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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 개념과 근대 한국

          이삼성(Samsung Lee) 한국정치사상학회 2011 정치사상연구 Vol.17 No.1

          고대의 한국인들이 6세기와 9세기에 ‘제국'의 개념을 동양의 정치적 개념 세계에 처음 끌어들였음을 보이는 기록들이 있다. 이후 9백 년간 한국에서도 제국 개념은 침묵을 지킨다. 한국인들은 1876년 일본 군함과의 조우를 통해서 근대적 번역어로서의 ‘제국'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제국 개념의 역수입이었다. 근대 한국에서 ‘제국'이 중요한 정치 개념으로 등장하는 계기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였다. 당시 지배자들은 한국이 과연 ‘제국'을 칭할 수 있는 가라는 문제와 씨름했다. ‘제국'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러한 개념적 문제는 탈속방 국면의 조선이 처한 ‘비자립적 자주국'으로서의 고뇌였으며, 구체적으로는 ‘건원'과 ‘칭제' 사이의 거리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칭제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그에 대립하는 논리도 제기되었다. 1850년대 중엽 일본의 막부정권이 외세의 압박에 직면하여 ‘자주독립한 국가 정체성'의 표지로 ‘일본제국'의 개념을 채택한 것처럼, 19세기 말 격심한 외세 압박을 경험한 한국의 국가 역시 ‘자주권'을 명분으로 칭제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것이다. 칭제를 옹호하는 담론도 비판하는 담론도 전통적인 유교적 명분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일본에서의 제국 개념은 광역적 지배국가의 의미로 개념 확장이 전개되지만,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은 ‘황제의 나라'로서의 자주권을 주장하고 또한 황제의 전제권을 개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머물러 있게 된다. 한국에서 ‘제국' 개념은 근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주도하에 전개되었으나, 1905년 제국-보호령 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면서, 한국에서의 제국 개념도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이제 ‘제국'은 점차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한국이 역수입했던 제국 개념은 일본에 회수되고, 한국이라는 정치 공간 안에서도 ‘일본제국'이라는 고유명사와 ‘제국'이라는 보통명사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중국에 속했던 한반도의 정치 공간이 일본 중심의 지역 질서 속에 편입되고 있었음을 뜻했다. 이후 한국의 ‘제국' 담론은 두 가지 흐름으로 분열된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제국'론에 포섭된 ‘하나의 큰 제국'론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의 제국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역사 속의 ‘제국'을 불러내는 작업이었다. We have a few ancient documents that show the initial introduction by ancient Koreans of the word “empire” into the conceptual world of East Asia. The concept, however, kept silence in Korea for about nine centuries. The Koreans faced again the concept as a modern translation by the Japanese of the Western terminology in 1876, when they were confronted with a Japanese battleship whose captain proclaimed it belonged to the “Japanese Empire.” We may call it a reimportation of the old concept with some added new meanings. The moment by which the concept emerged as one of the key political words in modern Korea came when the Chosun government decided to take the honorable title of Emperor for the king. The rulers of Korea had to agonize, however, over the question of whether they are, in the new international order, allowed to adopt the title of Empire for their state. The majority appears to have supported the new imperial title, while some dismissed it as a misrepresentation in both priniciple and reality. The late Chosun took the concept of Empire as a conceptual means to represent the new identity of the Korean state as an independent and respectable country, just as the Japanese rulers of the 1850s adopted and relied on the concept of Empire to project the image of independence for their nation struggling with the pressure from the Western imperial powers, in particular. Most discourses in Korea on Empire, both for and against the adoption of the Imperial title, were based on traditional moralistic ideas associated strongly with Confucianism and deeply rooted in the China-centered world view. Since then on, the concept of Empire is mobilized as a conceptual tool of justifying the right of the Korean state to self-determination as well as the absolutist rule by the Emperor, while, in Japan, the same concept experiences semantic expansion, embracing genuine imperialist rise of the nation. The concept of Empire in Korea was driven into the fore by the state power just like it was the case in Japan. With the integration of Korea into the orbit of the Japanese imperial control in 1905, however, the concept in Korea faces a crisis of disintegration. The concept, a reimportation from Japan, is now retrieved by Japan, and the conceptual borderline begins to be erased between the phrase of the ‘Japanese Empire' as a particular noun and the word of ‘Empire' as an universal name. It meant the political space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had once been a part of the Chinese world order, was now being incorporated into a new Japan-centerd regional order. From then on, the Korean discourse on Empire walks two different paths. On the one hand, it is subsumed into the Japanese concept of the “Great Empire,” in which the Korean identity should be suspended only to re-emerge as a part of a greater empire. On the other, some Korean intellectuals invoke the history of empire from the remote past, in their attempt to resist the real empire of th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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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WANGJU AND AMERICA IN PERSPECTIVE

          Lee,,Samsung The Institute for Far Eastern Studies Kyungnam Uni 1988 ASIAN PERSPECTIVE Vol.12 No.2

          Following the tragic event in Kwangju in May 1980, some merican officials were reported to have said that "unlike in, all elements of society in South Korea wee pro-American cause of the military menace posed by North Korea and bothe military and civilians in South Korea looked to the U.S. for pport." The history, since then, of increasingly intense antimerican activity in this country, especially among student groups, was clear enough to vindicate Moon's statement. The most visible incident evidencing that trend took place in May, 1985, when 73 college students occupied the US Cultural Center in Seoul, demanding the US government apologize for what they viewed as its complicity in the bloody repression of the Kwangju upri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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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개념과 19세기 근대 일본

          이삼성(Samsung Lee) 한국국제정치학회 2011 國際政治論叢 Vol.51 No.1

          19세기 근대 일본에서‘제국'(帝國) 개념이 중요한 정치적 개념으로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개념사적으로 접근하여 고찰한다. 제국이라는 개념은 동양적 기원도 내포하지만, 근세 말에 일본 지식인들에 의한 서양어의 번역 개념으로서 재탄생한다. ‘제국'이 일본의 공식 외교 용어로 처음 등장한 것은 막말인 1850년대 중엽이며, 서양 국가들에 대한 자주와 독립을 천명하는 개념으로서 채용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곧 대정봉환에 따른 메이지 유신 초기 일본 국가의 내면적 정체성으로서‘천황의 통치'를 강조하기 위해‘제국'대신‘황국'(皇國)이 일정 기간 많이 유통된다. 그러나 1870년대 중엽 이래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표상하는 주요 개념으로‘제국'이‘황국' (皇國)을 대신하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개념어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이후 황국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 국가의 내면적 정체성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그리고 제국은 일본의 대외적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는 개념으로 기능분화가 뚜렷해진다. 이 글은 그러한 개념사적 전개과정의 사상적ㆍ정치적 계기들을 고려한다. 이 맥락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나가키 만지로 등의 언술에서‘제국의 이념'이라 할 요소들을 파악하고, 1870~80년대에 전개되는‘일본제국헌법'성립의 정치와 1890년대 청일전쟁이‘제국'의 개념사에서 갖는 역사성을 주목한다. 황국이 일본 내면의 권위의 수직적 구조를 표상하는 것에 대해, 제국은 근대 초기에는 일본의 대외적인 자주와 자존,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부국강병의 목표의식을 내면화한 개념으로 선호되고, 이어 서양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거느린 광역적 지배 국가의 위상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보편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개념사적 전개과정에서 일본에게‘제국'의 개념은 적어도 동아시아와 관련하여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지역질서 관념을 폐기하고 그것을 일본 중심의 지역질서로 표상하는 데에 유용하게 동원된 측면이 있음을 주목하였다. The essay seeks to apply the conceptual historical analysis to the process by which the term ‘Empire'(帝國) spread as a major political concept in the modern Japan of the nineteenth century. While the concept contains some remote oriental origin, it came into being in early modern Japan as a translation of Western concepts. The first official use of the term as a diplomatic language was in documents of treaties with Western countries, in which the term ‘Empire' was adopted primarily for the purpose of emphasizing the self-reliance and independence of Japan. Soon, however, there followed a period when the word of ‘皇國,' denoting ‘the imperial country,' was widely used as a term of critical importance in Japan, in the attempt to make clear the internal identity of the new Japanese state of Meiji. Since the mid-1870s, however, ‘Empire' replaced ‘the Imperial County' as the critical concept representing the identity of the Japanese state, and was establish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vocabulary in Japan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e essay discusses the major intellectual and political moments that led to this development. While the term ‘Imperial Country' represented the vertical depth of the internal authority structure of the new Japanese state and society, the ‘Empire' was endowed with the conceptual function of declaring self-reliance and independence with regard to the newly threatening imperial powers, initially. Soon the concept of Empire was preferred to express and internalize the goal of making Japan a modern nation of power and wealth, and in due course, it represented Japanese desire toward a truly imperial and expansive state that had external dominions and colonies. Ultimately, the term ‘Empire' is exploited in modern Japan as an important conceptual tool to nullify the traditional China-centered world of East Asia and recast it into a new regional order in which Japan occupies the central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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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과 내전

          이삼성(Samsung Lee) 한국정치학회 2013 한국정치학회보 Vol.47 No.5

          이 글은‘내전'개념을 중심으로 러시아 외교문서 공개 이후 국내외 한국전쟁 연구가 겪은 변화의 성격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새 문서들이 드러낸 핵심적 사실 하나는 김일성의 전쟁의지로 이 전쟁이 발의되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김일성의 의지와 결정이 이 전쟁에 관한 독립적 변수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비수정주의적 내전론이 등장했다. 전통주의-수정주의 구도를 넘어설 제3의 논의 공간이 진정으로 열린 것을 뜻했다. 하지만 김일성을‘독립적인 역사적 행위자'로 볼 것인가는 특히 한국에서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았다. 비수정주의 안에서 이 논쟁의 구도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했다. 수정주의적 내전 논의 역시 새 문서들 덕분에 변화를 겪어야 했다. 수정주의적 내전론은 스스로 수정되면서‘탈냉전기 수정주의적 내전론'으로 잔류한다. 한국전쟁 연구사에서 내전적 인식을 결국 냉전기 수정주의적 내전론, 탈냉전기 수정주의적 내전론, 그리고 비수정주의적 내전론 등 셋으로 구분하였다. 이 구분의 기초로서 여섯 가지의 논리적 구성요소들을 선정하여 논의하였다. 끝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내전적 인식의 개념적 명료화가 한국전쟁 연구에 갖는 본질적 의미를 토론하였다. One of the critical facts made clear by the new Russian documents since the early 1990s was that Kim Il Sung's initiative was the key to the decision by the Communist nations to start the Korean war. In the wake of this revelation emerged a non-revisionist discourse on the civil war aspect of the war. This meant that a third way was open to deal with the war, beyond the old dichotomy of orthodoxy versus revisionism. It was not yet clear, however, to everybody whether Kim was a real independent historical actor, and the question remains controversial. This paper suggests a way to conceptualize the debate. The new documents also forced revisionist civil war perspective to significantly change, ending up with a post-Cold War form of civil war discourse on the war. In the end, civil war discourses on the war can be identified in three different concepts of civil war: Cold War revisionist, Post-Cold War revisionist, and Non-revisionist concepts of the war. Six specific logical components are identified and discussed to constitute the three of them. Finally, the paper discusses at least one critical implication of this conceptual clarification of the civil war discourses in the studies of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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