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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일본의 유학 전유와 중국철학사 서술의 방향 -다카세 다케지로를 중심으로-

          이혜경(Yi, Hyegy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9 철학사상 Vol.74 No.-

          이 논문은 동양철학 학제를 세우고 동양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학을 일본적으로 전유하는 역할을 했던 이노우에 데츠지로의 구도 하에서, 중국철학 전문가로 활동한 다카세 다케지로의 중국철학 연구를 검토했다. 다카세는 양묵비판의 형식을 빌어 당시 윤리적 적대자인 가토 히로유키와 기독교를 비판할 정도로 유학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중국철학사는 성선설을 핵심으로 공자에서 왕양명으로 이어지는 유학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그 ‘선한 본성’은 ‘충군애국’으로 규정되어, 그의 중국철학사 서술은 기본적으로 이노우에의 국가주의적 지도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를 자처했던 다카세는 공자에서부터 이어오는 유학의 도통에 스스로를 앉히고자 했으며, 그 점에서 그에게 중국은 문화의 보고로서 과거의 나라가 아니라, 도를 보존하고 전해준 선배의 나라였다. 유학을 민족적으로 전유하면서 동시에 그 정통의 계승자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다카세의 유학이해는 중층의 왜곡을 보여준다. This study reviewed the works of Takase Takejiro. He was a scholar of Chinese philosophy who was active after Inoue Tetsujiro established the discipline of Oriental Philosophy and appropriated Confucianism into Japan’s culture. Takase was a self-conscious Confucianist who denounced his ethical rival Hiroyuki Kato and Christianity by adopting the form of heresy criticism proposed by Mencius. His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surveys the lineage of Confucianism from Confucius to Wang Yangming, while focusing on 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good. Yet, Takase defines “good nature” as “loyalty and patriotism,” and therefore, his narration of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works within the nationalist framework of Inoue. Nevertheless, as a self-proclaimed Confucianist, Takase aspired to be next in line in the genealogy of orthodox Confucianism and, therefore, considered China not as a cultural treasure trove of ancient knowledge but as a bestower of moral authority. By appropriating Confucianism through a nationalistic framework but still claiming to be heir to orthodoxy, Takase’s interpretation of Confucianism has multiple layers of disto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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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의 양명학 해석

          이혜경(Yi, Hye-Gy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5 철학사상 Vol.55 No.-

          본고는 박은식(朴殷植)의 『왕양명선생실기』(王陽明先生實記)를 통해 박은식이 근대에 소환한 양명학의 성격에 대해 구명하였다. 특히 박은식이 참고했다고 밝힌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郎)의 『왕양명상전』(王陽明詳傳)과의 차이를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유럽근대문명과 구별되는 동양 도덕교육의 원천으로서 양명학을 평가했다. 다카세는 천황에게 충성하는 신민을 양성하는 역할을 양명학에 기대하고, 양명학의 지행합일설로부터 깊이 생각하지 않는 단순한 실천력을 끌어냈다. 그리하여 그는 애국심, 문무겸비, 사공(事功) 등을 양명학의 장점으로 평가하였다. 박은식은 다카세와 달리 근대문명과 생존경쟁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조명한 양명학의 장점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중심성과 자신감, 세상을 향해 펼쳐지는 인의의 마음, 온 마음으로 안 것을 온 몸으로 실천하겠다는 신실함 등 이다. 박은식의 양명학이 주권상실의 난국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지라도, 그가 평가한 양명학의 가능성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주목을 요청한다. This article explores Park Eun-sik (朴殷植)’s interpretation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by investigating his Wang Yang-ming Silgi (王陽明先生實記). This paper also compares Park’s Wang Yang-ming Silgi with Takase Takejiro (高瀨武次?)’s Ou-yo-mei Sho-den (王陽明詳傳), which Park referred to. Both of them evaluated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as a source of moral education of the East, distinct from European modern civilization. Especially Takase expected the doctrines to play a positive role in fostering the subjects’ loyalty to the emperor. Thus he considered patriotism, literary and martial arts, and achievements as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But Park maintained a critical distance from modern civilization and the struggle for survival unlike Takase. The strengths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that Park highlighted are self-confidence to accept and cope with changes, morality to accept the whole world as it is, and sincerity to practice what is believed to be good. Even though it was difficult for Park’s interpretation to play the role in the crisis of sovereignty loss at that time, the possibility of Yang-ming’s doctrines he evaluate requires us to re-evaluate it today.

        • KCI등재

          향원을 향한 유가윤리의 비판은 정당한가?

          이혜경(Yi, Hye-Gy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1 철학사상 Vol.39 No.-

          본고는 유학 전통이 위선자라고 비난했던 향원(鄕原)에 대한 변론을 시도했다. 유학이 비판하는 향원은 선한 행위와는 달리 선하지 않은 ‘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본고는 마음과 행위를 윤리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윤리체계를 각각 ‘마음의 윤리’와 ‘행위의 윤리’로 분류하고, 그 두 입장에서 향원에 대한 변론을 시도했다. 먼저 행위의 윤리 관점에서 보면, 향원은 비난받을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윤리적인 사람임을 논했다. 이어서 마음의 윤리의 입장에서 향원에 대한 비난을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인지 검토하고, 성장을 강조하고 교육을 중시하면서 윤리적 미숙상태를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논했다. 결론적으로 갈라진 마음속에서 선행 행위를 실천하는 향원은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분투하는 보통사람이며,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격려되어야 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This paper argued on behalf of Xiangyuna (鄕原), whom Confucianism has accused of hypocrisy. Confucianism criticizes that Xiangyuan has innermost feelings that are different from his displayed behavior. I categorized the ethics theory into ethics of mind and ethics of behavior, according to the object on which we judge good and evil. First from the ethics of behavior, I insist that Xiangyuan is not the subject of blame, but a very ethical person. Subsequently, I examined that the ethics of mind could accomplish the criticism of Xiangyuna. I insist that it is not right for the ethics of the mind to treat Xiangyuan as negative, because the ethics of mind esteem the role of learning or education. In conclusion, I argued that Xiangyuan is a common man who strives for the ethical behavior in spite of inner conflicts and his exertion should be encoura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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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중국 ‘倫理’ 개념의 번역과 변용

          이혜경(Yi, Hye-Gy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0 철학사상 Vol.37 No.-

          근대 동아시아에서 ‘윤리’는 ‘번역어’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번역어를 만든 근대 일본인은 그 말을『예기』에서 따왔다. 근대 중국인들은 처음 ethics를 번역했던 일본인들처럼 윤리학을 유럽 근대문명의 산물로 받아들였지만, 점차 그 유럽문명에 대한 이해는 변화한다. 그 변화에 따라 그들의 행위원리도 변화를 겪으며, ‘윤리’의 함의 역시 변화한다. 이 논문은 ‘倫理’ 개념이 갖는 함의의 변화를, 특히 근대유럽문명의 수입에 적극적이었던 량치차오, 차이위안페이, 후스의 저작을 통해 추적했다. 유럽 ‘윤리학’에 대한 이해 혹은 수용의 변화는 번역어 ‘윤리학’이 상징하는 것, 즉 유럽의 근대문명을 근대 중국인들이 어떤 것으로 보았는가를 반 영한다. 그것은 세 사람에 대해 차례로, 부국강병에 의해 독립을 추구하는 일, 공화국의 성취,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기여하는 생활 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유럽근대문명에 대한 달라진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인들의 자신들의 행동방침을 어떤 것으로 정하고 있는가도 반영한다. 그 리고 그 기저에는 중국인으로서 갖는 공통점, 즉 쉽게 청산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유학과의 친밀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The term ‘倫理’ was first circulated in modern East Asia as a translated term for ‘ethics.’ The Japanese, who had first carried out this translation, had adopted ‘倫理’ from the Liji, one of the Confucian scriptures. As with the Japanese, modern Chinese intellectuals first accepted 倫理學 as the product of modern European civilization, but as their understanding of European civilization changed, so did their principles of behavior. Thus, the connotations associated with ‘倫理’ also changed. This paper examined the changes which took place regarding the connotations of the ‘倫理’ concept through the writings of the modern Chinese intellectuals who were especially eager to import modern European civilization, such as Liang Chiqiao, Chi Yuanpei and Hu Shi. The changes which took place in the understanding of ‘ethics’ reflect the changes which occurred regarding the acceptance of modern European civilization. Chinese intellectuals considered civilization to mean the following: the pursuit of Chinese independence through the enhancement of national prosperity and defense, according to Liang; the establishment of the republic, according to Chi; and a way of-life which would bring the greatest happiness to the greatest number, of people according to Hu Shi. In addition, such altered understandings of modern European civilization also reflect how the Chinese regarded the principles which guided their actions. Underlying this was a common factor that all Chinese shared: a closeness with Confucianism which was not easily left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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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계초와 "혁명" 개념의 전변 -『청의보』, 『신민총보』시기를 전후하여

          이혜경 ( Hye Gyung Yi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人文論叢 Vol.72 No.2

          본고는 양계초가 계몽사상가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청의보』(1898-1901).『신민총보』(902-1907) 시기를 전후하여 사용한 ‘혁명’ 개념이 어떻게 함의를 바꿔 가는지 추적했다. ‘입헌파’로서 양계초는 ‘혁명파’와 대립했지만, 근대어로서 번역어 ‘혁명’을 중국에서 가장 먼저사용한 사람이었다. 초기에 그는 ‘혁명’을 ‘진화’와 동류개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정한 시기까지는 ‘혁명’을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혁명파와의 대립을 통해, 그리고 1905년 러시아혁명이라는 현실의 혁명을 목도하면서, 혁명에 부정적인 자신의 입장을 점차 정리해가면서 부정의 논리를 세운다. 그는 사회진화론을 국가경쟁력을 고양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사심을 제어하고 국가에 기여한다는 도덕적 가치를 제공하는 체계로도 받아들였다. ‘혁명’에 대한 비판 역시 그가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틀에서 이루어진다. ‘혁명’은 국내적으로는 국가에 헌신해야 할 사람들의 사적인 권력야망이며, 국외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좀먹을 내란이라고 비판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사심에 의해 자행된과거의 역성혁명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처리된다. 이처럼 진화로서 긍정되었던 ‘혁명’은 진화의 반동인 ‘야만적’ 정권 탈취로 부정되기에 이른다. This paper examines how Liang Qichao, who had a leading role as an enlightenment thinker, changed the implication of the concept of “revolution” around the time of the Russian Revolution of 1905. Though Liang Qichao, as a “Constitionalist”, was in conflict with the “Revolutionaries,” he was the first person in China to adopt “revolution”, a translated term, with its modern meaning. With the understanding of “revolution” as a concept similar to “evolution”, he used the term quite affirmatively up to a certain time. However, through confrontation with the revolutionaries while witnessing the reality of the Russian Revolution, he organized his negative position towards revolution. Social evolution was regarded as a framework to recognize the reality that people had to uplift the national competitiveness, as well as an institution to recognize the moral value that they had to control self-indulgence and contribute to the country. Criticism of revolution was also carried out within the framework in which Liang Qichao accepted social evolution. Domestically, “revolution” was regarded as a private ambition towards power by amoral people who needed to devote themselves to the country;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with foreign countries, it was criticized as a riot that eroded national competitiveness. It was considered not different from dynastic revolutions which had been forced by selfishness without any consideration to the nation and its people. “Revolution”, which had been affirmed as evolution, was negated as a “barbaric” takeover against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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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희의 유덕자 -함께 만드는 사회 안에서 성장해가는 사람-

          이혜경 ( Hye Gyung Yi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人文論叢 Vol.69 No.-

          This paper considers the thought of Huang Zongxi - which is based upon the intellectual tradition of the Yangming School and also adheres to the idea that li (理) never existed on its own but was always a part of existing qi (氣) - by focusing on the notion of ‘virtue’ and examining how it is regarded within his writings. As the material existence of human beings comes from qi, and as the world is comprised of the movement of qi, the two are interlinked and move together. The mind that is able to sense what is good is also qi, and it constantly moves within a state of excess and deficiency. As such, individuals, as imperfect beings, must come together within society to keep in check, and compensate for, their shortcomings and to develop their virtues. Therefore, the formation of a society and the establishment of institutions that can provide a positive environment in which virtue can develop becomes an important moral and political task. The way in which Huang Zongxi focused on the development of virtue and how he combined this development of virtue with politics provides new insights for the field of modern virtue ethics, as well as demonstrating a way forward for Confucianism in the 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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