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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 김장생의 이기론과 심성론 소고

        이학당 ( Li Xue-tang ),왕천천 ( Wang Qian-qian ) 우리한문학회 2017 漢文學報 Vol.37 No.-

        사계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저명한 예학가이고 교육가이다. 그는 스승 율곡의 "기발리승설"과 "리통기국설" 리기론 사상을 계승하면서 리와 기를 혼연일체의 존재로 보았다. 또한 리는 무형무위이고 기는 유형유위라고 보았다. 사계는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부정한다. 그는 정호의 “기가 도이고 도가 기이다’는 주장을 근거로 이기불상리를 해석한다. 또한 주희의 “리는 리이고 기는 기이다”는 주장을 근거로 이기불상잡을 해석한다. 율곡이 제창한 ‘기발 이승’을 따르면서 리와 기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는 주장을 하면서 리와 기의 조화를 강조한다. 사계는 리와 기가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해석할 적에 이기가 합쳐지는 것이 시간적 선후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힘과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기가 리를 포함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사계는 리는 기 안에 있고 원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말은 기의 능동성을 중시하는 사계의 입장을 잘 보여주며 그의 심성론과 예악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구성한다. 구용에 이해 방식은 사계 사상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사계는 송강이 “구용은 리이다”라고 하는 주장을 두고 체용을 원용하여 구용을 리의 작용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사계는 율곡의 입장에 기반하여 송강의 주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형이상자는 기이고 형이하자는 도이다”는 구절에 대한 사계의 해석은 다소 문제가 있다. 사계는 도와 형을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형과 기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데 이런 이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계는 율곡사상에 기초하여 심, 성, 정, 의, 지 등 성리학 심성론의 기초 개념을 심도 있게 해석한다. 본 연구는 이후 그가 주장하는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설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Shagai Kim jang-saeng was a famous scientist and educator in the middle of the Chosun Dynasty, on Confucianism he basicly inherited Zhu xi and Lee er's overall spirits, in the view of qi he claimedLi is of intangible and inaction, while Qi is of visible and action, so he denied Lee huang’s theory of which Li and Qi are inspired with each other. He cited Cheng hao’s theory of that "Qi is Dao and Dao is Qi" to explain the Li and Qi are not separated, and also quoted zhu xi's theory of that "Li is Li, Qi is Qi" to explain that the Li and Qi are not mixed. He agreed the Lee er’s idea of that"the Qi emits and Li follows " , he advocated "one is two, two is one", emphasizing the harmony of the Li and Qi. In the explan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is one", he was not only explained the combination of Li and Qi in chronological order, but also considered that the combination of Li and Qi was "Li was surrounded by Li"in space order. Shagai often said that "Li is in the Qi and they are not dissimilar"which reflected that he emphasised motility of the Qi, and also laid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his theory of mindand ritual thought. The understanding of the problem of "nine looks" reflected the autonomy of Shaxi’s thought. He believed that Songgang’s theory of which"nine looks are Li" was the use of Li from the perspective of body and function, so he did not denid Songgang's viewpoint in accordance with Lee er's thought. But he had some problems in the understanding of that "the person who is above, what is the Dao; There are some problems with the understanding of the "Meta physics is the Dao while the opposite is Qi". He seed that the Xing and Dao are different concept, but he thought that Xing and Qi are the same concept, which was lack of science. In terms of theory of mind, he based on the Yulgok’s thoughts, he made the detailed explanation for the basic concepts of neo-confucianism, such as the heart, character, feeling, idea, aspiration, whichbecame the necessary theoretical matting of the theory of four sides and seven feelings and the theory of people’s mind and Dao’s mind for the next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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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李德懋)의 명대문학(明代文學) 비평에 대한 일고찰

        이학당 ( Xue Tang Li ),위홍 ( Hong Wei ) 한국실학학회 2011 한국실학연구 Vol.0 No.21

        본고에서는 이덕무의 명대문학 비평 중에서 의고파와 공안파의 대표 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위주로 검토를 하였다. 조선후기 저명한 문학비평가인 이덕무는 명대 문단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명대 문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의고파의 대표 인물들에 대해서 많은 기술을 하였다. 그가 남긴 명대 문학비평 자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바로 이반룡과 왕세정이다. 그들의 시(詩), 문(文)뿐만 아니라 의고파의 문학이론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비평을 가하였다. 둘째는 공안파의 대표인물인 원굉도에 대한 중점적인 검토이다. 원굉도의 시와 문에 대하여 흥미있게 감상하고 인용했으며 공안파가 제창한 ``독서성령(獨抒性靈)``의 문학주장에 대해서도 의고파와 견주면서 논평하기도 하였다. 이덕무는 청나라 당대의 문단보다는 오히려 명대의 문단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주목하여 다양한 논술과 비평 내용을 남겼다. 이덕무는 왜 명대 문인들과 그들의 문학을 이렇듯 중요시하였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이덕무의 정통 사상과 의리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연암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의 일원으로서 북학사상을 공유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덕무는 연암과 마찬가지로 내심에는 아직 명대가 한족이 통치하는 정통국가이고 청나라는 이방인이 잠시 중국을 장악하는 이민족 국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이덕무는 중국의 문학 발전에 있어, 명대 문학 자체의 특성에 주목하여, 이 시기의 문학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셋째, 명대의 많은 문학이론과 그 성과들이 이덕무 본인의 심미(審美)취향, 창작 실천과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문학론에 있어서 전후 칠자와 공안파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문학론은 꼭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덕무의 전후칠자 및 공안파의 주장에 대한 평가도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있어서 이 두 부류의 주장과 겹치는 면이 적지 않아, 그들 주장의 심층적인 면에 대해서 더욱 연구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Lee Demoo(1741~1793)is a famous scho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a literary critic, most of Chinese scholars and works he mentioned is about Ming Dynasty, which shows his great attention on the literary world of Ming Dynasty. Some relevant discussion and critical content can be looked as precious data for researching on his literary thought. In the literary world of Ming Dynasty, all kind of new literary current took shape by carrying on previous work, such as classicist school who advocated learning from ancients by QianHouQiZi, anti-classicist School who advocated innovation by Gong an School, Tang-Song School and Jing Ling School. Also the artistic expression means are more rich and varied, and prose, poem and drama competed with each other for beauty. The reasons he pays attention to the literary world of Ming Dynasty focused on three aspects-traditional ideology and argumentation, characteristics of the literary world, the inosculation of his aethestic standard and creation practice to the theory and literature achievements in Ming Dynasty. Lee Demoo thinks highly of the literary theory and achievements in literary world of Ming Dynasty. There are two features of his criticism on literature of that period. First of all, the style of his criticism developed from subjectivity to objectivity, from what we can realize the process of his increased knowledge and experience in literature of Ming Dynasty. Secondly, he made some key criticism by classifying on works or viewpoints of representative figures, such as Lee Panlong and Wang Shizhen in QianHouQiZi School, Yuan Hongdao in Gong an School, Zhong Xing in JingLing School and Critic, Jing Shengtan. The content of his criticism on literature of Ming Dynasty focused on three aspects. The first one is criticism on writer. For example, he summarized some writers` biography and clarified their poems viewpoints and achievements in Mini Biography of Poems Observed, such as Liu Ji, Song Lian, Gao Bing, Li Dongyang in the early of dynasty, Li Mengyang, He Jingming and Li Panlong in the middle period, Gu Yanwu and Zhu Yizun in transitional period. Second, criticism on various kinds of schools. The main issue of fact in literature of Ming Dynasty is about the classicist and anti-classicist. He gave highly appreciate to the vigorous and hsingling literature of the classicist school, while pointing out the disadvantages because of persistent on their own concept. The third is criticism on novels. He did some specific analysis on Zhong Xing`s comment about Water Margin and Jin Shengtan`s novel notion when he wrote his SuiJingXiTan. He did a certain textual research on Shi Naian`s novel from the standpoint of social origin theory, and approved its artistic quality. However, he proposed the useless and harmful theory of novel when he compared novel to the other literary forms, which showed his limitation on literary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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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논문 : 연행록(燕行錄)의 연구 현황과 전망 -중국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이학당 ( Xue Tang Li ) 동방한문학회 2012 東方漢文學 Vol.0 No.50

        이 논문은 중산 양국 학계에서 지금까지 진행한 연행록 연구의 성과들을 종합하고 향후의 연구 과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중한 양국 학자들이 문학예술, 사상의식과 문화교류 각 분야에서 각 시대별 연행록의 문학·역사적 가치에 주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각 분야 연구들은 모두 일정한 성과를 누적하였고, 학술계에 단계적으로 연구를 진일보 시켜 견실한 기초를 다져놓았다. 동시에 중한 양국의 연행록 연구는 그 중점을 두는 바와 연구방법이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측은 연행록을 좀 더 정치·경제·외교·문화교류사적인 진귀한 자료로 간주하여 연구를 진행시켰고, 한국 측은 문학사 자료로서 중시하여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명·청 양시기의 사회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던 연행록의 내용과 조선 국내 사회현실은 일정정도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朝天이든 燕行이든 내용면에서 볼 때 모두 "대등하지 않은" 외교와 문화교류의 진행으로 이는 한국에서 근래 고조된 민족주의 사관과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이는 중국문학계의 연구는 사학적 연구방법을 차용하는 것을 중시하고, 한국 사학계는 좀 더 문학적 연구방법을 채용하는 현상을 불러왔다. 중한 양국의 연행록 연구는 여타 분야에서도 다른 특색을 드러냈다. 이러한 역사문헌의 입장과 시각에 대한 차이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좀 더 국제적 협력, 학과 간 협력을 통한 공동연구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중한 양국의 정치·경제·문화교류가 나날이 깊어감에 따라 연행록과 한국문학 연구의 장래가 한층 더 넓어질 것이며, 연구 성과 역시 보다 더 풍부해질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The paper is meant to sum up the achievements of researching on Records of Ming and Qing Dynasty by Korean Diplomatic Corps up to now, while pointing out the future research fields. There are so many achievements invarious fields by increasing attentionon literature value of the records in a spects of literature, ideology and cultural exchange by researchers from China and South Korea. The achievements lay the foundation for future scholars. Meanwhile, there are obvious differences on emphasis and methods between the two countries` scholars. We looks it as valuable information on history of exchanging in politics, economics, diplomacy and culture much more, while Korean researchers taking it as important data of history of literature. The reason for that was that on the one hand, the content of records did have sense of distance to Korean social reality, because most of it described the status of society in Ming and Qing Dynasty. On the other hand, no matter pilgrimage or foreign affairs, the diplomacy or cultural exchange is uncoordinated, and it goes against with the rising opinion of Nationalism in South Korea. It also leads to the phenomenon that the research in Chinese literary circles paid more attention to historiography as research method, while Korean took literature more. There are also some different features on the other researching field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se achievements that highlight the differences between standpoint and viewpoint in historical documents declared more necessity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subject cooperation. Predictably, along with the deepening exchange of the two countries, the prospect of research on the records will be more worth expecting, and there will be more achievements.

      • 한중 두 가문의 교제와 "신운설(神韻說)"의 조선 문단 전파

        이학당 ( Xue Tang Li ) 우리한문학회 2014 漢文學報 Vol.31 No.-

        한중 문학교류에 있어서 청음 김상헌 가문과 추평 장씨 가문의 인연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17세기 초 바닷길을 통해 북경으로 향하던 김상헌은 우연히 장연등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그와 세대를 넘어서는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다. 150년간 꾸준히 유지되었던 이 인연은 조선의 많은 문인들에게 회자되었다. 특히 장연등의 손녀사위인 왕사정에 대한 관심은 두 가문의 인연을 한중지식교류의 좋은 사례로 인식되어 많은 관련 기록을 남겼다. 본고에서는 두 가문이 맺었던 인연과 그 전개, 그리고 두 가문을 주목한 조선의 문인들의 기록을 검토하여 한중지식 및 문화교류의 좋은 사례를 밝히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It is noticeable that Kim Sang-heon(金尙憲)``s family was linked to Chupyeong Jang``s family. In the early 17th century, Kim Sang-heon happened to stay Jang Yeon-deung(張延登)``s house when he went to Beijing through a sea route. So they had a special bond over generation. The story of them was the talk of Choseon society. They had maintained their relationship for 150 years. Especially, Wang Sa-jeong(王士禎) who was Jang Yeon-deung``s grandson-in-law was one significant example of Korea-China knowledge interaction between the two families. This paper studies relationship with the two families and Choseon``s literary people who focused on them. Thus, it aims at revealing significant example of Korea-China knowledge and cultural inte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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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巖의『熱河日記』筆談內容에 대한 일고찰

        李學堂(Li Xue-tang)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08 아시아문화연구 Vol.15 No.-

        본 논문은 燕巖 朴趾源의『熱河日記』에서의 筆談 내용을 분석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담 부분을 정리·분석함으로써 필담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분량을 확인하여 그 중요성과 의미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필담을 통하여 중국 문사들과 맺은 깊은 友情을 살펴보고 연암이 이번 연행에서 알아낸 청나라의 社會 眞實을 고찰하였다. 당시 조선의 최고 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연암은 중국 문사를 만난 자리에서 구어 교류의 제한을 극복하여 나름대로 높은 차원에서 필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의 筆談 相對는 禮部尙書, 翰林, 庶吉士, 擧人 등을 비롯한 문신, 문인들과 4품 이상의 관직을 가진 박식한 무신들이었다. 그들은 경학, 문학, 천문학, 음악이론 등 여러방면에서 청나라의 새로운 고증학적인 학풍과 성리학에 대한 批判 思潮를 연암에게 전달하였다. 연암도 조선의 경학, 천문학을 비롯한 학술현황과 시문창작의 성과, 인맥관계 등을 중원의 문단에 성공적으로 소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원 사대부들과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러한 우정의 맺음은 兩國間에 知的 交流의 전통을 확인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연암의 연행 목적, 즉 청나라의 發展相을 알아보고 천하대세를 알아내려는 것을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연암의『열하일기』는 여타 연행록과 비교해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청나라의 繁榮相을 寫實的으로 조선에 소개하여 小中華思想과 華夷論을 打開함으로써 性理學一邊倒의 學風을 止揚하는데 의미가 있다. 다른 하나는 청나라의 번영상 뒤에 숨겨있는 각종 사회모순과 문제점을 분석하여 천하대세를 가늠하고 세계사의 진운(進運)을 예견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연암이 어떻게 필담을 통하여 청나라의 발전상황, 제반 사회문제, 滿洲人 皇帝의 治國 方略, 청나라의 大勢 등을 알아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This thesis is to study the conversation by writing(筆談) in Yonam, Ji-Won Park(燕巖 朴趾源)’s Yolha Diary(熱河日記). Through confirming the quantity of the conversation by writing, I rate high its importance and significance. in this thesis I make an observation of friendship between Yonam and the literary men of Qing dynasty. And examined the performances of the society reality on Qing dynasty by Yonam’s observation. I examined the concrete the performances of the conversation by writing with Yonam and Chinese men of society. It seemed that one of the most important achievements which made through the conversation by writing is a continued development of intellectual interchange between Korean and Chinese. We can analyze to be subdivided into the course of ‘intellectual exports’ and ‘intellectual imports’ again. Yonam’ continued efforts as a program director can get performances many intellectual interchanges. Yonam formed deep friendship with Chinese illustrious intellects who share the seats with conversation by writing. It can be obtained good result of people diplomacy which is improved the image of Chosun in this course. I analyzed in the concrete that the performances of perfect-real situation in The Ching Empire, several social problem and Chinese emperor’ law of ruling a country, general situation in The Ching Empire, etc. which Yonam found through conversation by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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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朝鮮中期) 유학자(儒學者) 리민성(李民宬)의 제로문화(齊魯文化) 시문창작(詩文創作)

        이학당 ( Xue-tang Li ) 우리한문학회 2015 漢文學報 Vol.33 No.-

        본고에서는 조선중기의 유학자 敬亭 李民宬이 1623년 연행에서 山東貢道를 통해 齊魯지역을 경유할 때 창작한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산동의 여러 문묘와 서원을 방문하여 유학의 전통과 역사가 보존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서책으로만 접했던 현장을 직접 체험한 감회를 작품으로 남겼다. 뿐만 아니라 도교와 불교문화가 융합 및 공존하는 현장과 산동의 풍경 및 생활의 모습들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이민성의 사행은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인정받기위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유학자로서 유교문화의 중심인 齊魯지역을 경유하며 강한 문화적 동질감을 확인하였고, 산동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This writing looked into the works created when a Confucian scholar Gyeongjeong Lee, Min-seong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when he went by way of Qi-Lu district through Shandong gongdao from Yanxing itinerary(燕行路程) in 1623. Gyeongjeong identified that traditions and history of Confucianism was preserved by visiting several Confucian shrines and seowon(a lecture hall) in Shandong, and left his works on his deep emotion from directly experiencing the actual places, with which he had used to come into contact through books only. On top of that, Gyeongjeong also left literary works on the actual places where Taoism and Buddhist culture were blended in coexistence, and landscapes of Shandong and people`s living appearances there. The aim of Lee, Minseong`s Yanxing itinerary was to achieve the acknowledgment of legitimacy of Injobanjeong(King Injo`s Restoration) in the Joseon Dynasty from the Ming Dynasty; however, his Yanxing itinerary has a noteworthy value in that Lee, Min-seong confirmed the strong cultural homogeneity, and experienced various cultures of Shandong as a Confucian scholar while going by way of Qi-Lu district which was the center of Confuc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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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주제 : 전쟁(戰爭)과 한문학(漢文學) ; 김창업(金昌業)의 명말청초(明末淸初) 전쟁(戰爭) 기억(記憶)

        이학당 ( Xue Tang Li ) 동방한문학회 2014 東方漢文學 Vol.0 No.60

        노가재 김창업은 연행을 통해 명청환대기의 역사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전환을 확인하고 강희 성세의 번영상에도 큰 충격을 받아, 기존의 대명의리론을 파기하고 현실을 직시한 새로운 대청관을 형성하였다. 노가재는 명·청 교체기 청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고 만인, 한인 간의 모순도 사회 안정의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는 명나라 멸망의 불가피성과 청나라의 강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대전환이라는 것을 몸소 직감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의 심층적 원인 규명보다 구체적 현상과 사례의 진술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노가재의 연행은 강희제가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대통일이 완성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된 시기였다. 그래서 강희제에게 반란자로 각인된 오삼계란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정치적 내지 역사적 평가를 제기한 것은 민감한 정치과제가 되었다. 청나라의 문인학자와 사가들이 문자옥을 의식해 가능한 한 피하려는 화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개 포의로서의 노가재는 이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오삼계에 대한 평가를 역사적 사실 문헌 자료와 현장에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오삼계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것을 명청 환대기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대의명분론적인 대명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청관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노가재의 이와같은 현실을 直視한 새로운 대청관의 형성은 그때 당시 뿐만 아니라, 후세의 북학파와 같은 실학자들의 대청 의식과 주장의 출현에 先驅的 역할과 중요한 啓示가 되었다. While NaoKaJai Kim ChangUp was traveling to China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he saw the prosperity of the Kang Xi Period by his own eyes and had been left a deep impression. It was a great chance for him to abandon the dated ideas of Ming dynasty , as well as to form a sound view towards China in Qing Dynasty based on the reality. During the war betwee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NaoKaJai realized that the Qing dynasty, especially the area out of Shanhai Pass was still in a mess. What was more, the contradiction between Manchu and the Han nationality had become a threat of the society. He knew that the collapse of the Ming Dynasty and the prosperity of the Qing Dynasty was inevitable. However, he had never analyzed how it came into being .By writing down just his own experience, he made many readers feel as if they were there. NaoKaJai traveled to China 30 years before the Kangxi Emperor unified the country. Therefore the loyalty and revolt of Wu Sangui was still a sensitive political issue at that time. However NaoKaJai was deeply concerned about it and made an objective evaluation as well. The failure of Wu made the Korean royal government and many scholars recognize the irreversiblility of history and the inevitability of the Ming d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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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中國)의 한국고전문학연구(韓國古典文學硏究) 현황(現況)과 과제(課題)

        이학당 ( Xue Tang Li ) 韓國古典文學會 2009 古典文學硏究 Vol.36 No.-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중국학자들이 한국고전문학(한문학) 연구의 현 주소와 특징,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다루는 데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이래 근 반세기 동안의 한국 한문학에 대한 연구를 크게 1949~1970년대, 1970년대말~1980년대말, 1990년~현재 등 세 발전 단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각 시기별로 주요 연구성과와 특징을 종합분석한 결과, 고전문학 작가와 작품, 시화시론, 그리고 중한문학 비교연구 등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중국에서의 한국고전문학 연구는 초창기에 연변대학, 북경대학의 학자들을 위주로 하였다가, 90년대 이후 북경대학과 중앙민족대학을 중심으로 한 북경지역, 연변대학과 길림대학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 산동대학과 청도해양대학을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지역, 상해북단대학과 절강대학을 중심으로 한 화동지역 등 몇 개의 학자군이 형성되어 활발하게 전개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고전문학 연구의 중국학파는 역사유물론과 변증유물론 미학의 원칙 하에서 서양 학계의 여러 가지 현대 비평방법을 도입하여 전통문화에서 중한문화와 문학의 유대관계의 형성, 한국문학의 민족적 특색을 규명하여 완전적인 동방문학체계의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십초시>는 고려 때 문인이 뽑은 당, 오대의 시들인데 <전당시>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중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의 연구사를 개괄하여 한·중·일 삼국 학계의 연대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search the current situation and the features of projects 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by Chinese scholars. The history of this research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from 1949 to 1970, from 1970 to 1980 and from 1990 to the present age. By doing comprehensive analysis on research results and features in every period, the author suggests that the fields of research by Chinese scholars are mainly in the classical writers, works, random notes and poetics. In addition, as advantages and features of Chinese scholars, they have got remarkable achievement in the field of Comparative Literature. The scholars represent several areas such as Beijing area with the center of Beijing University and Central University for Nationalities, the Northeast area with the center of Yanbian University and Jilin University, Shandong area with the center of Shandong University and Ocean University of China, and the Eastern area with the center of FDU and Zhejiang University. They do intensive research on all aspects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The conclusion indicates that the current projects and research areas by Chinese school are mainly in learning more kinds of modern critiques from the West actively, expounding the nepotism of Korean culture and literature in traditional culture, analyzing the national characters of Korean literature and building up an integrated system of Oriental Literature by insisting the principle of historical materialism and dialectical materialism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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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李德懋의 유가(儒家) 동몽교육(童蒙敎育) 사상(思想)에 관한 연구(硏究)

        이학당 ( Xue Tang Li ) 한국실학학회 2015 한국실학연구 Vol.0 No.29

        조선조 초기부터 유교적인 교양은 이미 관가 수양의 덕목에서 전체 사회의 기본 행위 기준으로 확산되어 미풍양속을 형성하는 가치 원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학교 교육이 선비를 양성하여 풍속과 교화를 이끄는 주도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유가의 예(禮)와 경(敬), 신(愼)사상에 근거한 예의 범절 교육의 중시는 조선 후기에도 계승되어 향교와 서원 내지 거가(居家)자녀 교육의 기본 규범으로 되었다. 이 글은 이덕무의 사소절-동규를 텍스로 하여 현대 교육학의 견지에서 그의 아동 교육 사상의 의미를 밝힐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덕무가 제시한 아동교양과 교육의 내용과 방법, 그 현실적인 의미 등으로 나눠서 분석하였다. 이덕무는 철저하게 유가 규범으로 근신하고 아정(雅正)하며 자율적인 한평생을 보낸선비였을 뿐만 아니라, 아동교육에 대해서도 계적인 논설을 남긴 조선후기의 중요한 교육가였다. 그는 사소절-동규를 저술하여 아동교육의 취지를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선류(善類)를 키우는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율곡이이(栗谷李珥)가 저술한 격몽요결(擊蒙要訣)이 소학의 階梯요, 좌윤유직기(左尹兪直基)가 편찬한 해동가언선행(海東嘉言善行)이 소학의 우익이며 그 언사들이 모두 淺近易知하여 아동들이 소학을 배우는데 참조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북학을 주장한 실학자로서 이덕무는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 등과 함께 당시 조선 사회 모순을 완화하고 정치와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여러 가지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들은 현실주의와 실증주의 입장에 서서 유가경전의 “참뜻”을 파악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이덕무의 아동교육관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로 하여금 아동기부터 어질게 살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였다. 전통적인 성리학이 신분상의 선천적인 차별을 인정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신분의 근본적 상승은 실현할 수 있는냐는 문제는 의론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와 달리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육을 통해 개인적 수양과 자아의 실현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의 아동교육관은 성리학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지만, 아동의 본성은 원래부터 어질고 평등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데 전진하였다. 이덕무는 아동을 교육함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마음가짐을 공명하게 하고 학업을 정대하게 하도록 인도할 것이며, 그가 장성하면 사우(師友)를 추종하되, 반드시 단아한 사람을 택하고 옳지 못한 사람을 멀리하며 경서의 교훈을 어기지 않게 해야 비로소 잡류(雜流)가 되는 것을 면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성선(性善)을 주장하여 아동의 어진 본성을 유지하는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였다. 아동들이 후천의여러 사상들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덕 교육을 일찍 실시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덕무는 아동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근거하여 그들의 성격적 특징을 파악함 으로써 그에 따라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크게 언어(言語), 복식(服飾), 위의(威儀)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아동기의 특성으로 인해 아동들 스스로의 내심수양보다 부모와 스승들이 그 잘못을 고쳐주는 과정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덕무는 동규에 내재적 수양 방법보다 아동들의 구체적행위방식과 결부하여 그들을 지도할 때의 의사항을 지적하고 특히 외재적 수양을 구용의 요구에 맞추어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덕무는 동규 편에서 아동교육에 관한 비교적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교육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아동의 연령 단계에 따른 생리, 심리적 특징을 맞춰 교육의 방법도 달리 제시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문인들이 과거를 포기하고 나름대로 경학이나 문학을 하는 자가 드물지 않게 등장하지만 이덕무처럼 부모가 자제의 조기 교육부터 개인의 자질에 따라 그 취미를 존중하여 학업을 성취시키자는 주장은 비범한 것으로 주목할만한 견해라고 판단된다. 이덕무는 현 시점의 현대 사회 에도 쉽게 실행할 수 없는 소질 교육의 선창자(先唱者)였다. From the primary stage of Dynasty of Korea, the education thought of Confucianism has been changed from noble culture to basic standard of behavior to all society. It became a value resource of forming a high standard of social morality. In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the public school education became the main method of training gentlemen, guiding custom and civilizing. The thought of emphasizing etiquette, honor and prudence is inherited by the Confucianism of later stage of Joseon Dynasty and became the basic norm of local schools, academies and even children’s education. This paper takes Shashaozhel-Donggiu, written by Lee Dek-mu, as research object, and hope to an alyzeits significancein childhood education by view of modern pedagogy.Therefore,the paper an alyzes detail edincontent, method and practical significance of childhood up bring in gand education. Lee Dek-mu, a gentleman who disciplines himself by Confucian standard, is an important educationalist putting forward a system view of childhood education in the later stage of Joseon Dynasty. He advocated that the objective of childhood education is to train themto distinguish good and evil, so he considered that jokmengyaojul by Lee yi and Haidongjilenshenheng by You Jik-gi were both excellent reference book in primary school, the former was the ladder and the latter was assistant. He believed that personal moral cultivation could be improved by education aimed at personality and then achieved self-worth. Although his education ideology was still restricted by Korean rational Confucianism, hehad realized that all the children were birth to good, and they should get equal education opportunity. By careful observation of children, Lee Dek-mu held their psychological development characteristics, and advocated effective and specific educational program, which contains speaking, dressing and awesome deportment. According to children’s characteristics, we must give themerror correction and supervision as well as their self-inner cultivation. In that social condition, his advice of emphasizing 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achieving their study by personal qualifications and interesting should be given a highly regarded. He deserves the title of foresight education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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