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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투(歌鬪)의 시조 수용 양상과 그 의미

          조유영(Jo Yu-Young) 한국시조학회 2009 時調學論叢 Vol.31 No.-

          가투(歌鬪)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져 널리 성행했던 놀이도구이다. 가투가 만들어진 1920년대는 근대화를 위한 선진 문물의 수용이 가속화된 시기이며, 3.1운동에 의해 새로운 민족 담론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또한 문단에서는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문학 장르로서 시조가 자리 매김하던 시기였다. 우리의 전통시가인 시조는 이러한 다양한 배경 속에서 가투에 수용되었다. 1922년 불선사본 〈가투〉, 1927년 신민사본 〈정선 화가투〉, 1935년 한성도서본 〈시조노리〉의 동일 시조 수용 양상을 살펴보면 신민시본 〈정선 화가투〉와 한성도서본 〈시조노리〉는 시조 수용에 있어 어느 정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가투의 시조 수용에 있어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국민문학파의 입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 가투의 시조 수용에 있어 각 제작사들은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각 가투에 수용된 시조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살펴보면 후대에 만들어진 가투일수록 애정을 주제로 한 시조가 강호를 주제로 한 시조보다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1920년대 이후 가투놀이의 연행 주체가 부녀자층으로 변화하면서 그들의 기호가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가투에는 망국에 대한 회고나 나라에 대한 근심, 왕에 대한 충성심을 주제로 한 일군의 시조 작품들이 일정한 비율로 수용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당대인들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시조를 단지 시조창의 사설로만 인식하고 있던 대중들에게 가투는 시조를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이러한 가투의 역할은 우리의 시가사 속에서 정당하게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The Ga-Too was created and became well-known as a game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 1920's was the period that advanced cultures, and things from many other countries were accepted rapidly for modernization. There also was the 3.1 movement which contributed to making lots of discussions about people. In addition, there was the Movement for the Resurrection of Si-Jo that contributed to Si-Jo becoming a typical genre of literature. Therefore one of our traditional forms of poetry, Si-Jo, had been accepted into the Ga-Too with these many backgrounds. Looking into the aspects of this acceptance by Bool-Sun-Sa-Bon 〈The Ga-Too〉 in 1922, Shin-Min-Sa-Bon 〈Jeong-Sun-Hwa-Ga-Too〉 in 1927, Han-Seong-Do-Seo-Bon 〈Si-Jo-No-Ri〉 in 1935, Shin-Min-Sa-Bon 〈Jeong-Sun-Hwa-Ga-Too〉 and Han-Seong-Do-Seo-Bon 〈Si-Jo-No-Ri〉, they all have such similar opinions as they accepted the same Si-Jo. Reasons being that the school of people which contributed to the movement for the Resurrection of Si-Jo influenced the acceptance of Si-Jo in the Ga-Too. And publishers reflected people's tastes when they chose selections of Si-Jo. Classifying all Si-Jos in the Ga-Too according to titles, there are more Si-Jos about love than those about nature, especially among the recent Ga-Too as the Ga-Too players had been changed to women and their tastes were reflected when the Ga-Too accepted Si-Jo. There are numerous Si-Jos about the recollection of colonialization, worries about the country and loyalty to kings in Ga-Too. These are results of reflection of the people's agony about colonialization. Originally, people considered Si-Jo as an explanation of the Si-Jo-Chang, but the Ga-Too had made Si-Jo into one of the most important genres. Consequently, the Ga-Too should be evaluated correctly throughout the History of Poetry.

        •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남유록(南遊錄)』에 나타난 여행 기록의 특징과 의미

          조유영 ( Jo Yu-young ) 南冥學硏究院 2018 南冥學 Vol.23 No.-

          본 논의는 대산 이상정이 남긴 두 편의 「남유록」을 통해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기획되었다. 무진년의 「남유록」은 이상정이 최흥원이 살던 대구의 옻골을 방문하여 그와 함께 팔공산을 유람한 기록이다. 그리고 갑술년의 「남유록」은 이상정이 연일현감 재임 시에 표류한 왜인들에 대한 접위관이 되어 동래를 방문했던 기록이다. 이 두 여행은 그 성격 상 하나는 선비의 사적 여행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관직에 나아간 관료로서의 공적 여행이라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편의 「남유록」은 글쓰기 방식 및 저술 동기 등 여러 층위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이 두 편의 여행 기록들은 장년의 이상정이 남긴 여행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그의 내면세계를 충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두 편의 「남행록」을 통해 이상정의 여행 기록이 가지는 특징과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먼저 이상정이 쓴 이러한 여행 기록은 그가 행한 여행 체험의 구체적인 기록이라는 점과 함께, 조선 후기 선비의 여행과 일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상정의 여행 기록에서는 여행 체험의 솔직한 표현이 다수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상정의 인간적 면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정의 「남유록」두 편은 이상정이 가졌던 사적여행과 공적 여행의 여정 체험이 분명한 차이를 가지며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관료라는 입장이 우선시 되었던 공적 여행과 그 여정 속에서 나타났던 이상정의 고뇌와 갈등을 갑술년 「남유록」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지인들과의 산수 유람이라는 무진년의 「남유록」에서는 선비로서의 사적 여행과 그 속에서의 여행 체험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 두 여행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 시기 대산 이상정의 여행과 그의 내면세계를 다채롭게 살필 수 있게 된다. This paper was proposed that the intention of examining his life and the world of literature through the two types of "Nam-Yu-Rok" which wrote by DaeSan Lee, Sang-Jeong. The Years of MuJin(戊辰) of "Nam Yu-Rok" recorded that Lee, Sang-Jeong visited Choi, Heung-Won's home in Otgol (옻골) Daegu and visited Palgongsan with him. And the years of GabSul(甲戌) of "Nam Yoo Rok" recorded about Lee, Sang-Jeong visited DongRae, to meet Japanese who drifted in korea during he was in public service. These two travels have different characteristics, one being private travel and the other public travel. The two types of "Nam-Yu-Rok" records of these two trips show many differences on different levels, such as writing style and writing motive. However, these two travel records reveal his inner world at this time in the sense that he is the travel record of the late Lee Sang-Jeong. The features and meaning of the ideal travel record are analyzed as follows. First, the travel record written by Lee Sang-Jeong, It is a concrete record of his travel experience. Through this, we will be able to understand the journey of Seonbi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addition, Lee Sang-Jeong's travel records show the frank expressions of travel experience. Lee Sang-Jeong not only experienced various situation but also recorded by travel. In this respect, we are able to identify the human aspects of Lee Sang-Jeong. Finally, Lee Sang-jeong's two travels have a distinction between public travel and private travel. This difference is becoming a distinction factors in travel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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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남지역 가사에 나타난 道統구현 양상과 그 의미-「黃南別曲」과 「黃山別曲」을 중심으로

          조유영(Jo Yu young) 한국언어문학회 2017 한국언어문학 Vol.103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Hwangnam-byeolgok and Hwangsan-byeolgok are written by Gwanbin Lee(1759~?) and Heebae Yoon(1827~1900). These two authors lived in Yeongnam area. Hwangsan-byeolgok is adaptation by Hwangnam-byeolgok . Adapt is a literary custom for Gasa in late Joseon dynasty so researching adapt-consciousness is important between original and different edition. The Aouthor of Hwangsan-byeolgok is not Heebae Yoon but Youngseob Yoon was lived in Sunsan area in 19th century. Then, Youngseob Yoon and Gwanbin Lee lived same area, so it is possible to guess influence relationship between Hwangnam-byeolgok and Hwangsan-byeolgok . Hwangnam-byeolgok and Hwangsan-byeolgok are quite similar but they have lots of gap on descript Dotong. The special situation of Yeongnam Noron is reflected in Hwangnam-byeolgok . However Hwangsan-byeolgok is reflected Yeiongnam Nam-party's Dotong-consciousness. Accordingly, the difference of descript Dotong is an evidence which is could know Youngseob Yoon's adapt-consciousness was made in same community's Cultural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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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서도통가(河西道統歌) >의 서술 양상과 창작배경

          조유영 ( Yu Young Jo ) 한국문학언어학회(구 경북어문학회) 2015 어문론총 Vol.66 No.-

          본고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조선 후기 사대부 가사인 < 하서도통가 >의 서술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창작 배경을 고찰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 하서도통가 >는 서사-본사-결사로 이루어진 가사 작품으로 여타의 도통가계가사와는 달리 도통의 계보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인후의 학덕과 절의를 생애사의 구체적 사건을 통해 서술하고있는 것, 다양한 선현들의 인물평을 인용하여 김인후의 학덕과 절의를 돋보이게한 것, 문묘 종사의 과정과 문묘 종사를 허락한 정조에 대한 찬양을 서술하고있는 것은 하서도통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작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다. < 하서도통가 >에서 나타난 이러한 서술 양상은 김방휘 사건에 의해 흔들리고 있던 하서학맥의 위기의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김방휘 사건은 당대에 큰 사회적 파장을불러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서가문과 하서학맥을 추종했던 호남 사림들이있었다. 김방휘 사건은 하서가문과 하서 김인후를 추종하는 호남 사림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과 사건의 축소라는 과제가그들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 하서도통가 >를 창작하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문묘종사가 절의와 도학적 명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조선 후기의 상황은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조의정치적 후원에 의해 김인후의 문묘종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정조 사후 더욱경직되어 가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인후의 후손 김방휘는 하서문집 간행에 종사하면서 당대 지배층인 서인 노론 계열에 도전하였지만 결국 패배로 귀결되었다. < 하서도통가 > 는 이러한 조선 후기 사회사적 맥락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정치권력에의해 교조화되고, 독점화된 도통 담론이 겉으로는 도학적 순수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조선 후기 정치·사회사적 변화 속에서 더욱 권력 지향적인모습으로 변모해 갔음을 < 하서도통가 >를 통해 우리는 읽어 낼 수 있다. < Haseo-dotongga > hasn`t received attention ``gasa`` of ``Dotongga`` system in late Joseon dynasty for the Korean literature circles. This paper will study description aspects of < Haseo-dotongga > and consider purpose for writing of < Haseo-dotongga >. It provide understanding of presence aspec of gentry gasa in late Josion dynasty. < Haseo-dotongga > consist of prologue-body-epilogue. Its description aspects is very unique by describe concretely. The description aspects reflect awareness of crisis of haseo-dotong by KIM Bangwhi affair. And created for justify and establish haseo-dotong`s legitimacy. The KIM Bangwhi affair take serious damage KIM inhoo`s academic legacy and haseo academic line. So set forth a counterargument and reduction of problem are the purpose of the creation background of < Haseo-dotongga > Social Implication of < Haseo-dotongga > and dotong are including one aspect of social history of politics of late Josi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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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梧臺漁父歌九曲>에 나타난 ‘梧臺'의 문학적 형상화와 그 의미

          조유영(Jo, Yu-Young) 한국시조학회 2014 時調學論叢 Vol.41 No.-

          壽軒 李重慶(1599-1678)의 <梧臺漁父歌>는 연시조인 <梧臺漁父歌九曲>, <漁父詞五章>, <漁父別曲前後六章>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고에서는 <오대어부가구곡>을 고찰하였다. 이중경의 오대 은거는 그가 오대의 승경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隱逸에 대한 그의 열망과 운문산과의 三代에 걸친 인연, 그리고 운문산 일대 강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전대 선현들의 유적과 그들에 대한 숭모 의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대어부가구곡>은 작가가 은거하고 있는 오대와 오대 주변을 대상으로 어부의 일상적 삶을 아홉 수의 시조로 형상화하였다. <오대어부가구곡>에서 나타나는 구곡은 탈속적 이상 공간이며, 작품의 화자 또한 오대의 아름다운 산수 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어부로 표현된다. 이중경은 주변의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당대 사림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에서 ‘生意'를 발견하거나, 대상의 내면이 아닌 외면의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독특한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결국 한낱 초목도 ‘造化의 生意'가 있듯이 자신의 구곡 경영과 구곡가 창작도 나름의 가치 있는 행위로 그가 인식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그의 세계 인식이 <오대어부가구곡>에도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오대어부가구곡>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선현들의 ‘구곡'이 아닌 자신이 실제 경영하고 있는 오대이며,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지향의식이었다. Lee Jung-gyeong(李重慶)‘s <Odaeeobuga(梧臺漁父歌)> is made up three poems stanzaic sijo and this paper contemplate <Odaeeobugagugok(梧臺漁父歌九曲)> Lee Jung-gyeong secluded himself in Odae, because he be fascinated by Odae"s beautiful scenery. However the reason of hidden side of the retire are desire for seclusion, the relationship with Mt, Unmun in three generation, and reverence for ancient sages and their remains in river near in the Mt. Unmun. Lee Jung-gyeong write nine sijo poem <Odaeeobugagugok>, and at the poem he embody fisherman"s daily life who were lived in Odae area. <Odaeeobugagugok>"s gugok is ideal hermitage however it more close real scenery, and a poetic narrator embodied lazy fisherman in beautiful scenery. Lee Jung-gyeong has unique perspective. Particularly finding will to live in junks and consider the appearance"s naturalness as being more important than the inner side. This is he realized his gugok operate and write gugok poem are valuable act, like as plants and 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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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십영(大丘十詠)>에 나타난 대구의 시적 형상과 그 지역 문학적 의미

          조유영 ( Jo Yu-young ) 한국문학언어학회(구 경북어문학회) 2018 어문론총 Vol.77 No.-

          조선 전기의 대표적 관인 문인인 서거정은 외가인 경기도 임진현에서 태어나 중앙 정계를 주 무대로 활동했지만, 조부와 부친의 고향인 대구를 자신의 친향으로 인식하여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이러한 서거정의 관심과 애정이 <대구십영>을 창작하게 된 중요한 동기라 할 수 있다. 서거정의 <대구십영>은 전근대 시대에도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문학으로서 인식되어 지역의 홍보나 대구의 랜드마크로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서거정의 <대구십영>을 지역문학적 시각에서 논의해 보고자 하였다. 서거정의 <대구십영>을 살펴보면 그의 다른 십경시와 비교했을 때, 시적 형상화 방식에 있어 동일한 시어나 시구를 관습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서거정은 대구지역에 대한 감성적 인식을 토대로 지역 공간에서 일어나는 흥취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시에는 그가 지녔던 낙관적 관인의식이 투영되어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애민의식이 나름의 시적 형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시적 형상을 토대로 서거정의 <대구십영>이 지역문학으로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논의하였다. <대구십영>은 조선 중기를 거쳐 근세까지 대구지역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최근에는 근세 대구라는 변화된 지역적 환경 속에서 새롭게 지역 문인들에 의해 대구 팔경이 설정되고, 이를 토대로 다수의 팔경시가 창작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결국 서거정의 <대구십영>이 지역민들에게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의 문학으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eo Geo Jung(徐居正, 1420-1488) is widely known as the great writer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leading role of official literature. Although he did not live in Daegu all his life, but he recognized it as his hometown. Because Daegu is the hometown of his grandfather and father. So he wrote < Daegusibyeong(大丘十詠) > which is ten Chileon-Jeolgu(七言絶句), with a special affection and interest in Daegu < Daegusibyeong(大丘十詠) > is still known as a literary work that represents the Daegu region. However, no research has been conducted in earnest as much as the interest in the work. Therefore, we need to examine the character and value of this work as a local literature. For that reason, This paper is intended to be discussed < Daegusibyeong(大丘十詠) > from the perspective of local literature First, in this thesis, we looked at the poetic imagery of Daegu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y < Daegusibyeong(大丘十詠) >. Based on this, we discussed what < Daegusibyeong(大丘十詠) > can mean as a local literature. This discussion was aimed at revealing the status and value of < Daegusibyeong(大丘十詠) >'s local literature. As previously stated The attraction in Daegu, which have been highlighted in Seo Geo Jung's < Daegusibyeong(大丘十詠) > are still an important cultural space for the people of Daegu. In this regard, the paper is of significant value in that it can provide a new opportunity for local people to understand their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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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趙榥의 箕裘謠에 나타난 道統구현 양상과 그 의미

          조유영(Jo, Yu-Young) 한국시조학회 2019 時調學論叢 Vol.50 No.-

          우리의 문학사에서 조선 후기 사대부 작가들의 작품들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 또한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오롯이 녹아져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조황의 〈箕裘謠〉를 유학의 핵심적 가치인 도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箕裘謠〉의 구성과 작품에 나타난 道統의 구현양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조황의 도통 인식이 가지는 의미를 그의 현실인식과 창작의도를 통해 논의해 보았다. 조황의 기구요 는 자신의 아이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조황은 유학의 참된 도를 출처의 문제에서 찾고, 이를 온전히 실현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도통 계보를 설정하여 제시하였다. 이는 유학의도가 흔들리는 당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유자로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기구요 는 복고적 사유에 의한 수동적인 현실 대응이 아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통해 당대의 혼란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실천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Jowhang(1803-?) is a writer who wrote a vast number of 111 Sijo in 『Samjuksaryu(三竹詞流). Nonetheless, he is still not properly assessed in our literature. The works of the authors of the late Choson dynasty need to be revised out of prejudice about the medieval aesthetic and retroistic tendencies. Therefore, it is possible to clearly grasp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value of Sijo in the late Joseon Dynasty. From this point of view, I examined the 〈Kiguyo(箕裘謠)〉 of the Johwang, which is Yeonsijo of the late Joseon Dynasty. 〈Kigyou〉 is the main subject of Dotong(道統), which is the core value of the Neo-Confucianism. Therefore it has value as an important data to grasp the inner consciousness of Johwang. Therefore, in this article, I examined the system of 〈Kiguyo〉 and the genealogy of the Dotong in the works and examined the aspect of the Dotong. In addition, I discussed the features and meaning of the Dotong recognition of based on his perception of reality. It is expected that this discussion will help to expand the framework of understanding of the existent condition of the Sijo in the late Joseo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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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남행록(南行錄)』소재 퇴계 기행시의 특징과 의미

          조유영 ( Yu Young J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5 東方學 Vol.32 No.-

          본고에서는 퇴계 이황이 계사년 남행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들을 대상으로 여행 일정과 장소, 여행 기간 동안 교류했던 인물들을 재구성하였다. 퇴계의 남행은 대략 두 달 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고, 여행지의 풍물들을 다채롭게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여정 체험들을 기행시로 창작하였다. 『남행록』 소재 기행시의 특징은 두 가지 정도로 제시할 수 있다. 먼저 퇴계는 계사년 남행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시로써 교류하기도 하고, 옛 선현들과 관련된 장소를 유람하면서 시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퇴계는 그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를 긍정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 속에서 형성된 긍정적 가치는 기행시에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와 함께 그는 남행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섬세한 감성과 그만의 시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형상화하였다. 『남행록』 소재 기행시는 두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 청년기 퇴계에게 계사년 남행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며, 이러한 내적 성찰의 결과가 기행시에 투영되었다. 둘째, 계사년 남행 중 창작한 기행시들은 여정 체험의 감성적 기록이었으며, 청년기 퇴계의 시 세계를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This thesis recast journey``s schedule, place, and peaple who were meet on journey by Toegye``s poems was written at the southern provinces journey on Year of Gye-Sa(癸巳). He met many people and the institutions and customs of southern provinces on two month journey. Then he write travel poetries by journey experience. Travel poetries in Nam-hang-rok(南行錄) have two features. First, Toegye interact with people who were met on southern provinces journey, by poem, and verse at the place was related with ancient sages. Through these, Toegye internalize by affirm and sympathy people``s values or life attitude, the poems seek identity with object. For this his poetic imagination recast and embody new world what he detected on the journey. Travel poetries in Nam-hang-rok have two meaning. First, the journey was an opportunity that could life rumination and introspect inside, and the results are travel poetries in Nam-hang-rok. Second, these poems are the journey``s product of esthetics and emotional record. Furthermore Toegye make collection of travel poems show Wa-yu(臥遊) culture``s the actual figure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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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향촌사족의 이상향 지향과 그 의미

          조유영(Jo, Yu-young) 우리말글학회 2016 우리말 글 Vol.71 No.-

          이관빈(李寬彬)(1759~?)의 〈황남별곡(黃南別曲)〉은 서사-본사-결사로 이루어진 가사 작품이다. 본사는 본사1과 본사2가 병렬적으로 구성된다. 본사1은 작자가 황남구곡을 찾게 되는 원인이 되고, 본사2는 그 결과로 이어짐으로써, 이들은 작품 내에서 인과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작자의 산수 유람과 구곡 찾기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조선 후기 향촌사족인 이관빈의 이상향 찾기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발견한 황남구곡이라는 이상향은 산수가 가진 실체적 아름다움보다 성리학적 이념을 체현할 수 있고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황남별곡〉의 구곡은 산수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성리학적 이념에 경도된 관념적 이미지로만 형상화되고 있다. 그가 찾은 〈황남구곡〉은 사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찾기라는 과정 속에서 발견된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향촌 사족의 이러한 이상향 찾기는 결국 사대부 계층의 분화라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향촌사족으로서의 내적 갈등과 고뇌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관념의 강한 견인력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향 지향에는 현실인식의 관념적 내면화가 그 기저가 되었다. This study suggested the meaning of aiming for utopia of country aristocrat in late Joeson dynasty for Gugok imagery that examine descriptive aspect 〈Hwangnambyeolgok(黃南別曲)〉 was written by Iee gwan-bin(李寬彬, 1759~?) 〈黃南別曲〉 be composed of prologue-interlude-epilogue, and interlude has juxtaposition of interludeⅰ & interludeⅱ. Interludeⅰ is cause of visiting 〈黃南別曲〉 and interludeⅱ is result of the visiting, so we know these two paragraphs are established by causality. Therefor these descriptive aspect and composition function as propose Sollen of landscape sightseeing and finding Gugok. Ultimately 〈黃南別曲〉 show finding utopia process for 李寬彬 who is country aristocrat in late Joeson. ‘黃南九曲' was found 李寬彬's landscape sightseeing is not ontic picturesque of landscape but area of embody and project his Neo-Confucianism ideology. This being so 〈黃南別曲〉's Gugok is embodied ideational image too much Neo-Confucianism ideology without substance landscape despite utopia of country aristocrat in late Joeson dynasty. 〈黃南別曲〉―the utopia was he found― is the area was discovered process on finding identity. In this country aristocrat in late Joeson dynasty's finding identity was the result of change of society in late Joeson dynasty which is internal differentiation of gentry class, and country aristocrat's inner conflict • anguish who was living in the change.

        • KCI등재

          淸臺 權相一의 淸臺九曲 경영과 그 의미

          조유영(Jo Yu-young) 대동한문학회 2016 大東漢文學 Vol.4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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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won Sang-il exceptionally hold high government position in Nam party in Yungnam. However, he was devote himself to Neo-Confucianism and cultivate his mind in his life. He retired to hermitage in ‘Jondoseowa'(尊道 書窩) and ‘Cheongdae-Gugok'(淸臺九曲). There are symbolic area of his Confucian scholar s life, and subject matter of <journal of Jondoseowa>(尊 道書窩記), <Cheongdae-Gugok poetry>(淸臺九曲詩). Generally gugok poetry has detachment from reality spatial awareness, but ‘CheongdaeGugok' has associate from reality spatial awareness cause of there is Gwon Sang-il s meatspace and he aimed idealize real space. Nam party in Yungnam include Gwon Sang-il actively fulfill NeoConfucianism selfcultivation-discourse by managing gugok. It is the result of accept wholeheartedly Toegye s landescape awareness. They build a cultural norm from gugok-culture, so gugok-culture could be extende in Yungnam area. Also Nam party in Yungnam set gugok centrally clan village is important feature. They tried position in country and establishment of country aristocrat identity by build ‘Jeongsa'(亭舍) and managing gugok on classic of ancient sages retirement, and enjoy gugok-culture which are writing gugok poetry and creating gugok painting. These are typical case of gugok-culture of Yungnam in late Joseon dynasty. 본고에서는 18세기 중반 문경지역 금천을 배경으로 淸臺 權相一(1679~ 1760)에 의해 경영되었던 淸臺九曲과 <淸臺九曲詩>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권상일은 조선 후기 영남 남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영달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평생 진퇴를 거듭하면서도 학문과 수양에 더욱 매진했 으며, 흔들리던 퇴계학맥의 입지를 재구축하고자 노력했던 성리학자였다. 그리고 그가 만년에 은거했던 尊道書窩와 청대구곡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유자적 삶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청대를 포함한 조선 후기 영남 남인들은 구곡 경영을 통해 유가 수양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그들의 학문적 종장이었던 퇴계의 산수 인식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들은 구곡문화를 하나의 문화규범으로 만들어 나갔기에, 영남 지역의 구곡문화가 이후 더욱 확대 되어 나갈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영남 남인들은 향촌의 세거지를 중심으로 구곡원림을 설정하고, 구곡문화를 향유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조선 후기 영남지역 남인들의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조선 후기 독점화된 정치권력의 구도에 의해 향촌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흔들리는 향촌 내의 입지와 사족 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선현들의 은거를 전범으로 삼아 세거 지에 정사를 건립하고 구곡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구곡시 창작이나 구곡도 제작 등을 통해 구곡문화를 더욱 활발히 향유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대의 존도서와 건립과 청대구곡 경영은 이러한 조선 후기 영남 지역 구곡문화의 표지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그가 경영한 청대구곡은 주자의 무이구곡 경영을 전범으로 삼아, 구곡이 가지는 유가적 이상 공간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향촌에 구현하고자한 결과였다. 조선조 사대부들이 창작했던 다수의 구곡시에 형상화되는 구곡은 일반적으로 현실과 유리된 이상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청대구곡시>에 형상화된 공간은 현실과 밀착된 공간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결국 청대가 청대구곡 경영을 통해 꿈꾸었던 이상향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 공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공간의 이상화가 청대 권상일이 꿈꾸었던 청대구곡이었음을 그의 구곡시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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