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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源極을 통해서 본 1910년대 陽明學 이해의 특징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3

          이 논문에서는, 아직 학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명학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보이는, 金源極(1871-1927)을 통해서 그가 ‘유교 이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이자 근대적 학술이 본격 유입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양명학’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원극에 대한 소개는 서경석ㆍ김진량 엮음의 『식민지 지식인의 개화 세상유학기』, 최재목의 「日帝强占期 雜誌를 통해서 본 陽明學 硏究의 動向」, 금장태의 『한국 양명학의 쟁점』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고, 본격적인 연구에 이르지는 못했다. 김원극은 그는 함경남도 永興郡 출신 유학자로, 松南, 春夢, 春夢子, 松南春夢 등의 필명을 사용하여 1908년부터 『西北學會月報』, 『太極學報』, 『大韓興學報』 등에 많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태극학보』에는 주필로 활동하였고, 西北學會에서는 副總務로 활동하던 중 1909년(明治四十二年) 11월 11일 伊藤博文 被擊事件 嫌疑者로서 眞相調査를 받았으며 1910년에는 朴殷植에 이어 『서북학회월보』의 주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1934년 11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학과 경제학을 겸비한 정치객이었던 바 그 외에도 문맹퇴치에도 노력하여온 드문 지사이었던 바 지난 소화 2년 8월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김원극은 유교를 1910년대 당시의 서세동점,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현실에 맞도록 근대적, 실천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의 개혁적 특성은 이태리 건국 삼걸의 강조하고 그러한 기풍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계몽할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 데에서, 아울러 유교를 서구 기독교에 대항할만한 근대적 콘텐츠(교리, 텍스트 등) 및 종교적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 바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수구적 보수 유림들과 사고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김원극은 박은식의 대동교 정신에 동조하는 유교 개혁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유교의 본질은 계승하되 구체적 내용들은 한국의 지금ㆍ여기에 맞는 ‘時中’의 유교를 지향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는 유교가 새로운 체제로 개혁하고 나아가서 利用厚生 및 국민ㆍ청년계몽이라는 세계사적 문명에 발맞출 수 있는 학술이어야 함을 적극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유교에 대한 관점은 그대로 양명학 이해에도 적용된다. 김원극의 양명학 이해는 「明代諸儒의 學說」과 「王陽明學論」에 잘 드러나 있는데, 먼저 「明代諸儒의 學說」에서는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은, 「王陽明學論」에서는 양명학이 나의 정신을 번롱하여 단순히 悟道를 주안으로 한 禪家와 다름을 지적하고 ‘人倫交際의 道’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각 학술은 그 세부적 특성을 유지하지만, 큰 틀에서는 합치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王陽明學論」에서는 근대학문의 한 장르인 ‘倫理學’으로서 양명학을 이해하는데 큰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은 아마도 1908년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얻은, 당시 일본에서 유포되고 있었던 최신의 양명학 지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근대적 학술체계로 전통사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양명학이 근대적 학문에 어울리는 특징이 있음을 평가하고자 했음을 인정해도 좋겠다. 김원극이 구상한 「倫理?」으로서의 양명학은 주체성과 능동성을 갖고 있으면서 ‘人倫交際의 道’로서 실제 사회에서 실용성을 갖춘, 化學ㆍ物理學ㆍ金石學ㆍ地質學등의 제 학문과 대등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인륜의 학문’(=윤리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1910년대의 한국에서, 외국의 신지식을 수용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양명학을 근대적 학술로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이 당시의 여러 양명학 연구가와 비교해 볼 때 큰 특징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This study focus on Kim Wongeuk(金源極. 1871-1927)’s Yangmyonghak(陽明學), especially, through reexamining his the famous two articles, Myongdaejeuhakseol (the Neo-confucian’s theories in Ming dynasty of china. 明代諸儒의 學說) and Yangmyonghakron(Essay on Yangmingxue. 王陽明學論). Kim Wongeuk is a man unknown to fame to us till now. But his Yangmyonghak (陽明學),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in modern korea, is very important to know what is the characteristic of Modern Korea. He studied at Japan for a number of years, and so he had many information about Modern knowledge on sciences and academism in Japan. Based on this, I think, most of his knowledge on Yangmyonhak(陽明學) is also from modern japanese academic, scientific research information, such that modern japanese youmeigaku (Yangmyonghak, 陽明學) by Inouetetsujirou(井上哲次?)’s Youmeigaku-notetsugaku(陽明學派之哲學), Takasetakejiro(高?武次?)’s Ouyoumeisyouden(王陽明詳傳), and the Youmeigaku(陽明學) edited by Higasikeiji(東敬治). The most korean thought’s knowledge and action in Yangmyonghak(陽明學) are from these modern japanese. Kim Wongeuk try to define Yangmyonghak as Oriental ethics. And he think the Yangmonghak is one with the Buddhism. His the definition and interpretation on Yangmonghak are does not correspond with the original. an orthodox method. Most people in Joseon dynasty and modern Korea criticize the Yangmyonghak are very like with Buddhism, but it is a distinguishing mark that Kim Wongeuk take an active a point of view the two are fusing with.

        • 1930년대 조선학(朝鮮學) 운동과 ‘실학자(實學者) 정다산(丁茶山)’의 재발견

          최재목(Choi Jae-Mok)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다산과현대 Vol.4,5 No.-

          This paper is study on the meaning of rediscovery of Dasan Jeong Yak-yong in 1930"s japanese imperialism era of modern korea. In 1935,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as a moment, begin the movements of Josonhak(Joseon Studies) that is entirely different as before. The Josonhak means that is one of the indigenous, traditional, characteristic studies for Korea, by and of the korean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Josonhak, starts area studies in the beginning, for example in Choi Nam-seon, but it becomes to be different much in the period of movements of Josonhak.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publish a slogan Dasan Jeong Yak-yong who is the most prominent figure succeed to the intellectual line of Silhak from Bangye Yu Hyong won and Sungho Lee Ik, in the Joseo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y can appropriate a new view point for nation and world in Jose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The other hand, Dasan Jeong Yak-yong" Silhak inherit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heritage Sil(實), Silsim(實心) in korean Yangmyonhak. We can see the process of intellectual move from Yangmyonhak to Silhak. By this they seeks the best way of their own"s against the cultural, intellectual violence of imperialism under that situation. The Josonhak movements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so to speak, grope in the dark between nation and world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 KCI등재

          범부(凡父) 김정설(金鼎卨)의 『풍류정신(風流精神)』에 대한 검토

          최재목(Choi Jae-Mok),정다운(Chung Da-Un)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9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20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tudy thought of Kim, Jeong-Seol. His thought appeared to his hook An Liegant Spirit(『風流精神』). An Llegant Spirit(『風流精神』) was made after he died, and it was called His main text with A story cf The Flower Man(『花郞外史』). This hook has a different writing 4 papers. The papers are The Flower Man(「花郞」), A though of Choe, jae-woo(「崔濟愚論」), A though of Yin and Yang(「陰陽論」), Chweseong Kim si-seup 「贅世翁 金時習」). And as well as the purpose of these papres, there are different form. However, the core of this article is 'The Harmony(調和)'. This 'The Harmony(調和)' is read again in today's life history It is difficult to find his thought through 『An Llegant Spirit(風流精神)』. But the new approach to text is needed

        • KCI등재

          동아시아에서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이 갖는 의미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5 陽明學 Vol.- No.13

          이 논문에서는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 1649~1736)가 동아시아 양명학사에서 갖는 위치를 몇 가지로 짚어보면서 그를 재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한국 양명학을 거론할 경우 하곡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곡은 그 이전의 양명학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양명학에 대한 폭넓고도 체계 적인 연구, 그리고 양명학적 입장에서 행한 경전 해석 등을 통해서 한국 양명학을 집대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양명학은 그가 강화도에 은거함으로써 시작되는 강화학파(江華學派)에 의해 전승되고, 나아가서는 근현대기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유전된다. 좀더 시야를 넓혀서 말하면, 그는 「양지체용도(良知體用圖)」 등에서 보여지듯이 양명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동아시아의 양명학 지형도(知形圖)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 논문에서는, 하곡의 양명학을 연구할 경우 주의해보아야 할 것들이 매우 많지만, 그가 개척한 사상적 지평의 의미를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짚어보고 있다. 첫째, 한국양명학의 집대성자 및 ‘강화학파’의 창시자로서의 하곡 둘째, 양자(良知), 치양지론(致良知論)에서 보여지는 사상적 특질과 의의 셋째, 자연학(自然學)의 개척

        • KCI등재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잡지(雜誌)를 통해서 본 양명학(陽明學) 연구(硏究)의 동향(動向)

          최재목 ( Jae Mok Choi ) 東洋哲學硏究會 2008 東洋哲學硏究 Vol.55 No.-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잡지에 발표된 양명학 자료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신문에 발표된 자료와 더불어) 잡지에 발표된 자료는 모두 일제강점기 우리 학술의 독자적인 토대를 형성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이 논문에서는 기타 자료의 형태로 종래 필자의 연구에서 빠진 자료 두 건, 즉 지재의 「양명학설」(≪매일신보≫(1917. 7. 17))과 해악 김광진의 『해악문집』에 나타난 양명학을 제시하였다. 일제강점기 잡지를 통해서 본 양명학 연구의 동향은 주로 일본에서 이루어진 양명학의 근대적 연구 성과나 일본 양명학의 의의를 소개함으로써, 한국적 상황에서 양명학이라는 학문 장르를 홍보하고자 하였다. 일본 양명학의 소개와 홍보는 주로 실제적, 실천적 특성의 강조였다. 이것은 당시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전통 유학, 구체적으로는 주자학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아울러 일본이 이룩한 메이지 유신처럼 우리도 새로운 학술 사조에 의해 새로운 사회의 기풍을 만들어 일제의 강점기를 벗어나야한다는 독립을 향한 계몽적 의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This is an introduction on Yangmyonghak(陽明學) on the journals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in modern korea. And with it, I also introduce the theory of Yangmyonghak in Jijae(至齋) Yangmyonghakseol(陽明學說) and Haeak`s Haeakumunjib(『海岳文集』). Through these journals ets, we can see what are a striking differences of Yangmyonghak(陽明學)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in modern korea. It is from modern japanese academic, scientific research information, such that modern japanese youmeigaku(Yangmyonghak, 陽明學) by Inouetetsujirou(井上哲次郞)`s Youmeigaku-no-tetsugaku(陽明學派之哲學), Takasetakejiro(高뢰武次郞)`s Ouyoumeisyouden(王陽明詳傳), and the Youmeigaku(陽明學) edited by Higasikeiji(東敬治). The most korean thought`s knowledge and action in Yangmyonghak(陽明學) are from these modern japanese. And so they copy it and practice faithfully in korea, moreover they enlighten the public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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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咸錫憲과 陽明學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2 陽明學 Vol.0 No.32

          이 논문에서는, 함석헌이 이해, 해설한 왕양명의 「大學問」 즉 「한 사람: 王陽明, 大學問」( 함석헌전집20: 씨?의 옛글풀이 )를 중심으로 그의 양명학에 대한 관점과 그 특징을 살펴본다. 종래의 함석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양명학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한 것은 거의 없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양명학과 관련시켜 고찰해보는 이 논문은 함석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살펴보는 함석헌의 양명학 이해의 특징은 (1)왕양명 만물일체론의 ‘대인’=‘큰 사람=한 사람’論: 한사상과 양명학의 결합, (2)萬物一體論의 ‘神秘主義’적 이해, (3)‘仁’의 ‘씨?’사상적 이해이다. 이 가운데서 함석헌이 왕양명의 만물일체론에 주목하고 더욱이 이것(=만물일체론)을 신비주의로 해석하고, ‘한’ 사상으로 연결시킨 것은 탁견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이단시되었던 양명학의 사상에서 ‘만물일체’론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신비주의적 측면에서 부각시킨 점은 그간 학계에서 간과해왔던 양명학의 진수를 들춰낸 셈이다. 이것은 함석헌이 「지금같이 살림이 곧 정치, 정치가 곧 전쟁이 돼버려 죽음의 문명이 돼버린 때」라고 진단했던 1980년대 이전 군부독재시절이나 자본과 문명의 황폐화, 에너지의 고갈 등에 맞부닥친 지금의 현실에서나 여전히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서 평가되어온, 승리해온 사상사를 뒤집어 보면서, 그 그늘에 가려진 思考와 지적資産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아내어, 새 옷을 입히고,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실천해가는 일이다. 전통시대에 이단, 사이비라 내몰던 사상, 양명학에서 찾아낸 함석헌의 화해와 평화, 생명과 만물사랑의 메시지를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靈昭’의 ‘靈’을 「‘얼씨고 절씨고’ 할 때의 얼씸, 양검스러움. 昭는 밝고 환함.」, ‘明德’을 「밝은 속?. 德은 바탈대로 할 수 있는 속의 힘.」이라는 등의 해석은 양명학의 연구에도 새로운 관점과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탁견이다. 아울러, 함석헌의 저작 속에는 고난을 견뎠던 왕양명의 심경이 담긴 시 「泛海」, 「??吟」, 「老檜」 등이 소개되어 있다. 왜 그가 왕양명의 시에 깊이 共鳴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왕양명의 ‘초연’ ‘초탈’ ‘절개’에 관한 심경의 투영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고난의 시대를 왕양명의 시를 거울삼아 건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여 이제 남은 과제는 함석헌의 전저작에 흩어져 있는 양명학 혹은 양명학적 요소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라 하겠다. This study discus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Ham seok-hon and Yangmingxue(Yangming philosophy). Ham seok-hon, who is a famous christian in korea, accepted japanese Mukyoukaishugi(Non-church movement) which is originated by Uchimurakanjo. Later, it is succeed to Kim gyosin who is a famous modern korean christian, and after him it is succeed to Ham seok-hon. Basically, Japanese Yangming thoughts originated by Nakae toju of E-do period succeed to Uchimurakanjo’s Mukyoukaishugi internally in his christian viewpoint and thoughts, for example he estimate Nakaetoju as one of typical japanese four person, just Daihyoudeki nihonzin(代表的日本人). Ham seokhon accepted and interpretated Wang yang-ming’s thoughts, especially Daxuewen(Question and answer about Great learning, Daxue) which is a most famous and important one in wang’s texts, from viewpoint of Ssial(seed, a substantial in things and human) is the key words of his thoughts. And he interested in Wang’s Wanuyitirun, and he understood it as mysticism or occul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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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における「武の精神」ㆍ「武士道」の誕生

          崔在穆(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2

          이 논문은 신라 때 발생한 花郞?花郞徒가 언제부터 왜 「武의 精神」ㆍ「武士道」와 결합되어, 더욱이 「花郞道」로 새롭게 조어되어 유포되었으며, 또한 사상적으로 왜곡 선전되기 시작했는가를 재검토해가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이다. 보통 한국은 「文의 나라」로 불리며, 「?武」나 「武의 精神」ㆍ「武士道」가 강조되는 데에 저항감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만일 한국에서 「武의 精神」ㆍ「武士道」를 논한다면, 우선 타민족인 隋와 싸워 승리한 高句麗의 乙支文德 장군이나 임진왜란기 이론과 싸워 승리한 武? 李舜臣 등에서 보여지는 韓民族 내부의 흐름, 또 하나는 일제식민지기에 일본의 「武ㆍ侍(사무라이)」로부터 영향 받아 형성된 외래의 흐름이라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일본의 무사도가 오히려 한국에서 전래라고 하는 주장도 있기에 이것 또한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한다면 일단 세 가지의 계통을 상정할 수 있다. 종래 학계에는, 일제식민지기는 물론 해방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랑 관련 연구가 나와 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지대한 관심거리였다는 것을 중명하고 있다. 그런데, 종래 한국의 「?武」나 「武의 精神」ㆍ「武士道」를 논하는 경우에는 高句麗の乙支文德이나 朝鮮時代의 李舜臣 등의, 이민족과 싸운 장군들의 「武의 精神」이 강조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백제, 고구려라는 한반도 내부의 동일민족끼리 싸워 승리한 신라의 「花郞」ㆍ「花郞徒」가, 특히 「일제식민지기」에 선별적으로 적극 연구,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여 말한다면 일제기에 화랑은 내선일체를 위한 도구적 가치가 인정되어 「花?道」로서 재창출되고,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에 의한 국가재건、박정희 정권하의 南韓ㆍ慶尙道 정권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논리로서 활용된다. 즉 이선근에 의해 화랑도는 한국 상무정신의 표본으로서 선전되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래의 연구를 비판하는 형태로서 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다. 이 흐름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花?ㆍ花?徒→花?道=武士道⇒오늘날의 花?道. 花?ㆍ花?徒는 종교적, 예술적, 군사적 등등 다양한 면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武의 精神」ㆍ「武士道」이라는 한쪽만을 강조하여, 왜곡되어 논의되어 왔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재검토하면서, 花郞, 花郞徒, 花郞道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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