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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과 바쇼(芭蕉) 시의 상관성 연구

        임곤택(Lim Kon-taek) 韓國批評文學會 2010 批評文學 Vol.- No.36

        This study compared Cho ji-hun with Matsud Basho on the word ‘nunmul(sadness)’. these poets break through tne barrier of western modernization. Basho was a poet lived 300years before but now widely appreciated and Ji-hun was a modern poet but wrote about traditional object successfully. As for the expression of sadness, Basho adopted ‘teardrop - showing’ style, and Ji-hun choosed ‘teardrop-suppressing’. But these characteristics meet at one point, namely the sympathy and compassion for the destiny of all beings in the world. ‘The insight of the destiny, the sympathy and compassion for the destiny and the unique way of expression of the sadness’ are the very achievement of Ji-hun and Basho.

      • KCI등재

        미디어에 대한 한국시의 인식과 대응

        임곤택 ( Kon Taek Lim ) 현대문학이론학회 2015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61

        이 논문은 미디어에 대한 한국 시인들의 인식과 대응을 알아봄으로써 한국현대시의 전체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는 시도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는 근대 초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시기 ‘인쇄, 전파, 인터넷’으로 전개되어온 주류 미디어에 한국의 시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작품 분석을 통해 알아보려는 것이다. 분석대상은 이상, 김수영과 박인환, 이원, 그리고 최근 SNS 시인으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이다. 李箱은 ‘인쇄(물), 우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과거로부터 쌓여온 것들에 대한 불신과 거부를 나타내는 한편, 편리함을 넘어 지배하고 감시하는 근대미디어의 속성을 간파한다. 김수영과 박인환은 매스미디어가 확산되는 시기에 활동하며 잡지,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의 광범위한 오락 제공 기능을 포착한다. 이들은 미디어를 현실 이해의 매개로 이용하면서 매스미디어의 이면에 놓인 상업성과 정체성 왜곡 등의 역기능을 드러낸다. 한편, 이동통신의 발달은 개개인을 질적 차이가 소거된, 네트워크 상의 단자들로 만든다, 이원은 이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과 미래 예측을 보여준다. 李箱부터 이원에 이르는 시인들은 미디어를 대상화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그 기술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추출해낸다. 그러나 최근의 이른바 SNS시인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미디어 프렌들리(media friendly)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전의 문학과 미디어의 관계에서 얼마간의 ‘긴장’을 읽을 수 있다면 최근 SNS시인들은 미디어에 최적화되면서 그것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시인들의 미디어에 대한 감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미디어 생태계’란 말이 나타내듯이, 미디어는 이제 삶의 불가결한 조건이 되어 있다. 새로운 미디어에 불편해했던 한국의 시인들이 미디어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생존하려는 경향은 계속될것으로 예상해 본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How Korean poets appreciate and response to media, from the early of modern period to 21st century, with Lee-Sang, Kim Su-yeong, Park In-hwan, Lee-Won, and SNS poets. Lee-Sang described handwriting and printing as the suppressing tradition. and penetrate the attributes of modern media. Kim Su-yeong and Park In-hwan were interested in mass media like fashion magazine and television. They found out the negative aspect of mass media lied behind the possitive role of that. Lee-Won predicted how people would live in the information network. Meanwhile, the poetry of so-called SNS poets, recently are much media friendly. Because they live and write in Media Ecosystem, they can`t have the objective distance. From Lee-Sang to Lee-Won, Korean poets have had negative position on the media. But now the media have been the indispensable condition of human life and Korean poets may have to adapt to and survive the condition and ecosystem.

      • KCI등재

        1950~60년대 서정주 시 연구

        임곤택(Lim, Kontaek) 한국언어문학회 2011 한국언어문학 Vol.7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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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s about SUH Jung Joo’s poetry in the 1950~60s. The 1950~60s is the period of the postwar devastation and restoration. Corresponding to this postwar situation and the fear of death, Suh Jung Joo begins to search for ‘eternity’. In this paper, I analyze Suh’s poems and essays, with the theory of mith, inquire the process of his search for eternity(Shilla), and explicate significance of his 1950~60s poetry. In two poems, ‘Mudeung-eul Bomyoh’ and ‘Sangrigwawon’, Suh tries to overcome the 1950~60s situation by dissociating human from nature. In these poems, geographical image such as mountain and river represents unchangeability, while the image of youngling and baby mediates eternity. Whereas essentiality and permanence converge into ‘mind’, there is hidden carnal desire behind mind which he separated. He continually reveals mind and body ambivalently in his poems. In his collection of poems, ‘Shillacho’, he reveals his resignation. His resignation is related to the fact that ‘mind’ is fully inseparable from body, and that this inseparability does not remove fear and apprehension of death. So, finally He went to face the ‘virgin ghost’ . With this, his journey to ‘Shilla’ is compeleted.

      • KCI등재

        ``2차 시조부흥운동``의 전개와 의의

        임곤택 ( Kon Taek Lim )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49

        이 논문은 이른바 ``2차 시조부흥운동``의 전개를 개괄하고 그 과정에서 펼쳐진 논의들의 동의와 충돌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한 의미 등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한국현대문학사 내에서 ``2차 시조부흥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현대문학이 일제강점과 해방, 6ㆍ25를 거치며 자기정립을 해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전통``의 역할과 의미를 규명하려는 노력의 선행 작업에 해당한다. 1952년 부산에서 처음 결성된 ``시조연구회``와 『시조연구』는 2차 시조부흥운동의 첫발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활동은 시조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비평, 창작 등에 걸친 폭넓은 것으로 시조를 부흥하기 위한 적극적인 운동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시조연구』의 『간행사』와 이태극의 「시조부흥론」 등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시조부흥에 대한 지향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시조를 현대시로 정립시키자는 문학적인 측면의 것이며, 둘째는 ``국민문화 재건, 국가민족의 재편 확립``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담지체로서 시조가 복무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1955년 1월 조선일보 등 저널리즘의 전통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시조부흥운동``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는데, 시조의 부흥은 당위의 것으로 인정한 바탕위에 논의가 전개된다. 이 시기는 시조의 문학적 자기 갱신의 노력을 펼친 시기라 할 수있을 것이다. 1956년 6월 정병욱의 「시조부흥론 비판」을 필두로 부정적 의견들이 연이어 제출된다. 시조의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현대시로서의 발전은 불가능 하다는 내용이다. 이 역사적 가치와 현대시로서의 향유 사이에 ``제2 예술론``이 제시되고 정병욱의 이 제안은 이후 여러 논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1958년은 ``2차시조부흥운동``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데, 이후 시조부흥에 대한 관심은 ``전통론, 혹은 민족주의 문학론``으로 흡수된다. 한국의 현대문학은 ``전통과 현대, 형식과 내용, 형식에서의 정형과 자유, 정치성와 문학성`` 등을 시조부흥운동 안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시조부흥운동은 한국현대문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현대문학의 자기 정립을 위한 하나의 계기였고, 시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조의 위치를 한국현대문학 안에서 객관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판단된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process and meaning of The the 2nd Sijoh Renaissance campaign, The campaign was started in Busan with The Research Association of sijo, And until June 1956, It`s focussed on the modulation of form and content. But Jung Byung-uk opposed and debated the campain, and issued "second arts" as an alternative for sijo. His suggestion was widely accepted and, the discussion about the campain combined to the nationalist literature issue. The modern literature of Korea could experience ``tradition and modern, form and content, political and literary`` in one genre during the 2nd Sijoh Renaissance campain. The campain was a chance for The modern literature of Korea to establish its identity. And as Siji, it`s the process of objec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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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개념어의 기원과 전통 인식

        임곤택(Lim Kon-Taek) 韓國批評文學會 2011 批評文學 Vol.- No.39

        이 논문은 한국 현대 시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전통의 의미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연구의 기초 작업으로 시도하였다. 먼저, ‘전통’이라는 개념어가 최초로 쓰인 시기와 용례를 추적하고 그 의의를 구명하고자 하였으며, 1950~60년대 서정주, 조지훈, 김춘수 세 시인의 ‘전통’에 대한 인식을 살폈다. 먼저, ‘傳統’이라는 용어는 동양문화권에서 이미 쓰이고 있었지만, 한국현대문학사에서 하나의 개념어로 쓰인 것은, 1933년 일본에서 T.S. 엘리어트가 번역되고, 다음해 최재서에 의해 그가 소개된 것을 계기였다. 이 논문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의 ‘전통’을 ‘Trdition’의 번역어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전통’이 소개되는 즉시 널리 퍼진 것은 아니며 ‘傳承’, ‘繼承’ 등의 용어와 혼용되다가, 차츰 ‘전통’이 유사한 용어들을 흡수하여, 전후 전통 논의에서는 일반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정주, 조지훈, 김춘수의 경우, 각각 ‘전통’에 대한 생각을 개진하는데, 서정주의 경우는 ‘민족’의 현실을 계속 되는 ‘실패’로 파악하고, ‘永生主義的 宇宙自然主義’를 ‘전통’으로 계승할 것을 언급한다. 조지훈의 경우는 현실의 ‘위기’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정당한 저항’을 통해 ‘전통’을 재창조, 혹은 계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김춘수는 ‘전통’을 ‘시 형태’와 관련시킨다. 이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은 각각, ‘신라’라는 초월의 세계로, ‘현실 참여’로, ‘타령조’의 수용을 통한 ‘무의미’로의 진행에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is about the origin of the conceptional term, ‘Tradition’ and poets’ understanding for tradition 0n 1950~60s in Korea. In that period T.S Elliot’s concept of the tradition was widely prevailed. And the concept was firstly introduced by Choi Jae-Seo and Kim Ki-Rim in the middle of 1930s. Suh Jung-Ju’ thinking for tradition could be charaterized with the resign to fate and the aiming to eternal life. And Cho Ji-Hun emphasized the new interpretation and proper resist for the present and the tradition. These two poets thought the tradition in the ideational content, and Kim Chun-Su concentrated in traditional form. Suh, Cho and Kim had the similar thought about the reality but understood the tradition differently. And these different thought leaded them to charateristic wr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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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기 서정주의 선택과 ‘민족’의 재구성

        임곤택 ( Lim Kon-taek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7 한국학연구 Vol.0 No.45

        이 글은 서정주의 해방 전후 작품을 비교하여 해방이라는 계기를 통해 서정주가 ‘민족’을 상상해가는 과정을 밝힌다. 1937년 발표한 「경주시」를 1946년과 1950년에 각각 발표한 「석굴암관세음의 노래」, 「선덕여왕 찬」 등과 비교한다. 「경주시」는 기행시라는 부제가 붙은 예외적 작품으로 이후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는다. 경주는 명승지로 관람되며, 퇴락한 왕조라는 낭만적 시각으로 재현된다. 제국의 시선으로 경주를 경험한 것인데 당시 여러 지식인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서정주는 굳이 ‘-기행시’라는 부제를 붙이는 등 스스로 「경주시」의 예외성을 드러낸다. 개인의 감각과 제국의 시선 간의 불일치, 스스로를 재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식민지민의 불안을 드러낸 것이며 서정주의 예민한 감각은 일제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데 어떤 균열을 일으킨 것으로 판단된다. 1946년 서정주는 18편의 작품을 발표하는데,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적 연속성의 모티프다. 같은 해 발표된 「문학자의 의무」에서 이 ‘연속’이 중요한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의 척도로써 ‘천년의 지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해방과 이데올로기 대립 상황에서 서정주는 사회주의와 민족을 각각 ‘일시적 사조’와 ‘천년의 지혜’로 치환하여 대비시킨다. 제국의 시선(식민본국)의 부재, 사회주의라는 타자의 부각을 계기로 서정주는 새로운 동일자, 새로운 ‘민족’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1950년에는 ‘영원주의 신라’가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속성의 관념이 보다 확고해지고 신라는 구원자의 이미지로 재현된다. 선택된(혹은 거부된) 이념을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의 문제는 해방기 서정주 문학의 중요한 주제였으며, 정치적 선택과 미학적 선택을 일치시킴으로서 서정주는 문학적 활로를 열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is to survey How Seo Jeong-ju imagine the Korean Nation under the influence of Liberation. This study review his three peoms, ‘The poem of Gyeongju’(1937), ‘the song of Seokguram Kwansaeeum(1946)’, and ‘the eulogy of Queen Sunduk’(1950), and refer to essays, ‘The object of Writer’(1946), ‘Legitimacy and vulgarlity’(1946), and etc. ‘The poem of Gyeongju’ was a exceptional works of Seo, subtitled ‘travel poetry’. It represented Gyeongju a ruined dynasty, in a romantic perspective. This perspective was quite normal in colonial period. But Seo felt a rift come from a disagreement between individual sense and imperial perspective. In 1946, Seo issued 18poems. a significant charateristics of these poems was a motif of continuity, which had lasted a millenium. This motif was made upon the absence of imperial perspective and magnification of socialism. And the motif made Seo imagine the Korean Nation having the wisdom of a millenium. In the period of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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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임곤택(Lim, Kon-taek) 우리문학회 2012 우리文學硏究 Vol.0 No.37

        이 논문은 이장희의 시를 통해 1920년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감각’의 양상을 탐구하고, 이른바 ‘미적 자율성’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먼저 감각 활동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매개인 ‘매질(감각 기관과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을 통해 근대적 감각이 지닌 한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감각 주체(혹은 기관)와 대상의 만남이라는 사태는 일반적으로 물질적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치원의 ?秋夜雨中?과 이장희의 ?비오는 날?을 비교 분석하여, ‘창호지’를 바른 창과 ‘유리’를 붙인 창의 차이에서 오는, 청각 중심과 시각 중심의 감각적 경험이 초래한 상상력 전개와 정서적 진행을 추적하고, 근대적 감각의 성립이 ‘물질’의 변화(근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대상’의 성격에 따라 감각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폈다. 이장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대상을 시의 소재로 선택한다. 새로운 도시의풍경과 생활공간 속의 事象이 그것인데, 각각의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묘사양상이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 ‘신작로’나 ‘전차’같이 근대 이후 새로 도래했거나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지닌 사물에 대해서는 불분명함을 나타내는 시어로 침울하게 묘사한다. 반면 익숙한 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밝은 이미지를 얻게 된다. 생활공간 속의 사상은 오래전부터 경험해 온 것들로, 그것들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대상을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묘사하게 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대상에 따라 감각(적 재현)의 양상이 달라지는 사태는 결국 이장희가 이른바 ‘미적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획득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 듯하다. 정치ㆍ사회적 맥락과 연관된 사물과 그렇지 않은 사물에 대한 감각의 相異는, 이장희의 감각이 그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장희는 한국 현대시의 감각이 ‘미적 자율성’의 획득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1920년대 한국 현대시는 근대의 ‘미적 자율성’ 획득을 위한 중요한 체험의 시기였다는 점을 이장희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This study is to survey whether and how Lee Jang-Hee and Korean poetry of 1920s achieve the ‘aesthetic autonomy’, through the aspect of their ‘senation’. Firstly we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sensation according to medium which lied between the sense organ and the objects, with analyzing Choi Chi-Won’s ?秋夜雨中? and Lee’s ?비오는 날? and concluded the modern sense was related with the material of sensation. It’s the difference from the material of the window. the sensation is varied on the objects. Lee selected two kind of objects. the one was that of modern city, and the other was that in living space. With the former Lee described the objects unclearly and gloomly. But in case of the objects in living space he described concretely and brightly. It’s because the sensational system of Lee was activated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objects, especially the politicalㆍsocial meaning of that objects. Lee could be estimated that he achieved the ‘aesthetic autonomy’ partially. And we conclude the korean poets in 1920s was a mediate step to ‘aesthetic aut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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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현대시조론 연구

        임곤택(Lim, Kon-Taek) 한국시학회 2014 한국시학연구 Vol.- No.40

        이 글은 이태극의 시조론을 통해 1950년대 시조론의 성격을 살피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당시 시조와 관련한 논의들은 전후 전통론의 계기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자기 정립 과정에 중요한 경험으로 작용한 의미를 지닌다. 이태극은 현대시조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2차 시조부흥운동’의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문단의 흐름을 폭넓게 수용한 시조론을 제출했다는 점에서, 그를 통해 1950년대 현대 시조론의 문학사적 위치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태극 시조론의 궁극적 지향은 시조 부흥에 있었고, ‘시조는 시’임을 증명하는 일을 첫 번째 방법으로 삼는다. 그는 서구의 ‘단형시’와 시조를 동일시함으로써 ‘시조는 시’임을 밝힌다. 시조가 문제된 이유는 현대시가 아니라는 점이었지만, 그는 현대시보다 상위 개념인 ‘시’를 직접 참조함으로써 시조의 비현대성 문제를 비켜간 것이다. 또한 자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시조가 정형이면서도 자유롭고 유연한 형식임을 증명한다. 또한 시조와 서구 ‘시’의 공통되는 자질로서 ‘운의 효과, 성조’ 등을 찾아내고, 이것을 최대한 살린 시조 唱을 긍정하게 된다. 시조가 창으로 불림으로써 더 잘 보급되었다는 역사적 고찰의 결과이기도 한 ‘時調唱의 긍정’은 이태극 시조론의 변별적인 특징이며, 1920년대와 달리 1950년대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시조를 이해하려 했다는 표지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개성과 자립성을 강조하는 창작법을 통해 시조를 민족문학의 정수로, 동시의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위치 지운다. 이태극은 1920년대 이래 시조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고, 唱의 회복 등 현대 시조의 정체성을 고시조와의 연속성 속에서 정립하는 한편,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시조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태극을 통해 본 1950년대 시조론은 ‘현대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주제를 시조 갈래에서 고민하고 구현한 결과로 한국현대문학의 자기 정립과정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eaning of the theory of modern Sijoh in post-Korean war, focused on Lee, Tae-Keuk. The aim of the theory of Lee is at the revival of Sijoh, and firstly he tried to verify ‘Sijoh is a kind of poem’. He identified Sijoh with western short poem and insisted the form of Sijoh was flexible. And with the effect of rhythm and cadence of Sijoh, Lee affirmed the sing of Sijoh. But the song of Sijoh that Lee affirmed was not the same one with that of falk Sijoh(古時調). Because the song of Sijoh was for modernizing of Sijoh. The theory of modern Sijoh of Lee, Tae-Keuk had meaning of modifying the understanding of Sijoh from 1920s and issuing new theory on the literary environment of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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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戰後)전통론의 구성과 의미 -서정주와 조지훈을 중심으로

        임곤택 ( Kon Taek Lim ) 한민족문화학회 2012 한민족문화연구 Vol.41 No.-

        이 논문은 서정주와 조지훈 등 이른바 戰後전통주의자의 언급을 검토하여 당시의 ‘傳統論’의 내적 구조와 의미를 알아보려는 노력이다. 기존에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생각되는 전통담론의 일반적인 생성 메커니즘이나 효과 자체가 아니라, 그 전후적 양상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피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의 전후 사회를 규정하는 조건 중의 하나는 일제 강점과 전쟁을 겪으며 초래된 정신적ㆍ물질적 ‘공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졌는데, 문학의 층에서 볼 때, 일부 문학인은 당시에도 유효할 수 있는 ‘전통’을 회복하고자했으며, 다른 일부는 전후문학이나 실존주의 같은 서구의 사상ㆍ사조를 참조하여 새로운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논문에서 관심을 갖는 이른바 ‘전통주의자’들은 당시의 문화적 공백이 서구 문화에 의해 보충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졌으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전통론을 모색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는 이미 한국의 ‘우방’이었으며, 친미적 정권과 우호관계에 있던 전통주의자들이 서구 문화를 부정하는 전통론을 구성하기 어렵다는 데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정주와 조지훈은 서구의 문화를 긍정하면서도, ‘우리 민족’을 주체로 산출하는 일련의 전통론을 발표하게 된다. 그들의 전통론에는 밀려오는 서구 문화에 대한 대결의식과 그것을 주도적 위치에서 수용하려는 노력이 개재되어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첫째, 전통 문화의 형성 과정에 외부(외국)로부터 유입된 ‘여러 갈래’가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재래적인 것’과 ‘이입된 것’을 주객의 관계에 위치시킴으로써 후자의 타자성을 분명히 하고, 양자의 ‘갈등ㆍ경쟁’ 관계를 부각시킨다. 둘째, ‘이입된 것’과 ‘재래적인 것’ 양자를 ‘선택, 종합’함으로써 전통이 형성되었다고 규정하는 한편, 그 ‘선택, 종합’의 역할을 수행할 입법자이자 판단자의 위치로 ‘민족’을 호명하게 된다. 이들은 上代나 上古와 같은 초역사적 시간을 ‘민족’의 기원으로 설정하고 ‘마음, 몸(한국적머리, 눈, 심장, 손)’의 비유를 통해 ‘민족’을 절대화한다. 결국 서정주와 조지훈이 마련한 전후‘전통론’은 ‘민족’을 절대적인 주체로 구성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게 된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개방적 자세를 취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고 판단된다. The social characteristics of post-Korean War in Korea was cultural vacuum. And it seemed to be filled with western culture. so-called ``traditionalists`` had to made some solution but there``s a dilemma that the western was the friend of Korea. So, ``Suh Jung-Ju`` and ``Cho Ji-Hun`` Who were traditionalists issued discourses which affirmed the western culture but regarded the Korean nation absolute. Firstly they mentioned the traditional culture had formed by many branches but assorted ``the imported`` and ``the conventional``, revealing the conflicting and competing relation between the two. Secondly they insisted Koran culture had formed through ‘selecting and synthesizing`` of above many branches. And the lastly, ``Korean nation`` was the agent which conduct above culture-forming process. The discourses of ``Suh Jung-Ju`` and ``Cho Ji-Hun`` made Korean nation opened and absolute. they affirmed ``the imported`` but regarded the nation Invariable. Their discourses of tradition of post-war period was an effort to cope actively with the surging western culture, and composed the nation abso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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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조지훈 후기시 연구

        임곤택 ( Kon Taek Lim ) 현대문학이론학회 2011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44

        이 논문은 조지훈의 후기시를 ‘전통’이라는 주제로 초기시와의 연관성 속에서 구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통’과 관련된 기존의 논의는 그의 초기시에 집중된 것 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후기의 이른바 현실 참여적 시 역시 ‘전통’적 ‘정신’이 다양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초기의 시에서 ‘과거의 것’은 소재나 주제, 형식 차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공적참여가 불가능했던 식민지 젊은이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개인화ㆍ내면화의 결과로 ‘슬픔의 정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을 겪으며, 조지훈은 현실을 타개할 매개로서의 ‘민족정신’을 호명한다. 조지훈에게 내재되어 있던 동양적 교양, 특히 ‘수기치인’과 ‘지행론’ 등의 논리가 ‘지조’라는 현실 참여의 규율로 구체화된다. 결국 조지훈의 후기시, 이른바 현실참여적인 시들은 지식인 참여시의 한 전형이며, 동시에 과거의 것, 동양의 ‘정신’이 현실 인식과 문학적 실천에 적용된 예라고 판단하였다 This paper is to understand Cho Ji-Hun`s poetry in his latter period in the relation with his early period. the poetry of his early period describe the object in the feeling of sadness and with fine languge. It`s because the Japanese collonialism. For a young person in his late 10s and early 20s, The collonialism blocked the social engagement, and it caused him to personalization and internalization. But Cho Ji-Hun overcomed the personal sadness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Korean-War. the sadness was moderated and changed to futural perspective. Meanwhile, The war period poetry defined the nation only the people of southern part of Korea. And He regarded the democracy and the freedom as the value which the nation should defense. And the measure of the defense is ``the ji-jo(志操)`` The poetry of the post war period concentrated on the reality of the dictationship and written with the dynamic languge. It`s the literatural engagement of Cho Ji-Hun. The poetry of the post war period of him was well harmonizd in contents and form, And showed one typical model of eng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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