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생활의 경험과 자기 모색의 글쓰기 : 최서해의 예술론과 후기 소설 재독(再讀)

        최은혜 ( Choi Eun-hye )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2018 Journal of Korean Culture Vol.40 No.-

        이 논문은 최서해의 에세이나 평론을 통해서 그의 문학론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기 소설에 비해서 저평가되어 왔던 후기 소설을 재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임화가 신경향 문학의 한 갈래로 최서해적 경향을 언급한 이래로, 그동안 최서해 소설의 연구들은 주로 ‘신경향파 소설'로 분류되어 온 초기 소설에 집중되어 왔다. 초기 소설에서는 빈민의 삶에 대한 핍진한 묘사와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저항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다면, 후기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에는 기자나 지식인 등의 등장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초기 소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실제로 빈민 생활을 했던 최서해의 경험이 반영되어있다는 점이 강하게 작동해왔다. 그로 인해 가난에 대한 핍진한 묘사와 강렬한 저항의식이 드러날 수 있다고 이해되어온 것이다. 이에 비할 때 후기의 ‘지식인 소설'은 작가 정신의 퇴보이자 현실에의 안주라는 측면에서 거의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이처럼 빈민 생활의 경험, 다시 말해 빈민 작가라는 최서해의 이력은 초기 소설에 대한 고평가, 한편으로는 후기 소설에 대한 저평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최서해가 문단에 이름을 알리고 실제로 신문 기자나 잡지 편집자 등의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최서해의 작품 세계가 변화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후기 소설에 또한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소설에 등장하는 지식인 유형의 인물들은 이전 소설들에 등장했던 빈민들보다 결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끼니를 걱정하는 존재들이며 현실의 부조리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 물론 초기 소설들의 인물들처럼 분노를 폭력이나 살인, 방화 등으로 분출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궁핍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과 자신의 위치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렇게 본다면, 최서해의 후기 소설들을 단순히 ‘퇴행'이라고 평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변화는 그의 문학론이 변화하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 초기 소설이 쓰인 당시에 ‘감정'의 역할을 강조하던 최서해는 후기로 갈수록 ‘인격'을 강조한다. 이때의 인격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기보다는 생활과 예술을 매개하는 ‘주체'로서의 의미를 전제한다. 즉, 최서해에게 인격이란 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생활을 진단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주체, 그리고 적극적으로 현실 상황 밖을 상상할 수 있는 예술적 주체를 상정하기 위해 ‘인격' 개념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최서해에게 소설쓰기란 무엇이었는가', 나아가 ‘최서해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는가'와 관련된 답을 얻을 수 있다. 초기소설을 쓸 당시 최서해는 빈민 작가로서 자신의 궁핍한 생활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로 인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이에 비해 후기에는 ‘노동자'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의 정체성 변화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가난과 궁핍한 삶의 부조리는 지속적인 화두로 남아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literary theory of Choi Seo-hae based on his essays and critiques and reread his latter novels, which had been undervalued compared to his former novels. Ever since Im Hwa mentioned the Choi Seo-hae style tendency as one branch of the new tendency group's literature, the studies on the novels by Choi Seo-hae have mainly focused on his initial fictions which had been classified into 'the New Tendency Group Novels'. While the vivid description of poor people and the figures trying to overcome such a destitute situation appeared in his initial novels, the internal conflicts of the main characters such as journalists and intellectuals emerge in the works classified as the latter novels. The initial works were able to draw attention since the experience of Choi Seo-hae having lived a poor life was reflected. The public realized that the vivid description and the strong resistance spirit toward poverty can be revealed through it. On the contrary, the intellectual novels of the latter period were not able to draw much attention in the sense that they degenerated the spirit of writers and aimed to be satisfied with the reality. The experience of living a poor life - the background of Choi Seo-hae as a poor writer - brought about the overevaluation of the initial works and the underevaluation of latter novels. However, when taking into consideration that Choi Seo-hae not only started his literary career and worked as a journalist and magazine editor but also his literary world changed, his experiences are also reflected in his latter novels. The intellectual characters appearing in his latter works do not live a better life than the poor who emerged in the initial works. The intellectuals suffer from poverty, worry about hunger, and do not turn a deaf ear to the irrationalities of the reality. They obviously do not vent their anger in the forms of violence, murder, and arson but they choose the method of reflecting on the absurd reality and their own social status. In this regard, the latter novels of Choi Seo-hae cannot be evaluated as regressive. Such a change in the novels is related to the changes in his literary theory. Choi Seo-hae puts emphasis on the role of 'emotions' while writing his initial works but puts greater emphasis on 'character' in the latter novels. The 'character' in this context is not a virtue which all humans must possess but presumes the meaning of 'the main agent' who mediates life and art. In other words, for Choi Seo-hae, character is formed between the will to transform living and the desire to express it through art. He had used the concept of 'character' so as to diagnose living and presume the practical subject to change living and the artistic subject for actively imagining the situations outside the reality. Through it, one can ultimately provide the answers to the meaning of writing novels for Choi Seo-hae and the meaning of writing for Choi Seo-hae. He wrote to realistically describe his experiences as a poor writer and express the anger. On the other hand, in the latter fictions, he wrote to objectively recognize the changes in the identity from 'a laborer' to 'a writer' and reflect on his position. In spite of such a change, the absurdity of poverty remained as a main topic.

      • KCI등재

        일반논문 : 1910년대 최남선의 『자조론』 번역과 "청년"의 "자조"

        최희정 ( Hee Jung Choi ) 한국사상사학회 2011 韓國思想史學 Vol.0 No.39

        이 연구는 한말과 1920년대 ``자조론`` 번역 사이에서 육당의 『자조론』(1918)번역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조론』 번역을 계기로 한말에서 1920년대로 ``자조``의 사회적 의미가 변화되는 것을 ``청년``의 인식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육당은 근대 지식인 ``청년``으로서 『자조론』 번역의 주체인 동시에 독자 대상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자조론』 번역은 육당으로 대표되는 1910년대 ``청년``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자조론``은 한말 언론에서 대한제국의 ``자강``과 ``독립``을 말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서 번역되거나 소개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 ``자조론``이 번역되었을 때, 그것의 키워드 ``자조``는 ``청년`` 개인의 ``입신성공``을 의미하였다. 한말에서 1920년대로 ``자조``의 기능과 의미가 전환되는 시발점이 육당의 『자조론』 번역이었다. 『자조론』 번역에서 ``자조``는 한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여 개인윤리 덕목으로 범주화되었던 것이다. 육당의 ``자조론`` 이해는 한말에서 식민지 국가로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달라졌다. 한말에는 육당 또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조론``을 이해하였지만, 『자조론』 번역에서 ``청년`` 개인의 식민지 진출을 조장하는 ``자조진명주의``를 주장하였다. ``자조진명주의``는 ``청년``이 인내와 근면 곧 ``자조``로서 ``문명진보``를 추구하는 정신자세로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1910년대 급선무는 식민지 해방이 아니라 개인의 인내와 근면을 통한 문명의 진보였다. 『자조론』의 독자 ``청년``은 과거 선배가 없는 단절적인 존재로 상정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의 과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육당의 역사인식이 반영된 것이었다. 따라서 ``문명진보``를 논리로 하고 있는 ``자조진명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과거 조선의 근간이 되었던 양반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결국 자조진명주의는 1910년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불행한 조선의 현실을 과거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과거 상층 지배층이었던 양반에 비하여 열등한 신분적 배경을 가진 중인 출신 육당의 입장이 투영되어 있었다. 식민지는 중인 출신 육당에게 과거의 신분적 배경이 원활히 작동되지 않는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였다. 서구 근대 지식 ``자조``를 활용한 ``자조진명주의``를 통하여 청년의 식민지 사회 진출은 객관적으로 정당화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조진명주의``가 1910년대 주장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3.1운동 이후 한국 지식인들이 분열된 근본적 요인을 일본의 식민정책 보다는 식민지를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였던 육당과 같은 ``청년``들이 존재하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meaning of Self-help translated into Korean(自助論) by Choi Nam-Sun(崔南善) in 1918. It is a turning point in changing of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the keyword of Self-help translated into Korean in the late of Great Han. The concept of ``self-help`` was the same meaning as ``Self-Strengthening``(自强) in the late of Great Han. In 1920``s, it changed one`s attention personal success(立身成功). Specifically, I try to relate thought of ``Youth(靑年)`` to change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Youth`` had been regarded as readers of Self-help even before the publication of this book. Choi Nam-Sun is the subject to translate Self-help and the object to read this book at the same time, because he was a young man educated in modern schools. Therefore I have a point of view to examine Self-help as represented thought of youth in 1910s such as Choi Nam-Sun. When Self-help was first introduced in newspapers and journals in the late of Great Han,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was conceptualized into national ideology. But in 1920`s, as Japanese colonial rule changed the military into enlightened administration,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was changed to personal success. It was Choi Nam-Sun who led this transform. The interpretation of Choi Nam-Sun was the occasion which ``self-help`` was related to personal affairs. In the late Great Han, Choi Nam-Sun understood Self-Help was different from to become a Japanese colony, the first phase of Japanese rule, 1910-1919. He understood Self-Help conceptualized in national ideology such as newspapers and journals. But he insisted on the concept of Self-Improvement(自助進明主義) when Self-Help was translated by himself in 1918. Choi Nam-Sun tried to encourage youth to go forth into colonial society. This point of view reflects that the most urgent necessity for Korean is to advance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rather than to gain independence from Japanese imperialism. Youth, the readers of Self-Help, were assumed to be discontinuation of previous ages, because Choi Nam-Sun had been negative thoughts about the dynasty of Choson. He was of the intermediary class(中人) extraction. The content of Self-Improvement, claimed by Choi Nam-Sun, was used to criticize the system of yanban(兩班). Self-Improvement implies the spirit of youth has to pursue the advance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with diligence and endurance. In short, yanban, the ruling class of Chosen dynasty was blamed for the main culprit of Japanese colonization. His criticism veiled his social position in the dynasty of Choson. The colonial period allowed Choi Nam-Sun to achieve his full potential which hadn`t been materialized in the Choson dynasty due to his birth background. Youth to go forth into colonial society could be justified by the concept of Self-Improvement, which is a word derived from ``self-help`` of western modern knowledges. In conclusion, Self-Improvement claimed by Choi Nam-Sun in 1910s, demonstrates the division among intellectuals in Korea since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not because of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but because of youths in Korea society such as Choi Nam-Sun.

      • KCI등재

        1920∼30년대 출판경영인 최연택(崔演澤)의 야담집 기획과 출간

        최희정 ( Choi Hee-jung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0

        이 연구는 1920∼30년대 야담 출판물을 기획·출간한 출판경영인으로서 최연택의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최연택은 1920년대 초 식민지사회에 성공주의를 유포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으로 야담 관련 출판물 출간은 이러한 그의 지적 계보와 상관성이 있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 야담관련 서적에 수록된 일본과 서구의 근대 이야기들이 자조론 계열 지식인 최연택의 성공주의 유포 행위와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연구는 최연택이 발행한 『(진담기화) 동서고금』의 야담집과 『야담대회록』 1집의 야담전문 잡지 그리고 「송재담총」의 『매일신보』야담 연재물 등 야담 관련 출판물에 대해 1920년대 문창사에서 1930년대 삼공사로의 출판사 경영체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1938년 『야담대회록』 잡지를 출간한 삼공사는 문창사를 계승한 출판사이며 창건자가 최연택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점부터 공동경영자였던 최연택의 동생 영택은 분리 독립하여 동성당서점을 경영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기존에 1920년대 초로만 알려진 문창사의 창건 연혁이 1921년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이렇듯 최연택은 근대 서구와 일본의 이야기들을 대중적 친밀성을 가진 ‘야담'의 영역에 편입시켰고, 새롭게 야담의 영역에 편제된 서구와 일본의 이야기들 일부분은 최연택의 성공주의 전파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focuses on the study of, choi yeon-tak (崔演澤), a yadam(野談) publisher during the 1920s∼1930s. I examined that he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The contents of yadam published by Choi yeon-tak, was related to his intellectual background. As you already know, he was a member of munchangsa(文昌社), the family-owned publisher which had been founded in the early 1920s. I found that munchangsa had been founded by choi yeon-tak in 1921. munchangsa divided into two new publishers. samgonsa(三共社) and doungsoyngdansojeom(東盛堂書店) was founded by two publishers choi yeon-tak and choi young-tak(崔永澤) in 1938. It is important that samgongsa succeeded munchangsa. I examined that the contents of a yadam book, “east and west, past and present(『東西古今』)” published by choi yeon-tak in 1922 and a magazine yadam, “record of yadam campaign(『野談大會錄』)” in 1938. I found that there are stories originated in the moder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As I said before, Choi yeon-tak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The contents of that originated in the moder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related to his intellectual background. I focus on that modern yadam materials published by choi yeon-tak were written in the stories of western countries and Japan during the age of modern. In conclusion, It was used by Choi yeon-taek, a colonial intellectual to propagate a discourse of one's personal success using a value of Self-help.

      • KCI등재

        공연 기획 관점적 접근을 통해 본 무용가 최승희의 월북이전 예술활동에 관한 연구

        최현주(Hyun Ju Choi), 안병주(Byong Ju An), 정경(Kyung Jung) 한국사회체육학회 2012 한국사회체육학회지 Vol.0 No.49

        Even up to now, there are a lot of rhetoric words attached to the name of Seung-hee Choi (Nov. 24, 1911~Aug. 8, 1969), a Korean woman modern dancer. Her name is still re-titled with complimentary expressions such as ``Legend of Oriental Dance``, ``Dancing Girl of Korean Peninsula``, ``Flower of Joseon``, ``World-famous Dancer``, ``Legendary Woman Dancer`` and ``Immortal Woman of Myth.`` Choi developed her remarkable career of dancer across many international regions including Korea, Japan and Europe in the age of colonized Korea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She lived her life with fetters of sorrow and pleasure till she went to North Korea with her husband.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 Choi is recognized as a rare figure of modern Korean woman who extended the boundary of her career into movie actress, singer and fashion model beyond dancer. A great number of conventional academic studies on Seung-hee Choi can be found in dancing and literature world, but most of those studies have focused primarily on artistic life, orientations, achievements and activities of Choi as well as her philosophical values. Based on the life story, artistic activities and critical biography of Choi, this study intends to take a new approach of art marketing to exploring her artistic achievements and values. The perfection of a performing art work is still valued so much as a means of creating audience value from its performance on stage, but the importance of multilateral promotions and novel planning is not to be overlooked. Whether Choi adopted such a planning and marketing means intentionally or unintentionally, her performing art activities demonstrate that she surely tried to promote herself by other means than perfection and value of a performing art work, and really wanted to get her performing art recognized by audience and make her dance known to more people. Thus, this study sought to take a new approach to the original artistry of Choi from the viewpoint of performing art planning and art marketing. Based on lots of existing academic literatures on Choi, this study attempted to define her identity as a s ort of brand and goods in the aspect of modern strategic planning, and took an approach of strategic planning to further examination into her artistic achievements, values and features on the basis of SWOT analysis.

      • SCIESCOPUSKCI등재

        Taxonomic Review of the family Platygastridae (Hymenoptera: Platygastroidea) from the Korean Peninsula

        Buhl,Peter,Neerup,Choi,June-Yeol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2006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Vol.9 No.2

        A total of 41 species were investigated, including only one species in the check list of Korean insects, which contains five platygastrids. Eleven species of the family Platygastridae are described as new to science from Korea, viz. Allostemma bicolor Buhl & Choi, Amblyaspis koreana Choi & Buhl, Leptaeis koreana Buhl & Choi, L. ocellaris Choi & Buhl, Platygaster ciliata Buhl & Choi, P. flavifemorata Buhl & Choi, P. kui Choi & Buhl, P. tripotini Buhl & Choi, Synopeas eollinus Choi & Buhl, S. kimi Choi & Buhl, and S. pumilus Buhl & Choi. Further nineteen species are recorded from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first time, and some new records are added for eleven species, already known from the Peninsula. Keys are given to the genera and species of Platygastridae hitherto recorded from The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platygastrid fauna of The Korean Peninsula is composed of 68 species up to now.

      • KCI등재SCOPUS

        Taxonomic Review of the family Platygastridae (Hymenoptera:Platygastroidea) from the Korean Peninsula

        Peter,Neerup,Buhl,June-Yeol,Choi 한국응용곤충학회 2006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Vol.9 No.2

        A total of 41 species were investigated, including only one species in the check list of Korean insects, which contains five platygastrids. Eleven species of the family Platygastridae are described as new to science from Korea, viz. Allostemma bicolor Buhl & Choi, Amblyaspis koreana Choi & Buhl, Leptacis koreana Buhl & Choi, L. ocellaris Choi & Buhl, Platygaster ciliata Buhl & Choi, P. flavifemorata Buhl & Choi, P. kui Choi & Buhl, P. tripotini Buhl & Choi, Synopeas collinus Choi & Buhl, S. kimi Choi & Buhl, and S. pumilus Buhl & Choi. Further nineteen species are recorded from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first time, and some new records are added for eleven species, already known from the Peninsula. Keys are given to the genera and species of Platygastridae hitherto recorded from The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platygastrid fauna of The Korean Peninsula is composed of 68 species up to now.

      • KCI등재후보

        최인훈 소설의 연구사 연구

        최윤경(Choi, Yoon-gyeong) 전남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 2015 전남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 학술지 어문논총 Vol.- No.27

        최인훈은 현대사를 집요하게 다루어온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소설에서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있다. 본고는 지금까지 최인훈의 소설 연구에 주목하여 그 성과와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최인훈의 1990년대 이전의 연구들은 작가의 반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둘러싼 논쟁이 주요하다. 그 중심에 『광장』이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광장』, 『회색인』, 『서유기』, 「크리스마스캐럴」 연작,「총독의 소리」, 『태풍』의 소설들이 분석되고 있다. 이는 최인훈 소설의 ‘근대성'과 ‘식민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최근에는 『화두』를 중심으로 한 최인훈 문학의 의의에 대한 구명이 시도되고 있다. 최인훈이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하면 큰일날 말'을 하기 위해 ‘검열자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 계산된 진술'을 그의 소설 〔문학〕으로 실험한 작가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은 작가의 희곡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문학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에 최인훈 문학의 의의 구명에 있어서 소설과 희곡, 그리고 문학이론을 망라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Choi In Hun is author who has persistently treated the modern history and His works have ranged from novel to essay acrossing multiple genres. This study, paying attention to research of the Choi In-hun's novel till this day, try to point out the novel's achievement and remaining tasks. The previous studies of Choi In-hun in the 1990s are primary debates about the criticism and advocacy for the writer's tendency of anti-realism. The Circle is located at the center of those debates. In the 2000s, In viewpoint of leaving colonialism, The repeated writing of Circle, Grey people, Journey to the West, Christmas carol and The novel of Governor's voice, Typhoon are analyzed. These are outcome of research for novel of Choi In-hun ‘modernity' and ‘Coloniality'. Recently, centering on Big story, The overall prospects of Choi In-hun's literature have been tried. In Big story, The novels of Choi In-hun have been referred to self reflection, there is much attention toward the deconstructive writing and the style of later life. The author, Choi In-hun, who has experiment the statement dissipate the focus of the corrector in his novels 〔Literature〕, trying to say the wards if he say these in the situation that can not be said, which will make big problem. and these experiments have been more aggressively attempted at writer's play. Hereupon, in the field of literature of Choi In-hun, The study to be needed covering the overall prospects including his novel and plays.

      • KCI등재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 관한 연구 - 늦은자진모리를 중심으로 -

        최진 ( Choi Jin ) 남도민속학회 2020 남도민속연구 Vol.0 No.41

        본 논문은 1971년 지갑성의 회갑 기념 음악회에서 함동정월과 김명환이 지갑성에게 산조를 기증한 음원에 제시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中 늦은자진모리에 대한 연구이다. 산조의 악장명은 장단명과도 관계가 있으며, 지갑성이 늦은자진모리의 악장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굿거리와 자진굿거리라고 해석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악장명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고 늦은자진모리에 해당하는 장단 빠르기를 이해하여 이론과 실제 연주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재숙ㆍ성애순의 악장 구성은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늦은자진모리-자진모리-휘모리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지갑성은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당악)로 악장명을 제시하고 있다. 악장명은 늦은자진모리로 제시되어 있지만, 음악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장단은 두 단락으로 구분되어 진다. 선행연구는 1~55장단까지 중중모리로, 56~155장단까지 자진모리로 제시하였다. 지갑성은 1~91장단까지 굿거리, 92~154장단까지 자진굿거리로 단락을 구분 지었다.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자진모리는 모두 3소박 4박의 구조로 되어 있으나, 지역적인 특색, 연주자, 반주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늦은자진모리가 중중모리로 해석될 경우 중중모리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어 연주 빠르기의 변화가 없다. 따라서 해석의 차이로 인한 중중모리로 연주되어도 둥글둥글한 표현미와 함께 중중모리와 다른 연주 빠르기를 가지고 연주해야 한다. 늦은자진모리의 장단과 빠르기, 리듬 구조를 분석하고, 지역적인 음악 특색을 반영하여 지갑성이 두 단락으로 나누어 구조화 시킨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경기 무악의 대가였던 지갑성은 경기도 음악권에서의 환경을 인식하여 늦은자진모리를 중중모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장단연속체로 보지 않고, 굿거리-자진굿거리의 장단연속체 느낌으로 해석한 것이다. 늦은자진모리는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대가인 함동정월이 명명한 것으로 악장명은 늦은 자진모리로 정의되어야 한다. 다만 중중모리-늦은자진모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장단연속체의 연주에 있어서 지갑성의 해석을 참고하여 연주할 필요가 있다. 선행 연구 결과와 지갑성의 악장 해석 차이에 의한 장단 빠르기를 적용하면 중중모리-자진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자진굿거리)-자진자진모리(자진모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장단 빠르기로 연주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몰아가는 감흥에 영향을 주어,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장단연속체 느낌을 표현하는 실제 연주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론과 실제 연주를 위한 조언을 제시하자면 늦은자진모리는 다른 산조의 자진모리로 인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연주나 콩쿠르에서도 늦은자진모리를 자진모리로 인식하여 제시하는 경우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학계ㆍ교육계ㆍ연주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굿거리 악장과 관련하여 늦은자진모리를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늦은자진모리를 다른 산조의 자진모리와 비교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지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악장의 재해석 연구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예술적인 연주 표현에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향후 21세기 새로운 가야금산조 형성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This study focuses on late Jajinmori found in the song source which is donated to Jie, Gapsung by Ham, Dongjungwol and Kim, Myunghwan at Jie, Gapsungs' 60th birthday concert in 1971. The movement title of Sanjo is related to the rhythm title and it is a very precious material in which Jie, Gapsung divided the movement of late Jajinmori of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into two paragraphs and which he also interpreted it as Gutguri and Jajingutguri. Through the analysis of this material, this study attempted to grasp the meaning of the movement title and understand the pace which belongs to late Jajinmori, and finally attempted to assist the theory and the actual performance. The following are the results. The organization of the movement in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is composed of 7 movements, namely, dasureum-Jinyangjo-Jungmori-Jungjungmori -late Jajinmori-Jajinmori-Huimori in case of Lee, Jaesuk and Sung, Aesoon. However, Jie, Gapsung uses different names for the movement, namely dasureum-Jinyangjo-Jungmori-Jungjungmori-Gutguri-Jajinmori-Huimori(Dangak) The movement tile is proposed as late Jajinmori, the rhythm inherent in the music is categorized into two paragraphs. From the existing study, 1<sup>st</sup>~55<sup>th</sup> rhythm is proposed as the feature of Jungjungmori and 56<sup>th</sup>~155<sup>th</sup> the feature for Jajinmori. However, Jie, Gapsung defines 1<sup>st</sup>~91<sup>th</sup> rhythm to be Gutguri and 92<sup>nd</sup> to 154<sup>th</sup> rhythm to be Jajingutguri. Jungjungmori, Gurguri, Jajingutguri, Jajinmori all have 3 little beat and 4 beat, however, differences can be made according to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performers, accompanists, and the interpretation of the audience. Therefore, even while it is performed as Jungjungmori due to the different interpretation, it contains the pace of Gutguri and it should be played with round expressiveness and pace. What we can learn from the different pace in the paragraph is that when late Jajinmori is interpreted as Jungjungmori, it is understood as in the continuum of Jungjungmori and the change in the pace cannot occur. The structured background to divide into two paragraphs was confirmed as the results of analysis of the rhythm, pace, and the rhythm structure of late Jajinmori. Jie, Gapsung, a master of Gyunggi shaman music, perceiving the musical environment of Gyunggido music zone, did not consider late Jajinmori as a continuum of rhythm flowing from Jungjungmori-Jajinmori but he interpreted it as a feeling from the rhythm continuum of Gutguri-Jajingutguri. Late Jajinmori which is coined by Ham, Dongjungwol, a master of the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should have its movement title defined as late Jajinmori. used. However, with the regard to the performance of rhythm continuum of Jungjungmori-late Jajinmori-Jajinmori, Jie, Gapsung's performance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while playing. The comparison between the existing studies and the results of Jie, Gapsung's movement interpretation yield that it should be played in the interpreted pace of Jungjungmori-Jajinjungjungmori-Jajinmori-Jajinjajinmori. This is to produce natural climax and it fits for the actual performance in pursuit of late Jajinmori of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A piece of advice is that late Jajinmori should not be confused with other Sanjo for the theory and the actual performance. Late Jajinmori should not be perceived as Jajinmori in actual performance or competition. As mentioned above, late Jajinmori has been studied with regard to Gutguri movement of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unknown to the academic circle and the performance circle. Late Jajinmori of Gayageum Sanjo of Choi, Oksam style as been compared to Jajinmori of other Sanjo and examined how to be interpreted and applied. This kind of re-interpretation study of movement is going to provide assistance not only to the theory but also to the actual artistic performance, providing a positive impact to the development of new Gayageum Sanjo in the 21<sup>st</sup> century.

      • KCI등재

        논문 : 해외공연이 최승희의 예술세계에 미친 영향

        최성옥 ( Sung Ok Choi ) 한국무용기록학회 2010 무용역사기록학 Vol.20 No.-

        본 논문은 해외공연활동이 최승희의 춤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더 나아가 한국무용계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를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무용 활동을 하면서 최승희는 한국인들의 민족적 아픔을 담아 민족적인 감정을 표현하였으며, 그녀가 민족을 대표하는 작품을 창작 할 때 사상적인 개념을 구축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영향으로 한국전통무용을 토대로 한국무용을 창작하게 되었다. 최승희는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 유럽, 남미를 순회하면서 해외활동을 한 결과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소재로 창작한 한국무용이 외국에서는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국의 전통무용을 최승희만의 독특한 체계로 확립시켜 새로운 무용으로 창작해나갔으며, 넓은 의미로 동양무용수립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또한 최승희는 ``최승희 동양 발레단``의 결성을 시도하고 한국에 발레무용을 창작하여 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하였으나 사회적인 상황으로 인해 실패되었다. 최승희의 미주순회공연이 그녀의 무용예술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것을 본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순회공연에서「보살춤」과「초립동」은 민족적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써 서양적인 발레나 현대무용 형식에 민족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에 더 관심을 가졌으며, 남미 순회공연에서는 한국적인 춤사위와 외국무용의 조화로움 속에 표현된 동양적인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처럼, 최승희는 해외공연을 통해 서양에서는 한국적인 춤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국 무용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의 근대무용에 기틀을 세워 전통무용을 현대화시킴으로써 무용사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또한 그녀만의 예술관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많은 작품을 창작하여 한국의 무용계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최승희는 일제강점기라는 혼란한 시대에 한국무용계의 근대화를 추구하여 신무용을 창시하였으며, 무용을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예술인들을 천시하여 무용을 독립된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에 한국 무용계를 구축한 인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내는 과정을 걸쳐 월북함으로써 친일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단 상황과 이데올로기라는 시대에 의해 그 존재가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족적인 최승희는 얼이 담긴 한국을 대표 할 수 있는 한국적인 무용을 창시하여 세계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한국무용역사에 큰 획을 그은 최승희의 업적은 사회적인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much Ishii Baku and overseas dance performance tours had impacted Seung-Hee Choi`s choreography and her unique dance styles. This study also tries to show her contribution to the modernization of Korea`s traditional da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Seung-Hee Choi showed the pain of the Korean people who had lost their nation through dancing. This nationalistic aspect was the foundation of her choreography and her dance styles. She was influenced by Ishii Baku who was her Japanese dance teacher. With his influence, she choreographed the new form of Korean modern dance styles by incorporating Korean traditional dance movements to her own creative style. After overseas tours of dance performances in the U.S.A., Europe, and South America from 1938 to 1940, Seung-Hee Choi realized that her dance styles incorporating traditional Korean dance movements are more acclaimed by the foreigners than the domestic audiences. Thus, she decided to develop her own unique dance styles more incorporated with traditional Korean dance. Furthermore, she wants to establish East Asian dance styles. Choi tried to establish "Choi Seung-Hee East Asian Ballet Foundation" for a systematic study of Asian dances. However, her venture failed because the social and political milieu was not conducive at that time. This study confirms that Isihe Baku and the American dance tour had significant influences on building Choi`s own dance styles. In the American and European dance tours, she introduced "Bosalchum" and "Choripdong," which showed Korean national emotions and attracted the interest of Western ballet groups that tried to incorporate the nationalistic materials into the modern dance. During the South American dance tour, she expressed mistery and beauty of Asia by harmonizing Korean traditional dance movements and Western dance styles. After she recognized that traditional Korean dance movement attracted foreign interests, she devoted herself to internationalize Korean modern dance, which eventually became the foundation of Korean modern dance and modernized Korean traditional dances. With her own artistic ideas, she constantly created dance works. Therefore, she deserves to be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figures in Korean dance history in spite of the political ideology and her achievements should be taught to the young generation.

      • KCI등재

        1920년대 출판경영인 崔永澤과 『立身冒險談』번역

        최희정(Choi, hee-jung) 부산경남사학회 2017 역사와 경계 Vol.103 No.-

        이 연구의 목적은 3.1운동 전후 『태서문예신보』에서 『매일신보』에 이르기까지 최영택의 행적과 활동을 성공주의를 유포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으로서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최영택이 『매일신보』에 번역·연재한 『자조론』아류 서적인 『입신모험담』과 메이지 후기 일본에서 생산된 원전 『입신모험담』을 비교하여 그 첨삭된 항목과 내용을 중심으로 양자를 분석하였다. 또 메이지 후기 일본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이라는 양자의 다른 사회적 상황과 조건 아래 성공주의 전파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효과의 차이도 논의하였다. 최영택은 『태서문예신보』를 통해 등단한 ‘무명시인'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연구를 통해 그가 이 잡지의 사생첩 기자로도 활동한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이에 더하여 1920년대 초 『여자시론』창간과 경영에 참여한 최영택과 동일 인물이라는 점 또한 밝혔다. 무엇보다 최영택을 비롯한 『태서문예신보』의 주요 집필진들이 성공담론 유포에 적극적이었으며, 이 잡지가 육당의 『자조론』이 출간된 1910년대 말 식민지 지성계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잡지로서의 성격을 가졌음을 제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 최영택이 여성전문잡지 『여자시론』 『부인계』의 창간을 주도하면서, 가족경영의 출판사 문창사에서 잡지경영인으로서 활동한 것을 식민지 사회에서 출판업으로 입신성공하려는 그의 지향성 및 『입신모험담』번역의 배경으로 파악하였다. 최영택이 번역한 『입신모험담』은 1920년대 초 조선총독부 식민정책의 충실한 전파 매체였던 『매일신보』의 번역·연재물로서 기획된 것이었다. 원전 『입신모험담』은 러일전쟁 시기 일본 국내 입신출세의 길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년들의 해외 식민지 진출을 종용하는 『자조론』아류 서적류에 속했는데, 이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하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 한편 1920년대 초 『매일신보』의 번역·연재물로서 기획된 『입신모험담』을 통한 성공주의 전파는 일본의 식민정책에 협력하는 사회적 효과를 가졌음을 시사하였다. 이 연구는 3.1운동 이후 1960∼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장기간 생명력을 유지한 세속적 성공주의와 그것의 전파에 기여한 지식인의 계보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연구에서 제시한 세속적 성공주의 전파에 기여한 이른바 자조론 계열 지식인과 이들에 대한 고찰은 우파 식민지 지식인 연구에 새로운 轉機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focuses on the study of, Choi young-taek, a translator and magazine editor who was trying to succeed in the colonial Korea in the 1920's. I examined that he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He was influenced by Self–Help or something similar and then began to serialize a translated book,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立身冒險談』) that tells stories about successfully challenged people in The Daily Newspaper. I compared differences in social function between a original book had affected youths in the late Meiji Japan and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 series in The Daily Newspaper in 1920's Korea. I think that his conduct of translation expressed a drive to succeed. He wrote poems in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泰西文藝新報』) in the late 1910's and had been known to be not a famous poet. I found that 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 as an editor and reporter. It wasn't simply to introduce western literature and the arts but reflected the point of view of Choi nam-sun in the late 1910's. Choi nam-sun translated Self-help into Korean in 1918. As you know, It was a turning point in change of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the keyword of Self-help to be used national ideology that was translated into Korean in the late of Great Han empire. Choi young-taek was an editor and reporter in the women's discourse(『女子詩論』), a public magazine of Chosen women's education center, and he published Women's world(『婦人界』) his own company in the early 1920s. His experience of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 at the time of the late 1910's probably had affected him to be a magazine publisher in the early 1920s. He was a member of munchangsa(文昌社), the family-owned publisher which had been founded in the early 1920s and published magazines. I think that his conduct to have a job as a publisher was related to the will to succeed. As I said before, He serialized a translated book,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 The source of translation, stories of people who successfully challenged by adversity, was a type of Self-help in Japan. As we know, Self-help was a kind of books which have to be read for a purpose of the success of an individual. In conclusion, Choi's translation of stories about successfully challenged people realized a value of Self-Help, it would have helped Japanese imperialism to rule colonial Korea. I believe that it is need to study right-wing Korean intellectuals like Choi young-taek who accepted Self-help in modern Korea.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