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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석 목사의 부흥운동에 관한 연구

          이영식 ( Lee¸ Young Sik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CTS 신학연구소 2020 ACTS 신학저널 Vol.46 No.-

          본 연구는 이천석 목사의 부흥운동을 기도원운동, 회개운동, 성령충만을 위한 촉구, 그리고 치유사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했다. 그는 청년시절, 6·25 동란에 참전 중에 한 다리를 잃고 절망 중에 자살을 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다. 또한 당시 상이용사에 대한 사회적인 냉대도 있었다. 그는 폭력단체를 조직하여 방탕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신학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의 죄성을 철저하게 경험했던 그는 주의 일을 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고 기도했다. 따라서 그는 기도를 강조하며, 한국교회의 기도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실천이 한얼산기도원이다. 또한 그가 설교 등에서 강조한 것은 회개와 변화였다. 그는 기도원에서 그리고 집회의 현장에서 회개운동을 펼쳐나갔다. 이러한 영적인 흐름은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성령충만을 강조했다. 물론 그는 방언이나 은사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안수례를 했지만, 성령충만을 우선시했다. 기도원에서 그리고 집회에서 그는 성령충만과 부흥에 대한 열망을 촉구했다. 아울러 그를 통해서 치유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났다.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를 받고 신앙에 더욱 매진했으며, 불신자들도 치유의 역사를 통해서 주님께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이천석 목사의 사역활동에서 기도운동, 회개운동, 성령충만의 강조 및 치유의 활동은 곧 부흥운동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오늘날 예전보다 기도원이 축소되고, 그만큼 기도의 열기가 저조한 상황에서 다시금 이 땅에 부흥의 열망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이천석 목사를 비롯한 선진들의 영적자산을 공유하고 계승해 나가야 하리라 본다. 또한 성경공부 및 제자훈련과 함께 부흥운동이 균형적으로 전개 되었으면 한다. This paper researches pastor Chun Seok Lee's revival movement, focusing on the prayer center movement, the repentance movement, the urging for the fulfilling of the Holy Spirit, and healing ministry. In his youth, he lost one leg during taking part in the Korean War. He organized a gang and lived a life of debauchery. However, He met the Lord personally and studied theology. He sought the help of the Holy Spirit while doing the work of the Lord, fasted, prayed all night long. He emphasized prayer and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prayer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The practice of his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prayer is the beginning of Haneolsan Prayer Center. Also, what he emphasized in his sermons was repentance and change. These spiritual activities had influence on the Korean church.He also urged the desire for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and revival. In addition, through him, the miracle of healing appeared powerfully. So numerous sick people were healed and devoted more to their faith, and unbelievers came to the Lord. In the end,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prayer movement, repentance movement, emphasis on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and healing activities in pastor Chun Seok Lee's ministry were revival movement. Today, prayer centers are decreased and the desire for revival is less than in the 1970s in Korea. I want all of us to restore the aspirations for revival in our land again. I think we must share and inherit the spiritual assets of pastor Chun Seok Lee and other advanced believers.

        • KCI등재

          장례요의 〈옥설가〉 수용양상에 관한 연구

          이영식(Lee Young-Sik) 한국민속학회 2006 韓國民俗學 Vol.43 No.-

          본 연구는 장례요에 〈옥설가〉가 얼마나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알아보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옥설가〉를 내용에 따라 단락으로 나누어 〈옥설화답가〉, 〈옥설화담〉, 〈옥설화답〉 등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구성 순서 및 단락의 유무관계를 고려할 때 〈옥설가〉는 〈옥설화답가〉, 〈옥설화담〉, 〈옥설화답〉을 바탕으로 장례요, 특히 〈묘다지는소리〉에 활용되도록 재구성한 것임을 알았다. 아울러 〈답산가〉는 좋은 윗자리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가사라면, 〈옥설가〉는 이미 선정된 묏자리를 바탕으로 후손들의 발복을 축원하는 가사라 하겠다. 따라서 〈답산가〉와 〈옥설가〉는 애당초 서로 다른 목적에 의해 구성한 것이므로 그 사설의 활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한국민요대전』의 〈운상하는소리〉에는 〈옥설가〉가 전혀 수용되어 있지 않으나, 〈묘다지는소리〉에는 전체 구성사설의 34.7%가 수용되어 있다. 그리고 〈옥설가〉는 ‘묏자리가 명당이므로 자손들이 발복할 것이다'와 ‘인생이 허무하다'는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강원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묏자리가 명당이므로 자손들 이 발복할 것이다'는 특정 주제의 사설을 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선소리꾼이 단락이 아닌 주제를 단위로 하여 〈옥설가〉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옥설가〉를 활용한 선소리꾼이 지향하는 바는 ‘명당'과 ‘발복'이라 하겠다. This study concerns the degree and the a method which 『Okseolga』is accepted in. So this study divided Okseolga(옥설가) into some paragraph standardizing the contents of Okseolga(옥설가), and compared it Okseolwhadapga(옥설화답가), Okseolwhadam(옥설화담), Okseolwhadap(옥설화답). As a result, this study has found out the fact that Okseolga(옥설가) was reconstructed for the purpose that could be used in Myodajineun-sori(묘다지는소리). It is the result that this study reckoned with the existence and nonexistence of paragraph. It can be said the Dapsanga(답산가) has the words for helping to choose a good site of grave. On the one hand, The words of Okseolga(옥설가) can be regarded as a praying for being be fortunate on the basis of the site. Definitely,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Dapsanga(답산가) and 『Okseolga』 in the use of the words, for they are constructded with separate purpose. There is no a particle of acceptance of Okseolga(옥설가) in Unsanghaneon-sori(운상하는소리) on the GREAT SERIES OF KOREAN FOLKSONGS(한국민요대전). But in myodazineonsory(묘다지는소리) there is the 34.7% of the whole construction accepted. Okseolga(옥설가) consists of two theme that ‘because the site of grave is propitious site, descendants is to be fortunate' and ‘life is but an empty.' Now, in the area except Gangwondo, there is a feature that the words is concentrated on the theme ‘because the site of grave, descendants is to be fortunate'. It is because chorus leader accepts Okseolga(옥설가) taking not paragraph but theme as the unit.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intention of the leader is ultimately ‘to get a propitious site for a grave' and ‘to be fortu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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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해방정국 대한민국 국가건설과정에서의 국민대회연구

          이영식 ( Lee Young Sik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2020 역사신학 논총 Vol.37 No.-

          광복을 맞이한 이 민족이 직면해야 했던 것은 완전한 독립이 아닌 38선으로 가로막힌 분단된 조국이었고, 남한에서는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혼돈스러운 정국 가운데서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설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 당시 국제정세와 국내 및 국가장래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갖춘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아울러 일반국민의 협력이 참으로 필요한 시국이었다. 이러한 혼란과 분쟁의 시기에 “국민의 총의(總意)”가 발현되고 국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며 공감했던 자유로운 소통의 장(場)이 바로 국민대회였다. 국민대회는 국가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방정국에서 국민대회는 여러 주제와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 수많은 국민대회가 주로 서울에서 발화되어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국민대회들 가운데 규모와 역사성을 감안하여 ‘국민대회준비위원회'와 주요 국민대회 즉, ‘반탁국민대회', ‘기미독립 선언기념국민대회', ‘독립전취국민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러한 국민대회의 태동과 전개에 있어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기독교의 참여에 대해서 간략하나마 사례를 들어보고자 했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선진들의 희생과 분투로 이뤄진 대한민국에서 경제발전과 문화창달을 이뤄올 수 있었다는 인식하에, 중요한 가치들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After liberation, what the Korea Peninsular had to face was not complete independence but a divided nation blocked by the 38th parallel. In South Korea,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left and the right was growing. In the midst of this chaotic political situation, it was necessary to set the direction for the future. Therefore, at that time, the role of leaders with insight into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situation and national future was more important than ever. In addition, it was a time when the cooperation of the general public was really necessary. the National Rally was also the liberal democratic field that led “the nation's consensus” and turned a huge stream of national history. the National Meetings played an very important role in nation building. In political circumstance of the liberation, the national meetings were held in various themes and forms. And a number of national rallies have been ignited mainly in Seoul and spread to the provinces. However, this study did not cover all these national rallies, but tried to focus on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the Korean National Congress and the main national rallies such as the Anti-Trusteeship National meeting, A mass Meeting of A commemora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Sam il day) and National Meetings for Achieving Independence by Fight. Numerous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voluntarily participated in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se national rallies. Among them, I wanted to give examples of the participation of Christianity. We must not only reflect on our past history but also recognize that we were able to achieve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reation on the basis of the sacrifices and struggles of the advanced people. Now we must preserve and develop those important values.

        • KCI등재후보

          한국장로교 합동·통합 분열에 대한 재고

          이영식 ( Lee Young-sik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2017 역사신학 논총 Vol.31 No.-

          한국장로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중에 하나는 한 노회(1907), 한 총회(1912)를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장로교회가 광복 이후 분열을 맞이했다.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의 역사를 다룬 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성찰하여, 주님 안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소망하며 꿈꾸는 것이다. 한국장로교회의 합동·? 통합의 분열에 대한 주요 요인은 무엇인가에큐메니칼운동을 지지한 측은 박형룡 박사의 소위 ‘3천만 환'이라는 재정적이고 행적적인 실수가 합동과 통합의 분열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그러나 그 반대 측은 WCC문제가 분열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러 사료를 근거로 한 연구를 통해서 박형룡 박사의 ‘3천만 환' 사건이 이 분열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한국장로교 분열의 주요원인은 다음과 같이 보았다. 첫째, 에큐메니칼운동인 WCC의 가입과 협력에 있다고 하겠다. 둘째, 경기노회의 총대의 문제이다. 정기노회에서 결정된 총대들과 임시노회에서 결정된 총대들 양측의 총회 참가가 분열을 가속화시켰다고 본다. 셋째,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소위 연동 측이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임의적으로 먼저 새로운 총회를 조직한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인 분열의 원인이었다. 세계 교회의 일치와 화합이라는 WCC의 목적을 위하여 결과적으로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사실상 장로교 분열 문제는 교단과 총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각 노회와 각 개교회의 고통스러운 분리와 찢겨짐의 역사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분열은 전국교회가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불행한 일이며 사회적으로도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포기한 부끄러운 일이다.따라서 어떠한 변명으로도 한국장로교회는 그 분열의 역사를 정당화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과거 한국장로교회가 절망 가운데 있던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소망과 비전을 제시했던 그 권위와 역할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의 노력들을 진실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One of the beautiful traditions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KPC) is that it organized one Presbytery(1907) and one General Assembly(1912). And KPC has been growing and giving glory to God. However, the KPC was separated after the liberation. Dealing with the history of schism of the KPC is attended with pain and anguish itself. Nevertheless, by introspection of the past, we can dream of healthy and beautiful church in the Lord. What is the main factor of the division of the KPC in 1959? The supporters of ecumenical movement say that the main cause of the separation of Hapdong and Tonghap is the problem of so-called Dr. Park Hyeong-Ryong and ‘30 million whan', a financial and administrative mistake. However, the opposite side says that the WCC problem was the principal cause of division. We can confirm that Dr. Park's “30 million whan” incident was not the main factor of that division through the study of historical documents. It is an excessive logical leap to highlight the ‘30 million whan' problem related to separation, and it only results in diluting major cause. The main cause of the division in 1959 is as follows. First, it is the problem of the joining and cooperation of the ecumenical movement WCC. Second, it is the problem of the delegation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Gyeong-Gi presbytery. The Participation of both the representatives of the general assembly decided by the regular presbytery and the delegates by the temporary meeting accelerated the division. Third, the most crucial factor is that the so-called Yeon-Dong side voluntarily established a new general assembly, ignoring the resolutions of the General Assembly. That was the very decisive factor of division. As a result, the WCC's purpose of unity and concord of the world churches resulted in division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fact,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at the problem of divi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is not only the problem of the religious order or the General Assembly, but also the matter of painful separation and tearing of each presbytery and each local church. Division is an unfortunate incident that the national church is caught in a whirlpool. And then socially it is that the church has abandoned the role of light and salt. Therefore with any excuse,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can not justify its division. Now we must restore the authority and role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that preached the gospel to its nation in despair and presented hope and vision in the past. And we should make sincerely efforts of union in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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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plication of mid-infrared TDLAS to various small molecule diagnostics

          이영식,Lee,,Young-Sik 한국천문학회 2010 天文學會報 Vol.35 No.1

          The spectroscopy over a region from 3 to 17 ${\mu}m$ based on the tuneable diode lasers (TDLAS) is the most powerful technique for in situ studies of the diagnostics of small molecules. The increasing interest in small molecules especially containing carbon, oxygen, hydrogen, and fluorine containing ones can be fulfilled by TDLAS at 0.0001 cm-1 resolution, because most of these compounds are infrared active. TDLAS provides a means of determining the absolute concentrations of the ground states of stable and transient molecular species, which can be employed for the time dependent studies in sub micro second scale. Information about gas temperature and population densities can also be derived from TDLAS measurements. Collisional energy transfer between the small molecules can be studied with TDLAS. Also, a variety of free radicals and molecular ions have been detected by TDLAS. Since plasmas with molecular feed gases are used in many applications, there are new applications in industrial field. Recently, the development of quantum cascade lasers (QCLs) offers an attractive new option for TDLAS.

        • 강원 북부지역의 거리제 양상

          이영식(Lee, Young-sik) 아시아강원민속학회 2019 江原民俗學 Vol.31 No.-

          본 글에서는 강원 북부지역 8개 마을의 거리제를 살펴보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제물로 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마을제사는 음력 1월과 삼월 삼짇날에 주로 지내는데, 특히 홍천군의 4개 마을에서는 모두가 1월에 지내고 있다. 마을제사의 중심 제물은 돼지머리와 백설기인데, 춘천 상명암마을과 홍천 무수터마을에서는 마리(개)를 진설한다. 이처럼 거리제에서 개를 진설하는 경우는 강원도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마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거리제의 목적은 도깨비 또는 거리귀신을 달래거나 쫓기 위함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마리를 진설하는 춘천의 상명암마을과 홍천의 무수터마을의 거리제는 호랑이로부터 호환을 막거나 마을 앞산의 호랑이신을 위함이다. 따라서 상명암마을과 무수터마을의 거리제는 기존에 보고된 여러 마을의 거리제와 비교할 때 거리신의 신격에서 차이가 있다. In this article, we wanted to look at the ‘Georije' rite in eight villages in northern Gangwon Province and find out why dogs are used as sacrifices. Village sacrificial rites are usually held on the January and the third day of the third lunar month, especially in the four villages of Hongcheon-gun in January. The main offerings of the village rite are pig"s head and snow white rice cake. However, dogs are sacrificed in Sangmyeongam Village in Chuncheon-si and Musuteo Village in Hongcheon. Although it varies from village to village, the purpose of the ‘Georije' rite is usually to appease or ward off goblins or ghosts. However, the ‘Georije' rite in Sangmyeongam Village in Chuncheon-si and Musuteo Village in Hongcheon-gun is designed to prevent compatibility from tigers or to protect the tiger god in the village"s front mountain. Thus, the street system of Sangmyeongam Village and Musuteo Village differs from the traditional street system of vill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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