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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말 - 20세기 전반기 최영장군 신앙과 무신도 연구

        강영주(Kang, Yeong-ju) 한국민화학회 2019 한국민화 Vol.- No.11

        이 글은 미술사적 연구가 전무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 무속에서의 최영장군 신앙과 무신도의 유형과 특징을 고찰하는 글이다. 최영은 청백리의 삶을 살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역사적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측근의 배신과 억울한 죽음으로 신격화되어 민간신앙의 가장 강력한 숭배 대상이 된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최영이 정치적 목적으로 신원이 복원된 후부터는 역사적 위기 때마다 국가적, 지역적,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이 처한 난관의 극복과 위안, 승리에 대한 열망의 상징으로 국가와 민중에 의해 소환되어 신으로 숭배되었다. 먼저 인간 최영이 무속의 신이 된 이유를 청백리의 삶이나 올곧은 성품이 반영된 적분(赤墳), 관료와 장군으로서의 공적과 관련 있으며, 무속의 절대 영험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억울한 죽음에 기인함을 알았다. 역적으로 참수를 당하지만 최영에게 직접적으로 은덕을 입은 백성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최영을 넋을 위로하고 추모했고 그들 자신도 최영의 혼령에게 위로받기를 원했다. 즉 최영의 드라마틱한 삶과 죽음은 가장 불운하고 천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진 일반 백성들의 공감을 얻고 그들을 위로하였기에, 인간 최영은 가장 강력한 무속의 신령이 될 수 있었다. 최영과 관련된 무속신앙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국의 무당이 찾는 무속의 성지 개성 덕물산 최영장군사당을 비롯해, 8개의 사당이 집중되어 있는 경남 남해안 지역의 최영장군사당과 서울지역의 부군당이나 국사당 등 지역에 따라 최영장군을 신앙하는 성격이 다르고 모시는 무신도의 유형도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유형은 그림이 아닌 소상(塑像)으로 모시거나 관료 또는 장군복 신상 또는 반신상 영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근대기 국내외의 정세와 맞물려 최영장군이 무속에서 가장 강력한 신으로 모셔지는데, 당시 굿거리를 설명한 『무당내력』 류에 표현된 최영장군상을 통해 당시 최영장군 무신도의 유형을 살필 수 있다. 최영장군 거리에 등장하는 무당은 호수로 장식한 주립을 쓰고, 청색 철릭을 입으며, 갓끈을 묶어 매고 삼지창과 언월도를 들었는데, 이러한 모습이 당시 서울지역 최영장군 무신도의 도상이다. 이러한 도상에 근거한 대표적인 무신도가 〈기봉영당 최영장군 영정〉과 〈남산국사당 최영장군 무신도〉이다. 이 두 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서울지역의 부군당 및 굿당에 모셔진 최영장군신과 같아 현재 국외소재 무신도 등 전국의 불분명한 무신도의 명칭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남해안 사당의 반신상 역시 『무당내력』 류나 기봉영당 영정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이 양식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광범위하게 모셔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인왕산국사당 최영장군 무신도〉는 투구와 비슷한 발립을 쓰고 포를 입은 모습으로 제작됐는데, 이는 20세기 초엽 남산국사당이 인왕산으로 이전하며 새롭게 모시게 된 최영장군신상을 〈개성 덕물산 최영장군사 최영 소상〉을 기준으로 하여 고증해서 특별히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신도는 백성을 아픔과 고난을 위로해주는 무속신앙의 종교화임에도 불화나 민화의 아류로 보아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고찰이 무신도의 역사적, 종교적, 민속적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적 중요성이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This study is the research on the Shaman Spirit Painting (Musindo) of general Choe Yeong in the late 19th and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Choe Yeong was a military commander in the late Goryeo and a historically great man who lived a simple life devoid of greed and devoted himself to the nation and the people at the risk of his death. Despite his numerous achievements, his colleague"s betrayal and his tragic death led him to be deified as one of the most powerfully worshipped Shaman. Since his identity was restored for political purposes in the Joseon Dynasty, Choe Yeong has been used for national, regional, and personal purposes in every historical crisis. And, especially in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o Japanese colonial period, he was recalled and worshiped as a god by the nation and the people and as a symbol of a conquest and consolation of difficulties faced. It was people's desire for victory. The shamanism related to Choe Yeong can be divided by region. First, there is a shrine of Che Yoeng's Shrine on Deokmulsan in Gyaesung, a sacred place of shamanism that shamans all over the country are visiting.Next, the eight shrines are concentrated in the south coast area in Gyeongnam. Lastly, there are Bugundang and Guksadang in Seoul. Depending on region, the faith of General Choe Yeong has different characteristics and different types of the shamanic spirit painting worshiped. The types can be divided into a clay figure not a painting, or a full portrait of god in general uniform of amor, and half-length portrait in military uniform. In modern times, due to the domestic and foreign situation, general Choe Yeong was worshiped as the most powerful god in shamanism, At the time, the figure of general Cho Yoeng expressed in 『Mudang Naeryeok』, a book explaining Gutegeori (shaman song), was wearing a red Gat in bird feather, blue Chulrik, tying up strings of Gat (Gatkkeun), and holding a trident and scimitar. This feature is an icon of the shamanic spirit painting of the general Choe Yeong in Seoul region at the time, and the representative paintings are 〈a portrait of general Cheo Yeong in Gibong shrine〉 and 〈a Paintings of Shamanistic Spirits of genenral Cheo Yeong in Guksadang〉. These two paintings are likely to have been drawn in the late of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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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영론 3 - 카프 복귀에서 「수선화」까지-

        현순영 ( Sun Yeong Hyeon ) 한민족어문학회 2015 韓民族語文學 Vol.0 No.70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이자 프롤레타리아영화운동가인 김유영의 활동을 추적한 연구의 최종 보고서이다. 김유영이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구인회에서 탈퇴할 때까지 벌인 활동을 기술하고 그 의미를 논한 선행 논문들에 이어 이 논문에서는 김유영이 구인회에서 탈퇴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벌인 활동을 기술하고 그 의미를 논했다. 주요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김유영은 1934년 5월 조선영화제작연구소 창립에 동참하면서 카프에 복귀했고 구인회에서 탈퇴했다. 그는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지닌 전문가들과 함께 카프의 슬로건 아래서 각본 작성 등 영화 제작에 관해 연구하고 나아가 영화를 제작한다는 구상을 조선영화제작연구소를 통해 실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유영은 신건설 사건에 연루되어 1934년 8월 검거되었다. 그 뒤 그는 지지(遲遲)한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전향을 서약한 뒤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1935년 12월 석방되었다. 석방된 뒤 김유영은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영화 잡지 출판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고 영화연출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다가 「애련송」에 이어 「수선화」를 연출하던 중 1940년 1월 4일 지병인 신장염이 악화되어 타계했다. 김유영이 카프에 복귀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벌인 활동은 그가 전향 서약을 기점으로하여 계급주의에 봉사하는 영화 기술자에서 가치중립적인 영화 기술자로 선회한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유영은 계급주의를 견지했을 때는 계급주의의 전파수단인 영화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쓸 것인지 고민했고, 전향을 서약하며 계급주의를 감추거나 버렸을 때부터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서의 영화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세련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에 머무르려 했다. This is the final report of research that traced the activities of Kim Yu-yeong(1908-1940), film director and proletarian film activist who worked during the perio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Previous papers described Kim's activities during the period from his entrance into the film world to his withdrawal from Guinhoi(Nine People Club) and discussed their meanings. Following them, this study described his activities during the period from his withdrawal from Guinhoi to his death and discussed their meanings. The contents of this study are summarized as follows. Kim Yu-yeong returned to KAPF through his participation in the foundation of Chosun Film Production Research Institute in May 1934, and withdrew from Guinhoi. Through Chosun Film Production Research Institute, he seems to have tried to implement his plans to research filmmaking such as screenplay and to produce films under the slogan of KAPF together with experts who had classist ideology. Involved in the Singeonseol incident, however, Kim was arrested in August 1934. After a long process of trial, he was sentenced two-year jail with execution suspended after three years, and released in December 1935. After released, Kim Yu-yeong was involved in various activities. In particular, he made continuous efforts to publish a film magazine and put all his energy into the production of movies. Then, while directing Suseonhwa(水仙花. Narcissus) following Aeryeonsong(愛戀頌. Song of Compassion), he died of his chronic disease nephritis on January 4, 1940. Kim Yu-yeong's activities during the period from his returning to KAPF to his death are meaningful in that they show the process of his turning from a film technician committed to classism to a value-neutral film technician, taking his pledge of conversion as a turning point. When Kim Yu-yeong was holding classism, he deliberated on how to develop and utilize film technology as a means to propagate classism, but after abandoning classism through the pledge of conversion, he tried to stay in the position for seeking answers to the question of how to develop and refine film technology as a value-neutral o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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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자 시의 종교적 이미지 연구

        손미영(Son, Mi-yeong) 한국비평문학회 2015 批評文學 Vol.- No.56

        이 글은 종교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허영자의 시를 검토한다. 1960년대에 등단하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허영자의 시 세계는 지적 서정과 직관을 발휘하며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여 미학적 성취를 일궈낸 허영자의 시 세계에서 종교적 이미지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시인은 종교적 여성 인물들을 통해서 생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데, 인간적인 고뇌와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인들의 참회는 성스러움을 이루는 한 방식이다. 번뇌를 견디고 극기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와 관음보살과 같은 성스러운 여성 인물들이다. 이는 가장 인간적인 고뇌를 통해 신성성에 닿는 역설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러한 인간적 고뇌가 승화되는 순간에 종교적 황홀경을 경험한다. 이 종교적 엑스터시는 화자를 무한히 증식하는 우주로 고양시키거나 절대적 존재와의 동일시를 통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주체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열을 얻으며 고통의 과정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황홀경의 순간은 후기의 시편에 이르러서는 세계 내의 존재들에서 신성성을 발견하는 응시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한다. 특정 종교의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도 시인은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숨은 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종교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던 신성함의 실제들은 현실의 대상들을 통해 드러난다. 이 같은 변화는 종교적 이미지에서 현실의 대상에서 신성성을 발견하는 것처럼, 장식적인 시어가 아니라 평범한 언어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의식이 극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실재는 특별하지 않은 현실의 언어를 응시하여 그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로써 시를 직조하는 미적 연단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 시인에게 시는 종교가 되었으며, 언어를 연단하는 과정은 내적 희열을 예비하는 극기의 과정이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eo Yeong-ja's poems focusing on the religious image. The poems of Heo Yeong-ja, who made her debut as a poet in 1960s, show intellectual lyricism and intuition. Especially, in the world of Heo Yeong-ja's poems that explore the fundamental problems of human beings and make aesthetic achievement, the religious image is an important part. Poets directly speak the hardship of life through religious female characters, and women's repentance to escape from agony and sin is a way of realizing sanctity. Those who console people enduring and overcoming anguish are holy female characters such as the Virgin Mary or the Buddhist Goddess of Mercy. This is also a paradoxical way of reaching sacredness through the most humane agony. A narrator comes to experience religious ecstasy at the moment this humane agony sublimates. This religious ecstasy helps a narrator advance into the state of enlightenment by expanding him or her to the limitlessly spreading universe or equating him or her with an absolute being. In this world, an entity completes the process of pain by gaining infinite possibility and delight. However, in later poems, this moment of ecstasy naturally changes into a way of gazing to find sacredness. Here, the poet comes to be able to find God hidden in all parts of the world without specific religious images. Thus, the entities expressed through the religious image are exposed through objects in reality. This change indicates that poet's poetic awareness to rediscover normal language, not decorative poetic language, has been maximized, which is similar to finding sacredness in objects in reality. That is, it is to gaze at the language undistinguished in reality and find out the hidden beauty inside, which leads to the process of aesthetic refinement. In this stage, to the poet, poems become religion and the process of refining language becomes the process of perseverance for internal d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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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시의 ‘인지어' 연구 2

        주영중(Ju Yeong-Jung) 韓國批評文學會 2011 批評文學 Vol.- No.39

        이 글은 김수영 시의 사유 인지어를 중심으로 주체가 자아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는가 하는 인지 방식과 인지의 전이 과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밝히기 위해 이 글은 어휘를 중심으로 한 언어운용방식에 관심을 둔 실증적인 연구 방법을 택한다. 김수영 시의 사유 인지어는 ‘생각하다-알다-모르다' 계열의 시어들로 구분할 수 있다. 각 계열의 시어들은 기본적으로 ‘사유의 과정 자체-사유의 결과-부정적 사유와 회의 또는 의심'이라는 의미 맥락과 친연성을 보인다. 하지만 시의 문맥 속에서 각 계열의 시어들은 단순히 긍정 또는 부정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차원으로 다루어지기도 하며, 그런 경우 시어들은 전혀 다른 맥락을 형성하면서 좀 더 복합적인 의미체를 구현한다. 이 글은 사유를 중심으로 김수영 시를 살펴보면서 감각과 감정의 문제 또한 짚어보려 한다. 그 이유는 김수영 시에서 사유의 각 계열은 감각과 감정의 시어들과 끊임없이 관계하면서 전이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김수영 시의 언어 운용 방식에 주목하여, 사유 자체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 같은 다른 기제들과의 상관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cognition and transition process of how the subject recognizes self and world with special reference to reasoning cognitive words of poems of Kim Su Yeong. An empirical research method is selected to figure out language operation method based on words. Reasoning cognitive words in his poems can be classified as ‘think-know-do not know'. Words in each group has a meaning context and affinity of ‘reasoning process itself - result of reasoning - negative cognition and doubt'. But, the words were not only dealt with simple negative or positive level, but also dealt with more paradoxical and ironical level. In that case, the poems constitutes more complicated meaning. This study focuses on sense and emotion in the poems of Kim Su Yeong. This is because each reasoning group in his poems has a continual transition and transformation process with words of sense and emotion. With this language operation method in mind, this study shall pay attention to the interrelationship with other matters such as sense and emotion as well as the movement of reasoning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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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discuss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Original Form of the Taekkyeon Genealogy

        ( Yeong Man Kim ) 한국체육학회 2016 국제스포츠과학 학술대회 Vol.2016 No.1

        Purpose: For the restoration of the original form of the Taekkyeon genealogy, this study aimed to put data on the genealogy in order, centering around figures related to Song Deok-ki. The purpose of doing so is to restore the Taekkyeon genealogy to its original, correct state and contribute to the establishment of its identity. Method: The study relied on literary review and oral statements as a qualitative research tool. Interviewees included Ko Yong-Woo(born in 1952, 1969-1985) and Kim Jin-yeong(born 1954, 1977-1987) who were taught Taekkyeon by Song Deok-ki, and Park Seung-dong(born in 1959, owner of a Taekwondo gym) who was involved in Taekwondo-Taekkyeon exchanges with Shin Han-seung. Result: This study was intended to shed light on by whom Lim Ho, master to Song Deok-ki, was taught Taekkyeon, and what figures among Song Deok-ki's pupils should be included in the genealogy. It also aimed to reinvestigate when Shin Han-seung, who i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tarted learning from Song Deok-ki. A chosun IIbo article dated August 6 1985 stated “Mr. Song learned Taekkyeon from his big brother for three years from the age 12, afterward he continued training for 18 years until Master Lim Ho passed away. His father, Mr. Song Tae-hee, was also a master of Taekkyeon.” And Kim Jin-yeong said “Lim Ho's master was grandfather and father (Song Tae-hee).” (interviewed on June 4 2016 in his home). Also, Lee Yong-bok (2007) and Park Seung-dong (2015) stated that Kim Yong said that Shin Han-seng first met Song Deok-ki through the good offices of Lim Chang-su after reading and article about Song Deok-ki in a Taekwondo journal in autumn 1971. And Ko Yong-Woo said he heard that “grandfather (Song Deok-ki) said a mysterious monk visited him in spring 1972” (interviewed on January 20 2016 in Los Angeles). Conclusion: First, Lim Ho learned Taekkyeon from Song Tae-hee who was Song Deok-ki's father, and Song Deok-ki was taught Taekkyeon by his big brother and Lim Ho. Second, Lim Chang-su, Shin Han-seung, Ko Yong-Woo, Kim Jin-yeong, Do Ki-hyeon, Lee Jun-seo, etc. should be included in the genealogy as Song Deok-ki's pupils. Third, it is highly likely that Shin Han-seung first learned Taekkyeon from Song Deok-ki in 1972, not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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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시론의 숭고 특성 연구

        주영중(Ju Yeong-Jung) 韓國批評文學會 2012 批評文學 Vol.- No.43

        이 글은 김수영 시론에서 숭고의 계기들을 찾아내고 그 숭고의 계기들이 어떻게 김수영 시론과의 접점을 이루는지를 미와 숭고의 대비 속에서 혹은 그 관계 속에서 찾으려 했다. 김수영의 시론은 부르주아의 미적 쾌락에 대한 부정의식과 미의 본질로서의 새로운 미에 대한 열망 그리고 동시대의 시(시의 본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서정시)에 대한 비판의식과 새로운 시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의식과 이성 혹은 의지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도 없는 것들이 시의 본질과 관련된다고 보는 김수영은 오히려 수동적인 새로움을 강조한다. 숭고한 것은 어떤 것에의 기다림과 열림을 통해 도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시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매개로 무의미와 무의식 또는 꿈 등을 들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미와 숭고의 관계는 서정과 반서정 혹은 시와 반시의 관계와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완료태를 지향하는 한, 미와 서정은 이미 일정한 경계 속에 위치한 채 정지한다. 또한 그것이 향유의 차원으로만, 주체의 만족의 차원으로만 다루어질 때 그것은 자족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의 본질과 시의 본질을 일정한 규칙과 질서로 인식하는 것과 미지와 혼란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술과 시를 바라보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미(美)는 대상을 형태화하고 질서화하는 가운데 느끼는 만족감과 관련되며, 이질적인 것들을 어떤 원칙이나 규칙으로 결합하여 종합할 수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관련된다. 이에 반해 숭고는 무한대의 혼돈으로 규정 할 수 없고 이해불가능한 어떤 것에 대해 느끼는 이중적 감정, 즉 두려움이나 공포와 같은 불쾌와 매혹과 같은 쾌의 복합 감정과 관련된다. 주체의 이성의 향유로서의 미는 완결의 형태를 취하는 순간 이미 그 자체의 한계를 노정한다. 이러한 미의 한계 지점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숭고에서 찾을 수 있다. The intent of this article was to find poetics of sublime moments and how sublime moments contact with Kim Su-Yeong's poetics in contrast, or the relationship of beauty and sublimity. His poetics holds negative for the aesthetic pleasures of bourgeois consciousness, desire for a new beauty as the essence of beauty, criticism of contemporary poetry, and desire for a new poetry. He think that consciousness, reason, or willingness cannot explain and understand things that might be related to the nature of the poem was, and emphasizes the newness rather passive. Through waiting and opening sublime is related to the belief anything may be coming. He gives an example the unconscious, nonsense, or dream nature of poetry, etc. as parameters that can be reached. The relationship between beauty and the sublime correspon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lyric and non-lyric, of poetry and non-poetry. If beauty and poetry would accept completed state, that will have to have certain limitations. In addition, these things stay only in the dimension of enjoyment and satisfaction, and will not deviate from a self-contained. To Recognize the nature of beauty and poetry is as a certain rule and order, to understand the unknown and confusion, and to understand the unknown and confusion make a big difference thinking at art and poetry. Beauty is related to feeling of satisfaction to organize object and to feeling of generalizing and combining disparate things with any principles or rules things we look at any rule or rules. In contrast, the sublime is relevant to the double emotional feeling, in other words fascination and unpleasant feeling such as fear, dread and fascination that not to can be defined and not to understand. The enjoyment of beauty as the principal reason which takes the form of a complete moment is already journeys of its own limitations. The sublime allows you to exceed the limit point of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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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열단 창립단원 문제와 제1차 국내거사기획의 실패 전말

        김영범(Kim, Yeong-beom)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한국독립운동사연구 Vol.0 No.58

        이 글은 의열단의 창단 후 첫 기획인 국내 일제기관 투탄거사가 거단적으로 추진되었으나 끝내 결행되지 못하고 만 경위를 세세히 추적·천착해본 작업의 결과물이다. 우선은 그 추진과정 참여자의 범위와 각인의 역할 및 신원을 재확인하고 판별해가던 중에 창립단원의 명단과 인원이 『약산과 의열단』에서 비롯된 통설과 다를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다수의 1·2차 자료를 참조하며 재검토해봄에 의해 종래의 ‘13인' 설 명단 속의 3인(배동선·한봉인·권준)은 창립단원일 수 없었음과 나머지 10인만 해당됨을 논증하고 부수적 의문점들도 해결하였다. 또한 초대 단장(‘의백')은 우여곡절 끝에 황상규가 아닌 김원봉이 맡는 것으로 낙착되었음을 해명하여, 저간의 일부 인식혼란을 불식하면서 통설을 확정지었다. 의열단의 제1차 국내거사 추진과정과 그 결말을 세부사실들의 순차적 배치와 새 자료의 활용에 의해 재구성하고 숙고해봄으로써 도출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밀반입 무기의 보관책임자이던 이일몽(이수택)의 이상행동―매번 이유를 바꿔가며 끝끝내 폭탄을 내주지 않은―이 거사결행에 거듭 제동을 걸어 결국 미수에 그치고 말게 하였다. 둘째, 밀입국 단원들의 연속피검이 일부 단원의 부탁을 받은 김진규·안태익의 밀고에 의한 것이었다는 수사책임자 김태석의 반민특위 진술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분석해보면 허점이 많고 진상은폐와 독립운동 모독의 의도를 내장시킨 허위진술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김태석이 폭탄 전부 압수와 거사저지 목적의 공작을 벌여가는 데 구영필이 동원되어 적극 협력했고 이일몽도 끌어들여져 보조했다. 나아가 구영필이나 그 휘하 그룹의 누군가가 거사계획 자체를 진즉 밀고했을 가능성이 부분적으로 짚어지면서 앞으로 더 추급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This paper is the result of inquiry into the details of the case that the Eui'yoldan's undertaking of bombing the domestic colonial institutions as the first-time action project immediately after its founding completely failed at the end in spite of propelling on an entirely organizational scale. The author demonstrates in the first place that three persons(Bae Dong-seon, Han Bong-in and Kwon Jun) among the hitherto name-list of 13 founders of Eui'yoldan must not have really been the founding members, and that only the rest 10 could have been included in the list, and goes ahead to solve the collateral questions. That demonstration and solution was possible by referring to and reexamining many of the first and second source of materials, and through reaffirming and distinguishing the boundary of the participants in the propelling process along with everyone's role and identity. Main points found and confirmed by arranging the detailed facts one by one along to the time sequence and by reconstructing the entire process of the undertaking propelling and its unexpected results are as follows. Firstly, there were certainly curious acts by Lee Il-mong and Bae Joong-se of refusing stubbornly to hand over the bombs under custody and keeping to action group, with reasons changed each time, which consequently put on the brakes the final step and made it not to be accomplished. Secondly, Kim Tae-seok's statement at the Special Committee for the Persecution of the Anti-national Actors in 1949 that the successive arrest of the founding members of Eui'yoldan in 1920 had been due to a secret information by Kim Jin-kyu and Ahn Tae-ick was, in author's judgement, untrue one which had several loopholes although sounding plausible and involved some intention of concealing the truth of the incident, furthermore defaming the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Thirdly and finally, Goo Yeong-Pil was mobilized by Kim Tae-seok and he collaborated actively for the latter's operation for the purpose of both seizing all the bombs and impeding the undertaking, and Lee Il-mong was also drawn into it and helped. There remains some additional questions which must be followed up and expli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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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강의 어류상과 군집구조

        채병수 ( Byung Soo Chae ), 강영훈 ( Yeong Hoon Kang ), 김상기 ( Sang Ki Kim ), 유동욱 ( Dong Uk Yoo ), 박재민 ( Jae Min Park ), 하헌욱 ( Heon Uk Ha ), 황의욱 ( Ui Wook Hwang ) 한국어류학회 2014 韓國魚類學會誌 Vol.26 No.1

        2013년 3월부터 10월까지 낙동강수계의 1차 지류인 영강의 37개 조사지점에 대하여 어류상을 조사한 결과 총 13과 31속 39종 2형의 어류가 확인되었다. 채집된 어류 중 잉어과 어류가 23종 2형(61.0%)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미꾸리과 어류가 4종(9.87%)이었다. 한반도 고유종은 17종으로 채집어종수의 41.5%를 차지하였다. 멸종위기종은 얼룩 새코미꾸리 (Koreocobitis naktongensis)와 모래주사 (Microphysogobio koreensis)의 두 종이었으며, 외래종은 무지개송어(Oncorhynchus mykiss)와 배스(Micropterus salmoides)의 두 종이었다. 국내의 다른 하천에서 옮겨진 이입종은 끄리(Opsariichthys uncirostris amurensis), 눈동자개 (Pseudobagrus koreanus), 빙어 (Hypomesus nipponensis)의 3종이었다. 개체수를 기준으로 한 우점종은 참갈겨니 NS형(Z. koreanus NS, 23.24%), 아우점종은 참갈겨니 NE형 (Z. koreanus NE, 12.72%)와 피라미 R형(Z. platypus R, 12.35%)이었다. 어류 군집분석을 실시한 결과 영강 전체는 다양도 1.134, 균등도 0.703, 우점도 0.110, 종풍부도 4.348로 나타나 다양하고 안정된 어류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조사지점 사이의 유사도지수를 이용하여 수지도를 작성한 결과 상류집단, 중상류집단, 중류집단, 하류집단의 4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Freshwater fish fauna and community structure were investigated at thirty seven stations in the Yeong river, Nakdong river system, Korea from March to October 2013. During the surveyed period thirty nine species and two types belonging to thirteen families were collected. In this collection fishes of Cyprinidae were most numerous possessing 61.0% of all. There were seventeen Korean endemic species including Acheilognathus koreensis, two endangered species such as Koreocobitis naktongensis and Microphysogobio koreensis and two exotic species such as Oncorhynchus mykiss and Micropterus salmoides. Fish species transferred from other native rivers were three species such as Opsariichthys uncirostris amurensis, Pseudobagrus koreanus and Hypomesus nipponensis. Dominant species based on the number of individuals was Zacco koreanus NS (23.24%) and sub-dominant species were Z. koreanus NE (12.72%) and Z. platypus R (12.35%). The community analysis revealed that the structure of fish community in the Yeong river was very stable and diverse in having diversity 1.134, evenness 0.703, dominance 0.110 and species richness 4.348. Fish community was divided into four groups based on similarity indices among surveyed stations such as upper reach, mid-upper reach, middle reach and lower reach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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