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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감영의 인재 선발과 낙육재 동연록(同硏錄)

        장인진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23 한국학논집 Vol.- No.93

        낙육재의 역사를 주요 관찰사별로 시대 구분하고, 주도적으로 공헌한 6명을 설정하였다. 조태억이 낙육재를 설립한 이후 조현명은 침체된 낙육재를 중창하여 절목[학규]을 확정하고, 토지[학전]를 마련하였으며, 영조로부터 도서 3종의 내사본(內賜本)을 받았다. 윤광안은 새롭게 관선당, 장서각을 마련하고, 도서를 확충하였다. 엄세영, 조기하, 이헌영 등은 학교을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목표에 관심을 갖고 일조하였다. 인재 선발은 감영에서 백일장을 열어서 선발하였다. 정원은 30명을 뽑아 절반의 인원으로 1개월씩 교대로 학습하였다. 1800년경부터는 대체로 15명을 선발하여 1년간 관비 지출을 함에 따라 무료 숙식으로 거재하였다. 1902년부터는 대개 1개월 단위로 선발하여 1개월씩 거재하였다. 신교육이 대두되던 시기에 명맥을 유지하는 차원이었다. 이번에 필자는 그간에 수집한 낙육재 동연생을 종합하였다. 영조·정조 연간 70명, 순조·헌종·철종 연간 106명, 고종 연간 315명 등 491명이다. 이 인원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낙육재는 경상감사의 인재 양성 의지에 힘입어 교육 예산이 비교적 풍족하였고 교육여건이 좋아서 한 번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차례 선발되어 거재하기도 하였으니, 선발자를 거재 횟수별 살펴보면 1회 356명(72.5%), 2회 101명(20.57%), 3회 27명(5.5%), 4회 7명(1.43%) 등 491명이다. 이를 연인원으로 환산하면 667명이다. 2~4회 선발되어 거재한다는 것은 유생들이 낙육재 선발·거재를 영예롭게 여겼다고 생각한다. 낙육재 거재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15세에서 73세까지 다양하였다. 그 중에서 30대가 가장 많고, 다음이 20대이며, 그 다음이 40대이다. 낙육재가 기초 학습기관이 아닌 연학(硏學)의 교육기관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재생들 가운데 문집을 남긴 사람 76명을 확인하였다. 이들의 낙육재 관련 글은 시 작품이 많다. 거재할 때 재생들이 시구(詩句)를 번갈아 지었던 연구(聯句), 동일한 시제의 차운, 독서·사물·계절을 읊은 것 등 다양하였다. 관찰사와 송별할 때의 전별시, 동연의 벗과 이별할 때의 임별시 같은 것이 여러 편이었고, 향음례·정읍례를 행할 때 읊은 것도 더러 있다. 낙육재 이건할 때의 시에서는 남의 집을 빌려서 낙성해야만 했던 1904년 시대상이 그려져 있다. 재생의 문장으로는 건물을 신축 또는 중수할 때 지은 기문을 포함하여 상량문, 각종 서문, 유록 등이 있는데 낙육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다. 한편 재생의 글 가운데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오록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세월이 지나서 편집한 글임을 감안하면 고증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재생 가운데는 구한말 애국 계몽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위정척사를 주창한 허원식을 포함하여 7명을 확인하였다. 낙육재가 철폐된 이후 재생 가운데는 문우관을 세워 문풍을 전하기도, 협성학교를 창립하여 신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번 연구에서 필자는 낙육재 동연생을 각종 문헌에서 491명(연인원 667명)을 수집하여 조선시대 경상도 공교육의 ‘영학 동연파(營學 同硏派)’이라는 새로운 인적자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인명의 활용을 기대해 본다.

      • KCI등재
      • 기관지천식 환자에서 salbutamol의 분무치료에 의한 혈청 칼륨 농도의 변화

        장인진,지영구,권숙회,이계영 대한알레르기학회 1998 천식 및 알레르기 Vol.18 No.4

        Background and objective: The knowledge about the effects of the nebulized β₂-agonist on serum potassium is limited. We aimed to assess the possible hypokalemia following nebulization of salbutamol. Methods: Seven patients(mean age 60 ±7.1years) with acute exacerbated asthma were treated with salbutamol nebulization(5mg nebulization at 1 hour interval, 3 times) without concomitant use of steroid or other bronchodilator such as theophylline. Results: There was a significant increase in FEV1, from 46.41 ±25.91% at baseline to 62.86 ±22.38% at 3 hours after treatment. Serum potassium concentration was significantly decreased, from 3.93 ±0.58mEq/L at baseline to 3.41 ±0.62mEq/L and 3.46 ±0.53mEq/L at 1 hour and 3 hours after third nebulization, repectively. There was a significant prolongation of the QTc interval in EKG from 454.36 ±27.07msec at baseline to 479.41 ±35.64msec and 505.09 ±58. 69msec at 1 hour and 3 hours after third nebulization, respectively. Serum salbutamol concentration was 4.18 ±3.39ng/ml at baseline, and increased to 7.69 ±6.94ng/ml and 9.84 ±10.34ng/ ml at 1 hour and 3 hours after treatment, respectively. Magnitude of the hypokalemia and the degree of prolongation of the electrocardiographic QTc interval were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the level of serum salbutamol concenturation. Conclusion: The results suggest that cardiac complication could develop due to hypokalemia during repeated salbutamol nebulization. Caution should be done in monitoring of serum potassium concentration when using nebulized salbutamol repeatedly for the treatment of acute exacerbated bronchial asthma.

      • KCI등재

        원나라 劉辰翁 評點本의 조선전기 출판 현상

        장인진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9 한국학논집 Vol.0 No.77

        중국 원나라 須溪 劉辰翁(1232-1297)은 이름 있는 批評家이다. 문헌을 살펴보면 중국의 저명한 사람들의 저술에 대하여 評點을 달아서 간행한 것이 많다. 평점은 시문의 묘한 곳에 批語[批評]와 圈點을 치는 것을 말한다. 유진옹 평점본의 조선 판본은 10종 39본으로 확인되는데, 대개 조선 전기의 간행본이다. 이 가운데 『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 8本, 『纂註分類杜詩』와 『須溪先生評點簡齋詩集』이 각각 7본씩 간행되었다. 杜甫의 경우 『須溪先生批點杜工部詩』 3本을 합하면 10本이고, 蘇軾의 경우도 『東坡詩選』을 합하면 9本이다. 조선전기 문인들은 두보·소식을 가장 중시한 것이다. 당시에 두보·소식의 시를 배우는 데는 유진옹의 평점을 통한 ‘由蘇入杜’(소식을 거쳐서 두보로 들어감)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陳與義, 陸游 등의 江西詩派도 주목하였다. 간행 시기를 살펴보면 15세기 10本, 16세기 25本, 17세기 초[光海年刊] 4本으로 나타나는데, 1445년에 간행한 『須溪先生批點孟浩然集』이 가장 빠른 시기에 나왔다. 17세기 초엽 이후로는 유진옹 평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나서 새로운 간행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7세기 중엽에 『名公妙選陸放翁詩集』[承應本]이 판각되었는데, 1465년에 조선의 全羅監營에서 간행한 『명공묘선육방옹시집』의 受容으로 볼 수 있었다. 조선전기의 중국 시집의 유진옹 평점본은 개인적 출판이라기보다는 금속활자, 금속활자 번각본이 있어서 조선의 중앙 및 지방의 관아가 주도적으로 출판한 것이라 하겠다. 평점 현상을 알고자 하여, 우선 『육방옹시집』 후집을 살펴보면 전체 시 220수 가운데 圈點을 한 것이 겨우 64수뿐이고, 詩句 또는 詩篇의 말미에 달았던 批語는 총 66개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체의 작품에는 평점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유진옹 평점본은 조선전기 문인들이 중국 문인의 시를 배우는 자료로 주목하고 출판 성황을 이루었으나, 조선후기에는 판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진옹 평점본 10종 39본에 대해서는 소장처별로 청구번호를 제시하였다.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자료를 식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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