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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부산지역의 대학설립과 동아대학 창학 및 법학교육의 전개
李鍾吉(Lee, Jong-Khil)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2019 東亞法學 Vol.- No.85
본고는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을 맞은 다음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대학설립움직임과 대학설립경과, 그리고 그의 변화과정 등에 대해 검토한다. 국립부산대학의 설립과 동아대학의 창학은 부산경남지역에서 비로소 대학교육이 시행되는 시작점이 된다. 특히 동아대학은 바로 동아대학으로의 출발이 아니었다. 동아대학은 전신이 되는 남선대학 및 남조선법문학원의 태동이 먼저 있었던 것으로, 요건불비의 그를 수용·정리하면서 사립대학교육을 출범해낸 부산경남지역의 대표대학이 된다. 해방 후 부산지역사회가 표출하던 대학설립에 대한 열망이 주요 지역인사 및 미군정관계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던 혼란상에 대해서도 이해를 도모한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東亞大學의 초기 창학과정과 해방이후 법학교육을 최초로 시행한 사립대학으로서의 의미와 내용에 중점을 두게 된다. 미군정기 대학설립은 중앙교육심의회의 의결을 거쳐 중앙군정청의 인가를 받아야하는 것이었으나 남선대학 또는 남조선대학은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못한 하자와 함께 재정 및 시설 등의 미흡으로 문제가 적지 않았다. 학교인가를 둘러싼 분규 혼란 속에서 남조선대학은 정식인가 없이 1946년 4월2일 ‘南朝鮮法文學院’이라는 명칭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개학하게 되었으며 동년 6월에 1년을 시한으로 개교허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수 및 교육설비 등의 미비와 인가절차상의 흠결로 혼란을 거듭하던 남조선법문학원을 동아대학기성회 석당 정재환 선생이 인수(1946년 9월)하여 대학교육을 새롭게 정립(1946.11.1.)하는 변환을 맞게 된다. 남선대학을 이은 동아대학은 해방이후에 법학과를 본격적으로 설치 교육하고 그 첫 번째 졸업생을 1949년 7월 20일에 배출하였는 것으로, 동아대학의 최초 법학교육 실상에 대해 당시의 사료를 기초로 연구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전쟁 전까지를 위주로 하면서 관련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논의를 연장한다. 결국 본고는 해방 후 부산지역의 대학설립과 동아대학의 창학, 그리고 동아대학이 수행한 초기 법학교육에 대해 관련 자료를 기초로 연구․검토하고 있다. This article is to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the changing process of university that took place in Busan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The establishment of Busan Nat’l University and Dong-A Univ. was the initial start in college education at Busan and Gyeongnam province. In particular, Dong-A Univ. was not the start of Dong-A Univ. itself. It had a former Univ., that was to say ‘Namseon’ college or ‘Namjoseon Beopmunhakwon(南朝鮮法文學院)’. It became a representative university in Busan and Gyeongnam province, which launched private university education after Liberation. At that time, as for solving the local community’s desire to establish a university, a group of local public figures and U.S. military official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matter. Accordingly they sought to understand the confusion that has occurred in that social relations. In addition, this article aims to study the early establishment course of Dong-A Univ. and the education of law that were implemented for the first time since liberation. Namseon college, the predecessor of the present Dong-A Univ., had many problems in the school’s accreditation, which were insufficient finances, facilities and legal flaws. Therefore the school was renamed as ‘Namjoseon Beopmunhakwon(南朝鮮法文學院)’ without authorization. But in June of the same year(1946), the school was conditionally allowed to open with a one-year. In the end Dong-A univ.(President of the Foundation, Jeong Jae-hwan) undertook the Namseon college. After Jeong Jae-hwan took over (September 1946) the school, he went through a phase of re-establishment of his college education, especially law school department. This article ultimately carrys out a basic review of the actual law education of Dong-A Univ. after Liberation.
한림(漢林) 정수봉(鄭樹鳳) 선생의 선현들의 말씀에 대한 인식
조해훈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2 석당논총 Vol.- No.82
경남 남해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가계에서 출생한 한림 정수봉 전 동아대학교 총장은 가풍으로 어릴 적부터 서당에 다녔으며, 고전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였다고 평가받았다. 경남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이 설립한 동아대 법률학과에 진학하여 1952년 졸업하였다. 이후 내무부에 들어가 혼란스런 정국에서 나라의 행정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헌신하다가 동아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교무처장과 부총장 등의 보직을 거쳐 동아대학교 제2대 총장에 취임하여 3·4대 총장과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런 한림 선생은 동아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 등을 비롯해 외부 행사에서도 많은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들에서 적절하게 사서오경이나 퇴계 이황의 문집 등에 있는 말씀들을 인용하여 가르침을 주었다. 단순히 사자성어를 한두 번 인용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든 사석에서든 선현들의 말씀이 들어있는 문장들을 통째로 인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동아대를 발전 성장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 바쳤지만 내면적으로 평생 추구한 것은 수양을 통한 이른바 수기치인이었으며, 효를 매우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한림 선생은 평소에 과묵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으나 스스로 판단해 학교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이 되면 무서울 정도로 추진력을 발휘하였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을 견학하면서 그 대학의 역사와 문화, 행정시스템 등을 파악하였던 그는 동아대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반대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승학캠퍼스와 동아대병원을 밀어붙여 지었다. 그 결과 동아대는 한수이남 최고 사립대학교라는 명성을 얻었다. 또한 대학을 키우는 데는 체육활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고 유망주들을 동아대로 데려와 각종 지원을 하며 훈련을 시킨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양정모 선수를 비롯해 하형주·조재기·문대성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배출하였다. 게다가 그는 동아대를 설립한 부친인 석당 정재환 선생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재정립 시키는데도 세상을 버리기 전까지 애를 썼다. 한림 선생이 선현들의 말씀들을 인용해 학생과 교수, 시민들에게 이야기 한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인식’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어릴 적부터 서당에 다니면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 등을 공부하여 군자와 소인의 차이, 공부의 목적과 방법, 수양과 처세 등 살면서 귀감이 될 내용들을 배웠다. 그래서 선현들의 말씀을 참조하여 살게 되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째, 한림 선생은 동아대학교 총장으로서, 그리고 여러 사회단체의 장으로서 연설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적절하게 선현들의 말씀을 대입시켜 설명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논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가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말씀들을 많이 인용하였다. 대학 시절의 수학 내용은 실제로 사회에 진출하여 학생들의 직업이나 대인관계 등에서 그대로 적용이 되므로, 선현들의 말씀 등을 대입시켜 설명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보다 공감하도록 하였다. 그 역시 선현들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말씀들이 일러주는 대로 평생을 살았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ormer Dong-A University President Hanlim(漢林) Jeong Soo-bong(鄭樹鳳), who was born in the most prestigious family in Namhae(南海), Gyeongsangnam-do(慶尙南道), has been to Seodang(書堂) since childhood due to his family tradition, and was evaluated as having considerable knowledge of classics. After graduating from Gyeongnam Middle and High School, he went to the Department of Law at Dong-A University established by his father and graduated in 1952. After that, he entered the Ministry of Home Affairs(內務部) and devoted himself to establishing the country's administrative system in a chaotic political situation, and was appointed as a professor at Dong-A University. After serving as the second president of Dong-A University, he served as the third and fourth president and the chairman of the foundation. Such a teacher Hanlim gave many speeches at external events, including the entrance ceremony and graduation ceremony of Dong-A University. In those speeches, he properly quoted the words in the writings of Sasa Ogyeong(四書五經) and Toegye(退溪) Yi Hwang(李滉) and taught them. It was not just a four-character idiom quote once or twice, but also a whole sentence containing the words of the ancestors, whether officially or privately. He devoted himself to the development and growth of Dong-A University for a long time, but what he pursued internally throughout his life was the so-called handicraft through training, and filial piety was considered very valuable. Teacher Hanlim was rumored to be quiet, but he showed frightening momentum when he judged himself and thought it would help the development of the school. Having grasped the university's history, culture, and administrative system while touring the world's leading universities, he pushed ahead with Seunghak Campus and Dong-A University Hospital despite all kinds of opposition and difficulties to grow Dong-A University. As a result, Dong-A University gained a reputation as the best private university on the south side of Han River. In addition, as a result of detecting the importance of sports activities early and bringing promising athletes to Dong-A University to provide various support and training, they produced Olympic medalists such as Yang Jung-mo, Korea's first Olympic gold medalist, Ha Hyung-joo, Cho Jae-ki, and Moon Dae-sung. In addition, he tried to inherit and re-establish Korea's traditional culture after his father, Seokdang Jeong Jae-hwan, who founded Dong-A University, until he abandoned the world. Citing the words of the ancestors, Hanlim briefly summarizes the “recognition” underlying the story to students, professors, and citizens as follows. First, while studying Seodang from an early age, he studied Cheonjamun (千字文), Myeongsimbogam (明心寶鑑), Sohak (小學), etc. to learn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 county and the small, the purpose and method of study, training and attitude. Second, as the president of Dong-A University and as the head of various social organizations, Hanlim was able to highlight the issue to be said by properly substituting and explaining the words of the ancestors. Third, he cited the words a lot, especially for students. Since the contents of mathematics in college actually entered society and were applied to students' jobs and interpersonal relationships, students were able to sympathize more by substituting and explaining the words of the ancestors. He, too, is considered to have lived his whole life as the words tell him without departing from the words of the ancestors.
대학 교양교육과정의 한·일 간 비교 : 동아대학교와 쯔쿠바 대학을 중심으로
신해우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1998 동아교육논총 Vol.24 No.-
본 연구는 대학 교육과정에서의 교양교육의 중요성 인식과 그 효과성을 제고하고, 대학 교양교육과정의 바람직한 방향정립을 위한 시사점을 얻기 위하여 한일 양국의 대학 교양교육과정의 구성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대상으로는 한국의 동아대학교와 일본의 쯔쿠바대학이 선정되었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양국에서 선정된 두 대학 즉, 동아대학교와 쯔쿠바 대학에 있어서 교양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교과목의 유형과 명칭 그리고 교육과정의 구성에 있어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양 대학 공히 전체 교육과정에서 교양교육과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되며, 이러한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사회상황으로 볼 때 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의 내실화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실정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교양교육과정을 계획할 때에는 현재의 교양교육과정이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불러 일으키면서 그에 적절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및 탄력적 시행으로 전공영역과 교양영역의 상호 보완과 균형을 이루는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compare and analyze the curricula in the university general education of the two countries, Korea and Japan, in order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curriculum in the university general education and to enhance its efficacy and to take a step toward its desirable orientation. Dong-A University in Korea and Tsukuba University in Japan are chosen as the subject of this study. Synthesizing wholly the results obtained from this study, the two universities, Dong-A University and Tsukuba University, represent a little difference in the type of cultural studies, their names and the construction in the curriculum for the general culture course, but the curricula for the general culture course in the two universities show a higher ratio compared to other courses, which means that both universities admit the significance of general education. It can be said that an increasing concern for general education is very much encouraging. The recent social conditions are characterized by an increase of knowledge and a rapid social change, and the academic field shows its advanced and professionalized change. In this respect, it can be felt keenly that general education which can provide us with a wide experience of man and his surroundings must be made substantial right now. Therefore, the proper measures must be taken to meet some questions what the commendable curriculum for future-oriented general education is, what curriculum can meet a social change timely, and what curriculum can deal positively with problems from a coming uncertain future society.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hat a curriculum for general education must have a firm systematic installment so that the learners may develop their cultural talents and acquire their professional knowledge. And the management of curriculum should be carried out flexibly and elastically so that mutual supplement and balance between a major field of general studies can be harmoniously achieved in the whole curriculum.
동아대학교 함진재 소장 강화경판(江華京板)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인경본의 자료적 가치와 활용방안
신태갑,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3 石堂論叢 Vol.0 No.57
This case study analyzed into the source-value and utilization-plan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s printing-material in the Hamjinjae of Dong-A University. this printing-date was printed from 1963 to 1968, was systematically investigated since the 1990s. hereby, this printing-date was utilized the source-material that researched on the historical and cultural reality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 Nevertheless, this printing-date was some cases that the source- material was missing or unclear. therefore, the missing source- material can be compensated from these sources. the complementary-data is the digital material of Tripitaka-Koreana- institute(八萬大藏經硏究院) in the Haein(海印)-Temple, the printing- material of the Otani(大谷) University, the printing-material of the Woljeong(月精)-Temple. the supplemented source-material can be used as follows. it is the systematic study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 the restoration of the Goryeo- Dynasty's Annals(高麗王朝實錄), the source material of the cultural content-development, the restoration of the damaged original woodblock. 이 글은 동아대학교 함진재 소장 강화경판 『고려대장경』 인경본에 대한 자료적 가치와 보완방법 및 보완자료의 활용방안을 진단하였다. 1960년대 확보된 함진재 소장의 강화경판 인경본은 1990년대부터 원천자료의 체계적인 조사․정리작업을 수행하면서 자료적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어 주목되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해인사 소장 강화경판의 원천자료를 열람할 수 없었으므로, 함진재 소장의 인경본은 원천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1970년대 동국대학교에서 간행한 『고려대장경』 영인본 총48책에 비해, 보다 풍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좌․우 변란과 그 외곽에 새겨진 각수, 발원문 자료와 함께 ‘외장(外藏)’ 자료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부터 2013년 현재까지 함진재 소장 인경본 자료가 연구자료로 활용되면서 상당한 연구성과를 축적하도 하였다. 우선, 강화경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밝히는 원천자료로 활용되었다. 일제식민주의 학자들이 강화경판을 소위 초조대장경판의 복각판(復刻板)으로 파악한 문화적 정체성(停滯性) 등을 극복하는 원천자료로 활용하여 역사․문화적 객관성을 바로잡았다. 다음으로, 조성사업의 주체와 목적에 대한 역사 실체를 객관적으로 정립하는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일제식민주의 역사학자와 해방 이후 한국 연구자들이 강화경판의 조성주체․목적과 조성공간의 위치 및 참여자의 범위를 최씨무인정권과 연계시켜 축소․평가한 이해방식을 객관적으로 바로잡는 데 함진재 소장의 원천자료를 적극 활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내용을 새롭게 밝히는 원천자료로도 활용되었다. 그 결과, 대장․분사도감의 운영조직체계와 역할, 그 산하의 판각공간, 분사도감의 위치 등이 구체적으로 탐색되었고, 조성사업 참여자들의 다양한 출신성분과 그들의 현실인식 등도 새롭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함진재 소장의 인경본은 1960년대 인출 당시 인경 전문가의 제한적 인식, 개별 경판의 마모나 훼손 등으로 원천자료가 누락되거나 불명확하게 인경된 경우도 있다. 특히 좌․우 변란의 밖이나 그 외곽 부분에 새겨진 각수, 발원문, 공방(工房) 자료의 상당수도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누락된 원천자료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 소장의 디지털자료를 원천텍스트로 삼고, 우왕 7년(1381) 인출된 일본 오오타니(大谷)대학 소장본의 자료집, 조선 고종 2년(1865)에 인출된 월정사 소장 인경본의 사진자료 등을 교차적으로 활용하여 보완할 수 있다. 보완된 자료는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고려왕조실록의 복원, 문화․관광콘텐츠 개발의 원천소스, 마모․훼손된 원판의 복원, 원판과 후대 보각판의 진위여부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도 활용할 수 있다.
김창수 동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 2004 동아시아 : 비교와 전망 Vol.2 No.-
1990년대에는 세계화,아메리카와 유럽의 지역주의,WTO의 출범 등 범세계적 국제무역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역내국간 국제경제관계가 이전보다 한층 심화되었다.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통화위기를 경험하고 2001년 말부터는 도하 라운드(Doha Development Agenda)가 시작됨에 따라 동아시아 각국은 지역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동아시아 지역경제통합을 다양한 형식으로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에서 지역주의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대두하게 된 배경을 외부적 환경변화와 동아시아 역내 국제경제관계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하고 동아시아 지역경제통합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 가능성을 평가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방어적 지역주의와 경제통합의 전망을 2002년 11월 프놈펜에서 개최된 ASEAN+3정상회의에서 공식화한 중국, 일본 및 ASEAN간의 ASEAN+1FTA 논의와 관련하여 재평가해 본다. The 1990s witnessed a sea change in global economic environment: the galloping globalization, the conclusion of the Uruguay Round and the launch of WTO, and the surge of regionalism, among others, in terms of NAFTA and European Union. At the same time,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among countries in East Asia have been deepening at an accelerating pace in the 1990s. The East Asian currency-financial crisis brought home the countries in the region the fact that they are in effect on the same boat, against the aggressive waves of FTAs push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ever enlarging European Union.The ongoing Doha Development Agenda started in 2001 provided a further motive for the East Asian countries to get together and look for ways to institutionalize the functional economic integration achieved in the 1990s. The ASEAN+3 summit provided a good opportunity for China, Japan, Korea and the ten ASEAN countries to discuss the regional issues and grope for many forms of institutionalizing their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and integration. Roads ahead seem not so smooth given the present economic relationship yet to be settled between the two key players, that is, China and Japan. ASEAN-China FTA is being negotiated and the Japan-ASEAN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talk has been going on. It seems that they are still talking multilateral but acting bilateral, while the United States announced an offer for FTA with ASEAN countries, the Enterprise for ASEAN Initiative in 2002. Yet, the prospect for a further economic integration of the East Asian countries is by no means pessimistic, if we could extend our time horizon to the order of decades, considering the half-a-century European experience leading to the European Union.
바너 피터 동아대학교 조형연구소 1996 조형연구 Vol.- No.2
저는 동아대학 개교 50주년 행사에 초대받아 동아예술제 일환으로 특별강연을 하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히 동아대학이 종합대학으로서 인문대학.자연과학대학.생명과학대학.법과대학.사회과학대학.경영대학 그리고 생활과학대.공대.체육대학.의과대학을 갖추고 사회에서 특별히 공헌하고 있는 것이 대단히 훌륭하게 좋아 보입니다. 대학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참 대학으로서 하기는 힘든 일인데 동아대학교에서는 실질적으로 산업과 실제 생활에 필요한 경영, 공업 그리고 법.의학 등에서도 탁월한 공헌을 하고 있으면서 더욱이 대학이 가치있는 역량들을 미술.음악.공예.디자인 그리고 조각 그리고 섬유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공헌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빈 동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 2006 동아시아 : 비교와 전망 Vol.5 No.-
동아시아 지역은 종래 지역경제협력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한 지역으로 분류되었지만.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 각국은 지역경제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금융협력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경제협력의 추진 배경과 특징에 대해서 분석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협력의 필요성은 우선 동아시아 지역 내 무역 및 투자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논할 수 있으며 금융협력의 진전은 지역 내 무역, 투자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은 금융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지만. AMF 구상의 실패와 같은 좌절을 경험하였다. 동아시아 금융협력은 비상시의 유동성 공급 메커니즘, 채권시장의 활성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최근에는 ACU(Asia Currency Unit)와 같은 공통통화단위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동통화단위 (ACU)의 도입을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금융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편으로 동아시아 지역 내 무역, 투자 등의 증가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동아시아 금융협력은 지역금융협력기구 및 ACU의 도입을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지역금융협력을 목표로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ast Asia was conventionally classified as an area of inactive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 However, since financial crisis in 1997, each country in East Asia sympathized with the need of economic cooperation of this region. This paper analyses the background and characteristics of East Asian regionalism revolving around financial cooperation. The necessity of financial cooperation in East Asia can be discussed, in the first place, in terms of increase in trade and investment within the East Asia region. It is considered that the progress in financial cooperation would give the boost to trade and investment in the area. After the financial crisis, East Asian region has pushed forward the financial cooperation. Nevertheless, the ideas such as AMF (Asia Monetary Fund) experienced frustration. East Asian financial cooperation has pushed ahead liquidity supply mechanism in an emergency and bond market activation and recently introduction of ACU (Asian Currency Unit) is being discussed. Many struggles are predicted in realizing high level of financial cooperation such as bringing in ACU in East Asia but on the other hand, considering increase of trade and investment in the region, the necessity itself of financial cooperation which includes the induction of ACU will grow in the future. Every country in East Asia needs to aim for higher level of financial cooperation covering induction of ACU and establishment of AMF while keep promoting the ways to strengthen liquidity supply mechanism and to activate bond market.
현오석 동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 2006 동아시아 : 비교와 전망 Vol.5 No.-
Economic relations of countries within the East Asian region have been getting stronger in recent years. With China that has achieved rapid economic growth as a central force, countries in the East Asian region have increased the share of intra-regional trade in their trade. On the investment front, for some years, intra-regional investment was mostly concentrated on China. However, in recent years, East Asian countries have been actively looking for more investment opportunities following China. The East Asian region is also more actively working on bilateral Free Trade Agreements(FTAs) than any other continent on the globe. Countries in this region have shown a great interest in establishing an East Asia Free Trade Agreement(EAFTA) bringing the whole East Asian region into a single economic zone based on current regional FTAs. There is an expectation that an EAFTA may be realized by 2008. If an EAFTA was concluded, its economic scale would surpass that of the North Atr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 and resulting effects would be much considerable. However, it is difficult to guarantee that an EAFTA would be created by simply integrating various regional or bilateral FTAs to form a single economic community. The degree and scope of liberalization in the ASEAN integration model that has been suggested so far has turned out to be not enough to lead to an EAFTA. Therefore, it is more realistic that an EAFTA can be eventually materialized through establishing a China-ASEAN FTA, Korea-ASEAN FTA and Japan-ASEAN FTA, to which a Korea-Japan FTA, Korea-China FTA and China-Japan FTA are added.Bilateral FTAs which are now underway should serve as a foundation in creating an EAFTA. Furthermore, if these bilateral FTAs were to serve as a springboard in establishing an Asian economic community, there are a lot of obstacles to be tackled before achieving that goal. First of all, bilateral FTAs that are currently underway should be developed into more comprehensive ones. Simultaneously, mutual conformity of each individual FTA should be enhanced. In addition, the scope of FTA negotiations should include not only liberalization of commodities, but also a wide range of areas such as services, investment,intellectual property rights, competition policies, and economic cooperation, etc. What'smore, there must be more efforts to reduce the length of exception list in the liberalizationof commodities and the service sector. As there is an enormous gap in the national income among countries in the East Asian region and they have different industrial structures, it would not be easy for a simple horizontal integration to help achieve such a comprehensive FTA down the road. Therefore, it will be desirable to provide assistance programs for underdeveloped countries and to find a way for a mutual existence in the area of agriculture, the biggest obstacle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n intra-regional FTA. For individual countriesin the region, they should take a more positive action to facilitate restructuring of less competitive industries than other areas. In addition, there should be a consensus on the scope of participation in the EAFTA and relationships with other countries outside the region like the US. Although the scope of an EAFTA will first include the ASEAN plus three, which groups ASEAN with Korea, China and Japan, the settlement should be made about its relationships with the US, Oceania, and India which have a great influence on the economy and security of the East Asian region. There are substantial political and economic obstacles standing in the way of realizing EAFTA. Politically, the perception of a common destiny and regional identity has not been fully developed in East Asia Mistrust between China and Japan, arising from historyand the emerging rivalry for Asian leadership, may be difficult to overcome in the immediate future. Economically, because of the wide differences in development levels and different ambitions for liberalization, the regional countries will want to open up at different paces and protect different sensitive sectors. These are difficult challenges. But judging from the experience of regionalism elsewhere, they should not be insurmountable. 최근 동아시아지역 내에서는 경제적 밀접도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 내 국가들은 역내 거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투자 또한 그 동안 중국에 집중 되었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탈피, 여타 ASEAN 국가로의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또한 현재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 (FT A: Free Trade Agreement)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내 양자간 FTA를 바탕 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하나로 묶는 FTA. 즉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 (EAFTA: East Asia Free Trade Agreement)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08년쯤이면 EAFTA가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AFTA가 실현된다면 그 경제 규모는 현재 NAFTA를 능가하는 수준이며, 그 파급효과도 매우 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의 동아시아 역내 국가 간의 FTA가 EAFTA로 확대 발전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시되고 있는 ASEAN 통합 모델을보면 자유화 정도나 그 포괄범위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어서 EAFTA로 이어지기에는 매우미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EAFTA는 결국 중-ASEAN, 일-ASEAN, 한-ASEAN이 체결되고 여기에 한 일, 한-중과 함께 중-일이 통합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자간 FTA가 EAFTA의 기반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아시아공동체」구축의 출발점이 되려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현재 진행되고있는 양자간 FTA는 한 층 더 높은 수준의 FTA되어야 하고, 동시에 각 FTA 상호간의 정합성을 제고시켜야 한다. FTA 대상에 상품자유화 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경쟁정책, 경제협력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합할 필요가 있으며, 상풍 및 서비스 분야의 자유화 수준 또한 예외를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 동아시아 내에서는 국가별 소득 수준의 차이가 심하고 산업구조도 상이하여 단순한 수평적 결합으로는 높은 수준의 FTA체결이 어렵다. 저개발국가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나 역내 FTA 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인 농산물 분야에서 상호 공존 방안도 찾아야 할것이다. 국가별로는 취약한 산업분야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EAFTA 참여 범위와 향후 미국 등 역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EAFTA의 범위가 우선적으로는 ASEAN+3이 되겠지만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나 동아시아에 영향력이 큰 미국, 대양주, 인도 등에 대한 관계도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AFTA를 실현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정치적, 경제적인 장애물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내 국가들은 아직 공동 목표와 지역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게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다. 역사 문제와 아시아 리더에 대한 라이벌 의식에서 야기되는 중국과 일본 간의 불신도 가까운 장래에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발전 수준이나 자유화 요구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있어 이들 각국이 원하는 개방 속도나 민감 분야가 국가별로 크게 다를 수 있다 이처럼 EAFTA 실현에는 많은 어려운 과제들이 많지만, 여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주의를 감안한다면 이런 과제들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최청일,이상룡,김주현 동아대학교 학생상담센터 2004 學生硏究 Vol.33 No.-
학교의 발전은 구성원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의 발전이 바로 구성원의 발전이고, 구성원의 발전이 바로 학교의 발전이다. 이는 학교의 모습이 구성원의 모습과 동일함을 말해준다. 역으로 말해보면 구성원의 모습이 바로 학교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성원의 모습을 통한 학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매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재학생 실태조사는 단지 구성원의 모습을 파악함으로써 학교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실시하는 것만은 아니다. 구성원의 실태를 앓으로써 구성원의 변화를 시도하고 그 변화를 통하여 학교 모습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것이다. 한 집단의 발전방향과 발전정도는 그 집단 구성원의 조건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대학의 발전방향과 발전정도는 구성원의 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학구성원의 중요축인 재학생들의 조건과 상태를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대학의 발전방향을 재정립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재학생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은 환경과 인성의 상호작용에 따라 나타난다. 따라서 본교 재학생들의 생활 모습과 가치관 등을 분석하여 이를 개선하는 학교정책의 선정은 학생들이 만나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된 학생 행동은 학교 모습을 변화시켜 준다. 따라서 본 조사연구는 2004학년도에 재학하고 있는 2, 3, 4 학년들의 생활 특성, 가치관, 전공관 둥을 분석하여 재학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학생지도 방안과 대학의 교육방향 정립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學生生活硏究所 企劃硏究部 東亞大學校 學生生活硏究所 1997 學生硏究 Vol.20 No.-
1996학년도 신입생 특성 기초 조사의 영역별 반응경향 및 연도 간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領域別 反應傾向 1) 기초사항 1996학년도 신입생의 보호자 유형으로서 아버지기 보호자인 가정이 93.6%였으며, 어머니 가 보호자인 가정이 5.1%, 부모 외의 보호자 가정도 1.3%로 나타났으나 전년도에 비하여 약간 높게 나타났다. 보호자의 학력은 고졸 50.4%, 대졸 24.4%, 중졸이 12.8%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대학원졸도 4.0%나 되어 점차 고학력자를 부모를 가진 신입생이 늘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학은 0.4%에 불과하였다. 보호자의 직업은 상업이 22.9%로 가장 높았고, 경영관리직 15.6%, 기능직, 육체노동직이 10.6%, 전문기술직이 10.1%, 판매·서비스직이 8.9%였으며 가장 낮은 응답 비율을 보인 것은 군경직 1.7%로 나타났다. 2) 가족 및 가정환경 신입생의 93.8%가 양친 모두 생존해 있으며, 부친 또는 모친만 생존해 있는 경우가 4.8%, 양친 모두 사망한 경우가 0.8%, 이혼·별거는 0.8%로 나타났다. 부모와의 대화 정도는 신입 생의 71.3%가 부모와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고 반응하였으며, 성별로 보면 여학생은 대부분 부모님께 의논하는 반면 남학생은 필요시에만 의논한다는 반응을 나타내어 차이를 보이므로 적절한 지도가 요구되어진다. 가정 분위기는 신입생의 74.0%가 화목한 편이라고 반응하고 있으며, 가족간의 갈등이 약간 또는 심한 편이라는 반응도 5.0%라 되고 보통이라고 응답한 신입생들 또한 잠재적민 갈등이나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되므로 이들의 문제를 적절하게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부모의 태도에 대해 56.6%가 민주적이라고 반응하였으며, 간섭적이라고 느끼는 학생이 23.0%, 방임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6.7%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가정의 규율대신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음을 보여준다. 부모가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성실한 학구적인 자세가 43.1%, 올바른 인격함양이 22.7%로서 대학에서 배워야할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취업 준비 철저가 17.3%로서 날이 갈수록 가중되는 취업난에 대한 부모의 염려가 지대함을 볼 수 있다. 부모와의 가치관의 차이에서는 20.6%가 다소 또는 많이 있다고 반응하였으며, 가정의 당면 문제에서는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미달한다는 반응이 23.1%로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경제적 곤란이 11.1%로 나타났다. 의논상대로는 친구, 어머니, 형제·자매의 순으로 각각 34.5%, 30.9%, 13.3%로 나타났으며, 전혀 의논하지 않다는 비율도 8.6%나 되었다. 3) 경제적 여건 및 거주 환경 가족의 월 총수입에서 100만원~200만원선이 전체의 42.7%를 차지하여 가장 높았고 예술 대가 타대학에 비해 가족의 월 평균 소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 형태에는 자택이 84.4%로서 가장 높았으며, 친지, 하숙, 자취가 각각 5.6%, 3.4%, 4.9%로 나타났다. 통학거리가 1시간이상 소요되는 학생이 전체의 69.5%를 차지하여 전년도에 비하여 다소 높게 나타나, 전반적인 교통량의 증가와 각종 공사가 시내에 진행 중이어서 시간거리가 더 소요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학비 부담 능력에 있어서 전혀 곤란하지 않는 학생이 25.6%인 반면 21%가 경제적으로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신입생의 87.9%가 부직을 갖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주 희망한다고 응답한 학생도 15.5%나 되었다. 부직 유형으로는 주로 자신의 취미나 대학생의 본분에 맞게가 35.4%로 가장 많은 응답을 하였고, 다음으로 과외지도가 26.1%였다. 4) 대학생활 및 학업 대학생활의 주기능을 전공 학문연구에 두고 있는 비율이 32.2%, 좋은 인간관계 형성은 24.7%로 나타나 학생들이 대학을 학문연구와 더불어 좋은 인간관계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학후의 계획으로는 전공공부가 17.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는 전년도 친구 및 이성교제가 가장 높았던 점을 비교하면 실질적으로 취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신입생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공학과 선택동기를 보면 자신의 적성·흥미에 따라서가 41.7%였으며, 성적에 맞추어가 29.4%로 전년도와 비슷한 경향을 보였으며, 장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선택한 경우도 14.3%나 되었다. 전공학과의 성격 및 전망에 대해서는 신입생의 46.4%가 다소 또는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저 그렇다는 30.8%로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고교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선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잘 모르고 있다는 반응도 22.8%나 되어 이들에 대한 학과의 소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성격 및 앞으로의 진로에 관하여 적절한 지도가 있어야 하겠다. 전공에 대한 만족도에서는 67.9%로 대부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공학과의 성격과 지식에는 관계없이 높게 나타났다. 교수와 의논하고 싶은 문제로는 약 47.5%가 학습 및 학업 문제 전반에 관한 것으로 응답하였으며, 취업 및 진로 문제도 39.1%의 반응을 보였다. 5) 과외 활동 동아리 활동에 참여를 원하는 신입생이 전체의 68.5%로서 전년도에 비하여 약간 낮은 반 응을 보였으며, 참여를 희망하는 동아리 유형으로 현실문제 관여를 위한 동아리가 가장 높은 비율(28.1%)을 보였고 특기계발을 위한 동아리, 교양·상식을 위한 동아리 순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년도의 교양·상식(28.3%), 사교 및 인간관계(26.1%), 특기 계발과 관련된 동아리 (21.7%)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입생들의 여가 시간 활용은 영화·음악·그림감상과 스포츠·등산·낚시·여행 등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참여 문제에서는 신입생들의 대부분이 세미나, 토론 등의 학술적 방법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비율이 66.6%로서 전년도보다 높은 반응을 보였다. 반면 행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반응은 12.6%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금년들어서는 약간 증가된 반응을 보였다. 6) 현실 당면 문제 신입생들의 현재 당면한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학교 생활이 19.9%로 가장 높았으 며, 대인관계, 학업과 성적이 각각 14.9%, 13.9%를 차지하였다. 이는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 계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 제로 부정부패가 32.2%로 가장 높았고, 상호 불신이 13.7%, 정치 문제가 13.0%로 나타났다. 사회에서의 성공 요인으로는 노력, 재력, 실력, 인간 관계, 학벌 등으로 각각 46.8%, 21.1%, 18.8%, 15.6%, 10.1%의 순으로 나타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풍토가 점차 조성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개인적 문제 신입생의 62.5%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특히 21.3%가 자신 에 대하여 매우 만족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서는 38.5%가 우수한 편 이라고 지각하고 있으며, 신체 건강에 대해서 건강하다고 반응한 학생은 66.7%로 나타났다. 정신건강도 신입생의 71.1%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성격에 대하여 원만하다는 반응이 전체의 약 55.1%로 나타났으며, 다소 문제가 있는 반응도 20.6%나 되어 이들에 대한 심리검사와 상담 등이 요구되어진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는 72.8%가 원만하다고 응답하였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입생들의 비율도 9.7%나 되었다. 학업성취에 있어서는 약 89%이상의 학생들이 학업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 학생생활연구소의 활용 대학생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것은 전공학과에 대해서가 31.6%로서 가장 높아 고교생 들의 진로 지도시 다양한 홍보책자가 개발되어야 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으로 학생 단체와 동아리에 대해 18.4%가 반응하였으며, 장학금제도가 16.2%, 졸업 후의 진로도 16.4%나 되었다. 학생생활연구소의 활용 분야에서는 신입생의 29.8%가 각종 심리검사를 받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직업상담, 개인상담의 순으로 반응을 보였다. 상담 희망 내용은 효과적인 장래취직 및 진학문제가 29.9%, 학습방법이 28.7%로의 순으로 나타났다. 2. 95學年度와의 比較 금년도 신입생들의 특성 기초 조사 분석 결과를 전년도의 결과 주요 영역에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의 주기능을 전공 학문 연구로 보고 있는 비율은 95-96년도 각각 33.1%, 32.2% 로 나타나 전년도 신입생보다 약간 낮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라는 응답은 96년도가 22.5%, 96년도가 24.7%로 전년도에 비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는 반응은 전년도에 비하여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금년도 신입생들이 대학의 주기능으로 생각한 전문 직업인 양성은 20.2%로서 전년도의 17.9%보다 높았다. 이로써 신입생들의 대부분이 대학의 주기능을 전인 교육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신입생들이 입학 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동아리 활동, 취직시험 준비, 교양습득 등은 금년도 신입생들이 전년도에 비해 다소 논은 반응을 보였으나, 전년도에 가장 높은 반응(28.0%)을 보였던 친구 및 이성교제가 금년도에도 여전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동성친구와의 교제가 8.0%, 이성친구와의 교제가 13.3%를 보이므로 해서 약간 줄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학업에 있어서 전공학과의 선택동기에서는 적성·흥미에 따라(41.7%), 성적에 따라 (29.4%), 장래 발전 가능성(14.3%)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연도간에 비교해 보면 성적에 따라서가 전년도의 28.6%보다 높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수학 능력 고사의 비중이 해마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신의 전공학과에 만족하고 있는 학생은 95-96년도 각각 75.6%, 67.9%로서 만족하고 있는 비율이 전년도 보다는 다소 낮아졌다. 넷째, 동아리 활동에의 참여에 대해서는 원하는 비율이 전년도의 70.9%에 비해 금년도는 68.5%로 다소 낮은 참여도를 나타내었다. 참여를 희망하는 동아리의 유형에서 전년도에 가 장 높은 반응을 보였던 교양·상식을 위한 동아리가 21.2%로 다소 낮은 반응을 보인 반면 전년도에 1.0%를 보인 현실문제 관여 동아리가 금년도에는 28.1%로 대단히 높은 반응을 보여 차이를 나타내었다. 다섯째, 정치적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한 신입생의 반응중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미나, 토론 등의 학술적 방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반응에 66.6%로 전년도의 62.6%보다 높게 나타나 사회 전반의 민주화 경향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여섯째, 현실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주로 학업과 관련된 문제인 학교 생활, 대인관계가 각각 19.9%, 14.9%로 나타났다. 이는 신입생들이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 접하 게 되어 심리적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도가 요구되다 사회에서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부정 부패가 32.2%, 상호불신이 13.7%, 정치문제 13.0%, 사회질서 10.1%로서 전년도의 부정부패 37.9%, 상호불신 17.1%, 사회질서 14.4%, 정치문제 8.4%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네 정치문제에 비중이 높아짐으로 상대적으로 다른 항목의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의 원인을 부정 부패와 더불어 정치권의 어수선함에도 책임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회에서의 성공요인으로 들고 있는 것은 노력으로 전체 반응의 46.8%로서 전년도 (22.2%) 보다 상당히 높은 반응을 보여 점차 이 사회가 능력 위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곱째, 부모와의 대화정도는 대체로 부모와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이 94-95년에 각각 74%, 71.3%로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부모들의 태도에 관한 학생들의 지각정도는 민주적이라는 반응이 56.6%로서 매우 높은 반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들의 학력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사회전반적인 민주화 추세로 인하여 부모의 자식에 대한 교육도 민주적인 경향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그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부모가 기대할 것으로 생각한 것은 성실한 학구적인 자세가 43.1%, 올바른 인격함양이 22.7%로서 전년도의 45.1%, 26.2%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 아직까지 학생들이 인격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으나, 취업에 관한 반응이 해마다 증가라고 있어 취업에 관한 지도가 필요하리라고 보여진다. 부모와의 가치관 차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 편이다가 약 90%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하다고 반응한 비율은 금년도가 6.9%로서 전년도의 4.9%보다 높게 나타났다. 여덟째, 부직 희망 여부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있으면 하고 싶다가 87.9%로서 전년도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며, 희망하는 부직의 유형으로 취미에 맞는 것이 35.4%로 전년도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 자신의 취미에 알맞은 부직을 얻어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비부담 능력은 그저 그렇다가 534%, 넉넉하다가 25.6%로서 점차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홉째, 신입생들의 자신에 대한 정신 건강에 대한 반응에서 건강하다고 반응한 학생이 71.1%로서 전년도의 75%보다는 낮은 반응을 보이고 한다. 반면에 심각한 건강문제를 안고 있다고 반응한 비율도 2.3%나 되어 이들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95-96학년도 각각 66.7%, 62.5%로서 대체로 가치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학생은 18.6%나 되었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는 95-96학년도 각각 57.4%, 55.1%로 원만하다고 반응하여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열째, 학생생활연구소의 활용분야에 관한 내용은 신입생의 29.8%가 각종 심리검사를 가장 받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하는 상담 내용으로 장래취직 및 진학문제가 29.9%로 전년도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효과적인 학습방법보다 높은 반응을 보여 졸업후 진로에 대한 지도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