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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에서 상권 활성화에 따른 프랜차이즈 분포 및 특성에 관한 연구

          김창호(Kim, Chang-Ho), 김환용(Kim, Hwan-Yong), 나인수(Na, In-Su) 한국BIM학회 2018 KIBIM Magazine Vol.8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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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trification is appearing in various areas. Especially commercial gentrification, the value of property is rising and it means the change of commercial sphere in revitalizing the underdeveloped commercial. In this study, Identify the process of increasing the franchise rate, which is changing gradually in commercial areas. We analyze prior studies on gentrification and franchise. Identify changing of land use distribution in Samcheong-dong area and analyze franchise change process.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changing of land use in Samcheong-dong area, the number of houses and other uses has continued to decrease. In the case of franchises, it increased sharply and in the case of general commercial, it steadily decreased. Looking at analyzing the franchise change process in Samcheongdong area, In the franchise change process, there is very little change in land use from residential and other uses to general commercial. Representative spaces that show the process of franchise change are around the three-way streets, around the community service center and around the police station.

        • KCI등재

          조위(曺偉) 시(詩)에 나타난 15세기(世紀) 후반(後半)의 관인상(官人像)과 그 의미

          김창호 ( Chang Ho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2 漢文古典硏究 Vol.25 No.1

          이 글은 조위 시에 나타난 15세기 후반의 官人像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조선 전기 時代精神의 변화 가운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규명하는 데에목표를 둔다. 조위의 관인상 형성의 배경에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자형이자 스승인 김종직으로, 그는 조위에게 유가적 근본이념의 탐구와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그러한 이념적 지향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를 기대했다. 또 하나는 당숙인 조석문으로, 조위를 경화 사회에 훈구가문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한편, 그가 이른 나이에 경화문화적 체질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상대적인 성향의 두 사람을 통해 조위는 당대에 필요한 관인적 능력을 갖추어 가면서, 관인으로서의 지향 정립에 필요한 사고와 감각을 갖추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관인상'은 임금을 보좌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로서 지향하는 이상적 지점이면서, 직접적으로는 시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규율하고 실천의 방향을 정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조위의 관인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태평 성세로 자부하는 당대에서의 ‘聖君을 보좌하는 盛世의 官人'의 像이다. 이는 시대에 대한 자신감 또는 낙관적 사고의 반영으로, 봄볕같은 성세의 혜택을 입으면서 그러한 성세를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관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진사류적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自己檢束을 바탕으로 道義를 견지하는 관인'의 상이다. 신진사류와의 연대 속에서 학문적ㆍ정치적신념의 실천에 대한 기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민생을 우선시하고 時政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태도와 관계된 것이다. 시대적인 흐름을 볼 때, 조위가 활동한 시기는 정치권력이나 학문권력의면에서 훈구로부터 사림으로의 점차적인 이동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김종직 진출 이후 조위, 金宏弼, 金馹孫등으로 이어질 무렵에 사화가 일어나고, 극심한 피해가 있었지만, 종국적으로는 16세기 후반 사림의 승리로 귀결된다. 조위의 시에 나타나는 두 관인상은 훈구로부터 사림으로 정치ㆍ학문 권력이 이동하기 시작하던 15세기 중ㆍ후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時代精神의 점차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설명 가능하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images of the 15th century`s bureaucrats in Jo Wi`s poems, and what implications they have with changes of zeitgeist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re were two bases of the formation of Jo`s images of bureaucrats. One is his brother-in-law and teacher, Kim Jong-jik, who woke up Jo about the importance of the exploration and practice of the radical ideologies of Confucianism, and expected him to open a new age on the basis of such an ideological orientation. The other is his uncle (his father`s cousin) Jo Seok-mun, who got Jo Wi to recognize himself as a member of a Hungu family in capital society, and helped him to be equipped with capital-cultural features in his early days. The `images of bureaucrats` not only meant ideal points toward which officials who assisted the king and govern people should be oriented, but also directly refer to directions in which they disciplined themselves and established their practice on the ground of the evaluation of the times. Jo`s images of bureaucrats can be summarized generally in two dimensions. In one dimension, they are ``officials assisting the lord in the reign of peace`` in the days of King Seongjong, which the poet himself regarded as the reign of peace. This was a reflection of his confidence in the times or optimistic thoughts, and the officials in those images appeared to vow to fulfill their responsibilities in keeping the time of prosperity. In the other dimension related with neo-bureaucratic consciousness, they were ``officials maintaining morality on the basis of self-regulation.`` In particular, they put priority on public welfare, and were willing to criticize political situations at that time. The parallelism between the two images of bureaucrats in Jo Wi`s poems well reflect the aspects of the middle and late 15th century, in which politics, scholarship, and power began to move from Hungu to Sarim. This can be accounted for on the side of changes of zeit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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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선 전기 한시에 나타난 ‘소[牛]' 形象의 변화와 그 의미

          김창호(Kim Chang ho) 대동한문학회 2016 大東漢文學 Vol.4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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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hanges and meanings of the image of the cow in Sino-Korean poems written during the Koryo and Early Joseon Dynasties. The cow appears in various records about the period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before Sino-Korean poems were created actively. Such records can be obtained mainly from Samguksagi and Samgukyusa, and they are related to a large variety of areas including people's lives, national policies, military, transportation, religion, and language life. This is the consequence of the fact that the cow was used in agriculture and incorporated into people's daily living and, as a result, it was treated as an important source of workforce and property. Particularly with the import of Buddhism, the cow appears in Buddhist stories in the context of explaining Buddhist doctrines and practices such as transmigration. This suggests that the cow was advancing gradually from the domain of daily living to the domains of spirit, idea, and culture. The cow emerges with a characteristic image in the liberal ideological atmosphere in the early Koryo Dynasty. In the record about Yoon Eon-yi (尹彦頤) and in Gwak Yeo's(郭輿) works, we can see that the cow melted naturally as an element into the expressions of the Buddhist view of life and Taoist spiritual orientation. The image of the cow is associated with meanings such as naturalness, far-sighted view, non-restraint, and mental freedom(達觀, 無拘束, 不羈). Through the mid period of the Koryo Dynasty,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view of the cow, but such changes did not bring forth a change in people's perception of the cow. The cow was again incorporated into the frame of pastoral scene, and with 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it represented a rural life in opposition to rising to a government position. To those who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emerging dynasty or chose retirement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cow emerges in association with their life attitude pursuing self-sufficiency or mental freedom. With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ose who entered the government service and those retired from the service, and this was represented by spatial division. To those in the government service, the country is described as a place ‘far away,' ‘yearned after,' and ‘home to return in the future' The development of poetic image to the plot of entering into/retiring from the government service or yearning for a rural life also shows the tendency of institutionalization. In some works, however, such a tendency is overcome as the poet's awareness of problems or circumstances is involved. As social contradictions accumulate and political strives grew harsher, the cow appears as a means of political communication. This is related to Do Hong-gyeong's ancient story of two cows. To them, the presentation of the cow was an implicit expression of distancing from and rejecting the world. This suggests that the image of the cow continuously became an object of interest in connection to the political realities. 이 글은 고려~조선 전기 한시에 나타나는 소[牛] 형상의 변화 과정을 살피고 그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본격적인 한시 창작이 이루어지기 전인 삼국시대 관련 기록에는 ‘소'가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주로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의 내용을 통해 확인 가능한데, 백성들의 삶, 국가 정책, 군사 및 운송, 종교 및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이는 소가 농사에 이용되고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노동의 원천이자 재산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한편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교 설화에서 소가 불법의 수행, 윤회 등의 설명 맥락에서 등장하며, 생태와 관련한 신이한 현상이 국가적 흥망성쇠의 조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가 생활의 영역에서 정신, 관념, 문화의 영역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조에는 농본적인 정치 체제가 갖추어져 간다. 봉사와 교서에서 농사시기를 알리는 ‘土牛'가 언급되며, 칠석날 견우・직녀에게 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소는 고려 전기의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개성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尹彦頤에 관한 기록이나 郭輿의 작품에서 불교적 인생관, 도가적 정신지향의 표현에 소가 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자연스러움', ‘達觀', ‘無拘束', ‘不羈' 등의 의미 계열 속에 소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중기를 지나면서 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포착된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집권기에 활동했던 李奎報의 작품이다. 그는 소의 입장에서 소의 고통과 아픔을 대변하고 인간의 과욕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는 다시 목가적 정경의 구도 안으로 편입되고, 성리학 수용 이후 환로와 상대적 의미를 가지는 전원적 삶을 대변하게 된다. 한편 여말 새 왕조에의 협조를 거부하거나 은거를 택한 이들에게, 소는 自足이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을 가지며 등장한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면 출처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공간의 분화가 뚜렷해진다. 환로에 있는 이들에게 전원은 ‘멀고', ‘그립고',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환로/전원의 구도나 전원에의 동경으로 귀결되는 시상 전개는 관습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시인의 문제의식이나 처지의 문제가 개입되면서 그러한 경향을 극복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成侃의 시에 등장하는 牧牛는 ‘태고적 순수성'을 의미하며, 金時習의 시에서는 ‘일상의 권역에서 누리는 평온한 삶'을 상징한다. 한편 환로와 대척적인 지점으로서의 전원의 성격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성종 조문사들에게 두드러졌던 낙관적 세계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 모순이 누적되고 政爭이 격화되면서, 소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등장한다. 이것은 陶弘景의 二牛 故事와 관련을 가진다. 李滉은 도로 위의 분망한 소와 초야에서 한가함을 누리는 소의 대비를 통해, 자신이 지향 했던 退隱의 삶을 넌지시 내보이고 있다. 林悌의 글에 제시된 鄭碏의 소 그림도 은거의 가치를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소'의 제시는 세상에 대한 완곡한 거리두기이자 거절의 의사였다. 이우 고사의 전통선상에서 沈義의 <畫二牛賦>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긍정 일변도로 수용되던 이우고사의 소가 산중재상으로 탐심을 감추고 있던 도홍경에게 이용되었음을 증명한다. ‘소'의 형상이 정치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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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두(Pisum sativum)의 지역개체군 간 종자경실도 변이

          Chang Ho Kim(김창호) 한국생명과학회 2011 생명과학회지 Vol.21 No.6

          완두(Pisum sativum)의 종자 경실도(硬實度, seed hardness)와 관련한 지리적 경향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한반도 남부의 북위 34˚26'~38˚11' 사이에 위치한 10개 지역(춘성, 강화, 포천, 하동, 함안, 금릉, 영양. 보성, 고창, 남원)에서 수집된 지역개체군들을 대상으로 종자 내에 함유된 mannose와 galactose의 정량분석을 실시하였다. 각 지역별 mannose의 함량은 최저 5.962 ㎎/g (영양)에서 최고 10.351 ㎎/g (강화)의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Galactose의 지역별 함량 역시, 최고 19.314 ㎎/g (하동)에서 최저 7.050 ㎎/g (영양)에 이르는 다양한 수치를 보였다. 환경적응과 관련한 생태지표로서 종자의 경실도를 반영하고 있는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를 산출한 결과, 지역에 따라 0.66~0.94의 값을 나타내었다.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 서열과 함께 기후형 및 온량지수 등치선 등과 같은 지리적 기후구분에 대응하여 완두의 지역개체군들은 크게 중남부형(남원, 영양, 금릉, 고창), 중부형(춘성, 강화, 포천), 그리고 남부형(함안, 하동) 등 3가지 변이유형으로 구분되었고 이질적인 1개 지역개체군(보성)은 이 같은 유형구분에서 배제하였다.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에 관한 서열에 있어서는, 선행 연구된 야생종들과 비교하여 역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재배지역의 자연환경에 더하여, 재배식물로서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선발 등 인위적 도태압 또한 완두의 형질분화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의 결과들은 완두의 지역개체군들 간에 기후형과 연관된 뚜렷한 형질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는 식물의 미진화 현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증거의 하나로서, 종생태학적인 의의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In order to investigate the variations on the seed hardness of Pisum sativum distributed in southern area of Korean peninsula, 10 local strains (Choonseong. Ganghwa, Pocheon, Hadong, Haman, Geumneung, Yeongyang, Boseong, Gochang, Namweon), which located from 34o26”N to 38o11”N, were selected according to their latitudes and geographical distances. The seeds of these strains were collected and their contents of mannose and galactose were analyzed. Mannose contents in the seeds were variable in the range between the highest 10.351 ㎎/g (Ganghwa) and the lowest 5.962 ㎎/g (Yeongyang). The contents of galactose were also represented remarkable differences from 7.050 ㎎/g (Yeongyang) to 19.314 ㎎/g (Hadong). The local strains were classified into 3 variation types such as the south central type (Namweon, Yeongyang, Geumneung, Gochang), the central type (Choonseong. Ganghwa, Pocheon) and the southern type (Haman, Hadong) and 1 strange strains (Boseong) according to the geographical climatic type, isopleth of warmth index and the ratio of mannose to galactose, which indicate the hardness of seeds in Leguminosae, ranged from 0.46 to 0.94. The variation types are very significant genecologically as an evidence for microevolution related to natual and artificial selection in cultivated pl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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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lti-hole 전극에 의한 Ed-Drilling 가공성 향상

          김창호(Chang-Ho Kim) 한국기계가공학회 2012 한국기계가공학회지 Vol.11 No.5

          This paper describes the machinability of the sintered carbide and tool-die steel(STD-11) by electric discharge drilling with various tubular electrodes which have multi-holes. Various types of electrode which have different diameters and materials are used with the application of continuous direct current and axial electrode feed. Inner part of electrodes are inserted with smaller tubes or Y-channel or bar. In ED-Drilling, the dielectric flushed down the interior of the rotating tube electrode, in order to remove machining debris from the hole. As result of experiments, the bigger the diameter of the electrode is, the lower the material removal rate is. Machinability of copper electrode is higher than that of brass. In machining of sintered carbide, to use oil is better than distilled water as dielectric.

        • KCI등재

          팥(Phaseolus angularis) 종자에 함유된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에 관한 생태형적 변이

          Chang Ho Kim(김창호) 한국생명과학회 2011 생명과학회지 Vol.21 No.7

          종자 내에 함유된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에 따른 팥(Phaseolus angularis)의 생태형적 변이를 조사하기 위하여 한반도 남부의 북위 32°18'~37°51' 사이에 위치한 17개 지역(양양, 평창, 강화, 포천, 금산, 서천. 진천, 단양, 통영, 산청, 금능, 월성, 완도, 곡성, 옥구, 장수, 북제주)에서 각각 수집된 종자들을 재료로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을 분석하였다. Mannose함량에 있어서는 최저 6.488 ㎎/g (금산)에서 최고 17.071 ㎎/g (장수)까지 지역별로 다양한 수치를 보였다. Galactose의 지역별 함량 역시 9.477 ㎎/g (월성)으로부터 19.877 ㎎/g (장수)에 이르는 범위 내에서 폭넓게 나타났다. 기후환경에 대한 적응성과 관련하여 종자 경실도(硬實度, seed hardness)를 의미하는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의 경우, 지역에 따라 0.64~1.22의 값을 나타내었다, 팥의 17개 지역개체군들 가운데 주변 개체군들과 비교해 이질적인 4개 지역개체군(곡성, 양양, 포천, 금산)을 재외한 나머지 13개 지역개체군들은 mannose와 galactose의 함량비와 지리적 기후구분에 대응하여 크게 해안I형(완도, 옥구, 북 제주), 내륙형(장수, 월성, 단양, 금능, 평창, 산청) 및 해안II형(강화, 서천, 통영, 진천) 등 3가지 변이유형으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변이유형의 분화는 생육지별 자연환경조건에 적응적인 일반적 진화 경로에 더하여. 재배식물의 특성상 육종이나 기타 다양한 인위적 도태압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온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mannose와 galactose 함량비 자체의 다양성과 함께 식물의 미진화 현상과 관련한 종내 형질분화의 구체적인 증거로서 종생태학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In order to investigate the variations on the ratio of mannose to galactose in the seeds of Phaseolus angularis, 17 local strains (Yangyang, Pyeongchang, Ganghwa, Pocheon, Geumsan, Seocheon, Jincheon, Danyang, Tongyeong, Sancheong, Gumneung, Wolseong, Wando, Gokseong, Okgu, Jangsu, Bukjeju), which are located from 33°15'N to 38°11'N, were selected according to their latitudes and geographical distances. The seeds of these strains were collected and their contents of mannose and galactose were analyzed. Mannose contents in the seeds were variable, ranging from 17.071 ㎎/g at its highest (Jangsu) and 6.488 ㎎/g at its lowest (Geumsan). The contents of galactose also showed remarkable differences, ranging from 9.477 ㎎/g (Wolseong) to 19.877 ㎎/g (Jangsu). The local strains were classified into 3 variation types - coastal type Ⅰ (Wando, Okgu, Bukjeju), the inland type (Jangsu, Weolseong, Danyang, Geumneung, Pyeongchang, Sancheong) and coastal type Ⅱ (Ganghwa, Seocheon, Tongyeong, Jincheon), as well as 4 strange strains (Gokseong, Yangyang, Pocheon, Geumsan) according to the geographical climatic type and the ratio of mannose to galactose, which indicate the hardness of seeds in Leguminosae and ranged from 0.64 to 1.22. The variation types are very significant genecologically as evidence for microevolution related to natural and artificial selection in cultivated pl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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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太王陵 출토 연화문숫막새의 제작 시기

          김창호(Kim, Chang-Ho) 백산학회 2006 白山學報 Vol.- No.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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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s aims to presuppose the probable occupant of the Taewang-nung Tomb of the Koguryo period by examining some archaeological researches. The problem of the probable occupant of the Tomb can be closely related to the probable period of production of the roof tiles excavated in the Tomb. For this purpose, I compared the inscriptions of Taewang-nung(太王陵) engraved on the stone plate excavated in this Tomb with the inscriptions from the Kwanggaetodaewangbi, the stele in Joongwon area of Choongbuk Province, the inscriptions on the silver caskets excavated in the Seobong-chong Tomb, the inscriptions on the earthen pots excavated in the Howoo-chong Tomb of the Shilla period, and the inscriptions excavated in the Moduroo-chong Tomb. Lastly, I compared the oldest lotus design roof-end tiles excavated in the Taewang-nung Tomb with those excavated in the N0. 3 Tomb in Anak Area, the Mooyong-chong Tomb, and the Gakjeo-chong Tomb. As a result of this research, I judged that the probable period of production of the roof tiles excavated in the Taewang-nung Tomb may date back to A.D. 410s and thus that the Taewang-nung is the tomb of King Kwanggaetodae-wang of the Kogu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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