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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공간 강성갑의 기독교 사회운동 연구

        홍성표(Hong Seong-Pyo)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6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 No.45

        1920~30년대 한국교회는 어려운 농촌의 현실에 주목하고, 덴마크의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아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일제의 탄압과 교회내부의 보수적 신앙인의 반대로 1930년대 말에 막을 내렸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농촌문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였으나, 해방 공간에서 한국교회의 농촌운동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강성갑은 해방 공간에서 이러한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상남도 진영에서 한얼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기독교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강성갑은 1912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였고, 연희전문 문과와 도시샤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1943년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946년 4월 진영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활동과 함께 기독교 사회운동을 전개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총살당했다. 이 사건은 소위 진영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판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가해자를 처음으로 처벌한 사건이었다. 강성갑의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한 재판과 추모동상 제막식이라는 공적 행사를 통해 그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몰려 가족들은 커다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강성갑은 덴마크 그룬트비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실천했다. 복음중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사회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진영교회 및 지역사회와 함께 1948년,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흙을 사랑하자’라는 ‘삼애정신’을 교훈으로 하는 한얼중학교를 설립하고 농촌의 인재를 양성하였다. 강성갑의 한얼중학교 설립은, 해방 후 모든 것이 부족했으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열의로 농촌의 교육을 위해 강성갑과 진영교회와 진영의 지역사회가 합심하여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대안을 만들어간 기독교 사회운동의 모범적인 사례였다. The Korean churches, paying attention to harsh realities in 1920s and 1930s, carried on the rural movement influenced by 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This movement of Korean churches had to come to an end in the end of 1930s however, because of Japanese oppression and the opposition forces of conservative believers inside the church. After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the rural movement was still the first priority task to solve to build a new nation, though it is not easy to find the cases of rural movement by Korean churches in the Post-Liberation Period. Kang Seong-Gab pioneered in Christian social movements to resolve these rural problems, as an example, he established Haneul Middle School in JinYoung Gyeongsangnam-do. Kang Seong-Gab was born in 1912 in Uiryeong Gyeongsangnam-do and completed liberal arts course in Yonhi College and studied theology and graduated from Doshisha University. In 1943 he was ordained as a minister by Gyeongnam presbytery, then started his ministry as the pastor in charge at JinYoung Church in April 1946. He developed Christian social movements while he was in ministry, then he was wrongfully charged as a communist he was shot to death during Korean War. This incident is known as JinYoung slaughter, which was the first time to punish the perpetrators of civilian massacre at the trial during the Korean War. The trial to punish the perpetrators and the official dedication of memorial statue revealed his wrongful death and recovered his reputation, but his family had to suffer a great pain since Kang Seong-Gab was still regarded as a ‘communist.’ The philosophy of Danish Grundtvig influenced Kang Seong-Gab and made him to put the philosophy into practice. He started Christian socialist movements by establishing Bogeum(Gospel) Civic School, and together with JinYoung Church and the regional community he established Haneul Middle School in 1948 to start educating people in rural area. The school motto was ‘Love God, love neighbor, and love land.’ The establishment of Haneul Middle School by Kang Seong-Gab was the model case of Christian social movement, even though everything was short in supply after the Liberation, together with JinYoung Church and the regional community having enthusiasm to rebuild new nation, that they made up of an alternative plan to overcome the appalling conditions to educate the rural area.

      • KCI등재

        일반논문 : 의안대군이화(義安大君李和)의 공신력(功臣歷)에 대한 고찰

        천성래 ( Seong Rai Cheo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4 東方學 Vol.30 No.-

        본 논문은 "여말 선초 의안대군 이화의 공신력"에 대한 고찰로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는 왕조의 폐망과 개국으로의 변화가 극심했던 시기로서 공신 의안대군 이화의 활동을 중심으로 공신력을 살펴 본 것이다. 여말선초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개국,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이화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그것은 그가 여말선초 4대공신이라는 기록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미명아래 많은 공신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고 공신도감을 설치하여 공신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을 정도이다. 여말 선초의 최대 공신인 이화는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서 회군공신,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 등 4대 공신에 책봉되며, 당대 최대의 특혜를 누린 인물이다. 그는 이성계의 최측근에서 여러 환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동하는 왕족으로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실제적 힘이 되었다. 그는 영삼사사를 지내고 마침내 영의정이 되었으나 그에 대한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의안대군 이화의 행적을 통해 여말선초의 공신에 대해 살펴보고, 공신에 대한 특혜와 공신의 위차 등에 대한 차이를 살펴보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 속에 숨어 드러나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 의안대군 이화에 대한 생애를 더듬어보고, 왕족으로서 위기의 순간에 역동적인 행동을 통해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와 더불어 조선의 정통성 확립을 이룩한 이면의 무인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s a part of examination into vassals of merit from the late era of Goryeo Dynasty to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this study sought to investigate history about vassals of merit primarily in terms of Euian Daegun Yi Hwa`s meritorious activities during such period of transition where extreme changes occurred with collapse of former dynasty as well as foundation of new dynasty. Yi Hwa rendered his distinguished services even under critical situations-whether national or international-accompanied with troop withdrawal at Wihwado,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and two prince revolts(1st and 2nd). And his services gave a historical implication that he was one of 4 great vassals of merit during such a period of transition in Korean history. Under the guise of Goryeo Dynasty`s collapse and Joseon Dynasty`s foundation, it was inevitable that there were many vassals of merit produced during this critical period, and royal family granted proper favors to those vassals with stipend for vassals of merit. In particular, Joseon Dynasty installed even a governmental office for vassals of merit to supervise general affairs about vassals of merit. It may be definitely to say that Euian Daegun Yi Hwa was the greatest vassal of merit during the period of transition from Goryeo to Joseon. He was a half-brother of Taejo Yi Seong-gye, the founder of Joseon Dynasty. Yi Hwa was invested as the vassal of 4 great merits in contribution to troop withdrawal, new dynasty foundation, affairs of state and assistance in making Yi Seong-gye the first king of Joseon dynasty, so he could enjoy the greatest favor granted by the governmental authority of his contemporary dynasty. Yi Hwa was a royal family member who stood nearest by Yi Seong-gye and got over a series of hardships wisely with bold actions, so he could play a role as real contributor to founding Joseon Dynasty after collapse of Goryeo Dynasty. According to historical documents, he took up Yeongsamsasa and was finally appointed as Yeong-euijeong, the prime minister of Joseon Dynasty, but there was very few studies focusing on his presence in the history. Therefore, this study has its implications in that it addresses the historical activities of Euian Daegun Yi Hwa to examine vassals of merit from the late era of Goryeo Dynasty to the early era of Joseon Dynasty, and determine any differences in special favors and order of ranks for the vassal of merit. Thus, it is expected that we will be able to explore the lifetime of Yi Hwa, a covered half-brother of Taejo Yi Seong-gye in Korean history, and will be able to examine Yi Hwa``s dynamic actions as royal family at critical moments of historical transition, so that we may find out the military spirit of a vassal behind his meritorious contribution to establishing the legitimacy of Joseon Dynasty in collaboration with emerging gentry armed with the philosophy of Neo-confucianism.

      • KCI등재

        雪坡 孫星岳의 생애와 산수 유람의 의미

        具珍成(Gu, Jin-seong)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8 한국학논집 Vol.0 No.71

        이 글은 경주 양좌동에 거주했던 설파(雪坡) 손성악(孫星岳, 1741~1813)의 가계와 생애를 통해 그의 인물 성격을 일별하고, 산수 유람이 그의 삶에서 지니는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쓰여졌다. 설파는 조선 초기 경주 양좌동으로 이거했던 손씨의 후예이다. 조선 중기 이 가계에서 손중돈(孫仲暾, 1463~1529)과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출현하여 학문(學問)과 사환(仕宦)의 측면에서 가격(家格)이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이후로 설파의 조부 대에 이르기까지 뚜렷이 현달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가세가 점차 쇠락해갔다. 설파의 조부는 자신의 당면한 임무를 가세를 확장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직접 집안 경영에 참여하여 가산을 증식했다. 설파와 그의 부친이 지닌 농가적(農家的) 자의식은 이러한 조부의 행적과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가계적 배경은 설파의 인물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설파가 거의 일평생을 과거 시험에 응시한 것은 선대의 영광을 재현해 주기를 소망한 부친의 유언때문이었다. ‘과거(科擧)’라는 과업(課業)은 설파의 개인 취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조건들이었으나, 설파는 이를 완수하기 위해 일평생 노력했다. 또한 이 가계가 지닌 농가로서의 자의식은 선비로서의 정체성을 학문·과거로 고정시키지 않고 다른 가치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설파가 자신의 산수 유람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배경이 되었다. 설파의 취향은 산수 유람에 있었다. 과업으로 인해 자신의 취향을 유예했던 설파는, 1801년 진사(進士) 입격(入格)이라는 성취를 이루고 난 뒤에 공개적으로 산수 유람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또한 유람기 작성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3,40년 전에 유람했던 명승까지도 이 시기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타인의 명승 유람 기록도 힘이 닿는 데까지 입수해서 감상했다. 설파에게 있어 유람은 꿈의 실현이자 품격을 쇄신하는 계기였다. 설파는 젊은 시절부터 명승을 유람하는 꿈을 꾸는 일이 많았다. 그는 이를 환상이나 허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정수(精髓)가 드러난 것으로 해석했다. 설파는 산수 유람을 이상적 삶을 실현하는 요소로 보았고 유람의 향유를 통해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명(命)을 완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설파는 산수 유람을 통해 인품(人品)이나 시품(詩品)이 향상될 수 있다고 여겼다. 졸렬한 인품을 지닌 인물도 기험한 산천의 유람을 통해 그 품격이 쇄신될 수 있으며, 기이한 경관을 접하고 지은 시의 품격이 평소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설파에게 있어 과거와 학문은 자신의 취향과 거리가 있었으나, 선비로서 그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계적·사회적 압력은 한평생 지속되었다. 부친이 유언한 과거의 임무는 끝내 완수하였지만, 그에게 학문(주자성리학)을 요구하는 압력에 대해서는 자신의 취향을 이상적 삶과 연계하여 긍정함으로써 극복하였다. 삶의 다양한 가치를 긍정하고 그에 대한 논리를 구성하였으며 산수 유람을 통해 실천했던 설파의 삶에서, 18세기 후반 경주지역 문인의 한 양상을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Son, Seong-ak(1741-1813)’s characteristics of life and meaning of mountain trekking for his lifetime. He was from a famous family of confucian society, but it was fell down until his grandfather’s era. His grandfather was multiplied wealth by cultivated farming. But in his hierarchy, it was important to be a bureaucrat for the prosperity of the family. So he focused his whole life on the National examination. And it was also important to acquire of academic power. He obeyed the demands of his family, but his taste was on a mountain trekking. He wanted to enjoy ideal life through a mountain trekking. So he concentrated on it in his old age. The mountain trekking was the realization of dreams and opportunity to improve personality in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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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국내 리빙랩 사례 분석

        성지은(Seong, Ji Eun),한규영(Han, Kyu Young),정서화(Jeong, Seo Hwa) 한국과학기술학회 2016 과학기술학연구 Vol.16 No.2

        최근 국내에서도 사회 주체(주민, 사용자 등) 주도형 혁신모델이자 지역·현장기반형 혁신의 장으로서 리빙랩이 도입·적용되고 있다. 본 연구는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실험으로 ‘리빙랩’을 명시하고 추진된 북촌 리빙랩, 성대골 리빙랩, 건너유 프로젝트 3개 사례를 분석하였다. 각 사례의 지역문제, 문제해결 목표, 참여주체 및 주체별 역할, 리빙랩 추진체계, 의의를 분석하고 리빙랩의 유형·특성을 도출했으며, 향후 발전 방안을 모색하였다. 분석 결과 각 사례는 기술 활용 방식과 사용되는 기술의 특성은 차이가 있으나 과학기술·ICT와 지역문제 해결을 연계하고자 했으며 지역주민이 문제 발굴부터 기술 실험 및 확산·적용까지 리빙랩 전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공통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리빙랩 운영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각 사례는 서로 다른 리빙랩 유형을 보이고 있는데, 북촌 IoT 리빙랩은 정부/지자체가 리빙랩 활동기반 조성 또는 행위자 활동을 지원하고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된 반면, 성대골 에너지전환 리빙랩과 건너유 프로젝트는 시민사회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탐색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Living Lab is being introduced and applied as an innovation model driven by social entities (residents, users, etc.) and as an innovation place based on local and field. This study analyzed three living lab cases of Bukchon IoT living lab, Seong-Daegol energy transition living lab, and Daejeon Geonneoyu project, which were designated as "Living Lab" to solve local problems. We analyzed the local problem, the problem solving goal, the role of each participant and the subject, the living lab promotion system, the significance in each case. In addition,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living labs were elucidated and future development plans were discussed. The result is as follow. First, each case has a tendency to link science technology and ICT with local problem solving though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 technologies used. Second, local residents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whole living lab process from problem identification to technical experimentation, diffusion and application. Third, the role of the intermediaries commonl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operation of the living lab. Last but not least, each case has different types of living lab. Bukchon IoT living lab being operated as a project by the government / municipality to create a living lab activity-base or to support actors’ activities. On the other hand, the Seong-Daegol energy transition living lab and Daejeon Geonneoyu project were conducted by the civil society itself to define problems and explore technologies in order to solve local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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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첩소설, 조선의 총동원체제와 ‘국민오락’의 조건

        김성연(Kim, Seong Yeon)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인문과학연구논총 Vol.35 No.1

        『Maegukno(Traitor to the Country)』 takes the form of a detective novel, and it is one of the “counter-espionage novels” that publicize the mode of life based on the all-out war system. ‘Counter-espionage’ is one of the ways for you to play roles as the subject of war regardless of whether you are one of the people in the back or soldiers in the front. After the China-Japan War, the Japanese Empire came up with a genuine form of detective novels having as its narrative structure the observation and logical inference as a way to deliver the people in the back of Chosun scientific knowledge about war in the all-out war system during the war. In this sense, Japanese detective novels developed in a way to deal with human pathological mind and psychological state were excluded from the reading for sound people whereas the detective novels of colonized Chosun were permitted to be read as entertainment for people as being focused on scientific evidences and the process of inference and restricted to the contents of digging up spies. In this situation, Kim Nae Seong’s 『Maegukno』 was the one and only novel that appeared with the title of “a counter-espionage novel” as the one that faithfully delivered such things as scientific knowledge and the codes of conduct in the area of counter-espionage, and it is the work that best shows the mode that the detective novels of Chosun were used for the all-out war system. This article examines why detective novels were called as a tool to promote national policy in the process that the Japanese Empire were redefining the utility of literature to build the all-out war system through Kim Nae Seong’s 『Maegukno』 and also analyzes its contents about the consciousness of ‘counter-espionage’ which Gyeongseong citizens, the readers of 『Maegukno』 and the background of it, were forced to have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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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제 판소리 명창 방만춘, 방진관 연구

        박성환(Park Seong-hwan)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한국학연구 Vol.35 No.-

        동편제, 서편제와 함께 판소리 세 가지 유파 중 하나인 중고제 판소리는 충남 논산 강경의 김성옥을 위시로 한 금강유역권과 서산 해미의 고수관, 방만춘, 방진관 등을 위시로 한 내포문화권에서 크게 발달하였는데, 주로 양반상류층의 애호 속에 담담하고 고아古雅한 가곡풍으로 발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극도의 노력으로 성가를 이뤄 심청가를 완성한 방만춘은 조선 전기8명창 중 한사람으로 판소리사에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며 가계를 이은 손자 방진관은 방응교와 동일인으로 일제강점기 신제판소리가 유행할 때에도 끝까지 중고제 전통을 지켰고, 그 정통성이 음반과 방송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음반에 전하는 방진관의 소리 〈군사설움〉 대목의 악조 분석을 통해 현행 민속악이나 동, 서편제 소리와 다른 계면조의 평조적 표출, 구성음의 차이, 붙임새와 선율의 단조로움과 반복, 가곡풍의 창법 등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들은 방진관의 판소리가 다른 중고제 명창들의 소리와 유사성이 많으며 이는 동, 서편제에 비해 보다 앞선 시기 고제판소리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허흥식 소장본 심청가 소리책은 내포제의 고장 서산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방진관의 SP음반에 남겨진 판소리 사설 부분과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이 소리책이 조선창극사에 기록된 방만춘의 심청가 사설로 방진관을 거쳐 가계에 전해지던 필사본이 아닌가 면밀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판소리의 古調를 고수해온 방진관의 중고제 판소리는 이제 전승이 끊긴 매우 희귀한 소리가 되었다. 통속성의 결과로 갈수록 설움조로 계면화되고, 유파나 바디를 떠나 하나같이 소리의 깊이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방진관의 소리는 판소리 미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제 방진관, 이동백, 김창룡, 심상건, 조학진등 중고제 명창들의 이채로운 소리제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함께 실기인들의 활발한 복원 작업을 체계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복원을 넘어, 대동소이하기만한 현대 판소리의 음악관을 더 폭넓게 하고 장차 새로운 현재적 전통을 창조하고 수립하는데 확고한 내적 근거와 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기에 중고제 판소리의 부활은 매우 긴요하다. Junggoje as one of three pansori schools, along with Dongpyeonje and Seopyeonje has been much developed in the Qeum River Basin with Kim seong-ok in Ganggyeong-eup, Nonsan-si, Chungcheongnam-do and in the aepo cultural area with Go su-gwan, Bang man-chun, and Bang jin-gwan, Haemi-eup, Seosan-si, Chungcheongnam-do. It seems that it has been loved by the upper class of yangban, aristocrat and developed into calm and graceful aria style. Bang man-chun, one of 8 great singers in the Joseon Dynasty who had collected hymns ? and completed Simcheongga with great efforts, performing a feat in the history of pansori. His grandson Bang jin-gwan, an identical person to Bang eung-gyo took over the family business and protected the tradition of Junggoje to the end even under the popularity of new pansori. Its legitimacy has been verified via albums and broadcasting. Through the tone analysis on Bang jin-gwan's pansori, 'A Soldier's Lamentation' from an album, we can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such as an expression like Pyungjo of Gyemeonjo different from the present folk music, Dongpyeonje, and Seopyeonje, differences of composing notes, monotonous and repetitive Buchimsea (attachment for effectiveness in drumming method) and melodies, and a singing method with an aria style. These kinds of facts have made us justify that Bang jin-gwan's pansori has lots of similarities to other master singers' songs of Junggoje and that it shows properties of old pansori earlier than Seopyeonje. Heo heung-sik's collection of a sori book Simcheongga has been handed down in the region of Seosan, the hometown of aepoje and checked as it is identical to the story part of the pansori left in Bang jin-gwan's SP album. Based on this information, it is worthwhile to research in detail if the sori book as Bang man-chun's story of Simcheongga recorded in the history of changgeuk of the Joseon Dynasty is the manuscript succeeded in his family by Bang jin-gwan or not. Bang jin-gwan's Junggoje pansori which has adhered to the old tone? of pansori has become a precious sori, without handed down more. His sori is a very valuable material showing the diversity of aesthetics of pansori under the present situation when it has become Gyemyeonjo as the tone of sadness as a result of the popularity, and when the depth and diversity of sori are disappearing regardless of schools or Bodi. Now, it is time to research on the diverse Junggoje master singers including Bang jin-gwan, Lee dong-baek, Kim chang-ryong, Sim sang-geon, and Jo hak-jin and also systematize performers' activities for the enthusiastic restoration. By doing that, we will be able to widen the viewpoint of the pansori music which is not at present, leading to consider it as the solid internal basis and property in creating and establishing the new present tradition. Therefore, it is very essential to resurrect Junggoje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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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rison of Hypertension Prediction Analysis Using Waist Measurement and Body Mass Index by Age Group

        So Hyun Park,Seong-Gil Kim 질병관리본부 2018 Osong Public Health and Research Persptectives Vol.9 No.2

        Osong Public Health Res Perspect > 9(2); 2018 > Article Original Article Osong Public Health and Research Perspectives 2018;9(2):45-49. DOI: https://doi.org/10.24171/j.phrp.2018.9.2.02 Comparison of Hypertension Prediction Analysis Using Waist Measurement and Body Mass Index by Age Group So Hyun Parka, Seong-Gil Kimb,* a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Youngsan University, Yangsan, Korea b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Uiduk University, Gyeongju, Korea *Corresponding author: Seong-Gil Kim, 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Uiduk University, Gyeongju, Korea, E-mail: niceguygil@gmail.com Received September 11, 2017 Revised December 27, 2017 Accepted January 16, 2018 Copyright ©2018, Korea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open-access,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under the CC BY-NC-ND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 Abstract Objective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valuate hypertension with simple anthropometry data related to obesity in Korean adults and identify whether age specific waist circumference (WC) may be a useful screening tool for determining hypertension. Methods Subjects (n = 571) were classified into 3 groups by age; young (18–39 years), middle aged (40–64 years), and old aged (≥ 65 years). Correlations between demographic and anthropometric parameters and hypertension were performed using Spearman correlation analysis. Logistic regression analysis and ROC (receiver operating characteristics) curves were also analyzed for correlations with hypertension. Results Spearman correlation analyses, age, gender, WC, and body mass index were positively correlated with hypertension. When logistic regression analysis was performed, increased age and increased WC was associated with a higher incidence of hypertension, although gender and body mass index were not significantly related to hypertension. In ROC analysis of WC for hypertension demonstrated that patients in the old age group showed higher WC cutoff value than patients in the young and middle aged groups. Conclusion The findings of this study demonstrate that WC may be a useful predictor of hypertension incidence among demographic and anthropometric factors in Korean adults. In addition, WC in the young population was more sensitive to the incidence of hypertension than in the elderly population. Osong Public Health Res Perspect > 9(2); 2018 > Article Original Article Osong Public Health and Research Perspectives 2018;9(2):45-49. DOI: https://doi.org/10.24171/j.phrp.2018.9.2.02 Comparison of Hypertension Prediction Analysis Using Waist Measurement and Body Mass Index by Age Group So Hyun Parka, Seong-Gil Kimb,* a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Youngsan University, Yangsan, Korea b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Uiduk University, Gyeongju, Korea *Corresponding author: Seong-Gil Kim, Department of Physical Therapy, Uiduk University, Gyeongju, Korea, E-mail: niceguygil@gmail.com Received September 11, 2017 Revised December 27, 2017 Accepted January 16, 2018 Copyright ©2018, Korea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open-access,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under the CC BY-NC-ND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4.0/). Abstract Objective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valuate hypertension with simple anthropometry data related to obesity in Korean adults and identify whether age specific waist circumference (WC) may be a useful screening tool for determining hypertension. Methods Subjects (n = 571) were classified into 3 groups by age; young (18–39 years), middle aged (40–64 years), and old aged (≥ 65 years). Correlations between demographic and anthropometric parameters and hypertension were performed using Spearman correlation analysis. Logistic regression analysis and ROC (receiver operating characteristics) curves were also analyzed for correlations with hypertension. Results Spearman correlation analyses, age, gender, WC, and body mass index were positively correlated with hypertension. When logistic regression analysis was performed, increased age and increased WC was associated with a higher incidence of hypertension, although gender and body mass index were not significantly related to hypertension. In ROC analysis of WC for hypertension demonstrated that patients in the old age group showed higher WC cutoff value than patients in the young and middle aged groups. Conclusion The findings of this study demonstrate that WC may be a useful predictor of hypertension incidence among demographic and anthropometric factors in Korean adults. In addition, WC in the young population was more sensitive to the incidence of hypertension than in the elderly population.

      • KCI등재

        정조의 경세론과 효제(孝悌)윤리

        김성윤 ( Seong Yun Kim ) 한국실학학회 2012 한국실학연구 Vol.0 No.23

        이 논문은 정조 경세론의 주요 측면들을 통하여 조선후기 실학의 전개 과정에서 정조가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본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제기한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조는 이기론에서 주희나 이황과는 달리 理를 氣의 내재법칙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리가 갖는 先在性·초월성·규범성을 외면했다. 정조의 이러한 주기적 이기관은 그의 근본적 시각이 경험적 현실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실학자들이 주장해 온 ``道器一體論``을 계승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둘째, 정조는 인성론에서 ``性卽理``라는 주자학의 기본 명제를 부정하고, ``性卽氣``를 주장했다. 아울러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서 性=四端이라는 도식을 부정하고, 사단을 元亨利貞의 四德으로 고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性四德說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가 선험적인 원리나 윤리보다는 경험적 현실과 욕구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현실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사회원리와 윤리를 모색하려 했다는 점을 대변한다. 정조의 이기론과 인성론은 주자학의 정설에서 크게 이탈해 있었다. 셋째, 그는 도교, 불교, 양명학, 서학 등 제반 이단적 학문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개방성은 학문적 권위가 권력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을 차단하고, 진정한 학문적·정치적 실익을 추구한 데에 자연히 뒤따르는 현상이었다. 넷째, 정조는 군주가 수신을 바탕으로 명분질서의 모범을 보이고 실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수신군주론이나 군주성학론의 도그마에서 탈피했다. 이에 따라 그의 통치 방식도 풍속을 돈독히 하는 禮敎的 방식에 치중하지 않고 제도 개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접근방식을 보였다. 다섯째, 정조는 영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준거를 三代之治 혹은 堯舜之治에 두었다. 그러나 그가 이해한 요순은 은둔적이고 수련적인 철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권력적인 정치가였다. 이처럼 그는 ``무위에서 유위로`` 정치 개념과 군주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했으며, 君師로 자처하면서 의리 판별의 권한이 임금에게 있음을 주장한 영조의 정책을 계승했다. 그의 지지자에 의해 국왕이 사문의 도통을 계승했다는 ``君主道統論``이 제기되는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太極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이 天 혹은 上帝라는 절대군주론을 피력하기에 이르렀다. 여섯째, 정조의 군주론은 중개세력의 매개 없이 군과 민이 직접 소통하는 2단계 정치구조를 지향했다. 그는 이러한 절대왕정을 지탱할 통일된 사회윤리로서 孝悌를 제시하고, 太學序齒를 통해서 이를 시험적으로 실행했다. 태학서치는 군주 이외에 모든 臣民을 하나로 보고, 신민 사이에서는 신분이나 직업이 아닌 나이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계서윤리를 선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실학이 추구하는 새로운 왕정이 결코 이론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곱째, 정조가 추구한 절대왕정은 국가를 家의 類比 내지 확장으로 보는 유교의 家族國家와 외연상 별 차이가 없어 보이나,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도덕보다는 백성의 행복 증진에 두고 국가사회의 결속원리를 인간에 내재한 도덕심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적 개별적 연계 속에서 모색했다는 점에서 종래의 유교적 왕정론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차후 근대국가론의 형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여덟째, 실학사상의 한말 민중운동으로의 전유와 관련하여 정조의 역할이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그의 주역 연구와 文王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한말 민중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후천개벽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The main points of this thesis can be centered on several points as follows. First, Jeongjo emphasized that I(理) is the inherence rule of Gi(氣). These Jugijeok Igi-gwan(Gi-centred Philosophy of I and Gi) shows that his fundamental viewpoints focus on an empirical actuality. Second, In theory of human nature, Jeongjo contradicted seong-jeung-ni(性卽理. nature is based on i which is innate in all creatures) and advocated seong-jeung-gi(性卽氣. nature is based on gi). And he advocated that human nature is saduk(四德. the four virtues), not sadan(四端. the four beginnings). Third, Jeongjo had opened up towards the unorthodox. His academic openness was the phenomenon following his utilitarianism. Fourth, Jeongjo`s ruling methods had attached importance to effectiveness of system, not convert. Fifth, He had made the way of the sage King Yao and Shun(堯舜之治) as his political authority. He emphasized that he himself is taegeuk(太極. Great Ultimate). This meens he had announced the absolute monarchy. Sixth, He presented Hyoje(孝悌. filial piety and friendship) as the moral foundation for his absolute monarchy, and practiced it with Taehakseochi(太學序齒). Seventh, There is a possibility that Jeongjo had a influence on the theory of hucheongaebyeok(後天開闢. Great Transformation for the world after the creation of heaven). This related with the Silhak(實學)`s transformation to the popular movement at the close of Joseon dynasty.

      • KCI등재

        집단상담 :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 개발

        김성회 ( Seong Hoi Kim ),최성식 ( Seong Sik Choi ) 한국상담학회 2009 상담학연구 Vol.10 No.4

        본 연구에서는 타당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램 개발 모형을 구안하여 이를 준거로 기존의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프로그램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 개발 관련 선행연구들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은 후, 기존 프로그램 개발 모형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한 순환체제적인 활동이 특징인 14단계의 순환체제적인 프로그램 개발모형을 개발하고 14단계의 순환체제적인 프로그램 개발모형 단계에 따라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특히 기존 대인관계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인 대인관계 기술 중심의 단편적, 증상 처방적인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김성회(2005, 2007)의 HITS 상담(Counseling for Harmony of Individual, Time and Space)이론에 근거한 개인 내적인 요소인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요소와 특정시간대의 사람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된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을 위하여 실험집단(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 비교집단(교우관계 개선 프로그램), 통제집단 모두에게 프로그램 실시 전과 직후에 평가 도구인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조화척도 및 초등학생용 대인관계검사로 사전검사와 사후검사를 실시하였고, 실험이 끝난 3주 후에 추후검사를 실시한 결과 초등학생용 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은 경험적으로 그 타당성이 검증되었다. 논의에서는 초등 학생용 대인관계 조화 프로그램이 타당하게 구성된 근거와 경험적으로 그 타당성이 검증된 근거를 제시하였다. The present study attempted to develop a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Program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HIRP-E). In this study,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was defined as interpersonal relation in harmony with 4 social factors: the harmonic interpersonal behavior, the interpersonal emotion, the interpersonal cognition, and the interpersonal behavior.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in this investigation was operationally defined as the total scores of the four factors on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Scale (Choi & Kim, 2007).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program group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HIRP-E) was developed, based on the HITS theory (Kim Seong-Hoi, 2007),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program group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HIRP-E) was developed based on the recursive systemic program development model (RSPDM). In order to verify the effect of HIRP-E 345 fourth, fifth and sixth grade graders at H elementary School in Daegu Metropolitan City completed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scale(HIRS)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Choi & Kim, 2007). The 39 students who were within the low 20 percent rank in the HIRS score and wanted to participate in the program were randomly alloted into three groups. Treatment group 1 is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program group, treatment group 2 is the friendship relation program group. The results were as follows. The treatment group 2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the control group in the levels of overall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Treatment group 1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treatment group 2 in the degrees of overall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and in factors such as the harmonic interpersonal behavior, the interpersonal cognition, and the interpersonal behavior except the interpersonal emotion. The treatment group 2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the control group in the levels of interpersonal ability and the treatment group 1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treatment group 2 in the degrees of interpersonal ability. In conclusion, it was shown that the harmonic interpersonal relation program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was developed properly.

      • 1920年代 韓國近代喜劇의 樣相

        朴升圭 湖南大學校 1987 호남대학교 학술논문집 Vol.8 No.1

        Modern Comedy in Korea informed in 1920'2. Representative writers are Kim, Chung Jin, Kim, Wo Jin, and Park, Seong Hee. Fifteen minute by Kim, Chung Jin is social problem comedy, and disilusion of a fake poet by Kim, Wo Jin is domestic problem comedy, and Bad high officer by park, Seong Hee is high farce. This inclination was due to insistent idea that Kim, Chung Jin was reporter, and Kim Wo Jin loved Yun, Sim Deok, actress, as a married man. But though Park, Seong Hee mondernized, Romance Bebijangjon, the reason that he prodeced with farce is due to popularity, public performance of Towolh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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