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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성모병원

        정은주,Jeong, Eun-Ju 대한병원협회 2004 대한병원협회지 Vol.33 No.6

        그곳은 종교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옮겨다 심었다. 고즈넉한 병원뜰의 성모마리아상이 몸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줄 것만 같고, 병원 한 켠에 자리한 치매요양원에서 흘러나오는 엇박자 노랫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온다. 노란 은행나무와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날, 종교가 주는 믿음과 사랑이 병원의 최첨단 의학기술과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포항성모병원을 찾았다.

      • KCI등재

        신학대학도서관의 장서개발정책 수립에 관한 연구

        정은주,곽철완,Jeong, Eun-Ju,Kwak, Chul-Wan 한국비블리아학회 2015 한국비블리아학회지 Vol.26 No.1

        본 연구의 목적은 국내 신학대학교도서관의 장서개발정책 수립 요인과 장서개발정책 모형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장서개발정책 사례로 국외 신학대학교도서관의 장서개발정책 구성요소 및 세부사항을 분석하였고, 국내 신학대학교도서관의 장서개발정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신학대학교도서관에서 장서개발정책 수립을 위해 고려해야 할 외적 환경요인과 내적 요인을 밝히고 이를 기초로 서문, 장서의 선정, 장서의 수집, 예산, 장서의 유지 및 관리, 상호협력과 지적자유, 장서개발정책 개정의 7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국내 신학대학교도서관의 장서개발정책 모형을 제안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pose established factors and a model of collection development policies for the libraries of theological universities in Korea. To achieve purpose of the study, we analyzed of elements and details of collection development policies at libraries of theological universities in overseas. The study then conducted a survey to understand the current status of collection development policies at libraries of theological universities in Korea. Based on the above results, reflecting both the external and the internal factors, the investigator presented a model of collection development policies by identifying seven elements that should be included when developing the policy: prefaces, collection selection, collection gathering, budget, collection maintenance, mutual cooperation and intellectual freedom, and revision of collection development policies.

      • KCI등재

        Oligopeptide transporter 관여 유전자 도입 형질전환벼의 고온스트레스 내성 증진

        정은주,송재영,유달아,김미선,정유진,강권규,박수철,조용구,Jeong, Eun-Ju,Song, Jae-Young,Yu, Dal-A,Kim, Me-Sun,Jung, Yu-Jin,Kang, Kwon Kyoo,Park, Soo-Chul,Cho, Yong-Gu 한국식물생명공학회 2017 식물생명공학회지 Vol.44 No.3

        지구온난화로 인해 온도 상승에 따른 고온 스트레스는 전세계 많은 지역에서 농업적으로 문제가 되어 세계 3대 곡물인 벼의 생산에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식물은 생장하면서 다양한 환경스트레스에 노출되며, 이러한 스트레스는 작물의 생장, 발달, 수확량 등에 영향을 미친다. 본 연구는 벼의 안정적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벼 유래 OsOPT 유전자를 이용한 형질전환 후대에서 고온 조건하에서도 생육이 가능한 계통을 선발하여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먼저, OsOPT10 유전자 도입 형질전환 벼를 이용하여 고온 처리에 따른 저항성 계통을 선발하고, 선발된 계통의 생리적 특성을 분석하였으며, 분자적 특성을 qRT-PCR을 통해 유전자의 발현 양상을 분석하였다. 고온 스트레스에 의한 세포막 피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전해질 누출(electrolyte leakage), 삼투조절제 역할을 하는 수용성 당 및 proline 함량 분석을 하여 대조구와 비교분석 하였다. 본 실험에서 고온 처리에 의한 가용성 당 함량의 변화는 OsOPT10-16 형질전환 벼를 제외하고 OsOPT10-1와 OsOPT10-7 계통이 WT 보다 당 함량이 높게 나타났다. 모품종 동진에 비해 형질전환 벼 계통의 EL 값이 낮게 나타난 것과 가용성 당 함량이 비슷하거나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OsOPT10 형질전환 벼가 고온 스트레스에서 저항성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판단하였다. Rice (Oryza sativa) cultivars show an impairment of growth and development in response to abiotic stresses such as drought, salinity, heat and cold at the early seedling stage. The tolerance to heat stress in plants has been genetically modulated by the overexpression of heat shock transcription factor genes or proteins. In addition to a high temperature-tolerance that has also been altered by elevating levels of osmolytes, increasing levels of cell detoxification enzymes and through altering membrane fluidity. To examine the heat tolerance in transgenic rice plants, three OsOPT10 overexpressing lines were characterized through a physiological analysis, which examined factors such as the electrolyte leakage (EL), soluble sugar and proline contents. We further functionally characterized the OsOPT10 gene and found that heat induced the expression of OsOPT10 and P5CS gene related proline biosynthesis. It has been suggested that the expression of OsOPT10 led to elevated heat tolerance in transgenic lines.

      • KCI등재

        FBG를 삽입한 사냑 루프 대역 통과 필터의 해석

        정은주,정명영,김창석,Jung, Eun-Joo,Jeong, Myung-Yung,Kim, Chang-Seok 한국광학회 2007 한국광학회지 Vol.18 No.2

        사냑 고리 광섬유 간섭계의 특성을 이용하여 FBG의 반사특성을 투과특성으로 전환하는 고효율의 파장 선택 필터를 제안하고 수식적으로 분석 및 구현하였다. 제안된 대역 투과 필터는 사냑 고리 간섭계 구조에 FBG를 삽입하여 구현하였다. 고효율의 가변형 파장 선택 필터는 편광조절기에 의해 FBG 브래그 파장영역이외의 영역은 사냑 효과로 광의 세기를 가변적으로 투과하도록 조절하였고, 브래그 파장영역에서는 마이켈슨 간섭효과로 20 dB 이상의 소멸비를 갖는 광 투과를 얻었다. A tunable band-pass filter of fiber Bragg gratings incorporating the Sagnac loop interferometer configuration is presented. The proposed band-pass filter with extinction ratio 20 dB has practical advantages in terms of price and performance in comparison with the conventional band-pass filter using a circulator.

      • KCI등재

        치위생과 학생의 탄산음료 섭취실태에 관한 연구

        정은주,윤혜정,Jung, Eun-Ju,Youn, Hye-Jeong 한국치위생학회 2017 한국치위생학회지 Vol.17 No.4

        Objectives: The purpose of the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carbonated beverage consumption and related factors of dental hygiene students in Gwangju Jeonnam. Methods: A self-reported questionnaire was completed by 343 dental hygiene students in the Gwangju Jeonnam area from May 17, 2017 to June 1 based on convenience sampling. The questionnaire consisted of general characteristics of the subjects, the frequency of carbonated beverage intake, its degree of impact on oral health, oral care behavior following the intake of carbonated beverages, and the method of intake. Results:There were 293 people (85.4%) who drink carbonated beverages. The intake frequency was an average of 3.9 times a week, and the most frequently consumed beverage was cola with an average of 1.8 times a week. The intake frequency of carbonated beverage was correlated with a higher share of the cost of the beverage in the subject's monthly allowance, a lower intention of ceasing intake of carbonated beverage henceforth, and a lower grade. Conclusions: It is necessary to raise awareness on carbonated beverages through nutrition education concerning beverages including the harmful effects of carbonated beverages and reinforcement of oral health education in regular education courses. In addition, it is considered necessary to refrain from the consumption carbonated beverages by oneself as a preliminary dental hygienist.

      • KCI등재

        차강 박기정의 《활정십경백납도병》 연구

        정은주(Jeong, Eun-joo)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장서각 Vol.0 No.39

        강릉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인 李乃蕃(1703~1781)이 1748년 터를 잡은 이래 명실상부한 장원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후 선교장은 금강산과 설악산, 영랑호, 경포대 등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전국의 명류들이 모이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선교장의 열화당과 활래정은 이곳을 거쳐 간 많은 묵객들과 서화가들의 자취가 다수 남아 있다. 그중 주목되는 것은 『강원도지』에 근대 관동지역 서화의 대가로 알려진 此江 朴基正(1874~1949)의 작품이다. 박기정은 彛齋 權敦仁(1793~1859)의 문인으로부터 수학한 후 위정척사의 영수였던 유인석 휘하에서 의병활동에 가담하여 일본에 저항하였다. 그는 원주와 강릉을 배경으로 많은 서화 작품을 남겼으나 그의 화명은 화단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일제 주도의 서화협회 등록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박기정은 일제강점기 선교장 주인이던 이근우와 그의 아들 이돈의의 적극적 후원으로 선교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글은 강릉 선교장에 소장된 차강 박기정의 《活亭十景百衲圖屛》을 중심으로 그 창작 배경이 된 활래정의 문화사적 의의와 작품 내의 제시 및 화풍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박기정의 《활정십경백납도병》은 1946년 활래정 수석지관에서 제작되어 선교장 주인 이돈의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이러한 百衲屛風은 方形, 圓窓, 扇面 등 다양한 화면에 각각의 주제를 모아 하나의 병풍에 담은 것으로 19세기에 새로 등장한 회화형식이다. 백납도병은 당시 物譜 성격의 청완품에 대한 수집과 완상, 이미지 편집과 재배열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활정십경백납도병》은 편화를 별도로 부착하지 않고 병풍 면에 직접 여러 화면을 구획한 후 그림을 그려 넣은 형태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화면에 그린 여러 종류의 화목과 화제를 적은 서예 작품에 이르기까지 박기정의 서화 세계를 종합적으로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백납도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화목인 산수는 박기정의 현존 작품에서는 드물게 나타나 더욱 의미가 있다. 대개 강안의 어촌 풍경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경포를 생활 무대로 한 선교장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이 모두 실경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박기정은 남송대 강남지역 화가들이 망국의 쇠잔한 정취를 산수화에 이입하는 ‘殘山剩水’의 구도를 빌려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는 그의 작품 활동 시기가 일제강점기와 점철되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박기정의 작품 중 묵매는 『완당화보』를, 석란은 『석파화보』를 임모한 작품이 전하여 이들 화풍과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박기정의 서화 세계는 사심이 없는 경지에서 붓을 잡아야 한다는 ‘用筆在心, 心正則筆正’과 초월의 자유를 추구하는 ‘秋水精神’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청강 장일순, 화강 박영기에게 전수되어 현대화단까지 그의 화맥이 계승되었다. This paper focused on the cultural background Hwallae-jeong pavilion and painting style of the ten views of Hwallae-jeong pavilion painted by Park Gijeong ( 1874~1949). Since Seongyojang House was the former upper class residence of the Yi Naebeon (1703-1781) noble family of Gangneung, Gangwondo, his son Yi Sichun and grandson Yi Hu has credited with their family’s economic success. As more and more writers and artists traveled to the eight famous spots in Eastern Korea, such as Geumgang Mountain, Seorak Mountain, Gyeongpo-dae pavilion and Yeongnang-ho Lake, Hwallae-jeong pavilion became an attraction among prominent men of the times. Yeolhwa-dang and Hwallae-jeong pavilion of Seongyojang House, as the cradle for painters and calligraphers, possessed works of Cho Inyeong, Kim Gyujin, Jeong Byeongjo, Kim Donhee, Kim Taeseok, Ryu Jinchan and Park Gijeong. The ten views of Hwallae-jeong pavilion painted by Park Gijeong in 1946 for Yi Donui, owner of Seongyojang House. It was a ten-fold folding screen of Baengnabdo (百衲圖) style painted with various pictures in quadrangle, circle and fan-shaped line. The ten-fold folding screen of Baengnapdo has origin in Mulbo (物譜) to take pleasure in works of art and visual images in 19th century. The ten views of Hwallae-jeong pavilion shows the various paintings and calligraphies of Park Gijeong. His calligraphies were motivated literati poetry of China and Joseon, Park’s own poem and Cho Inyeong’s poetry of Hwallae-jeong pavilion by poem rhythm of Zhu Xi. Park’s calligraphy is so-called Chagang style, modified styles of Kim Jeonghui and Gwon Donin. Every screen of the ten views of Hwallae-jeong pavilion folding screen is composed of seven sections. It was painted in the literary artist’s style of inkand wash painting. Especially this work includes rare landscapes as well as four gracious plants, grapes, oddly shaped rocks and withered trees. His landscapes described our country devastated in Japanese colonial era by Canshan shengshui (殘山剩水) style of Southern Song Dynasty. The paintings and calligraphies of Park Gijeong are seeking for the selfish stage and transcendental idea, so-called ‘Qiushui Jingshen ( 秋水精神)’. This tendency of his works passed to his grandson Park Giyeong and Jang Ilsun in modern ar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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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사정팔경도(永思亭八景圖)》의 문화적 함의와 회화적 특징

        정은주(Jeong, Eun-joo)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 한국학 Vol.39 No.3

        영사정(永思亭)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 내기마을에서 50m 거리의 야산에 있는 누정이다. 영사정은 순흥안씨 가문의 효의 상징이자 조선중기 호남사림의 교유 장소로서 이에 대한 다수의 시문학이 전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영사정의 연혁을 사료를 통해 재구성하고, 관련 인물들의 교유관계와 영사정과의 인연을 밝혀 영사정의 연혁과 문화적 함의를 정리하였다. 그 결과 안전(1518‒1571)이 선친 안처순을 기리기 위해 거처의 남록에 영사정을 지은 시점은 안처순의 사후인 1534년 이후부터 적어도 1557년 임희무가 사제당을 방문하여 영사정 제영을 쓰기 이전임을 알 수 있었다. 정자 이름은 부모의 사후에도 길이 효성을 바치려는 『시경』 출전의 ‘영언효사(永言孝思)’의 마음에서 ‘영사(永思)’라 지었다. 이후 영사정은 1590년 안전의 아들인 안창국(1542‒1595)에 의해 중건되어 삼대에 걸친 순흥안씨 문중의 효를 상징하고, 제영을 중심으로 16‒17세기 호남사림들이 결속을 다지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임진왜란 시에는 남원 일대에 주둔하던 명나라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장소였으며, 명나라 주지번의 영사정 편액이 전하여 대외관계에서도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영사정이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 한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된 《영사정팔경도》를 통해서이다. 이 작품은 지본수묵화로 전체 8폭 중 6폭만 남아 있고, 화면의 박락이 심하여 처음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각 화면의 측면 상단에 남아 있는 ‘殘照’와 ‘孤舟’, ‘方丈晴雲’ 등 일부 화제(畵題)가 양대박(梁大樸, 1543‒1592)이 지은 「영사정팔영(永思亭八詠)」 시제(詩題)와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영사정팔경도’라고 명명되었다. 현재는 각 화폭을 유리 액자에 보관하고 있지만, 각 화폭의 크기는 박락 부분을 제외하고 대략 70×50cm로 일반 화첩의 크기와 달라 원래는 조선중기 유행한 8폭 소병풍 형식으로 장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사정팔경도》의 내용은 주로 영사정이 위치한 남원의 명승을 중심으로 선정된 팔경을 주제로 팔영시와 쌍을 이루며, 사계절의 풍광을 묘사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양대박이 지은 「영사정팔영」과 여러 문인의 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영사정팔경도》의 남원 실경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그린 것인지 파악하고 당대의 화풍과 비교하여 16세기 조선회화에서 유행한 안견파 화풍과 절파 화풍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제1경 <창송냉월>은 영사정의 일곱 그루 소나무에 걸린 쓸쓸한 달빛, 제2경 <수죽청풍>은 영사정(永思亭) 뒤쪽 대숲에 이는 맑은 바람, 제3경 <순강모우>는 순강의 저녁 비, 제4경 <방장청운>은 지리산에 피는 청운, 제5경 <야도고주>는 순강 나루터의 외로운 배, 제6경 <단안쌍루>는 축천을 사이에 두고 단안 위에 마주한 보허정과 북정, 제7경 <폐성잔조>는 영사정 인근 황폐한 옛 산성 터의 낙조, 제8경 <장교효설>은 금석교의 새벽 눈발을 소재로 한 양대박의 「영사정팔영」과 《영사정팔경도》가 쌍을 이룬다. 따라서 《영사정팔경도》는 양대박의 생졸년을 고려할 때, 「영사정팔영」과 동시에 제작되었거나 그와 멀지 않은 1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사정팔경도》는 조선중기 실경을 바탕으로 그린 현존 팔경도가 희귀한 현실과 더욱이 남원 지역의 팔경을 그린 최고(最古) 사례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학술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According to record of Sunheung An clan and poetical composition, Yeongsa‒jeong pavilion built by An Jeon(安瑑, 1517‒1571) between 1534 and 1557 to take care of graves of his father An Cheo‒sun(安處順, 1492‒1534) and his mother from Buryeong Han clan. The name of pavilion derived from ‘Yeong‒eon ‒hyo‒sa(永言孝思)’ of the Book of Odes. Yeong‒eon‒hyo‒sa means to secure a lasting filial duty even after parent’s death. It was repaired by An Chang‒guk(安昌國, 1542‒1595) who was a son of An Jeon in 1590. It was a filial symbol of Sunheung An clan and a solidarity place of Honam scholars through the poetical composition on the pavilion in 16th and 17th Centuries. Ming military camped out at Yeongsa‒jeong pavilion during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3. The plaque lettering of the pavilion was written by Ju ji‒beon(朱之蕃, 1558‒1624) who came to the Joseon as an envoy of Ming in 1606. The eight scenic views of Yeongsa‒jeong pavilion remains six out of eight views. Its original type was an eight‒fold screen. Because the names of three views on the painting match up with the poetry of Yang Dae‒bak(梁大樸, 1544‒1592),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 work painted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painting style is reminiscent of Yi Jeong(李楨, 1578‒1607) and Yi Gyeong‒yun(李慶胤, 1545‒1611) who acted in the 16th Century. The eight scenic views of Yeongsa‒jeong pavilion painted by An Gyeon(安堅) and Jeolpa(浙派) painting style at that time. This picture has high academic and artistic value as the oldest work drawn from scenic spots around the Yeongsa‒jeong pavilion in Namwon.

      • 謙齋(겸재) 鄭敾(정선)의 신분과 화풍 형성에 대한 소고(小考)

        정은주 ( Eun Joo Jeong ) 전남대학교 예술연구소 2014 藝術論集 Vol.14 No.-

        본고에서는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화에 대한 선행 연구와 정선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 나타난 글을 바탕으로 겸재 정선을 재평가하고, 그가 제작한 화첩을 시기별로 분석함으로써 그의 진경산수화의 형성과정과 발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화의 연구에 있어 현안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즉, 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겸재 정선의 출신 문제에 대해서는 『광주정씨세보』와 정선 당대의 문헌 기록을 통해 겸재가 ‘鄭君子’,‘生員’,‘선비(士)’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군왕인 영조가 그의 이름 대신 호를 정중하게 사용했다는 점과 조선후기 藝壇의 최대 文士인 사천 이병연, 윤순과 함께 겸재 정선이 ‘三藝의 雄者’로서 나란히 비견되었던 점은 예술적 성취와 위상을 직업적 수단으로 삼는 이들의 그것과 명백히 구분하고 있는 점에서 문인화가로서 당시 겸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정선이 실경을 그리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과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 계기는 화명으로 당시의 명사들과의 교유를 통해서 가졌던 詩會나 契會의 기념화 제작 등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 진경산수 작품 중 상당량이 그의 교유관계를 통해 제작된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眞景은 실경산수를 의미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실경보다는 ‘眞景’또는 ‘眞境’이라는 용어로 일반화되었다. 이상주의를 추구한 유가와 도가적 산수화의 개념과 유관하며, 진경에서 ‘眞’의 의미를 실재 자연산수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외면적 사실성을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산수에서 趣를 발견하고 산수가 지닌 본래 性情을 파악한 후 그 정신을 전하려는 지속적 노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중국의 화론과 남종산수화를 적극 수용 후, 전선후기의 천기론적 문예관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중국인들도 그의 그림의 독창성에 탄성을 지를 만큼 중년이후 현격하게 화풍을 발전시켰다. 18세기 화단에 새로운 움직임과 함께 정선의 영향으로 우리 풍경에 매료되어 실경을 그리는 일에 참여한 일군의 화가를 겸재파 또는 정선파로 불리게 되었다. 본고는 겸재와 진경산수화의 현재까지의 학계 연구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세부적인 문제로 부상하는 眞景의 의미, 鄭敾派의 문제 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This study is aimed at reviewing the pending issues of Gyeomjae (謙齋) Jeong Seon(鄭敾, 1676-1759) and his paintings in Joseon Dynasty. He entered government service for the first time at 41 as an astronomer and professor for whom the gentry was responsible in 1716. Some theory presented possibilities that he would be a painter of Dohwaseo (圖畵署, Painting Bureau) before he entered government service by conducting wrong analysis of system and historical records at that time. But Gyeomjae completed his career as government official over about 40 years by retiring from Sadosi Cheomjeong (司도寺 僉正) to the rank of prime minister by becoming a Dongjijungchubusa (同知中樞府事) as a government position for the aged again when he was 81 years old and was granted Jeongyeong (正卿) of Hanseongpanyun (漢城判尹) by his greatest devotion in 1772 when thirteen years passed after his death. He could spend life as a government official for a long time and could advance to the rank of the prime minister and could be granted until Jeonggyeong by the support of government officials as well as the great king Youngjo(英祖). His paintings showed good feature bearing comparison with any government official in the class of the literati such as Yi Byeong-yeon (1671-1751) and Yun Sun (1680-1741) in his own age. It’s not clarify when he start the painting of real scenery landscapes. But most of his paintings come from the gatherings with scholars, literati and government officers and his government careers. His paintings of real scenery landscapes were concerned with an ideology of Taoism and Confucianism. The real (眞) means the essence of nature as well as similar figure. His paintings developed originality from the Chinese painting of the Southern School and achieved admirable results from even the Chinese literati. Indeed, the result he pulled Gyeomjae School, the art circles of 18th century in Joseon Dynas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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