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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크기, 행복크기: 말하는 입, 말 못하는 입

          이하배 동양사회사상학회 2011 사회사상과 문화 Vol.0 No.23

          People's lives are made of various kinds and ways of meetings. The nature of a meeting lies in communication. Communication has the meaning of 'free come and go of material or signs' among the people in a meeting. As there is no communication without a meeting, there is no meeting without communication.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inquire and find with emphasis on the concept of 'communication culture' social conditions that ask, reveal and grow our individual sizes of happiness living in a world of small 'courtesy culture' size. Therefore, this research, while finding the concept of communication and meeting in a person's life, interprets the size of man and life in a relation with the size of world, and inquires on social conditions of an individual's happiness based on concepts of size of communication culture and increasing the size of communication culture. In doing so, bearing in mind increasing the size of communication culture, the basic logic and picture of Korean society's small size of communication culture, which is the cause and outcome of numerous social diseases and personal alienation, is looked into. In Korean society with strong hierarchical collectivism, it is not difficult to find a tendency of a single person or a small portion of people speaking and deciding on behalf of all. The issue of rationally reflecting and improving the various personal and social conditions, methods and effects of increasing the size of communication culture can be solved by opening a place of communication by people in question, both on their own and together, in an effort to open, share and develop thoughts. Such a place of communication can be opened in various ways on various levels such as family, local community, school, company, church, public place and media. Whether a specialist or not, this way or that way, it is important to think and come up together with ways for various people to gather to freely, logically and persuasively express their opinions. From difference to opening leads to meeting with difference, communication with difference, and finally to 'different people living as same people'.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종류와 방식의 만남들로 이루어진다. 만남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 소통은 만남의 당사자들 사이에 ‘물질이나 기호가 막힘없이 오감’의 뜻을 갖는다. 만남 없는 소통이 없듯이, 소통 없는 만남도 없다. 연구의 목적은 작은 ‘예문화’ 크기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개인행복 크기를 묻고 밝히고 키우는 사회적 조건을 ‘소통문화’ 개념을 중심으로 묻고 찾아가는 데에 있다. 따라서 연구는 사람 삶 속의 소통과 만남의 개념을 밝히면서, 사람크기․삶 크기를 세상크기와의 관계 속에서 읽고, 개인행복의 사회적 조건을 소통문화크기와 소통문화크기 키우기 개념을 중심으로 물었다. 그리하여 소통문화크기 키우기를 생각하면서 수많은 사회병리와 개인소외의 원인이자 결과인 한국사회의 작은 소통문화크기의 기본 논리와 모습을 물었다. 수직주의적 집단정체성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혼자 혹은 일부분 사람들만 말하고 결정하는 경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통문화크기 키우기의 개인적 사회적 제 조건과 방법, 효과들을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개선하는 문제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그리고 함께 소통의 장을 열면서 이에 대해 서로 생각을 열고 나누고 키우는 가운데 풀어갈 수 있다. 이런 소통의 장은 가족, 지역사회, 학교, 회사, 교회, 공공장소, 매체 등 다양한 심급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열릴 수 있다.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이런 방향이든 저런 방향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자신들의 소신을 사실적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펼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름에의 열음은 다름과의 만남, 다름과의 소통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람으로 함께 살기’로 이어진다.

        • KCI등재

          우리 속담에 나타난 성차별의 사회화 - 유교적 사회화와의 관련 속에서 -

          이하배 한독사회과학회 2001 한독사회과학논총 Vol.11 No.1

          Wir Menschen leben gesellschaftlich miteinander zusammen. Frauenprobleme sind die Sache eines Zusammenlebens. Die Art und Weise eines gesellschaftlichen Zusammenlebens von Menschen ist sachlich und kritisch gut zu begreifen, wenn die ‘Größen’ der gesellschaftlichen Handlungsfähigkeit berücksichtigt werden können. Die Spaltung einer Gesellschaft in unterschiedliche Größen ist der Ausgangspunkt der verschiedenen ideologischen Diskurse. In koreanischen Frauensprichwörtern werden bestimmte gesellschaftliche (Zusammen-) Lebensverhältnisse aufgenommen. Generell gilt: Die gesellschaftlichen Handlungsräume der Frauen waren, sind ‘klein,’ und ihr Klein-sein wurde in den Frauensprichwörtern gespiegelt. Z. B.: “Die Stimme der Frauen soll die Mauern des Hauses nicht überschreiten”; “Ihr Schicksal hängt vom Finger ihres Mannes ab”; “Frauen dürfen nicht zuviel wissen”; “In einer Familie gibt es nicht zwei Häupter”; “Eifersucht abgezogen, bleibt den Weibern das Gewicht von weniger als 2 Geun (Gewichtseinheit, ca. 600 g)” usw. Im allgemeinen: Frauen sind innerlich (im Wissen und Gewissen) und äußerlich (im gesellschaftlichen Handlungsraum) klein, und Männer sind innerlich und äußerlich groß. Frauen sollen insgesamt ‘klein’ - leise, abhängig, wenig, unten, leicht ... - sein und bleiben. Dieses “Sollen” ist der Hinweis darauf, wie sie leben, und ihr Sein ist der Hinweis darauf, wie sie leben sollen. Ihr Sein und Sollen weisen aufeinander hin und stabilisieren sich gegenseitig. Ihr Sollen stammt von ihrem gesellschaftlichen Sein, wie sie klein handelnd leben bzw. lebend handeln. Dieses von einem bestimmten gesellschaftlichen Sein(-sverhältnis) stammende Sollen bleibt gesellschaftlich nicht ohne Wirkung. Dieses Sollen, das sich in den zahlreichen Sprichwörtern und Redewendungen niederschlägt, wird ständig wiederholt und bestimmt auf diese Weise das Denken und Handeln der Frauen und aller Zusammen-lebenden. Das Sollen wird von Frauen und auch von Männern verinnerlicht und konstituiert so ideologische Subjekte, die spontan-freiwillig der bestehenden Ordnung zustimmen. Wenn ein bestimmtes gesellschaftliches Verhältnis in Frauensprichwörtern aufgenommen wird, und wenn sie die Seinsweise der Frauen, die Zusammenseinsweise der Frauen und Männer bewirkt, so gilt: Sein wird in bestimmter Weise Sollen und Sollen wird wiederum in bestimmter Weise Sein. Auf diese Weise nimmt das Sollen den Status einer Vermittlung. Sollen vermittelt das gesellschaftliche Sein, wie dies auch umgekehrt der Fall sein muß. Also, Sollen ist Folge und zugleich Ursache des Sein. So weit so gut, nur: die Lage und Anlage des gesellschaftlichen Sein vom gesellschaftlichen Zusammenleben ist ‘vertikal’ gespalten, entfremdet und entfremdend. ‘Zusammen in der Spaltung’ ist gerade die Logik der konfuzianischen Vergesellschaftung: ‘he er fen’ (合而分: Verbindung in Trennung). ‘Da ying’(大凝: großes Gefrieren) war das letzte Ziel der konfuzianischen politisch-ethischen Vergesellschaftung. Sprichwörter sind insgesamt der Ausdruck der bestehenden Vergesellschaftungsordnung und eine Form der Ausdehnung dieser Ordnung: Sie tragen massiv dazu bei, ein ideologisches Lebensverhältnis auszudehnen und zu reproduzieren.

        • KCI등재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 유학’ 읽기 비판

          이하배 동양사회사상학회 2004 사회사상과 문화 Vol.0 No.10

          아카데미 내외에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우리의 전통은 일정한 방식으로 정리되고 실천되어 가고 있다. 지금여기의 동양철학(‘동양철학2’)이 경직된 인식관심과 경직된 개념들에 얽매여 비슷비슷하고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것들을 너무 ‘많이’ 말하니까, 현실의 너무 ‘많은’ 문제들을 너무 ‘적게’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연구하고 말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다’. 연구는 한국의 근대에서 전통 철학이 아카데미 내에서 이론적으로 정리되어가는 모습을 검토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근대’ 내지는 ‘서구’와 ‘전통’이 자주 대립되어지면서 그 해법은 전통에서 찾아진다. 이런 화혼양재-‘적’ 내지는 동도서기-‘적’ 전통정리 방법의 한 예가 일제 때 이 땅에서 우리의 전통철학(‘동양철학1’)을 근대적 방법으로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한 어용학자 다카하시가 우리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철학은 우리 현실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다카하시의 방법과 이와 일정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동양철학2’의 방법이 성리학의 닫힌 체계 속에 일정한 방식으로 함께 닫히는 방법일 때, 이런 방법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외면 않을 때는 현실의 문제를 ‘특정한’ 입장과 관점으로 ‘조금’ 보면서 ‘많이’ 간과하는 방법이다. 이런 간과의 ‘비현실적’ 방법이―‘이데올로기적 사회화’와 하나의 방식으로 연결되는―매우 ‘현실적’일 수 있는 방식은 새로운 동양철학(‘동양철학3’)이―그 방식의 권력관계, 이해관계를 중심으로―이론적으로 주목하고 물어야 할 한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 KCI등재

          현대 한국사회와 거듭나야 하는 유교연구 : 유교의 사회적 실천의 활성화를 위한 이론적 방향에 대하여

          이하배 동양철학연구회 2003 東洋哲學硏究 Vol.32 No.-

          이 땅의 철학은 '이중적 분리'('지금여기' - '그때그곳', 동양철학 - 서양철학)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땅의 동양철학은 '서구적 현대 물질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전통의 우수한 '불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현실적 '사회화'의 제 관계들보다는 '과거'나 '정신' 혹은 '개인심성'에 인식관심을 집중시키고 고전들을 되풀이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국학진흥원'의 목적 문이나 '청년 유도회'의 정관에서도 전통사상이나 유교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보존 · 교육되고 전파되어야 할 '불변의 진리'로 여겨진다. 유교는 '내적 세계'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미리 싸워(극기) '외적 세계'에서 싸움 없이 함께 잘 살려는 프로젝트요, 권력관계와 이해 관계를 조율해 가는 이론이자 실천으로서 삶 속에서 나왔고 또한 삶 속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교를 보는 눈, 유교가 보는 눈이 함께 크기 위해서는, 소외된 현실을 간과하여 고정하고 연장하는 현실 '외면적 초월'의 방법이 아니라, 소외된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극복하는 현실 '대면적 초월'의 방법이 필요하다. '현실 속의 유교', 나아가 '유교 속의 현실'까지 생각하는 연구는 사회적 '행동능력들'이나 '자리들'이 서로 '크고' '작게' 나뉜 '힘 관계'에 주목하면서, 이들 '나뉨'이 어떻게 다시 '통합'되어 가는지를 '거리 관계'를 중심으로 유교와 현실의 소외적 '사회화' 논리에 접근한다. 이러한 수직주의적 '무거리적 거리'의 '사회화' 논리는 인간과 사회 간 인식론적 거리 두기 논리와 인간 간 만남의 실천적 거리 두기에 초점을 맞출 때 보다 잘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유교 속의 현실이 가능해지며 유교의 사회적 의미가 커 가는 것이다. 我國的哲學發展莫不圈屬于"二重性分離"('目前此地' - '當時彼地', '東洋哲學 - 西洋哲學')的局限. 我國的東洋哲學一邊鼓吹爲抵御'西歐現代文明的弊端'而去强調優秀傳統文化中'不變的精神', 一邊忽視現實社會化的諸多關係, 而去重複和關心'過去', '精神'或'個人心性'等槪念. 在'國學振興院'的宗旨或'靑年儒道會'的章程中, 均視傳統思想和儒敎是可全盤保存, 敎育和傳播的'不變眞理', 而无需批判. 儒敎是一種謀求和平共處的工程. 試圖通過遵循特定的規律在'內心世界'戰勝自己(克己), 而去避免'外部世界'的爭斗. 也是協調權力關係和利害關係的理論和實踐. 타來之于生活又去影響生活. 欲共同提高儒敎之于我們和我們之于儒敎的視界, 應避免莫視現實, 固封自守的'回避式超越', 而急需把握現實, 克服現實的'對應式超越'. 즘樣去硏究'現實中的儒敎'以及'儒敎中的現實'니? 首先應該關注社會性'行動力'和'職能'已分化爲'大大小小'的'力量結構', 圍繞這種'分化'趨于'統一'的過程中形成的距離關係', 展開'儒敎'與現實的疎遠性'社會化'論理. 這種垂直主義方式的'无距離性距離'之社會化'論理, 在我們關注以下兩種焦点時將更加易于闡明. 卽, 從認識論的角度去疏遠人和社會的關係, 或者從實踐論的角度去疏遠人和人的關係. 只有在這從時候儒敎中的現實才能實現, 儒敎的社會意將更加的深遠.

        • KCI등재후보

          權力 속의 禮 혹은 예 속의 권력 : 일상 '예문화'와 '겉치레'적 인간관계 Common Li-Culture und the Outward Show of Human Relationship

          이하배 동양철학연구회 2004 東洋哲學硏究 Vol.38 No.-

          힘에서 '비대칭적인 만남'들 속에서, '거짓'·'타율'이 개입되는 겉치레적 授受禮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다. 연구는 서로 다른 (힘) '크기'의 사람들이 그들의 크기를 유지하거나 '키우기'위해 '겉'을 '치레'하면서 진행하는 인간관계 논리를 묻는다. 예 논리의 내용과 형식, 예 문화속에서 '힘/권력'이 '조직'되고 '관리'되면서 비민주와 불합리, 비리, 비례가 행해질 수 있다. 예를 '진짜 예'와 '가짜 예'로 구분(만)하는 방법으로는 이런 문제가 문제로 (잘) 안 들어온다. 예가 '속'을 '겉'으로 표현하는 일정한 과정과 절차라 할 때, 이 '겉'은 어떤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없는 것을 있는 것,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감추고) '보이는' 예의 요소 속에서 자신의 '속과 겉이 관리'되면서, 자신의 외적·내적 '크기'가 관리된다. 이런 논리는 '큰것', '큰사람'에 '편승'해서 자신도 '함께 크는' 논리다. (겉)치레의 원인은 무엇보다 삶의 제 조건들 속에서 찾아진다. '겉치레'는 '不實'의 산물이자, 또 다른 부실을 초래하고, 이 부실은 다시 또 다른 겉치레로 향한다. '(큰) 사람'들에 부림 당하는 '人役', '(큰) 물건'들에 부림당하는 '物役'의 소외적 사회화 질서에서 '살아남기' 혹은 '(더 잘) 살기' 위해 '보이기-감추기', '줄이기-부풀리기' 논리를 통해, '속'은 가진 것이 없는데도 혹은 적은데도, '겉'은 가진 것이 있는 것'처럼' 혹은 많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Our society has a severe problem of li-change in which the 'untruth' and 'heteronomy' are intervened in the matter of outward show as the various kinds of forces are encountered each other under the unbalanced conditions. This article is aimed at revealing the logic of human relationships established by those who are trying to decorate the 'superficial respectability' just only for maintaining or enlarging their respective power in their own various conditions. Since 'power/force'can be organized and managed in the both of form and content of li-logic or rather li-culture, the result can be that lots of problems such as anti democracy, absurdity, irrationality, impoliteness and so on might be pervaded the whole society. Only with the method of telling 'real li' from 'false li', we cannot realize the seriousness of the problem as it is. When we define 'li' as the definite course and process to 'externally' express 'the internal', this external trait can be a kind of 'space possible to carry a load', having power to make 'the unreal' as 'the real' and vice versa. In the elements of li, (hiding and) revealing it, we manage our magnitude of the interior as well as of the exterior by handling with our 'internal' and 'external' self. Such logic is one for the expansion of oneself taking advantage of 'big things' and 'big figures'. The main reason to be ostentatious can be found in the lots of various conditions of life. Such an outward show is the product of a kind of unfaithfulness and incurs the other unfaithfulness leading to another ostentation. 'Renyi'(人役) exploited by '(big) figures' and 'Wuyi'(物役) by '(big) things are nothing but alienation. Such an alienated order of socialization demands that we should deceive ourselves into playing 'showing-hiding' or 'reducing-inflating' logic for the '(living) survival' or 'living better. As a result, we are forced to pretend to be rich or something big despite of being poor or nothing in actual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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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의 정치·윤리 철학 : 함께 하는 삶과 `有爲無位 無爲有位 Live Together and `Youwei-wuwei Wuwei-youwei

          이하배 동양철학연구회 2003 東洋哲學硏究 Vol.34 No.-

          노자를 사변적이고 신비롭게 읽어 나간다면, 이는 노자를 드러내는 일보다 감추는 일이 되기 쉬울 젓이다. 노자는 작고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묻혀 이들만을 보고들을 수 있으며 욕심부리고 추구하는 세상 인들의 사고·행동방식과 이를 뒤집는 “성인”의 그것을 강하게 대립시킨다. 노자가 추구하는 “무지”와 “무위”는 세상적 지식과 행위의 없음이지, 지식과 행위 일반을 부정하지 않는다. 노자는 당시의 통치가 백성들의 삶에 “짐”이 되거나 “유해”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노자는 치자가 가는 길과 ‘가야 할 길’에 대해 얘기한다. 이 크고 영원한 무위의 도를 알고 몸에 닦아 체득하여 내적으로 커 가는 일이 노자의 修身이다. ‘외적으로 큰’ 王'이 ‘내적으로(도) 큰’ “성인”이 되어 “무위이지만 無不爲”인 도를 벗어나지 않고 “지킬 수” 있다면, 천하는 “스스로 고르고 바르게 감화되어”, 그를 “무겁거나 해롭다 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위로 밀어 올린다.” 그러니까 ‘아레로 내리는’ 것이 ‘위일 수 있는’ 길이다. 노자의 정치·윤리 철학의 핵심은 ‘無爲의 힘’을 통한 권력 혹은 ‘큰 자리’를 조직·관리하는 有位의 논리에 있다. 이는 ‘有爲하면 無位하고 無爲하면 有位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上이 자신을 낮추는 것은 자신을 (계속) 올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下가 자신을 낮추는 것은 자신을 (계속) 내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이 자신을 낮추든 하가 자신을 낮추든, 외적 상하관계 구도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고정되는 것이다. 이는 ‘올리기’와 ‘내리기’의 상호작용 논리로써 下의 ‘자발적 복종을 생산해 내는 기술/예술’로서의 도에 맞는 ‘위-이기’의 논리요, 내적 크기 논리를 이용하여 외적 크기가 관리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논리다. 여기에서 세상을 ‘벗어나’ 사고하는 노자가 어떻게 다시 세상 ‘속에서’ 사고할 수 있는지 드러난다. If the Laotzu is read speculatively and mystically, the real meaning of Laotzu will be hidden rather than revealed. Laotzu compares the thinking and behaviors of worldly people against those of a “sage”. In the world, people are surrounded by direct and sensuous things so that they can see and hear only these things and pursue these things in greed. But, a sage is totally different. The “Wuzbi(Ignorance)” and the “Wuwei(Non-action)” pursued by Laotzu mean the non-having of worldly knowledge and the non-having of worldly action, respectively. These ideas do not deny the knowledge and the actions in general. Laotzu criticized that the ruling in his days was “burdensome” or “harmful”to the public. He talked about the way that the ruler was going and the way that the ruler should go. The way that the ruler should go is Tao of Wuwei. In the Xiusben(修身, moral training) of Laotzu, you should know and understand this eternal and great value of Tao of Wuwei and keep it in mind for internal growth. If a king who is ‘great external’ is also a ”sage” who is ‘great interal' and “can keep” the “Tao of Wuwei but wei bu wei(Non-action but not non-action)”, the world “will be impressed and transformed in a right way in itself and raise the king, saying he is not heavy or harmful”. In other words, putting himself down is the way to be raised above. The key of politics and ethics of Laotzu philosophy lies in the logic of Youwei, which through the ‘power of Wuwei' organizes and manages power or ‘the great position’. This logic can be said to be “Youwei-wuwei Wuwei-youwei(有爲無位 無爲有位: Non-action gives the great position and action gives no position.)”. In the end, lowering position of Shang(上, above, king) results in raised position (continuously) and lowering position of Xia(下, below, subordinates) results in owered position (continuously). Whether Shang or Xia lowers his position, the external hierarchy will not be changed. Rather, it will be fixed. This is the logic of ‘being above’ according to Tao, which is the technique to make Xia obey to Shang voluntarily rhrough the logic of interaction of ‘Raising’ and ‘lowering’. This is also the logic of an ideology to manage ‘external growth’ using ‘internal growth’. Here, how Laotzu, who thinks “away from” the world, thinks “within” the world is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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