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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군 구림리 세시놀이의 전승양상과 의미 : Centering on Cases of the Fried-flower Cooking and A Tug-of War in Gu-rim, Yeongam County 화전놀이와 줄다리기를 중심으로

        표인주 전남대학교호남문화연구소 2001 호남학 Vol.28 No.-

        The fried-flower cooking play is conducted in March 3 every year. This folk play is held in a liberated place from being in daily life and to get energy for an energetic life. It is a kind of folk play for women in our men-centered society and to strengthen the ties among women. A tug-of-war play is generally held in the 15th of the first lunar month of January. Then the residents make a rope as a symbol of the 'dragon' and that go around with the rope on their shoulder from the neighborhood to fields. In particular, going around with the rope means to go about with the dragon god. The folk play grew out of praying for everlasting water and a good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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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곡리의 민속과 구비 문학의 현장론적인 실태와 변동 요인

        표인주 전남대학교호남문화연구소 1999 호남학 Vol.27 No.-

        The changes in the custom of times and seasons are due to the variations of the style of production and the changes of living patterns. And the custom of passages has been greatly transformed because of the changing life style and the development of medicine. The folk songs have mostly disappeared,as the agricultural method and the farming tools have developed. And narrative are in danger of discontinuation because of the lack of the performing opportunities and p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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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축제의 영상도식과 은유체계의 이해 -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를 중심으로

        표인주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9 한국학연구 Vol.68 No.-

        The ritual sacrifice (dangsanjae), which is continued in the modern society, places more emphasis on the economic value over the realization of religious value. This phenomenon will spread over the nation and will be accelerated. Whereas the dangsanjae in Saengcheon-ri is a ritualistic event for the village god, jisinbapgi is a pungmulgut to appease the house god and the tug-of-war connects the dangsanjae and jisinbapji. The tug-of-war is the event which realizes the sense of community, which is why this study attempted to understand the dangsanjae, tug-of-war, and jisinbapgias a single village festival. In conclusion, the village festival in Saengchon-ri consists of the dangsanjae, which serves as a means of communication between the gods and human beings, the tug-of-war, which connects people to people, and jisinbapgi, which connects families to families. Such events constitute the religious ceremony to pray for abundant crops and the peace in the village, but this village festival could also be interpreted as a cultural ceremony which realizes the sense of community based on the unity between humans and gods (enthusiasm) as well as the integrity among human beings. 현대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는 당산제가 농사의 풍요나 마을의 안녕이라는 신앙적인 목표, 즉 종교적 가치는 약화되고, 공동체정신을 계승하려는 공동체행사로 진행되거나, 경제적인 도구의 하나인 상품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가치 구현보다도 경제적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타날 것이며,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생촌리의 당산제가 마을신을 위한 제의적 행사라면, 지신밟기는 가택신을 위무하는 풍물굿이고, 줄다리기는 당산제와 지신밟기를 연결한다. 줄다리기야말로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당산제, 줄다리기, 지신밟기를 하나의 마을축제로 이해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촌리의 당산제는 시간(제일), 인간(제관), 공간(제당-신)으로 구성된다. 먼저 제사 지내는 시간은 연결 도식과 수직성 도식에 근거하여 마을사람들과 마을신의 만남을 결정하고 가정의 공간적인 통합, 그리고 인간과 신의 일체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제관은 연결 도식에 근거하여 마을의 대표성을 지닌 존재이며, 항상 정화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로 제당은 수직성 도식에 경로 도식과 반복 도식이 덧씌워져 그것에 근거하여 마을신과 마을사람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면서 마을신의 영험성과 신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고, 신앙적인 의도와 결과를 확인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차단 도식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릇 도식이 덧씌워져 행해지는 금줄치기와 황토놓기는 제당을 완벽한 정화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의도임을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사 내용으로서 제사음식은 과정 도식에 근거하여 지극 정성으로 준비되며, 제사절차에서 핵심적인 것은 독축, 음복, 헌식이다. 독축은 경로 도식에 근거하여 인간이 소망하는 내용을 신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음복은 연결 도식에 근거한 인간과 신의 접촉이며, 헌식은 중심-주변 도식에 근거한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제사절차이다. 결론적으로 당산제는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적 행사이지만, 마을의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집단적 행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촌리 줄다리기는 연결 도식과 경로 도식을 근거로 줄을 제작하고 줄 메고 돌아다니며, 음양 도식에 근거하여 줄을 결합하고, 힘의 구조인 흡인 도식에 근거하여 줄다리기의 승패를 결정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묶음과 풀다 도식에 근거해 줄감기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면 생촌리 줄다리기는 마을의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민속놀이지만,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촌리의 지신밟기는 힘의 구조에 따른 강제 도식/흡인 도식과, 과정 도식/경로 도식/연결 도식에 근거하여 기호적 경험으로 확장된 가정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풍물굿이지만, 마을의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민속놀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생촌리 마을축제는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방식으로서 당산제, 인간과 인간의 연결로서 줄다리기, 가정과 가정의 연결인 지신밟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교적 행사이지만, 인간과 신의 일체성(신명성),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통합성을 토대로 한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문화행사라고 해석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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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석의 신앙성과 서사적 의미 확장

        표인주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0 용봉인문논총 Vol.36 No.-

        암석은 기본적으로 천신의 강림수단으로서 신성성과 영험성을 지니게 되고, 그로 인해 암석은 다양한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암석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가 바로 암석신앙이다. 암석이 생생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풍요를 기원하는 성선앙의 대상이 되었고, 이것은 남근숭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 기자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기자선앙은 근본적으로 성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성신앙과 기자신앙은 종교적인 목적이 풍요와 생산이지만, 칠성선앙과 거북신앙은 다소 복합적이다. 즉 칠성신앙은 기자신앙과 더불어 인간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고, 거북신앙은 풍요, 기자, 수명장수, 재복을 기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것들이 개인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마을 공동체 단위로 수행되기도 한다. 마을신앙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 등을 기원하기 위한 대상으로 암석을 신체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개는 자연석보다는 인공적으로 가공된 암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령 입석, 조탑, 석장승, 돌로 된 짐대 등이 그것이다. 암석이 신앙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서사적인 이야기도 생성되었다. 암석설화는 주로 암석을 증거물로 삼고 있는 이야기로서 전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암석의 유래를 설명하거나 암석신앙과 관계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화이기도 하다. 암석설화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은 성선앙, 기자신앙, 용선신앙, 마신앙, 미록신앙, 칠성신앙, 거북신앙, 마을신앙 등 신앙과 관계된 전설들이다. 이러 한 것이 토대가 되어 생산과 관계된 전설이 생성되거나 사랑과 관계된 전설들이 생성되었다. 나아가서 실제 생활과 관계된 다양한 전설이 생성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암석의 서사적인 의미가 기본적으로 암석이 갖는 항구성과 생산성을 토대로 1차적으로 신앙적인 의미를, 2차적으로 생산 및 연정적인 의미를, 3차적으로 생활사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점차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암석은 고대로부터 신앙 및 서사적인 의미가 축적되면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서사민속문화로 자리잡아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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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음식의 기호적 전이와 문화적 중층성

        표인주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7 호남학 Vol.0 No.61

        Skate foods spread out from Heuksando Island to Yeongsanpo, to Jeolla province and the entire regions in Korea because of physical experiences of food culture which are historical events and social change. The sign content of skate foods has been influenced by placeness, regionality, political nature and festivity related to the environment, histories, cultural conditions and change. Skate food is originated from ‘Hongeojesuk’ which is traditionally passed down in Heuksando Island. Skate foods have been spreading out through various cuisines such as ‘Seasoned Skate’, ‘Hong-O Ae-gook’, ‘Hongeo Samhap(Fermented Skate and Steamed Pork Slices Served with Kimchi)’ and so on. Skate foods have cultural duplicity. ‘Hongeo Joe(Sliced Raw Skate)’ was most basic and common cuisine of skate foods. It has been transformed not only by a variety of changes of physical experiences but also experiences of skate foods. And the result is ‘Braised Skate’, which is regarded as the most developed cuisine of skate foods. 홍어음식이 흑산도에서 영산포로, 영산포에서 전라도 및 전국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음식문화의 물리적 경험 영역인 역사적인 사건과 사회적 변화가 크게 작용하였다. 영산포는 흑산도 인근 영산도 사람들이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피해 이주하여 정착한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고, 영산도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홍어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산도 사람들이 영산강 유역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홍어음식을 접대음식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음식이 영산포로 연결되는 도로와 철로가 개통되면서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전라도 내륙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교통시설의 발달과 산업사회의 생업환경의 변화는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을 가속화시켰고, 그에 따라 음식문화 또한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라도 지역 농촌인구가 광주를 비롯한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지식정보산업사회는 지역의 경계와 국경은 물론 민족을 초월하여 지구촌의 시대를 열게 하였으며,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해 공산품이나 농산물, 수산물 등 다양한 생산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홍어음식의 물리적 경험의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섬지역(흑산도)→농경사회(영산포)→산업사회(광주 및 수도권)→지식정보산업사회(전국화 및 지구촌화)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기호적 전이란 동일한 것에 그 경험의 관점에서 기호내용이 사상되어 마치 복제물처럼 다른 기표를 발생시키거나, 동일한 기표에 다른 기호내용을 갖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 기억의 변화는 인간의 신체/물리적 경험의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처럼 홍어음식의 기호내용이 환경, 역사, 문화적인 조건의 변화와 관련된 장소성, 지역성, 정치성, 축제성에 따라 변화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먼저 홍어음식이 흑산도에서 영산포라는 장소성의 이동에 따라 섬지역의 음식이 농경사회 공동체의 잔치음식으로, 두 번째로 홍어음식의 지역성과 정치성에 따라 전라도를 상징하는 지역음식과 정치적인 음식으로, 세 번째로 홍어음식의 축제적 활용에 따라 기호음식이라는 기호내용의 전이가 이루어져왔다. 이처럼 홍어음식은 신체/물리적 경험의 변화를 토대로 홍어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다성성, 홍어음식이 갖는 개념의 혼종성, 기호내용의 변화가 기호적 전이과정을 통해 기억되면서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홍어음식이 <잔치음식→정치적인 음식→기호음식>이라는 시간적이며 공간적인 총합적 기호적 전이를 통해 지속되고 있고, 홍어음식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쌍방간의 소통구조 속에서 생산자보다도 소비자 중심으로 이동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어음식의 원초적인 근원은 흑산도와 다물도에 전해지는 ‘홍어제숙’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흑산도의 홍어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말린 뒤 쪄서 먹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영산포에서는 발효시킨 홍어를 날 것으로 먹었거나 찜으로 먹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로 손님들의 접대음식으로 홍어는 회와 무침으로, 가오리는 무침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음식의 선호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전남의 동부 여수, 순천, 광양, 곡성, 구레, 보성, 고흥이 가오리음식문화권으로 알려져 있고, 홍어음식문화권은 영산강과 호남선을 통해 전라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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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문학의 체험주의적 해석 필요성과 의미

        표인주 한국언어문학회 2019 한국언어문학 Vol.108 No.-

        The research on oral literature has mainly been focused on historical geography, structuralism, and field research, the methods of which have been used together or combined, rather than being substituted. An empirical reading of the feng shui tale of Kim Dueok Ryeong, this study first found that the narrative structure of this story was to justify the steps the master took to obtain a propitious site. Second, the imaginary structure of this story shows that the feng shui tale of Kim Dueok Ryeong showed the importance of the values in the real life through the process of obtaining the propitious site. The narrative memory of oral narrative literature continues mainly through the changes in symbolic experiences, which leads to the formation of the symbolic horizon. The genealogy of signifiers could be understood through the symbolic horizon because various occurrence of signifiers form the symbolic horizon. The symbolic transition in oral literature continues, basically for the vitality of the symbols. Severing the symbolic transition signifies the extinction of a symbol, which leads to a severance of th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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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판소리의 전승실상과 특징

        표인주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2014 南道文化硏究 Vol.0 No.27

        순천 판소리의 역사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순천 판소리의 전승실상을 파악해보고, 그것을 토대로 전승적인 특징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먼저 순천 판소리의 형성과 발전에는 ①순천은 15세기 초에 순천도호부로서 정치군사적 중심지이었다는 점, ② 순천은 장시가 발전한 경제적인 유통공간이었다는 점, ③순천에서 활동한 신청과 권번이라는 민속예술적인 배 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 ④순천이 전남 동부지역의 교육적 중심공간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 등 역사문화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을 토대로 순천 판소리의 전승 실상을 ①순천 판소리 초창기의 오끗준과 김질엽, ②순천 판소리 형성에서 송만갑의 역할, ③박봉술과 소리선생, ④순천 판소리 계승자로서 소리꾼으로 나눌 수 있다. 순천 초창기의 판소리를 오끗준과 김질엽을 중심으로 보면 동편제 소리로서 <춘향가>와 <수궁가>가 널리 불리 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소리를 계승하는 제자들이 불분명하여 그 음악적인 실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 기 어렵다. 그래서 순천 판소리의 면모는 송만갑의 역할을 통해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송만갑은 많을 제자를 배출했지만, 순천과 인연을 맺고 있는 명창으로 가야금병창 오태석을 비롯해 박초월ㆍ김 연수ㆍ박봉술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송만갑을 중심으로 송문 일가의 판소리를 계승하고 있다. 오태석은 20세 무렵 1918년부터 1921년경에 낙안에 머물렀던 송만갑에게 판소리를 익혔고, 박초월은 <춘향가>ㆍ<흥보가>ㆍ< 심청가>를, 김연수는 <흥보가>와 <심청가> 전편을 송만갑에게 배웠다. 특히 김연수는 순천에서 동편제를 익혔 고, 박봉술과 창극단활동을 하면서 순천 판소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송만갑 못지않게 순천 판소리 발전에 기여한 소리꾼으로 박봉술인데, 순천에 정착한 것은 해방 후로 알려져 있 고,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순천국악원의 소리선생으로 있으면서 성창열ㆍ선동옥ㆍ박정례 등을 배출했으며, 순 천지역을 중심으로 순흥극단을 조직하여 주광덕ㆍ공기남ㆍ배금찬ㆍ박정례ㆍ선농월ㆍ박향ㆍ성창렬ㆍ성옥란 등 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박봉술은 박정례를 중심으로 성창렬ㆍ선동옥ㆍ선농월 등의 제자들을 배출하여 순천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순천 판소리는 송흥록ㆍ송만갑ㆍ박봉술을 중심으로 계승되고 있지만, 서편제와 보성제의 소리가 혼합되어 계승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동편제 소리의 계승은 송순섭ㆍ김향순ㆍ주순자ㆍ성판수ㆍ박미홍ㆍ김영애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편제와 보성제가 혼합된 판소리는 전옥순ㆍ염금향ㆍ황철환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보성소 리는 김몽석과 주순자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천 출신으로 보성 소리를 계승하고 있는 소리꾼으로 주소연과 박지윤을 들 수 있다. 순천 판소리의 특징을 창자와 유파, 그리고 텍스트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살펴 볼 수 있는데, 먼저 판소리 창자 및 유파에 따른 특징으로, 동편제는 송흥록-박만순-오끗준의 계열과 송흥록-송광록-송우룡의 계열이 있고, 송 우룡 계열은 다시 송우룡-송만갑 계열과 송우룡-유성준의 계열로 나누어진다. 보성제는 정응민-성우향의 계열 이 있지만, 순천 지역 출신의 명창들은 거의 대부분 동편제 창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 순천에 는 동편제가 중심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성제의 전승도 확대되고 있는데, 본격적인 전승은 염금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순천 판소리의 특징을 텍스트 계승에 나타난 것을 토대로 파악할 수 있는데, 순천 판소리는 동편제 소 리로서 송만갑의 <춘향가>ㆍ<적벽가>와 유성준의 <수궁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순천에서 송만갑과 유성준 의 소리를 모두 수용하고 있는 명창이 박봉술이기 때문에 <적벽가>가 대표작인 그를 순천을 대표할 수 있는 소 리꾼이라 할 수 있다. It is the truth that the background of folk arts in Suncheon and the fact that Suncheon was the center of politics, the military, economic distribution and education had a huge effect on the advent and development of the Suncheon Pansori. The transmission state of Suncheon Pansori is divided into four parts: O Kkeut Jun and Kim Jil Ueop were prelavent in the early Suncheon Pansori; the role of Song Man Gab in the advent of Suncheon Pansori; and Park Bong Sul and Sori-Sunsaeng and singer as successor of Suncheon Pansori. Suncheon Pansori was succeeded mainly by Song Heung Rok, Song Man Gab and Park Bong Sul but also by a combination of Sopyonje and Boseongje. One of the characteristics is that Dongpyonje has two lines of Song Heung Rok - Park Man Sun-O Kkeut Jun and Song Heung Rok. The Song Gwang Rok-Song Woo Ryong and Song Woo Ryong line is separated into the Song Woo Ryong- Song Man Gab line and the Song Woo Ryong-U Seong Jun line. It is the characteristic that Boseongje has the Jeong Eung Min-Seong Woo Hyang line but almost all master singers from Suncheon follow the singing style of Dongpyonje. Suncheon Pansori is Sori of Dongpyonje and the representative songs are <Chunhyangga> and < Jeokbyeokga > by Song Man Gab and < Sugungga> by U Seong Jun. It is possible to say that Park Bong Sul is the representative Master singer of Pansori in Suncheon because he accepts both the Sori of Song Man Gab and U Seo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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