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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울진의 海月軒 시문에 대한 연구

        이남면(Lee, Nam-myon) 대동한문학회 2021 大東漢文學 Vol.6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海月軒은 조선 중기의 문인인 黃汝一(1556~1622)이 지금의 경북 울진군 箕城面 沙洞里에 세운 별당이자 누정이다. 이 누정은 車天輅, 李恒福, 李廷龜, 李山海, 李睟光, 郭鍾錫 등 조선 중후기의 여러 명사들이 제영시와 기문을 남긴 곳이다. 본고는 이 시문의 작가와 작가별 창작 경위, 작품 세계를 살펴본 것이다. 해월헌 제영시와 기문은 해월헌의 첫 번째 주인인 황여일 생전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황여일은 평해를 비롯한 그 인근 지역의 퇴계학파 문사들과 사우관계를 맺었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이후로 당대의 저명한 문장가, 시인들과 교류하였다. 황여일은 1588년 10월에 해월헌을 완공하고서 이들 知人에게 제영시와 기문의 창작을 적극 요청하였다. 또 지인들이 강원도에 지방관으로 왔을 때 해월헌을 방문하여 제영시를 남기기도 하면서 해월헌 시문은 창작량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황여일의 아들 黃中允 이후로 후손들이 出仕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머물면서 私樓인 해월헌에는 그 후손의 지인들과 울진 현령 등 일부 지인들만이 제영시를 남겼다. 작품 세계는 크게 해월헌의 풍광을 묘사한 작품과 ‘海’와 ‘月’의 명칭을 통해 이치를 탐구한 작품, 황여일 사후 후인들이 해월헌의 옛 주인을 회고한 작품으로 구분하여 살폈다. 그 결과 해월헌은 조선 중기 이후 많은 문인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거나 문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공간이었고, 哲理的 사유를 통해 學德을 증진시키고 삶의 자세를 배우고자 한 공간이었으며, 후인들이 해월헌의 옛 주인인 황여일의 깊은 사유와 憂國의 풍모를 회고하며 고인과 교감을 이룬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Haewolheon was a separate house and a pavilion built by Hwang Yeo-il (黃汝一) in Sadong-ri, Giseong-myeon, Uljin-gun, Gyeongbuk Province in middle Joseon. Prominent figures in middle and late Joseon including Cha Cheon-ro(車天輅), Lee Hang-bok(李恒福), Lee Jeong-gu(李廷龜), Lee San-hae(李山海), Lee Su-gwang(李睟光), and Gwak Jong-seok(郭鍾錫) created poetry and prose about the pavilion. This study examine the authors of these poetry and prose, creative processes, and the literary worlds. Poetry and prose about Haewolheon were created during the life of Hwang Yeo-il, Haewolheon s first owner. He formed relations with writers and scholars of the Toigye School(退溪學派) in Pyeonghae(平海) and the surrounding areas. Since he entered the central politics, he rubbed shoulders with prominent figures of the times. He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Haewolheon in October, 1588 and actively asked them to create poetry and prose about it. Some of them visited Haewolheon as a local official of Gangwon Province and left poetry about it. As a result, the amount of poetry has increased. However, after Hwang s death, while most of his descendants stayed in their hometowns without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only some acquaintances visited Haewolheon. The literary worlds about Haewolheon were divided into the description of it’s landscape, inquiries into the philosophical reason through the names of “sea(海)” and “moon(月)”, and recollections of it’s first owner by later generations. These findings indicate that Haewolheon was a space where a lot of literary figures appreciated the beautiful scenery of its surroundings and exercised their literary imagination, a place where scholars promoted virtue and learned the attitude of life through philosophical thinking, and a venue where later generations recollected on Hwang s profound thinking and patrio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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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의 유배문학

        이남면(Lee, Nam-myon) 우리문학회 2014 우리文學硏究 Vol.0 No.41

        이 논문은 이민구(李敏求)의 『아성록(牙城錄)』을 살펴봄으로써 아산의 유배문학을 확인해보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유배지로서의 아산은 서울과 가까운 지역으로 인식되어 대부분 감형된 자들이 단기간 동안 지낸 곳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산의 유배문학은 많은 작품을 찾기가 어렵지만, 이민구의 『아성록』은 291수의 시 작품이 창작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어 조선 문사의 아산 유배생활과 작가의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먼저 이민구의 유배문학이 산생된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생애와 유배 경위를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한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삶의 비극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이수광의 아들이자 명문사대부 가문 출신으로서 유배 이전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모습과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의 처신을 집중 조명하였다. 이후 『아성록』에 담긴 작가의 생활상과 작가의식의 형상화 양상을 논하였다. 그는 1637년 이후 평안도 영변에서 6년 6개월의 위리안치 생활을 하다가 아산으로 이배되어 왔기 때문에 아산 유배 초기 비교적 심리적 안정을 찾는듯했으나 점차 유랑하는 삶과 고궁(稿窮)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비통한 심정을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 처지를 슬퍼하면서도 그는 항상 지역민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제안일시(濟安一時)"를 중시하면서도 여유롭게 민생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산 민생의 현장과 그들의 고난을 직접 응시하면서 제민(濟民)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이런 내용들은 장편의 시 속에 담긴 경우가 많았으며 다양한 표현수법과 구성 등이 어우러져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의 높은 창작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exile literature of Asan through analysing 『Aseoungrok(牙城錄)』written by Lee, Min-gu(李敏求). Asan as a place of exile was regarded as an area near the Capital City Seoul and a place for man who was commuted a sentence to stay for a short time. For this reason, it is difficult to find a large volume of exile literature in Asan. However Lee, Min-gu"s『Aseoungrok(牙城錄)』contains 291 poems which is organized in a chronological order. Therefore it is a good resource for knowing his exile experience and inner world in Asan. Firstly, this paper deals with his life and the details of the exile to know what inspired him to write『Aseoungrok(牙城錄)』. Therefore this chapter focuses on his active participation in the political world as a person of noble birth and his tragic life-changing caused by just a moment"s choice in Manchu"s invasion of Korea in 1636 (丙子胡亂). Secondly, this paper discusses on his livelihood and consciousness showed through『Aseoungrok(牙城錄)』. At first, he had lived in Yongbyon(寧邊), Pyongan(平安) Province under the confinement state(圍籬安置) for over six years. After that, the place of the exile was relocated to Asan. Therefore at the beginning he seemed relaxed about his living in Asan. However he wrote poems about his solitary life as time went on. On the other hand, he was interested in and concerned about the life of the common people and expressed his sentiments about them in his poems. In other words, his poems contains strong will to help the general public. Meanwhile, he used various versification to write these poems. These shows his high degree of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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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命啓의 <<海皐集選>>과 시세계

        이남면 ( Nam Myon Lee ) 근역한문학회 2015 漢文學論集 Vol.41 No.-

        이명계는 18세기의 대표적 서얼 문사로서 李鳳煥과 함께 서얼의 독특한 시체인 초림체(椒林體)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명계의 이름이 문학사에 자주 거론되는 것과 달리현재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본 『海皐集選』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이명계와 그의 문집을 소개하고 아울러 그 시세계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먼저 『해고집선』 1·2권 「日東錄」에는 이명계가 1748년 통신 사행에 참여하여 지은 시 276수가 실려 있다. 본고에서는 다양한 시세계 중에서 이명계의 일본 인식과그 형상화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는데, 그는 일본에 당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는가 하면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었다. 또 일본의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들지 않으려 하는가 하면 일본의 풍속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부정적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일본 문사들과의 필담·창화 시에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유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그가 ‘□國’과 ‘交隣’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해고집선』 3·4권 「城南錄」에는 이명계가 주로 한양과 그 인근 지역에 살면서 지은 시 269수가 실려 있다. 이명계는 東岳詩壇에서 활동하며 벗들과 많은 시를 창작하였다. 이때 그는 칠언율시의 시체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쓸쓸한 분위기 속에 참신하고 독특한 경관 묘사와 공교한 표현이 어우러진 작품을 많이 지었다. 다만 경관 묘사에 치중하는 가운데 시인의 내면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그는 오언고시의 自警詩23편을 창작하였다. 이 시는 시인의 일상적 행위나 취미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시인 자신의 내면을 다잡고 더욱 성숙해지려는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동록」은 조선후기 지식인의 일본 인식 및 한일 문사 교류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성남록」은 18세기 서얼 문사의 작시 경향과 자기반성의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Lee Myong-Gye(李命啓) is a Seoeol(庶孼) poet, who represented the 18th century and led Cholim Style(椒林體) with Lee Bong-Hwan(李鳳煥), However, Lee Myong-Gye and his poems are still not introduced to the academic field in detail,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his life, anthology and the outline of his poetic world through Haegochipson(海皐集選) in C, V, Starr East Asian Library, UC Berkeley, Haegochipson Volume 1, 2[Ildongrok(日東錄)] are comprised of about 275 poems written at the time of 1748’s Tongsinsa trip, In these poems, Lee Myong-Gye had ambivalent attitudes about Japan, In other words, he sticked a negative and critical position about customs of Japan, Meanwhile, when he communicated with Japan poets by writing, he generally took a positive and favorable attitude, Because he wanted to do his best about two missions, ‘reconnoiter’ and ‘friendship’, Haegochipson Volume 3, 4[Sungnamrok(城南錄)] are comprised of about 264 poems, He wrote many poems with friends in Dongaksidan(東岳詩壇), At this time, he primarily used chileonyulsi(七言律詩), which were contained elaborate expressions in solitary mood, On the other hand, he created 23poems for self-reflection(自警詩), He newly recognized daily lives as materials for poems, and revealed will to maturity, As mentioned above, Ildongrok shows one of intellectuals’ understanding of japan and the reality of Korea-Japan Exchanges, Through Sungnamrok, we can understand Seoeol poet’s tendency to write poems and self-ref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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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용익의 <독사시장편삼백이십오운(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에 대하여

        이남면 ( Lee Nam-myon ) 온지학회 2021 溫知論叢 Vol.- No.67

        본고는 남용익의 <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시를 고찰한 것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太古시대부터 淸나라 초기까지 흥망성쇠의 변천 과정을 시대 순으로 읊은 칠언고시로, 총 325운이고 650구이며 4,550자에 이르는 장편 대작이다. 창작 동기는 남용익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勸善懲惡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하였으며 명말청초의 암울한 현실을 역사의 반추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특징은 儒家的 이념과 사유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유가의 인물을 칭송하고 異端을 배척했으며, 蜀漢이 漢나라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기술했고, 곳곳에서 尊王攘夷 의식을 드러내었으며, 秦始皇과 隋煬帝 등 폭군을 비판한 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현의 특징은, 우선 장법 면에서 褒와 貶의 반복과 그 거리 조절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였고, 역사의 전환기마다 과거와 새 시대를 연결하는 ‘聯’을 배치하여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시어의 사용은 ‘哀’, ‘恨’, ‘傷’ 등 감정 표현의 글자를 사용하여 비판의 효과를 높였으며, 동물과 관련한 일화를 실패와 몰락 등의 표현을 위해 원용하는 한편 고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어 역사를 현장감 있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구법 면에서는 7언구가 5언구에 비해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 시는 다양한 역사 기술의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해주었고, 家學을 통해 전승된 남용익의 역사 인식이 조선 후기 문인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다만 긴 편폭에 너무 많은 역사를 압축 제시하여 일별하기에 쉽지 않고 그 내용 또한 난해하다. 결국 이런 방식의 역사 시 창작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의 한계라고 할 만하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Nam Yong-ik's Doksasijangpyeonsambaekisipowoon(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 which is a long masterpiece comprised of total 325 Woons, 650 Gus, and 4550 letters. It chronologically depicts the history of China from ancient times to early Qing throughout its rise and fall. Nam was motivated to create this work by his interest in history. He also intended to encourage good and punish evil. Witnessing the reality of the central plains of China being taken over by Qing considered as barbarians, he presumably wished to get consolation for the present from the repeating nature of history. In terms of content, this work is characterized by historical awareness based on Confucian ideas and thinking, which is verified his praising Confucian figures and excluding the heresy, stating that Shu Han by Liu Bei inherited the legitimacy of Han, revealing his consciousness of revering the kings and excluding the barbarians throughout the work, and criticizing tyrants including Qin Shi Huang and Emperor Yang of Sui. The work was then examined in expressive methods. As for its sentence styles, the work repeated Praise(褒) and Censure(貶), regulated the distance, and used the technique of creating and relaxing tension in order to avoid monotonous and dull quality that could be found in long poems. Describing history during a transition period, he placed a "stanza" connecting an old era with a new one to ensure a natural flow. As for his use of poetic words in the work, he intentionally used letters expressing emotions such as ‘哀(sad)’, ‘恨(resentful)’, and ‘傷(hurt)’ to show his criticism effectively. In his work, the author let the dead speak in their own voices to depict history vividly with a sense of realism or used animal expressions and ancient events related to animal frequently in a bid to increase the expressive effects of failure, fall or its sign. In the use of phrase, he made active use of advantages of seven-character poem form which would not be expressed in a phrase of five characters. This work holds significance by proposing one of various approaches to historiography and having impacts on writers and scholars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through the transmission of Nam's historical awareness. It is, however, too long and presents too many historical events in such a compressed manner, which means that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its content and get a glimpse of it. As a result, poems written in this style were not transmitted to later generations, which is a limitation of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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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사행인의 바다 체험과 한시 : -남용익을 중심으로-

        이남면 ( Lee Nam-myo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9 漢文古典硏究 Vol.38 No.1

        본고는 통신사행인의 바다 체험 한시를 살피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南龍翼(1628-1892)의 바다 체험 한시를 연구대상으로 하여 그 시를 형식과 표현의 측면에서 살폈다. 남용익은 1655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扶桑錄』에 다량의 바다 체험시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분명한 작시 경향을 드러내었다. 남용익은 바다 체험 과정에서 시의 창작 방식을 다양화하였다. 그는 배안에 있거나 섬에서 체류할 때 정격의 시 뿐만 아니라 잡체시로 분류되는 다양한 체식의 시를 지었고 또 동료들과 聯句를 자주 지었다. 잡체시는 희작으로 분류되지만 정격의 시에 규칙을 추가하거나 제한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창작이 난해할 수 있으며, 연구는 공동 창작이기 때문에 시상의 흐름과 연결이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용익은 유희적이면서도 집중이 요구되는 체식까지 다양하게 지으며 소일함으로써 사행의 답답함과 무료함, 근심과 걱정, 슬픔 등의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또한 남용익은 바다 체험 과정에서 자신의 상상력과 지식을 시에 적극적으로 발현하였다.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관련짓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여시 중간에 연결 장치를 설정하는가 하면 꿈속의 상상을 통해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임진왜란을 떠올리며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기타 여러 상황에 대해 다양한 역사 전고를 聯想하여 비유하였다. 남용익의 바다 체험은 그의 나이 28세에 있었던 일이다. 그 스스로 『부상록』을 평생 저작 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할 만큼 당시 그가 지은 작품들은 공력을 들인 역작이었다. 그 공력은 정격과 변격, 단편과 장편, 개인 창작과 공동창작 등 다양한 방식의 창작을 시도하면서 상상과 연상 능력을 발휘하고 확대하고자 한 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바다 체험은 남용익의 작시 능력을 크게 성장시킨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Chinese poems about ocean experiences by a Tongsinsahaeng member. For this purpose, the study delved into Chinese poems about ocean experiences by Nam Yong-ik(1628-1692) in forms and expressions. Nam Yong-ik visited Japan as a Jongsagwan for Tongsinsa in 1655, not only writing a number of poems about ocean experiences in Busangrok, but also exhibiting his own distinct trend of poetry writing. He diversified ways of writing a poem in the process of experiencing the ocean. When he was onboard or stayed on an island, he wrote poems in various systems and forms classified as Japche(雜體) poems in addition to those in regular forms and often worked together with his colleagues in joint poems. Although Japche poems are classified as poems written for amusement, one can have a difficult time writing a Japche poem due to the addition of rules or restrictions to regular forms of poetry. Since joint poems require collective creative efforts, poets should be careful not to have unnatural flows and connections of their poetic ideas. Nam would spend his time on a Sahaeng trip to Japan by writing playful poems in various systems and forms that required his concentration, thus unburdening himself and pouring out his dullness, boredom, concerns and worries, and sorrow on the trip. He also manifested his imagination and knowledge in his poems actively in the process of having experiences with the ocean. He would set a connective device in the middle of a poem by mobilizing his imagination to connect two things that seemed irrelevant to each other or express his longing for the world of Taoist hermits with miraculous powers through his imagination in dreams. He also expressed his animosity to Japan, recalling Imjinwaeran and associated and compared various situations to authentic historic precedents. He had these ocean experiences at the age of 28. His works created during the time were such masterpieces to which he devoted his efforts that he said Busangrok was the most outstanding work of his life himself. His creative devotion was embodied in his efforts to exert and expand his imagination and association abilities by making an attempt at creation in various styles including poems in regular and irregular forms, short and long works, and individual and joint creations. As a result, his ocean experiences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him to improve his abilities of poetry writing to a great deg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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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경 가행(歌行)의 형식미 연구

        이남면 ( Nam Myon Lee ) 민족어문학회 2011 어문논집 Vol.- No.63

        이 논문은 정두경 歌行의 형식미 구명을 목적으로 하였다. 정두경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시인 중 가장 古學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다량의 가행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본고에서는 바로 이 우수성이 사상과 주제의식의 훌륭함 때문만이 아니라, 사상과 주제를 도출해내는 방식에서 기인한 바 역시 크다는 인식에 따라 정두경 가행 창작의 실제를 ``변화``와 ``연결``의 측면에서 분석해보았다. ``변화``와 ``연결``은 바로 가행 창작의 성공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두경 가행에 나타나는 변화를 이덕무의 평가를 빌어 ``伸縮의 변화``로 규정하고, 이를 편의상 압운·구식·억양의 변화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정두경의 가행은 압운 방면에서 換韻과 함께 압운 거리의 변화를 통해 기세의 완급을 조절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두경은 정형의 법칙을 사용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변화는 시의 내용 및 분위기와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 변화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구식 방면에서는 우선 개두에 5언구를 사용하여 간략히 시작을 알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거나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정두경은 인물이나 지역, 사물, 깨달음 등 특정 내용에 한정하여 강조하고 싶을 때 시 중반에 9언구를 돌출시키기도 하고, 역시 시 중반에 갑작스레 5언구를 돌출시켜 환운을 대신하여 시상 전환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정두경은 결미에 의문형의 長句를 사용하여 자신의 격앙된 목소리를 강렬하게 표출시킴으로써 주제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편 억양 방면에서는 ``억→양``, ``양→억``, ``억→양→억``, ``양→억→양``으로 구분하여 살폈는데, ``긴장과 해소``, ``형세의 역전``, ``칭송과 비판``, ``감정의 기복`` 등 다양한 억양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중에는 ``억``과 ``양``의 편폭 차에 따라 후반부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편폭을 동일하게 하여 ``억``과 ``양`` 모두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정두경은 시상의 연결도 중시하여 過段을 설정하기도 하고, 이미지나 속성의 유사성을 가지고 두 사물이나 현상을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용어를 중복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거나, ``此``자를 사용하여 앞의 내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조응의 방식을 활용하거나 선련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연결방식은 개별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해보았다. Jeong Du-Gyeong(鄭斗卿) was a poet representing the 17th century and prominent person in the study of Chinese classics in Korea. He had left plenty of Ga-Haeng(歌行) works, writers in the late Chosun acknowledged the excellence of his Ga-Haeng. This paper analysis on real of Ga-Haeng creation of Jeong Du-Gyeong in the sides of ``change`` and ``connection``. This is why the excellence of his works came from not only distinction in thoughts and the subject but also the methods As a result, in the use of rhyme he delivered the subject effectively through changes of rhyme and rhyming interval. In the process he made constant changes in poem`s rhyme rather than followed set patterns. These changes make readers feel the beauty of change in harmony with contents and atmosphere. In the use of verse form he used verse forms with five words in the beginning frequently. It plays a role that triggers curiosity or gives hints on what is going to happen. He also used verse form with nine words in the middle when he wants to emphasize specific contents such as features, region, things and understanding. He exserted verse forms with five words in the middle abruptly for the changes of poetic concept. In addition, he emphasized subjects by using long verses of question in the end. On the other hand, there are many variations on intonation in his Ga-Haeng such as tension and relaxation, the reversal of situations, praise and criticism, emotional ups and downs. there are both to emphasize latter half of poem, and the whole of poem. On the other hand, he considered the connections of poetic concept. Thus he made various instruments for connection. He made a paragraph of connection, and combined image of similarity between two things, used same word in same position, connected preceding paragraph through use of ``Cha(此)`` word, and made use of correspondence(照應) or SeonRyeonChe(蟬聯體). This various connecting methods tend to be used compositely rather than individ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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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암송연(芚菴宋淵)의 고시연구(古詩硏究)

        이남면 ( Nam Myon Lee ) 한국한문교육학회 2014 한문교육논집 Vol.43 No.-

        宋淵(1573~1651?)은 선조~효종 연간의 문단에서 활약하며 당대 최고의 문인인 權필, 李安訥, 申翊聖, 鄭斗卿등으로부터 높은 시적 성취를 인정받은 시인이다. 하지만 송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으며 그의 생애조차 소개된 바가 없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연의 생애를 간략히 살피고 그의 古詩를 오언과 칠언으로 구분하여 논하였다. 송연 시의 특장은 고시에 있으며 그의오·칠언고시는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송연은 모두 144수의 오언고시를 남겼다. 그 중 詠懷詩와 贈詩중에서 단형의 連作詩가 종종 보이는데, 그는 연작시를 구성하는 각 작품의 유기적 관련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작품의 표현 소재 및 수법을 다양화하는 것에 더 주력했으며, 이를 통해 시인의 회재불우, 고결한 정신, 현실 비판 등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었다. 송연의 연작시는 古人의 시를 차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때로는 고인의 시구를 韻字로 활용하는 방법을 통해 새롭게 연작시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송연은 연작형의 고시 외에 장편시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주로 送詩, 挽詩와 같은 이별의 노래를 장편으로 창작했으며 대부분 시상의 흐름과 배치를 정교하게 구성함으로써 시적 성취를 드러내었다. 칠언고시는 민간의 실제 일화를 소재로 하여 시상을 전개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는 몇몇 작품의 幷序에서 古樂府를 모방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단지 고악부의 형식만을 본뜬 것이 아니라 民風의 반영이라는 악부 본래의 정신까지 본받으려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인재를 함부로 죽이거나 지조를 쉽게 저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고 義士와 烈婦의 활약상을 칭송하였다. 한편 그는 押韻, 句式, 句數등의 변화를 통해 시상을 전환함으로써 敍事의 흐름을 단조롭지 않게 하였고, 서사와 抒情의 연결 장치를 마련하거나 혹은 상반된 상황을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송연의 고시가 오·칠언 방면에서 수준 높은 성취를 이루었으며 송연에 대한 당대인들의 칭송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Song-Yeon(宋淵)`s old Style Poetry(古詩) and explain the achievement of it. Song-Yeon was widely recognized as the old style poetry(古詩) writter among the best poets of the Middle of the Chosun Dynasty such as Gwon Pil(權.), Yi An-Nul(. 安訥), Shin Ik-Sung(申翊聖), Jeong Du-Gyeong(鄭斗卿). Song-Yeon wrote 144 Oeonkosi(五言古詩) that were mostly composed of Series poems or Long poems. In Series poems, he focused on indepen- dence rather than relationship between each poem. Thereby he diversi- fied the techniques of poetic expression and exposed his mental conflicts very well. He mainly composed Series poems in the process of imitating rhyme of other writer`s old style poetry. Sometimes he showed his individuality by using the verses of other writer`s old Style Poetry as his poem`s rhyming words. On the other hand, he also wrote long farewell songs such as Valedictory Poems(送詩) and Requiems(挽詩) that had a tight plot line. His Chireonkosi(七言古詩) are based on true stories among civilians. Through it he criticized social conditions or praised the righteous. He effectively expressed the subject through changes of rhyme, verse form, verse number and making various literary instruments for connections.

      • KCI등재

        병자호란의 기억, 그 시적 형상화

        이남면 ( Lee Nam-myon ) 동방한문학회 2016 東方漢文學 Vol.0 No.68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patterns of embodying the memories of Manchu War of 1636 into poems among the literary figures of Joseon and discuss their meanings. Since the memories of the War could differ according to whether one has an experience with the War or not, the study categorized the patterns for examination purposes. In middle Joseon, the literary figures that had an experience with the War passionately expressed their devastation and made a reflective and critical investigation into the causes and accountability of the War, developing a tendency of ruminating over the present by associating it with the historical facts. Their poems showed a lyrical tendency, being intense and emotion-oriented. Witnessing the desperately dangerous moment when the fate of nation would be decided and the humiliation of the king, the literary figures focused their viewpoints on the inside of themselves that had been hurt as well as the king, royal court, and ministers and had negative memories such as anxiety, defeat, humiliation, and loss. The poetic tendency of literary figures than experienced Manchu War of 1636 was found similarly in the works of literary men in the second half of Joseon that had no such experiences. The latter reorganized the episodes of certain figures or events that had been orally transmitted with regard to the War into long epics. They expanded their interest and viewpoints regarding the War from the center including the king and royal court to the performance and suffering of common people and created poems with new facts that had not been known, thus adding new memories of the War. Some of them depicted the horrors of the War, and others told a positive and moving story involving victory in battles and righteous brothers. They showed there were hopes and successes in the War as well as humiliation, grief, and failure. Those changes to their creation patterns indicate that the patterns of reflecting the reality became increasingly broader and more specific in the Chinese poems about the War toward the second half of Joseon. They also show that the painful memories of the War were overcome in certain parts through the Chinese poems.

      • 이수광의 삶과 『지봉집』

        이남면(Lee, Nam-myon)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2018 동아한학연구 Vol.- No.13

        이 글은 이수광의 생애와 지봉집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이다. 우선 이수광의 가계를 통해 그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학자로 성장하고 정치적 교유를 하지 않았던 배경을 살폈다. 이어 그의 생애를 과거급제와 계축화옥, 인조반정을 기준으로 크게 4시기로 구분하여 살폈다. 그 결과 이수광은 문과에 급제한 이후 잠시 은거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생애 전반을 통해 볼 때 수많은 국내의 내·외직을 역임하고 해외 사신으로 크게 활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봉집의 간행 경위, 체제와 내용, 가치와 의의를 차례대로 살폈다. 지봉집 간행은 이수광 사후에 아들 성구와 민구가 부친의 자편 원고를 수집 정리하고 제가의 애도 시문과 서·발문을 첨가하여 1633년 의령에서 총 31권, 부록 3권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지봉집은 크게 시와 산문으로 구분된다. 시의 경우 권1~7은 시체별 편차 방식으로, 권8~20은 시기별 편차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의 경우 권21~23에는 관료생활 중에 쓴 공용문과 일상생활 중에 쓴 글의 다양한 문체가 혼재되어 있고, 권24~31에는 노년기에 학문과 수양을 통해 사색하고 깨달은 단편의 글 738조목이 실려 있다. 지봉집의 가치와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해외 교류의 측면에서 세계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였다. 둘째 문학적 측면에서 16C말~17C초 문단의 당시풍 추구와 유행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셋째 학문적 측면에서 조선 지식인의 자기 경계와 검열, 학문적 수양의 실상을 살필 수 있다. This paper presents a brief introduction about Lee Su-gwang"s life and Jibongjip. The study first examined the background behind his growth into one of the greatest literary figures and scholars in middle Joseon and his involvement in no political associations through his family tree. The study then divided his life into four major periods based on his passing in the state exam, Gyechukhwaok[癸丑禍獄], and InJo-Coup[仁祖反正] and found that he held government office in and outside the capital many times and played very active roles as an overseas envoy throughout his life except for a short retirement after his passing in the state exam for civil servants. The study also examined the publication details, system and content, and value and significance of his Jibongjip. After his death, his sons Seong-gu[聖求] and Min-gu[敏求] gathered and arranged his manuscripts, added prose, verse, letter, and postscript works by the whole family, and published total 31 volumes and three supplements in woodblock in Uiryeong[宜寧] in 1633. His Jibongjip consists of prose and poetry. Volumes 1~7 contain poetry works in the style-based edition approach, and Volumes 8~20 do in the period-based edition approach. As for prose works, Volumes 21~23 offer a mix of his various writing styles including his official documents from his life in government office and his writings based on daily life. Volumes 24~31 contain 738 short works that he wrote after his thinking and realization based on study and cultivation in old age. The value and significance of Jibongjip can be summarized in three major aspects: first, it expanded the breadth of people"s perceptions of the world and contributed to the globalization of our literature in terms of overseas exchange; secondly, it shows the pursuit and vogue of Tang-style poetry in the literary circles in the late 16th century~early 17th century in terms of literature; and finally, it helps to understand the self-vigilance, censorship, and academic cultivation of intellectuals in Joseon in terms of study.

      • KCI등재

        17세기 中國繪畵(중국회화)의 流入(유입)과 그 題畵詩(제화시)

        이남면 ( Nam Myon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3 漢文古典硏究 Vol.27 No.1

        17세기 중국회화를 대상으로 한 조선 문인들의 제화시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논한 것이다. 17세기의 문인들은 사신 왕래 과정이나 심양 인질생활 중에 다량의 중국회화를 입수하였고, 이후 여러 문사들과 회화를 공유하며 시문 창작을 권유한 만큼 현재 적지 않은 제화시가 전하고 있지만 주로 17세기 회화사나 회화관 연구를 위한 보조 자료로 쓰이고 있을 뿐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는 인식에 따라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우선 17세기의 문인들은 중국의 회화를 보고서 비참한 시대적 현실을 떠올리고 반청의식을 드러내는 등 적극적 현실 인식을 보일 때가 많았다. 즉 명나라의 멸망에 슬퍼하고 치욕적 현실에 분개하며 복수설치를 희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림 자체의 예술적 성취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적 감정의 표현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반면 당시 문인들은 제화시속에 현실을 벗어나 고자 하는 뜻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반정과 전란, 당쟁 등 극도의 혼란과 무 질서를 경험했던 그들에게 탈속과 은일의 희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밝고 차분한 분위기 외에 때로는 격정적이거나 감상적인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당시 문사들은 중국회화를 접하고서 한편으로는 탈속을 지향하면 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식인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한편 그들이 창작한 수준 높은 시는 중국의 우수한 회화작품 에 더해짐으로써 회화의 소장 가치를 한층 높였다고 하겠다. This study focuses on Jehwasi[題畵詩] of the 17th century that is written especially on Chinese paintings. In the 17th century, there is a great change in social, cultural, economic aspects owing to Manchu`s invasion of Korea in 1636 (丙子胡亂) and the Party Strife. Therefore Jehwasi also reflects the complicated thoughts of the poets. It can be roughly categorized into two trends. First, Jehwasi written by Chosun`s Literary men in the 17th century expresses sorrow over the miserable social conditions and Anti-Qing sentimentality(反淸意識). The poets concentrated more on showing their personal feelings than its own artistic achievements. Second, the works express a longing for unworldliness land of poets. They tried to escape from these harsh realities by looking at peaceful and dreamlike scenes in Chinese paintings. Consequently, on the one hand they hoped to go to the unworldliness land but on the other they felt social responsibility as intellectuals while they watched Chinese paintings. Also their high level poets increased the value of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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