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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우크라이나의 축일과 기념일

        홍석우(Hong, Sog-U)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동유럽발칸연구소 2008 동유럽발칸연구 Vol.21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족정체성의 확립과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임무를 수행해 오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통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축일과 기념일등을 이용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존의 사회주의적 축일과 기념일을 없애고 새로운 통치 이념을 반영하는 축일과 기념일 및 의례들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것들을 상황에 맞게 바꾸었는가를 조사했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과거사의 문제를 청산하고 국가내 존재하는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축일과 기념일 연구를 통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축일과 기념일들은 시대와 체제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변화하는 문화적 실체이다. 둘째,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과거의 의례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 않았으며, 일정정도 과거와 현재 의례와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의해 소개된 새로운 의례는 새로운 우크라이나 민족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부여 받았으나, 그와 같은 의도가 새로운 축일과 기념일들을 통해 얼마나 대중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며, 대중들이 얼마나 호응을 해 가게 되었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따라서 정부주도의 의례문화의 형성과 민간 층에서 행해지는 실제 축일과 기념문화간의 관계와 괴리의 정도를 연구한다면 정부에서 주도해 나가는 민족정체성의 형성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his study attempts to show that contemporary Ukrainian authority uses holidays and commemorations as the means of nation-building in Ukraine. By analyzing how the post-Soviet Ukrainian state has revised holidays and commemorations, this study proves that we can see how the state restructures cyclical practice, the details of historical memory, and the perception of time. Ukrainian authority is actively shaping the daily lives of its citizens by attempting to foster cultural change. The author discusses many holidays, such as October Revolution Day, May Day, Independence Day, the reintroduction of religious holidays, and the impact of these commemorations on the dynamics of nation-building in Ukraine. This study shows that by replacing the original Soviet symbolism with an event centered on Ukrainian statehood and the Ukrainian historical experience, Ukrainian authority attempts to transform red anniversary' into a different one. Another key point of this study is that Soviet holiday does not completely disappear, but still exist in contemporary Ukraine. The manner in which Independence Day has been commemorated has come under criticism in the past several years. In 1998, 1999 and 2008, the festivities included a parade which featured an impressive showing of military hardware, soldiers from all branches of the armed forces, and marching athletes. Military might and athletic prowess, once a Soviet source of pride, are now included in celebrations of the Ukrainian state. With regard to the Ukraine state's reintroduction of religious holidays and their impact on nation-building, this study comments that while religion is clearly an important element in reviving traditions and fashioning a national culture, the role of the church in the process of nation-building thus far has been mixed. This study notes that religious festivities were not celebrated in the same collective way in the public realm and only by those who adhere to a particular faith, thereby lessening their impact on nation-building. However, recent event, "the 1020th Anniversary of Kievan Rus' Christening," proves that religious festivities can be also celebrated for the political purpose in the public realm. In reviewing the holidays discussed, this study shows that by using commemoration as a "fractured lens," one can see that the key fractures in society are not linguistically or nationally-based, but rather based on divergent.

      • Two Russian Nationalities

        홍석우(Hong, Sog-U)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12 동유럽발칸학 Vol.14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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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우크라이나는 ‘작은 러시아'(Malo Rosiia)로 불렸는데, 이는 제정러시아를 지칭하는 ‘위대한, 큰 러시아'(Velika Rossia)에 대칭되는 개념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독립된 민족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당연히 러시아와 같은 민족으로서 지역적 특색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헤르더의 낭만적 민족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지식인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독특한 민속문화와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문화와 역사를 재해석 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역사가이며, 민속학자, 사상가로 활동했던 미콜라 코스토마로브(Mykola Kostomarov, 1817-1785)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족성의 차이를 증명하려 노력했다. 민속자료에 근거하여 두 민족의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특성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미 키예프 루시시기로부터 민주주의적, 연방주의적 특성을 발전시켜왔다. 그는 ‘키릴과 메토디우스형제단'을 구성하여 민주-연방주의적 정치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두 개의 러시아 민족성” (Dve russkiia narodnosti)이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확실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다른 민족임을 주장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민속, 역사 연구와 정치적 입장에 입각하여 코스토마로브는 기존의 러시아중심적 역사관을 뒤엎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사관을 소개했다. 선사시대, 공후(키예프 루시)시대, 코자크시대, 코자크 이후 농민의 시대로 나누어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이 키예프루시의 정당한 후계자이며, 코자크시대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문화, 정치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 논문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역사관의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친 미콜라 코스토마로브의 학문적 입장, 역사서술의 방식, 의미 등에 대해 논의 하고 있다. Mykola Kostomarov (1817-1885) was a leading folklorist who attempted to connect folklore study with nationalist pursuits. Using folklore, he established the elements of Ukrainian national identity and reconstructed the past of Ukrainian people. Based on the outcome of his folklore study to identify national character, Kostomarov expressed his libertarian, Panslavic and religious ideals in Knyhy bytiia ukrains'koho narodu and declared political rights for Ukrainians based on the democratic-federalist principle. Moreover, in “Dve russkiia narodnosti,” on the basis of folkloristic and historical evidence, Kostomarov insisted that differing geographical and historical circumstances between Russia and Ukraine had resulted in different national characteristics for the two peoples. Kostomarov's endeavors to find national character based on folk materials were made to perform his two main goals: the creation of a Ukrainian identity and the re-creation of Ukrainian history. At that time, in fact, Ukraine did not exist as a state and Ukrainians were not regarded as a separate nation. Moreover, many aspects of Ukrainian life were in danger of being absorbed into Russian culture. Therefore, intellectuals such as Kostomarov felt it was necessary to turn to folklore, which was regarded as the only source, which reflected the lives of the Ukrainian common people, in an attempt to create a Ukrainian national identity as a shield against the absorption of Ukraine into Russia.

      • KCI등재

        한국의 동유럽학: 평가와 전망

        홍석우(Sog u Hong)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2016 동유럽발칸연구 Vol.40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한국내 동유럽학의 태동과 발전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본 연구에 따르면, 국내 동유럽학의 역사는 독일의 베를린장벽과 냉전체제가 붕괴되는 1989년을 전후하여 크게 4개의 시기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1) 냉전 체제시기 동유럽연구의 태동: 1989년 이전, (2) 동유럽학의 토대구축과 양적 성장기: 1989년부터 1990년대, (3) 새로운 방향의 탐색 및 도약기: 2000년대, (4)질적 성장을 위한 준비기: 2010년대. 본론에서는 시기별로 동유럽학의 특성과 과제, 한계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동유럽 연구는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한국과 동유럽국가들과 의 학문적, 문화적 관계발전에 이바지 한 것이 사실이다. 본 논문은 국내 동유럽학이 이루어낸 성과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앞으로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 origin and development process of East European Studies which have been conducted in South Korea. The history of East European Studies in Korea is examined in the following 4 time periods, starting from 1989 when the Berlin Wall came down: (1) The birth of East European Studies in South Korea: Before 1989, (2) Establishing the foundation of East European Studies in Korea: From 1989 through 1990s, (3) Searching for new direction and leaping for the next level: during 2000s, (4) Preparation period for the qualitative growth: during 2010s. This study attempts to investigate any special features of the East European Study of South Korea in each time period, examining its achievements, tasks and limits. Inspite of its relatively short history, the East European Study in South Korea made remarkable advances while Korean researchers and research/educational institute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mutual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East Europe. This study introduces the achievement of East European Studies in Korea and discusses about the tasks for futher development of East European Studies in Korea.

      • KCI등재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의 문화적 해석

        홍석우(Sog u Hong)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동유럽발칸연구소 2015 동유럽발칸연구 Vol.39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유로마이단'은 지난 2004년에 발생한 오렌지혁명을 잇는 새로운 저항운동으로서,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체결을 연기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자,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로 시작되었고 2014년 2월 18-23일 혁명으로 발전되어 기존 야누코비치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임시정부를 성립시켰다. 본 연구는 문화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을 분석하고, 대립과 갈등의 이면에 존재하는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측면을 찾아 볼 것이다. 유로마이단은 '갈등'과 '대립' 이면에 '소통과 축제' 및 '창작'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해왔다는 사실을 밝힐 것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포스터, 슬로건, 동영상 등의 자료는 본 소고의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다. A Ukrainian word "Maidan" means "square" or "plaza." A wave of demonstrations and protests took place in "Maidan Nezalezhnosti" (Independece Square), which is a central plaza of Kyiv. EuroMaidan started on the night of 21 November 2013 for closer European integration. The number of protesters on the EuroMaidan became larger than the "Orange Revolution" of 2004, reaching to nearly a million by December 8. Many Ukrainians desired to join the community of European nations and wanted a corruption-free democracy in Ukraine. The Euromaidan protests embodied their desire and made it possible to break the legacy of Soviet Union.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EuroMaidan from the cultural perspective, regarding it as a communicative, festival and creative space. Based on the video, picture, slogan, posters and other materials from Social Media, this study discusses that the EuroMaidan is the space not only where Ukrainians get information on the protests, but also where they motivate people and frame their protest claims. Also the EuroMaidan is the festival space where we can find carnivalesque worldview among people. At such times people become aware of the possibility of freedom from official power, and participate in the temporary illusion of complete liberty and celebration, equality and brotherhood. People in this space become so creative that they express their political opinions by using the form of folklore, popular culture and arts. Throughout this study, we can understand the dynamic cultural process in Ukraine during this revolutionary period.

      • KCI등재

        우크라이나의 문화상징: 자수와 루슈니키(Rushnyky)

        홍석우(Sog u Hong)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2017 동유럽발칸연구 Vol.41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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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수와 루슈니키(rushnyky)는 동슬라브민족들 사이에 넓게 퍼져있는 전통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있어 자수와 루슈니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마치 민족을 대표하는 문화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루슈니키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자수가 놓여진 루슈니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탄생과 풍요를 관장하며 신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본 논문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우크라이나 자수와 루슈니키의 기능과 역할, 자주 사용되는 모티프와 상징성 등을 고찰하고 그 속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염원과 희망, 세계관을 살펴보고 있다. Embroidery and Rushnyky are a traditional culture spread widely among the East Slavs. Nonetheless, for Ukrainians, they have a special meaning and are considered to be a cultural symbol representing Ukrainian nations. As the proverb says, The house without Rushnyky is not a house, the embroidered Rushnyk is an essential part of the Ukrainian life, protecting them, managing the birth and abundance, mediating communication with God. This paper examines not only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Ukrainian embroidery and Rushnyky, but also motifs and symbolism that are frequently used, and examines the aspirations, hopes, and worldviews that the Ukrainians wanted to express 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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