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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15세기 장말손(張末孫) 패도(佩刀) 연구

        장경희(Jang, Kyung-hee)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18 조형디자인연구 Vol.21 No.2

        Jang Mal-sohn was a military official during the era of King Sejo in the Joseon Dynasty. For Jang had defeated the invasion of Joseon by the Jianzhou Jurchen people in Hoeryong, Hamgyong Province in 1466, King Sejo bestowed him a cavalry sword along with other prizes. <The Ornamental Knife of Jang Mal-sohn> resembles a clasp knife(籤子刀) that was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umber 188-2. This sword is made of luxurious materials such as gold and ivory, and it shows a strong symbolic representation with the figure of dragon and tortoise. It demonstrates the exceptional level of the imperial handcrafts through the techniques of covering with bamboo sheath and working with gold and silver. Meanwhile, the imperial China usually demanded a variety of small knives as tribe or gift for its envoys between the era of Sejong and Seongjong of Joseon. For this reason, the knife craftsmen of Joseon were to produce small clasp knives that can carry chopsticks. According to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 craftsmen created a large number of multipurpose knives including the set of 3 knives or the set of 5 knives . Thus, this knife contains a historical significance as it represents the imperial metal craft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15th century.

      • KCI등재

        19세기 寶匠 全씨 집안 형제들의 활동실태와 金寶匠으로의 성장과정 연구

        장경희(Jang, Kyung-hee)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 장서각 Vol.- No.52

        본 연구는 19세기에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어보를 제작한 寶匠 全三得과 全興石 및 全興吉 등을 대상으로 30년 또는 50년 이상 장기간 국역에 동원된 장인들의 활동실태를 분석하여 그들이 金寶匠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밝혀 보려는 데 있다. 『조선왕실의궤』에 의하면 전씨 집안의 장인들은 18세기 말부터 등장하여 20세기 초까지 국혼이나 국장 및 존호존숭 때마다 설치 운영하였던 도감에서 왕실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금보를 만드는 금보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하지만 그들 장인들이 처음 도감에 징발되었을 때는 대개 금속공예 분야의 마경장이나 두석장이었으며, 그들 중에서도 가장 뒷자리에 위치하였다. 그러다가 10년 또는 15년 뒤 그들이 도감에 재입역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중간 이상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이를 통해 공백기 동안 그들이 관련 분야의 기술을 연마하여 수준을 끌어올렸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전씨 집안 장인들 대부분은 2~3년마다 도감역에 동원될 때는 마경장이나 두석장의 우두머리 역할을 주로하며 성장하였는데, 의례의 핵심 상징물로 사용되는 국혼이나 국장 및 존숭 때에는 보장으로서 각자 5과 이상의 책봉보나 시호보 및 존호보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이들 집안 장인이 아닌 다른 보장들이 대개 1번의 도감에만 동원되어 1과의 금보만 제작했던것과 비교된다. 전씨 집안의 보장 중 全三得은 19세기 전반에 금보 5과를, 全興石과 全興吉은 19세기 후반부터 대한제국까지 國璽와 御寶로 금보 7과씩을 만들며 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이 제작하여 종묘에 소장되어 있던 금보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지녀 202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ed light on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craftsmen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royal seals—symbols of royal authority—over a span of 30 to 50 years during the 19th-century Joseon period. Focusing on the artisans Jeon Sam-deuk, Jeon Heung-seok, and Jeon Heung-gil, this study analyzes their activities and career progression. According to Uigwe (“Illustrated Record of Rituals”), members of the Jeon family began their work as seal-makers in the late 18th century, continuing into the early 20th century. They were responsible for crafting gold seals in offices established for significant events such as royal marriages, state funerals, and ceremonies honoring royal family members. When first mobilized for these offices, Jeon family artisans typically started in the lowest positions within the metalcraft field, such as Magyeongjang (metal-sanding artisans) or Duseokjang (brass-making artisans). However, after 10 to 15 years, upon being mobilized again, they had advanced to mid-level positions, suggesting that they refined their skills during the intervening years. Over time, many Jeon family craftsmen rose to leadership roles, heading the Magyeongjang or Duseokjang offices during their mobilizations, which occurred every 2 to 3 years. These artisans also distinguished themselves by producing multiple gold seals for significant state ceremonies. While other craftsmen typically made only one seal when called upon, Jeon Sam-deuk created nine gold seals in the early 19th century, and Jeon Heung-seok and Jeon Heung-gil each produced seven seals from the late 19th century into the Korean Empire period. The seals they made were preserved in Jongmyo (the Royal Ancestral Shrine) and have been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In 2003, these artifacts were designated as treasures, representing key examples of craftsmanship from this period.

      • KCI등재

        가구산업의 신제품개발 아이디어 평가모형에 관한 연구

        장경희(Kyung Hee Jang),정우양(Woo Yang Chung) 한국가구학회 1996 한국가구학회지 Vol.7 No.1

        This study was conducted to understand consumers’ purchasing trend and to point up the significance of the new product development in the furniture manufacturing industries. We first analyzed the present industrial conditions and surveyed the consumer s behavior on new product ideas and its application and help the domestic furniture industries promote their new product development successfully. Furthermore, the results are expected to help them improve competitiveness. It is desirable that new product development should emphasize the quality of product in the domestic markets and the new technology and design in the overseas markets. Consumers want to buy furniture products with good functions at low prices. So the furniture manufacturers must develop new technology and d ε sign to reduce the cost and to offer various functions of the furniture. Considering the present managerial conditions of furniture industries, it would be practical to utilize the weighted evaluation model of the new product development ideas. The weighted evaluation model ranks payability, productivity and policy of th ε industry in the order of their significance (internal factors), and competitive power, sales ability, and marketability (external factors) of the furniture manufacturing industries.

      • KCI등재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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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王室工藝史 硏究의 成果와 課題

        장경희(Jang Kyung-hee) 고려사학회 2006 한국사학보 Vol.- No.25

        공예는 미적 형상과 실용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조형예술이다. 전통 공예품 중에서도 왕실공예품은 불교공예품과 더불어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공예품이다. 조선후기 왕실공예품은 제작의도와 용도에 따라 구분되며, 왕조정부에서는 제품의 용도와 종별에 따라 상설 또는 임시 관청을 두고 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첫째, 궁궐 내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일상용품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속성이 강하여 종류는 적지만 수량은 많았다.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국가에서는 여러 관청을 두어 제작하였으며 대표적인 공예품인 도자기는 司饔院 分院에서 제작하였다. 둘째, 國婚이나 國葬 등 왕실의 의식은 부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데다 단기간에 다양한 종별의 많은 의례용 공예품을 제작해야 하였다. 결국 왕조 정부는 그때그때 국가의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는 權設都監을 개설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후기에는 상설아문과 권설도감이 상시적 또는 임시적으로 왕실공예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통하여 이들 제작처의 조직체계, 재료의 조달, 설비 · 도구 및 장인들의 존재를 밝히는데 역점을 두려한다. 그리고 특히 공예사는 회화사와 달리 ‘익명의 공예사’로 치부될 정도로 공예품을 제작한 작가, 장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조선후기 왕실공예장인들의 존재에 관한 연구 업적을 분석하여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인 입지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도 살펴보려 하였다. 그 결과 조선후기 왕실공예사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너무도 많았다. 우선 왕실공예사 연구는 현존유물이 많은 도자공예사에 너무 치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원의 進上 도자기는 수많은 왕실공예품의 한 종류에 불과하므로, 앞으로는 도자기뿐 아니라 왕성공예품 전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왕실공예사 연구는 왕실의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여러 품종의 공예품들의 생산실태를 밝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왕실의 의복을 제작하던 尙衣院은 조선 전 · 후기에 걸쳐 존속하였고, 대한제국시기에는 尙衣司로 개칭되었으므로 그 운영실태부터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한편 왕실공예품 중 權設都監에서 제작한 공예품은 그때그때 제작관청에 동원된 장인들의 이름이 기록에 명기되어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서울의 5대궁이나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부터 기록과 대조하여 품종별로 제작시기와 匠人의 이름을 밝혀야 한다. 이처럼 왕실공예품의 절대연대가 확인되고 제작자가 밝혀지면,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문화재로 등록하는 절차도 밟아야 할 것이다. 현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는 대부분 조선시대 이전의 것이므로, 500여 년간 유교문화를 꽃피운 조선왕조의 왕실공예품들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은 공예사 연구자들이 담당해야 할 중대한 과제라고 하겠다.

      • KCI등재

        조선왕실의궤를 통한 장인 연구의 현황과 과제

        장경희(Jang, Kyung-Hee)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조선 왕실의 의례 때마다 왕조정부는 임시로 도감을 설치하여 당시 최고의 솜씨를 가진 장인을 차출하여 건물이나 공예품 등을 제작하였고, 그 전말을 가감없이 낱낱이 『의궤』에 모두 수록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2000년을 전후로 조선시대 장인에 대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2000년 이전에는 한국사와 건축사 분야에서 장인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전자는 『경국대전』을 비롯한 법전이나『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통해 장인의 법적 지위나 제도사적인 변화양태를 파악하였다. 후자는 궁궐을 건설한 목수를 중심으로 그들의 조직이나 노임과 사용도구 등을 연구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서지학, 미술사 분야에서 장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의궤에 수록된 장인을 통해 왕실의 가례와 흉례 및 길례와 관련된 도감에서 활동한 장인들의 존재를 찾아냈으며,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할 장인의 종별을 분석하고, 그들의 직역이 시기에 따라 변화되는 양상 및 처지 등을 밝혀내었다. 기존 성과의 토대 위에서 향후 조선시대 장인에 대해 연구해야할 과제를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인들의 성장 및 장인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조선시대에 장기간 활동한 장인들은 邊首에서 都邊首로, 다시 牌將 등 우두머리로 성장하였으며,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여러 작품에 참여하였다. 의궤를 통해 한 시대의 대표적인 장인을 발굴하고 그들이 제작한 현존하는 유물을 찾아낸 다음 그 작품들의 시대 양식을 분석하고 그 속에 담긴 기술적 발전과 장인 정신을 규명해야 한다. 둘째, 장인들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의궤에는 장인들이 사용한 전통 재료와 수입 재료의 종별과 수급방법 그에 따른 시설이나 도구의 시기별 변화 양태가 밝혀져 있다. 이에 대한 기초조사와 과학적인 분석을 한 다음,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공예 종목의 재료와 도구를 비교하여 시대에 따른 변화양상을 파악해야 한다. 셋째, 장인들이 제작한 조선시대 유물에 대한 비교 연구도 제안한다. 왕실 회화와 민화, 능묘조각과 불교 조각 및 민속조각의 비교와 함께 종묘 제기와 사대부 제기 등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궁궐에 소장되었던 유물을 발굴하고 그것이 제작된 시기의 민속품과 양식적인 비교를 통해 宮樣과 민속과의 관계 등을 밝혀야 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장인 연구는 학제간 융복합 연구가 수반된다.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문헌에 대한 역사적 통찰, 장인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 및 기술에 대한 기술적 이해, 현존하는 유물에 대한 미술사적 양식 분석, 현존 무형문화재 장인에 대한 민속학적 현장 조사까지 아우른 통섭적 이해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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