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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시대(先秦時代) 정국운영 양상에 관한 고찰 - 구성주의적 이해를 바탕으로 -

        천영미 ( Young Mi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2007 漢文古典硏究 Vol.15 No.-

        고대 중국의 정치형세는 그동안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조명되어 왔다. 구조주의자들은 한 시대의 정치형세나 사회상황이 ``구조``를 통해 규정되고 체계화된다고 주장한다. 즉 ``구조``가 각 계층의 역할을 규정하여 제한된 역할을 부여하면, ``구조`` 내의 ``행위자``들은 ``구조``가 규정하는 역할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행한다는 것이 구조주의의 입장이다. 케네스 월츠는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틀로 ``구조``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월츠가 말하는 ``구조``는 행위자들의 위치와 배열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구조``는 단위체들이 각각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고, 어떻게 배열되어 있으면서 그 구체적인 기능들을 담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추상적인 개념인 것이다. 중국 고대 사회를 서열화하여 체계화시킨 ``구조``는 바로 周代의 봉건제이다. 주 왕조는 봉건제를 통하여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天子의 존재를 절대시함으로써 ``구조``의 최상에 두었으며, 각 계층의 행위자들의 역할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각 제후국은 주왕조의 체제에 순응해야 하는 수동적인 분봉국일 뿐이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형세는 패권국 중심의 체제로 펼쳐진다. 즉 패권국은 당대의 사회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동맹을 체결하여 비패권국들을 규합함으로써 질서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또한 관료제나 군현제 설치를 통하여 강력한 법제를 통한 군주 중심의 부국강병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비패권국은 단지 패권국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수동적인 국가일 뿐이다. 그러나 『左傳』이나 金文에 기록된 제후국들의 정치적 활약은 단지 수동적인 분봉국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들은 ``구조``의 영향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자율적인 정치행위자로서 自國의 발전을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論語』·『孟子』·『商君書』에 나타난 각 사상가들의 이론에는 당대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자율적 행위자들의 역할이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연구들은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어 고대중국의 정치체계를 이해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므로 본고는 ``구조주의`` 시각에서 조명되었던 고대 중국의 정치형세를 ``구성주의`` 입장에서 재구성하여 자율적 행위자들의 역할을 주목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The political situation of ancient China has been illuminated in a structuralist sight all the while. The structuralists insist that the political and social situation of a generation is defined and systematized through ``structure``. That is to say, after ``structure`` defines the role of each social stratum and grants restricted role, ``performers`` within ``structure`` carry out their own roles within the role defined by ``structure``. This is a structuralist viewpoint. Kenneth Waltz suggested the concept of ``structure`` as a new formula to understand international politics. The ``structure`` suggested by Waltz is the concept presenting the performers` position and arrangement. ``Structure`` is an abstract concept to show how individuals are located and arranged and how they carry out their concrete functions. Chu`s feudal system is the very ``structure`` to rank and systematize Chinese ancient society. Chu dynasty tried to establish order through feudal system. It regarded an emperor as an absolute being and put him the highest of ``structure``, and defined the role of performers of each social stratum. In this structure all feudal lords` countries were only passive ones to adapt themselves to Chu`s system. Also the political situation of Chunchu war era was developed centering on the hegemony. That is to say, hegemony tried to establish order by rallying non-hegemony to break up social chaos of the day. Also it tried to set up a rich country and a powerful army through bureaucracy and strong law system. In this structure non-hegemony is a mere passive country which should adapt itself to hegemony. However, political activities of feudal lords` countries recorded in <JAUJUN> and <GUMMUN> are open to doubt in their positions of passive countries. They were influenced by ``structure``, but showed an aspect to seek for development of their own countries independently as responsible political performers. Also the role of responsible performers who tried to overcome chaos of the day was revealed in the theory of each thinker appeared in <NONUH>, <MANGJA>, and <SANGGUNSUH>. Nonetheless, the existing researches only focused on ``structure`` and worked hard to understand the political system of ancient China. Therefore, this paper will restructure the political situation of ancient China in a position of ``constitution`` rather than in a position of ``structuralism`` and observe the role of responsible per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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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論文) : 춘추시대(春秋時代) 축성(築城) 작업에 나타난 민(民)의 개체성 연구

        천영미 ( Young Mi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2008 漢文古典硏究 Vol.17 No.1

        고대 중국에서 民은 有德者의 통치로 보호받아야 될 수동적인 존재로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좌전』이나 『논어』에는 民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民은 통치자의 교화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군주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불합리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하며, 통치자의 다스림을 공고하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인 `신뢰`를 제공하는 존재로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수동적 존재로서만 부각되어 왔던 民이 개체적 존재로서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부당한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면모를 밝히고자 하였다. 民의 개체성 양상은 욕구 충족적인 특징을 지녔다. 民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군주를 찾아 `떠남`으로써 개체성을 표출하였다. 民의 개체성은 春秋時代까지 이어져서 사회전반의 현상에서 불합리한 정책에 직면하였을 때, 民은 일탈하는 행동을 통해 개체성을 표출하게 되었다. 춘추시대는 각 제후국들 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축성작업이 자주 진행되었고, 民으로부터의 부역을 부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지배층의 과도한 축성작업은 民의 일탈현상을 초래하였다. 民은 과도한 축성작업을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기도 하였고, 과도한 부역으로 지친 民은 축성작업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民은 고된 부역에 자신들을 징발하는 위정자를 풍자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고, 축성작업 중에 民을 부당하게 대우한 감독관을 죽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보면 축성작업에 동원된 民은 위정자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개체성을 표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西周時代에 태동한 욕구충족적인 民의 개체성이 春秋時代로 이어지면서 부당한 정책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이러한 民의 개체성 표출은 戰國時代에 이르러 여러 사상가들이 `民`을 국가의 근본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고, 그 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The people in the Ancient China were considered as passive beings to be protected by the rule of a virtuous man. However, we can see another aspect of the people in "Joajun" and "The Analects of Confucius". The people were not passive any more in here. They tried to look for a monarch who could satisfy their desires and rise to unreasonable policies actively rather than wait for edification of the ruler. They were the people providing `confidence` which must be the decisive factor of solid rule of the ruler. Therefore, in this study I tried to clarify another phase of the people who came to a definite decision as individuals and rose to unjust policies actively rather than were passive beings. The aspect of `the individuality` had a characteristic of satisfying their desires. The people expressed the individuality by `leaving` to look for a monarch who could satisfy their basic desires. `The individuality` of the people continued until Chun-chu era and they expressed the individuality through deviation movements when they faced unjust policies throughout the society. In Chun-chu era there were lots of work of building castles due to wars between feudal lords, and therefore the people were forced to work hard very often. Too much work of building castles caused the people to depart from their works. Some people fled from excessive work and others who were bone tired of overwork made the work stopped. Furthermore, the people made songs to satirize statesmen who put in requisition for excessive work and they sometimes killed supervisors who treated them unjustly during the work. Through this fact we can see that the people who were forced to work expressed the individuality by coping with the raw deal of the statesmen actively. Therefore, the individuality of the people satisfying their desires in Suh-Ju era was revealed in Chun-chu era in a way that they were against the unreasonable policies. And the expression of the individuality by the people made many philosophers recognize that `the people` are the foundation of a nation in the age of civil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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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에 나타난 새로운 패턴의 수양론 -안연의 부이과(不貳過)를 중심으로-

        천영미 ( Young Mi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4 漢文古典硏究 Vol.28 No.1

        지금까지 공자 사상에 대한 연구는 인(仁)의 의미를 규명하고, 仁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지속되었다. 그리고 대다수 연구들의 결론은 仁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며, 仁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반성 또는 실천적 노력을 강조하였다. 즉 ``수양``은 仁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등 ``지속성``의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논어』 속에서 仁의 실현을 위해 공자가 강조했던 내용들을 검토해보면, 그동안 안일하게 결론 내렸던 ``수양``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속에서 새로운 패턴의 수양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논어』 속에서 공자가 제자들 가운데 유독 안연만을 인정하는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공자가 유독 안연에 대해서 인정했던 것은 그의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는 지행합일적(知行合一的)모습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공자가 안연을 인정했던 이유는 단지 그가 부단히 노력해서만이 아니라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도록 [부이과(不貳過)]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심층연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즉 안연에게서 보이는 새로운 패턴의 수양은 심층연습-계획된 연습/의도된 연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는 그동안 잘못 인식되어 온 ``수양``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논어』에 나타난 안연의 심층연습의 특징을 규명함으로써 수양론에 대한 새로운 양상을 도출해내고자 한다. 수양론에 대한 새로운 양상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공자의 핵심사상인 仁의 의미를 규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Ⅱ장 1절에서는 공자 仁의 의미를 재검토하였고, 仁이 춘추시대 대립과 해체의 길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화합``과 ``결속``을 이루어낸 통합능력임을 밝혀내었다. 또한 공자 仁과 수양론에 대한 많은 오해들은 경전을 해석하는 해석학적 방법의 편향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Ⅱ장 2절에서는 한대(漢代)와 위진대(魏晉代), 그리고 송대(宋代)의 경전해석의 경향성을 검토하였다. Ⅲ장에서는 안연이 시도했던 새로운 패턴의 수양론을 고찰하기 위하여 심층연습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심층연습이란 끊임없이 테크닉을 연마하면서 비판적인 피드백을 적용하고, 집중적으로 약점을 보강하는 연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Until now, the study of Confucius thought was accomplished through illuminating the meaning of benevolence and finding out the fruition method of benevolence. Almost researchers concluded that the benevolence is the perfect virtue and we should try to get to the benevolence constantly. That is to say, self-culture is recognized a concept of persistence such as a constant effort. However, when we look into the contents <The Analects of Confucius>, we can find out the new pattern of self-culture concept.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we can find out some phrases which Confucius only admitted Anyeoun(顔淵) among his disciples. Jakong(子貢), one of the Confucius disciples, said to his teacher that "Anyeoun(顔淵) is a smart person, because he realizes ten facts when he listens to one fact." Confucius answered "he does." Also king asked to Confucius, "Who enjoys your teaching among your disciples?", Confucius answered, "Anyeoun(顔淵) enjoyed learning, but now he died and now there is no one who enjoys learning." Lots of researchers have explained that Confucius admitted Anyeoun(顔淵) because of his constant effort and practice. But the reason Confucius admitted Anyeoun(顔淵) was not because his constant effort, but because his depth practice. He set up a clear goal and he tried not to make a mistake again. So the self-culture of new pattern which we can find from Anyeoun(顔淵) is calculated practice, intended practice, and depth practice. So the purpose of this study illuminates the meaning of the self-cultur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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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시대(先秦時代) 중국 사회를 운용했던 책임론의 변화양상

        천영미 ( Chun Young-mi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6 漢文古典硏究 Vol.33 No.1

        본고는 先秦時代 중국사상사에 일맥상통하게 흐르는 주된 통치기제가 `책임성`임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 연구 성과들처럼 선진시대의 사상사를 殷代-西周時代-春秋時代-戰國時代로 나누어 그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이념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각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요소들을 놓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하여 殷代의 神政체제, 周代의 天命思想, 春秋時代의 도덕성 확립, 戰國時代의 강력한 法制 등 시대의 사상적 특징을 이념 중심으로 나열하는 안일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선진시대의 사상사를 `책임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고찰하게 되면, 기존 연구들에서 간과했던 요소들을 재발견할 수 있다. 殷代의 神政체제 하에서 최초로 책임성이 배태된 상황, 周代 天命의 상대화와 책임의식 결부를 통해 새로운 통치기획을 세웠던 주왕조의 파격적인 시도, 춘추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제환공과 관중에 의해 기획된 초안정시스템인 覇제도, 사회결속과 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각 개인에게 찾고자 했던 공자의 시도, 침략전쟁을 통한 부국강병에서 벗어나 공공복리의 실현을 주장했던 묵자의 노력, 법의 순수한 본질인 大公無私性을 통하여 사회재편성을 시도했던 상앙의 법제 등을 발견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at the main ruling mechanism which was found in Chinese thought of the Before Qin Dynasty was "Responsibility". Until now, existing studies divided that age into Eun[殷] Dynasty, Ju[周] Dynasty, and the Warring states period[春秋戰國時代] and studied ancient Chinese thought in the context of history. But if we continue to study according to this pattern, we make mistakes of missing the core factors. So we can fix their characteristics such as Eun[殷] Dynasty is under theocrazi, Ju[周] Dynasty is under Heaven`s will, and the Warring states period[春秋戰 國時代] is under promotion of morality and powerful legislation to recover the stability in society. But if we investigate the thought of the Before Qin Dynasty through prism of responsibility, we can rediscover overlooking factors in existing studies. So in this study, I captured an aspect of responsibility which was born in Eun[殷] Dynasty under theocrazi and tried to investigate about that. Also, in Ju[周] Dynasty ruling system, I found their innovative politics plan. The leader of Ju[周] Dynasty captured skeptical view about eternity of Heaven`s will and leader`s responsibility in the end of Eun[殷] Dynasty and accepted them very actively. Their trial like this was unheard of plan and established a new direction in ancient Chinese politics. After Ju[周] Dynasty`s ruling order was collapsed, lots of confusions were resulted in. At last the king of Je[齊], Huangong[桓公], suggested Hegemony[覇道] to recover stability in society. So in this study, I tried to investigate that Hegemony was planning politics system by expression of leader`s responsibility, not dogmatic military power. Through this process, I could find the serious meaning and role of Hegemony which was run by the king of Je[齊], Huangong[桓公]. Confucius[孔子] expanded responsibility from partial leaders to each person. So in this study, I tried to investigate the aspect of responsibility in the Warring states period[春秋戰國時代]. And then I found that the unity of society could be achieved on the basis of each person`s responsibility. After Confucius` death, lots of fights broke into for survival and domination in the Warring states period[春秋戰國時代]. Mozi[墨子] thought that Confucianists lost their will and ability for the Confucius` Benevolence [仁] realization. Because they were indulged into excessive etiquette, music, and ceremony, they lost the essence of Confucius` thought. So in this study, I tried to focus on Mozi[墨子]`s innovative system and found that he suggested the realization of public welfare as a solution to recover stability in society. In the end of the Warring states period[春秋戰國時代], unshakable legislations by tyranny of leader and abuse of power were asked. So in this study, I investigated about legislation of Shang Yang, school of law[法家]. And then I found out that his legislation was very different from Han Fei Tzu[韓非子]`s. Shang Yang`s legislation is powerful, reasonable, fair, and it had a great achievement about enforcement of fair law at the first time in ancien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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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맹자(戰國時代孟子)의 “심(心)”에 대한 일고찰 -통일론을 중심으로-

        천영미 ( Young Mi Chun )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1 No.-

        전국시대에 이르러 제자백가들이 자신들의 사고의 중심개념을 ‘心’과 관련지어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心’은 중국철학의 중심 주제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心’에 대해 새로운 규명을 시도한 제자백가들의 노력은 후대인들의 편협된 시각에 의해 왜곡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맹자의 ‘心’이다. 맹자의 ‘心’은 仁政실현을 위해 도덕적 양심에 호소했다는 관점에서 논의되었고, 이러한 관점은 宋代성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쳐 ‘心’은 天으로부터 품수받은 것이며, 수양의 대상이 된다는 전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맹자는 王道政治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心’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였다. 맹자는 도덕본성의 내적 기제를 넘어서서, 자율성과 자발성 및 주도성을 지닌 행위기제로서의 ‘心’의 특징에 주목하였다. 그러므로 맹자가 주장하는 ‘心’은 天으로부터 품수받은 신성불가침의 내적기제를 넘어서서,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동력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心’이 단순히 인간의 선한 본성에 호소하여 백성의 피폐된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최후의 도덕적 가능성이 아니라, 전국시대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맹자가 고안해 낸 통일론의 핵심을 이루는 실천적 개념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In the age of civil wars, all philosophers and scholars began to discuss the main concept of their thoughts in connection with the `heart`, so the `heart` became the main subject in Chinese philosophy. However, the effort of philosophers and scholars trying for the new identification of the `heart` was distorted by narrow viewpoint of posterity. The `heart` of Mencius is in this case. The `heart` of Mencius was discussed in the view of the appeal to moral scruples for fulfillment of the rule over a country by virtue, and this view has influenced Song`s Neo-Confucianism. Therefore, the premise that the `heart` was given by nature and had to be cultivated has continued by now. However, Mencius set up the `heart` intentionally in the process of seeking for positive solution to come true the righteous government. Mencius took note of characteristics of the `heart` as behavior mechanism which has the meaning of autonomy, spontaneity and initiative beyond inner mechanism of moral nature. Therefore, the `heart` of Mencius is practicing power which can solve the problem at hand, beyond sacred and inviolable inner mechanism given by nature. Therefore, in this study I tried to define that the `heart` is not the final moral possibility to save devastated lives of people by appealing to good nature of human beings but the practical concept to be the main point of the theory of unity devised by Mencius for the cease of disorder in the age of civil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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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중국의 사회통합 양상에 관한 고찰

        천영미 ( Young Mi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2007 漢文古典硏究 Vol.14 No.-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통합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해왔고, 이것은 인류가 당면한 공통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사회통합과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방법들은 시대마다 각기 달랐다. 현대사회는 역량 있는 리더들의 리더십 발휘를 통하여 사회조직의 통합과 발전을 이룩하고자 한다. 최근 리더십이 사회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폭넓은 연구주제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힘``의 원리가 팽배하여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었던 고대 중국에서도 새로운 사회통합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고대 중국의 사회통합 양상을 고찰하는 일은 현대사회에 필요한 통합의 새로운 모형을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고대 중국의 사회통합 방법을 고찰하되, 周代의 주 왕조와 春秋時代제후들, 그리고 孔子가 제시한 방법으로 분류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종법제``를 중심으로 사회통합을 이룩하고자 시도했던 周代의 통합양상을 고찰하였다. 주 왕조는 종법제를 통하여 姬姓諸侯뿐만 아니라 異姓諸侯를 봉함으로써 天子國 보호를 위한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제후국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大宗의 지배력 강화와 천자국에 대한 小宗의 협력체계로 사회통합을 이룩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종법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공동 조상에 대한 연대감이 희박해지면서 춘추시대에 이르러 와해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하여 사회혼란이 초래되었다. 종법제에 의한 주나라의 사회통합 방법이 그 한계점을 드러내자 새로운 사회통합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3장에서는 춘추시대 覇者들이 제시한 사회통합의 방법을 고찰하였다. 패자들은 비패권국과의 ``동맹적 규합``을 통하여 혼란을 종식시킴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후국의 동맹적 규합은 自國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동맹적 규합을 통해서는 더 이상 국가 간에 지속적으로 협력하며 통합을 이룩할 수 없게 되는 상황 속에서 공자는 새로운 통합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Ⅳ장에서는 공자가 제시한 사회통합의 양상에 관해 고찰하였다. 춘추시대는 봉건제에 기초한 위계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던 시대였고, 이러한 시대를 바라보는 당대의 지식인들의 관점은 확연히 달랐다. 隱者들은 하극상의 시대 속에서 천하를 구제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를 포기하는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공자는 춘추시대를 혼란과 무질서가 팽배한 시대로 규정하지 않고, 사회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각 개인의 책임에 달려있는 열린 시대로 새롭게 인식하였다. 공자는 새로운 시대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前代와는 다른 사회통합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즉, 그는 각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하여 ``개체적 자아``로서의 개인들을 자각시켜 ``책임적 자아``로 육성하여 사회통합의 주체적 역량으로 길러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공자가 제시한 각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사회통합의 방법은 현대사회에 요청되는 새로운 리더십의 모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Humanity has continually tried to find out the ways to integrate and develop the society, which was a common and urgent subject for human beings. However, the ways were different to all ages. Our modern society tries to integrate and develop the society through leadership from capable leaders. This is why the ``leadership`` gains attention as a subject matter from social scientists and professionals in many fields recently. Even in ancient China, efforts to find out the ways for integration of the society have never been stopped. Considering the aspects of social integration of ancient China would be meaningful task in point of providing a clue to look at new models of social integration for the modern society. Therefore, this paper will consider the methods of social integration of ancient China in three categories-the method of the Ju dynasty, the method of feudal lords of the Chunchu era, and the method suggested by Confucius. In chapter two, the aspects of social integration of the Ju dynast which tried to establish social integration through feudalism will be considered. The Ju dynasty has built a safeguard system for the protection of an Emperor`s kingdom through feudalism by investing a man without the last name ``Hee`` with a feud. Also, the Ju dynasty tried to build social integration by intensifying the majority`s control which exercised its influence over feudal lords` countries and by teaming up with the minority. However, the feudalism through blood ties began to be collapsed in the Chunchu era because the feeling of solidarity for the same ancestors has been weakened as time went by. And finally it caused a disturbance. The Ju`s ways to integrate the society through feudalism reached uppermost limit, which caused a movement to find out new ways for social integration. In chapter three, the ways for social integration suggested by the supreme rulers in Chunchu era will be considered. The supreme rulers tried to establish social integration through ``an allied rally`` with non hegemon by putting an end to social disturbance. However, the allied rally of the feudal lords` countries was at uppermost limit because it was based on ``rationality`` in pursuit of national interests. In this kind of situation, Confucius has suggested new ways of social integration. In chapter four, the aspects of social integration presented by Confucius will be considered. The Chunchu era was in a state of disorder because the hierarchy based on feudalism was totally destroyed, and the intellectuals had different points of view about this chaotic era. Hermits expressed an intention to give up their will to save the whole world in the era of the lower dominating the upper. However, Confucius newly recognised this chaotic era as the era for the chance and possibility to integrate the society, which depends on personal responsibility. Based on the new recognition for the era, Confucius suggested different way of social integrity, which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former times. That is to say, he focused on a personal ``responsibility`` and awakened an individual as an ``individual ego`` to a ``responsible ego``. Therefore, this ``responsible ego`` would be an independent and able person who could integrate the society. The way for social integrity suggested by Confucius which focused on a personal ``responsibility`` will be a new leadership model for the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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