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記憶과 表象으로서의 李舜臣 -星湖學派의 李舜臣觀

          함영대(Ham Young-dae)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0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4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순신은 숭고한 삶의 여정을 보여준 한 사람의 完人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이순신 스스로 삶을 통해 보여준 결과였다.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자기구현과 민족에 대한 헌신이 그것이다. 또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그의 삶을 더욱 비장하고 또 진한 아쉬움 속에 음미 되도록 만들었다.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며 반추하는 태도 속에는 그에 대한 후인들의 역사 인식과 그 당대적 삶의 지평이 중첩되어 드러난다. 그러므로 기억과 표상으로 존재하는 이순신상을 살펴보는 것은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점검한다는 것 외에도 이순신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당대인의 역사인식을 살펴본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성호학파의 이순신에 대한 기억 역시 이러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성호 이익은 이순신을 국난에서 민족을 구한 불세출의 영웅이자 지략가로 바라보았 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으로 영웅을 찬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진왜란에 대한 반성적 검토 위에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되짚어 보는 문맥 가운데 제시되었다. 국난에 임하는 준비된 장수로서의 면모와 역사적 현실을 살아간 충직하고 유연한 인물상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이순신을 과거의 기억될 만한 인물로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요청되는 인물상으로 과거로부터 선택적으로 조명된 모범적인 인물로서의 부각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순신을 뛰어난 장수로서의 재능을 가진 인물로 기억하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적 표상으로서의 이순신을 떠올렸다. 다산에게서 이순신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행을 갖춘 이상적인 군인이었고, 그의 선박과 제도는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실전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발전적으로 계승해야할 유산이었다. 이순신에 대한 성호학파의 기억과 표상은 그러므로 이순신의 영웅적인 행적에 동의하면서도 그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이순신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武와 武人, 국방에 대한 역사 적, 제도적, 문화적 가치의 의미를 짚어주었다는 점에서 다시금 되새겨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Yi Sun-sin is remembered as a whole person who did show us a sublime journey of life. It is the result that he gained through his own life. It is the very self-actualization as a historic person and also devotion to the nation. And for his sorrowful death, we remember his life in more tragic and deeper sadness. The attitude to recall and reflect him as a hero exhibits his descendants' historic consciousness over him overlapped by the aspects of his live in those days. Therefore, examining the figure of Yi Sun-sin existing as memory and representation is meaningful not just in that it investigates historic assessment on him but in that it also checks the people of the time's historic consciousness that they wanted to show through him. The memory of Sungho School over Yi Sun-sin is also not very different from that general conception. Sungho Yi-ik saw him as an extraordinary hero and tactician who saved the country from a national crisis. However, it is not the way of praising him blindly as a hero but suggested in the context reexamining the historic figure of Yi Sun-sin on the reflective consideration ov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is about a faithful and flexible figure who exhibited aspects as a general well-prepared for national crises living in historic reality. It is not that it recalls him as a memorable figure of the past but that it highlights him as an example figure selectively noticed from the past as a figure that is requested of the time. Dasan Jung Yak-yong remembers him as a figure having prominent talent as a general but also reflects him as institutional and cultural representations. To Dasan, Yi Sun-sin was an ideal solider equipped with literary and military arts as well as virtues and also a heritage to be succeeded developmentally since his ship and system had practical value that could not easily be estimated.

        • KCI등재

          정도전의 『맹자』 해석에 대한 일고

          함영대(Ham Young dae) 한국고전연구학회 2015 한국고전연구 Vol.0 No.3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연구는 정도전(1342~1398)의 맹자학에 대한 검토이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 『조선경국전』 등을 저술했다. 「불씨잡변」, 「심기리편」 등의 글들도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는 『맹자』를 전거로 활용하면서 경술로서의 경서해석의 관점을 적극 개진한 곳이 적지 않다. 그러한 자료들은 정도전이 『맹자』와 관련하여 어떠한 저작을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맹자학을 살펴 볼 수 있는 요긴한 편린을 제공해준다. 검토 결과 정도전의 맹자학은 강한 경세적 지향 속에서 벽이단론의 기초위에 마음에 대한 참신한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 방향은 경전의 원의탐구보다는 경세적 활용에 집중하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주춧돌을 놓고자 했던 정도전의 의식 속에 경전은 그 본의보다는 경세적 지향을 투영하는데 소용되었던 것이다. 군주의 역할에 대한 맹자의 발언을 원용하거나 관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君民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며 경세의 도구로서 학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 했다. 곧 경술적 의미에서의 수용이었다. 벽이단의 논리로 제시되었던 기일원론의 세계관과 마음에 대한 이해는 주자학적이라기보다는 북송대 학자들의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고, 마음에 대한 통찰은 洙泗學의 원류에 직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도전의 『맹자』 해석에 대한 이해는 조선 건국 초기의 학술적 분위기, 구체적으로 경학의 구체적인 한 국면을 살피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research examines the study of Mencius by Jeong Do-jeon(鄭道傳, 1342~1398). Jeong Do-jeon authored 『Gyeongjemungam(經濟文鑑)』, 『Gyeongjemun- gambyeoljip(經濟文鑑別集)』, 『oseongyeonggukjeon(朝鮮經國典)』 and more. Articles such as 「Bulssijapbyeon(佛氏雜辨)」 and 「Simgiripyeon(心氣理篇)」 are also included in anthology. In many of which Jeong vigorously expressed his views, while utilizing 『Mencius』 as his theoretical base, of Confucian Studies in the interpretation of Confucian Classics. Such materials offer a useful glimpse into his study of Mencius while Jeong never submitted any writings related to 『Mencius』 As a result of investigation, Jeong s study of Mencius is understood that based on the foundation of anti-heresy theory, he had a strong intention of awakening people and made a novel attempts to interpret one s mind. The direction was less about studying the original intention of the doctrine but more focusing on activities to inspire people. In Jeong s consciousness in which he meant to install a foundation stone in building a new nation, the doctrine was used as a way to instill inspiration than its original meaning. Regarding the role of a monarch, he would quote Mencius, actively evaluate spectators, or introspect the roles of a monarch and his subjects, while making a great effort to maximize the effectiveness of the study as a tool of inspiration. To interpret in terms of Confucius Studies, it was to embrace. The world view of Philosophy of Qi(氣一元論), suggested as a theory of anti-heresy, and the understanding of one s mind were considered as more the stance of Northern Song Dynasty scholars than that of the Doctrines of Master Zhuzi(朱子, 1130-1200); and insights regarding one s mind is understood as the very root of Susa Learning(洙泗學) combining teachings of Confucius and Mencius. The understanding of Jeong Do-jeon s interpretation of 『Mencius』 is to contribute to investigating the academic atmosphere at the early founding of Joseon Dynasty as well as a detailed aspect of Confucian Classics.

        • KCI등재

          중등학교에서 경전·제자서 학습과 인문고전교육 -인문 가치의 설정과 교과서 서술을 중심으로-

          함영대 ( Ham Young-dae ) 한국한문교육학회 2018 한문교육연구 Vol.51 No.-

          이 글은 중등학교 한문교육에서 진행 중인 경전 제자서의 학습과 관련하여 인문고전교육의 관점으로 2015년 개정 교과서 『한문Ⅰ』을 검토한 것이다. 논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전과 제자백가의 학습을 위해 교과서에서 채택한 주요한 논점들을 가치설정의 문제로 검토하여 인문고전교육의 관점에서 그 적합성과 유의미성을 검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채택된 내용을 교과서에서 학습내용으로 서술함에 있어 정당한 논점으로 학습의 과정에 합당하게 서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전체 교과서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이나 해당 교과서 전체에 대한 하나하나의 품평을 자제하고, 해당 논점에 적합하고 의미있는 요소들만을 선별적으로 택하여 경전 제자서의 학습에서 인문고전교육으로서의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특히 개정 교과서에서 주요한 학습목표로 강조하고 있는 “한문기록에 담긴 선인들의 지혜와 사상을 이해하고, 현재적 의미에 비추어 가치가 있는 것을 내면화하여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한 인성을 함양한다”는 점을 한문 교과서의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경전·제자서에서 십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전·제자서를 통한 인문고전교육의 논점 검토는 충분한 타당성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경전·제자서의 고전인문교육으로서의 가능성은 무궁하다고 생각된다. 그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재료의 원래적 성격이 그런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응용여부에 따라서는 진정한 溫故知新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가능성의 전제는 해당 내용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것인데 이 점은 여전히 깊은 학적 탐구를 요청하는 것이다. This paper reviewed the 2015 revised textbook “Chinese Classics I” from a perspective of humanities and classic education related to the learning of scriptures and books of philosophers in middle school classical Chinese education. There are two issues. One is to examine the main points adopted by the textbook for the learning of scriptures and the Hundred Schools of Thought as an issue of value setting and review their suitability and meaningfulness from a perspective of humanities and classic education. The other is to examine whether the adopted contents are described in the textbook as proper points in a way suitable for the learning process. Thus, this paper restrained from analyzing the structure of the whole textbook or evaluating each aspect of the textbook but selected only the elements suitable and meaningful to the issues of the paper and looked into the potential of the learning of scriptures and books of philosophers as humanities and classic education. Especially since the main learning objective emphasized in the revised textbook, “to understand the knowledge and ideas of forefathers found in classical Chinese records and foster sound values and good character by internalizing what is valuable to today” is fully implemented in scriptures and books of philosophers among various genres of classical Chinese textbook, a review on the points of humanities and classic education through scriptures and books of philosophers can have enough feasibility. The potential of scriptures and books of philosophers as humanities and classic education is unlimited. The original nature of the material contains such potential, so depending on its application, one can review the old and learn the new. However, it is clear that a profound examination of the content is needed as a premise of such potential. In this sense, profound research is still demanded.

        • KCI등재

          星湖學派의 孟子 談論

          함영대(Ham young dae) 대동한문학회 2008 大東漢文學 Vol.2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성호학파의 활발하고 진지한 학문토의는 학파내에 다양한 학문적 지향을 조화롭게 수용한 결과였다. 이는 학파를 설정할 때에 학맥, 당색, 공통된 문제의식과 입장의 공유 뿐 아니라 학문적 문제의식에 대한 다채로운 반향이라는 요소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학파내의 다양한 문제의식이 포용되어 활발하게 토론될 때 그 학파의 내적 긴장감과 에너지는 더욱 활력을 가질 수 있다. 성호학파의 종장인 성호 이익은 경전에 대해서 철저한 비판의식을 가졌으며, 자신의 의문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추구를 가치있게 여겼다. 이러한 비판적 경전해석의 정신은 정산 이병휴와 녹암 권철신에게 이어졌고 조선 후기의 탁월한 경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전수되었다. 한편 성호의 또 다른 제자인 소남 윤동규와 순암 안정복은 비판적 경전이해의 감각을 수용하면서도 그것보다는 본원의 추구와 함양이라는 도덕실천에 더욱 큰 경학공부의 가치를 두었다. 선현들이 이룩한 성취를 충분히 수용하고 아울러 실천하는데 더 큰 학문적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성호학파내의 두 상이한 흐름은 학파내에서 문제의식을 선명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그 근저에는 전통적 지반과 진취적 성향의 조화를 구현한 학파의 종장인 성호의 학문적 배경과 학파 내의 포용정신의 활발한 상승작용이 있었다. 이러한 성호학파의 성향은 그들의 맹자담론에서도 뚜렷하게 표출되었다. 도통에 대한 관점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었지만 도토을 전한 『맹자』라는 경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성호의 제자들에게 텍스트 비판과 의미론적 관점으로 계승되었다. 도통의 관점은 소남과 순암에게 이어졌으며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정산과 녹암을 거쳐 다산에게 이어졌다. 벽이단에 대한 관점에서 성호가 가진 異端邪說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효용론적 관점은 소남에게는 유보적으로, 녹암과 다산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다산은 이단사설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까지 검토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는 정통유학자로서 자기정체성의 확립과 학파의 앞날을 위해 매우 격렬한 태도로 이단에 대해 비판과 공격을 가했던 순암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특정 어구에 대한 해석에서 성호는 주자의 견해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로 좀 더 적극적으로 부연하는 방식을 취한 것에 비해 순암은 주자와 퇴계의 견해를 묵수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산은 본문의 맥락에 집중하여 이전의 해석과는 상이한 견해를 제시하였고 다산은 여기에서 다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호학파의 맹자담론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제자들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견해의 표출이다. 이것은 삶의 신념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단순히 쟁점에 대하여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 것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맹자담론에서 보여준 소남과 순암의 견해는 致用의 관점으로만 성호학파를 파악하는 것에 대해서 수정을 요하는 대목이며, 아울러 성호학파의 내적 긴장과 그 사이의 학술적, 철학적 의미에 대하여 여전희 새롭게 파악해야할 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The school of Seongho could make animated and serious academic discussion by adopting academic diversity harmoniously. This shows that various reaction over the academic critical mind as well as academic relationship, character of a party, joint ownership of common critical mind and position must be reflected in establishing a school. When a school accepts various critical mind and actively debates, the school can keep intrinsic strain and vitality. Seongho I-ik, a master of the Seongho school, had a radically critical consciousness toward the scriptures and gave a value his serious observation about his own questions. This critical mind toward the scriptures was followed by Jeongsan Lee Byeong-hyu and Nokam Gwon Cheol-sin and was handed to Tasan Jeong Yag-yong, a prominent scholar of the late chosun period. On the other hand Sonam Yun Dong-kyu and Sunam An Jeong-bok, Seongho's another disciples, accepted the critical sense toward the scriptures but put more value of scriptures study on pursuing the origin and moral practice. They thought that to accepted ancient sages achievement in full and practice it is more meaningful and the true object of learning. The two different academic current did much to enhance critical mind and make it clear. Seongho is the master of the school which realized harmony of a traditional foundation and an enterprising disposition and his academic background and catholicity formed the basis of it. This propensity of the Seongho school was seen obviously in their Discussion about the Works of Mencius. It still held on to the point of view about spiritual enlightenment but was taken over text criticism and a semantic point of view by Sung-ho's disciples who had critical point of view toward the scriptures, the Works of Mencius. The point of view about spiritual enlightenment was maintained by Sonam and Sunam while a critical eye about text was succeeded via Jeongsan and Nokam on to Tasan. In point of view about attack heresy, Seongho's critical recognition and point of view about usefulness toward heresy and heterodoxy quwas succeeded to Sonam with reservation and to Nokam and Tasan actively. Especially Tasan showed enterprising spirit to go over the positive side of heresy and heterodoxy. This is contrary to Sun-am's attitude, which aggressively criticized and attacked heresy for his own identity and the future of the school as an orthodox Confucian scholar. In analysis of specific expressions, Seoungho respected Chu-Hsi's opinion and also elaborated on it with his own opinion. Unlike this, Sun-am showed an aspect to keep to opinion of Chu-Hsi and T'oeGye. Jeongsan concentrated the context of the text and presented conflicting opinion from the former interpretation while Da-san showed another transformation from here. Discussion about the Works of Mencius exhibits opinions as diverse as disciples' lives. This is related to belief in life and needs to be distinguished from a mere difference in opinion over a disputed point. Especially opinions of So-nam and Sun-am in Discussion about the Works of Mencius need to be modified in that they understood the Seong-ho school just in the point of ‘致用'. In addition it still tells intrinsic tension of Seong-ho school as well as academic and philosophical significance need to be newly understood.

        • KCI등재

          중등 한문교과서 ‘ 경전·제자백가 ' 의 학습요소 - 제재와 주제, 논리의 맥락성을 중심으로 -

          함영대(Ham, Young-dae) 대동한문학회 2017 大東漢文學 Vol.52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중등 한문교과서의 경전·제자백가 단원의 학습요소로 채택된 제재와 주제, 논리의 맥락성 문제를 검토한 것이다. 내용의 사상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전·제자백가 단원은 중등 한문교과서에서 이 논점을 짚어보는데 적절한 단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검토 결과, 단편적인 핵심 구절들이 산재되어 있는 경전과 제자백가 단원은 제재를 주제화 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맥락을 갖추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매우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의식 자체가 미흡하거나 논리적 맥락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고, 한 단원 내에서 학습 요소가 지나 치게 단편적으로만 제시되어 유기적 결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학습 요소간 유기적 결합이 미흡한 것은 교과서 집필시 한 단원내의 완결 성보다는 전체적인 편집사항, 특히 글자 수에 얽매이고, 문법 등의 학습요 소를 분산하여 배치해야 한다는 편찬지침상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좀 더 궁극적인 문제는 단원 내에서 학습요소, 그 내용에 대한 선별과 맥락적 결합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다. 효과적인 지도 방법에 대한 추구는 지속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자료에서부터 시작되는 개별 학습요소에 대한 깊이있는 검토와 그 학습 요소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맥락성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 교육현장에서 꾸준히 요청되는 것이다. 한문교과서 집필의 핵심요소로 다시 떠올려 져야 하는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contextual issues of materials, themes, and logic adopted as learning elements of the chapter, ‘The Scripture and Hundred Schools of Thought' in Chinese textbooks of secondary school. The chapter, ‘The Scripture and Hundred Schools of Thought' has appropriate characteristics to review this issue as they focus on the ideological side. As a result of the review, the chapter that has core phrases dispersed is insufficient in conveying the meaning clearly with logical context in the process of expressing the theme with materials. In some cases, the consciousness of the problem itself is insufficient or the logical context is lacking, and in others, the learning elements are presented only in a fragmentary manner in one chapter, missing out their smooth organic combination. The lack of organic combination between learning elements is due to the problem of editing instructions that focuses not on the completion of a chapter but on the whole editing, especially the limitation on the number of letters, and dispersed arrangement of learning elements including grammar. However, the more ultimate problem is the lack of interest in the selection and contextual combination of learning elements, themselves, within the chapter. The pursuit of effective teaching methods is sought out constantly. However, the review of each learning element that starts from concrete materials and the consideration of contextual nature, which is the organic combination of learning elements, are continuously asked for in the educational field. They should be reconsidered as key elements in writing Chinese textbooks.

        • KCI등재

          경사강의(經史講義)의 안과 밖 : 조선학술사에서 군사(君師)라는 지위

          함영대(HAM Young-dae)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20 泰東古典硏究 Vol.44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정조 대에 시행되었던 『경사강의』에 내포되어 있는 경학적 의미를 문화다원론적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시도이다. 『경사강의』는 18세기 조선학술의 중요한 국면이다.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보여준 정조와 당대 조선학계의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학자들이 오랜 시간 경학을 탐색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정조의 경학에 대한 구상을 충실하게 학문현장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문제 출제자와 채점자가 군주인 정조이고, 그 답변자가 신하이자 초계문신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정조의 학문적 기획에 의해 초계문신 제도가 만들어지고 『경사강의』가 탄생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올바른 경술(經術)을 통해 정치를 바로잡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속학(俗學)을 바로잡고 정학(正學)을 부지(扶持)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정학의 기풍이 조성된다면 이단(異端)을 비롯한 속학은 정리될 수 있다는 인식은 조선에서 더욱 학술에 근본을 둔 사회정화의 시도가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는 토론을 지극하게 즐겼던 호학군주, 정조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무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초계문신을 필두로 군주를 둘러싸고 신하이자 학자군을 이루었던 당대 조정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학계에 대한 비판의식 속에서 확고한 주자학으로 학문관을 정위(定位)한 정조가 자신의 경학관을 관철시킨 『경사강의』는 18세기 조선 학술의 성취로 이해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군신간의 지식격차로 인한 지나친 교도의 가능성, 군사 정조의 지나친 학술적 자신감으로 초래된 독단적인 해석의 여지는 일말의 우려를 낳는다. 특히 속학을 구제하는 정학으로서의 주자학을 내세운 이래 정조는 청으로부터 수입되던 도서들을 엄금하고 오히려 주자학으로의 회귀를 강제했던 바 이는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조류에 조응하여 주자학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는 ‘주자학이 함축하는 다양한 사상적 쟁점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라는 평가만으로 가릴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요청하는 것이다. Gyeongsa-Gangui(經史講義) is an important aspect of the Joseon's academic sector in the 18th century. This is the outcome of long period of search for Confucian Classics(經學) by King Jeongjo who showed excellent academic accomplishment and scholars with the most significant possibilities for the Joseon's academic sector at the time. However, the fact is that it displays the process of confirming the ideals on Gyeonghak by King Jeongjo substantively at the academic field. Perhaps it might be inevitable under the situation where King Jeongjo who was the rule that came up with issues and graded for scoring while the answers were coming from his subjects and Chogye subjects. This is the intrinsic feature that has to be inevitable from the time that the Chogye subject system (having subjects close to the king) was made under the academic planning of King Jeongjo and the Gyeongsa-Gangui was initially devised. King Jeongjo had the perception that the politics must be established through the justifiable Gyeongsul(經術, ruling under Confucianism) and he also had the thought that the secular learning must be well-established by sustaining the established learning. The perception that, if the tendency of the established learning is established, the secular learning, including the cult, could easily be cleared up, would be enabled to attempt for social purification based on academic endeavors even further in Joseon, and this is associated with the personal taste of King Jeongjo who was known to enjoy extremely on discussions as he was referred to as ruler who loved scholarship. Such a trend of King Jeongjo had significant influence on leading the political atmosphere where his subjects and scholars were formed around Chogye king and subjects for the ruler. King Jeongjo who firmly established his view on learning in Doctrines of Chu-tzu under the sense of criticism on the academic sector accomplished his view on Gyeonghak in Gyeongsa-Gangui which could be understood as the accomplishment of Joseon scholarship of the 18th century. But on its hindsight, there was a gap in knowledge between the king and subject that there was certain concern for dogmatic interpretation that could be resulted in the growth of academic sense of confidence of King Jeongjo with the possibility of excessive teaching from such gap in knowledge. In particular, since placing Doctrines of Chu-tzu as the established learning to relieve secular learning to the fore, King Jeongjo strictly prohibited the publications of Qing Dynasty from importing, and rather, required to return to Doctrines of Chu-tzu, and this is attributable to the fact that it would contradict from the flow of time that required to secure the diversity by deviating from Doctrines of Chu-tzu in responding to the flow of shifting East Asia. This is the call for contemplation on the flow of massive history that could not be measured only by the assessment in in-depth discussion on various ideological issues in Doctrines of Chu-tzu.

        • KCI등재

          〈宇宙問答〉과 柳麟錫의 文明意識

          함영대(Ham, Young-dae)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泰東古典硏究 Vol.27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유인석의 만년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우주문답〉을 문명의식을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검토결과 〈우주문답〉은 ‘있는 세계'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기보다는 ‘있어야 하는 세계'에 대한 이상과 동경이 짙게 드리워진 것으로 파악된다. 〈우주문답〉은 조선에서 전근대와 근대가 교차하는 1913년에 저술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상고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이는 유인석이 견지한 기본 적인 역사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의 결과이다.우주문답〉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가상의 질문들은 구체적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그 답변은 보편적인 이상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우주문답〉의 문명의식은 당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유교 경전의 이상으로 회귀한 것이 다. 이것은 유인석이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현실적인 국면에서 그대응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자신이 최상의 가치라고 믿는 이념과 질서에 대한 온전한 구축과 실천을 더욱 가치있는 유자의 삶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재구축하고 유교적 이상인 ‘도'를 실천하려 했다. 문명에 대한 주체의식과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세계문명의 건설, 제국주의가 전파한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 동서양 문명의 조화로운 추구 등은 〈우주문답〉의 문명의식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다. 분명 유인석은 이전의 화서학파의 인물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서양의 발전된 문명을 배우 려고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본말론적 문명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화이관과 신분관, 남녀차별에 대한 의식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강고한 것이다. 유인석의 문명의식은 과연 시의(時宜)를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꿰뚫어 본 것인가? 아쉽게도 유인석의 뇌리 속에는 철저한 유교적 상고주의, 봉건적인 질서의식과 화이관적 세계인식이 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s Ujumundap densely containing the idea of Yu Inseok's perpetual theory focusing on the consciousness of civilization. According to the result of examination, Ujumundap is not the meditation on ‘the existing world' and prospect to the future but rather the deep ideal and longing for ‘the must-be-world'. Ujumundap was written in 1913 when both premodern and modern ages existed in Joseon, but it profoundly deals with Confucian Sanggojuui (尙古主義). This is the result of foundational historic consciousness held fast by Yu In Seok and prospect to the future. Virtual questions consisting of the axis of Ujumundap reflect concrete realistic consciousness. In contrast to it, the answers pursue the general ideal world. Ujumundap's consciousness of civilization could not be a future-oriented thing initiating changes based on reasonable analysis on those times' reality but returned to the ideal of Confucian scriptures. This could not build measures in realistic aspects with Yuin Seok's flexible responses to changes of that time, but he believed sound establishment and practice for ideology and order he thinks to be his best value is an even more valuable life of a Confucian scholar. He tried to reestablish civilization based on neutralization and practice ‘Tao (道)', the Confucian ideal. What are noticeable in Ujumundap's consciousness of civilization include a sense of sovereignty to civiliza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world civilization by peaceful methods, sharp critical consciousness on the harmful effects of capitalism transmitted by imperialism, and harmonious pursuit of Oriental and Western civilization. Yu In Seok surely wanted to learn the West's advanced civilization actively compared with previous figures of Hwaseo School (華西學派). However, he could not escape from Bonmal theory (本末論的)'s view of civilization after all. Among them, particularly stable parts are Hwa-eui theory (華 夷論) and the view of the status system, and consciousness of sexual discrimination. Could Yu In Seok's consciousness of civilization penetrate periodic significance (時宜) rationally and realistically? Regretfully, in Yuin seok's mind, thorough Confucian Sanggojuui, a sense of feudal public order, and Hwa-eui theory's world consciousness were still firmly fixed as undeniable truth.

        • KCI등재

          星湖學派의 盡心.知性.事天에 대한 해석

          함영대(Ham Young Dae)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3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고는 성호학파의 맹자해석학에 대한 일련의 논문 가운데 하나이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 주희의 『四書集註』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孟子』 「盡心上」 1장의 해석을 통해 검토한 것이다. 당대 조선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주희의 『집주』를 넘어서기 위해 성호는 『집주』가 아닌 『語類』의 다른 견해를 채택하여 주희의 견해로 주희의 견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산에 이르러 경전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讀法과 宋明理學의 근저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성호학파의 이러한 해석적 지향은 구체적 현실에서 실천성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한편, 이러한 성호학파의 견해를 황종희와 이토진사이의 견해와 비교ㆍ검토해 보면 성호의 해석은 性卽理의 성리학적 패러다임을 온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다산의 해석은 경전의 본의에 비추어 과도한 주견을 제시한 측면이 있다. 청조의 황종희나 일본 고학파의 이토 진사이가 경전의 해석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롭고, 경전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응시했던 점에 비추어 그 강한 실천지향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선 학자들의 뇌리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주자학의 비중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This study is one of studies on Mencius hermeneutics of Seongho School. It examines the process where Seongho Iik, Dasan Jeong Yak-yong, and Lee Ju-Hee overcome 『Sishujizhu(四書集註)』 through the interpretation of chapter 1 of 『Mencius』 「Jinsimsang(盡心上)」. Seongho showed the process of overcoming ChuHeui according to ChuHeui‘s opinion by adopting a different opinion of 『word class(語類)』 instead of 『a variorum edition』. This was developed to criticize reading of scripture texts and the root of Neo-Confucianism. Such an interpretive way of Seongho school is the process of acquiring practicability in a specific reality. However, the result of comparison and analysis of opinions between Hwang Jong-hee and Ito Jinsai shows it is hard to think that the interpretation of Sengho is totally out of the foundation of Sungjukli(性卽理), and Dasan's interpretation was extremely sensitive according to the real intention of scriptures. Given that Hwang Jong-hee of Qing dynasty and Ito Jinsai of Japanese Kogaku school were relatively free more than Dasan's interpretation in terms of interpretation of scriptures and viewed scriptures more objectively, repulsion of the strong practicability and directivity is emphasized. This is paradoxically to reconfirm the importance of Zhu-Xi studies in Chosun Dynasty.

        • KCI등재

          유교경전 교육의 미래전략 -『만화 논어』의 경우-

          함영대 ( Ham Young-dae ), 장현곤 ( Jang Hyun-gon ) 한국한문교육학회 2019 한문교육연구 Vol.53 No.-

          이 글은 유교경전 교육의 미래전략에 대한 시론적 논고이다. 특히 그 방법론적 문제에 집중하여 주요한 콘텐츠인 경전의 내용을 ‘만화'라고 하는 학습자의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전달법을 활용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장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만화로 제작하여 전달하면서 그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또 그 만화의 표현방식 가운데 어떠한 전달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 ‘만화 논어'를 살펴보고, 유교경전 교육의 미래전략으로서 어떠한 ‘만화 『논어』'를 택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새삼 유교경전 교육의 미래적 전략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교경전의 교육이 과연 미래에도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가교육 자체에 대한 내부적 성찰이 요청된다. 이 점에 대한 논의를 한 번 더 환기하는 것은 경전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각성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향성에 대한 설정이 확고하다면 그 방법론의 하나로 콘텐츠의 개발과 활용을 응당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기본적으로 ‘만화'라는 기법을 통해 『논어』에 담긴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만화'가 고전에 입문하고자 하는 학습자들에게 충분히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논어』라는 고전을 전달함에 있어 그 방법론과 문제의식은 매우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고전의 교육적 측면에서 그러한 접근이 온전히 의미있고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유보적이다. 이 만화 논어는 성균관대학교의 홈페이지를 통해 웹툰형식으로 먼저 개시되고 이를 만화책의 형식으로 보일 예정이다. 그 대상을 대학생으로 둔 것이다. 아직 길은 멀고 할 일은 적지 않다. This article is the overview essay on the futuristic strategy of Confucian scriptures education. In particular, it is intended to facilitate the delivery method to enhance the interests of learners in 'comics' for the important contents of scriptures by focusing on its methodological method. For example, when the most representative Confucian scriptures of 『Analects』 is produced in comics to deliver, what in a way of expecting educational effect, what shall we consider? And, what delivery method shall we select from the expression method of such comics? This article takes a look at the existing ‘Comic Analects' n the basis of such an issue, and contemplate what kind of ‘Comic 『Analects』' must be selected as the futuristic strategy of Confucian scriptures education. Nonetheless, In order to discuss the futuristic strategy of Confucian scriptures education, there is a need for internal contemplation on the Confucius education first regarding if the Confucian scriptures education is really needed in the future. Reminding once again for the discussion on this point is that there still is a need for the enlightening on the scheme of the scriptures education. If the establishment of the scheme is solid, development and facilitation of the contents may be discussed as a methodology. In this aspect, through the technique in 'comics' basically, the implication contained in 『Analects』 can be delivered and it is pointed out that the ‘comics' may be facilitated as the foundation to stimulate the motivation to study the classics for those beginning learners. Furthermore, in delivering a classic in 『Analects』, it points out the point that the methodology and recognition of issues may be approached in extremely diverse ways. However, in the educational aspect of classics, it is still remained to be seen for such an approach to be fully meaningful and effective. This Comic Analects will be commenced in the Web-tune style through the homepage of Sunggyungwan University first and it will be displayed in the comic book style. University students will be the subjects. There is a long way to go and so many things to do.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