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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경북지역 낙엽송 지위지수 적합성 평가에 관한 연구
이대성 ( Dae Sung Lee ),이의섭 ( Eui Sub Lee ),최종현 ( Jong Hyun Choi ),서영완 ( Yeong Wan Seo ),최정기 ( Jung Kee Choi1 ) 한국임학회 2014 산림과학 공동학술대회 논문집 Vol.2014 No.-
본 연구는 강원 및 경북지역의 낙엽송 지위지수의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연구자료는 강원 및 경북지역의 45개 낙엽송 인공림 표준지 조사로부터 우세목 1본을 선발하여 수간석 해를 통해 분석되었다. 산림청에서 개발된 지위지수표에 의거하여 본 연구대상지의 지위지수를 산정한 결과, 지위지수가 18 이하로 낮은 지역은 8곳(18%)이었으며, 지위지수가 20 이상으로 우수한 지역이 37곳(82%)으로서 대부분 지역에서 지위지수가 우세하였다. 지위지수곡선의 적합도를 평가하기위해 수간석해목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수고생장에 따른 지위지수의 변화를 도시한 결과, 초기 임령 때 지위지수와 차이가 없는 곳은 단지 8지역(18%)이었으며, 지위지수가 2∼4 m 차이가 발생한 지역이 19곳(42%), 6 m 이상 발생한 지역이 18곳(40%)으로 나타났다. This study was performed to evaluate the compatibility of site index for Larix kaempferi in Gangwon and Kyeongbuk regions. The data were collected and analyzed from stem alalysis of one dominant tree at each of 45 permanent plots installed in the regions. The result of site index estimation following the site index table developed by Korean Forest Service (KFS) showed that 8 plots (18%) were less than site index 18 and 37 plot (82%) greater than site index 20. Height growth changes of stemmed trees until present were illustrated in a graphic form to evaluate the compatibility of site index curve. The result showed that only 8 plots (18%) did not show any change of site index as trees age, 19 plots (42%) fluctuated in 2∼4m and 18 plots (40%) over 6m.
최종현(Choi, Jong-Hyun)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6 서울학연구 Vol.- No.63
고려의 간선도로망과 역참제도는 12목 제도와 더불어 성종 시기(재위 981-997)에 정립되었으며 개경과 남경 사이를 오가던 간선도로는 ‘청교도(靑郊道)’에 속하는 대로였다. 고려시대 남경에 궁궐이 조성되면서 수도 개경에서 남경으로 향하는 청교도 상의 노정에 변화가 생기고 이전에 양주로 접근하는 두 갈래 길이 대로로 정비되면서 동대로와 서대로가 조성되었다. 왕실의 순행 목적에 따라서 노정은 선택적으로 이용되었는데 피난 등 급하게 움직일 일 때에는 직로(直路)가 불렸던 서대로가 이용되었다. 개경을 출발하여 청교역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고 도솔원, 광탄원, 분수원, 혜음원, 벽지역, 덕수원, 영서역을 지나 장의문을 통과하여 홍제원에 이르는 노선이다. 반면 개경에서 남경으로 왕실의 의전 행차가 있을 때에는 비교적 평탄한 길로 이어진 동대로가 주로 이용되었다. 마산역에서 동쪽으로 향해서 차유령을 넘어서 견주 치소, 녹양역, 해촌을 지나 노원역, 남경역, 남경으로 이어지는 노정이었다. 고려의 간선도로망과 역참제도는 조선이 개국하면서 변했다. 고려 남경 시기의 역원들이 재편되어 일부 역은 양주목 관할하에 배치되면서 그 위상이 격상되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했으며 한양부 관할 하에 역 이름 개가 새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 사신을 위하여 직로(서대로) 상의 사신들 노정에 있던 절을 원으로 고쳐 홍제원이 조성되었으며 흥인문 동쪽 5리 되는 곳에 기로와 재추들을 위하여 보제원이 설치되었다. 결과적으로 고려시대의 청교도는 와해되었으며 이때 남경역은 그 명칭이 사라졌다. 더불어 고려시대 의전으로 이용되던 동대로는 그 기능과 역할이 크게 바뀌었다. 조선시대 후기-인조대부터 왕실의 능들이 많이 조성되었으며 그에 따라 능행로가 조성되었다. 파주에 장릉이 조성되면서 이전 서대로 구간 일부에 능행을 위한 갈래길이 새로 조성되었으며 영조대에는 장릉을 파주에서 교하로 천장하면서 고려시대 서대로와는 별개로 완전히 새로운 능행로가 조성되었다. 새로 조성된 노선들이 서로 만나는 결절 지점에 있는 원(院), 신원(新院)이 수시로 이용되었다. 고려시대 남경유수관 양주 관할 하에 설치되었던 견주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하나의 현으로 양주에 속했다가 이후 해체·흡수되면서 사라졌다. 견주는 충숙왕 때에 덕비(德妃) 홍씨로 인해 고려사에 나타나고 조선 태종실록에도 등장하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발해가 멸망하면서 거란족을 비롯하여 여진족, 몽고족, 한족이 고려에 귀화해왔는데 그들의 일부가 견주에 정착해 살았다. This studies is on the (re)forming and change of paths(roads) and stations between Gaegyung(開京-the capital city of Corea dynasty) and Namkyeong(南京) from Corea dynasty to Joseon dynasty. Many stations had accomodations of staying and eating on the road of Cheonggyodo(靑郊道) which was the main path between Gaegyung and the other southern areas. Seoul was called Namkyeong where royal palace was built in Corea dynasty. Many famous buddhist temples had been constructed in the Mountain of Samgaksan near Namkyeong. The two roads(East and West road) were made to go to Namkyeong from Gaegyung for many kings to visit the royal palace or buddhist temples in Corea dynasty. West road was made to move the royal shrine of the first king of Corea dynasty to the Mountain of Samgaksan(三角山) urgently during the war and was called straight course. East road was constructed for the king’s ceremonial visit to Namkyeong since the royal palace was built there. At the beginning of Joseon dynasty, the station system of Corea was changed and Cheonggyodo was deconstructed. West road was used for royal envoy to go to Ming dynasty from the new capital city, Seoul and the status of East road was changed. The name of Namkyeong station in East road disappeared and the names of some stations in West road were chan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new paths were made in the some part of West road when many royal tombs were constructed in the north of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