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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세기 전반 신라의 정치동향과 충공의 역할

        손흥호(Son, Heung-ho)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3

        본고는 9세기 전반 신라의 정치 동향에 대하여 애장왕 9년(808)부터 흥덕왕 10년(835)까지 정치적 위상이 높았던 충공이라는 인물을 통해 파악해 보았다. 충공은 애장왕 9년(808) 재상으로서 당에서 문극을 하사받은 후 애장왕 시해에 가담하게 되었고, 이후 헌덕왕대부터는 형제인 흥덕왕과 함께 정치적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헌덕왕대 흥덕왕의 즉위과정과 충공의 정치적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興德王陵碑片」에 前王인 ‘헌덕대왕의 寢膳(먹고자 는 것)에 가 있다(憲德大王寢膳有□)'라고 기록한 것을 헌덕왕의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음으로 해석하였다. 헌덕왕이 건강상의 이유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흥덕왕은 신라사의 전무후무한 副君이 되어 월지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충공은 女가 태자비가 됨으로서 차기 정치권력까지 보장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어지는 ‘(고종)의 양암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高宗之諒闇無以加焉)'는 구절을 통해 헌덕왕의 喪禮에 최선을 다한 태자로서 흥덕왕의 모습을 추정해 보았다. 중국 측 사서에서도 흥덕왕이 弟가 아니라 子로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모두 서술되어 있음과 ‘諒闇'의 의미로 볼 때 흥덕왕은 태자로서의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 이때 결자는 『논어』와 『예기』의 구절을 통해 ‘高' 임을 밝혀 보았다.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 충공을 선강태자라고 표현한 것은 유학적 소양이 깊은 최치원의 다분히 계산된 표현인 것으로 추정해 보았다. 당시 상대등이던 충공이 태자를 겸직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등이자 공인된 차기 왕위계승권자인 충공의 死後, 흥덕왕은 충공을 갈문왕으로 추봉하여 충공의 子인 明이 민애왕이 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준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듯 충공은 애장왕대부터 흥덕왕 10년(835) 死할 때까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understand the political trends of Silla Dynasty in the first half 9th century through Chung-gong who was on a high political standing from 9 years of King Ae-jang(哀莊王: 808) to 10 years of King Heungduk(興德王: 835). After being honored with Moon-Geuk(門戟) from Chinese Tang Dynasty(唐), Chung-gong participated in assassinating King Ae-jang. And from the reign of King Hun-duk(憲德王), his three brothers including King Heung-duk seized power completely. To understand the accession King Heung-duk to the throne better, this study deciphered the inscription - King Hun-duk has □ in Chym-sun(eating and sleeping) (憲德大王寢膳有□)- as King Hun-duk had health problems. When King Hunduk could not carry out affairs of state, King Heung-duk entered into Wall-ji gung(Wall-ji palace) as a unprecedented Pu-goon(副君, crown prince). At this time, Chung-gong was also assured a political power because his daughter became the crown prince's wife. And the paragraph ‘even Ko-jong's Yang-am(funeral) is incomparable to this(高宗之諒闇無以加焉)' shows that King Heung-duk did his best for the funeral of King Hun-duk. In addition this study found that the □ word(omitted word) was Ko(高) through the paragraphs of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and Liji(禮記). In the chinese history books, it is written that King Heung-duk succeeded to the throne not as a brother(弟) but as a son(子). In Bongamsa Jijungdaesa Jukjo Topbe(鳳巖寺智譄大師寂照塔碑), Chi-won Choi(崔致遠) who had deep confusion knowledge described Chung-gong as Sunkangtaeja(宣康太子, Sunkang Prince), and that was his calculating expression. But it doesn't seem that he doubled as Sangdaedung(上大等, prime minister) and Taeja(太子, first prince). After death of Chung-gong as Sangdaedung as a successor to the throne, King Heung-duk granted him Gal-moon Wang(葛文王), and this made good cause for his son to be King Min-ae(閔哀王). Like these, Chung-gong was a politically critical character from King Ae-jang to his death in 10 years of King Heung-duk(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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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왕실 삼성(三姓)의 연원

        김기흥(Kim Ki-Heung) 한국고대사학회 2011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64

        신라의 김씨는 진흥왕대에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北齊書』에 보이는 신라왕 ‘김진흥'은 ‘왕인 진흥'으로 ‘김'은 ‘왕'의 의미이다. 김씨 왕실의 바로 앞에 있었던 다른 부계 혈통의 ‘예전 왕'들은 ‘옛 왕' 즉 ‘석김(昔金)'에서 왕을 나타내는 ‘김'을 피하고 석(昔)만을 남겨 구분한 듯하다. 석씨에 앞서 집권하였던 왕실 계통은 시조 혁거세의 이름에 보이는 ‘광명'의 의미를 취하여 ‘박'이란 성씨로 구별하였다. 三姓은 석씨계 집단의 도태 후에 칭해진 것으로서 씨족이나 족단들이 준별되는 상태에서 賜姓하여 준 것이 아니었다. 기존 왕계에 따라 성씨를 나누고, 왕실과 친연관계가 있는 귀족들에 대하여는 부계 혈연관계에 따라 구분하여 가다가 결국 상대적 친소정도에 의해 성씨를 구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지배층은 누대의 정치적 연합과 통혼관계를 통하여 복합적인 혈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에 중고기 성골왕실의 근친혼이 강화되며 권부의 핵심에서 도태되었던 박씨계에 대해 김씨계는 여전히 혈연적 유대감을 갖기도 하였다. 김씨 왕비가 대외적으로 박씨를 칭하기도 하고, 신라 말에는 김씨였을 가능성이 있는 신덕왕이 박씨를 칭하는 일도 나타났다. 신덕왕은 견훤이나 궁예 등이 신성한 자임을 선전하는 중에 신라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자 퇴락한 김씨왕계 대신 신라 초기 왕계인 박씨의 원손임을 천명하는 복고적 행태를 보였다. 한편, 김씨의 경우 7세기에 이르러 김알지 이외에 중국의 신화적 제왕인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보는 인식이 나타났다. 국제화의 진전 속에 왕실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정체성의 확대 시도이며, 아울러 국가 중추세력으로 등장한 가야계 김씨까지를 포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조를 중국의 신화적 존재로 설정하게 되자 중국의 김씨 시조인 김일제도 먼 일족 정도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는 소호금천씨를 세조로 김일제를 원조라고 하고 그의 후손들이 요동에 피난한 양 말하였다. 그런데 김씨부인이 중국내에 본관을 둔 ‘경조(京兆) 김씨' 임을 분명히 하고 중국내 연원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묘명의 성씨 관련 내용은 재당 신라계 귀화인들의 경계인적 사고방식에서 적극 윤색된 것으로 신라 김씨 왕실의 연원을 그대로 말한 것으로 볼 수 없다. Kim, one of the three House names(Kim, Seok, Park) that were used by members of the Shilla royal family, seems to have been used for the first time in 565, by King Jin'heung-wang in his diplomatic dealings with China. At the time, the full and formal name that was used to refer to the Shilla king in diplomatic occasions was ‘Kim Jinheung.' From the fact that such title literally meant ‘King Jin-heung,' we can see that the term ‘Kim' actually had the meaning of ‘King.' It seems that the houses which provided former kings(which would make them ‘former royal families'), yet now stripped of power and shut out by the Kim House members, were not allowed to use the name ‘Kim,' as such last name would falsely indicate that they were the present house in power making kings. They may have only been allowed to use the name ‘Seok-Kim(昔金),' which would have meant 'Past king' with the prefix ‘Seok(昔),' while ‘Kim' alone would be the equivalent of ‘(Present) King.' Meanwhile, the descendants of kings and Houses which predated the ‘Seok' kings and its house were also present at the time, and have been part of the Shilla dynasty's central nobility class for quite some time. They were not to be referred to as ‘Seok.' So they distinguished themselves with the last name ‘Park,' which reflected the meaning of the term ‘Gwang'myeong(“light”)' that can be found inside the Founder Hyeok'-geo‘se's name. (‘Hyeok'geo‘se' is usually referred to as “Park Hyeok‘geo'se”). Then in the 7th century, a new perspective to view the name Kim started to emerge. Unlike the previous thinking which believed that Kim Al-ji, the origin of the last name Kim, was the beginning of the house, the new idea came to argue that the mythical emperor of China, ‘Soho Geumcheon,' was the true beginning and origin of the Kim house family members. This seems to have been a result of the Shilla government's overall efforts to lift the status of the king and also enhance its importance in the process, as it became necessary for the Shilla dynasty to boost its image and establish its prowess throughout the East Asian region. Once the founder of the House name Kim was established as an ancient and also mythical being from China's past, another historical figure named Kim Il-je(金日?), the origin of the Chinese last name Kim and whose origin can also be traced to the Huns(‘匈奴'), came to be considered as a distant relative of the Shilla royal family as well, and even be recorded in Shilla epitaphs. This caused a debate concerning the matter of whether or not the Shilla royal Kim family was related to the Hun tribes, yet the possibility of the Shilla Kim house descending from the Huns is nearly nonexis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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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실체

        김기흥(Kim, Ki Heung)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통일인문학 Vol.61 No.-

        신라는 5세기에 이르러 국가체제를 확고히 하고 정체성을 강화면서 전통적 조상신인 태양신을 인격화하여 시조로 숭배하고자 하였다. 피장자가 확실치 않은 오래 된 무덤들을 개보수하여 조상신인 혁거세의 무덤이 포함된 오릉으로 조성하였던 듯하고(435), 신화상 그의 탄생처에 신궁을 세워(487) 숭배하며 인격화를 한층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왕실이 직계 조상을 더욱 숭모해가는 중에, 불교가 공인되는(528) 사실까지 있게 되면서 혁거세 숭배는 식어갔다. 그리하여 『국사』 가 편찬될 때(545) 그는 역사적 시조로 자리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진흥왕 중기 이후, 국력 성장과 국제정세의 변화에 힘입어 대외정책을 일대 전환하여 백제 고구려와 대결을 불사하며 대대적 영토 확장을 이루어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실의 변동은 역사의식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진흥왕은 신라의 건국이 고구려와 백제보다 앞선 것으로 하고자 하였던 듯하다. 더구나 그는 신선 등 전통사상에 우호적이라서 혁거세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 『국사』 편찬 시 시조 남해차차웅의 부신(父神)으로 말해졌을 혁거세는, 개편작업을 통해 인격적인 역사적 시조로 기술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뒤 그는 전통적 조상신도 아니고 역사적 시조로서의 위상도 취약하여 국가적으로 제한적인 숭배를 받는데 그쳤다. The Shilla dynasty Founder Park Hyeok'geo'se had been an ancestral god that had been traditionally worshipped by the Shilla people. In the 5th century, Shilla was continuing to form its own state structure, in the wake of all the competitions with Goguryeo and Baekje, and in the process of reinforcing its own identity, they tried to reinforce the memorial worshipping of the traditional ancestral god as well. They chose to personalize the God of Sun which had been traditionally worshipped as the ancestral god. So they renovated a tomb whose owner was not that well known, and in 435 declared that it was the tomb of the founder. And instead of the previous shrine for the traditional ancestral god, they built a ‘Shin'gung(神宮)' hall in 487 at the place which was reportedly the birthplace of him according to myths, and began to worship him in such a new format. But coming into the 6th century, Buddhism was officially established as the new religion for the dynasty in 528, and the royal family at the time came to worship its own direct ancestors more than Hyeok'geo'se, so the worshipping of this ‘ultimate founder' was weakened. He was not even recognized as the historical founder in the newly published Kuksa(國史), national history book of Shilla, in 545. But then, when heroic King Jin'heung was able to conquer significantly large regions inside the territories of Baekje and Goguryeo, and enlarged the realm of Shilla considerably, the situation changed. It seems like King Jin'heung wanted to insert a notion that the foundation of Shilla preceded those of Goguryeo and Baekje in the history books. As a result, Hyeok'geo'se, which had earlier been considered and described as the mere god-like father figure of the supposed state founder Nam'hae Chacha'ung in previous historical resources, came to be portrayed as the historical founder ancestor, effectively putting the year of Shilla's foundation before those of the other two countries. As he became a historical founder ancestor, the previous god-like status of his was seriously weakened. He became an entity that was neither a traditional ancestral god nor a very strong historical founder. State worshipping of him ended up being very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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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umerical Studies on the Cost Impact of Incorrect Assumption and Information Delay in a Supply Chain

        Heung?Kyu,Kim 한국경영과학회 2010 Management Science and Financial Engineering Vol.16 No.3

        In this paper, the impact of various system parameters such as the parameters of actual demand process, the review periods and the lead times, under each combination of inventory policies and information sharing, on the long run average inventory cost per period incurred at each participant in a supply chain, is considered. For this purpose, numerical studies are conducted, from which some valuable information as to how sensitive our long run average inventory cost per period are as the model parameters change is gleaned, from which, in turn, some managerial insights are gleaned in order for industry practitioners to perform better in supply chain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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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카드에 적용가능한 분산형 인증 및 키 교환 프로토콜

        오흥룡 ( Heung-ryongl Oh ), 윤호선 ( Ho-sun Yoon ), 염흥열 ( Heung-youl Youm ) 한국인터넷정보학회 2005 인터넷정보학회논문지 Vol.6 No.3

        PAK(Password-Authenticated Key Exchange) [1,2] 프로토콜은 사용자가 암기하거나 휴대하기 쉬운 짧은 길이의 패스워드를 이용하여 통신 주체들간에 상호 인증하고, 결과적으로 통신주체간에 추후의 안전한 통신을 위한 충분히 큰 길이의 세션키를 분배하는 프로토콜이다. 본 논문에서는 MTI(Matsumoto, Takashima, Imai) 키 분배 프로토콜〔3〕과 PAK 프로토콜을 이용하고 스마트카드에 적용가능한 분산형 키 분배 프로토콜들을 제안한다. 그리고 단일 서버에 패스워드를 저장할 경우, 공격자가 서버와 타협하여 통신 주체들간에 비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므로, 패스워드 검증 정보를 여러 서버들에 분산시켜 안전성을 향상시켰다. 본 논문의 목적은 사용자가 스마트카드의 비밀키와 패스워드를 이용하여 인증과 세션키 분배를 수행하는 분산형 키 분배방식을 제안하는 것에 있다. 또한 서버 타협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임계치 비밀 분산(threshold secret sharing) 기법을 적용하여 공격자가 서버와 타협이 이루어졌을 경우라도 비밀 정보를 유지할 수 있는 MTI 키 분배 프로토콜을 이용한 분산형 키 분배 프로토콜들을 제안한다. 그리고 제안된 분산형 키 분배 프로토콜의 안전성 분석 및 기존의 방식과 비교 분석한다. A PAK(Password-Authenticated Key Exchange) protocol is used as a protocol to provide both the mutual authentication and allow the communication entities to share the session key for the subsequent secure communication, using the human-memorable portable short-length password. In this paper, we propose distributed key exchange protocols applicable to a smartcard using the MTI(Matsumoto, Takashima, Imai) key distribution protocol and PAK protocol. If only one server keeps the password verification data which is used for password authentication protocol, then it could easily be compromised by an attacker, called the server-compromised attack, which results in impersonating either a user or a server. Therefore, these password verification data should be distributed among the many server using the secret sharing scheme. The object of this paper is to present a password-based key exchange protocol which is to allow user authentication and session key distribution, using the private key in a smartcard and a password typed by a user. Moreover, to avoid the server-compromised attack, we propose the distributed key exchange protocols using the MTI key distribution protocol. And we present the security analysis of the proposed key exchange protocol and compare the proposed protocols with the existing protocols.

      • ITU-T SG17(보안) 국제표준화 동향

        오흥룡(Heung-Ryong Oh), 염흥열(Heung Youl Youm) 한국정보보호학회 2019 情報保護學會誌 Vol.29 No.4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UN 산하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국제표준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기통신표준화부문(ITU-T), 전기통신개발부문(ITU-D), 그리고 전파통신 부문(ITU-R)으로 구성되어 있다[1]. ITU-T는 역할과 임무에 따라 11개의 연구반(SG, Study Group)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보보호 국제표준은 ITU-T SG17(보안, 의장: 순천향대 염흥열 교수)에서 담당하고 있다[2]. 본 논문에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SG17 국제회의(2018년 8월, 2019년 1월) 주요 결과 및 향후 전망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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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U-T SG17(보안) 국제표준화 현황 및 추진 전망

        오흥룡(Heung-Ryong Oh), 염흥열(Heung Youl Youm) 한국정보보호학회 2018 情報保護學會誌 Vol.28 No.4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UN 산하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국제표준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기통신표준화부문(ITU-T), 전기통신개발부문(ITU-D), 그리고 전파통신 부문(ITU-R)으로 구성되어 있다[1]. ITU-T는 역할과 임무에 따라 11개의 연구반 (SG, study group)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보통신 환경에서 사용되는 정보보호 국제표준은 ITU-T SG17(보안, 의장: 순천향대 염흥열 교수)에서 담당하고 있다[2]. 본 논문에서는 2018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SG17 국제회의 주요 결과 및 향후 전망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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