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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낙오자와 영원인 -서정주의 신라 기획과 전율의 시학-

          정영진 ( Young Jin Jeong ) 반교어문학회 2015 泮橋語文硏究 Vol.0 No.41

          서정주는 당대의 허무주의를 현대 서구문명의 병폐로 이해했으며 신라정신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서정주의 신라정신이 그가 상상한 신라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정주의 신라 기획이 사회문화적 가치체계로서 제안된 것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정주가 상상한 신라 사회는 현실규범과 현실논리에서 낙오한 이들이 영원성의 세계 속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회였다. 이 ‘낙오자’들은 비록 현실로 복귀할 수 없지만 영원성의 세계에 거주하면서, 신라인들에게 영원성의 세계를 현시한다. 즉, 그의 신라 기획은 사회통합적 성격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정주의 시에는 이러한 신라사회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서정주는 서구정신과 신라정신의 대립이나, 현실세계와 영원성의 세계의 관계 역시 시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신라의 ‘영원인’들은 현실사회에서의 낙오자의 성격이 삭제된 채, 사랑의 주체로 나타난다. 이들은 다만 새로운 앎과 감동을 소유하고 절대적 세계를 현시한다. 즉, 신라 기획의 일부만이 시에 바쳐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서정주의 시인식에 따른 결과이다. 서정주는 현대시가 ‘전격적 쇼크’ 혹은 ‘전율’로 체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라 기획의 사상적 성격을 모두 제거하고, 불사(不死)의 이미지로 전형화 된 영원성의 세계만을 시화(詩化)했다. 불사의 이미지들은 현실 전부를 점유해버리는 현실초과의 성격을 띠는데 이로 인해 그것은 영원성으로 감각된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의 절대성이 영원성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중기시)의 개성(스타일)의 확립은 신라정신이라는 보편적 사상 기획에 근거한 것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순수시에 대한 신념과 현대사회에서의 시의 효과에 대한 그의 시인식에 따라 신라 기획의 일부만을 미학화 한 결과였다. Seo Jeong-ju understood nihilism at the time as a social ill of modern western civilization, and sought to overcome this problem through the Silla spirit. This article seeks to show that the Silla planning of Seo Jeong-ju was suggested as a sociocultural value system by examining how Seo Jeong-ju`s Silla spirit was functioning in the Silla society he imagined. The Silla that Seo Jeong-ju imagined was a society allowing those who failed in terms of the norms of reality and logic of reality to be born again within the world of eternity. Although these losers may not return to reality, they could show the world of eternity to the people of Silla, while residing in the world of eternity. Seo Jeong-ju`s Silla planning implied a character of social integration. However, Seo Jeong-ju`s poetry do not reveal such features of the Silla society at all. Not only that, Seo Jeong-ju does not deal with the conflict between the western spirit and Silla spirit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ld of reality and world of eternity in his poetry. The ‘people of eternity’ of Silla appear as the main agents of love in his poetry, and these agents display an absolute world and possession of new knowledge and impression. Thus, in other words, only a part of the Silla planning has been dedicated to his poetry, which is a result of Seo Jeong-ju`s cognition on poetry. Because Seo Jeong-ju believed that modern poetry must be experienced through ‘lightning shock’ or ‘thrill’, he removed all ideological characters of Silla planning, and only treated the world of eternity, which was embodied through the image of immortality, in poetry. The establishment of personal characteristics (style) of Seo Jeong-ju`s poetry (middle-period poetry) was based on the planning of a universal idea called Silla spirit, however, was also a result of treating only a part of the Silla planning aesthetically based on his cognition on poetry, concerning the effect of poetry in modern society and his principle on pure poetry.

        • KCI등재

          원저 : 진단용 고선량 CT를 이용한 (18)F -FDG PET/CT 촬영시 정맥 조영제가 SUV 값에 미치는 영향

          정영진 ( Young Jin Jeong ),강도영 ( Do Young Kang ) 대한핵의학회 2006 핵의학 분자영상 Vol.40 No.3

          목적: 현재 PET/CT에서 CT의 역할은 단순히 감쇠 보정만을 위한 도구에서 진단을 위한 도구로 그 역할이 발전해가고 있다. 따라서 양질의 CT 영상을 얻기 위한 정맥 조영제의 사용과 고선량의 CT 촬영이 요구되고 있으며 최근 조영제가 감쇠 보정한 PET 영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고선량 CT에서 정맥 조영제의 사용이 감쇠 보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대상 및 방법: 총 13명의 환자에게 PET/CT 검사를 시행하였다. (18)F-FDG를 주사하고 1시간 후에 촬영하였고, 첫 번째로 조영제의 사용 없이 CT(NECT - 120 kVp, 130 mAs)를 촬영하고 이어서 바로 조영제를 사용하여 CT (CECT)촬영한 후 PET을 시행하였다. 각 환자마다 NECT와 CECT에 의해 각각 보정된 PET 영상에서 10곳의 신체 부위 (병변이 없는 폐첨부, 폐기저부, 상행대동맥, 간의 상부 및 하부, 비장, 척추, 대퇴골두, 장요근과 10번 척추와 척추 인접 근육) 에서 HU와 maxSUV 값을 구하였고, 종양과 임파선 병변의 값도 함께 측정하였다. 결과: 조영제를 사용하였을 때 국소적으로 섭취가 증가된 곳은 관찰되지 않았다. 총 130개의 정상 조직의 maxSUV 값을 측정하여 비교하였을 때, 조영제를 사용한 군과 사용하지 않은 군의 평균 maxSUV 값은 각각 1.1±0.5, 1.0±0.5고 두 군 사이에 p<0.001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정상 조직에 대해 Bland-Altman 분석을 시행하였을 때 일치의 한계 범위는 0.1±0.3이었다. 10개의 대상 영역 중 폐첨부, 폐하부, 상행대동맥 간의 상부와 하부, 비장에서 maxSUV 값이 두군에서 유의한 차이(p<0.05)가 있었다. 총 39개 병변의 maxSUV 값을 측정하여 비교하였을 때, 조영제를 사용한 군과 사용하지 않은 군의 평균 maxSUV 값은 각각 4.7±2.0, 4.4±2.0이고 두 군 사이에 p<0.001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병변에 대해 Bland-Altman 분석을 시행하였을 때 일치의 한계 범위는 0.4±0.8이었다. 결론: 조영제로 인해 maxSUV의 값은 증가되었으나 정상 조직과 병변에서 일치의 한계 범위가 매우 좁았다. 따라서 진단용 고선량 CT를 이용한 PET/CT 촬영 시에 조영제의 사용이 임상 상황에서 판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Purpose: According to the development of CT scanner in PET/CT system, the role of CT unit as a diagnostic tool has been more important. To improve the diagnostic ability of CT scanner, it is a key aspect that CT scanning has to be performed with high dose energy and intravenous (IV) contrast. So we investigated the effect of IV contrast media on the maximum SUV (maxSUV) of normal tissues and pathologic lesions using PET/CT scanner with high dose CT scanning. Materials & Methods: The study enrolled 13 patients who required PET/CT evaluation. At first, the patients were performed whole body non-contrast CT (NCCT - 120 kVp, 130 mAs) scan. Then contrast enhanced CT (CECT) scan was performed immediately. Finally PET scan was followed. The PET emission data were reconstructed twice, once with the NCCT and again with the CECT. We measured the maxSUV of 10 different body regions that were considered as normal in all patients. Also pathologic lesions were investigated. Results: There were not seen focal artifacts in PET images based on CT with IV contrast agent. Firstly, 130 normal regions in 13 patients were evaluated. The maxSUV was significantly different between two PET images (p<0.001). The maxSUV was 1.1±0.5 in PET images with CECT-corrected attenuation and 1.0±0.5 in PET images with NCCT-corrected attenuation. The limit of agreement was 0.1±0.3 in Bland-Altman analysis. Especially there we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6 of 10 regions, apex and base of the right lung, ascending aorta, segment 6 & segment 8 of the liver and spleen (p<0.05). Secondly, 39 pathologic lesions were evaluated. The maxSUV was significantly different between two PET images (p<0.001). The maxSUV was 4.7±2.0 in PET images with CECT-corrected attenuation and 4.4±2.0 in PET images with NCCT-corrected attenuation. The limit of agreement was 0.4±0.8 in Bland-Altman analysis. Conclusion: Although there were increases of maxSUVs in the PET images based on CT with IV contrast agent, it was very narrow in the range of limit of agreement. So there was no significant effect to clinical interpretation for PET images that were corrected attenuation with high dose CT using IV contrast. (Nucl Med Mol Imaging 2006;40(3):169-176)

        • KCI등재후보

          1950년대 실존주의 지성론과 시적 사고의 보수성

          정영진(Jeong Young-Jin)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서강인문논총 Vol.0 No.31

          1950년대는 대결정신, 전위정신, 부정정신 등이 각광받았던 시대이다. 실존주의 지성론은 주관성 문제와 앙가주망론이 각각 결합하면서 실존주의적 부정정신의 주체를 구성하였다. 1950년대 실존주의는 반공주의와 결부되면서, 반공의 논리는 지성주의에 대한 배격으로 나타난다. 주관성-지성 복합체로서의 실존주의는 개인주의, 무정부적 자유주의와 관련될 때 비판받았다. 1950년대 후반에 들면 실존주의 지성론이 앙가주망론과 결합된다. 주체와 세계와의 관계가 중심화두로 떠오르지만 현실 참여적 지성주의는 엄격하게 배척된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공산주의)화될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지성주의를 배격하는 실존주의 담론은 시적 사고와 관련하여 모더니즘 사유와 차이를 내포한다. 실존주의가 모더니즘과 함께 1950년대 부정정신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실존주의에서는 부정정신을 비극의식의 철저로 규정했다. 이 비극의식은 총체적 신화로서의 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비극적 세계인식을 통해 시적 주체는 총체적 신화세계 속에서 내적인 초월(긍정성)의 지평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모더니스트들이 개성적인 주체를 구성하고 주체의 태도까지 대상화하려는 지성적 태도와 대조된다. 다시 말하면 실존주의 지성론에서의 부정정신은 보편적 비극의식의 심화를 의미했다면 모더니즘에서 강조한 지성의 부정정신은 비평정신 내지 비판정신이었다. 비극의식과 비평정신은 완전히 다른 부정정신의 갈래를 보여준다. 실존주의 지성론의 비극의식은 보편적 인간 내면을 의미한 것이며 총체성과 신화성을 시의 세계로 지향함으로써 주체의 변혁의지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서 시적 사고의 보수성을 보여준다. In the 1950s, the confrontational attitude and the spirit of avant-garde and denial were in the limelight. Noetics of existentialism, coupled with subjectivity and the theory of Engagement respectively, constituted the subject of the spirit of denial. As existentialism in the 1950s was linked with anticommunism, the logic of anticommunism took the form of rejecting intellectualism. Existentialism, as a combination of subjectivity and intellect, was criticized when it was involved with individualism and anarchic liberalism. In the late 1950s, noetics of existentialism combined with the theory of Engagement. Though the relation between the subject and the world emerged as a main topic, intellectualism based on engagement in reality was excluded strictly. That was because it accompanied the risk of totalitarianis m(communism) which destroyed humanity. A discourse on existentialism which rejected intellectualism was different from contemplation of modernism with respect to poetic thinking. Although existentialism and modernism shared the spirit of denial in the 1950s, the two were fundamentally different in nature. Existentialism defined the spirit of denial as the thoroughness of tragic consciousness. This tragic consciousness was led to the way of pursuing poetry as a overall myth. Through the tragic view of the world the poetic subject attempted to find a prospect of inner positiveness in the general mythical world. This contrasted with the intellectual attitude of modernists who intended to constitute the individual subject and even tried to objectify the attitude of the subject. In other words, if the spirit of denial in the noetics of existentialism meant intensified universal tragic consciousness, the intellectual spirit of denial based on modernism was a critical spirit. Tragic consciousness showed a totally different type of the spirit of denial from the critical spirit. The tragic consciousness of noetics of existentialism meant universal inner side of human beings and showed conservatism of poetic thinking in that the will to transform the subject could not be found by trying to involve the overall mythical characteristics in the world of poetry.

        • KCI등재

          1950년대 세계주의와 현대성 연구 -강력한 주체성과 봉쇄된 개성-

          정영진 ( Young JIn Jeong ) 겨레어문학회 2010 겨레어문학 Vol.44 No.-

          This paper explores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planning of modernity and cosmopolitanism of the Korean Literature in the 1950s. Looking at the chapters of a discussion in the 1950s, discussions which seek to get to the bottom of the backwardness of the Korean society overflow. Advancement of the western society is universally perceived and the peculiarity/backwardness of Korea is generally recognized in the framework of the Asia`s peculiarity/backwardness. It could be safely said that cosmopolitanism in Korea in the 1950s defines the western value of the Liberal democracy camp as a universal value in a cold war system and orients in the cold toward modernization and as a result, plays a central role in the world history. This cosmopolitanism goes through to a modernity issue in a Literature chapter. In Literature chapters, an issue of identity in order to escape from Asia`s backwardness to acquire worldwide universality emerged. A sense of confrontation was accentuated and a behavioral, resistant avant-garde identity was emphasized. Because this type of humans are considered to be proper for conducting an urgent task of realizing worldwide universality. Also, for these subjects, ethics and responsibility as a group subject, rather than an individual`s autonomous character, were required as an important virtue. This was also a model which the backward Korean Liberal democratic system requested inthe 1950s. Planning of modernity in the 1950s was frustrated by a desire of cosmopolitanism. Because the western value was yearned as a name of newness and universality, realization of aesthetic modernity resistant to the social and economical modernity was difficult to expect. That is to say, the inside of those who emphasized aesthetic modernity really were Led away by and into the direction of the social and economical modernity. Modernity which could be only achieved via a gap between those two modernities made the distance between the same modernities zero and was frustrated just in presence of a time of the very advancement which they would faster reach. Also, the subjects in the Korean Literature in the 1950s, instead of a subject with individuality as an autonomous one, were not free from the morals and responsibility imposed on the backward Korean society, the morals and ethics of the Liberal democracy system. This is in opposite to planning of modernity which denies a transcendental subject.

        • AP간 상호 인증을 통한 핸드오프 설계

          정영진(Young-Jin Jeong),임승철(SeungCheol Lim) 한국정보기술학회 2010 한국정보기술학회지 Vol.2010 No.-

          무선랜은 단말의 특성상 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핸드오프시마다 반복되는 인증으로 많은 무선영역 및 단말기에 많은 오버헤드를 발생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빠른 핸드오프를 위해 핸드오프 시 지연 시간 요소로 작용하는 인증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AP간의 상호 인증 방안을 이용한 핸드오프을 방식을 제안하고 제안된 방식과 기존의 방식을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핸드오프 수행 평균 시간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One of major characteristics in wireless LAN is frequent terminal mobility, so it makes many overheads in the process of authentications repeatedly at each handoffs. In this paper, for fast handoff latency handoff happens to serve as elements to short the time for authentication, mutual authentication between AP handoff using the method proposed plan and the proposed method and existing methods. Proposed handoff algorithm is get a good performance tham existing algorithm.

        • KCI등재

          1950년대 시의 "지성"의 기원

          정영진 ( Young Jin Jeong ) 겨레어문학회 2011 겨레어문학 Vol.46 No.-

          이 논문의 목적은 1950년대 시의 지성론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다. 전후 시단의 핵심 과제는 한국시의 현대화였다. 시단에서는 시에 지성을 도입함으로써 현대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일반적 인식은 1940년대 후반의 시 인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정부 수립을 전후로 문학 장에서는 정치성과 이념성으로부터 문학을 분리시켜 문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강조되었다. 특히 시의 경우 순수내재성 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순수내재성은 시인의 주관성이 완전하게 실현될 때 확보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주관성의 실현은 지성주의에 대한 배격을 동반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합리성만을 강조하는 서구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깔려 있다. 이 시기 시에 있어서 지적인 것에 대한 배격은 모더니스트였던 정지용, 김기림, 이상에 대한 부정적 평가 속에서 구체화된다. 특히 정지용은 기교적이고 서구모방적이라는 차원에서 부정적 타자로 명명되는데 그의 주지성은 철저히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담론화 된다. 동시에 의지와 정열이라는 코드는 지적인 것에 대한 배격과 대쌍적인 개념으로 설정되어 절대적으로 지지되었다. 당시 박두진이 긍정적 모델로 제시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시에서의 순수 개념의 균열을 가져왔다. 전쟁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촉발되었고, 따라서 정치와 현실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내세웠던 ``순수``의 정체성도 수정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문인들의 확고한 사상성이 강조되었는데 특히 시에서 이 사상성의 강조는 처음에 두려움을 동반한 과제였다. 그런데 이때 시단에서는 한국 시의 허무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면서 사상성 확보가 시에 지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현대시의 과제 차원에서 지지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한국 전쟁 속에서 마주한 현대세계의 참상을 사유하고 이를 시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는 불안과 회의의 현대세계에 대한 비평정신을 시에 도입하여 한국 시의 전통적 서정을 개혁하고자 한 모더니스트들이 등장을 의미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origin of the noetics of poem in the 1950`s. The major problem in the poetical circles after the war was the modernization of Korean poem. The poetical circles believed that they can obtain modernity by introducing intelligence to poem. This type of general cognition was completed opposite to the poetic cognition in the late 1940`s. Around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the literary circles emphasized that the genuineness of literature must be protected by isolating literature from politics and ideologies. For poems in particular, the pure immanence of poem above all aspects was considered as the most essential aspect of poem. The pure immanence was secured when the subjectivity of the poet was realized in whole. However, the realization of subjectivity involved the rejection of intellectualism built upon the critical understanding of the Western civilization itself which emphasizes the rationality. The rejection of intelligence at the time was embodied through the negative criticism against modernists such as Ji-yong Jeong, Gi-rim Kim, and Sang Lee. Ji-yong Jeong in particular is titled as the "Negative Other" for being artful and imitative of the West and it is discussed that his well-knownness has to be completely repelled. At the same time, the codes of intent and passion are established as the dyadic concept with the rejection of intelligence and was absolutely supported. Du-jin Park at the time was considered as the positive model. However, the Korean War caused the rupture in genuine concepts in poem. It instigated a number of argument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war and literature, and the identity of ``genuineness`` which advocated complete isolation from politics and reality had to be revised. Firm ideological traits were emphasized for literary people under the chaos, and particularly the emphasis on ideological trait in poem involved fear in the early stage. Then however, the introspection and criticism against the nihilist trend of Korean poems spread among the poetical circles and they began to support the inclusion of ideology as the task of modern poem requiring the introduction of intelligence to poem. Also, it was argued that it is necessary to reason the horrors of the modern world seen through the Korean War and reflect them in the poem. This announces the appearance of modernists who wished to reform the traditional lyricism of Korean poem by introducing the critical spirit against the modern world of uncertainty and skepticism into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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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지식인의 자유주의 담론 연구

          정영진(Jeong, Young-jin) 사회와철학연구회 2015 사회와 철학 Vol.0 No.29

          이 글의 목적은 지식인 담론장의 대표성을 띠는 사상계 를 통해 1950년대 한국의 자유주의 담론이 구성되는 양상을 살펴보고,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 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1950년대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론적 차원에서 유통되었다기보다는 제도나 정치적 상황들과 연동하며 구성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는 도덕적 자유 관념과 사회주의, 그리고 정치적 자유주의가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 가운데 휴머니즘 담론과 연동하는 도덕적 자유 관념이 가장 우세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독재화로 인해 민주주의 위기의식이 확산된다. 이제 도덕적 자유 관념이 퇴조하게 되고,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과 도덕적인 영역이 분리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자유의 ‘권리’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써 ‘민권’의 문제가 전면화 될 수 있었다.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 권리는 시민의 자유 권리로 이해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권리를 개인이 아닌 시민 혹은 국민의 집합적인 자유의 영역을 통해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50년대 후반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은 공산주의=독재주의와 대결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민의 자기지배’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을 추동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추상적, 보편적 가치체계가 아닌 현실 정치의 원리로 바라보게 됨을 뜻한다. 동시에 유의해야 할 점은 1950년대 말 지식인들이 도덕적 자유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가운데 합리주의적 사고를 요청한 점이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합리주의가 접합되는 국면은 한국의 자유주의가 보수화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dentify how political liberalism discourse of Korea was formed in the 1950s through Sasanggye, a representative educational magazine at that time, and to clarify the meaning of established political liberalism. Political liberalism in the 1950s has much to do with institutional and political aspects rather than theoretical ones. In the mid 1950s, while moral freedom, socialism, and political liberalism were competed against each other, liberalism discourse was formed. Among them, moral freedom theory, which is connected with humanism was preferred most. Lee Seung Man’s dictatorship in the late 1950s created democratic aspirations of all people, leading to decline in moral liberalism. But political liberalism gained m ore strength. That means political and moral areas are separated. As political liberalism discourse gained strength, a concept of ‘rights’ to freedom was developed. That was the foundation for awareness of ‘civil rights’. In another words, the freedom of the individual was regarded as civil rights of a democratic world. In the late 1950s, as political liberalism w as established, democracy was considered ‘popular sovereignty’ rather than a concept opposed to socialism or dictatorship, meaning that democracy wa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realistic politics, rather than as universal or abstract value.

        • KCI등재

          탈식민주의적 감각과 현대시를 향한 열망 -송욱의 역사주의와 교양주의-

          정영진 ( Young Jin Jeong ) 겨레어문학회 2014 겨레어문학 Vol.0 No.52

          이 글의 목표는 송욱이 시와 시론에서 보여준 비평정신, 역사의식, 부정정신, 탈식민주의적 감각과 현대성 인식 등의 상호관계를 제시함으로 써, 탈식민 이후 현대시를 열망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 시대적 의제가 조직되었던 방식과 그 내면성을 살펴보는 데 있다. 송욱의 현대성 기획은 ‘우리’와 ‘현실’, 그리고 ‘필요’의 관점에서 이루 어진 것이다. 송욱은 현대성을 현대적 경험과 분리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시의 음악성을 단순히 소리의 문제가 아닌 의미와의 관련속에서 이해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독자에게 구조화된 현대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현대 자유시의 성립이 정형시에 반항하며 정립되 었던것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최소한의 형식탐구부터 할 것을 당대 시 인들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동시에 위대한 인간성을 강조하고 산문시에 주목한다. 송욱은 산문시를 위대한 인간성이 담보된다면 형식의 구애를 덜 받을 수 있는 장르로 인식하였다. 위대한 인간성은 분열된 인격이 통 일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 교양이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송욱은 현대성 기획의 출발점으로 서구문학을 선택적으로 선별하고 수 용하는 작업이 역사현실의 몰각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미래적 시간의 도입이라는 초월적인 시점에서 과거와 현 재를 분리하지 않고 현실을 역사화하고자 했다. 그 결과 현실의 문제가 신라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외세의 문제, 즉 식민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를 통해 보여주었다. 탈식민주의적 감각은 그의 역사의식의 산물이었으며, 이는 한국시의 현대성 기획이 당대 지식인 담론 일반에서 보이는 서구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주의의 자장 안에 완전히 포섭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송욱은 2차 대전이후 새롭게 등장한 탈식민국 가의 특수한 역사현실 자체를 시에 끌어와 독자들로 하여금 현대성 경험을 구축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는 식민주의에 대항할 주체를 정립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 했다. 이는 역사현실의 인식 주체를 설정하지 않고 하나의 시간성으로 이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미래적 시간의 도입’의 함정은 육체 없는 시점 이라는 점이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on the method and internality of how periodical agenda in 1950s were organized when people desired modern poems after the colonial period by suggesting mutual relationship of criticism spirit, historical consciousness, denial spirit, posr-colonial sense, modernity recognition shown in song Wook``s poems and poetic theory. Song Wook``s modernity planning was from the view of ``we``, ``reality``, and ‘necessity.’ He did not try to separate modernity and modern experiences. He understood the musicality of poetry in the relation to meanings not simple sound, and tried to provide structured modern experiences to readers by various experiments. He expecially was strongly aware of how modern free verse was established against fixed verse, and suggested to poets at the time to do minimum formal research. Then, he emphasized on great humanity and focused on prose poetry, Song Wook understood prose poetry as a genre with less forms if great humanity is guaranteed. The great humanity means the condition of divided characters, and for this refinement needed to be emphasized. Song Wook thought the process to select and apply western literature as the basis of modernity design could show that it doesnot neglect historical reality. For this, he did not separate the past and present in the transcendental point of view, the introduction of future, but made the present historical. As a result, he showed the present problem is related to problems occurred by foreign power since Shilla period, in other words, the colonial history, by his poetry. Post-colonial sense was the result of his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this proves that modernity design in Korean poetry is not completely embraced in the magnetic field of cosmopolitanism that pursues western universalism shown in the discussion at the time. Song Wook tried to draw the special historical reality itself of the de-colonized country that appeared after the World War II to make modernity experiences for readers in his poems. However, he could not proceed until he set up the subject that could resist the colonialism, because he did not set recognizing subject for historical reality but substituted as one of temporarily. The trap of the ``introduction of future`` is the point of view without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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