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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연구논문 : 전남사범 출신의 사회운동-임종대,임종근을 중심으로-

        임선화 ( Seon Hwa Im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2015 역사학연구 Vol.60 No.-

        이 글은 전남사범 출신 임종대와 임종근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활동에 관한 것이다. 둘은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성진회 관련자로 기소되었다. 그들은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출소 이후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사회주의 활동을 하였는데, 임종대는 전남노농협의회사건으로 체포되었고, 임종근은 노농협재건운동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두 단체의 특징은 ML파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광주ㆍ전남지역 학생운동은 ML파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도세력이었으며, 출소 이후 사회운동에 진출하였다. 이들은 주로 노동ㆍ농민운동에 참여하여 민족해방과 무산자들의 해방에 힘썼다. 이후 해방 이전까지 그들의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해방 이후 임종대는 담양지역에서 사회운동을 지속하였다. 그러다 미군정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야산대가 되었고, 6ㆍ25전쟁기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총살당하였다. 임종근은 해방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그러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에서 월북하였다고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이들이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임종대와 임종근의 예를 보면, 이들은 사회주의와 관련된 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이 둘은 사회주의운동과 관계가 있었고 그랬기에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지 못하였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발굴과 기억은 독립운동사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is about Im Jong-dae and Im Jong-gun who was from Jeon-nam Sa-beom, and their acting from colony of Japan to Liberation of Korea. They were prosecuted for related with Sunginheo in Gwang-joo Student Movement. They were sentenced imprisonment and after then they join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They were socialist, Im Jong-dae was arrested with Jeon-nam Labor-Farmer Council and Im Jong-gun was arrested with Reconstructing case of the Labor-Farmer Council. These two groups were organized by ML. In late 1920 Gwangjoo Geon-nam Student Movement and they were the majority of Gwangjoo Student Movement. After they were freed they joined the Social Movement. They took part in Labor - Farmer Movement for Liberation of Korea and Liberation of proletarian. After then we can`t find their acting till Liberation of Korea.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m Jong-dae continued to work in Dam-yang for social movement. After then they were wanted by American Army Government, so they went into mountain. Im Jong-dae was killed by gun in the Korea War. Im Jong-gun cann`t find after Liberation of Korea. And then he went to North Korea from Seoul when the In-cheon disembark. We can see how they lived life after the Gwangjoo Student Movement, the people like Im Jong-dae, Im Jong-gun. They related with socialism.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e two of them related with socialism so they can`t received the order of merit. In our history, our try of remember and finding like these people make plenty of the history of dependence.

      • 통합운영학교의 쟁점과 발전 과제

        임연기(Youn Kee Im) 공주대학교 교육연구소 2016 교육연구 Vol.31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연구는 초·중·고 통합운영학교의 쟁점을 논의하고, 발전 방향과 원칙을 탐색하는 데그 목적이 있다. 통합운영학교는 1998년 8개교를 시작으로 2016년 3월 기준 현재 105개교가 지정, 운영되고 있다. 통합운영학교는 학생수 감소에 따른 학교 규모 적정화,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국민기초공통과정의 통합운영,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에서 중등교육의 다양화와 계열성 심화 등을 위한 주목할 만한 학교발전 모델로서의 가치가 인정되고 있으나, 학교 현장에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합운영학교의 쟁점을 통합운영학교의 존재 이유 측면에서 학교규모의 적정화 방편인 가, 학제의 유연화 시도인가, 통합운영학교의 바람직한 형태 측면에서 부분 통합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완전 통합이어야 하는지, 통합운영학교 발전과제 측면에서 제도 보완이 우선인지, 사람과 문화의 변화가 우선인지 등으로 구분하여 논의하였다. 통합운영학교의 발전 방향으로 통합에 의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 단계적 발전 도모, 지역 실정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발전 추구, 개별 학교의 자발적, 창의적 발전 방안 강구, 관계자의 인식 개선과 제도 보완 추진 등을 제안하였다. 핵심 과제로는 학교 종류로서 통합운영학교의 제도화, 학교 급별 교육과정의 통합 모델 개발, 통합운영학교 교사양성체제 정립, 통합운영학교의 네트워크 구축, 통합운영학교 연구 및 지원체제 확립 등을 제안하 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issues and suggest the development tasks of Integrated Management Schools(IMS) in Korea. IMS has been operating since 1998 and utilizing as a means of combining another level of small-scaled school in accordance with a decreased number of students. The value of IMS as a school development model to improve the adequacy of 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 is also being recognized. Yet, the situation is that many problems are raised in schools. The issues of IMS, in this paper, are addressed in two ways. The issues are first discussed by the operating status of three foreign countries, second, the issues are discussed through the awareness of IMS teacher. The paper also reviews three aspects, characteristics, shapes, and problem sources, of IMS. Therefore, from the results, we can infer the policy implications. First, redesigning IMS is unavoidable. Second, we need to shift from a negative frame to a positive frame. Third, we need to not only device system for restructuring IMS but also for making efforts toward reforming school culture. Fourth, we need to prepare satisfactory management guidelines so that teachers can want work at IMS. Fifth, the provincial office of education plays a significant role in improving IMS.

      • KCI등재후보

        독일어와 한국어의 의성어,의태어 비교 연구

        김순임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03 독일언어문학 Vol.0 No.21

        In dieser Arbeit wird eine Untersuchung der Ideophone75) im Deutschen und Koreanischen unternommen, in zwei Sprachen also, die sprachtypologisch sehr verschieden sind. Im Koreanischen sind die lautsymbolischen Worter sehr entwickelt und in dreifacher Hinsicht differenziert: Phonomime (= Onomatopijie), Phhomime und Phono-Ph2nomime7~). Diese Worter werden in der koreanischen Alltagsprache sehr oft venvendet. Die koreanischen Ideophone werden zur Wort-klassenkategorie Adverb zugerechnet. Im Satzzusammenhang aber funktionieren sie etwas anders als andere Adverben: so modifizieren sie z.B. fast nur Verben oder sie konnen wie ein selbsthdiges Wort vom Satz isoliert stehen. Im Vergleich dazu wird das &nliche Sprachphhomen im Deutschen eher als Peripherie betrachtet und ist nicht so subklassifiert wie im Koreanischen. Explizit sind nur die Onomatopijien im Lexikon eingetragen; sie werden zur Subklasse der Interjektionen gerechnet. Bei genauerer Betrachtung der deutschen Phonomime stellt sich allerdings heraus, daR es durchaus phono-phhomimische Worter gibt: z.B. patsch, klatsch usw. Es erhebt sich somit die Frage: gibt es im Deutschen auch den phiinomimischen Ausdruck? Oder wie kann man die Bewegungsgestalt der Sachverhalte im Deutsche fomdieren? Bei einer ersten Betrachtung ist zunkhst leicht festzustellen, da8 deutsche Phhomime nicht existieren. De Durchsuchung einiger Texte ergibt, dal3 Phhomime in anderer Art und Weise als im Koreanischen ausgedriickt werden konnen: es wird nhiich an dieser Stelle ein Verb gebraucht: z.B. kribbel krabbel, schmacht schnapp in den Satzen a) - c). Im Deutschen werden die Phiinomime mit dem Wortstamm des Verbs durch okkationelle Bildung verwirklicht. a) Knbbel, krabbel, bums da fie1 einer b) Seufz, schluchz, schmacht ... wer sortied die Liebesgde fiir die Stars? c) Schnapp, schmatz, schluck, mjamm -, das hat den Padagogen nicht gefallen, denn damit war der Zeigefinger ab Daraus konnen einige SchluRfolgerungen gezogen werden: 1. sowohl das Deutsche als auch das Koreanische verfugen uber Ideophone. 2. sie werden in beiden Sprachen anders versprachlicht. 3. diese Unterschiede miissen Mar wahrgenommen werden, wenn man koreanische Ideophone ins Deutsche cder umgekehrt ubersetzt. Abschlieaend sei die Tatsache erwiihnt, daR der Terminus Ideophon eigentlich aus der Unte,rsuchung afrikanischer Sprachen stammt. Nach der Untersuchungen mancher euro-amerikanischer Wissenschaftler sind die Ideophone in diesem Sprachgebiet sehr entwickelt und im Sprachgebrauch verbreitet. Sie spielen in den afrikanischen Sprachen eine groRe Rolle.

      • KCI등재

        특집 : 한국한문학연구의 문화적 지평-콘텐츠화를 통한 현실과의 소통 ; 조선후기 서사산문의 문화콘텐츠화 방향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를 통해 배우는-

        임완혁 ( Wan Hyuk Im ) 우리한문학회 2011 漢文學報 Vol.24 No.-

        역사·문화적 유산 또는 가치를 재해석하여 당대에 구현한 상품이 문화콘텐츠다. 상품은 대중적 기호와 욕망의 반영이다. 그렇지만 문화콘텐츠의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작자의 관점이다. 그 행위가 문화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서사산문의 문화콘텐츠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편으로, 『임꺽정』의 창작 태도를 살펴보았다. 『임꺽정』은 조선후기의 문화원형을 재해석하고 신문이라는 매체를 소통의 방식으로 활용한 뛰어난 문화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임꺽정』에는 조선 후기의 문화가 다채롭고도 풍부하게 그려져 있다. 임꺽정에 대한 역사 기록은 극히 단편적인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개는 碧初 洪命憙의 복안에 의해 사건이 꾸며진 것이다. 『임꺽정』의 창작 과정에서 벽초는 ``朝鮮情調에 일관된 작품``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의 수많은 자료 - 역사, 야사, 야담, 필기, 문집 등에 담긴 조선의 전통과 문화, 풍속과 삶의 모습, 그 광물을 하나하나 캐어서 엮어가며 조선의 정조를 드러낸 것이다. 벽초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바, 『임꺽정』의 집필은 문학 활동을 통한 반제국주의 민족투쟁의 일환이다. 『임꺽정』 이전에는, 임꺽정이 대중적이지 않았다. 벽초에 의해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특히 宮中 秘史 따위의 역사소설, 강담조의 야담이 유행하던 시기에 남들이 잘 모르는 인물, 그것도 백정인 임꺽정을 되살린 시각은 가히 破天荒적이라 할 수 있다. 백정들의 단합을 꾀한 면과 스스로 솔선한 점, 義賊으로 활약한 점 등의 임꺽정이 지닌 면모는 벽초가 살고 있는 시대의 요구와 부응한다. 당대 대중의 요구를 정확하게 반영하여 『임꺽정』의 창작에 임한 것이다. 아울러 벽초는 임꺽정에 의탁하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정열과 경륜``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관을 일방적으로 드러내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벽초는 신문소설의 위상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대중의 욕구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임꺽정의 현재화에 임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신문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한 예술화에 성공하였다. 『임꺽정』에는 민족주의, 풍속, 언어, 지리에 대한 폭넓은 내용이 담겨있다. 벽초는 ``지켜야 할 가치``의 소중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조선의 아름다운 정조를 지켜내기 위한 ``각성과 실천의 깃발``을 세웠던 것이다. 조선의 해방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임꺽정』을 창작했던 이유이다. 『임꺽정』의 창작태도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현재에 대한 고민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당대인과 교통할 수 있도록 가공하고 당대인의 지향점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것이다. 철저한 현재적 관점에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해석, 이것이 벽초에게 배워야 할 문화콘텐츠화의 방향이다. This summary is an attempt to grope the late cultural contents on the direction of the narrative prose in the late Chosun Dynasty. Readers can sense the creative attitude of Byeokcho Hong Myeonghui`s writing in "Im Kkeokjeong". An enrichly diverse culture of Korea is shown in "Im Kkeokjeong" and only fragmentary record of this style has been written where Byeokcho has written the majority. Byeokcho creates consistent work of Chosun sentiment, and by doing so, uses numerous data like historical facts, unofficial historical stories and writings, anthologies, and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Also, he has gathered Chosun Dyansty`s tradition and culture, customs, forms of life, and minerals. Although writing materials like "Im Kkeokjeong" is one of the anti-imperialist national struggles, Byeokcho takes real action to overcome colonialism by having his writing published. "Im Keokjeong" is resurrected and released to the public by Byeokcho. During this period, most novels are written about history and subjects of hidden royal courts, therefore such writings as "Im Kkeokyeong" which tells a story about a butcher is visually evoked and considered too sensational and breaking the law. In "Im Kkeokjeong", however, the author`s writing meets the demands of the time with strong points and clarity. Byeokcho overtly reveals his ideals and passion about the economy, however, his emphasis is unilateral and subjective. Byeokcho consciously attempts to write in an objective style with phrases similar to a newspaper story by taking into account the desire of the public, but in the end "lm Kkeokjeong" is revived as an artistic style of writing. In "Im Kkeokjeong", there is subtle embedded message of nationalism, customs, language, geographical information. Byeokcho tries to express the importance of a ``need to keep the value`` and tries to erect a ``pull awakening and action of the flag``. The liberation of Chosun is timorous and this is the reason why Byeokcho originally writes "Im Kkeokjeong". The author believes that the people could learn history and culture, communicate the artistic process and understand the goals of the contemporary people by reading "Im Kkeokjeong". Byeokcho has thoroughly reinterpreted the history and culture in contemporary terms and that is what he believes will be the learning direction to the cultural content in the late Chosun Dynasty.

      • KCI등재

        Im Yunjidang's View of Material Composition

        ( Hae-im Lee )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20 儒敎文化硏究(中文版) Vol.0 No.34

        Im Yunjidang is a female Neo-Confucian who established her own theoretical system by criticizing Han Won-jin, Kim Chang-hyeop, and Im Seong-ju. According to Im Yunjidang, they misunderstood the relationship between one's nature and material composition. Han Won-jin stated that the former is separated from the latter; Kim Chang-hyeop argued the former is limited by the latter, and Im Seong-ju insisted that the latter is one's nature originally given from heaven. Im Yunjidang claimed that the one's original nature is principle (li 理), while one's material composition can move toward good or evil. Here, nature is one principle which guides one's material composition in the direction of good. In addition, mind― the part of the self which contains principle―is the agent which leads the material in the direction of good. This coincides with the structure of removing greed and recovering nature by learning ritual, according to the philosophy of Yi I. Therefore, Im Yunjidang faithfully follows Yi I's philosophy.

      • KCI등재

        Georg Buchner 의 「Dantons Tod」 를 통해 본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

        임호일 한국독어독문학회 1989 獨逸文學 Vol.42 No.1

        Uns liegen derzeit unza¨hlig verschiedene Forschungsrichtungen in G. Bu¨chners Werken vor, als daß man in einer Flut des sogenannten Methoden­ bzw. Ansichtspluralismus ertrinken ko¨nnte. Dies hat einerseits mit der Offenheit (bzw. der Ambiguita¨t) der Werke von Bu¨chner zu tun und ha¨ngt andererseits um mit Gadamer zu sprechen mit der ”Geschichtlichkeit des Verstehens“ zusammen. Dieser Zustand fu¨hrt uns zwangsla¨ufig zum Nachdenken, ob man bis jetzt auf das Erkenntnismonopol besteht auch in bezug auf die Forschung der Bu¨chners Werke. Es gibt im großen Sinne drei verschiedene Forschungsrichtungen in dem Stu¨ck 「Dantons Tod」. Die erste geht von der ontologischen Weltanschauung aus, die von F. Gundolf, K. Vietor, B. v. Wiese u. a. vertreten ist, die zweite berullt auf dem sozialistisch-politischen Ansicht, als deren Repra¨sentanten vor allem H. Mayer, G. Jancke und die Wissenschaftler van der DDR zu nennen sind und die letzte ist vom Eklektizismus vertreten, den G. Lukacs, G. P. Knapp, W. Hinderer, Thorn-Prikker usw. repra¨sentieren. Bekanntlich ist G. Biichner eine der ersten deutschen Dichter der offenen Form, was auch die Mo¨glickeit ero¨ffnet, seine Werke unter den verschiedenen Aspekten zu betrachten. Damit wollen wir meinen, daß die oben genannten Richtungen erst dann ihre Relevanz gewinnen, wenn sie zugeben, nur das Teilgebiet des Werkes zu beleuchten. In dieser Hinsicht wird natu¨rlich unserer Arbeit keine Ausnahme erlaubt. D. h., da wir von dem Gadamers Wort ”Geschichtlichkeit des Verstehens“ ausgehen, wenden wir nicht dagegen ein, daß sich unser Versuch, das Werk 「Dantons Tod」 ideologiekritisch zu beleuchten, nur auf den Teilaspekt beschra¨nkt. Die Ideologiekritik bezieht sich vor allem auf die zwei Weltanschauungen, die Robespierre und Danton bzw. ihre Anha¨nger haben : na¨mlich ”Tugendlehre“ und ”Epikureismus“. Wir halten sowohl Tugend von Robespierre wie Epikureismus von Danton fu¨r Ideologie im negitiven Sinne, veil die beiden nicht um der Mitmenschan d. h. des Volkes willen, sondern fu¨r sich selbst bzw. fu¨r eigene Gruppe beschu¨tzt werden. Sowohl Dantonisten als auch Robespierres Bind alle dem Egoismus verfallen. Robespierres Tugend ist in Wirklichkeit nichts anderes als eine Taktik, seinen gefa¨hrlichen politischen Gegner Danton zu beseitigen, wa¨hrend Dantons Epikureismus nur die Reichen genießen ko¨nnen. Obwohl der erstere besta¨ndig das Wort ”im Namen des Volkes“ im Munde fu¨hrt, empfindet er im Grunde nicht eine so große Sympathie fu¨r das Volk, was die Hinrichtung der Ebertisten bezeugt, die versucht haben, das Eigentum, das die Besitzenden haben, unter dem Volk auszuteilen, Indessen verfechtet Danton die Identitat des Menschen na¨mlich die ”Natur“ d. h. das der Natur gemaeße Leben und die Freiheit, die nur den seinigen, na¨mlich den Reichen zur Verfu¨gung stehen. Mit einem Wort nu¨tzen die beiden Seiten im Namen des Volkes das Volk aus, und zwar zugunsten ihrem eigenen Gewinn. Wir sind anderer Meinung als die oben erwa¨hnten drei Forschungsrichtungen insofern, als wir wie sia weder parteiisch (fu¨r die erste iden. tifiziert sick der Autor mit Danton, fu¨r die zweite mit Robespierre) noch eklektizistisch, sondern kritisch gegenu¨ber den beiden Antagonisten Danton und Robespierre sind. G. Bu¨chner ist ein Genie, das das Puppenspiel-Technik (besser gesagt Maskenspiel-Technik) beherrscht. In seinen Werken treten die Ha¨ßlichen immer die Masken der Scho¨nen tragend auf, wa¨hrend die eigentlich Scho¨nen die der Ha¨ßlichen tragen. Bu¨chners Technik ist so vollkommen, daß man nicht leicht unterscheiden kann, welches das wirkliche Gesicht der Personen ist. Im 「Dantons Tod」 tra¨gt das Volk eine ha¨ßliche Maske, wa¨hrend Robespierre wie Danton die scho¨ne, aber man bemerkt im Laufe der Zeit, daß das umgekehrt ist. Dies gilt nicht allein den Personen des 「Dantons Tod」, sondern auch den der u¨brigen zwei Stucke 「Woyzeck」 und 「Leonce und Lena」.

      • KCI등재

        임화(林和)의 조선영화론 -영화사의 좌표와 "예술성과 기업성"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백문임 ( Moon Im Baek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1 大東文化硏究 Vol.0 No.75

        본 논문은 임화의 「조선영화발달소사」와 조선영화론 (1942)을 중심으로 40년대 초 영화사가 놓인 좌표 및 ``예술성과 기업성``의 명제가 갖는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영화발달소사」는 1940년 무기명으로 발표되었던 「조선영화발달사」를 초안으로 하였고, 1941년 동경에서 간행된 이치카와 사이(市川彩)의 『アジア映畵の創造及建設』에 재수록 된다. 이 영화사는 넓게는 대동아공영권에서 ``아시아 영화``를 기획한다는 제국의 프로젝트 하에 식민지 영화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정리가 벌어지던 상황 속에서 ``조선영화``의 위상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좁게는 ``최초의 문화입법``인 조선영화령 실시를 계기로 조선에서 영화의 ``재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 속에서 생산된 것이면서, 동시에 조선에서 그 문화적 위상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영화에 대한 평론가 임화의 담론적 개입이다. 본 논문은 임화의 영화론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서 ``예술성과 기업성``이라는 명제가 변증법적 대립물로 상정되어 있으며, 임화는 그것을 ``국민영화와 조선영화``의 변증법과 중첩시킴으로써 "조선영화의 예술적 성격"이라는 범주를 도출했음을 규명했다. ``예술성과 기업성``이란 30년대 후반 이후 조선 영화담론의 핵심을 포착한 것으로, 기업화가 확립되어야 예술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돌파하는 논리로서 마련되었다. 즉 기업성이라는 것이 당시 조선 영화계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모순처럼 현상하고 있으나 그것은 예술성의 문제를 변증법적 대립물로 하는 통일적 관계 속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이 과제란 국민영화라는 일반적 방향 속에서 조선영화의 위치를 지정하는 문제와 필연적으로 얽혀 있음을 주장하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영화에 있어서 물질적 기반의 문제를 본질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조선영화를 제국의 기획 속으로 해소시키게 되는 논리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뿐더러, 영화를 산업이나 국가권력의 문제와 동떨어진 예술로 파악하는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관념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본 논문은 임화가 이 논리를 바탕으로 영화사 서술에 있어서 "조선영화의 예술적 성격"을 규명한 양상, 이 영화사가 ``아시아 영화``라는 정치적, 문화적 지평 속에서 조선영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좌표가 옮겨지면서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그에 대한 임화의 대응 논리를 살펴보았다. This paper examines the cinematic discourse of Im Hwa in the early 1940s, focusing on the dialectic concept of "artistic value of Chosun cinema." I argue that Im Hwa`s "A Short History of Chosun Cinema [Choseon Yonghwa Baldal Sosa, 1941]" is a revision of an anonymous paper titled "The History of Chosun Cinema[Choseon Yonghwa Baldalsa]" published in 1940, and is included in the monograph Creation and Construction of Asian Cinema(『アジア映畵の創造及建設』,1941) edited by Ichikawa Sai(市川彩). The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Im Hwa`s "A Short History of Chosun Cinema" comes out as a colonial government`s project for researching and controlling its colonial film industry, and for positioning Chosun cinema within ``Asian Cinema`` by Japanese Empire at the same time. Im Hwa`s cinematic discourse is a way of intervention with this turmultous situation of reorganizing Chosun film industry by the dialectic concept of "artistic value of Chosun cinema." This concept addresses to the dominant cinematic discourse since late 1930s that considers the industrialization as the better way to improve the quality of Chosun cinema with the support of colonial government. By examining the industrialization as connected with the formation of Films for the Nation[Kukmin Yonghwa] that forces propagandization of Chosun cinema, Im Hwa tries to suggest the concept of "artistic value of Chosun cinema" that can preserve the specificity of Chosun cinema, and to respond to the nationalization in the late colonial period.

      • 이상(理想)의 모색과 좌절의 연대기 : 임화론(論)

        임형모 ( Im Hyeong-mo ) 한성대학교 한성어문학회 2017 漢城語文學 Vol.37 No.-

        이 논문의 목적은 가출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임화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는 데에 있다. 이를 고찰하기 위해서 초기시, 단편 서사시, 『회상시집』의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임화의 초기작의 세계에는 세계의 개진을 꿈꾸는 가출 지향성이 내재하고 있었으며 단편 서사시의 단초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단편 서사시에서는 소설적 방법으로 문제적 상황을 만들고 사건을 전개하기 위한 장치로서 `부재(不在)의 서사`를 서사 원리로 가져 오고 있었다. 또한 『회상시집』은 과거를 회상하며 `또 다시 네거리에서`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임화의 마음을 대변하는 세계였다. 주체와 세계의 부조화 속에서 주체와 세계의 조화를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현하기 위한 여정이 임화의 삶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거리는 종로 네거리에서 현해탄을 지나 평양 거리를 거쳐 모스크바 거리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그가 꿈꿔온 세계의 배반으로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맛본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이상의 모색과 좌절의 연대기였다.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life and works of Im Wha who lead to death from leaving home. To do this study, this paper focuses on his early poems, short epic, the poetry books of recall (『Hoesangsijip』). As a result, his poems included an intentionality of leaving home and the beginning of short epic. And, the short epic have hidden narrative style that principle could called `style of absent`. The style have a novelistic method that make problematic situation and storyline. Also The poetry books of recall(『Hoesangsijip』) represented the mind of Im Wha who he pondered on where to go `in crossroad again` remembering the old days. A road of Im Wha was aimed for harmony of the subject and world in literature and real life. As such, the road of Im Wha extends from Jongno crossroad to the Hyunhaetan, Pyongyang and Moscow. But, unfortunately, he trusted an ideal world while the world betrayed him. To conclude, his life was death of irony. In a word, the life of Im Wha is a chronicle of discouragement and a search of an ideal.

      • KCI등재

        독일의 상호문화성 정책의 논거들

        김화임(Hwa Im Kim) 한국독어독문학교육학회 2011 獨語敎育 Vol.51 No.-

        Wenn die Kultur den okonomischen Marktmechanismen uberlassen bliebe, wurden bestimmte Angebote nicht mehr existent sein. Darum wird eine Kulturpolitik benotigt. Die Kulturpolitik muss allerdings immer wieder neu begrundet werden, denn Kultur ist einer anhaltenden Veranderung unterworfen. Heutzutage spielt ``kulturelle Vielfalt`` eine zentrale Rolle, wohingegen die Begriffe wie ``kulturelle Identitat`` oder ``Emanzipation`` in ihren Akzentuierungen an Bedeutung eingebußt haben. Auch die okonomische Argumentation seit Mitte der achtziger Jahre hat ihre Stellung verloren. Zu Beginn des 21. Jahrhunderts gab es in Deutschland eine Debatte uber die Leitkultur im Rahmen der Einwanderungspolitik. In diesem Zusammenhang sprach der damalige Unionsfraktionschef Friedrich Merz von einer "freiheitlichen deutschen Leitkultur", die von der unbedingten Achtung vor der Wurde des Menschen, von seinen unveraußerlichen personlichen Rechten und von den Freiheits- und Abwehrrechten gegenuber dem Staat gepragt sei. Die Kulturen in diesem Sinne seien ein fester, begrenzter und kristallisierter Behalter. Dagegen vertritt die vorliegende Arbeit die Ansicht, dass sie standig im Prozess, im standigen Austausch seien. Auch der Ansatz der Politik der Interkulturalitat geht hiervon aus. Als Begrundungen einer Politik der Interkulturalitat wird erstens der ``weite`` Kulturbegriff der UNESCO erwahnt. Er setzt menschliches Leben und gesellschaftliches Zusammenleben in Beziehung. Und die Kultur umfasst die eine Gesellschaft charakterisierenden Besonderheiten und spricht die Entfaltungsmoglichkeiten des einzelnen Individuums an. Folglich sollten Chancen und Moglichkeiten kultureller Vielhalt gefordert werden. Ein weiterer Punkt der Handlungsempfehlung ist die Partizipation unterschiedlicher Gruppen auf allen Ebenen des Kulturbereichs. Zweitens wird der Kulturstaat als Staatsziel behandelt. Hier geht es um die Frage, welche Rolle und welches Selbstverstandnis der Staat im Verhaltnis zur Kultur hat, wie Kultur durch den Staat gestaltet wird. Die Enquete-Kommission "Kultur in Deutschland" hat dem Deutschen Bundestag einstimmig empfohlen, Kultur als Staatsziel im Grundgesetz zu verankern. Dadurch wurde die herausragende Bedeutung von Kunst und Kultur fur das Zusammenleben der Menschen und die Entwicklung jedes einzelnen Individuums ausdrucklich betont. Außerdem vertritt Oliver Scheytt die Auffassung, Individualitat und Pluralitat als treibende Krafte der Kultur anzusehen, zu fordern und zu schutzen. Drittens geht es um den demographischen Wandel als kulturelle Herausforderung. Nach Mark Terkessidis sind heute in den großen Stadten mehr als ein Drittel der Bewohner nichtdeutscher Herkunft. Bei den unter Sechsjahrigen erreichen die Kinder mit Migrationshintergrund sogar schon die Majoritat. Dieser demographische Wandel hat eine neue Situation zur Folge. Um der zunehmenden Vielfalt gerecht zu werden, mussen die durch staatliche oder stadtische Gelder finanzierten Institutionen ihr Augenmerk darauf richten, ein neues Publikum fur Kunst und Kultur zu gewinnen. Die vorliegende Arbeit mochte im Rahmen der ``kulturelle Vielfalt`` die Begrundungen einer Politik der Interkuturalitat darstellen. Die Kulturen sind nicht langer die festen, begrenzten, kristallisierten Behalter, als die man sie fruher betrachtet hat. Sie befinden sich vielmehr in einem standigen Prozess, sind im standigen Austausch mit anderen, sodass das Bild von den Kulturen mehr einem Mosaik gleicht.

      • KCI등재

        연구논문 : 폴 드 만의 헤겔 미학 해석에 대한 비판적 주석 (1) -상징 개념을 중심으로-

        권정임 ( Jeong Im Kwon ) 한국미학예술학회 2014 美學·藝術學硏究 Vol.42 No.-

        헤겔 철학은 ‘이성 중심적' 혹은 ‘총체성'의 철학이라는 이유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의 미학 역시 고전적 조화미를 위주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예술의 종말' 논제와 더불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헤겔 철학 및 미학의 수용상황에서 폴 드 만은 드물게도 헤겔 미학의 현대적 의미와 활성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탈구성적 언어비평의 관점에서 헤겔 미학 내의 ‘상징'과 ‘숭고' 개념을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헤겔의 예술론이 현대 예술의 기호론적 (알레고리적) 특성을 선취하며 이에 대한 담론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본다. 이러한 드 만의 헤겔 미학 해석은 오늘날 헤겔 미학 연구와 수용에 있어 새로운 해석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본 연구는 헤겔 미학에 대한 드 만의 연구 성과를 검토해보고자 하는 첫 단계 연구로, 헤겔의 ‘상징' 개념에 대한 드 만의 해석을 중심으로 그의 헤겔 미학 연구의 문제점과 의의를 살펴본다. 드 만은 헤겔 미학을 일차적으로 “상징적 형식에 관한 이론(Theorie der symbolischen Form)” 내지 “상징적 형식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이론(Theorie der Kunst als symbolischer Form)”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함에 있어서 그는 근본적으로 헤겔의 ‘상징' 개념을 내용과 형식의 합치로 이해하며, 헤겔 미학은 그러한 상징으로서의 고전적 예술의 미를 보유하고자 하는 미학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헤겔 미학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오늘날 예술의 과거적 성격 때문에 헤겔이 추구하는 상징으로서의 고전적 미의 보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드 만은 이 문제를 ‘미는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는 진술과 ‘예술은 과거적인 것이다'는 헤겔의 두 가지 핵심적 진술에서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이 진술들이 일반적으로 보면 전자는 ‘현현'하는 예술의 ‘현재성'을 뜻하는 것이며, 후자는 ‘과거적' 임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고 양립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을 ‘상징' 개념과 예술 개념의 해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드 만은 헤겔의 『철학대계』(1830) 내의 기호에 관한 규정에서 기호가 상징으로 전환되어야만 하는 구조를 분석하며 ‘상징'의 기호론적 성격을 도출해내고, 이를 예술 일반의 성격으로 확장한다. 또한 그는 예술은 ‘구상력'이나 ‘회상'의 작용이 아니라 기호와 같이 ‘기억'에 의한 ‘쓰기'의 활동이며 따라서 ‘사유'의 일종이고, 감각적 내면화가 떨어져 나간 ‘물질적 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드 만은 헤겔이 진술한 ‘이념의 감각적 현현' 또한 일종의 ‘기억의 활동'에 의한 ‘쓰기' 작용이며 ‘물질적 각인'이어서 과거적일 수밖에 없음으로 미 또는 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다'는 진술과 ‘예술은 과거적이다'는 진술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헤겔의 ‘상징' 개념에 대한 이와 같은 드 만의 재해석을 분석함에 있어서 본 연구의 초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드 만이 궁극적으로는 상징의 기호론적 성격을 찾아 ‘상징' 개념을 재해석하여 헤겔 미학 내의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들이 모순이 아님을 규명하고자 하지만 애초에 헤겔에게 있어서의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서의 ‘미'와 ‘예술', 그리고 이러한 미와 예술의 표현방식으로 ‘상징' 개념을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이라는 의미에서 이해하며 헤겔을 고전 예술 집착자로 보는 점이다. 둘째는 드 만이 기호론적으로 해석하는 ‘상징'의 개념은 유의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증은 미학 내에서의 상징 규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일면적이고 우회적이어서 부적절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헤겔 미학에서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는 진술과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예술은 과거적이다'는 진술의 의미를 드 만이 단지 ‘쓰기 활동'의 시간적 추이로만 해석하는 점이다. 넷째는 그가 상징의 기호론적 특성을 헤겔 미학에서 유독 ‘비유적 상징론' 단원의 ‘알레고리'의 예를 통해 제시하면서도 ‘예술' 일반을 ‘기호적 상징'으로, 그리고 헤겔 미학 전체를 기호론적 특성을 띤 ‘상징적 형식에 관한 이론'으로 일반화함에 있어 범하는 논증의 비약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드 만의 헤겔 미학 해석의 타당성 여부와 의미를 검토해볼 때, 드 만은 헤겔 미학의 중요한 부분을 ‘통찰'했으나 이에 대한 해석의 논증에서는 ‘맹목'인 부분들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러한 맹목들에도 불구하고 드 만이 헤겔의 상징 개념이 기호의 성격을 띠면서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 자의적이라는 것을 파악하여 헤겔의 상징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고 확장시킨 점과, 기호의 이러한 자의성 혹은 자율성이 담보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생산 활동의 중요성의 강조와 더불어 ‘상징'을 통해 그러한 기호 작용을 보여주는 것으로 헤겔 미학의 의미를 재조명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된다. Hegels Philosophie wird heutzutage als Philosophie der Vernunft bzw. der Totalitat verworfen, und Hegels Asthetik wird auch neben seiner These vom Ende der Kunst umstritten, indem sie als die auf die klassische Schonheit gerichtete Asthetik angenommen wird. In solchem Zustand ist sehr bemerkenswert, dass Paul de Man seltsamerweise eine Moglichkeit der gegenwartigen Bedeutung und Aktualisierung der Hegelschen Asthetik demonstriert. Er interpretiert im dekonstruktiven sprachkritischen Standpunkt vor allem den Begriff des ‘Symbols' und der ‘Erheineheit' in Hegels Asthetik auf eigenartige Weise und sieht, dass Hegels Theorie der Kunst die zeichnerischen(d.h. allegorischen) Zuge der gegenwartigen Kunst vorgenommen und den Weg zur heutigen Discussion daruber geoffnet hat. De Mans solcher Versuch musste sehr wichtig sein, indem er einen neuen Gesichtspunkt der Deutung von Hegels Asthetik aufzeigt. In der vorliegenden Arbeit als der ersten Stufe der Untersuchung zu De Mans Leistung werden die Probleme und Bedeutungen seiner Forschungen zu Hegels Asthetik zunachst in Hinsicht auf seine Interpretation von Hegels Symbolbegriff betrachtet. De Man zeigt Hegels Asthetik zunachst als “Theorie der symbolischen Form” bzw. “Theorie der Kunst als symbolischer Form”. Dabei versteht er im Grunde Hegels Symbolbegriff als Ubereinstimmung des Inhalts und der Form und halt Hegels Asthetik fur diejenige, die die Schonheit der klassischen Kunst als Symbol bewahren will. So gesehen, kommt davon nach de Man das Problem heraus, dass die Bewahrung der klassischen Schonheit als Symbols wegen des Vergangenheitscharakters der Kunst nicht im Stande ist. De Man prazisiert dies Problem durch Hegels zwei Aussagen, dass die Schonheit “sinnlicher Schein der Idee” ist und dass “die Kunst Vergangenes” ist. Diese Aussagen scheinen zwar widerspruchig zu sein, indem die erste ‘die Gegenwartigkeit' der scheinenden Kunst, die letzte ‘die Vergangenheit' der Kunst bedeutet. Aber er zeigt die Gleichsetzbarkeit beider Aussagen durch die Interpretation des Begriffs des Symbols und der Kunst bei Hegel. De Man analysiert dafur die Struktur der Wendung des Zeichens zum Symbol in der Enzyklopadie der philosophiesen Wissenschaft im Grundrisse(1830), und er zieht davon den zeichnerischen Charakter des Symbols heraus und erweitert ihn auf die Kunst im Allgemeien. Aussderdem behauptet er, dass die Kunst nicht die Tatigkeit der ‘Einbildungskraft' oder ‘Erinnerung', sondern die des Schreibens durch das Gedachtnis wie das Zeichen ist, und dass sie damit eine Art des Denkens und bloß die von der sinnlischen Verinnerung abgetrennte materiale Auspragung ist. Auf diesem Gesichtspunkt erlautert de Man, dass ‘sinnlicher Schein der Idee' auch eine Tatigkeit des Schriebens durch das Gedachtnis ist und wegen der ‘materialen Auspragung' vergangen ist. Dies fuhrt fur hin dazu, dass die oben ganannten zwei Aussagen Hegels nicht widerspruchig, sondern gleich sind. In der vorliegenden Arbeit gibt es vier Schwerpunkte der Analysierung der de Manschen Reinterpretation von Hegels Symbolbegriff. Erstens ist de Mans einseitige Auffassung des Hegelschen Symbolbegriffs als Identitat von Inhalt und Darstellung, zweitens ist Ungultigkeit seiner Begrundung des Zeichencharakters des Symbols durch die Analyse des Zeichens in der Enzyklopadie. Drittens ist seine unzulangliche Deutung des Vergangenheitscharakters der Kunst als ‘Schreiben's, und zum letzten ist Verallgemeinerung aller Kunste von Hegels drei Kunstformen als zeichnerisches Symbol. Nach der Untersuchung zur Gultigkeit und Bedeutung der de Manschen Interpretation von Hegels Asthetik im Zentrum dieser vier Punkten laßt sich sagen, dass de Man zwar den Kernpunkt der Hegelschen Asthetik eingesehen hat, aber es im Beweis seiner Behauptung Blindnisse geben. Dennoch darf als de Mans erregender Verdient geschatzt werden, dass er Hegels Symbolbegriff durch Auffassung dessen Charakters des Zeichens und der Willkuhrlichkeit der Verbingung von Inhalt und Form prazisiert und erweitert, und dass er den Sinn der Hegelschen Asthetik als diejenige, die die durch den Willkuhr kritisch und schafferisch produzierende Funktion des Zeichens sowie des Symbols behandelt, ins neue Licht stel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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