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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의 차시(茶詩)에 나타난 보성의 차풍속(茶風俗) 연구(硏究)

        정서경 ( Seok Yeong Jung ) 남도민속학회 2010 남도민속연구 Vol.20 No.-

        보성의 민속은 이 지역의 자연적 여건과 역사적 요인, 그리고 사회성에 의해서 지연의 공감대를 가지고 형성되어 변형·발전되어 왔다. 그러므로 전승 되어온 민속에는 보성인의 감정과 정신이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생활의 소중한 지혜와 삶의 방법과 그 질서가 제시되어 있다. 보성군은 山紫水明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명승고적과 유람지가 많다. 예부터 자라고 있는 차나무가 많은 만큼 전남의 선조들은 茶와 더불어 살아왔던 터였음으로 차생활에 얽힌 기록과 그 흔적도 많다. 하지만 1950년대를 중심으로 차나무가 심어져 재배차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부터 보성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飮茶 지역으로 熊岾茶所(웅치면)와 乫坪茶所(회천면)는 장흥도호부에 속한 때도 차를 貢茶하던 곳으로, 조선왕조실록 지리지의 세종 15년(1433)의 기록에서는 오곡, 봉, 왕골, 표고, 茶, 매화 등등이 난다고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 부흥했던 18~19세기의 차문화는 일본의 식민지배 36년 동안 남부지역의 사찰지역으로 공간이 축소되면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한국 차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보성 차에 대한 그 역사성과 근원을 뒷받침 할 사료가 부족하여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때, 최근 녹차 수도 보성이라고 타이틀을 내걸은 보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평생을 글을 쓰면서 차인으로 산 雪舟 宋運會 선생이 남긴 『雪舟遺稿』가 국역으로 발간되었다. 이 글은 한국의 차문화 역사를 체계적인 조사와 자료를 통하여 그 근간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한 것으로, 『雪舟遺稿』에 실린 漢詩 중에서 차를 마시며 남긴 茶詩를 통해 근대 19세기 이후라는 시간적 배경하의 보성의 차문화의 전반적 흐름과 양상, 차풍속의 시기별, 분야별 특징,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차정신을 一瞥하고자 한다. 보성 지방을 중심으로 한 차문화와 일상의 차생활을 즐긴 정서가 여과 없이 투영되어 있는 『雪舟遺稿』를 통해 보성 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도의 차풍속과 더불어 향유되어 온 차생활의 추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연구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The custom of Boseong has been changed and developed with territorial sympathy according to the natural condition, the historical factor, and the sociality of this area. Therefore, in the traditional custom, there are not only the emotion and the mind of the Boseong residents but also there are the valuable life wisdom, life means, and the order. Boseong has scenic beauty and there are a lot of scenic spots and places of history and the sightseeing places because of the mild temperature. There have been lots of tea trees from old times in Jeonnam, so the ancestors of this area have lived with the tea, and there are many stories about tea lives and the traces. However, the most tea trees were planted sometime in 1950s, so they are called the cultivation tea, and they are not free from it. Boseong was the major tea drinking area in the Goryeo Dynasty, and Ungjeomdaso(Unchimyon) and Galpyungdaso(Hoeichonmyon) served the tea even when they were parts of a Jangheung government office. According to the record of Sejong15(1433) in the true record of the Joseon Dynasty geography book, it was said that there were the five grains, money, bulrush, mushroom, tea, apricot, etc. After the Goryeo Dynasty, the revived tea culture of the 18~19 century remained in existence while Korea wa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for 36years, and it was downsized to a Buddhist temple area of southern regions. I catch a glimpse of overall flowing and an aspect of Boseong tea culture under the late 19th century, the characteristic of time and field of the tea custom and tea mind which was showed in it through the tea poems in 『Seoljuyugo』 left by Seolju Song, Un-hoe who lived as a tea man and wrote all his life in Boseong where it has lately made the name the capital of Green tea Boseong. Also I hope that this becomes the study which can understand the trend of the tea life enjoyed with tea culture of Namdo with Boseong as the center which works for the brand of Korean green tea production market. It intends to establish the source through the organized research and materials of Korean tea custom history, because there weren’t enough materials to support the historicity and the origin of Boseong tea. It also reflects the emotions enjoyed the tea culture and daily tea life with Boseong as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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