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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지역의 옛 지명 연구

        김종택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0 경산문화연구 Vol.4 No.1

        지금까지 경산 지역에 있었던 옛 땅이름을 찾아 그 어원을 밝혀 보았다. 비록 한자로 적혀 있지만 그것은 자연 지형 지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고유어인데 안타깝게도 모두 잊혀진 이름이 되고, 전혀 형태적으로 다른 한자음이 새로운 지명이 되어 통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에 와서 굳이 옛 지명을 찾아 되살려 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옛 땅에서 역사를 계승하여 살고 있는 후손으로서 지역의 옛 이름과 그 어원을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더 없이 소중하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밝힌 경산 지역의 옛 땅이름은 다음과 같다. 오늘 '경산'이라는 지명의 연원이 된 '押梁', '押督'은 '누르들'(黃野) 혹은 '누르터'이며 이것이 경덕왕 때에 한자어식으로 차자 표기되어 '獐山'이 되었는데, 곧 '노?뫼'이다. 이것이 고려의 건국과 함께 가자(嘉字)를 취하여 '章山'이 됨으로써 비로소 한자어식 명명이 된 것인데 고려말 忠宣王의 이름이 '璋'이기 때문에 글자를 바꾸어 '慶山'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慈仁'의 옛 이름은 '奴斯火' 혹은 '奴叱火'인데 그것은 '儒城'의 옛 이름 '奴斯只'와 어원이 같다. 여기서 '斯'와 '叱'이 통용되는 것은 여기서 그것이 사잇소리 't'로 실현되었음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음성적으로 'nuttel'을 표기한 것으로 해독된다. 이것은 오늘날 '늪벌'과 같은 것인데, 여기서 추출되는 어근 'nu' 혹은 'nup'은 일본어 'numa'(沼)의 어근 'nu'와도 일치한다. 유성은 물론, 자인 지역이 우리나라에서 제언(堤堰), 호소(湖沼)가 가장 많은 것도 이 곳이 '늪벌'이었음을 설명해 준다 할 것이다. 慈仁의 또 다른 옛 이름 '其火'는 'kipэl'로서 '큰 들'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珍良'의 옛 이름은 '麻珍良' 혹은 '麻彌良'인데 이것은 '마드르'(맏들) 혹은 '마미르'(맏물)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마'는 '앞' 혹은 '남쪽'을 가리키므로 '앞들' 혹은 '앞물'로 해독된다. 이것이 고려시대에 와서 '仇史' 부곡이 되는데, 이것은 '仇史珍良' 부곡의 준말로 곧 구릉 사이에 우묵 들어간 '구싯들'을 뜻하는 것이다. 끝으로 '河陽'의 고려초 지명은 '河州'인데 신라 이전에는 독립된 행정 구역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유어로 된 옛 지명을 기록에 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려 이후 한자어식 이름이 시종 물(河)과 관련되어 있고 그 지역이 금호강 북쪽 강 언덕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남아 있는 '물띠미'가 '물뜸'으로 河陽땅의 옛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제기하였다.

      • 지역활성화시대의 「지역축제」

        신호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지역축제는 과거지향적인 성격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과거지향적인 경향은 한국의 지역축제를 지역내의 교육적인 경향이 강한 특성을 띠게 만들었으며, 이는 곧 축제를 담당하고 있는 지역민을 입장을 고려에 넣지 않았다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지역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차이해소를 위해 지역축제에 주목하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서의 축제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축제들은 산재해 있는 지역의 문제 중에서 경제적인 지역활성화에만 너무 치중이 되어있다는 문제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역민의 현실중심의 행사라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이러한 축제의 변화는 구체적인 축제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지역활성화의 역할을 부여받은 현대 축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사레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즉, 축제와 지역활성화가 결부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축제가 지역민이라는 인간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종전의 축제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공동체나 문화를 중심에 두고서 지역민(인간)을 포섭하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민(인간)이 자신들의 이득이나 권리보호를 위해 공동체나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역전현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문화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생활의 일부로서 축제를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시급한 것이 문화에 대한 과거지향적인 사고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지역활성화라는 의미가 너무 경제적인 면에만 치우친 감이 없지 않으나,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경제이외에도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축제가 해결해야 된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소재들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축제의 소재를 과거에만 한정시키는 과거지향적인 사고로부터의 탈피는 꼭 필요한 과제이다. 이는 단순히 지역축제에 과거적인 소재를 등장시키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즉, 지역문화=과거로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필요에 따라 과거가 사용될 수 있다는 유동적인 자세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문화에 대한 지향성을 소거한 상태로서, 無에서의 출발을 필요로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축제가 이러한 사고로서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축제는 지역민에게 현실로서 와 닿을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 한다.

      • 使行歌辭 「西行錄」을 통해 본 문화충격의 실상과 의미

        이동찬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처가 아물고 조·청, 조·일관계가 한층 안정된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임병양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고, 또 서학(西學)의 전래로 일부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인식에 대한 변화 내지 확대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특히 연행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조선후기 사회에는 전통적 예의를 숭상하는 유가적(儒家的) 규범이 엄연히 존재함과 동시에 개방된 세계로부터 새로운 문물제도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적인 관심이 함께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타인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깨우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고 진보된 사상과 문물을 도입·전달하는 계기도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시대 환경에서 창작된 김지수(金芝搜)의 「서행록(西行錄)」에 나타난 대청 사행체험의 문화충격의 실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행록」은 ① 청나라 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관념적 허세 ② 병자호란으로 인한 적대감·배타심에 기초한 호인과 그들의 풍속에 대한 비하와 멸시를 주된 정조로 하여 예의지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먼저 드러내고 있다. 계속되는 여행과 함께 청나라의 거대함과 문물의 번성함을 체험한 서술자는 고정된 사고의 틀에서 점차 이탈한다. 둘째, 연경에 도착한 서술자는 조선인으로서의 주체의식과 긍지, 반청의식의 약화라는 변화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청나라에 대한 절대 부정이나 절대 긍정을 유보하면서, 볼거리·먹거리를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관심을 물질적인 사항들로 돌리게 되었다. 셋째, 연경의 물화의 번성함에 대한 서술은 변화하는 세계의 기운을 조선에 전달하는데 일조 하였을 것이며, 그 결과 19세기 문화 예술에 대한 욕구를 증대시키기도 하고, 한양의 소비 향락적인 문화풍조를 형성하게 하는데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넷째, 「서행록」의 무거운 주제에 대한 회피와 물화를 중심으로 한 나열적이고 자세한 서술방식은 작자의 문화적 인식과 반청의식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문학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뛰어남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다양한 견문을 사실적이면서도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서술태도는 나름의 장처로 인식할 만 하다. 물론 이것이 이후의 사행가사에 미친 영향도 상정해 볼 수 있겠다. 이상과 같이 사행가사 「서행록」에 나타난 19세기 대청 사행체험의 문화충격의 실상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글은 연행 혹은 통신사행의 체험을 기록한 여타의 사행가사에 나타난 서술자들의 세계관 및 문화체험의 양상을 아울러 살펴보지 못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서행록」과 함께 연행체험을 한 작자미상의 한문 사행록 「부연일기(赴燕日記)」와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 대구·경북의 전통 문화축제의 현황과 개선 과제

        김영권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대구 ·경북지역 축제의 과제- 대구·경북의 전통 문화축제는 그 나름대로 공동체 활동을 토대로 지역문화의 특징을 접목하여 이 지방에 맞는 축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타 지역에 비해 열악한 축제 환경 속에서 전통문화를 축으로 한 전통 문화축제는 상당히 발전하였다. 이 중 지역의 특성과 조화를 이룬 축제로 달구벌축제,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발,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청도 소싸움, 경산 자인 단오와 한장군놀이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들 역시 아직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앞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더 정확하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전통을 계승·발전시켜 새로운 전통문화축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지역축제를 복원하여 재현하고 나아가 전승하여 전통 민속문화축제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드러내는데 활용하여 대구·경북지역의 특성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축제가 진정한 지역민을 위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축제의 창조적인 계승을 위해서 위는 근거 없는 축제를 버려야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축제는 민속적·전통축제의 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구·경북지역축제는 지역의 특유한 풍속이나 세시 행사, 민속놀이에 그 근거를 두어 민중의 꿈과 이상을 형상화하여 지역민에게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종래의 축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양한 축제 종목을 축소하여 지역의 향토성과 무관한 종목을 빼고 연령, 계층,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지역민이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꾀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축제가 지닌 원초적 세계상에 다른 축제의 집단들을 끌어들여 국제적 축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의 축제가 세계적·국제적 성격을 띠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인간 근원적인 문화 인자를 지니고 있어야 찰 것이며 더불어 우리 지역축제가 지닌 근본정신이 현대적으로 재창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역의 축제는 단순한 놀이를 뛰어넘어 놀이를 통한 재생산을 이룩할 것이며, 나아가 지역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지역민을 결속시키는데 이바지 할 것이고 각 지역의 축제들과 연관을 이루어 관광상품으로서의 역할도 할 것이다. 결국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전통문화축제는 전통의 계승·발전, 현대문화의 창조, 지역공동체 주민들의 정체성 확립을 통한 공동체의식 함양, 지역문화의 발전과 지역경제의 활성화 등 지역의 역사·사회·문화·경제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 자인단오의 종합적 성격

        조춘호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자인단오의 연행방법과 그 개선방안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자인단오의 제 절차는 한 장군을 추모하고 위령하면서 수호신인 한 장군과 지역민이 하나가 되는 놀이마당을 연출하는 것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1999년 6월 17일, 18일(단오절) 양일 간에 걸쳐 시연된 자인단오의 제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 17 (단오전야 행사) 원효성사 다례봉행 (10:00 제석사) 도립국악단 초청공연 (17:00 계정숲) 6, 18 (단오-한장군 놀이) 한묘대제 (08:00 진충묘) 경축식 (10:00 경산여자전산고) 여원무·계정들소리 (11:00 경산여자전산고) 한장군 출정행사:호장굿(가장행렬) (12:00 경산여전산고-계정숲) 팔광대 놀이, 자인큰굿(13:00 ~ 17:00 계정숲) 시민화합 한마당 (17:00 계정숲) 연예인 초청 경축공연 (18:45 인기가수출연 TBC 생방송) 씨름대회 (10:00 전수회관 앞) 경축사진 공모전, 대추실 레기, 민속놀이 등 개최 이러한 절차는 자인단오 행사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지만 행사의 편의만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지며 자인단오의 정체성(正體性)을 살려내는 데에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앞서 논의한 소견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유교의식으로 거행되는 한묘대제를 올리기 위하여 호장굿(가장행렬)에 참가하는 자들이 면사무소나 자인여전산고 앞에 모여 행진을 시작하여 계정 숲 한묘에 나아가 참가한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안 무당들은 성황당에서 청신을 하여 강신된 신목을 마련한 뒤 이를 굿당인 시중당(使重堂)에 안치(安置)하고 제사상을 마련하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은 한묘대제와 청신의례를 참관하면서 한 장군 묘소를 한바퀴 돌아 다시 여원무를 시연할 장소인 여전산고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한묘에서 제사를 지낸 제관과 신목을 안치한 문당이 경축식장에 도착하면 식을 거행하고 이어 여원무를 시연한다. 여원무 시연을 마치고 이어 큰 굿을 진행한다. 이튿날은 전날의 여원무 시연 시간과 같은 시간에 계정 들소리를 시연하고 팔광대놀이를 연희하는 순서로 구성하면 단오굿으로서의 특성을 살리며 긴 시간을 갖고 많은 행사에 흥미를 갖고 참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전에 현청 앞을 출발하여 계정숲 한묘까지 나아가는 가장행렬인 호장굿을 하고 돌아오면서 버들 못가에서 여원무를 추고 다시 현청 앞에서 사또에게 보이기 위해 여원무를 추었다는 기록을 고려하여 자인단오의 하이라이트인 여원무를 이튿날도 다시 시연하는 것도 고려함직하며, 진장터에서 말달리기 활쏘기를 겨루었다는 기록을 고려하고 또한 자인단오의 신체(神體)가 한 장군이므로 장군을 기리는 전국궁술대회 또는 씨름대회를 유치하는 것도 고려함직 하다. 여원무를 전수 보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나 11개 대학이 자리하고 있고 5개 종합대학에는 체육(무용)학과가 설치되어 있으니 이들의 협조와 참여방안을 도모함과 동시에 여원무 시연의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즉 소규모 여원무와 중규모 여원무, 대규모 여원무로 시연 규모를 구분하고 각 규모에 필요한 최소인원과 최대인원을 산출하고 그에 따른 무보(舞譜)와 안무(安舞) 등을 정리하여 여원무 전수와 시연에 편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 시연하고 있는 팔광대놀이의 연희자 대부분이 지역 거주민이 아닌 안타까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 대학 탈춤 동아리의 협조를 구하는 방안을 도모함과 아울러 팔광대놀이 경연대회 등을 마련하여 지역 중·고등학교 여가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면 한다. 또한 계정들 소리가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기리고 1969년 광복 후 처음으로 자인단오를 재현하면서 개최했던 전국 민요대회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전국민요대회를 고려해 봄직도 하다. 한편 우리 경산의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하는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과 연계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전국 불교신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기도처인 팔공산 갓바위와 연계한 프로그램의 개발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원효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었다는 무애무(無碍舞)와 한 장군이 지역을 수호하기 위해 추었다는 여원무가 호국(護國)과 애민(愛民)이라는 공통의 의미를 갖기에 그 관련지은 행사의 개발이 필요하리라 여긴다. 또한 지역에 많은 봉사를 하거나 지역의 명예를 크게 떨친 청년들 중에서 한 장군 남매를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지역 홍보사절로 활용하면 한 장군 추모에 큰 효과가 기대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자인단오 행사마당의 이동이 절실하다. 지역의 연고와 전통의 보존이라는 면을 인정하더라도 이제 자인단오는 경산시민 전체의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자인 지역과 연계한 행사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전 시민이 함께 하면서 전국적인 축제로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교통의 편리함과 행사공간이 확장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통방식으로 떡을 만드는 떡메치기, 여원무 화관쓰기, 한 장군 복장 입기 등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여 더욱 풍성한 자인단오 축제마당을 가꾸고 자인단오를 수익성 높은 문화산업으로 키워 갈 수 있을 것이다.

      • 商山 池德鵬의 삶과 문학

        권영철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0 경산문화연구 Vol.4 No.1

        商山 池德鵬의 생애와 그 문학작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경산은 人傑의 고장이라 많은 文人 達士들이 줄을 이었으나 고시조 작가는 商山이 유일하다. 필자가 30여년 전에 「商山先生文集」을 구해보고 문집에 수록된 13수의 시조를 발견하고 학계에 소개한 이래 상산 시조의 형식과 내질적인 면에 대하여 구체적인 검토가 있지 않아 아쉬워하던 중 '경산문인연구'의 일환으로 舊稿를 손질하여 정리해 보았다. 이 13수의 상산시조들은 모두가 전통적인 시조가락의 풍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秀作도 많으며, 특히 歌番 三의 시조는 絶調로 대표적이라 하겠다. 자고로 경상도지방에서는 시조작가가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터에, 한 개인이 13수의 시조를 지었고 온전히 문집에 수록하여 전하고 있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며, 더구나 경산 지역인 용성에서 창작되었음은 더욱 의의있는 일로 여겨진다.

      • 필사본 용비어천가의 고찰 : 한글가사를 중심으로

        김문웅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0 경산문화연구 Vol.4 No.1

        18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 용비어천가는 이상에서 보듯이 표기 질서가 정연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시대적인 차이가 상당히 나는 자료를 그것도 여러 명의 필사자들이 전사해서 완성한 필사본에 그 정도의 혼기(混記)는 예상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중에는 현실 언어의 간섭으로 인한 변개도 있고, 필사자 개인의 의도적인 교정도 있을 수 있으며. 착오나 실수에 의한 오기도 있어 필사본을 이용할 때는 이들을 구별할 줄 아는 국어사적인 안목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이들의 유형에 대한 대체적인 검토를 통해 필사본 용비어천가의 한글 가사가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용비어천가로서는 경산 조곡서원 소장의 필사본이 현재 유일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귀중한 자료이면서도 쉽게 볼 수 없음이 제약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 영인으로 그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게 되었다.

      • 장묘제도의 개선방안 : '화장 ·납골묘'(개정안)평가와 '녹색묘지' 매장의 제안

        김기선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0 경산문화연구 Vol.4 No.1

        산업의 발달단계로 본다면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서 이제는 정보화사회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나친 개발로 야기되는 환경파괴는 여전히 인류의 생존까지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 이다. 따라서 '92년 6월의 리우환경정상회담을 계기로 등장한 21세기 세계 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그린라운드(green round)라는 이름의 녹색산업혁명은 환경요인이 새로운 무역규제대상으로 급부상하면서 이제 공해없는 '녹색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장묘제도에 있어서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년의 관습과 역사속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인정받아 온 자연장인 매장제에 몇 가지의 부작용이 있다고 하여, 그 부작용을 없애는 방법은 연구하지 않고, 국토잠식과 고비용은 물론이고 환경공해 및 자연파괴와 같은 더 큰 폐해와 더불어 매장의 모든 부작용이 그대로 예상되는 화장제로 바꾸자고 하는 임시방편적 발상은 막상 시행될 경우 더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꾼다 해도 묘지면적을 넓게 차지하여 온통 석물로 장식하는 '호화분묘'의 관습이 사라질 가능성은, 별도의 대책이 없는 한, 전무한 실정이다. 넓은 묘지면적과 석물장식 그리고 현재의 엄격한 묘지 허가제도가 묘지부족 현상의 주된 원인이므로 이에 대한 검토와 대책이 없는 한,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꾼다 해도 우선 화장장과 납골당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묘지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 명약관화한 실정이다. 그러나 잔디와 흙으로만 된 3-4평 정도의 '녹색묘지'(green grave)를 조성한다면 이상적인 환경친화적 장묘제도로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소골(消骨)이 됨은 물론이고 봉분(封墳)마저 내려앉아 모든 것이 저절로 자연으로 되돌아 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묘지가 미래의 묘지로 재활용될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묘제도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더 큰 폐해와 부작용을 지닌 화장을 어찌 단순 매장의 대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매장의 부작용을 줄여서 매장제를 효과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장묘법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면 (1)일단계로 기당 묘지 면적의 축소, 석물장식의 금지, 묘지 허가제의 완화를 법제화하여 '녹색묘지'와 집단묘지를 장려하여야 한다. 그래도 묘지가 부족하다면 (2)다음 단계로 묘지 봉분의 평분화(平墳化)와 더불어 이를 어기는 호화분묘에 중과세 및 체형을 부과, 집행한다면 묘지면적은 훨씬 늘어나게 될 것이며 (3)마지막으로 자연적 실묘(失墓)에다 약 40%에 달한다는 무연고묘지를 정비한다면 가용 묘지면적은 크게 늘어날 것이며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결국 흙과 잔디로 된 자연장인 '녹색묘지' 매장제도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환경친화적 장묘법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인묘지 점유면적을 현행 24평에서 9평(집단묘지는 3평)으로 제한하고, 책장 60년이 지나면 의무적(義務的)으로 화장 또는 납골토록 하는 등의 삼중장(三重葬)을 초래하는 전술한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재입법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전술한 '녹색묘지'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아래의 내용이 포함된, 법률개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1) 개인산지의 묘지분양, 공원묘지 장려 2) 묘지용 산지 지형(地形)변경의 규제 3) 묘지면적과 석물(石物)장식의 엄격한 규제 4) 한계농지(農地)에의 묘지허용 5) 묘지봉분(封墳)의 궁극적 제한 매장, 화장의 자유선택권 보장 6) 시한부(時限附) 매장제의 폐기(廢棄) 8) 묘지관련 법규의 통폐합 등

      • 장사법령(葬事法令)의 문제점과 개정 방향

        김기선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국토를 자연(自然)스레 가꾸자. 만약 현행 장사법령으로 시한부 매장후 화장·납골을 강행한다면, 애초의 제정 취지와는 역행하여, 최악의 경우에는 첫째, 시한부 매장에 따른 묘지면적, 둘째, 화장후 임시 설치하는 묘지면적, 셋째, 납골당 또는 납골묘 설치를 위한 묘지면적 등의 3배수의 묘지면적사용으로 인해 국토의 가용묘지면적은 3배수로 더욱 빨리 고갈되고 말 수도 있을 것이며, 삼중장(三重葬)으로 인한 비용의 증가는 물론이고 채석(採石)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 대리석으로 장식된 납골당의 관리부실로 흉물화가 예상되며, 석축(石築) 투성이인 공원표지 역시 영원한 흉물로 남아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시한부 매장에 따른 풍수적 재앙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다면,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책입안자와 고위공직자들은 법제29조의 특권으로 영구매장을 고집하지 말고 매장 또는 화장을 솔선수범 하여야 국민들도 법을 준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다시 장사법령을 조속히 개정하여,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장묘관습 - 즉 녹색매장(綠色埋葬) 또는 화장(火葬)후 관골(散骨) - 을 택일하여 고위공직자들이, 중국의 등소평과 주은래처럼, 솔선수범 함으로써 국민들이 스스로 따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이미 대도시에서는 화장율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으니, 환경친화적 녹색매장이나 화장후 산골(散骨)의 장사법 중 택일토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관습과 문화는 법적·강제적 방법으로 고치도록 하는 것보다는 점진적·자발적으로 고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자연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저항이 없는 방법으로 그리고 국토를 자연스레 가꾸는 방법으로 장묘 문제를 풀어가 보자.

      • 큰굿의 현장론적 연구

        차유정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 2001 경산문화연구 Vol.5 No.1

        제24회 '자인단오-한장군놀이'의 특이점은 큰굿의 연행이었다. 주관자인 권명화씨를 비롯한 참가 무당들이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량 발휘로 수많은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한장군 신앙은 지역사회의 이념적 중요성을 획득하기 위해 활용되었던 지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큰굿의 복원은 한장군제의 전과정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복원을 위한 구체적 자료가 미흡한 상황에서 가장 중점에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은 지역문화사적 맥락에 충실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 굿이 중단된 지 60여 년이 지난 이 시기에 다시 생각되어야 할 문제는 과거의 상황에도 충실해야 하겠지만 새로운 현 상황에도 또한 적응해 지역민들에게 쉽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위주로 큰굿을 이끌어 가는 것 또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인 단오굿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큰 굿의 진행 순서에서 7거리를 제외한 입춤, 민요, 왕, 호장군, 선녀, 어우동, 작두 등은 유희적인 성격이 강한 부분이 많던 점과 경기도 굿 내지 이북굿의 요소가 두드러진 부분은 고증과 연구를 통해 재조정하여 이러한 것들은 점차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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