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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運炯 동국대학교 철학회 1993 哲學思想 Vol.14 No.-
지금까지 흄이 자연적 필연을 부정하였다는 해석 및 흄의 계승이라는 규칙성 이론이 그의 본래의 주장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검토하였다. 흄을 따른다는 대개의 사람들이 기술법칙은 있을지 몰라도 자연법칙의 존재는 회의시하거나 언급을 회피하는 배경에는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 뿐이라는 보편자 유명론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보면 개별자들의 결속은 경험가능하지만 보편자는 직관적이므로 그들 주장이 서있을 자리가 더 넓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개별자들은 존재론적으로 상호독립해 있으므로 그들 사이의 실제적 결합을 보장해 주는 장치는 심리나 언어적 문장이외에는 기댈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흄의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흄은 그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접근에 회의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필연성이 언어적이라면 모르지만 경험적 관찰에 기초한 대상적인 것이라면 필연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흄의 것과 같은 맥락에 놓고는 흄을 보호막으로 이용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분명히 인과적 필연성은 경험에 근거한다. 그러기에 원인과 결과와의 필연적 결합을 경험할 수 없다고 고백한 흄이나 언어를 통해 문제를 비켜가는 방식들이 한편으로는 옹호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인과관계가 존재법칙에 의존한다는 주장은 마치 법칙의 실재에 관한 문제가 이미 대답된 것으로 보아 ‘선결문제요구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도 법칙은 존재론적으로 해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법칙을 존재론적으로 해명하는 것과 법칙이 존재적 사실이면서 어떻게 필연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은 동일한 맥락인 것으로 여겨진다. 도리어 흄이 남긴 과제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칸트야 말로 진정한 흄의 비판적 계승자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