwon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Korean Studies at the Central University for Nationalities was the discovery, compilation and publication of the "Bongsado." "Bongsado," written and painted by the Qing envoy A-Keuk-Don, with newly added annotations, was published by the Liaoning Nationalities Publishing House at Shenyang in 1999. "Bongsado" was the only book with pictures painted and written about Korea by a Chinese envoy in ancient times. It is the only and precious material for the study of the early cultural exchanges and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history between the Qing Court and Korea. It provided very precious scenes for the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royal dynasty at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Besides, it also provided precious material for the study of the art of painting and calligraphy and poetry and literature of the Kangxi, Yongzheng, and Qianlong periods of the Ch'ing Dynasty. The discovery of "Bongsado" has attracted widespread interests in the Chinese and Korean academic circles. Its publication would bring the interests to a higher level of study. I have published two theses about the study of "Bongsado." The first one "On the Newly Discovered Bongsado" was published at the Second International Academic Symposium sponsored by the Institute of Asian Cultural Studies at Kyungwon university, while the second one "A Tentative Probe into the Bongsado by A-Keuk-Don of the Ch'ing Dynasty" was published in the third issue of the "Asian Cultural Studies." This thesis will focus on the making of the original version of "Bongsado" and the process of its circulation.

      • 發展而又遲滯, 早熟而又未成熟 : 傳衣凌선생의 명청사회 경제변천론에 대한 논평 傳依凌先生的明淸社會經濟變遷論述評

        高壽仙 韓國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1997 亞細亞文化硏究 Vol.2 No.-

        傳衣凌선생은 오랜 기간 동안 중국봉건사회의 장기적인 지속문제와 자본주의맹아문제에 대해 연구하면서, 명청사회의 변천에 대해 체계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 발전과 지체, 성숙과 미성숙이라는 두가지 요소의 모순변화로부터 명청시대 사회경제의 특색과 실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명청시기에는 생산력, 생산관계에서부터 의식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많은 새로운 사물들과 요소들이 출현하였다. 상품경제의 발전, 인구의 급증과 그 유동속도의 제고 및 빈번한 농민전쟁의 종합적인 작용하에, 명청시기에는 이미 자본주의생산관계의 맹아가 출현하였으니 자유로운 노동고용과 수공업공장의 출현이 곧 그 상징이다. 그러나 중국의 봉건사회가 조숙하였으나 아직 미성숙하였기 때문에 명청시기 사회의 발전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소농경제에서 자생한 평균주의사상이 깊이 뿌리 박고 있어 중국자본주의맹아의 발전은 순조롭지 못했고, 맹아-소실-계승과 발전이라는 길을 따라 진전된 것이다. 傳선생은 깊고 예리한 견해와 계발적인 문제를 많이 제기했지만 그의 연구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는 외국 자본주의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중국은 완만하게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증명하려 했으나 그의 논증은 오히려 중국사회가 장기적인 침체상태에 처해 있으며, 중국의 경제조지과 소농제도 등은 절대적 강인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傳선생 본인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것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遺作《중국전통사회: 다원적 구조》에서 그는 원시사회로부터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공산주의사회로 발전한다는 "5단계론"에 의문을 표시하고 중국전통사회구조의 다원화적 특징을 명확히 서술하여, 금후 중국역사발전의 독특한 출로를 탐색하는데 좋은 이론적 틀을 제공하였다.

      • 對外開放是國家近(現)代化的心由之路 : 중국 근대화 과정의 한 명제에 대한 商權 對美于中國近代化進程的一個命題的商權

        余三樂 韓國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1997 亞細亞文化硏究 Vol.2 No.-

        본문에서는 50-60년대 중국사학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명제, 즉 "중국봉건사회내부의 상품경제의 발전은 이미 자본주의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으니, 만약 외국 자본주의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중국은 완만하게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라는 명제에 대하여 토론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본문은 서방국가의 근대화역사를 고찰하고, 신대륙의 발견, 국제무역의 발전, 국제신용제도의 형성과 식민지에 대한 약탈은 자본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불가결의 조건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로부터, 자본은 일종의 국제적 현상으로서 한 국가내에서 독자적, 고립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한다. 둘째, 명청시기에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에서는 다투어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관계와 상무관계를 맺을 것을 청하였지만 모두 쇄국정책을 실행하였던 중국통치자들에게 거절당하였다. 중국은 이로 인해 그들과 평등하게 교류하고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마지막에서 본문은 쇄국정책의 실시가 근대중국이 장기적으로 침체, 낙후된 중요한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상술한 명제는 일찍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대하는 적이 있지만 그것은 또한 中共이 한때 외교왕래를 소홀히하고 쇄국정책을 펴면서 이룩한 사상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등소평의 대외개방정책은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거친 결과이다. 대외개방은 나라의 근현대화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 <남풍>의 서사적 특성연구 : 손소희 장편소설연구

        전혜자 韓國 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2000 亞細亞文化硏究 Vol.4 No.-

        This present study attempts to investigate the narrative features of Son So Hee's novel, <Nam Pung>. Son So Hee is a female writer who is enthusiastic for writing a novel between late in 1940's and 1980's. She has a romantic passion while having a continental temper and critical social consciousness beyond feminine weakness. <Nam Pung> which is a representative novel of her middle age lacks in critical spirit and accusation against society due to the period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Along with the Japanese imperialism, another reason is that <Nam Pung> is emphasized on love between man hero and woman heroine. Putting emphasis on their love developed by their repetition of meeting and separation, a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critical consciousness tend to be naturally overlooked. <Nam Pung> is characterized as a modern romance as 19 century's novel. In the light of the structure of this novel, there are two characters. One is an archetypal haracter that identifies appearance with beauty. The other is a typical romantic character ending with happiness through lots of difficulties. In addition, compared to woman heroine, people measures a man hero's power and competence by his wealth and appearance. With this respect, <Nam Pung> is not 20 century's novel but 19 century's romantic novel.

      • 『奉使圖』에 나타난 18세기의 服飾

        조효숙 韓國 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2000 亞細亞文化硏究 Vol.4 No.-

        This paper examines costumes of the king and the officials in the early 18th century through 『Bongsado』. According to 『Kookcho Orae eo』, when receiving the Imperial command, the basic courtesy is that the king marches in the method of Daeganobu wearing Ikson Kwan, Gonryongpo while the officials wear Samo, Tanryong. However in 『Chosun Wangjo Sillok』it is noted that the king and the officials march into Mowhakwan wearing Sobok and then they change their clothes to Ikson Kwan, black Gonryongpo to receive the Imperial command and change clothes once again to Sobok to have a party. The king in 『Bongsado』 is wearing Ikson Kwan and red Gonryongpo in every scene, which is approriate according to 『Kookcho Orae eo』 but different from the cases of 『Chosun Wangjo Sillok』. The shapes of Ikson Kwan and red Gonryongpo in 『Bongsado』 are almost same with those in other records except one thing which is the place Ojoryongbo is drawn. Concerning official costumes, Samo and Ribja are wrong, because in Chosun dynasty it is a principle to wear Samo in Sangbok and in case of wearing Ribja they should wear it as Yungbok with Chullik. In terms of Tanryong, the shape agrees with what has been studied by now but the color is a little problematic. We can find as many as eleven colors of Tanryong in 『Bongsado』 but it demands further discussion whether all of these colors were actually used or not. In sum, just as we found several mistakes in the costume of Chosun officials in 『Chosun Tongshinsa』 which was drawn by Japanese, there are some mistakes also in 『Bongsado』 drawn by chinese although they are basically devoted to the truth.

      • KCI등재

        제국 일본 속의 <조선 시 붐> - 유학생 시인과 김소운의 『조선시집』을 중심으로

        경원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1 아시아문화연구 Vol.23 No.-

        <P>제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속에 형성된 조선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나의 붐을 형성하였는데 시문학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우선 <조선 시 붐>의 전조로써 일본 근대시단에서 활약했던 주요한, 정지용 등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시는 비록 일본 근대시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들에 의해 한국의 근대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들이 일본 시단에 시인의 이름을 새긴 것은 후의 시문학으로 일본 문학계를 지향했던 젊은 문학도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을 안기었기에 일본 제국 속의 <조선 문학 붐>의 전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예술적 욕구에 의한 활자화라는 개인적인 문학 행위와 더불어 정치ㆍ문화적 배려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 바로 김소운의 『조선시집』이이었다.</P><P> 진정한 의미에서 <조선 시 붐>은 일본어 번역에 의한 것으로 김소운의 『조선시집』이이 주도했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집』이 출판되기까지의 번역과 관련된 일본 내의 문화적 상황이라는 외부적 환경과 번역가로서의 김소운의 내면을 고찰했다. 『조선시집』이이 일본의 많은 문학자의 호평과 다양한 판본의 출판 그리고 이와나미 문고판까지 나오게 된 것은 번역에 있어 아름다운 일본어라는 점을 일본인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 측면이 적지 않다. 전통적인 율격을 따른 문어투의 번역체는 일본 근대 시단을 향한 배종을 뜻하며 문화 적 위계적 질서에 순응한 측면도 없지 않다. 달리 말해 <조선시 붐>의 이면에는 정치 문화적 배려에 의한 제국 내 문화 체제의 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 지배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집』이을 엮은 김소운의 역자로서의 내부적 의식은 외부적인 환경에 스스로 동화하며 오히려 굴종적인 번역 태도를 취했다. 월권과 비굴한 타협이 넘쳐 남에도 『조선시집』이이 <조선 시 붐>을 선도한 것이다. 이것은 피식민지 문화에 대한 위층 질서를 가릴 정도로 번역자 김소운의 빼어난 어학적 재능과 시의 선정이 예술지상주의라는 물결과 상호 공명했기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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