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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se paji:The Sacred Shaman Song in Korea

          Lee Yong-shik이용식 한국음악사학회 2003 韓國音樂史學報 Vol.30 No.-

          만세바지:황해도 굿음악의 신성성(神聖性) 이 용 식 황해도 굿은 음악·무용·연극 등의 예술적 요소로 이루어진 문화연희(文化演戱:cultural performance)이다. 이 중 음악은 굿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데, 이는 굿을 주재하는 무당이 노래로 신(神)을 모시고 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굿에서 연행되는 모든 노래가 신성(神聖)한 것은 아니다. 무당은 굿판에 강림한 신과 굿판에 모여든 단골을 놀리기 위하여 많은 오락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황해도 굿음악 중 신을 모시는 청배무가(請拜巫歌)로 많이 불려지는 “만세바지”를 분석하여, 어떤 음악적 요소가 그 노래를 신성하게 여겨지게 만드는가를 살펴본다. 만세바지는 ‘만세’(萬歲)와 ‘바지’의 합성어이다. 이는 만수(萬壽)를 누리라는 기복적(祈福的)인 성격과 장고잽이 혹은 조무(助巫)의 받는 부분, 즉 ‘받는다’는 의미의 ‘바라지’라는 음악형식적 용어가 합쳐진 것이다. 즉, 노랫말에서 청배무가로서의 내용적 의미와 멕이고 받는 형식의 음악적 의미가 함축된 것이다. 만세바지무가는 주로 굿의 한 거리에서 시작하는 부분에 신을 청하기 위해 불려진다. 그 노랫말은 1) 신을 굿판으로 청하는 대목, 2) 굿의 일시·장소를 신에게 고하는 대목, 3) 굿을 청한 단골집의 가족을 나열하는 대목, 4) 연행하는 거리에서 청해지는 신을 나열하는 대목, 5) 단골집 가족의 행복과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비는 대목, 6) 굿을 주재하는 무당을 고하는 대목, 7) 성공적인 굿을 기원하는 대목 등으로 구성된다. 이는 유교식 제사에서 읽는 축문(祝文)과 같은 형식이다. 또한 만세바지무가의 노랫말에는 무교(巫敎)의 현세기복적(現世祈福的)인 노랫말과 나라에는 충신되고 부모에게는 효자되고 지아비에게는 열녀되고 형제간에는 우애를 지키라는 유교적인 노랫말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이중적인 노랫말로 말미암아 무교는 조선시대 이래 상층계급에서 가해진 꾸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민중들 사이에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세바지무가의 음악적 특징은 1) 1옥타브 이내의 좁은 음역에서 순차진행에 의해 불려지는 선율, 2) 3-4개의 선율형의 계속되는 반복, 3) 음악적 기교를 최대한 억제하여 일자일음식(一字一音式)으로 노랫말의 명확한 전달을 중시하는 점, 4) 제한된 음정과 창법에 의한 노래, 5) 기본 장고형의 계속되는 반복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 노래가 단순한 것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인데, 첫째는 만세바지무가가 음악적인 완성도보다는 노랫말의 명확한 전달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황해도 무당이 신내림을 경험하고 굿을 주재할 수 있는 원숙한 무당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황해도 무당에게는 노랫말에 불려지는 신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반복되는 선율에 불려져야 노래보다는 노랫말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 굿을 주재할 수 있다. 이렇게 음악적으로 단순하고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서양의 중세 카톨릭 교회음악이나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노래하는 것에서도 보이는 현상으로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노래는 이런 특징을 갖는다. 나는 만세바지무가와 같이 비교적 단순한 노래를 “투박한 노래”(impoverished songs)라고 명명한다. 이런 노래는 전라도의 씻김굿 무가를 부르는 단골들의 노래처럼 화려하지 않은 것이 ...

        •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농악의 특징과 의의

          이용식 ( Yong Shik Lee ) 전남대학교 예술연구소 2014 藝術論集 Vol.15 No.-

          농악은 악가무(樂歌舞)의 종합공연예술로서 기층민주의 음악과 무용이 오랜 세월 동안 적층된 문화유산이다. 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뿐만 아니라 UNESCO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농악의 특징은 다른 문화권에서 전승되는 비슷한 공연예술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그 특징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즉, 농악의 비교연구를 통해 농악의 아시아 공연예술로서 갖는 보편성과 한국문화만의 독특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농악이 갖는 음악적 의미를 읽음으로서 우리 민족문화의 심층적인 미(美)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악은 쇠와 북의 타악기로 이루어졌는데, 이렇듯이 천지(天地)의 조화,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는 악기편성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기 어려운 매운 독특한 것이다. 더구나 쇠나 장구와 같은 무율 타악기가 ‘가락’을 만들어내는 음악은 세계음악문화에서도 농악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갖는 것이다. 농악의 불균등박자(asymmetric meter)가 혼합된 혼소박 가락은 음악적 특징이다. 2소박과 3소박이 혼합하여 구성된 혼소박 가락은 음악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가락이지만, 특히 몸동작을 수반하는 농악에서 발 디딤새를 딛기에 매우 난해한 가락이다. 우리 음악ㅇ서 불균등박자는 매우 오래된 고형(古形)이고 종교적 신성성을 갖는 리듬이다. 농악에서도 혼소박 가락은 주로 길굿과 같이 종교적 신성성을 갖는 것이다. 이렇듯이 민중의 기층음악어법을 전승하는 농악은 지역적 특징을 충실하게 전승해야 할 것이다. The Korean farmers` band music, called nong`ak is the composite of music, song, and dance. It is one of the masterpieces among many Korean musical genres with its long history and artistic supremacy. For these reasons, it has designated as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1 by the Korean government in 1966 and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by the UNESCO in 2014.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music, we need to compare it with other cultures` music. In this way, we can acknowledge the universality of Asian percussion music and the distinct traits of the distinct traits of the Korean music. religious traits of the Korean music. Since the nong`ak comprises the basic musical idiom of the common people, there are diverse variations of nong`ak bands and music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In order to transmit the music, we need to conserve the various characteristics of the nong`ak music.

        • KCI등재후보

          일반논문 : 호남좌도농악 12채굿에 대한 연구 -구례잔수농악을 중심으로-

          이용식 ( Yong Shik Lee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1 호남문화연구 Vol.0 No.50

          호남좌도농악에서 “채굿”은 대개 앞굿에서 일채부터 칠채까지 치는 가락을 의미한다. 이렇게 앞굿에서 일채부터 칠채까지 채굿을 치는 경우는 대부분 걸출한 뜬쇠에 의해 결성된 걸립농악이다. 그러나 마을세시농악으로 전승되는 구례잔수농악에서는 12채굿이 전승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영남농악에서는 판굿에서 12차(次)굿을 연행하고 있다. 이 글은 구례잔수농악에 전승되는 12채굿을 통해 호남좌도농악의 12채굿의 성격을 밝히고, 구례잔수농악의 12채굿과 영남농악의 12차굿을 비교하여 구례잔수농악을 중심으로 호남좌도농악 12채굿의 음악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농악의 채굿과 차굿에서 “채”와 “차”는 다른 개념이다. “채”는 동사인 “치다”의 명사형으로서 한 가락에 치는 징의 점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비해 “차”는 마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남농악의 12차굿은 판굿에서 여러 놀이를 펼치면서 “12”라는 상징적인 숫자에 마당을 인위적으로 맞춘 것이다. 그러나 호남좌도농악인 구례잔수농악의 12채굿은 마당밟이와 당산제만굿에서 치는 채굿을 판굿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례잔수농악의 12채굿은 마당밟이와 당산제만 굿이라는 제의적 마당을 판굿이라는 놀이적 마당에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이라 영남농악의 12차굿에 비해 판굿의 원형적 특성을 간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례잔수농악의 채가락, 즉 음악적 의미를 갖는 채굿은 일채부터 칠채까지인데, 이는 여느 호남좌도농악의 판굿에서 치는 채굿의 채가락과 같은 것이다. 뜬쇠의 농악에서는 채굿의 명칭과 징의 점수가 일치하지만, 마을농악인 구례잔수농악의 채굿은 그 명칭과 징의 점수가 일치하지 않는다. 구례잔수농악의 일채부터 칠채는 이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가락에 징을 1점 친다. 뜬쇠의 농악에서 채굿의 명칭과 징의 점수가 일치하는 것은 한 가락을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락이 합쳐진 한 “집”을 단위로 채굿의 명칭에 맞게 징의 점수를 맞춘 것이다. 이렇게 징의 점수와 채굿이 일치하는 것은 징의 점수로 군사의 진퇴를 신호하던 조선 초기의 군법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채굿의 가락과 징 점수가 일치하는 뜬쇠의 채굿은 군대음악의 흔적을 간직한 매우 오래된 형태의 가락임을 알 수 있다. The chae-kut in the farmer`s band music, or nong-ak, in Honam region generally means the rhythmic melody of seven kinds. This kind of the rhythmic melody is found in the band music led by master musicians. The band music in Gurye district, which is performed in the village folk ceremony, has so-called “twelve chae-kut.” The similar type of “twelve cha-kut” is transmitted in Yeongnam region. In this paper, I will analyze the musical characteristics of “twelve chae-kut” in Honam region, focusing on the band music in Gurye district and comparing it with the “twelve cha-kut” in Yeongnam region. The notions of “chae” and “cha” are different. The former is derived from the verb "to strike" which is identical to the strokes of the large gong, or jing, in the rhythmic melody. The latter means the sections of the performance. The “twelve cha-kut” in Yeongnam region is set to the twelve sections in accordance with the symbolic number 12. The “twelve chae-kut” in Gurye also means the twelve sections of the performance but is the combination of the sections performed in the village ritual. In this sense, the “twelve chae-kut” in Gurye preserves the authentic notion of performance stage. The “chae-kut” in the farmer`s band music in Honam region also means the rhythmic melody of the music. In this sense, the “chae-kut” has seven kinds from one to seven. In the music of the professional musicians, the seven kinds of “chae-kut” corresponds to the strokes of the large gong, or jing, in a rhythmic melody. However, those are not harmony with the gong stroke in the music of Gurye. The coherence of the gong stroke and the name of chae-kut is the inherited from the old military music in which the drum and the gong were used for the process back and forth of the military. Especially, the gong stroke signified the five steps of the military process. In other words, the chae-kut of the professional musicians is the evidence of the military influence of nong-ak music.

        • 경기 선소리 산타령의 음악문화사적 의의와 현대적 의미

          이용식 ( Yong Shik Lee ) 전남대학교 예술연구소 2012 藝術論集 Vol.12 No.-

          경기 선소리 산타령은 서울·경기 일원에서 ‘산타령패’ 또는 ‘선소리패’가 선소리[立唱]로 <산타령(山打令)>을 노래하는 음악갈래이다. <산타령>은 조선 후기 사당패(祠堂)의 불교 계통의 음악이 유희적인 노래로 변했다고 한다. <산타령>은 예전에는 종교와 관련이 있거나 답교(踏橋) 등의 민간의식에서 연행되었던 ‘의식음악’이었다. 이 글에서는 산타령패가 예전에 지녔던 종교적 성격 또는 민간의식과 관려된 신앙적 성격에 대한 음악문화사적 의의와 산타령패의 성격 변화에 따른 현대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던 불가(佛家)와 관계를 맺고 기예를 파는 전문가 집단이다. 18세기 도상학 자료에 의하면 사당패의 여러 기예 중에서 소고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 시기에 사당패가 연주하던 소고는 티벳이나 인도, 네팔 등지의 서아시아에서 샤머니즘 의식에서 널리 쓰이는 손북(hand drum)이 우리나라에 전송된 것이다. 이 무렵의 사당패는 불교의 진언이나 각종 불교 노래에서 비롯된 노랫말을 갖는 <판염불>을 중요한 레퍼토리로 삼고 공연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요한 공연장소에는 답교놀이라는 민간의식이 있었고, 이런 민간의식에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당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당패와 답교놀이의 활동분포는 서울의 사대문 바로 바깥 인근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이 지역은 무당이 주축이 되어 정월 초하루에서 초사흗날 사이에 마을굿을 거행하는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즉, 사당패는 이 시기에는 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다. 사당패가 19세기 후반 이후 서울의 소비문화와 결합하면서 사당패의 중요한 레퍼토리인 <산타령>을 붙박이 예인이며 전문 소리꾼이 받아들이면서 이들이 <산타령>의 담당층인 산타령패가 된다. 산타령패도 매우 세속적이었지만, 종교적인 성격을 <판염불>을 부르면서 판소고로 시작하는 점 등은 산타령패가 종교적인 성격을 여전히 간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산타령패가 점차 도태되고 그들의 중요한 활동무대인 답교놀이가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산타령패도 완전히 세속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종교성을 지닌 <판염불>이나 판소고는 이제는 더 이상 연행하지 않고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으로 이러지는 유희적인 성격의 노래만을 부르는 유희집단으로 변모했다. Seonsori Santaryeong is a composite word of seonsori, meaning standing song, and Santaryeong, meaning the Song of the Mountain. It has been transmitted by a special musical group called Santaryeong-pae or Seonsori-pae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It was originally a song of itinerant entertainers who had close relationship with Buddhist temples. Santaryeong was a ritual song, not an entertaining song as today, performed a folk ritual of “stepping on the bridge” to get rid of evil spirits in January in the lunar calendar. In this paper, I explore the ritual meaning of Santaryeong and the change of its performance context these days. In the paintings of the 18소 century, Santaryeong was originally performed by the itinerant musicians who held the hand drum, called sogo, in their hands. The hand drum was transmitted from Tibet where the instrument was used in Buddhist and Shamanic rituals. The musicians` song were derived from Buddhist chant. They performance stages were closely related to the place of the Shamanic shrines located in the outskirt of the Capital, Seoul. When the musicians settled down in Seoul where the capital was focused, their repertoire was transmitted to the local musicians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music became secularized then the folk rituals became disappeared in Seoul. The ritual songs were got rid of their repertoire and the entertaining songs were developed in accordance with the growth of the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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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한국 전통음악의 전승과 미래 -가야금산조를 중심으로-

          이용식 ( Yong Shik Lee ) 한국공연문화학회 (구,한국고전희곡학회) 2009 공연문화연구 Vol.0 No.19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겪고 서양문화의 급격한 수입으로 인해 전통은 `과거의 진부한 유산`으로 취급받으면서 전통음악은 농경사회의 잔재 혹은 `기생문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이런 와중에 전통음악문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붕괴되면서 피폐화되었다. 1960년대 이후 전통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무형문화유산은 정부의 보호막에 들어갔다. 이후 많은 전통음악장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많은 대학에 국악과가 설립되고,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각종 시립·도립 국악관현악단이 설립되면서 전통음악은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 음악계의 이런 변화는 우리의 전통음악문화의 전승방법과는 전혀 다른것이다. 전통음악을 포함하는 무형문화유산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전통음악은 이를 둘러싼 유기적인 환경이 바뀌면 외부환경의 영향으로 스스로 소멸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모하기 마련이다. 한번 창작되면 어느 정도의 고정성을 갖는 완성예술(product arts)인 서양예술음악과는 달리 한국 전통음악은 음악가의 손을 거치면서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예술(process arts)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인다. 이것이 한국 전통음악의 생명력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생적 생명력을 소진한 전통음악은 해방 이후에는 외부의 동력에 힘입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즉, 해방 이후의 전통음악문화는 기존의 음악문화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이는 전통문화의 재창조·전승이라는 긍정적인 작용과 더불어 왜곡·박제화라는 부정적인 면도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 가야금산조를 중심으로 전통음악의 전승과 미래를 논의하고자 한다. 전통음악의 부침과 부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기악독주음악인 산조이다. 19세기 끝머리에 처음 만들어진 산조는 일제강점기에는 판소리의 전성시대에 힘입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전통음악의 부침과 더불어 침체기를 겪다가 1960년대 이후 중요무형문화재와 대학 교육의 영향으로 부활하여 지금은 전통음악장르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성장했다. Korean traditional music has been a process art which has been changed and re-created by musicians to mirror the musical aesthetics of contemporary people. Form court music, which has tried to keep the "authentic" form as much as possible, to folk music, which is closely associated to the people`s life style, traditional music has expressed the life of the Korean people. From the early 20th century, traditional music faced a totally new music culture due to the Japanese annexation and rapid westernization. A new music network was established by modern theater and broadcast system. Many gayageum (12-stringed zither) masters were able to develop their own music in this new music culture. Female musicians came to exist because of a new music education system, called gwonbeon (school for female entertainers). Due to the rapid westernization, traditional music was becoming `extinct`. The government`s new system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ried to preserve traditional culture. Traditional music came to revive but became fossilized in order to preserve the `archetype`. The so-called Living Human Treasures took power and became a social problem. The modern school education system was one of major factors for promotion of traditional music. However, it became one of main reasons for musicians to lose their musical creativity. Today, many performers and composers try to make a new composition and renovated musical instruments to suit the contemporary musical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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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악학과 에믹(emic)/에틱(etic) 논제

          이용식 ( Yong-shik Lee )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2003 音樂論壇 Vol.17 No.-

          There are two viewpoints to investigate culture in anthropology: emic and etic. The expression emic/etic was coined by the American linguist, Kenneth L. Pike, who also developed the theoretical issues involved. Pike built up the emic/ etic distinction to define sets of contrasting units and to describe their distribution, behavior, and arrangement in both verbal and nonverbal domains. The anthropologist Marvin Harris later applied the distinction to set up a relationship between "emics," the "mental," and the "native" on the one hand, and "etics," the "behavioral," and the "observer" on the other. Ethnomusicologists adopted the emic/etic distinction in their study of musical culture in various ways. For example, the emic/etic distinction can be applied in transcription. There may be an etic transcription, that is, noting all distinctions in sound which the transcriber can, and an emic transcription which gives only the essentials. In Korean musicology, foreign scholars normally try to transcribe musical phenomena perceived by the transcriber as much as possible while native scholars tend to transcribe them with less detail. However, it is not the ma竹er of viewpoints of foreign versus native scholars. Within native scholars, there are diverse points of view to perceive music in accordance with their approach to the music. The emic/etic distinction usually involves the insider/ outsider issue. In Korean musicology, there have been some instances that the interpretations of musical phenomena by native and foreign scholars are different. For instance, Lee Hye-gu disagreed with Jonathan Condit’s interpretation of traditional notation system. It is true that all native scholars may acquire the emic view. Rather, it is a scholar’s educational background and method that he/she can approach musical culture in emic or etic view. A scholar must have a dialectical mind to balance emic/etic viewpoint in order to understand the deep structure of music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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