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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당(石堂) 정재환(鄭在煥)선생의 문화유산·기록유산에 대한 계승 노력과 인식

        최영호 ( Choy Young-ho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7 石堂論叢 Vol.0 No.69

        이 글에서는 동아대학교 초대총장 石堂 鄭在煥의 우리민족 문화·기록유산에 대한 계승·발전노력과 인식·위상을 새롭게 진단하였다. 석당은 백과사전류에 법조인·교육자로 정의되고 있지만, 1970년대부터 전문연구자들에게 대표적인 文化愛護家로 평가받았다. 민족 문화·기록유산의 보존과 창조적인 계승·발전에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의 발굴과 함께 유물의 기증·구입, 방치 유물의 수습, 해외 유출의 저지 및 입수 등과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선사시대 이래 근현대에 이르는 문화·기록유산 등을 수집하였다. 수집·지원한 유물·유적 가운데는 국보·보물 및 국가 사적 등으로 지정된 국가문화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동궐도」 및 「土器隆起紋鉢」 등의 경우에는 제3국으로 유출될 위기에 있던 문화유산이었다. 석당은 1955년부터 문화·기록유산을 발굴·수집·보존 및 교육·연구하고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적 기반으로 국문학과·사학과도 설립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고고학·고대사·중세사·근세사와 한문학·향가·민속학·한글·서지학 등에서 풍부한 연구·교육역량을 갖춘 저명 인력들도 영입하였다. 학생들의 고적순례·발굴·유물전시회 등과 같은 현장역량강화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석당은 문화·기록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연구할 수 있는 도서관·박물관을 개관하고 1950·60년대에는 독립건물도 확보하였다. 이에 1966년에는 우리대학 박물관이 전국에서 으뜸되는 위상을 확보하였으며, 도서관 소장의 古書도 국내에서 손꼽힐 규모였다. 고서 가운데는 『고려사』, 해인사대장경판 및 諸경판의 인출본 완질 등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원천기록유산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박물관에는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도 상당수 소장하고 있었다. 석당은 석당학술원의 전신인 古典硏究所·韓國文化硏究所와 같은 전문연구기관도 1958·59년 각각 설립·운영하였다. 고전연구소에서는 1958년부터 남북한 최초로 『고려사』 역주사업을 착수하여 1973년까지 『譯註高麗史』 11책을 완간하였다. 이에 우리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석당이 이런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수준 및 관심과 함께 문화·기록유산에 대한 객관적인 식견과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漢學·서예와 함께 한국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민족문화의 창달을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으로 채택·실천하는 등 문화·기록유산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태도와 실천노력은 1959년 부산시문화상의 수상으로 객관적인 위상을 확보하였다. 특히 1970년대 鶴山 金廷鶴은 석당의 이러한 공적을 文化愛護家로 평가하였으며, 그 위상과 공적도 전국적인 인지도와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This paper attempts to newly analyze into the Succession―efforts and perception of Dr. Jeong Jae―Hwan's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he has served as the first president of Dong-A(東亞) University from the 1950s to the 1970s, has called himself―name to the SeokDang(石堂). The SeokDang has been defined as a law professional & educator in the encyclopedias. However, he has already been evaluated as a lover of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by professional experts who has acted in the local community since the 1970s. because of, he had made the various efforts to preserve the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of the Korean nation that had been built from prehistoric times to modern times. he had continuously collected this heritage from the 1950s to the 1970s, had systematically preserved this heritage. in addition, he had creatively developed this heritage. his collections are currently included in the national treasures & treasures of Korea. The SeokDang has established the Department of History & Department of Korean Literature that can systematically learn about this heritage, has also established the GoJeon(古典) Research―Institute & the Korean culture Research―Institute that can research in depth. the two Research―Institute are the forerunner of the Seokdang―Academy. he has established the Museum(Seokdang Museum) & Library(Hamjinjae : 函珍齋) of Dong-A University that can systematically preserve this heritage, has invited a prominent expert to our university. as a result, the cultural & recorded heritage of Dong-A University's Library & Museum had become the prime scale in the 1960s. especially, he has supported the translation & annotation project of the Koryo-Dynasty's History (『高麗史』) that the nation should carry out. This effort of the SeokDang has grown from considerable insight & interest & perception about the Korean History & Culture. his cultural perception was in the creative success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History & Culture. because of this, he has already been evaluated as a lover of cultural & recorded heritage by professional experts of poste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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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夏家店上層文化在東北亞靑銅文化中的重要地位

        오은악사도 ( Enyuesitu Wu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07 石堂論叢 Vol.0 No.38

        하가점 상층문화는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발달된 청동기시대 후기 문화로서 연대는 상주시대에서 춘추시대 초기(기원전 11세기~기원전 7세기)에 해당된다. 이 문화는 발달된 靑銅器 冶鑄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 문화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서 자체 생성된 器類와 어떤 동물문양들은 東린의 靑銅器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또 어떤 종류의 器類 등은 하가점 상층문화를 경유하여 동북지역 및 한반도에까지 전파되었다. 하가점 상층문화 지대가 위치한 곳은 農牧교착지대로서 이 지역의 거주민들은 동남부와 동부의 농경민족들과 빈번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북방과 서방의 초원지대에 거주하는 초기유목민들과의 사이에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가점 상층문화의 거주민들은 농업생산 공구들의 출토를 통해 정착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편 이와는 달리 목축이나 수렵도 그들의 경제생활 중에서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병기나 마구, 그리고 동물문양은 그들 문화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문화가 초기 유목문명의 맹아기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하가점 상층문화가 번영시기에 있었을 때 대외적 교류는 상당히 활동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주변지역 청동기 문화의 어떤 중요한 요소들을 흡수하였으며 또한 인접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청동기문화에도 직접적이거나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이 문화는 동북아 내지는 유우라시아 초원지대 동부지역의 청동기시대 후기 문화에서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was the most developed culture of the Bronze Age in Northeast Asia. It was chronologically between the Shang Zhou period and the early Warring States Period(11 B.C.~7 B.C.). The culture had its own developed industry of the metallurgical casting of bronze ware. In this relation, some kinds of wares and animal patterns the culture initially had influenced the bronze age culture of its eastern neighbor. While, other kinds of wares were introduced to Northeast Asia and even the Korean peninsular via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Geographically,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covered a crossed region of farming and stock raising. Inhabitants of the region made frequent exchanges with agricultural peoples in the southeastern and eastern regions of Asia. They also maintained close relations with people of the early nomadic culture who resided in the northern and western regions of the continent. Those inhabitants lived in a settlement while they engaged in agricultural production by using farm instruments. Stock raising and hunting were also important parts of the residents` economic life. Certain weapons, harnesses and animal patterns were unique characteristics of the upper class culture. They indicate that the culture was in a germinal state of the earlier nomadic civilization.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developed foreign exchanges very actively when they were in prosperity. Through the exchanges, the class absorbed key elements of bronze age cultures of its neighbors. It also directly or indirectly affected such cultures of other neighboring regions. In conclusion, it is clear that the upper Xiajiadian culture had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late Bronze Age of Northeast Asia or the Eurasian 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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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의 누정자료 조사연구와 그 콘텐츠의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정용수 ( Yong Su Jeong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06 石堂論叢 Vol.36 No.-

        본고는 우리의 누정문화를 통해서, 현재 남아있는 영남루, 촉석루, 함벽루 등 영남3루 누정시문의 콘텐츠 활용 방안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지상매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울산의 태화루를 오히려 새로운 시각에서 고층으로 차별화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 산업에 불고 있는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에는 인문학도로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기술이 선도할 수밖에 없는 현대문명사회에서 IT 기술이나 그 실용성에 있어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오늘날 문화콘텐츠를 논의하는데 있어 앞서가는 기술을 뒤에서나마 바르게 가게 하는 것이 인문학적 접근의 가장 중요한 요목이란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나라 현대 도시건축물의 타워 문화와 가든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우리의 누정문화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탄탄하고 찬란한 우리의 전통적 기반을 보여주며,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가든은 수평적이고 타워는 수직적 세계이다. 우리의 누정문화에 이미 이러한 전통이 내재하고 있기에, 우리식 누정문화가 콘텐츠화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을 파편화해서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을 결합하고 이것을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현대 도시건축물이 수직적 건축물과 기술력을 결합한 것이라면, 전통에 기반한 우리의 정자문화는 그것 자체로써 콘텐츠가 될 수 있고 이웃 나라와 변별력을 갖출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소개하거나 우리식 새로운 타워를 지을 때는 그 속에 우리에게 맞는 콘텐츠를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 현대 도시건축물을 짓는 지자체에서는 도시 타워나 도시 가든의 콘텐츠로써 누정문화를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본고에서 하나하나 제시하였지만, 앞으로의 논의과정을 통해서 더욱 새로운 시각과 콘텐츠의 개발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런 연구가 보다 개방적으로 논의되면 더 많은 콘텐츠 개발이 가능하리라 믿고 있다. 단편 연작시, 팔경시, 십경시와 같이 문학적 향유 전통을 콘텐츠화 하여 지방화 시대를 맞은 우리 도시에 `새로운` 타워와 가든을 건립한다면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관광명소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This paper will attempt to investigate the data of towers and pavilions in Milyang and discuss a couple of related issues about how to use the data. The poems inscribed on Youngnamru, Chogseogru, and Hambyougru are so well-preserved that they can be utilized as cultural contents. Taehwaru, however, does not currently remain, so a new point of view is needed-for instance, using the area for a multistoried building. The tower and pavilion culture presents us a way to combine the tower culture and the garden culture in modern urban constructions. If the tower and pavilion culture can be developed into cultural contents, our glorious traditional foundation can be spread out to the world and our culture can be globalized. Modern urban buildings are to integrate vertical art and modern technology. Those cultural features are already imminent in our tower and pavilion culture. For the differentiation of a culture from another, the culture should be contentualized. Therefore, in trying to introduce new contents and build a genuine Korean new town, we should discover or create our own contents to be able to show the Korean tower and pavilion culture. It is also recommended that the municipalities refer to the traditional tower and pavilion culture for urban tower and garden contents when they build modern urban buildings. The paper has suggested some concrete ways of using the contents for modern urban architecture. A further discussion is to ensure us to be in a better position for a newer perspective and contents development.

      • KCI등재

        지역연구(area studies)의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 : 호남 지역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홍석준 ( Seok Joon Hong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0 石堂論叢 Vol.0 No.46

        현대사회는 전지구적 문화(global culture)와 지역문화(local culture)가 공존하는, 복합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현상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지역연구``(area studies)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이러한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인류학에서 지역에 대한 이론적 관심과 실천의 역사는 다른 학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인류학이 지역연구에 기여한 바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실천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특정 지역의 문화 전반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온 문화인류학자들은 초창기부터 부족, 종족,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단위를 지역연구의 기준으로 사용할 것을 주창해 왔다. 그러나 지역연구가 활성화되고 발전함에 따라 부족이나 종족, 국가 단위의 분류는 지역연구의 대상과 영역을 사실상 협소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문화의 개념에 기초한 구분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는 지역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시작으로, 지역연구와 문화인류학의 관계를 살펴본 후, ``호남 지역문화`` 연구를 사례로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를 거쳐 향후 호남 지역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나아가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지역연구로서의 호남 지역문화 연구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이를 위해선 어떠한 이론적, 방법론적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호남 지역문화 연구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재해석을 요하는 일로, 호남 지역문화 연구의 지평을 확장, 심화하기 위해선 지역문화를 다루는 다양한 학문 분야로부터의 다각적인 접근을 어떻게 통합 또는 융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theory and methodology of area studies critically. In doing so, I investigate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area studies and anthropology, estimate the outcomes of previous ``honam(호남)``(including Jellanam-do and Jellabuk-do provinces which are located in Southwestern area of Korea Peninsula) area studies, and propose the orientations towards the development of ``honam`` area studies in the future. For this purpose, I review some issues on the theoretical and methodological works to reflect and develop the ``honam`` area studies in Korea. And I think that this study is to (re)interpretate the outcomes of previous ``honam`` area studies, especially focused on ``honam`` culture and society, including cultures and societies of islanders` everyday of lives, urban history and culture of port cities, and maritime culture and history and folklore. Furthermore, I review how to integrate the various approaches of different disciplines and fields of ``honam`` area studies into a new academic area or an united knowledge system to provide the proper understanding of ``honam`` culture and society.

      • KCI등재

        글로컬리즘과 지역문화연구

        홍순권 ( Soon Kwon Hong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0 石堂論叢 Vol.0 No.46

        최근 학계에서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을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보완적 또는 대안적 현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글로칼적인`` 세계화의 중요한 특징은 교류의 주체가 반드시 국가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지역단위 또는 개별 생산단위 주체간의 직접적인 교류가 확대된다는 데 있다. 이는 ``지역의 자립``과 ``지역과 지역간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차원 수평적 관계의 새로운 공동체간 관계의 형성이라는 이념적 지향을 담고 있다. 오늘날 글로컬리즘에 대한 관심의 고조 현상은 세계화에 대응한 지역(지방)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의 확대와도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역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해석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은 산업화의 관점에 머물고 있을 뿐, 아직은 ``글로컬리즘`` 시대에 걸맞은 지역문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글로컬리즘에 의한 지역문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글로컬리제이젼을 문화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면, ``글로컬리즘``이란 인간적 삶의 표현으로서의 문화가 생산되는 공동체로서의 지역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적 관계망을 의미하는 개념이 된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동시에 자국적인[지역적인] 공간``이 ``글로벌-로컬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의 발전이 바로 ``글로컬리즘 공간``이다. 이러한 문화 공간을 해석하는 문화이론이 곧 ``문화-글로컬리즘``이다. 지역문화는 중앙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생산과 소비, 그 양자를 매개하는 유통의 문화공간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즉, 글로컬리즘의 관점에서는 민족문화에 있어서 지역문화의 자립화와 국제간 교류(세계화)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며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민족문화의 범주를 뛰어넘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도시문화의 실상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도시문화의 비교 연구를 통해 다문화주의 또는 글로컬리즘 시대의 도시화, 즉 지역문화의 이상적 모델을 탐구할 수 있다. 오늘날 도시문화의 특징적 현상인 이주문화, 다문화 또한 글로컬리즘의 해석이 요구되는 지역문화 연구의 주요한 과제이다. The concerns about the local culture have grown rapidly since the local autocracy system began in the early 1990s in Korea. As a reflection of such a phenomenon, the concept of the glocalization or glocalism has widely spreaded so far recently in the academical society of Korea. The ``glocalization`` is a newly-coined word which was combined with both words, globalization and localization. The glocalization or the glocalism means that the today`s world has inclination to develop both the globalization and the localization which are quite different and contradicted each other in appearance. The glocalization or the glocalism was used as a business terminology at least before 1990, but it is used now also as a cultural or sociological concept explaining the new phenomenon which happens between the regions(local communities) nowadays. The ``Hanlyu``(the spread of the Korean styles) is often incited as one of examples which support such a view. The glocalization does not mean the parallel phenomenon of both the globalizaion and localization. It expresses a will to make the new formation of the horizontal relation between the local communities through the various information networks. In other word, it could be translated into the inter-local relation, which is different from the inter-national relation. It is generalized more and more rapidly in a few decades. It is a cultural-social phenomenon internationally, but can not be identified with the cutural imperialism. Today the great concern about the glocalism demands the new recognition on the local culture. That is, we have to study and interpretate the local culture newl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glocalism. Because the local culture is not the sub-culture subjective to the national or global culture, but it belongs to its independent category of the local culture itself from the viewpoint of glocalism. In short, the space of glocal cuture explained as a local space and a global space at same time. This explanation of cutural space, so-called ``the culture glocalism`` is supported by the culture theorist such as Ramond Williams and other theorists on cultural science. There are many examples which explain the glocal phenomenon of culture in the past pre-modern society as well as in modern or post-modern society. Through all the times the best example of the glocal cultural space is the city. As we know, the city has been and is now the symbolic space of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local communities. Especially, the open ports of the modern East Asia will be good examples of the research if we want to study the urban culture as a local culture at this time from the view of the glocalism. So, I suggest the joint research of culture, history, and the other social sciences about the he open ports of the modern East Asia, which will help us understand more deeply the phenomenon of the cultural glocalism in the 21th century.

      • KCI등재

        목판 인쇄술이 동아시아 문화에 미친 영향

        ( Huai Yuan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4 石堂論叢 Vol.0 No.58

        목판 인쇄의 역사는 우리에게 목판 인쇄술의 탄생과 발전이 사회 문화적 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조판 인쇄술의 탄생에는 두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하나는 물질 기술적 조건이며 또 하나는 사회 문화적 조건이다. 일찍이 진(秦)·서한(西漢, BC 211-218년) 시기, 중국에는 이미 금속·대나무·벽돌에 새겨서 탁본하는 숙련된 기술이 있었다. 동한(東漢, 25-220년) 시기에 이르면 문자 기록 장치로 부드러우면서도 편리한 종이가 발명되었다. 이로써 목판 인쇄술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물질 기술적 조건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졌다. 그러나 물질 기술적 조건만으로 목판 인쇄술이 탄생할 수는 없다. 반드시 상응하는 사회 문화적 조건이 있어야만 한다. 대량의 ``지식 수요``와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독서 인구``가 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사용이 편리하면서도 원가는 저렴하며 많은 내용을 저장할 수 있어 사람들의 사상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목판 인쇄술을 발명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사회 문화적 요구는 기술 혁신과 발전을 가져왔고 기술 혁신과 발전은 사회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이 글은 목판 인쇄술의 발전 과정을 통하여 다섯 가지 측면에서 목판 인쇄술이 동아시아 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첫째, 한자를 널리 보급시켰다. 둘째, 불교문화 전파를 촉진시켰다. 셋째, 유교문화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넷째, 사상 문화 교류를 촉진시켰다. 다섯째, 동양 예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동아시아 문화권, 서구의 기독교 문화권, 그리스 정교 문화권, 이슬람 문화권, 인도 문화권 등 5대 문화권 중에서도 동아시아 문화권의 목판 인쇄술은 지역·인종·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동아시아 문화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목판 인쇄술은 탄생―발전―성숙―정점―쇠락에 이르기까지 1500여년이라는 세월을 거쳤다. 이 시기는 곧 동아시아 문화의 중요한 발전기이기도 하다. 목판 인쇄술은 끊임없는 자기완성의 과정을 통해 사회 문화적 요구에 부합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목판 인쇄술이 가지는 고유의 사회적 기능은 동양 문화의 전파, 문화 통합, 문화적 동질감, 문화 자정(資政) 등 네 가지 방면에서 커다란 작용을 발휘하여 동아시아 문화권의 탄생과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후대 사람들이 깊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It may be firgure out from the history of block printing that the produce and developing of block printing are closely related to the requirement of socity and culture. There`re two essential conditions for the birth of block printing: technology and culture. As early as Qin and Xi Han dynasty, the technology of metal, bamboo even bricks printing has been mature. Until Dong Han dynasty, the soft and portable carrier of writing, which called paper, is invented, the produce of block printing had ingredient of necessary conditions of material. However, It is not certain of produce with which mentioned above, It needs appropriate culture conditions too, only a large number of requirments for knowledge and reading can inspire the produce of block printing, which is appling simply, cost inexpensive and high capacity. It also satisfied the need for thinking and culture. The requirments of culture and socity leads to the innovation of technology, and which satisfy the requirments in turn. The paper analysis the affect of east asia culture by block printing in five section through the developing of it: ⅰwhich spread the chinese characters, ⅱ which accelerate the accepted of buddhism, ⅲ which expands the affect of confucianism, ⅳ which promote the communication of ideology, ⅴwhich reveal the feature of east culture. In five cultural zones which consist of east asia cultural zone, west europe cultural zone, east europe cultural zone, middle east cultural zone and India cultural zone, the formation of east asia cultural zone effected by many factors such as region, ethnic group and culture. In this progress, the contribution of block printing should not be neglected. The block printing has gone through 1500 years from birth, developing, mature, glamour to decline, it is in accord with the period of important east asia culture expansion. The block printing was always trying hard to adapt and satisfy the needs of culture and socity in the progress of self-improvement, and it act as irreplaceable role in cultural spreading, cultural integration, cultural identity and bureaucracy forming and which ensures the characteristcs of east asia cultural zone directly. It worth to be studied by futurity.

      • KCI등재

        한국 전통 담장의 기호학적 해석

        박경윤 ( Kyung Yoon Park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08 石堂論叢 Vol.0 No.42

        문화는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특히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온 전통적 문화의 요소들과 그 안에 내포된 문화적 의미를 찾아서 민족문화의 원형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현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민족문화의 원형 구조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는 특히 현대에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며, 이는 민족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근간으로 존재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간 구축물로서의 담장은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의 경계에 위치하는 공간적 특수성에 의해, 건축물이 지니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상징 이미지의 표출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조형 요소로 표출 되어진 형태에서 상징적 의미를 추출하여, 전통담장에 내재된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조형의식, 그리고 우리 고유의 미학의 원형을 기호학적 분석을 통하여 유추해 보고자 한다. 모든 문화는 고유의 민족성을 가지며 상징 이미지를 가진다. 이러한 상징 이미지는 조형성을 띈 형태로 귀결된다. 조형적 요소로 귀결된 담장의 형태에서 기호로 내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사상적 배경, 그리고 문화의 원형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또한 전통담장에 나타나는 공간적 컨텍스트를 통하여 인간과 공간사이에 상호작용의 결과인 기호적 상징체계와 함께 현대적 재해석에 의한 전통담장이 지니는 공간디자인적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현대 디자인에서 매우 필요한 테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Society is reflected in the culture of its age. It is one of the utmost important topic to construct a model for the national culture through finding the cultural significance contained in the traditional cultural elements handed down form generation to generation. Semiotic analysis of the model structure for the national culture is particularly needed in the modern time; this plays a basic role for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the cultural traditions. Since he fence as a spatial structure can be interpreted as the boundary between the public and private spaces, the structure clearly shows the symbolic societal and cultural images. The paper aims at extracting the symbolic significance from those formative elements and studying the our traditional view of the world and formative aesthetics as well as the model for the aesthetics of our own through the semiotic analysis. Every culture has its own national characteristics and also own symbolic images. These images are well revealed as the forms with formative properties. Our own traditional view of the world and the ideology contained in the symbols expressed on the fences are studied and the cultural model is derived. Analysis of the symbols resulted from interactions between human and space through the spatial context expressed on the traditional fences, its new interpretation and proposing the significance in the spatial design are fundamental themes in the modern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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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식민자들의 “문화접촉”과 “발화법”에 대한 유형화: 타이완과 조선의 좌담회에 나타난 “도무지 알 수 없는 그(것)들”

        신지영 ( Ji Young Shin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4 石堂論叢 Vol.0 No.60

        식민자와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여성, 농민, 노인, 원주민 등=도무지 알 수 없는 그(것)들”을 언급한 좌담회와 .간담회 기록을 대상으로 “식민지 속의 인종주의적 타자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첫째로 동원”하면서” 동원”되는” 피식민지 지식인의 복합적인 위치를 드러내고, 둘째로 이야기”될” 뿐 이야기”하는” 자로 등장하지 않는 피식민지 내부의 타자화된 “그(것)들”의 발화-표현법을 모색한다. 이때 조선과 대만의 상황을 전체적인 배경으로 언급하지만, 다양한 인종적 구성을 지닌 대만을 경유하여 조선 내부의 타자화를 되비춰 보기 위하여, 대만 원주민 엘리트들의 간담회에 초점을 맞춘다. 2장에서는 “징병제” 실시 이후 가속화된 피식민지 지식인들의 동원 상황을 “징병제” 및 “문인 동원”에 대한 대만과 조선의 좌담회를 통해서 살펴본다. 조선의 경우 『국민문학『 을 중심으로, 대만의 경우 『대만 문학『 및 『문예 대만『 을 중심으로, 징병제 및 문인동원을 테마로한 좌담회를 살펴본다. 여기에 참여한 피식민지 지식인들은, 스스로 강제동원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자신들 “내부”의 농민, 원주민들을 강제동원하는 일에 협력”하는” 위치가 되어 간다. 일종의 “분열체”로서 말하는 그들은 농촌, 공장, 탄광, 원주민 거주지 등으로 파견되었고 좌담회 등을 통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동족”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속하고 싶지 않은 종족이자, “식민지의 인종주의적 타자들(농민, 노인, 원주민, 여성 들)”과 만난 순간이었다. 3장에서는 대만의 원주민 엘리트들이 참여했던 세 차례의 원주민 엘리트 청년 간담회를 대상으로 원주민이 “이야기되는”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위치”가 되어갈 때 발생하는 “동원하며 동원되는” 불안한 위치의 발화를 살펴본다. 이 간담회는 『이번의 친구(理蕃の友- “원주민을 이롭게 하는 친구”라는 의미)『(1932년 1월~1943년 1월 2일)라는 대만 총독부 경무국 이번과(台灣總督府警務局理蕃課) 기관지에 실린다. 이 잡지는 1930년 10월 27일부터 일어난 무사(霧社) 사건 뒤 원주민들의 삶을 깊이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이 세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원주민 엘리트의 발화는 날것의 원주민적 가치나 잉여들이 사라지고 “감상과 각오”의 형식으로 정형화되어 간다. 4장에서는 세 차례의 간담회 속에서 정형화된 원주민 엘리트의 발화 -- 특히 “미개한 동족 원주민들”에 대한 -- 에서 그러한 정형화에도 불구하고 삐져나오는 “이야기되는 자들”의 흔적을 살펴본다. 이러한 삐져나온 표현들은 첫째로 원주민 엘리트들의 “훌륭한” 일본인이 되기 위한 “과도한 수사” 속에서 발견된다. 둘째로 원주민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원주민 동족들이 예전보다 얼마나 문명화되었는가를 자랑할 때 드러나는 원주민들의 비명들-장례문화, 총기에 대한 애착, 복장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일어난 사건들-로 표현된다. 셋째로 원주민들이 제국 일본의 요구를 원주민의 논리로 “변형(왜곡)”시켜 이해함으로써 제국 일본의 의도를 비껴가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징병제가 선포되자 원주민의 전통에 근거하여 경험 없는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보낼 수 없다며 노인들이 지원하는 경우, 원주민의 과도한 충성심이 오히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그것이다. 넷째로 극히 정형화된 세 번째 간담회의 발화 기록 바로 옆에는 부눈족의 갑작스런 “흉행”으로 일본인 3명이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실린다. 간담회에서 침묵하는 원주민들의 존재가 “흉행”의 형태로 드러난 순간이다. 식민자들은 이들 부족을 관리하기 위해 산지에서 이주시키지만, 그들은 걸핏하면 자신의 마을로 되돌아가서 식민자들의 애를 먹인다. 요컨대 본 논문은 이야기”하는” 피식민지 지식인의 발화 속에서 삐져나온, 이야기”되는” 자들의 비언어적.비공식적.비제도적 표현을 드러냈다. 이는 피식민지 지식인이 처한 분열적인 중간자적 위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야기”하다”와 이야기”되다” 사이를 횡단하고 갈등하는 발화법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에 의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것)들” 이라고 이야기된 피식민지 내부의 인종주의적 타자들의 흔적 -- 과도한 수사, 비명, 왜곡, 흉행 -- 을 통해 “도무지 알 수 없는 자들”의 몸짓이 지닌 표현법과 저항적 동력을 드러냈다. The colonizers and the colonized intellectuals described women, farmers, old, aborigines as "inconceivable people or things" in some round-tables and conferences. By studying the written texts, we issue a question, "How did those racial or social Others in colonies express themselves?" It shows the complex situations in which the coloninized intellectuals took the lead in mobilizing resources in colonies and at the same time they themselves were mobilized. Secondly, it makes us to look into the ways of utterances and expressions of those Others who were spoken of but couldn``t speak of themselves. We refer to the whole colonial background in Korea and Taiwan, but put a more focus on the round-tables or conferences of the aborigine elites in Taiwan, which was composed of different racial groups, in order to get a clue to the way of becoming Others in Korea. In Chapter 2, we deal with the round-tables which discussed "national conscription" and "literary manpower mobilization" in Kookmin Munhak (國民文學) and Shin Sidae (新時代) of Korea, and Taiwan Wenxue(臺灣文學) and Taiwan Wenyi (臺灣文藝). The colonized intellectuals became a target to be drafted and at the same time a collaborator in conscripting farmers, laborers, aborigines and the like. They talked about the encounters with the "inconceivable people (things)" in the round-tables after they had met with farmers, miners, and aborigines. These were the very moment at which they came into contact with the racial or cultural group to which they actually belonged but they didn``t want to. In Chapter 3, we discuss the transition that the aborigine intellectuals in Taiwan had from the situation in which they were spoken of toward that in which they began to speak of themselves by looking into the conferences in the ministerial journal, “Friends" (理蕃의 友, ``friends who help the people (aborigines) (from January, 1932 to January, 1943), which intended to control aborigines`` lives after the Musha Mutiny. Simultaneously we examine their precarious utterance situation of "drafting and being drafted at the same time." The utterance type in the conferences became stereotyped only to express "impressions (feelings)" and "determinations" and discard their cultural or racial values and redundancies(traditions, ect) Chapter 4 identifies the traces of so-called inconceivables, which the aborigine intellectuals unwittingly told of despite the stereotyping of utterances, when they spoke of the "uncivilized aborigines." One of their traces was found in their excessively lengthy explanations for becoming a "good Japanese." The second kind of trace was in their grievances for their funeral culture, their right to possessions of arms, and their traditional costumes. Thirdly, their trace was revealed when they reinterpreted and modified the colonizers`` order in their own way of thinking. For example, contrary to the colonizers`` expectation, the old, not the young, volunteered to join conscript army, since they thought that the latter had no fighting experience. The written text of the final, and the most stereotyped conference appeared alongside the news story which reported that three Japanese were killed in the unexpected violence of the aborigines. The layout unintentionally implied that they, speechless in the conference, turned out to be violent suddenly and unexpectedly. This seems to be another trace of their existence. In sum, this article displays aborigines`` corporeal, non-linguistic, informal and non-systematic expressions hidden and implied in the discussions of the colonized intellectuals who spoke of those who were spoken of. It also reveals that the colonized intellectuals straddled on the threshold of conflicts between who spoke and who were spoken of, and utilized the ambivalent and conflicting utterance styles. Further, it shows the various ways of expressions and the resistance like circumlocutions, grievances, distortions and uprisings carried out by what was called inconceivable people (things), that is, racial, cultural, or social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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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작농경 개시전후의 일본열도,한반도간 교류

        하시노심페이 ( Shinpei Hashino ),김재현(번역)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6 石堂論叢 Vol.0 No.64

        본고의 목적은 수도농경을 일본열도에 초래했던 도래인의 고지, 그들이 초래했던 문화의 형성과정, 수도농경 전파의 메카니즘을 논의하는 것이다. 송국리형 주거, 석포정, 단도마연호, 지석묘와 같은 물질문화의 계통학적 연구의 성과를 종합하면, 일본열도에서 도래인의 고지를 한반도 남강유역이나 낙동강하류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도래인이 초래했던 문화는 반도의 중서부에서 발생했던 문화이지만, 이 지역에 있어서 재래 전통과 규제의 작용 때문에 변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더하여, 탄소14연대의 교정곡선으로부터 알려진 기후변동과 그것에 동반하는 자연재해, 한반도일본열도간에 형성되었던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와 같은 관점에서, 수도농경 전파의 메카니즘에 관한 예찰을 시도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origin of immigrants introduced the rice paddy-field agriculture to the Japanese Archipelago, their cultural formation process and the diffusion mechanism of rice paddy-field agriculture. According to genealogical researches on Songguk-ri-style pit house, stone reaping knives, red burnished jars and dolmens, the Nam River and the downstream area of Nakdong River is the origin of immigrants. And the culture introduced by immigrants was formed by both of the influence form the Songguk-ri-style culture originated in the Midwest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previous cultural tradition in these areas. Further, the author discussed about the diffusion mechanism of rice paddy-field agriculture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climate change and natural disasters shown by carbon-14 dating calibration curve, the information network between the Japanese archipelago and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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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건축문화유산의 인식변화와 보존가치의 형성

        홍순연 ( Soon Yeon Hong ),옥선호 ( Seon Ho Ok ),김기수 ( Ki Soo Kim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0 石堂論叢 Vol.0 No.46

        보존의 문제는 15세기 이후부터 역사적 건축문화유산의 중요한 논점이 되어왔다. 한국의 경우 역사적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보존은 1960년대 이후 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대상에 따라 보존가치는 역사적가치, 예술적가치, 학술적가치 등 문화재적 관점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건축문화유산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가치평가 방식에 따른 보존방법이 문제시 되고 있다. 한편 서양의 경우 계몽주의가 시작된 18세기 이후부터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보존은 보호의 개념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논의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건축문화유산을 양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보존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비올레-르?과 존러스킨은 보존을 양식의 통일성과 보호라는 관점이 부딪치면서 보존에 대한 중요한 논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면서 보존에 대한 인식변화는 기능주의와 포스트 역사주의 관점으로 나눠진다. 즉, 기능주의는 시대적 상호관계에 따라 시대적 가치로 인정하였으며 포스트 역사주의 관점에서는 역사주의적 태도와 예술적 실무에 따라 다양한 표현과 재 표현에 의한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변화에 따라 보존가치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19세기 이전의 보존가치는 역사적가치, 예술적가치를 바탕으로 기록적가치, 과학적가치가 나타남으로서 각국의 보존가치의 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이후는 국제적 헌장에 따라 사회적가치를 바탕으로 시대적변화에 따른 보존방법 또한 인정하였으며 최근에는 미래지향적 가치까지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인식변화-보존가치에 대한 시대적 형성과정과 상호 관련성을 밝힘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보존의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The conservation for recognizing historical architecture as culture heritage has been an important point since 15C. The conservation for historical architecture as culture heritage has been started after 1960`s in Korea and the value of conservation has been evaluated with value of cultural assets such as historical value, artistic value and academic value ect. But the conservation with an existing valuation has became problems by expanding the scope of historical architecture as culture heritage. In the west, the conservation for historical architecture as culture heritage was discussed by rationalization after 18C stared the enlightenment. And changes of recognition on the conservation occurred by introducing the method of conservation for historical architecture as culture heritage as a new style in architecture Also, Viole-iet-duc from France and John Ruskin from England were conservation unity of style and protection point at issue become. And functionalism recognized by period value according to period correlation after 20th century. Demand reconstructed by Representation and various Presentation according to Artistic Practice and Historical Attitude from Post-historicism viewpoint. The value of conservation also occurred variously according to these changes of recognition. Before 19C, the value of conservation with Record value and scientific value basis on historical value, artistic value formed outline for value of conservation in each countries. And according to the international charter, the method of conservation with periodical transition has been acknowledged with base on social value since 20C also, even future-oriented value has been acknowledged in recent years. Therefore, this study will prepare more active guidelines for the conservation by doing research on the relations between the changes of recognition and the value of con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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