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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포은 후손의 경남 동부지역 이거 양상 연구

        정경희(Jung Kyung-hee) 포은학회 2014 포은학연구 Vol.13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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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s on the migration of Poeun(圃隱)'s descendants from western Gyeongsangnam-do(慶尙南道) to the eastern Gyeongsangnam-do during the late 17th and 18th centuries in Joseun Dynasty. In the 15th century Seolgok(雪谷) Jung Bo(鄭保), the grandson of Poeun Jung Mongju(鄭夢周), was forced to exile to Danseong(丹城) located in western Gyeongsangnam-do because of having criticized the usurpation of King Sejo(世祖). After that Poeun's descendants started to settle down in the localities of western Gyeongsangnam-do such as Hapcheon(陜川), Jinju (晉州) and Danseong(丹城). In the 16th century Poeun started to be venerated and his descendants came to be powerful and prominent. From the 17th century, the branch of Sir Limheon(林軒公系) founded by Limheon(林軒) Jung Sephil(鄭世弼) became leading nobility power in western Gyeongsangnam-do. Generally they tended to belong to military nobility such as Bukin(北人) Party and Nammyung(南冥) School. In the late 17th century Seoin(西人) and Noron(老論) Parties grasped political power, therefore, Bukin Party started to be divided and stagnated gradually. This affected to Poeun's descendants in the western Gyeongsangnam-do. Their status in military nobility was weakened and their academic and political discourses fell under the influence of Noron Party. In general stagnation of Poeun's descendants in western Gyeongsangnam-do, some of them migrated to eastern Gyeongsangnam-do. The branch of Sir Limheon migrated to Yangsan(梁山) and Haman(咸安), and the branches of Sir Sean(世安公系) and Sir Seryun(世倫公系), to Ulju(蔚州) and Gimhae(金海). Jung Doman(鄭道萬)'s family of the branch of Sir Limheon in Yangsan was central force of Poeun's descendants of the eastern Gyeongsangnam-do. They had produced a leader for national independence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has been editing the tradition of unswerving loyalty(忠烈) of Yangsan in modern times. We can see that the tradition of unswerving loyalty inherited from Poeun to Seolgok and Limheon continues in modern times. 본고는 15세기 이래 경남 서부 합천ㆍ진주ㆍ단성 등지에 정착한 포은 후손들이 17세기 후반~18세기를 지나면서 인근의 경남 동부 양산ㆍ함안ㆍ울주ㆍ김해 등지로 이주해 간 양상에 대한 연구이다. 포은 정몽주의 손자인 설곡 정보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다 경상도 단성지역에 유배된 이후 그 셋째 아들 정윤관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포은 후손들의 경상도 지역 세거가 시작되었다. 16~17세기 포은이 사림세력의 절대적 추앙을 받으면서 포은 후손들이 재기하게 되는데, 경상도 지역에서 는 정윤관의 손자이자 병마절도사를 지낸 임헌 정세필을 계파조로 하는 '임헌공계'를 중심으로 합천ㆍ단성ㆍ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의 유력 사족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대체로 남명학파 북인계이자 무반 가문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7세기 후반 이래 서인-노론의 집권으로 경상도 지역의 북인계 세력은 침체 국면에 놓이게 된다. 당시 임헌공계의 경우 정세필의 증손인 합천의 '정욱계' 및 단성ㆍ진주의 '정훤계' 양대 계열이 중심이 되고 있었는데 무반 가문으로서의 면모가 현저히 감손되었고 학문이나 당색 면에 노론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인근 경남 동부지역으로 옮겨가는 세력이 생겨났으니 임헌공계 중 함안ㆍ양산, 세륜공계 중 울주, 세안공계 중 울주ㆍ김해 등지로 옮겨간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경남 동부 포은 후손의 중심세력인 양산 지역 임헌공계 정도만 계열에서는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현대에는 일제시기 양산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전통, 또 고대 이래 양산지역에 면면히 내려온 충렬의 전통을 집대성하는 흥미로운 면모가 나타났다. 포은-설곡-임헌으로 이어지는 충렬의 가풍이 시대와 지역의 격간을 넘어 이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 KCI등재

        학령기 아동의 형태소인식과 어휘능력

        정경희(Kyung Hee Jung) 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2020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Vol.20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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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학령기 1,3,5학년 일반아동을 대상으로 단어 유형에 따른 형태소 인식능력의 발달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또한 어휘습득과 관련된 읽기, 음운처리, 형태처리 변인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이들 변인들 중 어휘능력을 예측해주는 변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본 연구는 약 1년 간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총 78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합성어, 파생어 및 투명도를 고려한 형태소인식 과제와 낱말해독, 음운인식, 음운기억, 어휘 과제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형태소인식능력은 학년에 따라 수행력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모든 학년에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 과제 유형별로는 모든 학년에서 합성어와 투명과제를 더 잘 수행하였으며, 특히 투명도와 학년에 따른 상호작용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났는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투명과 불투명 과제의 수행력의 차이가 줄어드는 특성으로 보여줬다. 어휘, 낱말해독, 음운처리, 형태인식 변인간 상관이 모두 유의하였으며, 형태인식능력이 어휘능력의 주요 예측변인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학령기 아동의 어휘지도에 형태소 인식능력에 대한 고려할 필요성이 있음을 임상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This study examined the developmental characteristics of morphological awareness ability according to word type for general children in 1st, 3rd and 5th grade. In addition, this study analyzed the correlation between vocabulary, reading, phonological processing, and morphological processing variables, and examined which variables predicted vocabulary ability among these variables. In this study, a total of 78 children evaluated morphological perception, word reading, phonological perception, phonological memory, and vocabulary tasks, taking into account compound words, derivatives, and transparency using the vacation period for about a year. The results showed that morphological awareness ability increased with grade and as a result of the post-test,, there we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all grades. By task type, compound words and transparent tasks were better performed in all grades. In particular, the effect of transparency and grade interactions was significant. The correlations between vocabulary, word reading, phonological processing, and morphological awareness variables were all significant. These findings suggest clinically the necessity of considering morphological cognition in school age vocabulary guidance. Morphological awareness ability was the main predictor of vocabulary ability. These findings suggest clinically the necessity of considering morphological awareness in school age vocabulary intervention.

      • KCI등재

        韓國仙道와 ‘檀君’

        鄭景姬(Jung Kyung Hee) 한국도교문화학회 2009 道敎文化硏究 Vol.30 No.-

        본고는 한국선도의 삼성(환인ㆍ환웅ㆍ단군) 인식에 준거하여 삼성, 그 중에서도 특히 단군인식의 변천과정을 살핀 연구이다. 한국선도의 수행 과정은 ‘性通→功完(’弘益人間ㆍ在世理化‘)→朝天’의 과정으로 정리되는데, 한국선도의 전통에서는 이러한 수행 과정의 典範이자 주요 매개자로서 삼성을 제시한다. 한국선도의 원형적 삼성 인식은 ‘仙人이자 군왕’이었는데, 삼성중에서도 특히 단군은 최초의 선도국가 단군조선의 군왕으로서 ‘선인’의 면모 외에 ‘군왕’으로서의 면모가 더욱 강하였고 이에 ‘민족시조, 건국시조’로서의 주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한국 상고시기 최고의 ‘선인이자 군왕’이었던 삼성은 후대에 이르러 점차 삼성숭배 또는 삼성신앙의 대상으로 화하여 갔는데, 특히 중국에서 도입된 삼교중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속성이 크게 변질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仙ㆍ佛 습합의 과정에서 삼성은 과거불이나 미래불로 전화되거나, 불교사찰내 三聖뭇類의 주신격으로 전화되었다. 고려 중엽 이후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한국사의 중심이 삼성이나 단군 대신 기자로 변개되는 현상과 함께 선도에 대한 인식이 더욱 일천해지면서 삼성 인식에 있어서도 삼성 대신 단군만이 따로 떨어져 나와 강조되기 시작하였고 단군의 성격에 있어서도 ‘선인’의 면모가 사라지고 단군조선의 ‘군왕’, ‘민족시조’로만 인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왕실의 선도 억압책으로 인해 선도가 무속신앙ㆍ무속신앙화면서 삼성이나 단군이 기복적 신격으로 변질되는 경향도 심화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선도가 부활하고 삼성 인식이 회복되는 조짐이 있었으나 선도속의 민족적 성향을 경계한 일제에 의해 좌절되었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선도에 새로운 가능성이 주어지기도 하였지만, 곧 이은 남북 분단으로 한국사회에 냉전 체제가 적용되면서 남ㆍ북한 모두에서 선도의 민족주의 노선이 거부되었다. 남한의 경우는 서구사상 및 종교의 영향으로 선도는 ‘무속, 이단종교’ 등으로 이단시되었고 삼성이나 단군도 ‘무속신, 우상’ 정도로 취급되었다.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가 1970년대말ㆍ80년대초에 이르러 수련법을 중심으로 새롭게 약진하면서 삼성 인식 또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선도가 부활될 때 삼성 인식 또한 원형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아직까지는 단군에 집중되어 있는 형편이다. 곧 단군에 대한 ‘무속신, 우상’론을 넘어서 ‘國祖’론으로까지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단군을 넘어서 한국선도의 원형적 삼성 인식으로까지는 나아가고 있지는 못하다. 조선시대 유교전통 하에서 삼성이 아닌 단군이 강조되기 시작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시작을 단군조선 및 단군에서부터 바라보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기에, 근대 이후 새롭게 시작된 단군 담론,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단군 담론도 실상은 이러한 인식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선도의 원형적 삼성 인식에서 볼 때, ‘단군’을 넘어서 ‘삼성’ 인식이 온전히 회복될 때라야 선도적 원형이 복원되며, 더 나아가서는 한국사의 출발점이 제대로 해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is the study on the changing process of Dangun understanding on the basis of Samsung(三聖: Whanin(桓因)ㆍWhanwoong(桓雄)ㆍDangun) understanding in Korean Sundo. The discipline process of Korean Sundo can be summarized to '① awakening(Sungtong性通)→ ②materialization of awakening(Kongwan功完)→③ revolution to origin of existence(Jochun朝天)', and Samsung used to be understood as the model and mediator of Korean Sundo discipline. The original Samsung understanding in Korean Sundo discipline was the supreme 'Sunin(仙人) and King' and especilly Dangun among Samsung had been recognized not only Sunin but also King of the first Sundo-State, that is Dangun Chosun. Dangun had the main image of 'the progenitor of Korean'. In ancient Korea, the image of Samsung had changed 'the Sunin and King' to 'the subject of worship' by the influence of Buddism and Confucianism. Since the middle age of Koryo Dynasty, with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the progenitor of Korean was changed from Dangun to Kija. As the Sundo understanding had been weakening gradually, Dangun had separated from Samsung and had understood just as 'King of Dangun-Chosun', that is ‘the progenitor of Korean'. In this process, the images of Sunin had disappeared. Since modern times, Sundo revived, but it was frustrated by Japan who guarded against the national inclination in Sundo. After World WarⅡand the fall of Japan, another possibility of revival was given to Sundo. But due to the tragic division of Korea, the Cold War system was applyed a rule to South and North Korea. Both South Korea and North Korea refused the national inclination of Sundo. So Samsung or Dangun was treated as 'Shaman or Idol'. In the late 1970's and the early 1980's, Sundo was made rapid progress. Because Sundo of that time was focused on Sundo discipline, Samsung understanding had been different from the past. When Sundo revives, it is natural that the original image of Samsung understanding recovers. But until now Samsung understanding has been held off Dangun. To be sure, the misunderstanding about Dangun -'Shaman or Idol' has become changed to 'the progenitor of Korean' but did not arrive at the original image of Samsung understanding in Korean Sundo yet. Under the Confusian tradition since Chosun Dynasty, not Samsung but Dangun was emphasized. So until now we used to think that the origin of Korean history is Dangun-Chosun. Currently Dangun conversation is kept within this viewpoint Seeing from the pointview of the original image of Samsung understanding of Korean Sundo, when Samsung beyond Dangun recovers fully, Korean Sundo can be restored and the origin of Korean history can be clarified correc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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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초 북부여계 파소·박혁거세의 단군조선 계승과 태백산의 마고제천 - '백두산 신시'를 이은 '태백산 신시'의 중창 -

        정경희 ( Jung Kyung-hee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18 선도문화 Vol.25 No.-

        B.C. 3세기~B.C. 1세기 무렵 단군조선의 와해 과정에서 단군조선의 많은 엘리트 세력이 한반도·일본열도 방면으로 이주하였다. 북부여 왕실 출신의 선가 파소·박혁거세 세력은 한반도 남쪽 경주 분지로 이주, 仙桃山 ‘壇(祭天壇)·廟(祭天廟)’에서의 ‘마고제천’을 통해 사상·종교적 주도 권을 장악하였고 이로써 6촌 세력의 규합에 성공, 사로국을 개창하고 진한의 맹주로 도약하였다. 선도 전통에서는 단군조선이 중국 한나라에 밀려 와해된 근본 원인을 음양오행론이라는 현상(물질)에 치우친 가치관이 단군조선으로 유입되어 단군조선의 삼원오행론, 곧 본질(생명氣, 밝음)과 현상(물질)을 하나로 바 라보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와해시켰던 때문으로 본다. 단군조선·북부 여계엘리트 선가였던 파소·박혁거세는 이러한 인식에 따라 중국문화에 대한 경계와 방어를 표하고 단군조선의 선도문화에 대한 강력한 수호 의지를 천명하였다. 단군조선의 선도 복건론은 ‘符都復建論’으로 개념화되었다. ‘符都’란 ‘천 부사상의 중심지’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을 의미하는데, 이때의 단군조선은 ‘영토·정치’의 차원이 아니라 ‘사상·문화’의 차원, 곧 ‘선도문화’의 차원이었다. 고구려 ‘多勿主義’류의 ‘단군조선의 구토 회복론’과 차별화되는 단군조선의 사상·문화적 정체성 회복론으로 그 사상사적 가치가 다대하다. 박혁거세가 추진한 선도 복건 정책의 중심에는 ‘백두산의 신시(제천단 시설)를 계승한 태백산 신시 중창’ 사업이 자리하였다. 단군조선의 삼신 산이었던 태백산(현 백두산)과 백두대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남태백산(현 태백산)을 백두산을 대신한 새로운 삼신산으로 지목, 그 정상에 제천단을 중창하였다. 이는 당시 진한 일대에서 펼쳐진 새로운 차원의 마고제천문 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백두산 신시의 직접적인 계승을 표방하면서 행해진 남태백 신시에서의 제천은 단군조선계 유민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었고 이러한 이념성은 진한12국을 결집시키는 핵심 명분으로 작용, 사로국을 진한12국의 맹주로 우뚝 서게 하였다. Around the third century B.C. ~ the first century B.C., many dominant elites of Dangun Josun檀君朝鮮 migrated toward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during the disintegration process of Dangun Josun. Especially Princess Faso婆蘇 and her son Park Hyeok-geose朴赫居世 who came from North Buyeo北扶餘 royal family migrated to the Gyeongju慶州 branch i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ook control of ideological and religious initiative through the ‘Sundo Heaven rituals(Mago Heaven rituals)’ at the ‘Mt. Sundo仙桃’s Heaven rituals Altar祭天壇 and Heaven rituals Shrine祭天廟. With this, they succeeded in the consolidation of the six villages and opened Saroguk斯盧國, at last became the central nation of the Jinhan辰韓 Federation. In Sundo’s historical awareness, the reason why Dangun Josun was pushed to the Chinese Han漢 was that the value of China(Yin and Yang theory) had flowed into Dangun Josun and had broken down the traditional values(The idea of the five natural elements of the three dimensions三元五行論) of Dangun Josun. According to this recognition, Faso and Park Hyeok-geose expressed their vigilance and defense consciousness to Chinese Culture and declared strong will to protect Dangun Josun’s Sundo Culture. ‘The idea of Dangun Josun’s Sundo Reconstruction’ was conceptualized as ‘the theory of Budo符都 Reconstruction’. ‘Budo’ means ‘the center of Sundo thought’. At this time, Dangun Josun was not only a dimension of ‘territory and politics’ but a dimension of ‘ideology and culture’. It was the theory of Dangun Josun’s ideological and cultural identity Restoration. It was different from ‘Dangun Josun’s old territory Restoration’. The key issue of the Sundo Reconstruction policy pursued by Park Hyeok-geose was the Rebuilding of ‘Mt. Taebaek太白’s Shinshi神市(Heaven rituals Altar)’, which inherited ‘ Mt. Baekdu白頭’s Shinshi.’ Mt. Taebaek which is connected to Mt. Baekdu(Mt. Samshin三神山(the holy mountain of Sundo) of Dangun Josun), was designated as new Mt. Samshin of the Jinhan Federation. The Rebuilding of ‘Mt. Taebaek’s Shinshi was the symbolic event showing a new development of Mago Heaven rituals spreading in the Jinhan Federation at the time. Mago Heaven rituals at Mt. Taebaek’s Shinshi, which was expressed the direct succession of Mt. Baekdu’s Shinshi, led to deep empathy for refugees of Dangun Josun. It served as a central cause of the union of the Jinhan Federations and led Saroguk to stand firmly as the ruler of the Jinhan Federations.

      • 공기업의 서비스 품질 평가에 관한 연구

        정경희(Kyung-Hee Jung),박재민(Jae-Min Park),조재립(Jai-Rip Cho) 대한산업공학회 2008 대한산업공학회 추계학술대회논문집 Vol.2008 No.11

        One of the important components of this administrative reform is customer satisfaction. Every public enterprises introduced the Service Charter and Korean government took Customer satisfaction as the key index of public sector performance assessment. Most public enterprises introduced customer satisfaction management in an attempt to improve the quality of customer service. The government granted high incentives to excellent business innovative enterprises and developed additional indices, which are related to Cb. From now on, every Korean enterprises must embody feasible customer satisfaction management and improve the quality of customer service In this research, we proposed a quality evaluation standard model which is suitable for the public enterprise based on the Service Quality Criteria, and examined the model. A 7-Point Likert Scale was used based on the five categories within the Service Quality : responsiveness, convenience, tangibility, sympathy and reliability, we analysed the validity and causal relationsmp among the factors within the model.

      • KCI등재

        창업기업 선정평가지표 유의성 검증에 관한 연구

        정경희(Jung, Kyung Hee),성창수(Sung, Chang Soo) 한국벤처창업학회 2018 벤처창업연구 Vol.13 No.4

        본 연구에서는 중앙정부의 창업지원사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선정평가지표의 창업기업 선정여부에 대한 정확도를 검증하여 창업기업 선정평가지표의 유의성을 확인하였다. 이를 위해, 초기 창업기업을 집중 발굴·육성하는 창업선도대학육성사업에 지난 3년간 지원한 창업기업 973개의 평가점수와 선정여부 결과를 수집하여, 로지스틱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정여부에 있어 창업기업 특성변인에 따른 차이가 확인되었다. 둘째, 선정평가항목에 의한 선정여부의 영향은 2015년 성별(남), 창업자의 보유역량, 2016년 창업여부(기창업), 글로벌 진출 실적 및 잠재력, 2017년 창업여부(기창업) 항목만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최근 3년간 전체 선정의 유의성 분석결과, 매년 정확도가 낮아짐을 확인하였으며, 비 선정보다 선정에 대한 정확도가 더욱 낮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창업지원사업 선정여부 판별에 있어 활용되고 있는 선정평가지표의 유의성 검증 및 부적합한 구성항목을 확인하고 매년 창업환경변화에 따른 지표의 변경은 선정의 정확도를 더욱 낮게 하는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창업지원정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우수 창업기업 선별기능에 대한 선정평가지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환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In this study, we examined the accuracy of the assessment items for selecting start-ups used in the project to support start-ups and verified their validity in determining whether they are appropriate assessment items based on selection criteria. The results of 973 start-ups that applied for the project fostering startup leading universities were collected and logistic regression was performed using SPSS 18.0. The study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differences in characteristics of start-ups were identified in terms of selection. Second, the impact of selection by assessment items was gender in 2015, capability of the founder, business establishment in 2016, performance and potential in the global market, and business startup in 2017. Third, the overall selection accuracy analysis for the last three years confirmed that the accuracy of the selection is lower each year and that the accuracy of the selection is lower than the accuracy of the non-selection. This means that the current assessment items for selecting start-ups are inaccurate for selection, and that changes in the items due to changes in the start-up environment each year have led to lower accuracy of selection. It is meaningful that this study raised the importance of assessment items and the need for improvement of assessment items for the screening functions of good start-ups to enhance efficiency of the policies for startup support.

      • KCI등재

        씀바귀 약침이 RAW 264.7 대식세포에서 tumor necrosis factor alpha 생성에 미치는 영향 연구

        정경희 ( Kyung Hee Jung ),최봉근 ( Bong Keun Choe ),홍승제 ( Seung Jae Hong ),반주연 ( Joo Yean Ban ),엄윤경 ( Yoon Kyung Uhm ) 대한경락경혈학회 2007 Korean Journal of Acupuncture Vol.24 No.3

        목적: 약침으로서 씀바귀의 염증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RAW 264.7 대식세포에서 Tnf 생성을 확인하였다. 방법: 씀바귀를 RAW 264.7 대식세포에 미리 처치한 후 LPS로 염증 반응을 유도하였다. ELISA, Western blotting, RT-PCR, 그리고 EMSA을 통해 Tnf의 생성과 발현에 대한 효과를 평가하였다. 결과: LPS 유도된 세포에서 씀바귀 1, 5, 10, 50 μg/ml의 농도는 각각 23.7, 37.8, 66.4, 86.1% Tnf 생성을 억제한 것을 ELISA 통해 확인되었다. LPS로 유도된 대식세포에서 Tnf 생성은 농도에 따라 감소하였고, Western blotting, RT-PCR 분석에서는 씀바귀 5과 50μg/ml가 LPS로 유도된 대식세포에서 Tnf의 mRNA와 단백질 발현을 저해 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또한 EMSA에서도 씀바귀 5과 50μg/ml가 LPS로 유도된 Nf-κB를 감소시키는 것을 확인하였다. 고찰: 이런 결과는 씀바귀가 Nf-κB를 저해하면서 LPS로 유발된 Tnf 생성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는 더 나아가 염증 질환에서 씀바귀가 약침으로써의 치료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KCI등재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Ⅰ) - B.C. 4000~3500년경 ‘3층원단(層圓壇)(모자합장묘(母子合葬墓))·방대(方臺)’를 중심으로 -

        정경희 ( Jung Kyung-hee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19 선도문화 Vol.26 No.-

        본고는 1990년대 중국측의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 정립 과정에서 백두산 서편 통화 일대의 고제단군이 주목된 이래 10여년에 걸친 연구 결과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 대신 요서·요동·한반도 지역을 관통하고 있던 ‘맥족계 제천문화’의 실상이 드러나게 되었음을 밝힌 글이다. 더하여 맥족계 제천문화가 시기·형태·규모 면에서 요서 후기 홍산문화기에 나타나는 난숙한 제천문화의 祖形이 됨을 밝힘으로써 동북지역 상고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 전환이 필요함도 제안하였다. 백두산 서편의 고제단군에 대한 중국측의 10여년의 연구 과정은 1995년을 기점으로 전·후기로 나뉜다. 본고에서는 연구 후반기, 그중에서도 특히 1997~1999년간 동북지역 최초로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던 통화지역의 ‘만발발자 고제단’을 중심으로 하였다. 만발발자 유적은 제천시설·주거시설·무덤시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에서도 제천시설이 중심이며 나머지 주거시설·무덤시설은 부속시설에 해당한다. 제천 시설은 후기 신석기 이래 고조선시기를 거쳐 고구려시기까지 지속되었는데 크게 ①1차 시설 : 3층원단(모자합장묘)·방대, ②2차 시설 : 환호·선돌2주·방단·제천사로 나뉜다. 본고에서는 1차 시설을 고찰하였다. In the 1990s, the chinese academic circles sought to find elements of Hungshan Culture(Ritual禮制 Culture, Pre-Shang先商 Culture) in Mt. Baekdu area according to ‘the Liao-ho river遼河 civilization theory - the Mt. Changbai長白 culture theory’. Especially they paid attention to the stone mound altar·tomb(the ancient altars) in Tonghua area, the west of Mt. Baekdu. Tonghua area was the center of Maek race(the chief race of Korean race)’s cultural domain, the west of Mt. Baekdu which has been populated and flourished since the late Neolithic period. The research on the ancient altars in the west of Mt. Baektu began in 1989 with the discovery of ‘the Liming黎明 altar’ in Tonghua, which received the attention of the chinese academic circles and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and about 40 altar relics were surveyed or excavated until 1995. To the next step, based on these successful research results, the systematic and massive excavation on ‘the Wanfabozi altar’ in Tonghua was conducted during 1997~1999. The Wanfabozi relic was consisted of Heaven Ritual facilities, Residential facilities and Tomb facilities. Among them, Heaven Ritual facilities are the main facilities, and the remaining Residential facilities and Tomb facilities are the attached facilities of Heaven Ritual facilities. Heaven Ritual facilities continued from the late neolithic period(Baedalkuk倍達國) to Dangunjoseon檀君朝鮮 and Koguryo高句麗 period and it was consisted of ① the three-layered circular altar(the mother-son tomb) with attached square altar facility, ② the moat · two sets of Menhir · square altar · Shrine for Heaven Ritual facility. In this paper, the first facility was reviewed. The construction time of ‘the three-layered circular altar(the mother-son tomb) with attached square altar’ was B.C. 4000~3500. And the way that mother and son were buried together and the bear clay statue(Doung陶熊), jades and pottery with swastika excavated from the tomb showed that Bear熊 race(later Maek貊 race) in the late neolithic maternal society with bear-belief tradition, had embraced the advanced Heaven Ritual culture based on Sundo仙道 thoughts such as ‘Chun天·Ji地·In人(Circle·Square·Triangle)’ Thoughts(The idea of One-Three). These excavation results notices the change of research trend on the ancient history of East Asia, centering on liaoxi遼西 area since 1980s. Especially chinese scholars, according to ‘the Liao-ho river civilization theory-the Mt. Changbai culture theory’, have argued that Hungshan culture in Liaoxi area was spread to Liaodong遼東 area as well as Zhongyuan中原 area. But the excavation results of Wanfabozi altar shows that the typical Heaven Ritual culture based on Sundo thoughts was formed in Liaodong area and spreaded to Liaoxi area, and was in full bloom in Liaoxi area and again spreaded to Zhongyuan area. This is why the chinese official reports on Wanfabozi relic(State Administration of Cultural Heritage國家文物局’s) completely concealed Heaven Ritual fac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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