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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ㆍ18 민중항쟁에서의 의료 공간과 의료인의 대응

          정호기(Jung Ho-gi),양야기(Yang Ya-ki),김기곤(Kim Gi-gon)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8 민주주의와 인권 Vol.8 No.2

          한국에서 비전시에 다수의 민간인 총상 피해자가 발생한 것은 4월혁명과 5ㆍ18 민중항쟁뿐이다. 피해자들은 의료 공간, 즉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료 공간과 의료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글은 5ㆍ18과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① 의료 공간이 어떻게 재편되고 운영되는가를 고찰하고, ② 서로 다른 목적과 시선을 갖는 세력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전유하려 했는가를 전남대 병원을 중심으로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를 통해 전남대 병원에서의 5ㆍ18이 특정한 측면으로만 기억되고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남대 병원은 5ㆍ18이라는 심각한 위험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했으나, 이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와 대립 또는 협의가 존재했던 공간이다. 그럼에도 위협과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긴급 상황에서의 의료 공간은 즉각적 변화와 자발성 그리고 지원에 의해 작동될 수 있었다. 의료 공간은 치료 이외에도 도피, 전투, 무기 보관 등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일부 의료인들은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지만 5ㆍ18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The only times mass civilian casualties from gunfire occurred in Korea, other than during wars, were the April Revolution and the 5ㆍ18 Peoples' Uprising. Although the majority of victims were transported to and received treatment at medical space, or hospitals, there has been very little study done about the medical space and personnel. This paper aims (1) to inquire into how medical space was reorganized and operated, and (2) to find out how forces with different objectives and views each attempted to take control over such spaces, particularly in Chonnam University Hospital,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situation, such as during the 5ㆍ18 Peoples' Uprising, We learned through this study that the uprising has been remembered and recorded in Chonnam University Hospital only for some of its specific aspects. While the hospital was relatively safe from the direct danger of the uprising, in order to maintain its safety, diverse measures were taken and conflicts and deliberations arose. Nevertheless, it was not completely free from threat and danger. Medical space under such an emergency situation could be operated based on instantaneous change, spontaneity and outside support. Aside from provisions for treatment, medical space were also utilized as hideouts, battle grounds and arms storage areas. And, some medical personnel suffered trauma in relation to the 5ㆍ18 Peoples' Uprising even though they were not direct victims of the incident.

        • KCI등재

          저항의례의 국가화와 계승 담론의 정치

          정호기(Jung Ho-Gi) 비판사회학회 2007 경제와 사회 Vol.- No.76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는 이전과 다른 기원과 배경을 가진 사건들을 기억하는 의례들이 생겨났다. 이 글은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높은 위상을 갖는 5ㆍ18민중항쟁의 추모의례를 하나의 문화 구조로 보고, 이것의 작동과 효과를 분석했다. 구체적인 고찰 내용은 저항의례의 국가화에 따른 공간과 주체의 변화 및 효과, 그리고 계승 담론을 둘러싼 정치이다. 이 연구는 현장조사의 관찰법에 의거하여 수집한 사진, 조사 기록, 문자 및 신문 자료 등을 분석하여 이루어졌다. 망월묘역에서의 저항의례는 마당극과 극장이 융화된 공간성에 기반을 두어 진행되었다. 반면, 5ㆍ18묘지에서의 국가화된 추모의례는 여느 국가의례와 구별되지 않는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확연한 단절을 보여주었다. 추모의례의 국가화는 정부의 관례, 일반 시민에 대한 통제, 행사의 진행을 위한 동원의 원칙에 따라 참여 주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저항의례에서 자발적 참여 주체였던 시민과 학생의 수는 현저하게 줄었다. 기념식을 전후하여 의제화된 5ㆍ18민중항쟁 계승 정신은 국가에 의해 전유된 담론, 통제 및 억압된 담론, 지역을 매개로 협상된 담론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것들은 대립, 타협 또는 이해관계로 특정화된 정치적 행위의 담론이다. Since the mid-1990s, new ceremonies and rituals have come into being that have different types of origins and backgrounds than those of preceding ones. Among these, the memorial ceremonies to commemorate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are the largest in scale and have the highest status. The uprising took place in Gwangju, Korea, back in 1980. This paper views the memorial ceremonies to mark the uprising as constituting a cultural structure and analyzes the cultural structure’s functions and effects. More specifically, the paper examines how the nationalization of a ceremony that marks a resistance ceremony changes and influences who holds the ceremony where and who participates in it. It also takes a close look at politics centering on discussions of who inherits the spirit of the resistance. This study analyzes newspaper contents, text, investigative records and photographs collected from on-site observations. The memorial ceremony as a resistance ritual at Mangwol Cemetery employed a space that combine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theaters and Madanggeuk, traditional Korean outdoor theaters. Meanwhile, the nationalized memorial ceremony held at the May 18 Cemetery was no different from the typical national ceremonies of any average nation in form and content, revealing a clear discrepancy. The nationalization of the memorial ceremony brought about considerable changes to the participants as the government’s conventions, principles for mobilizing participants and control of participants were applied. As a result, many fewer civilians and students, who were voluntary participants in the resistance ritual, participated in the nationalized ceremony. Discussions of the spirit of the uprising taking place before and after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memorial ceremony are appropriated, controled and suppressed by the state, as well as negotiated through regions. The discourses form relationships of confrontation, compromise or understanding to be used as discourses regarding political act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examine the changes and effects brought about by the nationalization of a resistance ritual and engage in a broad range of discussions to produce a solution.

        • KCI등재

          Factors Influencing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of Nursing Students

          정호기(Jung, Ho Gi),양야기(Yang, Ya Ki) 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2020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Vol.20 No.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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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was designed to identify knowledge, attitude, and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of nursing students, and to describe those factors affecting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The participants were 164 nursing students who agreed to participate in this study. Data were collected between September 1st and September 30th, 2019, from a self-administered questionnaire and were analyzed using the t-test, One-way ANOVA, Pearson correlation coefficients and multiple regression with the SPSS 24.0 program.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were significantly different by participant s gender, educational experiences of radiation protection and educational needs of radiation protection. Defensive knowledge against radioactive rays were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In the multiple linear regression models, defensive knowledge against radioactive rays, defensive attitude against radioactive rays, gender, educational experiences of radiation protection, and educational needs of radiation protection were statistically significant predictors of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which accounted for 26% of variance in dependent variable. This study concluded that defensive knowledge against radioactive rays, attitudes among nursing students is important to promote to enhance self-efficacy on defensive behaviors against radioactive rays is highly recommended. 본 연구는 간호학과 4학년을 대상으로 방사선 방어 지식, 방사선 방어 태도,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의 정도를 파악하고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고자 시행되었다. 자료 수집 기간은 2019년 9월 1일부터 30일까지이며, G 광역시와 J도 소재 3개 간호대학생 1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자료 분석은 SPSS/WIN 24.0 프로 램을 이용하여 기술통계, one way-ANOVA, Pearson’s correlation coefficients와 다중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 대상자의 방사선 방어 지식은 9.68점(15점 만점), 방사선 방어 태도는 4.29점(5점 만점),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은 3.36점(5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방사선 방어 지식은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과 유의한 상관 관계를 보였다(r=.37, p<.001), 다중 회귀분석 결과,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방사선 방어 지식(β=.34, p<.001), 성별(β=-.24, p=.001), 방사선 관련 교육 요구도(β=-.23, p=.001), 방사선 관련 교육 경험(β=.18, p=.010) 순으로 나타났으며 모형의 설명력은 27% (F=13.18, p<.001)로 나타났다. 따라서 간호대학생의 방사선 방어 행위 자기효능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방사선 방어 지식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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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정치ㆍ사회적 과정과 자원 동원

          정호기(Ho-Gi Jung) 한국사회학회 2004 韓國社會學 Vol.38 No.2

          기념사업은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국가적 기념사업의 정치ㆍ사회적 배경과 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특히 이 연구는 현재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들에 어떤 자원들이 동원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ㆍ사회적 배경 및 과정에서는 ① 원초적 사건의 특성, ② 기억의 주체와 방법, ③ 정치적 기회구조를 중요하게 검토했고, 기념사업에서의 자원 동원과 관련해서는 ① 조직적 자원, ② 경제적 자원, ③ 사회문화적 자원 등을 고려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주의적 국가에 대한 항거와 희생 및 집합적 죽음이 지닌 상징성, 이를 기억하려는 집단들의 존재와 의례투쟁, 그리고 문민정부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기회구조 등이 존재 및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기념공간의 조성과정을 보면, 기념사업의 추진계기와 기억투쟁의 전개 형태 등에 따라 다양한 참여 주체들의 특성을 반영한 여러 가지 기념공동체들이 등장하였다. 기념사업은 초기에는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들이 모색되었으나, 결국 국비로 추진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념공간들은 전통적 추모풍습의 모방, 국가의례형 기념공간의 외형 추구, 권위와 제도적 안정성을 반영한 건축양식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원리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민주화운동 기념공간과 상징물의 조성은 저항적 기억투쟁의 승리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적 기념사업의 목적인 저항성의 제도화가 수행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Memorial projects represent in general the process and result of ‘Politics of Memory’. This paper attempts to analyse both the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 and the process of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memorial projects in Korea that have been initiated by the government. Especially, the organization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esources mobilized are focused on in that analysis. Launching of the above-mentioned projects was enabled mainly by the following factors: symbolism of the sacrifices and deaths accompanied by the resistance to the authoritarian state, rise of the commemorative organizations and their ceremonial struggles, and formation of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 During the process of formation of commemorative spaces, a variety of memorial communities has emerged, according to the occasions for memorial projects and the developmental pattern of memory struggle. At the inceptive stage of the memorial projects, several methods were sought to secure economic resources. But they were eventually replaced by the government funding, which resulted in creating a number of issues and problems. Formation of commemorative spaces was also influenced by some social and cultural principles, such as perpetuation of traditional memorial customs, pursuit of the form modelled after those spaces for national ceremonies, and adoption of an architectural style representing authority and systemic st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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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의 사회운동 기념물 건립과 표상

          정호기(Ho-Gi, Jung) 비판사회학회 2012 경제와 사회 Vol.- No.94

          사회운동은 정치·사회의 변화에 중대한 견인차이다. 이에 대한 기억과 기념의 일부가 ‘기념물’로 표상되었다. 이 글은 1980년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높은 위상과 의미가 부여되었던 5·18과 5월운동을 기념물에 의거해 분류하고, 그 표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 대상은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건립했던 기념물이다. 이 글은 정치체제의 변동을 주목하여 시대성, 공간성, 조형성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기념물이 표상하는 의미를 규명한다. 기념물은 5·18에 관한 것과 5월운동에 관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시대성에서 보면, 5·18에 대한 국가의 재평가가 기념물 건립과 건립 주체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5월운동 기념물의 건립은 노태우·김영삼 정부시기에 집중되었고, 이후는 급감했다. 공간성에서 보면, 지역에 따라 건립 여부가 뚜렷한 편차를 나타냈다. 기념물의 건립 장소는 지속성과 안정성이 중요시되었다. 조형성에서 보면, 석재의 장례 기념비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여러 재질의 조형물과 시설로 점차 다양화되었다. 기념물의 표상 변화는 5·18에 대한 정의와 정명에서 확인되었다. 기념물의 서사는 추모와 계승으로 양분되었는데, 주제와 대상 그리고 시기에 따라 달랐고, 혼합된 경우도 있었다. Social movements were major driving forces, leading political and social changes in Korea. Some parts of remembrance and commemoration of social movements are represented by the term ‘memorial.’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classify and analyze 5·18 and May-Movement by memorials, which were significant in social movements from the 1980s. Research subjects were focused on the timing, spatiality and plasticity of memorials constructed by civil society, with changes in the political system. They also identified the symbolism of memorials. Memorials were classified relative to 5·18 and May-Movement. In terms of timing, the national assessment on 5·18 was influenced towards constructing memorials and changes in the fundamental construction of memorials. Construction of May-Movement memorials reached most during the administrations of Kim Young-Sam and Noh Tae-Woo, but thereafter subsequently decreased. In terms of spatiality, memorial location varied significantly depend on the region. Continuity and stability of memorial construction sites were and are highly respected. In terms of construction resources, stone tombstones were a mainstay, but have gradually diversified in the form of sculptures and by various other materials. Changes in the representation of memorials were identified by definition and nomenclature. Memorial narrative has been divided into two categories mourning and succession. These are different, depending on the subject, target and time period. There were also many mixed c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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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사업으로 본 ‘5·18’의 의미 변용

          정호기(Ho-Gi Jung) 한국언론정보학회 2015 한국언론정보학보 Vol.71 No.3

          한국전쟁 이후에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5·18’ 만큼 사회적 기억의 편차가 컸던 경우는 드물 것이다. 5·18은 다른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들에 비해 의미의 변용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그래서 이 글은 먼저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5·18의 의미가 변용되었던 배경과 논리를 파악하고, 이것이 5·18기념사업의 관점과 형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찰한다. 5·18기념사업에 관한 인식과 형태는 2000년을 전후하여 크게 달라졌다. 이전 시기의 기념사업은 사회운동 논리가 제도화의 논리로 일정하게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에는 민주성지와 성역화의 담론이 중심을 이루었고, 기억투쟁의 성격을 띠었다. 반면 이후의 시기에는 5·18의 의미가 문화도시와 인권도시를 조성하는 역사적 자원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5·18의 의미는 때로는 지역 발전 담론으로 전유되었고, 때로는 도시차별화 전략의 소재로 채택되었다. 이에 맞추어 기념사업이 추진되었던 형태도 기억투쟁형에서 유산산업형으로 달라졌다.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has been considered to be specific case of the big deviation in social memory among the events that occurred after the Korea War. Compared with other events associated with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is special in that can be achieved various changed meaning. In this study, primary focus will be on the background and logics to show what changed the meaning of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memorial project. And to investigate influences of change of meaning on perspectives and forms of memorial projects. Recognition and forms of memorial projects on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had been largely changed around 2000s. Memorial projects were the aspects that are the logics of the social movements absorbed into the logics of the institutionalization before 2000s. During this period, it was done primarily the discourse of a holy ground for democracy and sanctuarization, had characterized the nature of the struggle of memory. After 2000s,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has been interpreted historical resources to create a cultural city and a human rights city. Sometimes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was appropriated by local development discourse, and sometimes was adopted as the material of differentiation strategy in the city. Form of memorial projects has also been changed type of struggle of memory to type of heritage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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