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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의(賈誼) 인성론(人性論) 연구(硏究) -초간 유가 문헌과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이연승 ( Youn Seung Lee ) 퇴계학연구원 2010 退溪學報 Vol.128 No.-

          馬王堆의 「帛書五行篇」에 이어 또 다시 郭店에서 「帛書五行篇」과 같은 내용의 「楚簡五行篇」 및 「六德」편 등의 儒簡들이 출토되자, 가의가 초 지역에 머물 때 이들 초간과 접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본고는 가의의 인성론에 대해서 역시 이들 공맹지제의 유자들이 펼쳤던 인성론과의 연관 하에 고찰한 것이다. 가의는 인성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서술한 적도 없고, 일관성 있는 사고를 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의의 저작 속에서 성에 관하여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면, 가의는 ``生之謂性``이라는 선진 사상가들의 일반적인 입장을 답습하고 있으며, 그의 성 개념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생명현상의 다양한 양상, 즉 형색이나 그 기능, 욕구, 자질 등이 두루 포함된다. 가의가 性보다 習을, 또한 性보다 勢를 더 중시하는 점은 性과 習의 관계 및 性과 勢의 관계를 언급하는 郭店 儒簡 「性自命出」의 사고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가의가 德의 六理 가운데 하나로서의 性에 대하여 서술한 대목을 보면, 氣가 모여서 성을 이룬다거나 성이 확립되어야 기가 외부와 서로 감응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喜怒哀悲의 氣는 性이다"라고 한 「性自命出」의 구절처럼 "性卽氣"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기로써 성을 논하며 아울러 성을 구체적인 실체로 파악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의의 인성에 관한 사고 안에는 "性有善有惡說", 즉 선악혼재설이라고 볼 수 있는 면과 "有性善有性不善說", 즉 애초에 선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선하지 않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는 주장과 부합되는 면이 있다. 그가 材性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군주의 삼등급을 언급했지만 이는 한당 유가들의 일반적인 성삼품설과는 맥락이 다르다. 가의의 인성에 대한 이해는 王敎를 요청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民이라는 말은 暝[어둡다]이라는 식의 한대에 성행했던 聲訓을 이용하며 윗사람의 교화의 필연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육행이 갖추어져 있으나 지극히 미약하여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상세히 알 수 있는 선왕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선왕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야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므로, 선왕의 가르침인 유가의 육경은 이제 단지 유가의 학습 교과목이 아니라 치자들이 근거하여 통치해야 하고 피치자들이 학습해야 할 제국의 통치이념이 된다. 가의는 선진의 주류적 인성론의 단편들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그 위에 한초의 사상적인 분위기를 반영하여 인성에 관한 사고를 형성하였으며, 이를 그 政論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The Guodian Chu Slips(郭店 楚簡) amplify our understanding of how the Confucian philosophical tradition evolved between Confucius` time and that of Mencius. Especially The Silk Manuscripts on the Five Elements (『帛書五行篇』) excavated at Mawangdui(馬王堆) and some of the Guodian Chu Slips, for example, The Five Virtues in Chu Slips(『楚簡五行篇』) and The Six Virtues(『六德』) offer us the chance to consider the continuity of thoughts of these pre-Qin(先秦) Confucians and Jiayi(賈誼), a Confucian of Former Han period. This thesis attempts to explain Jiayi`s ideas on Human Nature, focusing on the common ground of the thoughts of Jiayi and those appeared in Recipes for Nourishing Life(『性自命出』), one of the Guodian Chu Slips. Jiayi did not pay much attention to Human Nature, and never made a systematic explanation on it, but we can find that he also followed the same ideas on Human Nature, namely ``Life is what we call Nature(生之謂性)``. In Jiayi`s writings, Human Nature means what a man is and what he has by birth, for example, the biological phenomena, including the desire for living, the body and its features, the talents and personalities, etc. To Jiayi, learning(習) is considered more important than Nature by birth(性), situation(勢) also is considered more important than Nature by birth(性). The ideas of the relationship of Nature(性) and learning, and that of Nature and situation are seen in Recipes for Nourishing Life, too. Jiayi described Nature(性), one of the six elements of principles(六理) of Virtue(德), that qi(氣) constitutes Nature. We also can find this idea of considering Nature as something concrete(qi as a kind of material) in Recipes for Nourishing Life. Even though Jiayi said that there were three grades of rulers, I think that this can not be said to be the theory of Three Grades in Human Nature(性三品說). Jiayi`s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is related to the necessity of the leadership of the upper classes, in other words, the rulership of the emperor. Jiayi said that the original meaning of the common people(民萌) is being stupid or not bright, so the leadership of the upper class is necessary. In addition, Jiayi asserted that everyone had six elements(六行), but these were so subtle that only the Sage-Kings could grasp the real state of affairs, and all their teachings were in the six Confucian classics(六經). According to Jiayi`s thoughts, Confucianism naturally could be the educational orthodoxy, furthermore become the official orthod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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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賈誼新書』에 나타난 새로운 제국 질서의 사상적 기초

          이연승(Lee, Youn-Seu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9 철학사상 Vol.31 No.-

          賈誼는 서한 文帝 시기의 뛰어난 문인이자, 당시의 대내적, 대외적 정치 문제에 대해 예리한 진단과 대책을 제시했던 정론가다. 기존의 연구에서 가의는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사상가라고 평가되어 왔으며, 또한 그의 사상은 醇儒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가를 중심으로 하면서 법가나 도가, 황로학 등 다양한 사상이 혼융된 것이라고 이해되어왔다. 가의가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면, 그의 사상 역시 당시까지의 사상을 그저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제국 질서의 구축에 합당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본고의 문제의식이다. 가의의 저작여부가 문제시되었던 『가의신서』의 「道術」?「六術」?「道德說」이라는 세 편의 자료는 최근 출토문헌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대체로 가의의 사상이라는것이 인정되었다. 본고는 이 세 편을 주요 자료로 하여 가의의 우주관과 윤리관이 공히 德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논했으며, 六藝를 한 제국 지배와 수성을 위한 제도 및 사회 윤리의 근간에 두고 있음을 밝혔다. 아울러 이러한 가의 사상의 성격이 ‘유가적'이라고 이해되어 왔던 배경과 그 타당성에 대해서도 간략히 서술하였다. Jiayi: (賈誼) was an extinguished literary man, and also a pioneering thinker in the early Western Han Period of the Emperor Wen: (文帝), who had presented political arguments with a keen observation. So far, in the studies on Jiayi, there are two aspects upon which almost every scholars has agreeed: one is that he would build a new order of the Han Empire, the other is that his thoughts were not purely Confucian, but mixed with Legalistic, Daoistic, and Huanglao-daoistic thoughts. I think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Jiayi had suggested the blueprint of the Empire of new order. At that time he certainly had conceived a new worldview in harmony with that. Three chapters of Daoshu: (?道術?), Liushu: (?六術?), Daodeshuo: (?道德說?) in Jiayixinshu: (『賈誼新書』), lately had been recognized as the writings of Jiayi himself through the research on the documents excavated in Changsha Mawangdui: (長沙馬王堆), and Guodian: (郭店), and these are the central materials in this study. In this paper, I have investigated the basis of Jiayi's thoughts, especially focusing on cosmology and social ethics is investigated. Moreover, the idea that Virtue(德) was the basis of Jiayi's system of thought is introduced. Especially Jiayi thought that the Confucian Six Classics (六藝) was the foundation of the regime and the social system of the Han Empire. Finally, the reasons why people have said that Jiayi is a Confucian and the nature of Jiayi's thought is also Confucian are expl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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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 : 불가능한 소통을 꿈꾼 사상가

          이연승(Lee Youn-Seung)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6 江原人文論叢 Vol.15 No.-

          天下無道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여 춘추 전국시대의 오랜 전쟁을 종식하고 천하 통일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제자백가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었지만 오직 장자만은 사회ㆍ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어떠한 사회적인 구속에도 속박되지 않는 개인적 삶의 유희적 차원과 정신적인 내면의 자유를 추구했다는 것이 기존의 일반적인 장자 이해였다. 그런데 강신주의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은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장자』를 재구성하여 『장자』이해의 새로운 통로를 보여주고 있다. 후대에 대사상가로 추앙된 ‘壯子'가 아닌 인간 ‘莊周'의 삶을 조명해볼 때, 장주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바로 현실세계 속에서의 ‘타자와의 소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논지를 따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장자의 ‘타자와의 소통'은 삶의 세계 안에서 유사한 욕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구체적인 타자와 조우할 때는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장자가 구축하고자 했다는 소통의 논리는 삶의 세계 속에서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소통으로 낙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Generally speaking, Zhuangzi has been understood to be a thinler seeking for absolute freedom of mind or spirit, not a socio-political philosopher. But, Kang Sin-Joo, the author of Zhuangzi : Intercourse with the Other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Subject asserts that the primary concern of Zhuangzi's thought is the intercourse with the other(他者) in this real world. I examined this argument with my own perspective and raised several problematics. The critical point is that Zhuangzhou's intercourse with the other (claimed by Kang) can not be attained in the realities of life, and it could be meaningless if attained. But this book will give a lot of new and striking ideas about Zhuangzi and the readers can find out the possibilities of new comprehension of Zhua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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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장(鳩杖), 노인에게 부여하는 황제의 권위: 한대 왕장제(王丈制)를 중심으로

          이연승 ( Lee Youn Seung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2021 종교문화비평 Vol.39 No.39

          고대 중국에는 왕이나 황제가 일정한 나이에 이른 선별된 노인들에게 구장을 하사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왕장제(王杖制)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팡이를 하사했으며, 또 왜 하필 비둘기 형상으로 장단을 장식했던 것이었을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고자 한다. 먼저 지팡이를 하사하는 이유에 답하기 위하여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지팡이의 상징들을 살펴보았는데, 지팡이의 가장 뚜렷한 상징적 의미는 ‘권위'로서, 한어(漢語)로는 ‘권장(權杖)'이라는 말로 개괄한다. 전사(前史) 시대 중국의 여러 곳에서도 다양한 장두식과 권장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비둘기 모양의 장두식은 다수를 점한다. 다만 특정한 권위를 의미했던 권장이 곧바로 왕장의 전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감숙성의 무위(武威) 일대에서 왕장과 관련된 한간(漢簡)들이 출토되면서 한대 왕장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진한 시대의 다른 죽간들 및 전세(傳世) 문헌의 관련 내용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하여 왕장제의 윤곽이 점차 드러났다. 즉, 그것은 황제가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노인들에게 왕장, 즉 구장을 하사함으로써, 노인들에게 법적, 경제적인 특권을 보장해주는 노인 우대와 경로사상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한 초기부터 시행되었던 복지정책의 범위에 고아와 더불어 노동력을 상실했던 노인층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한대의 왕장제에서 복지와 경로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황제가 하사하는 왕장의 장단에 비둘기가 조각되는 것에 대하여 한대에 몇 가지 설들이 있었으나, 왕장제에 대하여 가장 완비된 형태로 기록했던 《후한서》〈예의지〉는 장단을 비둘기로 장식하는 이유에 대하여 비둘기가 목이 메지 않는 새이니, 노인들이 목이 메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라는 설을 채택하였다. 황제가 하사하는 구장은 2미터를 전후하는 지나치게 긴 길이에 장단에는 반드시 비둘기가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서, 실용적인 지팡이라기보다는 황제의 권위 그 자체였다. 비둘기 조각에는 점차 유가적 맥락에서 효성과 경로의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결국 구장은 중국 문화 속에서 덕과 지혜를 갖춘 노인의 표상이 되어갔다. In ancient China, there was a practice that emperors presented special sticks to selected elderly people at a certain age, which is called “Laws on Emperor Stick”(王杖制). But why did the emperors give the elderly canes, and why did they decorate the end of stick with the shape of a turtle-dove? I will try to answer these questions. First, we looked at the symbols of cane appearing in various ancient cultures, and the most distinctive symbolic meaning of a cane is ‘authority.' In Chinese, it is summed up by the word ‘quanzhang(權杖). A variety of macehead and ‘quanzhang' were also discovered in many parts of China in prehistoric China, and among them turtle-dove-shaped maceheads occupy a majority, but these can not be the predecessors of so called the ‘emperor stick'. In the Wuwei(武威) area of Gansu(甘肅) province, some bamboo slips related to the emperor stick were excavated, and researches on the ‘Laws on Emperor Stick' of Han Dynasty were actively conducted. The details of the ‘Laws on Emperor Stick' are as follows: some of the emperors of Han dynasty gave emperor sticks, that is the turtle-dove-ended sticks to the elderly who reached a certain age, thus legal and economic privileges were guaranteed to the elderly.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scope of the welfare policies implemented from the early Han Dynasty included the elderly who lost their labor force along with orphans, we will be abl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welfare and respect for the elderly from the Laws on Emperor Stick. There were several explanations for the turtle-dove being carved into the Emperor Stick. Liyizhi(〈禮儀志〉) of History of the Latter-Han Dynasty(《後漢書》), which wrote about ‘Laws on Emperor Stick' in the most complete form, adopted the explanation that the reason for the turtle-dove being carved was that turtle-doves are not choking birds, and that they do not want the elderly to be chocked. The stick granted by the emperor was about two meters long, and turtle-dove must be carved at the end of it. It was the emperor's authority itself rather than the practical stick. Turtle-doves were gradually given the meaning of filial piety and respect for the elderly, eventually the turtle-dove-ended stick became a symbol of an old man with virtue and wisdom in Chines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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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의 유교종교론 - 유교의 초월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으로 -

          이연승 ( Lee Youn-seung ) 한국동서철학회 2016 동서철학연구 Vol.0 No.81

          이 글은 서구학계에서 이루어진 유교 연구의 역사를 통하여, 유교를 하나의 종교적 전통으로서 이해해왔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종교적 전통으로서의 유교 담론을 중심으로 서구의 유교연구사를 살펴보면서, 먼저, 유교가 세계종교의 하나로 이해되는 과정, 둘째, ‘축심 시대'에 이루어진 ‘정신적 돌파'가 갖는 ‘초월성'에 주목하면서 유교의 초월성에 주목하게 된 상황, 셋째, 북미에서 신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유교의 종교성 및 초월성에 대한 연구가 다각화되었던 양상, 마지막으로 현대신유학에서 유교의 ‘내재적 초월성'이라는 명제를 제기한 이래 지금까지 이루어진 찬반의 논의들을 다루었다. 이를 통하여 유교가 세계종교의 하나라는 보편적 이해가 이루어진 이래,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서구학계의 연구는 주로 초월성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촉발되어 일반화되었으며, 나아가 심화되고 또 중국어권의 학자들과 이론적인 교류와 소통이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하였다. It is well-known that there have been long discussions on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over 120 years in East Asian countries, due to the problem introduced by the Sino-Japanese translation of the Anglo-European words for ‘religion'. Whereas outside the Chinese-Characters Cultural Spheres, scholars generally have treated Confucianism just as the cornerstone of traditional Chinese culture. Even though Confucianism has been considered as one of the world religions since around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roughout most of the 20th century, it was the predominant view that Confucianism was not eligible for membership of world religions. However there still have been the discussions of whether or not the Confucian tradition can be considered as a religious tradition, and moreover on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This paper is an attempt to explore the study of Confucianism focusing the religiosity in Western Academy. Firstly, the ‘axial age' thesis and its ‘breakthrough' idea developed by Jaspers had widely accepted by the late 1970s, and the discussions on the transcendence of Confucianism also held lively from time to time. Next, Theodore de Bary has provided intellectual leadership in the development of Neo-Confucian studies in North America, which also made the discourse on the transcendence of Confucianism extensive and diversified. Lastly, Mou Zongsan(牟宗三), the representative of the contemporary New Confucianism described the Confucian idea of ultimate reality, Tian(天) or Tiandao(天道) as ‘immanent transcendence', and the concept of ‘immanent transcendence' has widely been acclaimed especially among Chinese scholars, however, there have been some pros and cons presented concerning this idea. We can say that the concept of ‘transcendence' always has been at the center of discourses on the religiosity of Confucianism in the Western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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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논문 :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이연승 ( Youn Seung Lee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종교문화비평 Vol.27 No.27

          초록 구한말 유학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지배이념이었던 유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여근대종교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병헌(1870-1940)은 그 가운데 캉여우웨이(康有爲)의 금문경학에 기반을 둔 공교운동을 전개했던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이병헌의 유교론은 그가 금문경학 연구에 몰두하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구한말 일제 식민지배에 처한 지식인의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병헌은 서구의 문물과 사상에 대하여 배타적이기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타종교 전통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교란 구세(救世), 즉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고, 유교란 바로 공자의 가르침(敎)인데, 공자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교주이므로 유교는 종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직 공자의가르침이 담긴 경서의 해석에 입각하여 유교의 신도(神道)를 부각시킴으로써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상식적 견해를 불식하려 했다.유교를 공자의 敎라고 규정했던 이병헌에게 공자가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상제나天, 태극 등 유교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논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윌리엄슨의 〈상제비태극〉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이병헌은 그의 성리학적 소양, 특히 한주학(寒洲學)의 계승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하였다. 이병헌은 태극은 지각과 영명한지혜를 갖춘 理이고, 理는 주재자이며 또한 유교 경서에 나타나는 天이요, 상제라고 하면서, 형체를 가진 기독교의 상제가 理를 창조했다는 윌리엄슨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이병헌은 유교의 종교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공자의 가르침, 즉 유교에서 神과 신도를 강조했으며, 공자는 입신(入神)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함으로써 이 유교의 핵심을 유교인 들에게 의미 있게 정착시키고자 했다. 이를 체계화하여 표현한 것이 다름 아닌 ‘마음이 곧 신(心卽神)'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한주학의 주리론적 ‘심즉리설(心卽理說)'에서 벗어난 한국 유교의 심설(心說) 전통의 새로운 전개일 뿐 아니라, 유교적 종교체험의 보편성을 가능케 하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Yi Byeongheon(李炳憲: 1870-1940), born and lived in the late period ofJoseon Dynasty and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of the Korean Peninsula,has been known as a representative Confucian who developed thereligionization movement of Confucianism based on the thoughts of New textschool of Kang Youwei(康有爲). In this paper, I pointed out that Yi's thoughtson Confucianism had established before he was greatly influenced by Kang,or absorbed in the thoughts of New text school. Yi had a positive attitude tocommunicate with the culture and ideas of the West, especially to Christianityrather than have an antipathy to them. The essence of religion was simply defined as saving the world or all thepeople and Confucianism as only teachings of Confucius, not including otherprevious Sage-Kings or following great scholars. Yi also insisted thatConfucius was the founder of the religion, Confucianism, because he had theintense intention of saving people. In other words, Confucius was the samebeing as Jesus and Buddha of Christianity and Buddhism. Yi tried toemphasize the religiousity of Confucianism by reinterpretation of themeanings of Confucian canons, especially the Book of Change(《周易》) andSpring and Autumn Annals(《春秋》). Even though the issue of ultimate reality was not his concern, Yi discussed on the traditional ideas of ultimate reality of Confucianism criticizing the article of ‘Shangdi is not Taiji(上帝非太極)' written by A. Williamson, the missionary from Scotland to China. Yi identified Shangdi with Taiji, and also with the Principal(理), and demonstrated his good understanding in Song Confucianism(宋學). Yi laid great emphasis on the unworldly character of Shendao(神道) to prove Confucianism a religion, however, he pointed out that the factors of Shendao was almost in the core of Confucianism, not in the teachings of everyday life, and he thought that Confucianism didn't come out of superstitions, but it was very mystical, which he supposed to be the superiority of Confucianism to other religions. Yi presented his ideas that ‘human mind/heart is spiritual god(心卽神)', and his ideal way of Confucian cultivation of mind/heart could be located in Confucian context in this way. It can be regarded as the new development of the theory on ‘mind/heart' in Korea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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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대의 흔례(?禮)에 대한 소고: 희생제의와의 관련성에 주목하며

          이연승 ( Lee Youn Seung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2017 종교문화비평 Vol.31 No.31

          고대 중국에서 피를 사용하는 의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혈제(血祭)로서 주로 종묘나 교제 등에서 제사 지낼 때 피를 바치는 것이고, 둘째는 회맹이나 맹세에 피를 사용하는 것이며, 셋째는 바로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흔례(?禮)의 경우다. 아마도 은·주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으리라 추정되는 흔례는 시행하는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정한 형태로 이루어진 의례라 볼 수 없고, 따라서 다양한 흔례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비로소 흔례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성과를 토대로 흔례 전반에 대하여 고찰하되, 특히 희생제의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흔(?)이라는 글자가 `씻는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로부터 점차 제의적 맥락에서 무언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떨쳐내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피를 바르는 대상 그 자체를 신성하게 만든다는 함의를 내포하게 되었던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Ⅲ장에서는 다양한 흔례의 대상을 건축물에 대한 흔례와 기물에 대한 흔례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건축물의 경우는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종묘에 대한 흔례를 중심으로 하였고, 마굿간에 대한 흔례를 간단히 다루었다. 기물에 대한 흔례는 학궁에서 사용하는 기물이나 악기·보물·귀갑 등 방기에 행하는 흔례와 북·기(旗) 등 군기에 행하는 흔례로 나누어 보았다. Ⅳ장에서는 흔례의 핵심을 이루는 `피(血)`를 유가의 제의에서 사용하는 것은 첫째, 인간의 세계와는 이질적인 신적 세계와 교류하기 위하여 바치는 원초적이고 질박한 제물이라는 것, 둘째, 왕성한 생명력인 기의 근원처라는 뜻을 가진다는 것을 논의하였다. 제의에서 희생을 살해하여 특정 시간과 공간 안에서 특정 대상에게 피를 바름으로써 대상의 변화를 도모하는 흔례는 희생제의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동아시아적인 맥락에서의 희생제의에 대한 연구를 축적해나갈 필요가 있으리라 제안한다. There are three categories of rituals that use blood in ancient China: firstly, there was `blood sacrifice(血祭),` which is to pay blood when sacrificing mainly to Heaven and Earth, and at the Royal Ancestors` Shrines(宗廟); secondly, there were meetings of sovereigns of their deputies in ancient China to form alliances, and they were called by ritual of Huimeng(會盟禮); thirdly, there had been many kinds of ritual of Xin(?禮). I will examine the third case of rituals using blood, the ritual of Xin(?禮) in this paper. I tried to explain how the character Xin(?) had the meaning of applying or spreading blood, how it acquired the special meaning in the ritualistic context, and how the Xin rituals were performed in each case. There were various kinds of Xin ritual, but we can roughly divide into two; one is Xin rituals for some special buildings, expecially for the Royal Ancestors` Shrine, and the other is Xin rituals for ritual vessels, musical instruments, and arms etc. The core element of Xin rituals is blood itself, then what is the meaning of blood in ritualistic context? First, blood is the simple and unadorned offering for the purpose of interacting with the divine world, and second, it is the origin of Qi(氣) which contains the lifeblood. I think Xin rituals can be regarded as a kind of sacrifice, even though the recipient of these rituals are not so evident in some cases. Finally, I expect that the accumulation of the researches on East Asian sacrifices will change the outline and implications of the term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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