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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대둔사 학승들의 유교경전 이해

        이희재,조윤호 범한철학회 2003 汎韓哲學 Vol.28 No.-

        이 글의 목적은 조선조후기 해남 대둔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유교와 불교 지식인들의 교류양태 및 대둔사 승려들의 유교 이해의 특징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사회문화적 변화상황에서 지식인들의 대응방식과 정신세계의 변천양상을 규명하는 데에 있다. 조선조후기의 불교계는 사상연구의 쇠퇴 및 이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와 내적 폐단이 심화되어, 불교 내부의 근본적 개혁을 통한 활로 개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암, 초의, 범해를 비롯한 대둔사 승려들은 교선융합적 사상을 전개하고, 나아가 불교라는 사상적 틀을 뛰어 넘어 유학자들과의 광범위한 교류를 시도였다. 전통적 성리학 중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용한 다산, 추사 등과의 교류가 그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승려들은 실학적 사고의 도입 내지 실학정신의 불교적 수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되며, 역법, 음악, 성리학 등의 다양한 문헌에까지도 폭넓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교의 승려들은 절대적 도덕률이나 전통적 규범 중시의 태도를 부정하고, 부단히 정신적 자유의 확보에 노력하여 사유방식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들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초현실성을 탈피하여 경험세계를 중시하였으며, 종교적 권위와 전통적 상징의 절대화 내지 고정화에도 도전하였던 것이다. 또한 두 지식인 집단 간의 교류는 유교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한다. 우리는 여기서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혀 이질적인 이념과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 두 지식인군의 만남이라는 사건과, 거기에 새롭게 발현되는 다양한 창조적 지성과 사유전통은 근대적 지성의 형성에 근간이 되었으며 한국지성사를 크게 살찌우고 있다. 이희재**攀 **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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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학고전자료의 디지털화를 위한 모범적인 방안 연구

        이희재 한국정보관리학회 2005 정보관리학회지 Vol.22 No.1

        이 연구는 보존 기록 자료로서의 우리의 고전 장서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고 연구자나 이용자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열람이 가능토록 하기 위한 디지털 도서관으로서의 방법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우선 동양 전래의 사부 분류법과 현대적인 주제 분류, 그리고 색인어 등을 통해 다양한 접근점을 제공하고, 둘째, MARC나 XML 등을 활용한 DL시스템을 구축하되, 서지적 기술요소를 최대한 확대시키며, 셋째, 쉬운 해제와 색인어로 이용자의 이해를 극대화하고, 마지막으로 원본의 손상을 막기 위해 원문 DB를 구축하여 열람용으로 사용한다. 이는 향후 국내외 한국 고전 관련기관과 협력,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제를 통해 국제적 서지통정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The most of all, this study is planned to search an ideal methods to develop the digital library system for our korean ancient books for their safe preservation and, at the same time, for their perusal of transcendental time and space : first, to offer the various access points like traditional oriental Four parts Classics classification, current subject classification and index keyword, etc. ; second, to program a digital library system using MARC or XML, but with all bibliographic descriptive elements as possible; third, to prepare the more easy annotated bibliography and index for users' better comprehension, and last, to build original text database for practical reading to avoid the damage of original text. This type of korean ancient books digital library will be developed to the real international bibliographic control by networking enter the same kinds of internal and external organizations.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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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蘆沙 奇正鎭의 유교의례관

        이희재 한국유교학회 2008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

        Ki Jeongjin believed the essence of Rye (禮) lay in nature’s harmony rather than rigid prescriptions. Rye (禮) can appear restrictive, but if individuals practice good manners, social relations can become harmonious. Rye, (禮), courtesy, together with Ri (理), ideal moral! principles, can result in a harmonious society. He resisted the Japanese imperial power and westernization pressure during the early 19th century. He promoted Confucian values and Chinese civilization. Ki Jeongjin accepted both the foundations of the ancient rites and Zhuzu’s scholarship. He rejected the Korean-style wedding ceremony. He respected Zhuzu’s viewpoint that forbade marrying someone from the same family name, or ancestry. One could marry a cousin on the mother’s side, but not on the father’s side, for example. (I don’t know if this is the correct interpretation) Good spousal relations represented the harmony of Yin-Yang (陰陽). Yang (陽) embodies the husband, the king, the Chinese person, and Ri (理), while Yin (陰) embodies the wife, the subject, the barbarian and Ki (氣). He believed Yang to be superior. The mourning rite (喪禮) focused on the costumes. These were worn up to three years by parents and up to three months for distant relatives. The essence of the mourning ritual was respect for the dead. {like service live persons.} [I can’t parse the phrase in brackets …] The spirit of the memorial ritual lay in honoring origins and remembering ancestors. The most importa! nt aspect of these rites was not their external appearance, but the participants’ sincere and reverent attitude. When the Korean people faced an identity crisis, the Confucian scholars tried to defend and promote these older rites and attitudes as the superior path for early 19th century Korea. 기정진에 의하면 예의 정신은 각박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구속이 아닌 화목이라고 보고 있다. 일견 예는 구속 같지만 예의범절을 제대로 시행하면 인간관계가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예는 의리정신의 연장이며 인간의 화합을 위한 중요한 절차라고 보았다. 그는 한말 서양세력과 일제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요순 이래로 이어지는 유교적 윤리와 조선왕조의 문화가 외부의 침략세력과 내부의 동요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양이(洋夷)의 무도함을 경계하고, 오랜 조선의 문화와 유교의례를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다. 전통적 화이관의 입장에서 중화사상과 춘추대의정신을 올바른 문화로 보았기 때문에 전통적 국가의례를 존숭함은 물론 개화에 따른 통상과 외래문화에 대해 반대하였으며, 선대의 관혼상제의 가례는 추호도 수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기정진의 입장은 고례와 주자학적 의례를 중시해서, 우리나라 혼례의 전통인 친영(親迎)에 대해서도 예의 본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동성동본간의 결혼은 당연히 예에 어긋나지만 다른 성인 외종사촌간의 결혼은 고대에는 허용되었다고 하면서 예법에 어긋난 것이 아님을 시사했다. 남녀관계를 음양조화의 입장에서 보지만, 남편과 군주와 중화와 이(理)의 입장은 양이고 부인과 신하와 오랑캐 그리고 기(氣)는 음의 입장인 것이어서, 부부관계는 평등관계가 아니라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위계는 당연한 것이었다.상례(喪禮)는 그의 이론이 집중되어 있다. 상복제도에 대해서 많이 다루며 오복(五服)제도와 삼년상을 중시한다. 복식의 엄정함이야말로 예의 정신이며, 예절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상례의 본질은 ‘죽은 이에 대한 공경을 살아있을 때와 같이 함.’(事死如事生)’을 강조한다. 제사에 대해서는 보본(報本)과 추원(追遠)의 정신으로 당연히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제수에 있어서 상징성도 음양조화이고 격식에 맞는 음식 등에 대해 거론한다. 그러면서도 분수를 넘어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제사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형식과 절차 등은 물론 정성과 공경의 자세를 중시했다. 19세기 서세동점과 조선왕조에 누란의 시기에 기정진은 위정척사의 강력한 기치를 내걸었음과 동시에 유교의례를 위정(衛正)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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