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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 간호사의 역할과 부담과 기본간호 술 수행 시의 무균술 이행의 관계

        이선옥 ( Sun Ok Lee ),박경연 ( Kyung Yeon Park ) 경희대학교 동서의학연구소 2009 동서간호학연구지 Vol.15 No.1

        본 연구는 2차 병원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역할과부담 정도와 기본간호술의 무균술 이행 간의 상관성을 파악하여 병원감염 률 감소를 위한 임상간호사의 역할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대상지들의 역할과부담은 9.85접으로 5점 만점에서 3.28점인 것으로 나타나 중정도 이상의 역할과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본 연구의 결과는 같은 도구를 이 용하여 간호사들의 역할과부담을 측정한 Lee 등(2002)의 연구 결과인 3.41점보다 조금 낮았는데, 이는 본 연구는 2차 병원 간 호사만을 대상으로 한데 반해 Lee 등(2002)의 연구는 3차 병원이 포함되어 연구 대상 병원별 업무의 특성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 대상지들의 병원감염과 관련된 기본간호술 이행 시의 무균술 이행 정도는 유치도뇨관 삽입 시가 42.72점으로 5점 만점으로 4.27점9로 나타나 Lee와 Kim (2002)이 중환자실 간호사 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병원감염 예방에 대한 유치도뇨관 관리 의 수행도 3.61/5점이나 응급실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Park, Shin, Lee와 Kim (2008)의 4.01점보다 높은 것이다. Lee와 Kim (2002)의 연구 및 Park 등(2008)의 연구는 유치도뇨관 삽입 이후의 관리가 조사내용의 주를 이루는 반면 본 연구에서는 도뇨관 삽입절차 중의 간호사들의 무균술 이행정도를 조사한 것임을 생각할 때 삽입 절차 중의 무균술 이행이 삽입 후 관리 에서의 무균술 이행보다 더 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수액주업용 정맥관 삽입 시의 무균술 이행정도는 40.11점으로 5점 만점에서 3.65점인 것으로 나타나, 임상간호사의 병원감염 관리 중 투약관리 영역이 4.4/5점(Kim & Chun, 2002)이었던 선행연구보다는 낮은 점수를 나타내었다. 선행연구에서 기본간 호술 이행 중의 무균술 이행을 측정한 연구는 찾기 힘들었고 대 병원감염관련 무균술 연구는 유치 후의 관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순 비교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본 연구 결 과와 관련된 선행연구 고찰을 통해, 감염관리에 대한 선행 보고 는 임상간호사의 병원감염관리에 대한 인식과 수행도 조사(Choi & Park, 2002; Kim & Chun, 2002), 감염관리 간호사들의 감염관리 업무,(Oh & Yi, 2005) 등 감염관리 전반에 대한 젓이 주를 이루어 간호술을 포함한 의료숨기 개별 행위절치마다의 무균적용에 대한 평가와 검토는 간과된 측면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들 부분은 의료인의 양심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으나 잘못 인지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인지하고 있는 것을 정 확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보고를 통해 더 구체적 인 감염불이행의 영역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효율적인 병원감염률감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젓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감염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감염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시숨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는(Hallett,2000)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라고 본다. 도뇨관 관련 요로감염 발생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도뇨관 삽입 절차 중의 무균술 불이행이며 도뇨관 삽입의 대부분이 간호 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Bissett,2005) 기본간호술 이행 중에 발생하는 오염발생에 대한추후반복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대상자들의 연령, 결혼상태, 교육정도, 밤 근무 유무, 근무장 소,직위별로는 역할과부담 및 무균술 이행수준 모두에서 유의 한 차이기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병원감염예방에 대한 수 행도에서 연령, 결흔상태,교육정도, 직위에서 유의한 차이기 없었다는 Lee와 Kim (2002)의 연구와는 같은 결과를 보인 젓 이지만 연령이 감염관리 수행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36세 이 상,10년 이상의 근무경력을 가진 간호사의 관리에 대한 중요 성을 피력하고 있는 Park 등(2008)의 연구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추후 반복연구를 통해 재규명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본 연구에서의 역할과부담 및 무균술 이행수준 측정 도구가 낮은 Cronbach`s alpha 값을 보이고 있으므로 결과의 해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할과부단과 기본간호술 이행과의 상관관계에서는 유치도뇨관 삽입 시 무균술 이행수준과 수액주입용 정맥관 삽입 시의 무균술 이행수준 모두가 역할과부담과 유의한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응급실 간호사들의 감염관리 이행이 업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가 없었다는 Park 등(2008)의 결과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된 투약지침의 불이행은 간호사의 과 중한 업무량 등에서 초래될 수 있다는 Santell, Hicks, McMee-kin과 Cousins (2003)의 보고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는 Santell 등(2003)의 연구에서 표준화된 투약지침은 투약을 위 한 five right과 전반적 절차 모두에 중점을 두어 시간적 소요가 있는 반면 본 연구에서는 간호술의 전제 절차 중 감염관련 부분 만을 측정한 결과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역할과부담이 손씻기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던 Lee와 Kim (2002)의 연구 결과와도 차이가 나는 것인데 이는 손씻기가 본래의 간호 업무 수행의 전과 후에 시행되는, 추기되는 행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호시간이 추가되는 것인데 반해 유치도뇨관 삽입이나 수 액요법을 위한 정맥관 삽입에 따른 절차 중의 무균술 적용은 본래의 간호업무 그 자체 절차 중의 하나로 유치도뇨관 혹은 정맥 관을 삽입 시 무균술 적용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보다 는 간호사가 의식을 집중하는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측면이기 때 문이라 생각된다. 즉, 역할과부담에서 가지는 시간적 제약이나 업무부담감 등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데서 기인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로써 오히려 전제 절치 중 병원감염관리를 위한 간호술기 수행은 별도의 인력 보충없이 개개인의 노력으로 실천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각 변수별 상관관계에서는 유지도뇨관 삽입 시의 무균술이 행수준이 높을수콕 수액주입용 정맥관 삽입 시의 무균술 이행 수준이 높아유치도뇨관삽입시 무균술 이행수준과 정맥관 삽입 시의 무균술 이행수준 간의 유의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는 두 가지 술기 모두 기본적인 무균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간호사들의 무균이행 정도를 자가보고형 설물으로 조사한 것이라는 제한점이 있어 연구결과를 해석하는데 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병원감염 관련 선행연구와 달리 구체 적인 간호술기 과정 중의 멸균 이행정도를 조사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보며 이러한 병원감염원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병원감염 관리 전략개밥의 기초자료로 활용됨 수 있을 젓으로 기대한다. The study was investigated to identify the relationship between nursing workload and aseptic technique perfor-mance by clinical nurses, and to decrease the incidence rate of nosocomial infection. Methods: Participants (N=283) were recruited in B city from April to June 2007. The data were collected by a structured questionnaire and analyzed with descriptive statistics, t-test, ANOVA and Pearson`s correlation coefficient. Results: Nursing workload was rated 9.85 out of a total score of 15. The level of aseptic technique performance as the basis for insertion of a Foley catheter was 42.72 out of a total score of 50, and as basis for insertion of intravenous catheter for fluid therapy was 40.11 out of a total score of 55. There was not a significant relationship between aseptic technique performance and nursing workload. There was a significant positive relationship between the aseptic technique performance in insertion of Foley catheter and that of intra-venous catheter for fluid therapy (r=.279, p<.00l). Conclusions: Attention to asepsis by nurses is crucial in nosocomial infection-related clinical nursing skills.

      • 파프리카 추출물의 색소안정성과 Ethoxyquin 및 잔류용매 검출

        이선옥,경석헌,박길동,강희곤,박주성,이시경,Lee, Seon-Ok,Kyung, Suk-Hun,Park, Kil-Dong,Kang, Hee-Gon,Park, Joo-Sung,Lee, See-Kyung 한국응용생명화학회 2002 한국농화학회지 Vol.45 No.2

        올레오레진 파프리카의 색소 안정성과 ethoxyquin의 잔류량 분석을 위하여 용매별 최대 흡수파장과 흡광도, 용매와 ethoxyquin파의 잔류량 분석 조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용매별 올레오레진 파프리카의 최대 흡수파장은 444-458 nm에서 나타났으며 흡광도 값은 에탄올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아세톤, 클로르포름, 메탄올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용매별 올레오레진 파프리카 추출물에서의 색가는 에탄올, 아세톤, 클로르포름 그리고 메탄올 순으로 높았으며 국가별로는 미국 제품이 용매에 따라서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2-6배 정도가 높았다. 올레오레진 파프리카에서 잔류되는 용매는 주로 아세톤, 메탄올 그리고 헥산이 일부제품에서 미량 검출되었으며 기타의 잔류용매는 검출되지 않았다 Ethoxyquin의 분석에서 GC에 의한 분석방법으로는 다양한 분석조건에서 실시하였으나 적합하지 않았다. HPLC에 의한 ethoxyquin의 분석을 위한 올레오레진 파프리카 추출물의 용해용매로 헥산을 이용한 것이 가장 분리능이 좋았으며 검출한계는 $0.01\;mgl^{-1}$이었다. 생산국별 올레오레진 파프리카에서의 ethoxyquin 검출은 미국과 스페인 제품에서 미량 검출되었으며 ethoxyquin이 검출된 제품이 검출되지 않은 제품보다 색가가 더 높게 나타났다. Effects of ethoxyquin on the color stability of oleoresin paprika extracts and amount of residual ethoxyquin, a color stabilizer, in commercial extracts were determined. The oleoresin paprika extracts dissolved in ethanol gave the highest maximum photo-absorbency at 444-458 nm, with the color index of United States product 2-6 times higher than that produced in India. The residual solvents in oleoresin paprika extracts were mainly acetone and methanol, although some other extracts also contained small amounts of hexane. HPLC analysis was determined as a proper analytical method for residual ethoxyquin assay in the oleoresin paprika extracts, particularly when hexane was used as a solvent. The residual ethoxyquins were detected in the extracts produced in US and Spain which had relatively high color ind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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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논문 : 19세기 여항문인화가 조희룡예술의 근대성

        이선옥 ( Seon Ok Lee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6 감성연구 Vol.0 No.12

        이 논문은 19세기 여항문인화가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예술의 근대적 성격을 밝힌 것이다. 조희룡은 어떤 화가보다도 생생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사고와 정감을 화면 위에 고스란히 구현시킨 개성적인 화가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갖는 자부심과는 달리 차별받는 처지에 있었다. 그는 여항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중인들의 시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중인들의 전기집인 『호산외기』 저술로 표출하였다. 한편으로는 함께 모여 시를 짓고 이를 기록하여 유서 깊은 문인아회(文人雅會)를 이어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빼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의 전기집을 발간한 것이다. 이로써 소수의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 제도에 대한 중인층의 울울한 심사와 반발감을 표현하였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서술 대상으로 끌어 올린 그의 역사의식은 새로이 부상하는 계급, 계층을 매개로하는 인식의 근대성이라 할 만하다. 문인이면서 예술가였던 조희룡은 여러 저술을 통해 회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하고, 수예론(手藝論)을 펼침으로써 화가들만이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보였으며, 예술에 있어서의 독창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회화관을 바탕으로 이전시기 뿐만이 아니라 당대 추사파 화가들과도 비교되는 참신한 화풍을 선보였다. 그의 회화는 심미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감성을 화폭에 펼쳐내 감각적이면서도 새로운 미감을 보인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특성을 보인다. 또한 그의 예술에는 예술적 주체로서 갖는 강한 자의식과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조희룡 예술의 그 새로움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한 산물로, 고동서화가 상품으로 유통되고 직업예술가가 출현하던 당시 서울의 도시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조희룡의 활동과 예술은 이미 흐트러졌음에도 여전히 고집되던 양반사회의 권위와 질서에 낸 도전장이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힘찬 도약이라 할 수 있다. This study identified the modern nature of art produced by Jo Hee-Ryong(趙熙龍), a middle class literary artist in the 19th century. Jo Hee-Ryong uniquely realized his own thoughts and emotions in vivid and sensitive ways on canvass. However, he belonged to the middle-class and received differentiated treatment although he had high self-esteem. He actively participated in literary activities with the public who were self-aware and published 『Hosanouiki(壺山外記)』, a biographical collection for the public. Meanwhile, the public submitted poetry which he gathered together and recorded, and carried on the tradition of literators’ Elegant Assemblies(文人雅會), a prestigious literary group. Moreover, he was active in publishing a collection of biographies on artists who had not been noticed yet, although they had outstanding talent. The publication showed the depressed feelings and resistance of the public who were against the real institutions dominated by a few high officials. He raised those who were not noticed to the public``s eye, which indicates that he had modern awareness with the newly-rising class as a medium. Jo Hee-Ryong, a literary person and artist, recognized the value of paintings through publications of a few writings, and had pride in the special talent of painters and their gifted hand skills. Also, he emphasize originality in art. Based on this view of painting, he showed an original painting style comparable to painters of the Chusapa circle(秋史派). His paintings pursued aesthetics and the emotions he expressed on the paper were sensitive and new, this indicates his paintings and methods of thinking were modern. His art was characterized by a strong self-awareness in reality as an artistic subject. The newness in his art was a product which corresponded to the requests of the changing times, and his art expressed the city culture of the capital at that time where painting was distributed as a product and professional artists had appeared. His activity and art was a challenge to the authority and the order of the aristocratic class which was insistent although it was dispersed. His art and leadership were a powerful influence in a new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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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의 표현 : 조희룡의 감성과 작품에 표현된 미감

        이선옥 ( Seon Ok Lee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09 호남학 Vol.0 No.45

        이 논문은 19세기 여항문인화가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을 통해 작가의 사회적 신분과 이에 따른 작가의 감성의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더 나아가 화단의 변화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본 것이다. 조희룡은 시ㆍ서ㆍ화에 능하고 문인의 소양을 두루 갖추었지만 그의 신분은 양반사대부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그의 의식에는 문인화가로서의 미의식과 전문화가로서의 미의식이 공존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신분에 따른 조희룡 감성의 기저를 “여항인으로서의 울분”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았다. 조희룡은 신분이라는 한계로 인해 자신의 능력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고, 그로 인한 울분을 여러 예술 활동으로 풀어내었다. 반면 골동서화를 좋아하였고, 사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심미취미를 가졌으며, 그와 동시에 전문화가로서의 자부심 또한 드러내어 매우 주목된다. 조희룡의 양면적인 감성은 그의 작품에 그 자신이 “광도난말”로 표현한 “격동”의 미감과 이를 승화시켜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담”의 미감으로 표현되었다. 격동과 담의 미는 그의 감성 기저의 상반된 두 요소가 작품에서 다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조희룡이 추구하는 미의 경계는 그의 의식의 양면성만큼이나 문인화가들의 미의식과 개성 있는 전문화가로서의 미의식을 동시에 포함하는 것으로 19세기 화단의 양면성과도 통하는 것이다. 조희룡은 훗날 “묵장의 영수”라 불릴 만큼 19세기 화단에서 여항화 가들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화풍은 당시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19세기 화단의 역동적인 변화의 한 축을 이끌었다. 때문에 그의 감성과 화풍의 관계는 19세기 화단의 변화를 살피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social status of a middle-people literati and painter(閭巷文人畵家) in the 19th century, how his Gamseong(性感) was projected in artistic works based on Ubong (又峰) Cho Hee-Ryong(趙熙龍) and what influence he made on change in artistic circles at that time. Cho Hee-Ryong was in middle class though he had enough knowledge as a literary person. So esthetic sense of literati painter and that of professional painter coexisted in him. This study examined the base of his gamseong according to his social status in two aspects of` wrath as a middle class literati and pride as a literati painter. “Wrath” and “pride” seem to be negative and positive respectively at a glance, but wrath is not just negative in his art. “Wrath as a middle-class literati” was an energy for his art. He sublimed his experiences as a middle-class literati and exile into his art to create masterpieces that represent his artistic life. In addition, “pride as an artist” gave depth and originality to his artistic works. His ambivalent emotion was represented as estheticism of violent shaking that he described his mad and sophisticated painting style and simplicity for which his violent emotion was sublimed into rapt attention. Beauty of violent shaking and simplicity was represented in his painting through wrath and pride that were opposite elements of his emotional base. Cho Hee-Ryong was in the center of middle-class literati in the 19th century as he could be called a boss of the circle of professional painters. He was a leader of the Pyoko Circle(碧梧社) that was a circle of middle-class poets and the most influential painter as well. So, his painting style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painters at that time and led one axis of dynamic change in painting circle of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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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오월미술에 표현된 이별의 슬픔

        이선옥 ( Seon Ok Lee ),류시현 ( Si Hyun Ryu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2 호남학 Vol.0 No.51

        이 논문은 오월미술품 중 가족이나 친지와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겪어야 했던 많은 이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을 다루었다. 이별의 슬픔이 표현된 작품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광주 오월의 현재적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삼엄한 시국 속에서도 작가들은 5월 그날의 참상을 작품으로 남겨 충격을 주었다. 오월을 형상화한 작품 중 80년대 전반기 작품들은 화가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사태의 진상을 알리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때문에 같은 주제를 다룬 후반기 작품에 비해 사실성과 함께 강한 분노가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고발보다는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진혼을 강조한 내용이 많았다. 이 같은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들은 그 자체 역사적 폭력에 대한 예술적 애도작업이자 이후의 분노를 생성하는 힘이 되었다. 5월의 슬픔은 여러 미술적 장치를 통해 기억의 재현을 넘어 예술작품화 되었다. 시기에 따라 다른 표현을 보인 5월 미술이란 소재를 “표상화, 사실화, 상징화”란 측면에서 분석을 시도하였다. 5월 미술에서 어머니나 누이 혹은 친구나 아버지를 통해 표상화된 슬픔의 균질함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실제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를 슬픔의 표상으로 제시한 예가 많았다. 반면 아버지나 친구 혹은 형제와 같이 슬픔의 주체가 남성인 경우에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분노에 찬 복수의 결의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다. 항쟁의 주체인 남성과 슬픔의 주체인 여성이라는 이분화 된 젠더의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매체의 상호 전환의 측면에서 사진과 그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오월미술은 작품화하면서 사진을 활용하여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분적인 변형을 주어 사실을 전달함과 동시에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더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숨은 의미를 암시하는 요소로서 어떤 상징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오월미술에서 상징은 정치적 요소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이었다. “달”이나 “꽃”과 같은 상징적 사물을 더함으로써 죽음의 의미, 그로 인한 슬픔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광주의 오월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들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롭게 창작되면서 자칫 과거의 역사로 치부될 수 있는 항쟁의 의미를 살아있는 현재로 재 탄생시킨다. 작가들이나 시민들이나 작품을 통해 5월을 상기하고 희생자를 애도하였다. 이는 왜곡되고 억압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끝없는 부채의식과 트라 우마를 치유해 가는 극복과정이었다. This thesis deals with the theme of grief in May Art. Both the bereaved mother and other people in Gwangju were in deep sorrow because of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in 1980. Especially, the art works focus on the grief of parting will rouse the present meaning of the tragic separation, death, grief and so on. At the early 1980s, Artists strove to let Koreans know the fact of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by way of paintings and woodcut prints. So their works emphases on the resentments against the military authorities who suppressed the civil uprising. After the late 1980s, works on Gwngju Uprising express their emotions with the share of grief and the repose of souls. These art works were the background of people`s rage and artists` sympathy against historical violence. The image of May`s grief frames not the representation of memory but the object of fine arts by way of many kinds of artistic forms. The image of men, such as fathers, friends, fellows, represents the determination of revenge. On the contrary, the image of women, such as mother, elder sisters, represents the social grief as a minorities. More over, using the image of moon, petal and documentary photos, these art works accentuate the tragedy of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in 1980. Both the artists of May Arts and many amateurs` circles at Universities had produced many works during the 20 years. These works will induce to remind the meaning of people`s uprising in 1980`s and will help to mourn for the victims. It is the overcoming process of the mental debits to the dead. Through the disclosure of covered memory and truth, these art works call for the conquest of mental trauma of the surviv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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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 호남문화와 감성담론의 다층 1 ; 기묘사림의 예술감성과 호남화단

        이선옥 ( Seon Ok Lee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0 호남학 Vol.0 No.48

        기묘사림은 조광조의 문인이거나 개혁정치의 일환으로 개정된 현량과로 등용된 인물들이다. 이들 중 작품이 남아있거나 서화로 이름난 문인들은 양팽손, 신잠, 김정, 고운, 최수성, 김구 등이다. 사화가 일어났을 때 이들은 대개 30세 전후의 의기 왕성한 시기로 이제 막 벼슬길에서 뜻을 펼칠 즈음이었다. 이러한 때에 뜻을 같이 했던 스승과 동료가 하루아침에 사사되고 유배되는 참담한 상황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비애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기묘사림들은 시와 그림에 자신의 복잡한 심회를 담아내었다. 최수성이나 김정은 사화 직후 사사되어 사화가 안겨준 비분강개한 심정을 회화에서 찾을 수는없으나, 신잠은장흥유배후묵죽을 더 많이 그렸으며 양팽손과 고운등은 낙향후 서화에 잠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논문에서는 기묘사림들의 전칭 작품과 제화시 등을 통해 이들의 감성이 어떤 형태로 작품에 표출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작품을 사군자, 산수화, 영모화로 나누어 보았고, 이에서 기묘사림들의 절의 정신과 은일사상, 그리고 불의에 맞선 기개가 예술로 꽃 피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문인화가들 뿐만 아니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림들은 서로의 그림에 제화시를 남겨 돈독한 우의를 다졌고, 서화에 자신의 심회를 담아 표출함으로써 정서적 교감을 이루었다. 기묘사림의 절의정신과 예술 감성은 사화를 당한 문인 자신에 그치지 않고 확산되면서 후손들로 이어져 호남문화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호랑이를 그리던 고운의 기개는 손자인 고경명의 의병활동으로 이어졌다. 양팽손의 묵죽에서 보인 절의정신은 아들과 손자들의 의로운 죽음으로, 그리고 양산보의 풍류의식이 낳은 소쇄원은 16세기 시가문학의 본산으로서 호남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윤구에서 보였던 예술 감성은 윤선도를 거쳐 윤두서로 이어져 조선 후기 화단의 빗장을 여는 선구적 화풍을 이루었다. 이는 윤덕희, 윤용 뿐아니라 외손인 다산 정약용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19세기 소치 허련을 통해 근 현대로 이어졌다. 이들 기묘사림들의 절의정신과 예술 감성은 호남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였다. Yang Paeng-son, Sin Jam, Kim Jeong, Go Un, Choi Su-seong and Kim Gu who were Gimyo Sarim(Confucian scholars who fell victims of Gimyosahwa) were famous for their works of calligraphy and painting. They belonged to a literary circle led by Jo Gwang-jo and were appointed to Hyonryanggwa which had been revised for reformative politics. When a calamity of scholars occurred, they were in early thirties when they started their official career. At that time their teachers and colleagues were sentenced to death or exile, which gave them ineffaceable sorrow and despair. Confucian scholars represented their complex mental attitudes in their poetry and painting. Sorrowful indignation was not found in paintings by Choi Su-seong or Kim Jeong as they were sentenced to death immediately after the calamity, but Sin Jam painted lots of Chinese ink painting of bamboo after he was exiled to Jangheung and Yang Paeng-son were immersed in calligraphy and painting after he returned home. This study analysed how sensitivity of scholars was represented in their painting and poetry. It categorized their works into Sagunja(an oriental painting of plum-blossom, orchid, chrysanthemums and bamboo), landscape paintings and Youngmohwa(painting of animals) and discovered that their integrity, hermitage and unyielding spirit were represented through art. The Confucian scholars who felt sorrow for the calamity as well as the literary artists consolidated their friendship through writing poetry on each others` painting and represented their mental attitudes in their calligraphic writing and painting which led to emotional sympathy. Integrity and artistic sensitivity of Gimyo Sarim were succeeded to junior scholars, which became an important axis of Honam culture. The integrity of Go Un who drew tigers led to Go Gyeong-myong`s leadership of righteous troops. Yang Paeng-son`s integrity shown in his Chinese ink painting of bamboo led to righteous death of his son and grandsons. Soswaewon derived from Yang San-bo`s taste for the arts has become a main axis of Honam culture as a headquarter of poetry literature of the 16th century. Yun Gu`s artistic sensitivity was inherited to Yoon Seon-do and Yoon Du-seo, which was a base of innovative painting circle of late Joseon period. It influenced Dasan Jeong Yak-young, a maternal grand-son as well as Yoon Duk-hee and Yun Yong, and became an origin of artistic hometown Honam through Huh Ryon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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